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 법정 스님이 추천하는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50권
문학의숲 편집부 엮음 / 문학의숲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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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 편집부에서 법정 스님이 법문집이나 다른 도서들에서 언급했던 책들을 엮어 책을 냈기에, 짝퉁을 들쳐보는 불편함 내지는 찌질한 리뷰집이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으로 이 책을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또 법정 스님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고 하니 안 읽을 수 없는 노릇이어서... 

읽고 난 소감은 참 좋은 책들을 소개해 주었다는 고마움과,
이젠 만날 수 없는 법정 스님의 목소리와 글소리들에 대한 아쉬움... 

각각의 책을 소개할 때,
바윗돌, 해변, 꽃밭을 배경으로 책이 놓은 사진이 함께 실려있어서 인상적이다. 

 

스님의 평소 삶처럼, 무소유와 생태적 접근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인지,
소개된 책들도 그렇게 인생을 누릴 때 놓아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야마오 산세이의 <여기에 사는 즐거움>같은 책을 다시 만나는 일은 기쁘기 그지 없었다. 
마치 친한 옛 동무를 잊고 있다가 수십 년만에 우연히 해후하는 느낌이랄까. 
수천 년을 살아온 조몬 삼나무나, 그 옆의 제비꽃이나 하나의 생명임은 같다는 그의 '가미(神)' 이야기도 잊혀진 친구였다.

그렇지만, 독서 따위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님을 또 배운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해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도대체 무엇이요? 

이런 조르바의 일갈을 듣는 일은 죽비소리로 내리치는 폭포처럼 서늘하다.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았기에,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란 이름을 붙인다.
삶은 매 순간이 투쟁이다. 행복의 정복! 그것도 말 된다. 
사람들은 흔히 '생존을 위한 경쟁'이라 착각하지만,
그것은 사실 '성공을 위한 경쟁'일 뿐이라 바로잡아 준다.

러셀을 읽는 일은 딱딱한 일이지만, 이렇게 다이제스트로 읽는 것도 행복하다.
근데... 이런 일도 성공을 위한 경쟁일 뿐인 건가???

 

꾸뻬씨가 강도에게 잡혔을 때 풀려나게 해 준 쪽지의 한 마디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란 말. 난 살아있나? 당신은? 

인디언들에게 도끼를 준 백인들...
백인들은 자기네처럼 그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인디언들은 빨리 일을 끝내고 자유로운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된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모자랄까 봐 미리 준비해 쌓아두는 그 마음이 곧 결핍!
쓴 소리 한 마디가, 식욕을 돋운다. ^^ 돼지~ 

존 프란시스는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에서 걷는다.
'걷기 예찬'의 브르통을 다시 만나는 일도 행복하다. 나도 걷고 싶어진다. 욕심을 버리고...
그치만, 해야할 일에 치이는 정신은 걷는 시간을 용서하지 않는다.  

'슬로 라이프'의 쓰지 신이치는 '~하지 않고'를 실천한다.
나무젓가락을 쓰지 않고 가지고 다니기, 전기를 켜지 않고 촛불 켜기,  등...
뺄셈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들.
뺄셈은 그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 준다고 하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다.
비록 조르바가 개무시하는 즐거움일지라도...
조르바, 니 자유가 있다면, 내 자유도 있다! 

인도의 비노바 바베의 이야기 속에서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은 따끔하다.
유위 가운데서 무위를 보고 무위 가운데서 유위를 보는 자는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자이다.
87세가 되자 비노바 바베는 몸이 쇠약해지고 죽음이 다가옴을 느끼고,
단식 80일째 지극히 평화로운 가운데 자신의 몸을 벗어 버린다.
가장 맘에 드는 구절이다. 이 두꺼운 책에서... 

우리가 언제 어떻게 생애를 마감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법.
그러나 매일의 삶은 잠으로 끝나게 되며, 매일의 경험은 죽음을 조금씩 맛보는 것.
만을 우리가 매일 자기 전에 마지막 장면을 잘 해낸다면,
생애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올 대 우리는 승리를 손에 넣게 된다. 

윤구병의 '좀더 가난하게, 좀더 힘들게, 좀더 불편하게'가 마음을 부유하게 해줄 것이다. 

좀더 가난하게,
좀더 힘들게,
좀더 불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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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8-22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같은 이유로 이책 망설였는데.....좋은 책이군요.
뭐야 님이 추천하는 책 읽느라 요즘 넘 얽매이잖아욧!
근데
공부는 대체 언제하누? 이렇게 많은 리뷰 올리시면.....

글샘 2010-08-26 00:33   좋아요 0 | URL
공부는 뭐 때 되면...
 
독서의 즐거움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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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 제목에 낚였음을 항상 책을 읽고 나서 깨닫는다. 

그렇지만, 이런 제목을 붙인 책을 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어리석다.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를 읽고나서 후회한 것과 똑같은 후회를 남기는 책이다. 

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수전 와이즈 바우어의 개인사적 의의나 그의 홈스쿨링을 위한 <교양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5권 시리즈>는 가치있는 책이었다. 충분히 그의 의견에 존중을 표할 만도 하다. 

그렇지만... 원제목이 이렇다.
The well-educated Mind : A Guide to the Classical education you never had. 
훌륭하게 교육된 마인드 : 당신이 누리지 못했던 고전 교육 가이드... 

미국에서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책들과 한국에서 일컬어지는 책은 절대로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이런 제목의 책을 '독서의 즐거움'으로 번역해서 나처럼 책에 대한 중독증을 가진 사람을 유혹하는 출판사란... 뭐, 내가 어리석었던 거다. 

학교가 붕괴되고 있다고들 하는데, 학교는 붕괴될수록 좋다.
대신에, 진정한 교육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특히, 대학은 빨리 무너질수록 좋다. 한국의 대학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닌 대학에서는 교수에게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하나도.
대학의 선배와 동료와 후배들에게서 모든 지식과 지혜를 배웠던 80년대였다.
박 모 교수는 텔레비전에 녹화나간다고 수업을 펑크낸 적도 많다. 한심한 작태였다. 

어차피 공부는 학교에서 시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널린 것이 책이고, 그 책을 제대로 커리큘럼을 잡아 읽을 수만 있다면 학교 따위는 필요 없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산업 사회에 가정이 무너지면서 부터였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제대로 독서를 시킬 여유만 있다면, 아이들은 독서를 통해 충분한 지혜와 지식을 익힐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학교라는 제도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고정관념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대안 교육은 실패한 교육으로 보아지기 쉬운 것도 현실이다.
그렇지만... 대안 교육이란 이름이든, 홈 스쿨링이란 이름이든... 충분히 교육적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독서의 단계를 3단계로 나누고, 장르별로 독서법과 권장도서 목록을 제공하였으나, 한국인인 나에게는 도움이 별로 되지 않았다. 어느 나라 독자든, 가르치지 않아도, 처음엔 문법독서를 한다. 그건 낱말과 관용구 등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 다음엔 논리 독서가 일어난다. 문장들이 어떻게 구성되며, 어떤 표현법으로 문장들이 긴밀하게 연결되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마지막엔 수사 단계 독서라고 하는데, 장르에 따라 다양한 질문을 해가며 읽는 것이 이런 방법이다.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제시하고 전개하고 있는지, 더욱 심화된 학습을 해야한다면 어떤 공부를 더 해야할지... 이런 것이다. 

새로운 것도 없다.
다만, 홈스쿨링의 제재로 미국의 모범을 보였을 뿐이다.  

1부에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일의 타당성을 설파하고,
2부에서 소설, 자서전, 역사서, 희곡,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긴 부분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소수의 부분만 필요하다.  

한국에서 고전을 읽는 방식을 제시한 사람들은 드물다.
동양고전강의로는 <신영복> 선생의 <강의>가, 서양고전강의로는 <강유원> 선생의 <인문 고전 강의>가 훌륭하다.
이 두 권의 책으로도 충분히 동양고전과 서양고전의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다만, 이런 책을 읽을 풍토가 조성되기 힘들 뿐.
대학에서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토익공부하고 상식외우고 있다면, 대학을 문닫는 것이 옳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만이 그나마 자유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허크는 이해한다.(143)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그리고 자유를 얻을 수는 없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
좋은 말을 하나 얻었다.
요즘 자유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얻기 힘든 자유에 대하여...
학교라는 부자유, 학습이라는 얽매인 틀과 부자유, 과연 자유로운 학교와 자유로운 학습을 제시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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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0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 : 낚임의 슬픔

글샘 2010-08-01 12:06   좋아요 0 | URL
태그 달기로 특허내세요~^^
 
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난 내 인생을 바꾼 독서, 뭐 이런 리스트를 믿지 않는다.
책은 물론 아주 좋은 인류의 벗이지만, 책이 인생을 바꾼다면, 인생은 그렇게 얄팍한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사노라면, 짜릿한 경험으로 다가오는 독서가 있다.
나에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그런 것이었는데, 1987년 서울시내를 휘젓고 다닌 직후 여름 방학에 읽었던 책이라 더욱 한국사의 질곡에 치를 떨게 되었던 것 같다.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으면서는 정말 뼛속깊이 사무치게 일본을 증오했는데, 몇 달 후 고베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컥,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으면서, 참 우리말을 오롯이 살려쓰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고,
전교조 원년 멤버인 내게 <이오덕 선생님의 글들>은 교사로 사는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대학생 시절, 유시민 세대는 독서활동이 깊었을지 몰라도, 85년 신입생이던 우리는 독서나 학습 활동은 뒷전이고,
매일의 집회와 교문 싸움, 가투로 몇 년을 살았다.
지하 서클 활동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던 나같은 사람은 늘 삶이 뭔가 허전하고 나사빠진 것마냥 허탈한 것이었다.
학과 공부는 삶에서 유리된 낡은 종이 조각에 불과했다고 여겨졌고,
사회과학 서적 학습 때마다, 급하고 서툴게 번역된 판본들을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었지만, 조각난 지식일 뿐인 여러 번 걸러진 내용들은 솔직히 마음에 와 닿기보다는 머릿속에서 흩어져 버리곤 했다. 

가장 나를 울린 글들은 언제나 대자보였고,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쩌렁쩌렁 울리던 선배들과 동료들의 선전선동이었다.
저녁마다 하굣길에는 술집에서 종례를 하기 일쑤였고, 이어서 3주를 마시네, 4주를 마시네, 이런 것을 자랑처럼 떠들던 서글픈 청춘이었다.
어쩌다 연애 감정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 기억은 이문세의 노래들과 함께 박제되어버린 풋사랑이었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열패감에 빠져 청춘이 저물기도 전에 결혼과 육아의 생활 속으로 빠져들어버린 것 같다. 

책을 잡은 것은 언제였던가.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책을 손에서 놓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외수에 꽂히면 그를 읽고, 이문열에도 심취했더랬는데, 토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의 소설같은 대작도 충분하진 않지만 읽을 기회를 얻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고 독서 노트를 만들기도 했지만, 십수 번의 이사 끝에, 남은 것은 거의 없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 시절의 교재같은 것도 아직 들고 다니는데, 그걸 왜 버렸을까 싶기도 하지만, 내게 청춘시절의 기록이란 한낱 허무하기만 하던 시절이었고, 지워버리고 싶은 기록이었던 것 같다. 

리영희, 백기완 선생의 세례를 받은 세대이기는 유시민이나 나나 마찬가지지만,
그가 감옥에서 탐독하던 서적들을 나이들어 다시 읽는 감상을 적은 이 책을 읽는 일은 솔직히 즐거움만은 아니었다.
책에 폭 빠져들게 만든 글들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사회의 구조적 함정을 드러내 보여주지도 않는다.
개인적 독서 경험을 적은 글들의 위험성이 이 책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최인훈의 <광장>을 몹시 사랑하는데, 그건 나와 같다.
대학 2학년 때, 거의 매일 밤, 최인훈의 <광장>을 마치 성경 읽듯 아무 구절이나 펼쳐서 읽곤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가 인용한, 은혜는 부지런히 만나자던 다짐을 아주 어기고 말았다. 전사한 것이다.
이런, 열 번도 넘게 읽은 대목인데, 또 눈자위가 뜨끈해지고 콧날이 시큰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릴 만한 감성이 내게, 아직도 남아 있었던가...(154)
이렇게 쓴 구절을 읽으면서 나도 눈자위가 뜨끈하고 콧날이 시큰해 졌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일은 한편 슬픈 일이면서도 한편 몹시 반가운 일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던 그의 항소이유서 인용 구절도 유명하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같은 글을 읽으면서, 푸시킨이나 네크라소프의 이런 구절도 떠올릴 법 하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지극히 평범한 러시아인이다.
수용소에서 보낸 삼천 육백오십삼일 동안 그가 한 일은 오로지 하나, 생존을 위한 투쟁뿐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러시아 남자는 그 절박한 생존 투쟁의 와중에도 나름의 원칙에 따라 인간의 품격을 지킨다. 
슈호프는 절대 꾀병을 부리지 않는다.
편하게 살기 위해 다른 수형자를 밀고하는 비열한 자를 맹렬히 혐오한다.
아무리 허기가 져도 남이 먹고 난 죽 그릇은 핥지 않는다.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도 않는다.
작업을 할 때는 성의있게,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품격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존중할 줄 안다.
정당한 근거없이 누구를 경멸하거나 미워하는 일이 없다.(185) 

문학의 힘이 이런 것이다. 고은의 '머슴 대길이'처럼, 신분에 상관없이 품격있는 인간상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볼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생각하게 된다.
어느 세상에든 진실이 그대로 밝혀지는 날로 가득한 사회는 없는 법이지만, 진실을 이기는 오해와 편견들로 가득한 세상을 발견하는 일은 너무도 쉽다. 한 번 잃어버린 명예를 복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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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맹자가 묘지 근처와 시장통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아 경제적으로 크게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으리라고 추정... 한다고 썼는데, 이것은 조금 잘못일 수도 있다. 맹모삼천지교를 낱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억지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했다는 것은, 상징으로 읽는다. 그 당시엔 '선비'보다는 '무당 그룹의 무인들'과 '상인 그룹'이 먹고 살기 좋은 계급이었다. 그걸 버리고 장래를 내다보고 '선비'로 만든 맹모의 혜안...  
상징을 놓치면, 성경을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의 전철을 밟게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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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bird 2010-07-2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인훈의 광장은 몹시 좋아했습니다. 회색인도 인상깊게 읽었구요. 사실 리영희, 백기완보다는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이 제겐 더 큰 영향을 준 책이었습니다.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병신과 머저리도 제 인생에 중요한 책이었구요.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에 대한 제 인식을 결정해 준 책이었습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도 좋았구요. 김용옥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도 한때 흠뻑 젖어 있던 책입니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얼마전에 읽었었는데, 옛날 생각이 나는 정도로 조금은 가벼운 느낌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대학 때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나 리영희의 조건 반사의 토끼 같은 짧은 글을 프린트해서 스터디 주제로 삼았던 기억이 납니다.

글샘 2010-07-28 13:28   좋아요 0 | URL
저랑 비슷한 세대신 거 같네요.
최인훈, 리영희, 한완상, 이문열, 이청준...카, 님 웨일지...
유시민을 통해서 젊은 시절의 쓰라리던 독서가 떠올랐지요. 낡은 책을 여러 번 복사한 것들을 가지고 공부하고 소각시키던 두려운 기억을 추억이라하기엔 너무 어두운 시대였어요. ㅠㅜ

windbird 2010-07-28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두운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는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연대감이 있어 나름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연대감이 없었더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시절이죠.
하지만 요즘은 이질감만이 살아 있는, 자기만의 성 안에 갇혀 버린 익명의 개인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형도의 시편들이 그런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특히 안개 같은 시에서...
벌써 사후 21년이 되었는데 항상 가까이 있는듯한 시인이에요. 요절해서 그런지.
 
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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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몇 번 읽으려다 말곤 했더랬다.
이 책에서 나를 밀어낸 가장 큰 척력은 김현의 온건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르크스가 종교이던 시절에 그는 가르쳤고 나는 배웠다.
그 당시 교수들을 '꼰대'로 보던 나에게 그의 글들은 시답잖은 헛짓들이었는지도 모르고. 

그러다 김현은 1990년 내가 군대를 때우고 있던 시절, 48세로 작고하고 만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비평가가 아니었으므로 그의 글들을 관심가지고 읽을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지금 그의 글을 밑줄그어가면서 곰곰 읽으면서 한숨짓고, 눈물짓고, 괜스레 하늘 한 자락 쳐다보는 일은,
우선은 그가 적은 그 시대에
교수로서 그가 느꼈던 그것들을
나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던 학생으로 보고 느꼈던 것들과
명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대체적으로 뜨거운 기억들로 낙인처럼 남아있는 그것들이 합치하는 지점이 너무도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그가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동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나누던 것들은,
그가 살아서 만났던 독일의 통일과 그가 죽고 나서 보였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가
새로운 시대를 태어나게 해서 지금 더욱 희한한 삶들을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옳은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는지...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그의 글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문예 비평'이다.
신랄하기 짝이 없다. 김지하도, 서정주도, 심지어 '피바다'까지도 그의 눈앞에서는 초등학생처럼 눈깔고 앉았다.
아, 김현이 블로그질이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로쟈를 저리 가라하는 블로거가 되지 않았으려나... 

그는 늘 온건한 편에서 생각하지만, 그는 더러운 삶을 살려는 오염은 전연 되지 않은 학자다.
그의 주변에 얼른거리는 학자들은 역시 마찬가지지만, 세상에 대한 걱정은 역시 한 마음이다.
그렇게 대학 강단에서 조용히 공부만 가르치기에 시대가 너무도 가혹했던 것이다.
그들 역시 광주 세대고, 그들이 가르쳤던 제자들이 바로 광주에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본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세상은 민주화된 듯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그는 보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읽고 있지만, 그는 세상을 뚫어 보고 있다.
그는 격하게 논하지 않지만, 고요한 시선으로 확실한 비판을 제시하기도 한다.
날카롭지만... 그는 칼날을 겨누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만으로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큰 목소리로 옳다고 말하고 금세 변절해 버리고는 잘난 체 하는 놈들보다는 고요히 제자리에서 두 눈 부릅뜨고 있는 학자들이 훨씬 낫다. 

그의 글들이 이미 없어져버렸다는 것에 몹시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그의 글들을 보면... 정말 그의 책읽기는 행복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읽어야 할 책은 지나치게 많고, 시간은 부족한 비평가의 책읽기>를 그는 즐거운 책읽기로 만들었다.
천상 학자다.  
 그의 일기 중, 두고두고 보고픈 부분들을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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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318

박몽구의 ‘십자가의 꿈’은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와 짝을 이루는 시집이다.
그의 시가 주는 충격은 거의 대부분 사실을 그대로 연역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불행하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권력/ 진실의 대립을 보여주는 시들은 더 깊고 깊이 있게 다뤄져야 하고, 묵비권․고문․배신의 문제 역시 그러하다. 과연 그곳에는 그렇게 의로운 사람들만 있었는가?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곳에 진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떠나... 답답하고 답답하다.

860319

최루탄이 계속 나를 미치게 만든다. 따끔거리며 둔통이 계속되는 목, 흐르는 콧물, 막혔다 터졌다 하는 코, 따갑고 뜨거운 눈, 부풀어 오르거나 터지는 피부...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지옥이다.

860214

자리매김이라는 말이 나는 싫다. 자리매김이란 관계 맺기, 관계 지우기보다 훨씬 고착적이어서, 한번 자리가 맺어지면 변경하기가 힘들다. 변화를 전제하지 않은 자리매김이란 딱지 붙이기에 다름아니다.

860409

정진규의 ‘뼈에 대하여’는 노장, 선(禪)의 연습인데, 충격이 없다. 비우기-베끼기, 받아쓰기의 마음 맡기기 연습도 적절치 않고, 교과서의 세련된 연습문제 답안지 같다.

860419

미국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국익이다. 그것이 세계주의의 가면을 쓸 때, 지식인들은 멋모르고 춤춘다.

860427

에코의 장미의 이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 희극론을 남몰래 보관하려는 수사의 광적 노력을 토포스(논거를 발견하기 위한 장소, 후속 텍스트들의 창작을 위한 원천으로서 자주 사용되는 한 텍스트에서의 관습화된 표현이나 구절)만을 이용하여 비판하고 있는 소설... 대중 문학은 이미 있는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이다.

860817

박재삼의 찬란한 미지수... 삶이 아름다울수록, 죽음의 원통함은 더 절실하다. 그 원통함이 영랑의 섬세함, 미당의 게으름과 다른 점이다.

861024

홍정선 비평의 특징은 사회가 지리멸렬할 때는 그 사회와 맞서 싸우는 문학을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데 있으나, 그 싸움이 논리성을 잃고 감정화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데에도 있다.

861102  

정과리의 ‘존재의 변증법 2’,는 ... 그가 해체하는 것은 작품이며 그가 재구성하는 것은 사회적 문맥

861203

한국 사회는 소외/물신화/기능화 등의 후기 산업 사회의 특징을 드러난 구조로 갖고 있으며(나는 나 아닌 것이다), 분단/군사독재 등의 후진적 경제,정치적 특성을 숨은 구조로 갖고 있다.(나는 나 아닌 것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 아닌 것이어야 안심하고 살 수 있다. 나는 사유하지 않는다. ... 나는 사유하지 않는다. 

870217 

바르트의 ‘삽화들’에서... 유년 시절은 우리가 한 나라를 가장 잘 알게 되는 왕도이다. 마음 깊숙이에는 유년 시절의 나라만이 있다.

870320

기초적 폭력은 복수를 낳고 그것은 또 폭력을 낳는다. 그 악순환은 합법적인 것과 비합법적인 것 사이의 차이를 지워버리며 그 상태는 문화의 종말을 부른다는 지라르의 추론은 끔찍하다. 광주 이후, 비합법적인 것과 합법적인 것 사이의 실제적인 차이가 자꾸만 없어져간다. 피고가 재판관을 꾸짖고, 재판관은 피고를 훈계한다. 서로가 서로르 훈계한다. 끔찍한 일이다.

870420

지라르의 욕망 이론을 읽다가... 욕망이 부재의 현존이라는 것의 예를 코제브는 목마름으로 들고 있다. 물 마시고 싶다는 욕망은 물의 부재라는 것. 욕망은 공이며 무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내가 사유의 주체가 아니라 내 육체가 사유의 주체라는 생각에 더 깊이 사로잡힌다. 내가 추상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사유한다고 믿고 있었을 때, 내 육체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저항은 나이가 들수록 강해져 이제는 내가 추상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사유했다는 것을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다. 내 사유의 주체는 내 육체이다. 내 육체의 슬픔과 괴로움, 즐거움과 환희를 이해해야 내 사유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내 사유의 주체가 아니라 내 사유의 보지자이다. 

870526

‘애린’은 마음의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일기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지하 생활자의 수기’의 시적 번안이다.

870701

지식인의 병폐중 하나는, 모든 역사적 사실을 자질구레한 사실들의 모음으로 변형시켜 그 의미를 희석시키는 데 있다. 예를들어 민주화만 하더라도, 누구는 뭐라더라, 뭐는 뭐라더라라는 식이고 그것이 더 악화되면 거짓 우스갯소리로 진전해나간다. 그것은 우리가 진지하고 성숙하게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숙고하는 버릇을 갖고 있지 못함을 입증하며, 그만큼 우리가 억압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억압은 바로 사실을 사실로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지칭한다.

871211

임동확의 ‘매장 시편’은 괜찮은 시집... 광주사태를 다룬 것으로는 압권이다. 죽음의 기억은 전존재를 떨게 하는 고압선이다.

880125

미국말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영어의 다양성, 그 다양성의 긍정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 영어를 안 쓰는 유일한 방법은 파리 사람들이 생각하듯 불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 말을 하는 것... 르몽드(080113)

880203

최인훈 씨와의 이야기 중, “광주 세대 다음엔 뭐가 올까요?”
“6.29 세대가 생겨날까요? 서구나 일본처럼, 감각적이고 충동적이고, 정치엔 무관심한 세대”
아...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래서 ‘상실의 시대’란 멜랑꼴리한 충동을 타고 건너왔던 것일까? 

880220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그르니에의 에세를  읽다가 다시 읽게 되었다. 그의 글을 왜 좋아하는 척하는 것일까. 깊이도 고통도 없는 글들을.

880224

짧은 시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80년대를 특징지은 낭만주의적 감정 토로가 이제는 끝나가는 것이 아닌가... 김용택의 흉년, 이성복의 편지, 정호승의 꽃으로 태어나서, 권혁진의 진주...

880312

황지우의 ‘새들은...’ 연극을 보고...

운동권 문화가 한국 문화에 끼친 두 가지 영향 : 하나는 금기를 깨나가는 것이 문화 활동이라는 것, 또 하나는 배부르게 사는 것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는 이동렬과의 대화...

880318

똑같은 현상의 아주 다른 표현들 : 여당내의 진통, 난산은 미묘한 역학 관계로 표현되고, 야당내의 싸움은 분열, 흉작, 상호 비방... 등으로 표현된다. 하나는 없는 싸움으로, 또 하나는 과열된 싸움으로 이해된다. 오, 말의 양날이여!

880506

김초혜의 ‘어머니’는 판매용이고, 김춘수의 ‘라틴 점묘 기타’는 그의 손솜씨의 넉넉함에도 불구하고 역겹다. 너무 잘난 척하고 있다. 그는 아는 것이 많고, 언제나 그가 옳다. 한번쯤 틀릴 수 있다.

880514

현길언의 ‘우리 시대의 열전’... 사람들은 그 나름으로 운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한스럽게도 그것을 이기려 애쓰며 살아가는 것... 한이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해야 한풀이가 잘 되고... 큰 심방일수록, 굿을 잘 하는 심방일수록 더 크고 풀 수 없는 한을 갖고 있어야...

880618

광기란 어떤 사건의 결과이어야 소설적으로 의미가 깊게 드러나지 어떤 것의 발단이면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

880802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다. : 우리는 잘살아야 하고, 잘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산다는 것을, 그는, 그냥 잘산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조금 부유해졌다고, 과연 잘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 신앙, 문화를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

880909

패한자의 기록은 증오를 낳지 않는다. 그것은 패한 사람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낳는다. 패한 사람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패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패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증오심은 어느 정도 사라진다...

881030

안수환의 ‘검불꽃 길을 붙들고’... 시의 수준은 고르고, 빈틈이 별로 없으나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 빈틈이 없으니, 의외의 것이 끼어들 자리가 적다.

881104

박정만의 시...쓰기는 시-쓰기가 아니라 살아있음을 - 확인하기 이다. 시-쓰기는 죽음의 연장이다. 이야기가 그러하듯, 시도 죽음을 생존의 원 박으로 밀어내려는 힘든 노력이다. 그의 시에 씌어진 표현을 빌면, 내용이야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시를 쓰는 순간에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내 삶이 끝날 때, 내 시도 끝난다. 이 꽃잎이 지고 나도 세상은 계속되겠지만, 그 따위 세상 난 모른다! 오마르 카이얏은 술로 도망갔지만, 그는 술로도 도망갈 수 없다. 그는 죽음과 맞서있다. 사랑하는 모든 것과 이별할 수밖에 없는 슬픔(죽음의 맛은 없다. 그것을 쓰다고 하는 놈들은 다 개새끼들이다. 그들은 한번도 안 죽어본 놈들이다. 무섭도록 겁이 나면, 입술이 마르고, 아무 것도 없다. 입술이 쓰디쓸 때는 이미 정신이 돈 뒤이다.)

881124

85년 쓴 단상 : 죽는다는 것은 사회적 관련하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 그 가장 극단적인 예가 로빈슨이겠지만 - 죽지 않는다. 그는 사라져 없어질 뿐이다. 죽는다는 것은 남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으나 육체적으로는 접촉할 수 없다는 듯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질 때, 다시말해 혼자 살게 되었을 때, 그는 사라진다. 어디로? 무 속으로. 무마저도 없는 무 속으로...(850706)

890106

민중의 바다는 잘 만들어진 삼류 소설이다. 꽉 자여진 구성은 어머니의 혁명적 각성을 향해 응집력 있게 진행되어나간다. 그러나 일제하의 한국의 모습보다는 추체험된 혁명의 구도만이 크게 전면에 부각된다... 그 혁명을 주도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보일는지 모르겠으나, 작위적이고 관념적이다. 모든 인물은 다같이 선량하고 혁명의 대열에 몸바친다. 왜놈들과 그들에게 봉사하는 한두 사람의 적들을 제외하고는.

890112

김선학의 ‘현실과 언어의 그늘’도 꼼꼼히 읽어보면, 별로 틀린소리같지 않은데 지루하다. 모범답안 같은 비평을 보는 지루함이다. 

890204

박경리의 토지 4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지나치게 급격하다 싶었지만 참고 1권을 읽고 2권을 읽고 있는데, 아는 사건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작가가 돌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혹시나 하고 다시 보니, 내가 읽은 것이 1권이 아니라 3권이었고 손에 쥔 것이 2권이었다. 이왕지사 하고 계속 거꾸로 읽었는데, 특이한 독서체험이고, 그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890309

비평가의 가장 큰 고민은 읽어야 할 책은 너무나 많고 거기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급해지거나 게을러진다. 둘 다 좋지 않은 태도이다.

890312

김치수의 지적 :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보수주의가 자리잡고 있는데도 진보주의자인 척할 때는, 사소한 것에 과격해지고 본질적인 것에는 무관심해진다.

890520

안도현의 모닥불은 재미없다. 체험의 폭도 좁고(평교사의 지루한 체험), 사유의 깊이도 없다. 아니 없어 보인다.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의식이 무의식을 완전히 억압하고 있다. 서태석의 ‘옥산 아줌마’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서른여덟, 아홉 고생한 사람쯤 봤는데

마흔 여덟의 펑퍼짐.

890524

모음이 많은 이탈리아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받침이 많아 노래가 발달하지 못했어요.

김원우의 ‘아득한 나날’. 기자의 해직- 고생 - 복직의 과정이 지루하리만큼 자세히 묘사. 해직되면 무조건 민주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이 소설은 견디기 힘든 폭력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이것이 더 구체적인 삶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인공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잠복기가 긴 속병같은 것으로 치부하는데 바로 거기에서 그러한 속병앓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나보다. 나도 소시민이기때문인가. 하기야 자기는 결단코 소시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소시민들이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지금 나는 살고 있는지.

890723

김치수가 등산 중 : 노점상 단속은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동결하는 한 방법이다. 노점상의 한 달 벌이는 노동자의 임금을 훨씬 웃돌기 때문에 노동을 해야 할 인력의 상당수가 노점상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니 단속을 안 할 수 없다. 그 말은 푸코의 말을 상기시킨다. 광인 감호는 노동 인력 확보의 한 수단이었다. 노점상 단속은 노동자, 농민들에게 유동 인력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덥고 짜증나는 날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은 더우니까 산에 오는 사람들이 훨씬 준 것 같다. 어디에나 명암은 있다.

노점상 단속으로 분신자살하던 여름에 쓴 글이다.

891106

고은은 계속 열심히 쓰고 있다. 그러나 작품들이 다 고르지는 않다. 새로 연재하는 ‘거리의 노래’는 대부분 좋지 않다. 너무 상투적이고 너무 무반성적이다. 많이 쓰면 그러나 재미있는 구절은 한둘 있게 마련이다. ‘상계동 가는 길’의 “전위, 그것은 항상 변두리에 있다.”는 재미있다. 떠돌이들만이 그 말의 진짜 뜻을 안다.

891212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배 세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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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김현 님이 블로그를 운영하신다면...
고런 상상을 했더랬는데...^^

글샘 2010-05-12 11:40   좋아요 0 | URL
그쵸. 최고의 블로거... 멋질텐데요...

비로그인 2010-05-12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전체에 대한 통찰>과 함께 책이 해지도록 읽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술 때문에 상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친구인 김치수 선생과 산에 다닌 얘기며,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뒤의 권부터 읽고는 죽었던 인물이 살아나자 "이 작가가 미쳤나?" 했다는 에피소드 등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네요. 그가 팔봉문학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했다는 말 중 "따뜻한 상징"이란 표현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요. 저도 글샘님과 동감입니다. 아마 시대를 달리해서 살았다면 이 나라 최고의 블로거가 되었을 겁니다^^

글샘 2010-05-12 11:40   좋아요 0 | URL
결국 술때문에 가신 거죠. ㅠㅜ
조정래가 아니고, 박경리의 '토지'였습니다. 3권 읽고 2권 읽었다는... ^^
20년 전에 이미 블로그질을 하신 고 김현 선생께 한 잔 바칩니다.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술'이 있고, '-법'이 있고, 그걸 넘어서서 '-도'가 있다고 하던가...
검술은 칼을 놀리는 재주가 뛰어남이고,
검법은 검술이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추었음이라면,
검도의 경지는 재주를 넘어선 마음의 수양에까지 이를 수 있음이리라. 

독서를 '-술'에 매어 두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한다.
책을 많이 읽는 일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다.
내가 요즘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수능 비문학 교재'다.
고3을 지도하면서, 문학이야 문학 작품과 분석을 다루어주면 그만이지만, 비문학의 경우 '내용'을 다룰 필요보다는 '독서법'을 가르치고 '문제해결법'을 연구하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식을 사는 사람이라면 그 분야의 책을 골라 다독할 것이고,
패션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다독을 할 것이다. 

요즘 미친넘이 씨불러댄 ebs 괴담 덕에 어떤 회사 하나는 돈 졸라 벌리라마는, 아이들만 불필요한 좋지도 않은 책 다독하게 생겼다. 

원래 고3들이 필요로 하는 책은 10주 완성과 파이널 정도였다. 고득점자들이면 N제 또는 마지막 모의고사집까지 풀었고.
시답잖기 그지없는 책들을 갑자기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그녀석도 징그럽고 휘둘리는 교육계도 한심하다. 

창조적 책읽기, 란 제목을 보고 제법 괜찮은 책일까... 기대가 컸는데, 읽고난 소감은, 실망이 크다. 

마르셀 뒤샹의 '그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보이지만, 무엇을 듣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그 사람이 무엇을 읽는지는 보이지만, 어떻게 읽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조독' 등의 많은 말을 만들어 낸다.
그렇지만, 그 의미를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예를 들면 '파란여우'님처럼 리뷰를 쓰시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조독'이다. 여러 권의 책을 조합해서 읽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트를 하고 조합하여 글을 쓰면 멋진 글이 완성된다.  

천일야화 千一夜話 처럼 천야천책 千夜千冊 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고...
그의 독서 편력이 멋지지만, 뭐 나도 천 권 이상을 읽고 끄적거린 경험이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정보 처리 능력이 대단하다는 데는 동감을 금할 수 없지만... 

책을 읽는 데는 risk, respect, recommendation 이 세가지가 있어야 한단다.
위험과 존경과 추천. 위험은 줄이고, 존경할 만한 책을 추천받는 곳. 알라딘이 그런 역할을 충실하게 한다면 좋겠는데...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산 사쯔야'는 상당히 괜찮은 상술인 것 같다. 일본처럼 독서가 널리 펼쳐진 나라라면 성공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도 '느낌표 도서'처럼 방송을 타거나 한다면 꽤 괜찮은 방법이 될지도...
하기야, 그러면 공지영이나 황석영, 이외수같은 부자들의 지갑만 더 두껍게 될지도... 

세 권의 책을 묶어서 판매하는 산 사쯔야. 텍스트간의 유사성을 서점에서 묶어서 제시하는 방식은 위험도 있지만 꽤나 발전성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한국처럼 서점 다 죽는 나라에서 그건 불가능한 공염불에 불과하리라... 

고전은 리버럴 아트(231)였지만, 현대엔 절대적 위기에 처해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슬프다. 인류가 별 것 아닌 존재이기도 하지만 '교양'의 무게가 사라지는, 경험의 소중함이 휘발되어버리는 천박한 삶의 연속이란... 서글픈 마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소중함을 누적시키는 경험보다는 순간의 재기발랄한 표현들만 가치있어보이는 '감출 수 없는 삶의 가벼움'이란... 

주말은 쉬고, 평일에 매일 밤 한 권씩 독서 감상문을 올린다.
같은 저자의 책은 한 권 이상 다루지 않는다. 
같은 출판사나 같은 장르도 연거푸 다루지 않는다....
이제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쓰지 않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할 정도가 되었지요.
매일 밤 책의 지식을 빨아먹는 드라큘라같은 삶이 정착되었다고나 할까요....
질릴 여유가 없어요.  

습관이 되었다는 그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쓰지 않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할 정도라는 그의 말도 이해가 간다.
새로운 책을 매일 읽으면서 독서에 질릴 여유가 없다는 그와 공감하면서 나는 오늘도 읽고 자판을 두드린다. ^^ 

공감은 하지만, 그닥 책읽기에 대한 굵직한 생각을 기대한 독자에게 뾰족하게 주는 것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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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끝을 접어거나...(155) 접거나로 바꿔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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