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사두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빌러비드 Beloved>는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책에서 많이 언급되기에 꼭 읽어야 할 것 같았으나 두려움이 앞섰다. 이 책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이 충격적이라서 이걸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망설여졌던 것이다. 이른바 ‘마거릿 가너 사건’- 1856년 흑인 노예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두 살배기 딸을 살해한 사건이 <빌러비드>의 중심 소재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마거릿 가너가 흑인 노예였고 여성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녀가 살해한 자식의 성별이 딸이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노예였으므로 노동력 착취는 기본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일상적으로 성 착취의 대상이었을 테고 그런 자신의 삶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구나,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제 손으로 자식을 죽일 수 있을까, 그것은 옳지 않다고, 부당하다고, 어머니로서 자격이 없다고 미치광이 살인마나 다름없다고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부모가 자신의 삶이 힘들어졌다고 자식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분개한다. 자기들 마음대로 싸질러놓고 또 자기들 멋대로 목숨마저 가져가버리는 부모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 그 폭력에 진저리를 친다. 자식이 부모의 물건인가? 제 소유인가 싶어져서 그 어린 생명을 멋대로 가져가버린 부모라는 이들에게 분노하게 된다.

이런 나의 기준으로 마거릿 가너- 그녀의 행위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딸에게도 똑같은 삶을 대물림 해 주고 싶지 않았을 엄마로서의 선택. 그렇지만 엄마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당한 어린아이의 목숨이 가엾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딸이 만일 그 시절 미국의 어느 주(州)- 노예제도가 아주 견고한 지역에 태어나서 마거릿 가너와 다를 바 없는 전철을 밟는다고 생각하면, 그 목숨은 과연 이 세상에서 부지해나갈 이유가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데…. 하지만 마거릿 가너는 당시만 하더라도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받지 않았던가. 그녀의 백인 주인은, 자신의 소유물이 또 다른 물건을 파괴함으로써 재산에 손해를 끼쳤다고 극노했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빌러비드>를 펼쳤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의아했다. 흑인 여성 ‘베이비 석스’를 비롯해 ‘세서’, ‘덴버’ 등 여러 여성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삶은 자못 평화로워 보여서 토니 모리슨 작품 중에서  아이를 살해한 노예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이 <빌러비드>가 아닌가? 다른 작품인데 내가 착각했나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랬다. 작품 초반 중년의 세서는 하나뿐인 딸 덴버와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가 그들과 함께 살았는데 몇 해 전 세상을 떠나고 이제는 단 둘이 남은 모녀. 그런데 그들은 노예 신분이 아니다. 베이비 석스 또한 자유인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서의 남편이자 베이비 석스의 아들인 헬리가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어머니를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분명 헬리가 돈으로 자유를 사준 사람은 베이비 석스 뿐인데, 세서와 덴버는 어떻게 이 외따로 떨어진 곳에서 오가는 이웃들도 없이 단둘이, 그렇지만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런데 아기 유령이 나타난다는 말은 또 뭔가. 아리송할 때 그들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폴 디’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세서가 오래전 그 이름도 참 얄궂기 짝이 없는 ‘스위트홈’라는 곳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때 알고 지내던 사람이다. 지금은 행방불명이 된 남편 헬리와도 가까웠던 그, 그러니까 그들 모두가 그 시절 노예 생활을 하며 고충을 나누던 사이였던 것이다. 폴 디의 등장과 함께 세서의 과거도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세서’는 실존 인물이었던 마거릿 가너의 문학적 현신이다. 그렇다면 덴버가 세서의 손에 언젠가는 죽임당할 가여운 딸인가 싶은데, 그러기에 덴버는 이미 십대의 나이를 넘어선 소녀이다. 실제 사건과는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때 불현듯 작품 초반에 세서와 덴버가 사는 집에 아기 유령이 같이 살다시피 하고 있다는 설정이 떠오른다. 게다가 이 세 사람, 세서, 덴버, 폴 디 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한 처녀. 그녀의 이름은 빌러비드- 이 작품은 이렇게 유령이 등장하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도리어 어떤 면에서는 스위트홈 시절, 친절한 얼굴의 백인 주인 가너 씨가 세상을 떠나고 다른 백인들이 등장하면서 망가져가는(그러나 실은 본디의 모습대로 돌아간) 스위트홈에서 일어나는, 노예를 향한 억압과 착취가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이게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저런 짓을 벌일 수 있는가. 이것이 도리어 꿈이라면, 악몽이라면, 현실이 아니었으면 싶어진다.


“당신의 사랑은 너무 짙어.” 이렇게 말하며 그는 생각했다.
“너무 짙다고?” “사랑이 그런 거야.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지. 옅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그래. 그렇지만 아무 소용없었잖아, 안 그래? 무슨 소용이 있었어?” 폴 디가 물었다. (272쪽)


세서는 폴 디가 보기에 위험했다. 정말 위험했다. 사랑이 너무 짙어서. 한때 노예였던 여자가 뭔가를 저토록 사랑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사랑하는 대상이 자식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조금만 사랑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그 대상의 허리를 부러뜨리거나 포대에 처넣는다 해도, 그다음을 위한 사랑이 조금은 남아 있을 테니까’(82쪽). 그런데 세서의 사랑은 너무 깊었다. 그 짙은 사랑 때문에 아이를 살해한다. 사랑이 덜했다면, 사랑이 없었다면 아이를 죽이지 않았을까. 이 무렵의 많은 노예 여성들이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백인 주인이나 백인에게 강간당해 낳은 자식도 많았을 것이다. 하나의 인격이 아닌 동물, 짐승, 재산으로 취급되었기에 자식을 많이 낳아서 주인의 재산을 불려주는 여성 노예는 환영 받았을 것이다. 세서는  착한 얼굴을 한 백인 주인을 만난 덕택에 헬리와 결혼할 수도 있었고, 너무나 운이 좋아서 그 남자의 아이만 낳을 수 있었다. 그건 정말 엄청난 행운이다. 세서의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만 하더라도 자식이 여덟인데 아이 아버지가 여섯이나 되지 않는가. 게다가 그 여덟 명의 자식 중 누구하나 그 곁에 남아 있지 않다. 넷은 빼앗기고, 넷은 달아나버렸다. 물건이기에, 재산이기에 짐승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당하면서 늘 애비가 다른 자식들을 낳을 수밖에 없는 노예 여성.

한편 폴 디 같은 흑인 남자는 백인 주인이 남성성을 인정해줄 때만 남자가 된다. 스위트홈의 좋은 얼굴을 한 백인 주인 가너 씨는 자기 농장의 흑인 남자 노예들에게 ‘너희들은 남자’라며 남성성을 북돋는다. 그런데 헬리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이름은 대게 폴 에이, 폴 디, 폴 에프이다. ABCDEFGHIJK…. 그 농장의 흑인 남성들 이름은 아마도 이렇게 이어지리라. 물건은 아닐뿐더러 짐승도 아니지만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계면쩍은 것인가? 선량한 얼굴의 백인 주인 가너는 그의 노예들에게 이런 이름을 붙여준다. 그는 피부 빛깔이 허옇긴 하지만 괜찮은 흰둥이일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그가 자신의 노예들의 남성성을 북돋아준 것도 결국 자기가 지닌 노예들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렇게 키워준 남성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폴 디의 경우만 보더라도 모순덩어리이다. 세서의 비밀을 알고 난 후, 그가 취하는 행동은 비겁하다. 그가 이제껏 주변에 뿌려온 다정하고 선한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그는 정작 세서가 필요할 때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에 집중하느라, 술이나 퍼마시며 자기연민에 빠질 뿐이다. 물론 이것이 대다수 남성의 모습일 것이다. 토니 모리슨은 같은 억압을 받고 같은 차별을 받으면서도 또 그 안에서 한 번 더 여성을 단죄하거나 멋대로 판단하는 남성의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폴 디와의 관계를 지켜보노라면 제 손으로 딸의 목숨을 끊어버린 세서의 선택을 단순히 ‘모성’이라는 이름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녀가 그토록 모성이 절절한 여인이었다면 아이를 낳자고 부탁한 폴 디의 제안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또 다시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두렵다. ‘그때처럼 아이를 돌볼 수 있을 만큼 착해지고, 기민해지고, 강해져야만 한다’는 생각, 또다시 ‘그만큼 더 오랫동안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진저리를 친다. 사랑하는 남자가 아이를 갖자고 하는데, 그녀는 ‘오,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서는 말한다. 모성애란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뭣 때문에 그는 그녀가 임신하길 원할까? 그녀를 떠나지 않으려고? 자기가 이 길을 지났다는 표시로? 그는 아마 사방에 애가 있을 것이다. 십팔 년 동안이나 떠돌아다녔으니, 틀림없이 몇 명은 싸질러놓았겠지.’(220쪽)

세서는 여성 노예로서 이중으로 착취당했다. 노예로서 쉴 틈 없이 일했고,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는커녕 백인 놈들에게 여러 차례 강간당한다. 매를 맞고 학대당하고, 그러고도 일을 해야 했다. 남편이 사라지고 그나마 사람처럼 대우해주던 주인도 사라진 지금, 그녀가 시어머니처럼 아버지가 저마다 다른 아이를 낳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녀는 노예이므로 쾌락도 느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들은 팔려가거나 도망가거나 그러다가 죽임당할 것이다. 그 아이들의 앞날을 알기에, 세서는 결심한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자신의 아기들을 ‘공책에 적거나 줄자로 잴 수’ 없도록 ‘애국자들이 흑인 학교에 불을 질러 부글부글 달구어진 여학생들 가운데 내 딸이 있는지, 백인 무리가 내 딸의 은밀한 곳을 침범하고 허벅지를 더럽힌 후 마차 밖으로 내던지지는 않았는지’ 괴로워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은 도살장 마당에서 몸을 팔지언정, 딸에게는 결코 그런 삶을 물려주지 않도록, 그리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딸의 특징을 공책의 동물적인 특징 목록’(409쪽)에 적는 일이 더는 없도록 그녀는 그렇게 단행한 것이다. 이것을 단지 모성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추고 살아갈 수 없다면, 그리하여 다른 인간도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면 그가 그런 길을 걸어가지 않도록 돕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더 짙은 사랑이 아닐지.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3-08-28 17: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세서가 저지른 일이 너무..너무.. 이해가 되더라고요ㅠㅠ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임신한 몸을 이끌고 탈출해서 간신히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도망길에 배 위에서 태어난 내 딸이 다시 끌려가 내가 당한 짓, 혹은 그보다 더한 짓을 당할 것이 뻔히 보인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ㅠㅠ
백인들 진짜 백만번 사죄해도 마땅한 놈들이 아직도 깜둥이라며 차별하고 있으니.. 어휴.
그러고보니 이 책 너무 좋아서 더 읽으려고 토니모리슨 세권이나 사놓고 한권도 더 못 읽었다는요 ㅋㅋ

잠자냥 2023-08-28 17:22   좋아요 3 | URL
아이가 살면서 강간이 디폴트라고 생각한다면 저라도…..

덴버의 앞날도 딱히 밝지만은 않아보여 힘드네요. ㅠㅠ

근데 뭐뭐 샀어요?!

독서괭 2023-08-28 17:34   좋아요 2 | URL
재즈, 술라, 보이지않는잉크요 ㅋㅋㅋ

잠자냥 2023-08-28 17:44   좋아요 3 | URL
좋은 건 다 사둔괭 ㅋㅋㅋㅋ

미미 2023-08-28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읽다 말았는데 꼭 완독해봐야할 작품이네요.
요즘 아동살해와 당시의 상황은 분명 다를 거란 생각이 들어요.에휴..ㅠㅠ

잠자냥 2023-08-28 17:32   좋아요 2 | URL
완독 고고! <여전히 미쳐 있는> 읽기 전에 읽으세요!

유부만두 2023-08-28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모리슨 읽기 시작하신김에 “솔로몬의 노래”도 추천합니다. 자냥님의 멋진 리뷰가 읽고 싶어요.

잠자냥 2023-08-28 17:31   좋아요 2 | URL
네 이거 꺼내 읽다 보니 언제 사둔 건지 ㅋㅋㅋ 옆에 솔로몬의 노래도 있더라고요?! 깜놀 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3-08-2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잠자냥님 이 책 안 읽으셨군요.
저도 사두고 몇 년을 그냥 묵히고 있는 책이에요. 역시 🌟 다섯이군요.

잠자냥 2023-08-29 11:58   좋아요 1 | URL
저 안 읽은 책 많아요!
얼마 전 쿨캣님이 극찬하신 <한밤의 아이들> 책장에서 잠든 지 어언.......ㅋㅋㅋㅋ

은오 2023-08-2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자평 보고 예상 못했는데 짙은 사랑의 대상이 자식이었다니.......!!!!!
안태어날 내 자식아 복받은줄알거라 널 너무 사랑해서 낳지않는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궁극의모성

잠자냥 2023-08-29 21:58   좋아요 0 | URL
딸자식. 세상에 안 내놓는 것이 더 큰 사랑~
이 책 <여전히 미쳐 있는> 등등에 많이 언급됩니다요.
 
타라바스 - 이 땅의 손님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요제프 로트 지음, 남기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에게 갱생은 가능할까? 사람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획기적으로 변모할 수 있을까? 내가 인간에 대해 기대치가 별로 높지 않은 까닭 중 하나는 인간의 갱생 가능성을 그리 믿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비롯해 사람은 타락하기 쉽다. 아주 악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일상 속의 자잘한 타락, 그러니까 인간은 대개 몸이 편한 것과 눈앞의 이득을 먼저 좇는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보다는 일단 먹고 누워서 뒹굴거리기 좋아하는 게 대다수 인간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나쁜 버릇이나 습관, 자기를 비롯해 때로는 타인에게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끊을 수 없는 중독 등등이 누구에게나 한 두 개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나쁜 습관을 끊고 자력으로 갱생한다!? 그러기는 참 쉽지 않다. 하물며 나쁜 인간이 악한 짓을 하다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참회한다..... 이것은 거의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이나 영화를 그렇게 보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로서의 문학, 판타지로서의 영화. 거기서 얻는 카타르시스....

요제프 로트의 <타라바스-이 땅의 손님>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타락한 인물은 ‘타라바스’이다. 타라바스는 러시아 변방 갈리치아(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방 출신의 가톨릭 신자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학을 다니다 중퇴한 청년이다. 혁명 모임에 가입해 총독 저격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풀려나온 그는 아버지가 러시아 황제와 인연이 있는 덕분에 장교 계급을 쉽게 달지만 엄격한 아버지는 아들이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것이 끝내 못마땅하여 타라바스를 미국으로 쫓아내버린다. 여기까지의 그는 그 또래의 미숙하고 치기 어린 남자로만 보인다. 집안 부유하고 부모 잘 만나서 고생 모르고 자란 부잣집 도련님. 미국으로 쫓겨났다지만 몇 년 자숙하면 부모가 다시 러시아로 불러들여 장교 신분으로 호의호식하고 살겠지 싶은 그런 남자.

그런데 이놈 참 웃긴 게 성질이 지랄 맞은 것인지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흥청망청 사는 게 너무 잘 맞는 것인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뉴욕에서 ‘카타리나’라는 여자 친구도 사귀면서 그럭저럭 방탕하게 잘 살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이 미숙하고 원초적 욕망만 머릿속에 꽉 찬 인간이 질투에 눈이 멀어 사고를 저지르고 만다는 것이다. 카타리나를 딱히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본인은 사랑한다고 착각) 자기 소유물로 생각해 카타리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일 것이라 의심하던 남자에게 시비를 걸고 폭력을 행사하고 마는 것이다. 겁을 집어먹고 사건 현장을 냉큼 달아나버린 타라바스. 이 양심불량 인간이 과연 제 발로 경찰서로 찾아갈까? 그럴 리가. 그는 죄 값을 치를 기회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미루고 미루다가 급기야 러시아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황급히 러시아로 귀국(실은 줄행랑)해버린다.

성인 남자 둘이 싸웠으면 싸운 것이지 뭐 그렇게 겁에 질려 달아난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타라바스가 겁에 질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으니, 이 싸움이 있기 전, 뉴욕의 한 유원지에서 집시 여인이 그의 미래를 예언했는데, 몹시 불길하게 나온 것이다. 집시 여인은 타라바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정말 불행한 사람이군요! 손금을 보니 당신은 살인자이자 성인이에요! 이 세상에 당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어요. 당신은 죄를 지을 것이며 그에 대해 참회를 할 겁니다. 그걸 전부 이승에서 겪게 될 거예요.” 아아, 살인자이자 성인이 될 운명이라니, 이 얼마나 가혹한 운명인가!


그런데 여기서 잠깐, 보통의 상식적인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집시 여인이 단돈 2달러에 뭐라고 떠들어댄 말을 크게 믿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기분이 나쁘기는 하겠지만 뭐래~ 하고 애써 떨쳐버리려 할 것이다. 그러나 타라바스는 안타깝게도 그 미숙한 정신으로 미신은 또 얼마나 잘 믿는 인간인지!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도 신을 믿기보다는 미신을 더 믿는다. 그러므로 그날 이후 이 집시 여인의 예언, 점쟁이의 허무맹랑한 말은 타라바스를 사로잡고 그는 마치 마법이라도 걸린 듯이 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가 급기야 이런 폭행 사건이 일어났고, 자신한테 두들겨 맞은 남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일어날 줄 모르니, 이 어리석은 남자는 상대가 틀림없이 죽었으리라 생각하고는 줄행랑을 쳐버린 것이다(그래서 그 남자는 진짜 죽었을까? 그건 안 알랴줌).

고향 집으로 돌아온 그는 곧 전쟁터로 떠날 것이라며 의기양양해한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이때 한 번의 갱생 기회가 주어졌음을 인지할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속죄하는 심정으로 조국을 위해 싸우겠노라... 최소한 이런 생각이나 행동이라도 보여야 마땅할 것인데 이놈은 집에 와서도 오랜만에 만난(그래서 그 사이 부쩍 성장한), 사촌 여동생 마리아를 보고 침을 질질 흘릴 뿐이다. 집에서 차려준 음식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고는 마리아를 또 어떻게 해볼까 온통 그 생각뿐이다. 마리아는 마리아대로 뉴욕 물 먹고 온 사촌 오빠가 멋있어 보였는지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다가 결국 일은 터지고 만다. 숲속에서 그러는 것도 모자라 늦은 밤에 마리아 방에 또 침입했던 타라바스- 그런데 하필이면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는 한 번 더 아들에게 불같은 노여움을 터뜨리며 귀싸대기를 갈기면서 당장 떠나라고 명령한다.

이리하여 집에 오자마자 전쟁터로 떠나는 타라바스- 타라바스의 타락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전까지는 단순하고 미숙한 판단 때문에, 또 욕망에 이끌리는 대로 여자들과 불같은 사랑(?)을 하다가 질투에 눈이 멀어 폭행을 저지르곤 했던 이 남자는 전쟁으로 피의 맛을 보게 되고 권력과 폭력에 본격적으로 자신을 내맡긴다. 전쟁터에서 술에 취했다가 일시적인 흥분 상태에서 살생하면서 흥분으로 몸을 떨고 또 다시 이런저런 여자들의 육체를 탐하고, 냉혈한이 되어 가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인간성은 완전히 파괴된다. 본디 싹수가 좋지 않던 인간이 점쟁이의 예언을 듣고 난 이후로는 운명 탓을 하면서 살인과 잔학한 행위에 더 쉽게 휩쓸린 것이다.
 
점쟁이의 예언대로 이토록 타락한 인간이 ‘성인’으로 거듭나게 될까? 만일 그렇다면 그 기회는 어떻게 찾아오는 것일까? 미신을 잘 믿었던 타라바스는 유대인, 특히 빨간 머리 유대인에 관한 불길한 미신도 갖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빨간 머리 유대인이 나타나면서 타라바스의 운명은 더 걷잡을 수 없이 휘말려간다. 이 작품은 1부 ‘고난’과 2부 ‘완성’으로 이루어진다. 고난에서는 타라바스가 타락의 끝까지 가는 장면들이 그려진다. 그리고 2부에서는 집시의 예언처럼 그의 운명이 완성되어가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렇기에 독자는 타라바스, 이토록 철저하게 망가졌던 인물도 갱생하는가 보구나 짐작할 수 있다.

타라바스가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과정은 조금 급작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톨스토이가 떠오르기도 해서 뜬금없게도 느껴진다. 이렇게 괴로워할 줄 알았던 인간이 그런 짓을 하고 다녔단 말인가? 의아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어리석고 미성숙한 인간이었기에 자신에게 내려진 예언, 운명을 믿을 수 있었고 또 그렇기에 비록 살인자로 살았을지라도 자기의 갱생 가능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약 그에게 집시 여인이 살인자도 성인도 되기는커녕 그저 부유한 재산을 물려받아 평범하게 배 땅땅 두들기면서 살아갈 인생이라고 말했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결국 그 운명을 선택하는 것도 인간의 의지는 아닐까.


“대장님 송구스럽게도 저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타라바스의 운명을 뒤틀리게 하는 데 한 역할을 하는 유대인 ‘크리스티안폴러’는 타라바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짧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누구도 유대인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대인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또 세상의 많은 이들 중에는 타라바스처럼 유대인에 관한 불길한 믿음이나 편견 때문에 그처럼 권력자의 위치에 올랐을 때 유대인을 박해한다. 그 믿음이나 미신이 근거도 실체도 없는 것임은 결코 의심하지 않은 채 자신의 그릇된 믿음과 판단을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고 선택한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어떤 사람은 그 믿음이나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참회하고, 또 어떤 인간은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성을 지닌 인간(들)이 애초부터 이런 그릇된 믿음이나 미신들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나쁜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좀 더 나았을 텐데, 인간은 나약하여 미신이나 잘못된 믿음에 더 쉽사리 현혹된다. 그래도 어느 순간 갱생의 가능성이 찾아왔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 또한 인간의 몫일 것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오 2023-08-22 1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남의 갱생 믿으면 좀 힘들어지는거같고(그냥 버려!!) 자기 갱생은 그래도 믿고 시도라도 계속 하는편이 낫지않을까.. 날 버릴순없으니
근데 잠자냥님을 사랑할 운명으로 태어난 저는 어떡하죠?! 아무래도 갱생불가......

잠자냥 2023-08-22 13:03   좋아요 1 | URL
그런 운명을 선택하지 마시오. 인생 꼬여~~~

다락방 2023-08-2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겠다. 재미있겠어요. 그렇지만 사촌 여동생한테 침흘리는 거 보니 <혼불> 생각나서 딥빡이 오네요 ㅠㅠ 혼불에서도 사촌 여동생도 사촌 오빠에게 호감이 있긴 했지만 오빠가 강제로 그래가지고 사촌여동생 신세 망가지고 남들도 다 우스운 여자로 보고 ㅠㅠ 아무튼 호감을 품었으면 정정당당하게 떳떳한 관계가 될 수 있어야지 그것도 아니면 아주 그냥 인생 망치기 딱 좋습니다. ‘몰래‘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타라바스여, 너는 어떻게 되느냐, 어떤 삶을 사느냐.

아주 재미질 것 같고 이것은 똭 리뷰로 읽었을 때 바게트적이지 않으므로 제가 장바구니에 넣겠습니다. 흠흠.

잠자냥 2023-08-22 13:04   좋아요 0 | URL
네, 이건 바게트적이지는 않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타라바스가 사촌 동생 강제로 그러는 건 아니지만... 음 암튼 -_-;;;
이 책 아마 골드문트 님도 곧 리뷰 올리실 거 같아요. 지난번에 저랑 비슷한 시기에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으셨다고 하심요.

건수하 2023-08-22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죽었다에 한 표!

잠자냥님 후기지만 읽다보니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성인의 길은 멀고 험한 것.

잠자냥 2023-08-22 13:3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걍 범인으로 삽시다.

독서괭 2023-08-22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 죽었다에 한 표!!
타라바스는 귀국 후에 더 가관이군요. 막 가는 것 같은데, 2부에서 갱생한다고요?? 호... 설득력있게 잘 썼으니 오별 주셨을텐데, 궁금하네요. 동시에 ‘어차피 판타지‘라는 잠자냥님 말씀이 씁쓸하고.. 그래도 가뭄에 콩나듯 한명씩은 있겠지요. 그런 인간이.. ㅠㅠ

잠자냥 2023-08-22 15:4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다들 똑똑하군요. ㅋㅋㅋ
일단 생각보다 흡인력 있게 쭉쭉 잘 읽히고요. 요제프 로트 이 작가가 저랑 좀 잘 맞는 거 같아요. 읽다 보면 좀 반하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 작가 대표작은 <라데츠키 행진곡>인데요, 이제 그 책을 읽으려 합니다.....(대표작을 일단 뒤로 미루는 버릇)

Falstaff 2023-08-22 16: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 로트가 유대인이어서 타라바스의 팔자가 그렇게 되었다...... 아닌가요? 과하게 유대스러운 작품이란 말입죠. ㅎㅎㅎ
제 독후감은 9월 5일에 올라올 겁니다만, 이거 영 기죽어서 흑흑...

잠자냥 2023-08-22 20:14   좋아요 1 | URL
로트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겠다 싶기는 하더라고요. 유대인이 아닌 작가가 이런 작품 썼다면 더 좋았을 텐데………..

바람돌이 2023-08-22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갱생가능성을 딱히 높히 치지 않는 저는 왠지 읽으면 엄청 빡칠듯한 느낌인데요. ㅎㅎ

잠자냥 2023-08-22 20:1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그럼 다른 책을 읽읍시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더 많고!
 
가정교사들
안 세르 지음, 길경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정교사라는 직업은 생각해 보면 참 특별한 느낌이 든다. 과외선생도 아니고 누군가의 집안에 머물면서 함께 생활하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니, 일과 사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셈이니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다. 그럼에도 18~19세기의 문학작품들을 보면 가정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그 무렵 여성 작가들이 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에서 가정교사라는 직업은 흔하다. 그들은 대개 배움은 있으나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거나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이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고 나서 실제로 생활하면서 온갖 차별과 멸시를 감내한다. 그즈음 문학작품의 이런 묘사들을 읽다 보면, 당시 여성 가정교사들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일도 흔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물론 그 가정의 남자 주인과 (때로는 여자 주인과) 자발적으로 로맨스+성적 관계를 맺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읽은 <가정교사들>은 이런 면에서 조금 남다르다. 아니 많이 특이하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가정교사의 이미지-가난한 집안 출신의, 비혼의 나이 든 처녀, 자신을 이 답답한 집구석에서 구출해줄 멋진 남성과의 로맨스를 꿈꾸지만 이룰 가능성은 딱히 없어 보이는, 그래서 욕구불만에 쌓인-를 완벽하게 뒤엎는다. 섹스, 그러니까 성애적 관계가 존재하기는 하는데, 그 관계는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에서 이루어진다. 그것도 이 가정교사들이 주도적으로, 능동적으로 이끈다. 이게 가능하다고? 이런 사실을 알면 그 가정교사들을 고용한 이가 당장 그 행실을 문제 삼아 해고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소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용주인 오스퇴르 부부는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고 묵인한다, 부부 중 남편, 그러니까 집안의 가장인 오스퇴르는 자신이 고용한 가정교사들의 성생활을 물론 알고 있다. 그는 가장이므로 자기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의무과 권리에 충실하다. 자신이 고용한 세 명의 젊은 여성 가정교사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의 일탈(?)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오히려 북돋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때문에 오스퇴르, 그도 이 성생활에 참여하고 있을까 싶은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가정교사들은 저마다 남편, 약혼자, 연인 등등 주위에서 인정하는 관계 안에 놓여 있고, 그 관계를 오스퇴르가 낭만적인 관점에서 권장하는 것인가 싶은데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가정교사들의 섹스 라이프를 적극 권장한다고? 참으로 기묘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집에서 매일 사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사냥감이 부족하다. 저 남자는 몸이 꽉 잡힌 채로 핥아지고 깨물리고 잡아먹힐 것이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난 그는 녹초가 될 것이고, 그제야 그들은 그를 놓아줄 것이다. 그는 마치 갓난아기처럼 초원의 야생 풀숲에 발가벗은 채로 누워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창가에서 낯선 남자가 찾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토록 길고 절망적이던 겨울의 밤들을 추억하게 되리라. (<가정교사들>, 30쪽)



울타리로 막힌 정원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커다란 저택 안에서 어린 소년들을 가르치는 세 가정교사들.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의 주요 일과는 사실, 저택 앞을 지나가는 낯선 남자를 기다리다가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평소에도 남자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그들, 남자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화 주제이다. 순진한 이들은 이 세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들이 지금껏 가정교사로서의 생활에만 충실하느라 남자는 전혀 알지 못하고, 수줍음 때문에 정원의 철책 뒤에서 남자를 훔쳐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 그녀들은 날이 저물어 어둠이 깔리면 마치 거대한 죽은 나비들처럼 정원의 철문에 바짝 달라붙어 지나가는 남자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유혹해 정원으로 끌어들여 온갖 쾌락을 맛본다.

그들은 지금까지 ‘낯선 남자들’을 여럿 경험했다. 그것도 셋이 함께. 그들은 낯선 남자들이 다가올 때 크나큰 기쁨을 느낀다. 때때로 그것은 그들의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하다. ‘남자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다가와, 절대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유혹의 은밀한 경고를 받았을 때, 그들은 절대 권력’(41쪽)을 갖게 된다. 남자를 꼼짝달싹 못하게 ‘소비’하고 나면, 그러니까 남자를 ‘정복’하고 나면 그들은 공허해진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즐거움마저 없었더라면, 세 사람 사이의 화합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욕망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늘 낯선 남자들만이 오갈 뿐인가 싶은데 “그들은 순진하지 않다.” 엘레오노르는 톰과 6년 동안 동거했고, 로라는 일곱 번의 연애 경험이 있으며, 이네스는 아기가 있다.

아니 뭐라고?! 충격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기간 동거했던 파트너가 있고, 일곱 번의 연애 경험이 있으며, 아기도 있는 젊은 여성이 가정교사로 일하는 정원에서 낯선 남자들을 유혹해 벌이는 쾌락의 파티라니. 게다가 그걸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오히려 부추기는 집주인들…. 이게 가능하다고? 정말? 에이 소설이니까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왜 안 돼? 싶어지기도 한다. 사실 이 작품은 시공간이 모호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우화나 동화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확실하게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다. 이 정원에서 여자들은 자기 욕망에 완벽하게 충실하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파트너는 필요 없다. 낯선 남자가 그들에게는 자극적인 향락의 대상이다. 그들은 낯선 이를 보면서 침을 흘린다. “머리카락은 짙은 금빛이 되며, 살결은 더 먹음직스러워지고, 목소리는 더 매력적이게 된다.”(57쪽) 그들은 남자를 ‘소비’하고 ‘정복’한다. 낯선 남자를 ‘사냥’하러 간다. 또 그들은 ‘그물을 꺼내어 그를 잡으러 가두러 간다.’(29쪽) 소비/정복/사냥(헌팅)/잡아 가두다/먹음직스럽다 등등의 언어는 지금껏 남자가 여자에게 플러팅하거나 구애에 성공해서 섹스까지 이르렀을 때 주로 사용하던 표현들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왜 여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 여자도 마찬가지로 먹음직스러운 남자를 사냥하고 잡아 가둬서 마음껏 소비하고 정복하고 차버릴 수 있다. 이 가정교사들은 그렇게 욕망에 충실하다.

문제는 이들을 고용한 집주인들의 반응이다. 이들은 왜 알면서도 묵인할까? 이 작품에서 오스퇴르는 가정교사들을 감시하고 지켜보고 통제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들에게 관음의 시선을 보내는 첫 번째 남자이기도 하다. 오스퇴르는 이 가정교사들이 처음 정원으로 들어서던 날 감탄으로 전율한다. 그에게 ‘삶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기쁨으로 두 손을 비비면서 거실에서 펄쩍펄쩍 뛰었’(47~48쪽)을 정도이다. 그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 그에게 그녀들은 ‘기억과 욕망을 한가득 안고’ 들어오는 존재이다. 그 ‘기억’이란 자신이 욕망으로 들끓던 시절의 기억이리라. 그는 가정교사들을 보면서 “그들의 꿈에 걸려 있는 낯선 남자들, 앞으로 태어날 그들의 아이들, 앞으로 찾아올 그들의 사랑, 끝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선조들”을 상상하면서 기뻐한다. 그러니까 오랜 결혼 생활로 권태에 빠진 이 가부장에게 타인의 욕망을 엿보고 그 욕망의 결실들을 자신이 통제하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이다. 오스퇴르는 집의 ‘중심’에서 시계처럼 감시하는 것을 자신의 가장 큰 의무로 여기고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편 오스퇴르 부인은 가정교사들에게 알맞은 짝을 찾아서 그들을 결혼시키는 게 큰 목표이다. 결혼으로 ‘가정교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머리를 정돈하고, 표정을 고치고, 몸을 바꾸고, 그들을 자제시키고 유순하게 만들어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85쪽)을 버리지 못한다. 이 오스퇴르 부부는 결혼하여 가정을 일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이미 그 삶은 권태로워서 타인의 로맨스와 욕망을 지켜보거나 통제하면서 존재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는 가부장제 작동방식의 은유로 읽힌다.

그러나 오스퇴르 부부로 상징되는 가부장제는 개인의 욕망이 이미 거세되었거나 소멸해 버렸기에 권태롭기 짝이 없다. 사회에서 권장하는 이른바 정상적인 짝을 만나서 로맨스에 빠져버리면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출산과 양육이라는 제도화된 코스일 뿐이다. 이 코스는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이 가는 과정이므로 그들은 또 다시 권태에 빠질 뿐이다. 그래서 가정교사들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려 낯선 남자가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기를, 자신들에게 속하기를 강렬하게 원하면서 ‘사랑’에 빠져버리자 오스퇴르 부부는 맥이 풀리고 만다. 가정교사들의 욕망은 자연 상태에서 날것 그대로여야 하거늘! 사랑에 빠진 가정교사들은 대담함을 잃어버리고 유순해진다. 이런 그녀들을 오스퇴르 부부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다. 그녀들과 사랑을 나눈 낯선 남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그가 사랑했던 것은 단호하고 냉정한 가정교사들이이다. 그러나 사랑에 빠져 잠옷 바람으로 발코니에 서서 한숨을 내쉬거나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며 그를 맞이하는 가정교사들은 이제 매력을 잃어버린다. 그는 그들을 자신이 사랑하던 모습으로 되돌리고자 애쓴다. 그녀들에게 다시 권력을 쥐어주고 싶다. 그러나 이미 욕망이 거세된 이 관계에서 욕망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면 이성애 로맨스와 그 로맨스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가부장제 사회가 실은 여성 또는 인간의 욕망은 거세되거나 어느 시점에 소멸한 채 기능적으로만 작동하고 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러한 세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낯선 남자를 욕망할 때 생기에 넘친다. 그런 그녀들을 지켜보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이 작품에서는 오스퇴르 외에도 또 한 사람의 지켜보는 눈이 있다. 그는 늙은 남자로, 그 눈-망원경-은 더 적나라하게 그녀들을 훔쳐본다). 그들이 낯선 이와 정원(자연)에서 정사를 벌일 때 지켜보는 눈들도 더 생생히 빛난다. 관음하는 그들도 삶의 환희에 차오른다. 그런데 그녀들이 사랑에 빠지고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자 이 모든 뜨거움들-욕망은 찬물을 끼얹듯이 소멸하고 만다. 심지어 관음의 시선을 알고 흥분하던(때로는 그 시선을 더 도발하던) 그녀들조차도 지켜보는 시선이 사라지자 욕망이 시들해진다. 자신들의 욕망조차 남성의 관음의 시선에 익숙해진 여성들의 은유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음의 시선에 끊임없이 자신을 노출하면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현대인. 그리하여 그 시선이 사라질 때는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조차 시들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다. 이 세계에서 그들은 톰과 10년을 함께 살았고, 아이 두셋을 낳았으며, 집 한 채를 갖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그들은 마흔 살, 쉰 살, 아마도 여든 살까지 살았다. 가정교사들 각자는 가볍고 빛이 나는 거대한 가방처럼 부풀어진 꿈의 다발로 이루어졌다. (61쪽)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정하는 관계로 맺어져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고, 아이들을 낳고 집을 마련하고 마흔 쉰 예순 여든 그렇게 늙어가는 인생. 그러나 어느 순간 욕망은 소멸하거나 거세되어 오직 권태만 남는 삶. 애초에 이 삶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할 뿐임을 이 작품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권태에 젖은 그들이 더 생기 넘치는 집을 찾아 나선들 “그곳에서도 누군가는 오스퇴르 씨의 역할을 할 것이고, 다른 이도 마찬가지다. 노인의 역할도, 낯선 남자들의 역할도, 구혼자들의 역할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어디를 가든 똑같은 철문이, 똑같은 정원이, 똑같은 세계가 똑같은 실들로 짜여 있을 것이다.”(86쪽) 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전복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욕망이 펼쳐지는 이 세계는 영원히 닫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3-08-08 1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리뷰의 특히나 마지막 단락을 읽다보니 아침 출근길에 읽은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 말이 떠오릅니다.

˝여성이 악마에게 돈이 없다고 가난하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악마가 나타나는 전형적 방식입니다. 그러면 악마는 나의 노예가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계약이 이뤄집니다. 악마가 돈을 좀 주고 그 대가로 여성의 몸에 노예라는 표시를 새깁니다.… 제가 언제나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악마와 마녀의 관계가 오늘날의 결혼관계의 고전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들의 후손이다 中 에서

완전히 다른 얘긴데요, 가정교사 와 집주인의 성적인 관계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였는데 지금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그런데 말하면 아마 잠자냥 님은 아시겠지. 그러니까 그냥 얘기해볼게요. 남자주인공이 아마 섹스 중독 이었던 것 같고요, 집에 왔는데 어린 딸의 가정교사(였나 베이비시터였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터가 아이 아빠가 오니 집에 돌아가기 전에 샤워를 했어요. 아이의 아버지는 소파에서 강제로 이 시터를 강간하려는 걸로 기억하는데요, 밑에서 시터가 몸부림치고 소리를내자 아이가 무언가로 아빠의 등을 찌릅니다. ˝우리 선생님 아프게 하지마!˝ 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아빠는 섹스중독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잠자냥 님의 이 리뷰에서는 주인집 남자와는 성적인 관계가 나오지 않는 것 같지만, 어쩐지 그 영화 생각이 났어요. 잠자냥 님, 제목 아시죠? ㅎㅎ

단발머리 2023-08-08 11:17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지금 급 당황 ㅋㅋㅋㅋ 몰라서 검색하고 계십니다. 기다리세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3-08-08 11:50   좋아요 1 | URL
요즘 잠자냥 님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두 번이나 댓글에서 읽었는데...설마....또?ㅋㅋㅋ

잠자냥 2023-08-08 11:58   좋아요 3 | URL
에엥? 모르는데요? 제가 섹중독자 이야기는 별로 흥미가 없어서...? ㅋㅋㅋㅋ
근데 뭐지 검색해보고 싶다...... 검색해보니 본 거 아닐까.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8-08 12:50   좋아요 0 | URL
되게 유명한 영화거든요? 저 퍼뜩 <무릎과 무릎 사이> 였나 싶어 검색하니 이건 한국 영화네요? <당신의 다리 사이>였나 검색해보니 여기엔 제가 말한 장면에 대한 언급은 없고 … 당신의 다리 사이, 이것 같은데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여름에 봐야겠네요. 흠흠.

잠자냥 2023-08-08 13:30   좋아요 0 | URL
<당신의 다리 사이>는 저도 본 거 같은데... 으음.

단발머리 2023-08-08 11: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임신하고 출산하기 전에도 뜨거운 욕망이 단번에 사그라드는 경험에 대해 저는 좀 더 고찰을 해보고 싶습니다. 낭만적 사랑의 유통기한,은 대체, 얼마나 짧은 것인가,에 대해서요^^

잠자냥 2023-08-08 11:59   좋아요 2 | URL
사랑의 유통기한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사랑한다는 게 불가능한 존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사랑이라고 포장하지만... 결국은 그냥 육욕이고 친밀감의 표현이고 뭐 그런 거 아닌가.....-_-;;

은오 2023-08-09 02:55   좋아요 1 | URL
대상이 나 자신인가? X
육욕인가? X
영혼만을 사랑하는가? X
친밀감의 표현인가? X
모든걸 알고싶은가? O
사랑인가? O

잠자냥 2023-08-09 09:54   좋아요 1 | URL
모든 걸 알고 싶은 건 지식욕인데... 세상에 읽을 책도 많은데 .... 안 자니?

은오 2023-08-09 10:17   좋아요 1 | URL
잠이 안오네요?! 잠자냥님 때문인가??

잠자냥 2023-08-09 10:24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으로 격렬한 영상을 봤거나 카페인 과다입니다.
자기 전 흡연도 수면방해에 한몫합니다.

은오 2023-08-09 10:25   좋아요 1 | URL
스마트폰으로 잠자냥님을 만나긴 했는데......

책읽는나무 2023-08-08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욕망을 드러내고 사는 삶이 옳은 것인가?
욕망을 다스리고 사는 삶이 옳은 것인가?
권태도 다스리기 나름인 것인가?
물음표가 많이 생기는 소설이로군요!

잠자냥 2023-08-08 11:59   좋아요 2 | URL
읽고 나서도 아리까리한 소설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또 많은 해석의 여지가 달라질 것 같고요.

은오 2023-08-09 0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헐 ㅋㅋㅋㅋㅋㅋ 이거 이런 내용이었군요.
먹음직스러운 남자 찾는거 그거 극악의 난이도인데.. 저 집 앞엔 먹음직스러운 놈들이 많이 지나다녔나보네....

잠자냥 2023-08-09 09:55   좋아요 1 | URL
극악의 난이도 ㅋㅋㅋㅋㅋ 묘사를 보면 딱히 먹음직스럽지도 않은데 잘도 먹더이다......-_-

2023-08-09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9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3-08-0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늦게 알게 된 슬픔!
일찍 알아도 슬픈 건 매한가지일까 싶기도 하고요 ㅎ

잠자냥 2023-08-09 11:49   좋아요 0 | URL
일찍 아는 게 좀 더 슬플 거 같기는 해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8-0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되게 신기한 소설이네요?? 다락방님 글에서 ‘남자 잡아먹는 소설‘이라고 봤는데 진짜 잡아먹고 있.. ㅋㅋㅋㅋ 근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이 설득력이 있는 건지 잠자냥님이 설득력이 있는 건지.

잠자냥 2023-08-09 16:5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네 아주 그냥 와구와구 잡아먹습디다.
약간 동화 같기도 하고 우화 같기도 하고 암튼 그런 작품이에요~

coolcat329 2023-08-0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설정이 기이한 게 쉬운 소설 같지가 않네요. 독서토론 책으로 좋을 거 같아요. 기능적으로만 작동하는 결혼제도 저도 종종 생각해보는데 이 책 그 점을 다루고 있네요.

잠자냥 2023-08-09 23:18   좋아요 0 | URL
네 작품은 짧은데 상징적인 부분이 많아서 여러 사람하고 생각을 나누면 재미 있을 거 같아요. 이 글에서 제가 쓰지는 않았지만 소년들하고의 관계도 해석의 여지가 많고요.
 
오, 윌리엄!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W. <오, 윌리엄!>을 읽을 때 자연스레, 그러나 예기치 못하게 떠오른 사람이 있다. 전에 만나다 헤어진 사람인데, 나는 그 사람을 헤어진 후로 생각한 적도 딱히 그리워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문득 떠올랐다. 이 작품이 화자인 루시 바턴이 헤어진 전 남편 윌리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거의 그랬을 것이다. 단지 루시는 윌리엄과 여전히 친구처럼 만나고 있다는 점이 나와는 다르다. 나는 헤어진 연인이나 배우자와 친구처럼 만나면서 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미국인이 아니고 이 보수적인 한국에서 나고 자란 탓도 있겠지만 상상을 해봐서 내가 미국인이라고 해도, 설사 프랑스인이라 해도 나라면 헤어진 연인이나 배우자를 다시 만나서 친구처럼 지내고 싶지 않을 것이며, 소식조차 알고 싶지도 않을 것 같다. 좋게 헤어졌든 나쁘게 헤어졌든 그건 상관없다.

물론 루시와 윌리엄 사이에는 두 딸이 있다. 이제는 장성했으나 각자 부모에 관한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가 헤어진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들도 아빠, 또는 엄마와 만날 수 없다고 부모 멋대로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루시처럼 윌리엄을 친구로 만나지는 않을 것 같다. 왜일까.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 헤어짐의 이유도 제각각이다. 지금의 애인을 만나기 전에 사귀던 그 사람은 나와는 6여 년을 같이 했고,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기에 이별을 통고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나는 <오, 윌리엄>의 윌리엄 같은 사람이었달까.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 너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 말들에 그때 그 사람은 내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면서 기다릴 것이라고, 친구처럼 가끔이라도 보면 안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의 첫 번째 말은 불가능하다고,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은 없다고 네 마음도 곧 변할 것이니 기다리지 말라고, 그리고 만일 지금의 그 사람과 헤어지더라도 너한테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친구처럼 보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내가 친구라고 해도 너는 친구가 아니잖아? 그때 그 사람은 나와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윌리엄과 헤어진 후 데이비드를 만난 루시처럼.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D. 정희진의 공부 7월호를 듣노라니 ‘사랑’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사랑은 철저히 제도적인 관계라고, 어떤 제도로 묶이지 않는 사랑이 사랑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개월 정도일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기간이 지나고도 사랑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간은 제도로 그 사랑을 존속하려고 한다고, 그것이 결혼이라고. 그런 의미로 본다면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라든가 사랑의 또 다른 시작이 아닌 사랑의 종말이나 마찬가지라는 그런 말들……. 지금의 애인과는 제도로 묶이지 않은 채 10여 년을 함께 보내고 있다. 대단한 건가 싶으면서도 그렇게 굳이 제도로 묶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을 사랑을 왜 존속하려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다른 이들의 삶이니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고. 다시 내 삶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제도로 묶지도 않았는데 그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정희진 선생님은 4가지(섹스, 돌봄, 돈, 지적인 충족) 이해(利害) 중 하나라도 충족되면 그 관계는 유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바탕으로 우리의 관계를 돌아본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덧 세 마리에서 여섯 마리로 늘어난 이 고양이들이 우리에겐 제도와도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양이들 때문에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가끔 심하게 싸우다가 헤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하, 저 녀석들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해봤다면 거짓일 것이다. 고양이가 없었다면 우리에게 위태로운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라는 말에 서로 고개를 끄덕이던 때가 있었던 것만큼- 그리고 혹시 헤어지더라도 누군가 맡은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연락은 해주자는 말이 나왔던 적도 있었던 것만큼 우리에게 고양이는 루시와 윌리엄의 두 딸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루시는 윌리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그토록 오래 입고 다녔던 것일까. 윌리엄과 이별하고 만난 데이비드- 그가 루시에게는 더 잘 어울리는 옷이었는데. 루시는 데이비드에 비해 키도 크고 잘생긴, 어디에서나 ‘집’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을 갖고 있을 것처럼 보이는 그 권위의 소유자,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기중심적이고 그러면서도 제 자신은 그렇지 않은 듯이 루시에게 “당신은 너무 자기몰두적”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 남자, 윌리엄을 만나 자식을 낳고 안전하다고 느끼면서 수십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권위와 안전함에 기대어 친구처럼 지내면서 윌리엄의 온갖 부탁(때로는 좀 무례해 보이기도 하는)을 들어주고 함께 행동해준다.

그렇지만 그 데이비드- 요거트에 산딸기를 올려 먹을 때 가장 행복해한 그 소박한 데이비드-키도 작고 살집도 있는, 그래서 윌리엄에 비하면 외모로는 형편없을 그 데이비드와 함께 할 때 루시는 집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둘 다 어린 시절의 상처나 결핍, 트라우마로 인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자기 집을 소유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서로에게서 ‘집’을 발견한다. 같은 상처가 있음을, 비슷한 결핍이 있음을 알아본다는 것은 때로 어떤 공감의 말 한마디보다 더 큰 위로와 힘이 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삶이 다해 데이비드가 먼저 루시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마 계속 삶을 같이 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내 연인은 루시와 데이비드처럼 어린 시절의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 비슷한 결핍이나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야기한다. 그 비슷한 결핍의 감정이, 상처가 우리를 좀 더 단단하게 묶어준다고. 우리에게는 루시의 딸들 같은 여섯 고양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존재보다는 비슷한 결핍과 상처의 기억이 서로를 서로에게 더 붙어있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K. 대학시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집에서 잘 자란 사람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좋은 집이란 무슨 의미일까, 잘 자란 사람이라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잠시 생각하다가 아, 내가 연기를 참 잘 했구나, 스스로 감탄했던 적이 있다. 살면서 내 집안이 좋은 집이라고(10대와 20대 때는 더더욱) 생각한 적이 없다. 10대 시절에는 더 그랬다. 그 후배가 말한 ‘좋은 집’이 부유한 가정을 뜻한다면 그건 정말 그릇된 판단이고, ‘좋은 집’이 ‘화목한 가정’을 의미한다면 그 또한 어긋난 판단이다. 루시만큼은 아니지만 가난은 나에게는 늘 결핍의 근본적 원인이었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일상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에게는 이 세상의 사랑이나 결혼은 그 감정이 주는 따뜻함과 안온함을 먼저 일깨우기보다는 환멸을 먼저 심어준다.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채 열 살이 되기 전에 스스로 맹세하던 아이는 세상에서 냉소와 환멸을 먼저 발견한다. 그렇게 자란 내게 ‘좋은 집에서 잘 자란 사람’같다는 말은 얼마나 우습고 쓸쓸한 농담인가. 한 살짜리 딸을 놓고 다른 삶을 꿈꾸며 집을 나가 마을을 떠나버린 캐서린- 그녀의 삶에 그토록 지독한 비밀이 있을 줄은 루시도 윌리엄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루시는 캐서린과 윌리엄을 보면서 투명 인간 같은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 부유하고 세련된 공간에 앉아 있는 게 그냥 그 존재 자체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축된다. 한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런 루시와 윌리엄 앞에 드러난 캐서린 그녀의 삶은 얼마나 지독했던가. 골프를 치는 캐서린, 어떤 세련된 공간에서나 자연스럽고 우아한 캐서린, 그 캐서린이 애초부터 그런 삶을 살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우습고 지독하고 쓸쓸한 농담인가.

L. 그런데 루시는 어째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윌리엄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일흔이 되도록 엑스 와이프, 현재 와이프, 딸들, 엄마, 누나에게 칭얼거리기만 하는, 우쭈쭈해 달라고, 자기처지부터 좀 생각해달라고 하는 이 권위 있는 척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왜 이토록 연민어린 시선으로 하는 걸까 못마땅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윌리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루시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보내고 아이 둘을 낳아 함께 키우고, 사랑에 빠진 순간, 그러면서도 이질감을 느끼고 외로움이나 고독감, 결코 채울 수 없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는 것도 모두 윌리엄이라는 상대가 있기에 가능하다. 거기서 루시는 자기 자신의 여러 모습을 발견한다. 정희진의 공부 7월호에서 말하는 “너라는 생활” 그 자체이다. ‘너’를 이야기하는 ‘나’를 이야기하고 있음. 루시는 윌리엄과의 세월을 차곡차곡 되짚어보다가 캐서린에 관해서도 윌리엄에 관해서도 심지어 어쩌면 데이비드에 관해서도 그리고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었음을, 누군가 타인을, 그 타인과 함께 한 인생들을 완벽하게 알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윌리엄이라는 환상이 준 권위나 안온함이 루시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는 데 역할을 했음을 깨닫는다. 이 잔혹한 인생에서 그 환상이나 착각마저 없다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윌리엄도 루시와 캐서린을, 루시도 캐서린과 윌리엄을 전부 알지는 못하고 자신이 알고 싶은 대로, 상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다. 안다고 생각해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단편적인 앎들이 엮여 그들 저마다의 삶을 버티고 나아가게 해준다. 윌리엄에게 루시가 밝은 빛으로 환히 빛나는 사람이라는 오해 또는 믿음이 없었다면 그의 삶은 더 외롭지 않았을까.

책 한 권의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내 이야기를 했다. <오, 윌리엄!>은 그런 책이다. 이 글에서 알게 된 나에 관한 이야기가 당신이 나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은 나를 다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읽을 당신에 관해서 나 또한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 더 친밀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친밀감이, 거기서 빚어지는 환상 또는 착각이 우리를 버티고 살아가게 한다. 루시, 윌리엄, 캐서린 그들처럼.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3-07-10 1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휴, 리뷰 너무 좋아 죽겠네요.
저는 예전부터 느낀 것이긴 하지만, 잠자냥 님이 리뷰를 잘 쓸 수 있는 건, 책을 잘 읽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잘 읽는 사람이 잘 쓸 수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리뷰는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 것 같고요.
리뷰가 소설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흑. 너무 좋아 ㅠㅠ

잠자냥 2023-07-10 12:25   좋아요 2 | URL
다부장님의 ㅠㅠ 를 보았으니 오늘은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7-10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은 요 시기에 딱 희진 샘 매거진 7월호 ‘사랑‘ 팟캐를 들으며 대입시켜 주시니 쏙쏙 읽힙니다.
전 토요일에 ‘사랑‘ 그 부분을 버스 안에서 들었어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긍정적인 결론으로 내려지긴 했지만요. 나는야...긍정적인 여자!!ㅋㅋㅋ
고양이들이 자냥 님께 미치는 영향이 참 감동스럽네요. 매번 감탄 중입니다.

윌리엄과 루시는 떨어져 살고 있기에 지금의 우정이(사랑과 우정사이 같아 보입니다만^^) 존속된다고 봅니다.
서로의 오해와 믿음이 충만하여 또 합쳐 살았다면 과연 이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을지?ㅋㅋㅋ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미리 축하드려요.^^

잠자냥 2023-07-10 14:30   좋아요 1 | URL
응 네? 뭘 축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무 님은 긍정 에너지 넘치십니다. ㅎㅎㅎ

자목련 2023-07-11 11:34   좋아요 1 | URL
저도 이달의 리뷰로, 축하드립니다!

잠자냥 2023-07-11 12:38   좋아요 1 | URL
네?! ㅋㅋ 그럼 저는 이번달에 그만 쓰는 걸로......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7-11 12:49   좋아요 0 | URL
그래도 써주셔야죠!
우리에게도 읽는 기쁨을 달라!!!!

암튼 또 축하합니다♡
자목련 님도 인정하셨어요.ㅋㅋㅋ

은오 2023-07-11 0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읽으라고 하셔놓고 이런 리뷰를 써주시면 어떡하죠? 궁금해지네....
잠자냥님이랑 집사2님이 생각보다 더 찐사랑인 것 같아서 속상하네요 ㅋㅋㅋㅋㅋ 찐으로 속상하다!
그래도 이 리뷰 너무 좋습니다. 근데 부족하다. 난 잠자냥님을 더 알고싶다.... 저랑 언젠가 만나서 술한잔 해주시죠

잠자냥 2023-07-11 10:26   좋아요 1 | URL
당신은 지금 잠자냥이라는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은오 님하고 술한잔은 다부장님하고 술한잔 하게 되면 그 이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7-11 11:42   좋아요 1 | URL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거다 해도되나요?

잠자냥 2023-07-11 12:38   좋아요 1 | URL
엥? 나원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7-11 12:5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꺅!!! 안 돼!!!! 오글오글~
말하기 전에 소줏잔 얼른 뺏어요!!!ㅋㅋㅋ

2023-07-12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12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약속
데이먼 갤것 지음, 이소영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48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시행되었던 흑백인종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우월주의에 기반한 이런 차별적인 체재 하에서 살았던 백인들은 모두가 흑인과 섞이지 않아서 좋다, 하며 이 체제를 반겼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불편한 마음이 들지언정 개인적으로 힘이 없어서, 굳이 나서고 싶지 않아서 또는 나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일이라서 침묵하거나 방관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지 하고 포기한 백인들도 많을 것이다. 아니면 흑인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행동 등으로 윤리적 죄책감을 덜거나 하는 백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약속>은 바로 그런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아모르’가 그런 백인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공고한 1986년, 열세 살 소녀 아모르는 엄마, 아빠, 오빠,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소녀에게는 작품의 시작부터 시련이 닥친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숙사에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아모르의 엄마는 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을 하다 결국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엄마의 장례식- 마음껏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모르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아빠 ‘마니’에게 확답을 받기도 전에 아모르는 흑인 하녀 살로메의 아들 ‘루카스’에게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만다. 아모르의 이 당당한 선언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모르의 엄마 레이첼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편 마니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자신이 아플 때 헌신적으로 돌봐준 살로메에게 무언가 꼭 주고 싶다고. 그러니까 살로메가 지금 살고 있는 집-그래봤자 방 세 칸짜리의 허름한 양철 판잣집-을 꼭 그녀에게 주겠노라 ‘약속’해달라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간절히 부탁한 것이다. 마니는 알겠노라, 약속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때마침 그 방 안에 있었던,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던(아모르는 가족 중에 가장 존재감이 희미하다) 이 소녀가 목격한 것이다. 아모르는 엄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간곡하게 부탁한 그 약속을 아빠가 반드시 지킬 것이라 생각하고는 또래인 루카스에게 장담하듯이 말해버린 것이다.

아모르는 이 집에서 가장 선하고 윤리적인 존재다. 그 선함은 가장 어리다는, 그러니까 세상의 때를 덜 탔다는 것에서 비롯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빠 ‘안톤’이나 언니 ‘아스트리드’에 비해 존재 자체가 희미한, ‘모든 사람의 시야 가장자리에 있는 하나의 얼룩으로 취급받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 어리고 너무 철이 없는’ 그런 아이- 게다가 아모르는 오빠나 언니에 비해서 온전히 사랑받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죽은 엄마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아빠인 마니는 막내딸을 늘 자기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오곤 했다. 이렇듯 집안에서 존재감이 없는 ‘유령’ 같은 아모르였기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살로메의 처지를 누구보다 공감하며, 그녀의 생활이 어떻게든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엄마가 가여운 살로메에게 꼭 집을 주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게다가 아빠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니 꼭 엄마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순진한 아모르는 굳게 믿는다. 그렇기에 루카스에게 그 사실을 말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유언, 엄마의 부탁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약속>은 전혀 다른 스토리로 흘러가거나 단편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양철 판잣집을 부유한 백인 농장주가 까짓 줘버리면 그만 아닌가! 싶은데 마니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처음에는 법이 그를 돕는다. 그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이 땅을 소유하고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아내의 유언을 지키고자 살로메에게 집을 넘겨주려고 해도 법이 허락지 않는 것이다. 물론 법은 둘째 치고 마니는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다. 아모르가 엄마의 유언대로 살로메에게 집을 줘야 한다고, 아빠 약속 지킬 거죠? 내가 다 봤어요. 아무리 말해도 마니는 답을 피하거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딸을 쳐다볼 뿐이다. 그 소리를 들은 마니의 누나, 그러니까 아모르의 고모도 길길이 뛰기는 마찬가지이다. 쟤가 무슨 헛소리야! 쟤는 늘 저러더라! 얼룩처럼 희미한 이 어린 소녀의 주장은 어른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파급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의 마지막 부탁인 이 약속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약속>은 아모르가 십대 소녀에서 성년이 되어 집을 떠나고 어떤 불가피한 이유로 집을 다시 찾아와야만 했던 몇 번의 사건 등을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30여 년 간의 스와트 집안의 흥망성쇠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회 변화 모습이 그려진다. 아모르가 커가는 그 사이에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되고 흑인인 만델라가 이끄는 정부가 들어서는 등 변화의 조짐은 뚜렷이 드러난다. 그러나 유령 같은 존재인 살로메에게 그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칸은 여전히 주어지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문득 여기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본디 흑인들의 땅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느 날 그 땅에 나타난 백인들이야말로 무단으로 그 땅을 차지하고는 제멋대로 흑인과 생활 터전을 분리하고, 좋은 곳은 자신들이 다 차지하고는 본래 흑인들의 땅이자 그들의 터전이었던 곳을 돌려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그러나 그런 중에도 아모르처럼 최소한의 양심, 최소한의 윤리, 최소한의 죄책감을 지닌 이들이 그 백인 사회 내에서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 지키고 싶었어도 한때는 지킬 수 없었던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아모르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현실 속의 아모르 같은 이들 그러니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이런 작품을 쓴 백인 작가들-데이먼 갤것을 비롯해 나딘 고디머, 쿳시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이 체제가 부당하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한번쯤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가족들의 이기심과 욕심에 환멸을 느끼고, 가족들의 행동이, 백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집을 떠난 아모르- 그녀는 탐욕으로 부패한 그 백인들의 농장을 떠났기에 그 선한 마음을 계속 지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모르의 삶의 이력은 “존재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떠나는 것인 동시에 자기 집을 떠나는 것”(레일라 슬리마니, <한밤중의 꽃향기>, 73쪽)이라는 구절과도 통한다. 집에서의 안락한 삶을 벗어나 자기로서 존재했던 아모르, 희미한 얼룩 같았던 한 소녀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윤리와 공감의 능력이 아닐까 싶어진다.


“전 변호사에요.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모르가 말한다. (<약속>, 468쪽)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3-06-22 1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재밌겠다.. ‘30년간의 흥망성쇠‘라니 잠자냥님이 얘기하지 않은 스토리가 또 많을 것 같은데.. 자냥오별이야.. 안돼 이미 주디스헌이랑 도둑맞은집중력 샀는데.. 책 안 사려면 잠자냥님 팔로우를 끊어야 하나.. (중얼중얼)
이상 혼잣말이었습니다. 잠자냥님,리뷰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제 손꾸락이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에 얼른 도망갑니다!!

잠자냥 2023-06-22 14:22   좋아요 3 | URL
날 끊고 괭이 과연 살 수 있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달에 사요. 이 작품이 주디스 헌 주정뱅이 이야기보다는 재밌습니다.

독서괭 2023-06-22 17:55   좋아요 3 | URL
내가 책을 끊지 잠자냥을 끊겠냐!! 북플을 하는 이상 자냥님을 팔로우 할 것이고 자냥님이 있는 이상 북플을 계속 할 것이옵니다..(아멘)

은오 2023-06-22 18:26   좋아요 2 | URL
동의합니다! (잠멘) 잠자냥님을 끊느니 밥을 끊으리....

독서괭 2023-06-22 18:31   좋아요 2 | URL
워워, 전 밥은 안 끊을 거예요!!!

은오 2023-06-22 18:39   좋아요 1 | URL
아니 저도 다시 생각해보니까 밥은 좀.... (괭님덕에 되찾은 이성)

다락방 2023-06-22 20:31   좋아요 3 | URL
밥은 좀 너무 갔는데?? 🤔🤔

잠자냥 2023-06-22 22:19   좋아요 0 | URL
잠멘이래 미쳐 ㅋㅋㅋㅋ 밥은 끊지 마요. 다들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3-07-10 23:10   좋아요 2 | URL
^^ 자냥오별...오! 자냥오별! 묘하게 어울리는 네글자네요. 괭님의 언어쏀스에 엄지척!!!

최소한의 양심, 지키고자 하는 의지...
어린 소녀였던 아모르가 어떻게 지켜내는지,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소녀의 사람됨에 작가가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 과연 백인 작가들의 고발(?)이 어떤 파급력을 갖는지....좋은 책이겠어요

잠자냥님, 이달의 리뷰 축하드립니다!

은오 2023-06-22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모르야 니가 어른이다 ㅜㅜ

잠자냥 2023-06-22 22:22   좋아요 0 | URL
라딘에서 은오가 그런 젊은이가 되시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6-22 20: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약속은 여자의 모든것 이라 생각합니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넘나 싫고요,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쓰며 기어코 지켜내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사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마..)
알라딘에 잠자냥 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밥을 더 좋아합니다.

그럼 이만.

잠자냥 2023-06-22 22:21   좋아요 0 | URL
역시 의리 다락방 ㅋㅋ
모름지기 사람은 밥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순댓국에 퐁덩 넣을 그 밥….!

이 인간 오늘 술 안 먹었다는데 왜 마신 거 같지?

달자 2023-06-22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장바구니에 넣어놨는데, 혹여 이야기가 소위 ‘피씨한 백인의 서사‘ 중심으로 흘러갈까봐 망설이고 아직 사지 않았거든요. 독서하시면서 그런 뉘앙스는 느껴지지 않았나요?

잠자냥 2023-06-22 22:18   좋아요 1 | URL
으음 제 리뷰에서 혹시 그런 느낌을 받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 책에서 딱히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소녀 아모르가 읽다 보면 좀 흑인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달자 2023-06-23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리뷰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거 아니고 출판사의 책 소개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혹시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서사는 아닐까..! 리뷰 감사합니다 덕분에 책을 읽고 싶어 졌어요...!

잠자냥 2023-06-23 17:04   좋아요 0 | URL
네~ 재미나게 읽으세요, 달자 님은 또 다른 시건으로 이 책을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3-06-23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잠자냥님의 별 다섯개 믿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나딘 고디머, 쿠시 좋았기에 장바구니로!

잠자냥 2023-06-24 01:09   좋아요 1 | URL
네 그 작가들 작품을 좋아하셨다면 이 책도 재밌게 읽으실 거 같아요.

얄라알라 2023-07-10 23:1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께서도, 괭님의 ˝자냥오별˝을 말씀하시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