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매미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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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종이달의 작가, 8일째 매미

 

˝전에 우리, 죽을 수 없었던 매미 이야기한 적 있지?

기억나?

7일만에 죽은 매미보다도 8일째에 살아남은 매미가 더 불쌍하다고, 네가 그랬잖아.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8일째에도 살아 있는 매미는 다른 매미들이 보지 못 한 것을 볼 수 있으니까.

어쩌면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눈을 꼭 감아야 할 만큼 가혹한 일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319)

 

매미는 성충이 되어 7일 가량 산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렇게 맹렬하게 울어 댄다고...

8일째도 살아남은 매미...

껍데기에 가까운 사람들...

 

세토 내해는 아주 잔잔해요.

마치 거울 같다니까요.

근데 이 거울에 뭐가 비칠 것 같아요?

글쎄, 아무 것도 안 비치는 거 있죠.

구름도, 주변에 떠 있는 섬도,

신기할 정도로 아무 것도 비치지 않아요.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 거울이라고요.

그냥 잔잔한 은빛이에요.

그 은빛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듯이 해가 가라앉아요.

올록볼록 튀어나온 섬들이 서서히 짙은 윤곽으로 변해 가고요.(331)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세토나이카이에 가보고 싶었다.

그 조용한 섬들...

혼슈, 시코쿠, 큐슈에 둘러싸인 호수같은 바다라는 곳.

언젠가 갈 날이 있겠지.

 

유괴에 대한 이야기,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엔젤홈 같은 사이비 종교 비슷한 사회 소설이면서,

이런 잔잔한 서정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나를 데리고 간 그 여자도 바보지만,

아빠 엄마도 그 여자 못지않게 바보였다.

아버지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고

어머니가 될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287)

 

이 소설은 1부에서 유괴범 가와코의 시점으로,

2부에서 아이 가오루(에리나)의 시점으로 쓰여지는데,

그래서 가와코와 가오루의 애절한 마음을 다 이해하게 되는 안타까움을 전하는 소설이다.

 

세상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지...

아이를 낳고, 기르고, 낳지 못하게 하거나 못 낳거나 낳지 못하게 되거나...

 

그런 사회에 대한 고발이면서,

여성의 고민에 대한 따스한 위로가 되기도 하는 소설이다.

 

아빠는 사건의 모든 원인이 기와코가 아니고 자신에게 있다고

지적당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빠와 엄마는 사건이 있은 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자신들은 동등한 피해자라고 확인하곤 했다.(251)

 

기와코도, 아내였던 엄마도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려할 줄도 모르며

여자에게 야무지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하기만 한 쓰레기같은 남자를

두 여자는 어째서 포기하지 못했을까?(244)

 

이렇게 우유부단하게 문제를 일으키고 해결하지 못하는 남자가 사건의 발단인데,

책임을 지고 방황해야 하는 것은 여성의 문제인 사회에 대한 고발도 있다.

 

보드라울 줄 알고 쓰다듬은 동물의 털이

불쾌할 정도로 뻣뻣해서 흠칫 놀란, 그런 표정(230)

 

되찾아온 에리나를 대하는 가정의 표정을 적확하게 그렸다.

참배길의 '동행 이인'은 기와코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야기 중에 <여자 혼자 몸으로>라는 말이 등장한다.

자신을 기른 기와코를 안쓰러워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서 느끼는 가오루의 생각에...

이 소설은 <여자 혼자 몸으로> 아이를 길러야 하는 세상에 대한 고발도 들어 있으리라.

 

<쇼도지마>라는 세토나이카이의 섬에서 벌어진

'24개의 눈동자'라는 유명한 영화도 있다.

멋진 경치와 순정적 스토리를 다시 보고 싶다.

 

영화 감상 <24개의 눈동자>

 

https://search.daum.net/search?nil_suggest=sugsch&w=tot&DA=GIQ&sq=24rodml+&o=1&sugo=14&q=24%EA%B0%9C%EC%9D%98+%EB%88%88%EB%8F%99%EC%9E%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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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전 우리고전 다시읽기 37
구인환 옮김 / 신원문화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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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에 고전 소설을 가르치다 보면

조선 후기 참 많은 작품이 있었단 걸 알게 된다.

그런데 문제 부분만 읽었지, 전체를 읽은 적이 드물어

이번 기회에 정주행을 해보려 하고 있다.

 

임경업전은

병란 이후 김자점에 의해 죽어간 임경업에 대한 종교적 신앙이 생겼을 정도로

사랑스럽던 캐리터였음을 알게 한다.

어느 시대나 제 배 부르기만 신경쓰는 인간이 있는가보다스.

 

박씨전은 박씨부인전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어릴 적, 별당아씨라는 드라마로 본 일이 있다.

작년에 '503 박씨'가 권세있을 때 이걸 수능에 냈다. 헐~이다.

조선 후기 소설 중 여성 영웅은 박씨와 '홍계월전'이 있다.

흥미진진 재미난 소설이다.

 

홍경래전은

실제 기록과 같다.

 

철산 첨사 김인후가 항복을 하고 한 말이 명언이다.

 

여러분들은 의인이요 의병인데

어찌 감히 항거할 수가 있겠습니까.(158)

 

어사 박문수의 손자 박종일이 서울에서 난을 일으켜 내통하고 성공했으면

조선 후기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1811년 12월 20일부터 1812년 4월 19일까지 싸웠고,

체포된 성인 남성 1917명이 처형을 당한다.

정조가 죽은 것이 1800년이니,

순조 12년만에 일어난 난리다.

 

어느 정부든 10년 정도 탐욕을 부리면

이런 난을 당하게 된다.

지난 9년의 폐악을 소쇄하는데 한 5년 이상은 걸리지 싶지만,

그걸 쓸어버리고 청소하지 않으면

다시 더러워진다는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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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 - 박남준의 악양편지
박남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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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각하...

照顧脚下

 

발 아래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할 나이.

남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기는 쉽지만,

제 발 아래를 돌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꽃 피는데 다뜻한 햇살이나 오줌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주 바라봐주는 눈길이다.

기다림이다. 대화.

그러니까 말 걸기다.(30)

 

식물을 길러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하물며, 애완동물이나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환하다 봄비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32)

 

자기 시 구절이 교보 간판에 붙었다 자랑한다. ㅎㅎ

자랑할 만 하다.

 

부추밭에 핀 흰 민들레

너는 누구를 꾀자고(43)

 

풀과 대화를 나누는 걸 넘어서서 애정 행각이 유난스럽다.

그런 순한 눈과 부드러운 생각을 가진 시인이라도

도저히 갈앉힐 수 없는 시간도 있다.

아무리 묵직한 첼로 소리로 가슴을 눌러 놓아도...

 

운명으로 체념하기에는 너무 슬픔의 무게가 가혹하다.

세월호 뿐이겠는가

폭격당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과

말레이 항공기 뿐이겠는가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듣다가

불쑥불쑥 뒤틀린 세상의 일들이 튀어나온다

고요한 수면이 깨진다

내 얕은 강물의 깊이가 파문에 휘청거린다.(순하고 독한 생각, 140)

 

그래, 이런 것이 인간이다.

조고각하... 중으로 살기에는

세상은 너무도 독하니까...

 

공지영의 <시인의 밥상>의 바로 그 시인이다.

밥상만큼이나 부드럽고 순하다.

책도 맛깔스럽다.

잘 덖은 햇차 맛이다.

사진도 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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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나막신 문학과지성 시인선 479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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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말씀 언' 변에 '절 사'가 붙어 있는 글자다.

말 속에 종교를 심어 놓아야 시가 되는 법인데,

2016년에 나온 시집이라는데,

나는 그의 머리말이 마뜩잖다.

 

자정 너머 달리는, 심야 막차 풍경 같은

고단한 풍경의 시들이...(시인의 말 중)

 

2016년 이른 봄이었으면,

사람들은 새카맣게 가슴이 타들어 갈 때였다.

세상은 그대로 '헬 조선' 이었고,

생지옥이었는데,

심야 막차 풍경 같은 시들을 읽자니 하품이 난다.

머 그렇다는 거다.

 

그시절이면,

시인들 사이에서 성추문 사건도 일었고 그런데,

그의 시들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그저 사물로, 사물로 눈을 감고 간다.

 

아직은 춥고 어두운 계절이오.

오너라, 더딘 봄이여 여기는

서정의 박터

봄이 오면

이 말의 씨앗을 심어 보겠소

여긴 멀리 북방에서

늑대의 등을 타고 온 봄이

이야기꾼으로 그 고단한 몸을 처음 내린 곳(2월의 노래, 부분)

 

무슨 일제 강점기 육사도 아니고,

군사 독재정권기 신동엽도 아니고...

막연한 그의 시에 힘이 없다.

 

자연도 좋고

침잠도 좋지만,

세상이 지옥도일 때,

시를 가르친다는 그정도 되면,

사람냄새 구린내 그득한 똥짐 냄새 풍기는 시도 좀 썼으면 한다.

 

아쉽다.

분홍신이라는 안데르센의 판타지적 비극성 정도가

그의 연륜이 그리는 시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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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 / 이숲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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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기 좋은 계절.

바삭거리는 소리와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이 좋고,

구수하고 약간 매캐한 낙엽 먼지 냄새가 좋고,

노란 듯 붉은 듯 오묘한 빛깔이 좋아 걷고 싶어진다.

 

몹시 바쁜 나날이지만 산책은 필요하다.

산책은 혼자 하는 것이 제격이다.

말 안 통하는 강아지 한마리라면 따라와도 좋고.

 

그래서 대사가 없고

주장이 없는 만화다.

 

산책의 밋밋함을 벗어나기 위해

산책자는 부러 흙탕물에 뛰어들기도 하고

텅빈 수영장에서 누드쇼를 하기도 하지만

약간의 탈선은 반칙보다는 파격이다.

 

도시의 골목길이든

한적한 교외의 길이든

산책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일인칭 시점의 문제다.

 

아무 목표도 목적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마음이 가득 느껴지는 산책을 만화로 읽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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