아닌 게 아니라 세상에는 속속 '땅 끝까지 전하라'의 성격을 띤 프로의 복음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고, 한결같이 방송인과 지식인, 광고인과 경영인들의 슬기를 모은 것들이었으며, 과연 줄기찬 것이었다.

1.  이젠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당시 가장 많이 회자되던 프로복음 1호 되겠다. 프로가 안 되면 아마 죽을 거라는, 최후의 통첩이 실린 무게 있는 복음이다.

2. 난, 프로라구요: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앞으로는 잔업이든 휴가 반납이든-아무튼 불꽃 같은 프로의 삶을 살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뚜렷이 공고한 프로복음 2호 되겠다. 한편 당돌해 뵈면서도 목숨의 부지를 위한 비장한 각오와 잔잔한 애수가 서려있는 복음. 과거 유신복음 중에는 같은 맥락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있다.

3. 프로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아닙니까?: 주로 비열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룬 자들이 내뱉던 프로복음 3호 되겠다. [동물의 왕국]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킨 친(親)환경주의, 동물애호주의의 복음. 이 복음을 토대로 어쨌든 이기면 된다, 어쨌든 돈만 벌면 된다는 새로운 세계관이 빠르게 형성될 수 있었다.

4. 하루빨리 프로가 되게: 주로 회사의 상사들이 신입사원들에게 쓰던 프로복음 4호 되겠다. 쉽게 말해, 할 일이 태산 같다는 말이다.

5. 허허, 이 친구 아마추어구먼: 미전향 아마추어들에게 전도의 목적으로 쓰이던 프로복음 5호 되겠다. 가벼운 멸시와 조롱을 담아서 그들의 전향을 유도했다.

6. 맛에도 프로가 있습니다: 요식업계를 통해, 민간에서 처음으로 창출된 프로복음 6호 되겠다. 거창한 문구로 위장해 있으나, 그 어원은 '옆집보다 우리 집이 더 맛있어요'라는 소박한 것이다.

7. 이러고도 프로라고 말할 수 있나?: 주로 실수를 범한 부하직원에게 상사가 내뱉던 프로복음 7호 되겠다. 쉽게 말해, 나가 죽으라는 말이다.

8. 프로의 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이다: 아직 멀었다. 더 높은 경지의 프로 세계가 있으니 분발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프로복음 8호 되겠다. 주로 대학교수나 무슨 연구소의 소장이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최대 급소인 무식(無識)의 혈을 찌른 고급 복음이다.

9. 프로는 끝까지 책임을 진다: 아마추어 음해와 더불어 야근의 생활화 고착을 목표로 한 프로복음 9호 되겠다. 이후 아마추어는 책임감이 없다는 사회적 무의식과 야근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기업 풍토가 널리 확산된다.

10.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한국 경제사에서 여성 고급 인력의 필요성이 대두될 때 나온, 그러나 여성 고급 인력의 필요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프로복음 10호 되겠다. 역시 거창한 문구로 위장해 있으나, 그 원래의 뜻은 '옷 사세요'라는 말이다.

11. 프로주부 9단: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주부들에게 그럴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만든 포로복음 11호 되겠다. 주부가 앞장서서 살림도 프로로 하고, 애들도 프로로 키우라는 거시안적 포석이 깔린 복음. 승단 심사와 발표를 어디서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한겨레 신문사, 2003. 77~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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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5-06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에 대한 조롱과 야유! 통쾌하다. ㅍ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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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9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93년 6월 24일 목요일. 맑음

  호근이가 오랜만에 두 시간 동안 우리 교실에 있었다.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게 나무랄 데 없건만 자란 환경은 이 애를 제 또래들한테서 떼어놓았다. 평범하게 자라던 나도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식구들의 구속이 거의 없이 큰 데다 여린 맘을 지녔던 나에게 '학교'라는 틀과, 틀만으로 빈틈없이 짜인 '우리'는 늘 나를 주눅들게 했다. 교사들의 말 한 마디 한마디는 그대로 내 영혼을 고문하는 거였으며(돌이켜보건대 선생님들과 나 사이에는 왜 그다지도 먼 거리가 놓여 있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능력이 없는 우리에게 선생님들은 말끝마다 '큰사람'만 되라고 했다. 오직 공부를 잘 해야만 닿을 수가 있었던.) 가난은 그나마 붙어 있어야 할 자존심마저 팽개쳐 버리도록 했다. 거기에 모자란 힘과 용기는 자나깨나 주위 눈치만을 살피도록 했으니, 어찌 자신과 앞날에 대해 드넓은 시간과 우주에 대해 눈을 돌려볼 수 있었겠는가?

 

1993년 6월 29일 화요일, 흐리고 가끔 비.

  사람들은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두고 맞서기보다는 먼저 비켜라려고 한다, 정옥이와 영남이에게 몇 번째 받아쓰기를 못한다고 손바닥을 때려주면서 이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더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맞으면 세상에 때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시간을 내 취미를 위해 쓰면서 (주로 책을 읽는데, 그럼으로써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정작 아이들을 위해 시간 내는 것에는 인색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또 이 생각을 적으면서도, 언제까지 이 버릇을 버리지 못할지 나는 모른다. 돈이야 가진 게 없으니 남에게 인색하게 굴고 자시고 할 게 없지만 시간에 대해서만은 우리 아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한 채 혼자서만 줄곧 움켜쥐고 있었다. 내가 교단에 서서 가장 괴로움을 받는게 있다면 이뿐이다. 농사짓는 일을 뺀 첫째 직업에다 교직을 놓는 걸 나는 주저하지 않겠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 보고 싶다.

 

임길택,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보리, 2004, 196쪽,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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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위대한 동반자

당신의 비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가까이 하라. 마크 트웨인의 말을 기억하라.
"당신의 꿈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당신 역시
위대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 강준민의《비전과 존재 혁명》중에서 -


* 당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당신의 숨겨진 비전을 발견해 주는 사람,
그 꿈과 비전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함께 이루어가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당신의 '위대한 동반자'입니다.
언제인가 반드시 서로 만나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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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친다는 것은, 이제까지 생각없이 지나치던 일에 뜻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배우는 이의 경험이 되도록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 생각해오고 있다. 잔잔한 물에 돌멩이를 던지면 물결이 일듯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일' 말이다.

 교과서만 들고 아이들을 마주할 때는, 사실이지 좀 빨리 내 말뜻을 알아듣는 아이가 예뻐 보인다. 이와는 거꾸로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한 마디로 눈 속 티끌처럼 거추장스럽고 볼품이라곤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 발자국만 물러서 보면, 교과서를 잘 이해하든 그렇지 못하든 그들 모두가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할 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제 삶을 책임질 줄 알고 남들에게 눈물 안 흘리게 하는 사람으로 커가도록 우리가 도와 주어야 할 아이들임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임길택,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2004, 9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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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2-1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발자국만 물러서 보면, 공부란 게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는데 말이죠.
마음이 넓어진다는 것은, 마음이 흔들리는 일의 연속인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