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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든, 머물든 -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특별한 은퇴 이야기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나는 걷는다'로 유명해진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가벼운 수필집.
이 책이 던져주는 이야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60은 은퇴할 나이긴 하지만, 결코 늙지 않은 나이라는 것.
또 하나는, 그 나이에도 뭔가 치열하게 할 일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사람의 신체 연령은 120살 정도까지 살 수 있다고 하는데, 현재로도 영안실에서 만나는 초상집들이 80을 훌쩍 넘기는 걸로 보아, 나 정도의 세대는 평균 100살 까지는 살게 될 것도 같다.
아, 문제는 오래 사는 데 있지 않다.
정말 문제는 늙어서 볼품없는 외모와, 근력없는 육신과, 형편없는 재정으로 은퇴후 40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수 만세가 아니라 '장수 폐인'을 양산하는 미래 사회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베르나르는 유럽에서 시작해서 비단길을 걸었고,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삶의 비의를 깨닫게 되고, 그 길을 걷는 프로젝트를 만든다.
혼자서 사는 것이 삶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것이 삶이고,
그 함께가 젊은이와 함께임에 더 의미가 있고,
그 젊은이가 완전 골때리는 상황에 놓인 문제아라면, '문턱'을 넘어 걷는 일이 의미있을 거라는 그의 생각이 신선하다.
사회의 '문턱'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손길... 의미있는 일이고, 은퇴 후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낡은 방식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게 분명하다면, 다른 방식을 실험한다고 무슨 위험이 있겠는가?"(168)
그래, 이런 것이 용기다.
나도 나의 은퇴 후를 생각해 본다. 일이 있어야 하겠다는 데는 공감이 가지만, 선뜻 어떤 일을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올리비에처럼 은퇴 후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게 될는지도 보장할 수 없는 노릇이고.
"세상에 흔적을 남기기 바란다면, 그 세상과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시몬느 드 보봐르)
이런 말을 인용하면서 올리비에는 <인생은 60에 시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더 적은 돈을 가지고 더 잘 사는 방법으로 해결"해야하는 것이 은퇴 후의 삶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여행을 떠날 때는 뒤돌아보면 안된다"(95)고 말하면서 넉 달 코스의 길을 떠난다.
"영웅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하지 않는다."(158)
"고정관념에 맞서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은 마치 시시포스의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일과 같다. 정상에 도착하자 마자 바위는 다시 떨어진다."(182)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영웅의 앞에는, 언제나 고정관념으로 무장한 관료들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 고정관념에 맞서는 시시포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일을 하겠다는 신념>과 <용기>다.
그 신념과 용기를 가진 것이 혼자라면 외롭겠지만, <연대>를 통하여 고정관념에 맞선다면 바위를 치는 계란의 허무함은 아닐 것이다.
삶이란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좋은 소식이 계속 이어지는 것...(191)
이런 마음으로 은퇴 후를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치열한 삶을 산 사람이다.
살다와 사람과 삶은 같은 어근의 다른 활용형에 불과하다.
'사람'이란 존재가 날마다 '사는' 행위가 쌓이고 쌓여 결과물로서의 '삶'이 완성되는 법.
"혼자 헤쳐나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른도 그런데 하물며 청소년은 어떻겠는가?"(217)
이런 생각을 하는 노년.
"노년이란, 노년을 제외한 모든 것과 비슷하다. 잘 늙으려면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214)
"계획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어버린 것"(199)
은퇴 후, 그 치열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삶을 읽으면서, 삶을 다시 생각한다.
걷는 일처럼 자신과 만나기 좋은 일은 없다.
은퇴 후도 여느 삶과 마찬가지로 계획이 필요하고, 그 계획의 실천은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처럼 청소년들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걷기 좋은 길이 <문턱>에서부터 좌절하는 청소년들과 먼 길을 걷는 일 아닐까?
올리비에는 '나는 걷는다'의 수익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지만, 나는 로또라도 사야하는 걸까? 아니면 '나도 걷는다'를 써야하는 걸까? 시급한 건 자금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의 구상이 문제가 아닐까?
한국처럼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나라에서 <문턱>을 넘도록 도와주는 단체가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일 일인데...
고정관념을 가진 자들과 맞설 일에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고정관념부터 깨울 일이 우선이다.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지침이 되어 주는 활기찬 책이다.
다만, 나처럼 소파홀릭이면서 먼길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만 바라 보는 사람들에겐, 당의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읽어야 한다. 잠시만 달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