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행복은 간장밥 - 그립고 그리운 법정 스님의 목소리 샘터 필사책 1
법정 지음, 샘터 편집부 엮음, 모노 그림 / 샘터사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책의 제목은 <샘터 필사책>이란 시리즈로 보이지만,

아무래도 이건 스님의 유지를 벗어난 행태로 보인다.


법정 스님의 글들 중 어떤 글들을 뽑은 이유를 들고,

철학적 해설이라도 좀 붙인다든지,

아니면 정말 좋은 문장들을 좀 가려서 필사하도록 만들었다면 나았을 것을...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게 편집했다.

스님의 책들에 실린 서문들을 늘어놓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나?

오히려 스님의 글들을 망치는 책이 되었다.


나는 스님의 책을 모두 읽은 처지인데,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스님의 책을 시대에 따라 정주행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60년대의 박정희 철권시대에서부터 먹고 살만해진 1990년대 글들까지,

그리고 법문과 '인연이야기'나 인도기행 같은 책들도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에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생명의 일부입니다.(55)


자에는 표준이 아니라 탄력이 있어야 합니다.(71)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를 구한다면 그는 부처를 잃을 것이다.

누가 도를 구한다면 그는 도를 잃을 것이다.

누가 조사를 구한다면 그는 조사를 잃을 것이다.(임제록, 183)


이런 구절은 보통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라고 듣는데, 이 해설이 더 알기 쉽다.

이렇게 풀면 금강경처럼 끄달리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헛것인 줄 알았으면 곧 떠나라.

헛것을 떠나면 곧 해탈이다.(원각경, 178)


스님의 책 어디에 이런 구절이 있었을지, 찾아 읽어야겠다.


어리석은 자는 한평생을 두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길지라도

참다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마치 숟가락이 국 맛을 모르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이라도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기면

곧 진리를 깨닫는다. 혀가 국 맛을 알듯이.(법구경, 153)


나그네 길에서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든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 길벗이 되지 말라.(법구경, 147)


장삿속이 보이는 책일지라도

읽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이베이의 연인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아주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대표적인 인물들이 설정되고,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전혀 상관없어보이는 시공간의 인물들이 얽힌다.

그 사이에서 짠한 인간사의 편린이 비치는 소설을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다.


다다 하루카와 료렌하오라는 인연이 등장한다.

타이완에 여행을 간 다다와 하루 안내역을 맡은 로롄하오.

그들의 인연은 아련한 배경 속에 고베 대지진과 대만 지진으로 이어지는데...

안자이 마코토라는 다다의 상사와 현지의 애인 유키...


그들의 엇갈리는 애정은 독자를 감질나게 하는데...


렌하오가 찾았던 내가 여기 있고

내가 찾았던 그가 여기로 와줬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여기 있는 사람은 역시 내가 찾아 내지 못한 그였고,

그가 찾아내지 못한 나일 뿐.(404)


엇갈림을 아쉬워하는 다다의 시선이나,


길을 잃은 고양이는 아니지만,

멀리 찾으러 나가면 고양이는 집 근처로 돌아오고,

집에서 기다리면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주인을 찾으러 멀리 떠난다.(278)


고양이를 찾아주는 렌하오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신칸센이 대만을 달리는 사건을 배경으로

다다는 직장을 대만으로 얻게 되고, 안자이 역시 대만에서 근무한다.

신칸센의 진척은 느리게 흐르지만, 

이들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가쓰이치로 노인의 등장은 뜻밖의 배경을 제공한다.


타이완 역시 일제의 지배하에 있었던 시기가 있었고,

가쓰이치로는 식민본국민으로서 친구 랴오총에게 2등국민이란 욕설을 내뱉고

아내 요코를 얻게 된다. 


그렇지만 수구초심이라고, 어린 시절 나고 자란 타이완에 대한 향수는

시대적 배경을 안고 쓰라리게 휘감긴다. 친구와의 화해는 부록이다.


차라리 그때가 되면 아내의 유골과 함께

우리가 나고 자란 타이완의 어느 밝은 곳에 잠들고 싶다는 생각까지 듭니다.(450)


첸웨이즈란 청년은 신칸센 기술자로 일하게 되고, 여친 칭메이친이라는 이혼녀와 맺어진다.


이런 여러 인연들을 싣고 신칸센은 성공적으로 달린다.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소설들의 공통점은 정적으로 흐르는 공간적 느낌을 담는단 것인데,

이 소설 역시 타이완의 정적인 배경을 사랑스럽게 담고 있다.

타이완을 가보고 싶게 하는 소설이다.


홍콩에서는 흘러가는 경치가 세계 최고로 아름답다면

이곳 타이베이의 거리는 멈춰섰을 때의 경치가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도시가 아닐까.(467)


하루카는 타이완의 동쪽이 좋다고 말했다.

시간의 흐름이 타이베이나 가오슝이 있는 서쪽과는 확연히 달라서

한 시간을 보내면 두 시간을 보낸 것 같고

하루를 보내면 이틀 같아서 굉장히 호화롭게 지내는 기분이 든다고...(383)


도쿄와 타이완은 공기가 아니라

그 공간에 흘러가는 시간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루라는 시간이 타이완보다 도쿄가 짧게 느껴지는 것이다.

스스로도 딱 짚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예를 들어 외출전까지 세 시간이 남았다면 타이중에서는 다섯 시간쯤 남은 것처럼 느껴지고

도쿄에서는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다섯 시간이나 여유가 있으면 낮잠도 자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 시간뿐이면 잠잘 여유가 없다.

실제로는 똑같은 세 시간이지만.(252)


물론 서양 근대를 이어받은 선진국 일본의 시선으로 

한국이나 중국을 보면 정적으로 보일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런 고요가 남아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대도시에 사는 나로서도 일본의 후쿠오카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고요한 아름다움을 느꼈으니 상대적인 일.


신칸센이란 결국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 움직이는 거야.(366)


타이완의 만만디 시계에 적응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일본에서 가져온 시간의 흐름이 어느덧 이곳 타이완 시간의 흐름에 천천히 동화됐다고 말하면 좋을까.

아무튼 밖에서 소나기를 만나도 한동안 처마 밑에서 비를 그으면 그만이다 싶은 여유가 자연스레 배어들었다.(367)


소세키를 구립도서관에서 빌려 봤는데,

그의 '산시로'에 이전 대출자가 이 책을 빌려본 기록이 끼워져 있어서

우연히 눈에 띄어 읽어본 것인데 뜻밖의 수확이다.



------ 맞춤법이 눈에 걸리적거린 곳...

이 책에 6~7회에 걸쳐 '기지개를 펴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한국어로는 <기지개를 켜다>쪽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

기지개의 뜻에 '몸을 펴다'라는 의미가 들어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일본어의 <노바스-펴다>, <노비-기지개>라는 말을 번역하다 보니 <~펴다>로 번역하기 쉬웠을 듯.

간혹 사전이나 해설에 따라서는 표준어를 둘 다 라고 설명해 두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 괜찮은 죽음 -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뇌를 열고 수술하는 신경외과 의사의 글이다.

수술 과정의 치열함도 등장하지만,

인간의 뇌라는 신경 조직의 신비로움에 대한 통찰과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멋진 글들을 만날 수 있다.

 

글솜씨도 뛰어나지만, 그가 겸손하며 온화한 인간이고

정확하고 뛰어난 의사여서 가능한 책이 아닌가 싶다.

한국어판 제목은 맘에 안 든다.

원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Do not harm.'인데

'괜찮은 죽음'이라니... 헐~이다.

그것도 참~~이라니. 그런 죽음은 없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는 마치 이 책을 '호스피스' 안내서로 보이게 한다.

 

우리 뇌에는 100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가 들어있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의식의 조각을 가지고 있을까?

의식이 있으려면 다시 말해 아픔을 느끼려면 얼마나 많은 세포가 필요할까?

아니면 의식과 생각은 이 수십억 개의 세포를 한데 묶는 전기화학적 충격안에 살고 있을까?(277)

 

날마다 말랑한 뇌를 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인체의 신비를 실감하는 듯 하다.

 

공기처럼 자유로운 내 생각,

책을 읽으려고 애쓰지만 실은 구름을 구경하는 내 의식,

지금 이 단어를 쓰고 있는 내 생각을

굳이 '마음과 뇌의 문제'라는 복잡한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나의 의식과 자아가 실은

1000억 개가 되는 신경세포들의 전기화학적 지껄임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나는 그저 경외심과 놀라움을 느낄 뿐이지,

물질에서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을 문제로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169)

 

간혹 말도 안 되는 병원 행정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등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하는 일이니, 에피소드로 넘긴다.

인체라는 신비로운 존재는 인간의 허접한 시스템이 따라잡을 수 없는 범위 너머에 있으니...

 

안달복달하고 화를 내는 가족들의 짜증과 분노는

세상 모든 의사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다.(156)

 

자신의 가족의 문제가 되면, 누구도 예외는 없다.

완치 후에라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가 의사인 것이다.

 

흔히 외과의사는

강철같은 신경, 사자의 심장, 여자의 손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50)

 

강한 정신력과 대담함, 섬세한 지식과 기술을 겸비해야 하지만,

인간의 기술과 능력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 지향과 현실 사이의 흔들림을 참 잘 쓰고 있는 좋은 책이다.

 

그 환자는 앙고르 아니미 Angor Animi, 영혼의 불안을 뜻하는 앙고르 아니미를 느꼈다.

심장마비가 왔을 때 일부 사람들이 느낀다고 하는,

곧 죽을 것이라는 느낌.(118)

 

자신의 오판으로 앙고르 아니미의 표정으로 죽음을 맞는 환자에 대한 기억조차 기록한다.

절대로 <해를 끼치지 말라>고 배우지만,

인간의 무신경함과 무지는 늘 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오늘이 원래 수능일이지만, 어제 포항지역의 지진으로 1주일이 연기되었다.

이후의 입시일정, 여행이나 수술 예약 등 그 여파가 굉장할 것이지만,

포항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불안감에 비하자면 그 불편함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얄팍하고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수술이라는 게

사실 운에 많이 의존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아마 내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수술이 잘되면 결코 그렇게 믿지 않는다.(151)

 

인간은 아무리 실력있는 외과의사라 하더라도

알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가 되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일 뿐이고...

 

현미경과 수술내시경을 통해

수술 현장에서 뇌동맥과 사투를 벌이는 실감도 굉장하고,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마주하면서

자신은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귀가해야하는 생활인으로서의 모습도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환자 가족들이나

병원 관계자들이 읽어볼 만한 대목이 많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바닥 생에 대하여 쓰려고 했던 모양인데,

도련님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에 대한 묘사들이 잘 드러난다.

 

세상에는 무척 영리한 인물이면서

인간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작자가 상당히 많다.(91)

 

조조라는 알선책을 따라가면서 하는 생각이다.

지식인 계층, 부유층이었던 소세키로서는

밑바닥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험이 소중했던 것 같다.

 

세상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당연하게 되고

혼자만 하는 일은 쓸데없는 일로 생각되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만들려면 자기편을 만들어두고

자못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로 부당한 일을 하는 게 최고다.(132)

 

이런 것이 세상의 '도덕'이고 '윤리'다.

갱부들을 멸시하는 세상의 시선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때의 구름은 정말 기쁜 것이었다.

네 사람이 떨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뭉치기도 하면서

구름 속을 걸어갈 때의 경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꼬맹이가 구름 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이바라키의 담요가 붉어지기도 하고 하얘지기도 했다.

조조씨의 도테라가 불과 10여 미타 거리에서 짙어지기도 하고 옅어지기도 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무턱대고 서둘렀다.

세계에서 분리된 네 개의 그림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네 개인 그대로 끌리어 합치듯이

튕겨져 멀어지듯이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네 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구름 속을 오로지 걷기만 할 때의 경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138)

 

마치 '메밀꽃 필 무렵'을 읽는 것 같다.

소세키를 읽다 보면,

한국 근대 문학의 이런 저런 작품들이 일렁인다.

하물며 일본에야... 이를 것이 없을 듯.

 

'갱부' 자체가 정리되지 않은 사실을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소설처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처럼 재미있지는 않다.

그 대신 소설보다 신비롭다.

모든 운명이 각색한 자연스러운 사실은 인간의 구상으로 만들어낸 소설보다 더 불규칙적이다.

그러므로 신비하다.(147)

 

인간 각각의 경험은 모두 다르다.

내 눈에 비친 하늘빛과 다른 눈에 비친 빛은 다르다.

누구는 농사를 짓고, 누구는 도적질을 한다.

그런 것들을 인생이라 부르는 것이니,

그 신비를 쓰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 여기고 쓴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비장전 : 절개 높던 배비장 홀딱 벗은 꼴 좀 보소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12
박일환 지음, 이철민 그림 / 나라말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판소리 12마당의 하나였던 배비장전은

굉장한 성적 재미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고전소설로 기록된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지만

여기 기록된 것만도 아주 재미있다.

 

전 비장이 떠날 때 애랑의 행태도 재미있고,

배비장을 골탕먹이는 대목도 아주 재미있다.

 

양반을 희롱하는 지혜도 재기발랄하고

제주도라는 특이한 지역의 언어도 등장한다.

 

학생들도 고전의 흥미를 얻기 좋은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