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마음을 열어주는 위대한 우화
정용선 지음 / 간장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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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를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장 널리 읽는 건, 장자라는 텍스트가 재미있는 함축적 이야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야기로 읽는 법이다.

이야기를 풀이해 놓고는,

그 이야기를 하게 된 배경과 상황을 풀이해 주면서 인생의 교훈을 주는 식의 책이 많다.

 

그 다음은, 한문 구절을 풀이해 가면서 주해를 다는 식인데,

한문 문장이 일단은 길어서 집중이 쉽지 않고, 쉽게 접하지 않는 한자들도 많아 어려운 편이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 교훈을 중심으로 읽기 어렵다.

 

이 책은 두 가지 특장을 모두 살리려 한 책이다.

 

우선 이야기들의 틀을 작은 제목을 붙여 나눈 뒤,

한문 원문을 붙여 둔다.

그리고 한문 원문의 풀이를 따로 제시하지 않았으면서,

각 글의 내용을 충실하게 풍족하도록 이야기를 풀어 낸다.

그리고 원문에서 전개하는 내용은 '바다색' 글자로 두드러지게 돋보이게 한 점이 멋지다.

 

장자는 마음의 쑥구렁을 인정하는 책이다.

마음의 쑥구렁을 싸~악 치우고 단정하게 살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네 마음에 쑥구렁이 가득하여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임을 알라...

너라는 존재는 원래 모든 가능성의 잠재태인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교훈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유교 중심 국가에서 오랜 세월 살던 역사를 고려할 때,

장자에 담긴 이야기들이 자칫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된 일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장자는 이런 이야기다.

 

장자를 읽고 무언가 정신적으로 거듭났는가?

답답하게 현실에 매여 기어다니던 마음이 날듯이 자유로워졌는가?

스스로 번데기의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었는가?

혹은 무언가를 깨달았는가?

아니면 잠시 알 듯도 하다가 모르는 상태로 되돌아 오는 단계인가?

어떤 경우라 해도 무언가를 아는 '나'는 모두 꿈에 지나지 않는다.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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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치명적 농담 -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別記
한형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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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the ultimate concern... 궁극적 관심을 가지고...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금강경을 읽고 구절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을 '소'라고 한다.

금강경 소는 '허접한 꽃들의 축제'라고 해서 쌍둥이 책으로 나와있다.

난 '소'가 먼저인 줄 알고, '별기'를 먼저 읽었더니,

별기가 먼저 쓰여진 책이다. 허허, 이 사람, 나랑 생각이 비슷한 사람일세~ ㅎㅎ

 

구절구절 설명을 상세히 하고, 금강경에 대한 전체적 설명을 하는 게 순서겠지만,

난 전체적 해설을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해서 그 별기를 먼저 보게 된 거였다.

 

그것이 별도로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이 또 좋은 점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함께 가는 것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더 친근하고 편리할지 모르겠다.

 

내가 읽은 금강경 중, 가장 읽기 편했던 책이,

<선으로 읽는 금강경>이었다.

그 다음이 무비 스님의 <금강경 강의>였고...

이현주 의 금강경과 한형조의 금강경은 비슷한 정도랄까?

이현주와 한형조의 공통점이라면,

금강경을 불교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인문학적 입장에서,

기본 개념과 사상적 기초를 다양한 논리들과 엮어서 읽기 쉽게 풀이하려한 점은 돋보인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금강경이란 기본서를 여러번 접하지 않은 이에게라면,

'소'가 먼저여야 하고, 나처럼 몇 번 읽어본 사람이라도,

소의경전...이 아닌 바에야... 거기 마음을 전적으로 기대고 인생을 사는 삶이 아니라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므로,

같이 엮어 줬더라면 더 좋았겠다... 이런 생각을 계속 하면서 읽었다.

 

물론, 별기로 적어야 할 만큼 총체적 접근이 필요한 부분들도 있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어떻게 녹이느냐에 따라 '소'의 '별기'로 붙였어도 좋았을 거란 생각.

 

암튼, 한형조 선생의 발랄한 목소리로 듣는 금강경 강의는

유홍준을 따라서 걸음을 옮기며 문화유산을 듣고 보는 답사처럼,

마음도 가볍게 배움의 길을 따를 수 있는 길이었다.

 

별기를 읽고 나니, 본문 풀이인 '소'가 또한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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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6
푸페이룽 지음, 심의용 옮김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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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를 읽어주는 사람은 많지만,

보통 장자에 실린 이야기를 한편 들려주고,

그 이야기의 함의를 읽어주는 식이 많다.

그러다보면,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잃게 되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장자라는 텍스트를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강의 텍스트일 수 있다.

단점이라면, 세세한 이야기의 함의를 읽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다른 책과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되겠다.

 

논어에 문질빈빈이란 말이 있다.

 

질박함이 꾸밈을 이기면 조야하고, 質勝文卽野

꾸밈이 질박함을 이기면 겉만 번지르르하다. 文勝質卽史

꾸밈과 질박함이 고르게 조화를 이룬 뒤라야 군자라 할 수 있다. 文質彬彬 然後 君子(논어, 옹야편)

 

진리란 것은 진실하 면모 전체를 바라보기도 어렵고,

언어로 적절하게 묘사해 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이야기라는 방식을 통하여 진리를 드러내 보여주려 한다.

 

장자는 굳이 꾸미는 쪽보다는 질박한 쪽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 그쪽을 굳이 강조하는 것은 세상이 상대편으로 지나치게 쏠려있음을 의식한 질박함이어서,

조화를 이루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볼 수도 있다.

 

공자와 노자의 이상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대업'이었지만,

장자의 이상은 <사람의 생명의 안녕을 추구하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어던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속에서 자유자재할 수 있는 <소요유>할 수 있는 능력을 내세우는 것.

 

장자를 푸페이룽 선생은 <우주 비행사>에 비유한다.

정말 높은 곳에서 구만리 장공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존재, 곤과 붕의 상상과 초록별에 대한 조감은,

정말 우주 비행사의 시점 정도나 되어야 할 법 하다.

 

인간은 매일 살아가는 순간의 파도에 감성이 휩쓸리기 쉽다.

그러나, 세상은 바다와 같은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환공의 독서 비유를 통하여 '지혜'를 생각해 보게 한다.

책에 들어있는 지식은 모두 죽은 것이며, 의발을 전해줄 수 없는 것 뿐이다.

자기가 직접 체험하여 얻어낼 수 있는 것만이, 제대로 된 지혜인 바,

得手應心(득수응심) 하려면, 통찰력이 뛰어나야 한다.

세상을 전체로 응시하고, 미묘한 변화도 관찰하는 통찰력을 가지려면, <시의적절함>과 <타이밍>이 필요한데,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적절하게 응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볼 만 하다.

 

거기서 여유로운 낙관이 나오고, 사랑이 너그럽게 나온다는 이야기는 읽어도 흐뭇하다.

비범한 잠재력으로 가득한 책, 장자.

어떤 가능성도 열려있으며,

상상 밖의 거리감이 아름다움으로 화하는 책.

장자를 읽는 법과 장자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의 의미를 굳이 이야기 디테일에 얽매이지 않고 풀어주는 교양 강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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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4-1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책은 장자도 아니다라는 논지의 평을 읽고 리뷰 작성에 대한 의지를 꺾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입니다. 교양으로 읽기에 충분한 책이죠.

글샘 2012-04-13 14:22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장자가 아니죠. ^^ 장자 강의니깐요. 장자를 읽기 위해 한번쯤 읽어볼 법한 책이지, 장자는 아니죠. ㅎㅎㅎ

saint236 2012-04-14 14:18   좋아요 0 | URL
헉.....
 
근사록 - 덕성에 기반한 공동체, 그 유교적 구상
한형조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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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의 인기 학문이라고 하면 양주와 묵적이었다고 한다.

 

양주와 묵적의 말이 천하에 가득해서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맹자)

 

양주는 '제 한 몸 건사함도 어렵다'는 쪽이고,

묵적은 '제 한 몸 희생함을 두려워 않는 겸애의 세상을 만들자'는 쪽이다.

둘다 주장은 다르지만 멋지다.

그걸 맹자는 봐주지 못하고 눈꼴이 시었던 모양이다.

 

시대가 다시 혼란스러워지자 '주자학'이 유교적 질서를 새로이 편성한다.

유교 시대의 사서 삼경 교과서를 새로이 관찰하려는 시도의 하나가 '주자학 텍스트'인 '근사록'이다.

 

논어의 자장편에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이란 구절이 나온다.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간절히 묻고 뜻을 가까이서 생각하면 인은 그 가운데 있다.

'뜻을 가까이서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대학의 '격물치지'의 '격물'에서 말한 '사물을 궁구하여~'와 비슷한 의도겠다.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통하여 진리에 다가가는 일.

 

 

그것을 가장 체계적으로 다가가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역사적 저작이 있다.

바로 '주역'이다.

 

무위의 자연세계 혹은 마음의 내면세계로의 퇴행을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 유위의 인간세계로의 진취를 요구하는 애매성은 자연도덕주의의 불가피한 운명이다.(217)

 

자연 세계의 원리를 '태극'이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음과 양'이 순환하는 것이 태극이라는 입장과,

'양이 있어 음이 있다'는 입장은 또한 상대적인 바,

이 책을 읽으면서, <음과 양>처럼 '유교'와 '도교', '유교'와 '불교'가 선 자리는

양면성을 띤 <상반성>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유사한 개념을 어떻게 끌어다 쓰느냐의 <상대적> 위치에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을 했다는데,

이 언표에서 가장 포인트는 <죽어도>라고 생각한다.

죽어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연인이라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그 사랑에 대한 <영원 불멸>이 자리잡은 것이다.

곧, 그 '도'는 <절대적, 필연적> 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처럼 <상대적> 위치에서, 그 도는 <우발적> 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공자와 성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언술 자체가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죽어도 좋을 만큼 사랑한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정말 사랑이 목숨을 걸 만큼 가치로운 것일까?'하는 입장을 버리고 뛰어들어 들어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한형조는 서문에서 

 

손쉬운 동조는 위험하고, 쉬운 설득은 무력하다.

 

혹, 그동안 유학을, 너무 이너 서클에서 '당연하게' 설교하지 않았을까.

"한국의 전통이고, 거기 좋은 말씀만 가득하구나"의 안의함 같은 것.

무릇 이방의 사유는 이방의 것으로, '불가해하다'고 적어주는 곳, 거기가 소통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반대편의 경계도 잊지 않아야겠다. '낯설다'는 것이 혹 진리의 징후일 수도 있다.(7)

 

이렇게 읽기에 낯설어하거나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위험성을 짚어 주고 있다.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수험서, 개설서로 기능하였을 근사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역'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자연도덕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주역에 기대고 있는 사상인데,

때로는 읽으면서, 견강부회, 자기 합리화, 아전인수의 방식을 끌어들이기 가장 좋은 책이 주역이란 생각도 든다.

무한한 상상의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이 주역이라면,

그 상상의 바닷속에서 자기에게 도움되는 것만을 끌어들이는, 아전인수 역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중서는 위기지학을 '義'로, 위인지학을 '利'로 나누려 하지만,

그것을 상주고 벌주는 판단 주체 역시 부족한 인간 아닌가. 역시 견강부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어디에 포인트를 주어 써먹을 것인가, 그 철학의 입장이 중요한 것이지,

그 이론의 완성도는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자면,

조선의 성리학은 <왕권 강화>를 위한 유교적 질서를 <웅변>하고자 하였던 학문이었다.

그러나... 그 웅변의 시도는 '궤변' 취급을 받았다.

태조를 이은 태종도 '종법' 질서를 무시한 3남이었고, 세종 역시 형들을 제치고 승진한 케이스의 '3남' 이었다.

그렇지만 또, 성리학적 질서를 위하여 <문자 창조>까지도 불사하였던 세종과,

그 문자를 통한 '소학, 3강행실도' 등의 폭탄 투하는

<근사록>의 연구가 중국, 일본을 뛰어넘는 유일한 국가로 조선을 자리잡게 하기도 했다.

 

이이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가 <근사록>을 중시하였다면,

이황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는 <심경>을 중시하였다고 한다.

같은 출판사에서 심경도 연구한 자료가 있으니 읽어볼 법 하겠다.

 

이창일이 쓴 부분에서 매슬로와 비교한 부분은 재미있다.

기존의 병리학적 심리학 모델을 긍정적 인간발달론으로 긍정적 관점으로 바꾼 그는

자아 실현한 인간의 특성을 재치와 유머로 드는데,

근사록에서는 '근엄과 교훈'이 가득하다는 것.

왜 밥상머리 교육에서 그토록 근엄과 교훈이 가득했는지 생각하게 한다.

 

<근사록>이 지향하는 인간의 모습은 '극히 제한된 시기의 인간에 대한 증언'으로 읽어야 한다.

그것이 진리가 아님은 물론이지만,

그 시기의 인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배울 점이 많은 것이다.

 

특히, 조선 왕조가 500년을 넘게 연명하였고,

그 사상적 바탕이었던 성리학적 질서는 왕권강화의 다른 짝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리고 <한국은행 총재> 역시 아직도 <한국>의 사상적 바탕에는 이황과 이이가 중심이라고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왕조시대, 왕조를 떠받치고 있던 사상적 기초자를 지폐에 떡하니 집어넣은 행태를 보면,

성리학에 대한 연구는 차치해 버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넓혀나가서, 성리학의 현대적 한계와 의의를 밝히는 일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 기반이 될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주자학의 현재적 의미를 발굴>하려는 시도로서 이 책의 가치는 크다.

이창일 역시 '선험적 질서가 가져온 선험적 폭력에 대해서는 괄호 속에 넣고자 한다'고 명백히 밝힘으로써,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피상적 비판이 이 책의 주 논점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주역을 통한 자연론적 토대는 '가깝고 친근한 것에서 하늘과 땅의 의지가 관철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강변한 근사록,

그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정당화 될 수 없는 필연성에 기초>했다는 약점을 짚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리학에서 삶의 길을 바라보는 일도 필요하다.

 

완미 玩味, 에서처럼,

가지고 놀고 맛보는(완미) 감각적 경험처럼,

내적 자각에 이르는 즐거운 길, 도에 이르는 양식으로서 앎의 표준과 행동의 준칙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공부하지 않으면 늙고 쇠약해진다...는 선현의 가르침은 얼마나 지당하고 아름다운가 말이다.

 

함양 涵養, 에서처럼,

물에 젖고, 빠지고, 적시고, 담그는 행동을 통해서 주객의 일체를 경험하고, 사건과 환경이 일치되는 삶을 누리는 일은

또한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세상과 인간이 이토록 단절되어 있고,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완미, 함양같은 가치를 가슴에 품고 있다면,

          서로 물들고 번져서 소통의 세상을 꿈꾸는 일도

          다만 꿈으로만 치부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성리학적 질서를 설명하려는 <근사록>을 새로이 읽는 일,

역시 함양와 완미의 재미를 얻는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이 책의 다른 짝 <심경> 역시 언젠가 읽을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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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3-3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록의 리뷰도 근사한걸요~^^
전 심경을 읽고 퇴계 어르신이 쫌 좋아졌다는...
그 전에는 활인심방만 죽도록 외웠었다는...

글샘 2012-03-31 15:0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의 눈물젖은 김밥에 비하면... ^^
절문이근사.. 참 좋은 말이네요.
심경, 도 읽어 봐야겠어요.
 
동양을 만든 13권의 고전 -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진짜 앎을 얻다
쑤치시.웡치빈 외 지음, 김원중.황희경 외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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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연히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을 읽게되면서였던지,

동서양 고전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막상 매번 손에 잡히는 것들은 흔히 읽어오던 것들의 다른 버전이곤 했다.

노자와 장자, 논어나 성경, 금강경 등속과 관련된 책들은 흔히 만나게 되었지만,

내가 잘 다니는 길목에서 늘상 만나던 것들과 달리

우연히도 마주쳐지지 않던 것들은 또 인연이 닿지 않곤 했다.

그래도 작년에 신곡, 일리아스, 그리스비극 등을 읽는 기회를 얻은 것도 소득이다.

 

올해, 강신주의 중국 철학 시리즈 1,2권을 읽다가,

아트 앤 스터디 사이트의 강신주 강의도 내친 김에 하나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강신주와 김용규의 '시 읽기'도 함께 읽었고,

듣던 바가 하나하나 늘면서, 서가에 오래 꽂혀서 위용을 자랑하기만 하던 이 책도 펼쳐보게 되었는데,

아, 뜻밖에 반가운 이름들과 단어들이 눈에 확 꽂히는 것이다.

역시 관심을 가지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전과 같지 않게 된다는 말이 진리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하나만 들자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한 것이어서, 각 자료에 대한 무한한 칭송에 머무르지 않고,

의의와 한계를 상당히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공자> 편의 <논어>를 '철학을 잃고 아름다움을 버리다'란 제목으로 핵심을 찔렀는데,

여느 논어 해설이 담고 있는 '논어의 함의의 훌륭함', '공자 사상의 정치함', '공자 사상의 파워' 등을 강조하기보다는,

전면적 '비판'이 함축되어 담겨있는 점이 마음에 쏙 든다.

공자의 정치 사상은 '주례'를 본받아, 사회 전반에 가족 모델의 종법 등급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고,

그것은 나눌 분 分, 다를 별 別 의 의미를 강조하여 다양성을 숙청하고

개성과 정신적 자유를 억압하는 족쇄로 작용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논어부터 멋들어지게 해체시키는 이 책에서,

당대 양대 산맥이라 일컬어지는 '현학'인 <묵자>를 다음에 내세운 건 당연한 노릇이다.

사적 이익을 희생한 후에 얻는 일체의 이익으로 <교상리>를 상정하고, 천인적 현인을 드높이자는 것이다.

묵자의 사상을 논어 다음에 들이미는 이 책은, 그야말로 제대로 <고전>을 평가할 줄 아는 안목을 가진 이들의 저작임을 실감하게 했다.

 

그 다음은 <장자>인데,

세상에 쓰이지 않는 법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한다.

결함 많은 보물창고란 표현도 좋고, 장자는 나도 좋아하던 책이어서 즐겁게 읽었고,

그 뒤를 <주역>이 잇는다.

원시적 사유에서 철학적 사유로... 이행하려는 끝없는 노력이 담긴 주역의 심층 구조를 분석하기엔 글이 짧지만,

주역은 다양한 해석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책이다.

나는 인간관계가 복잡할 때, 주역의 괘상을 찾아 읽곤 하는데, 그 상징성은 충분히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다.

그런데, 주역이란 책이 담은 자연의 사유를 인간은 <인위적>으로 아전인수, 견강부회하게 마련인 바,

유가는 종법 질서의 규범을 세우기 위하여, 주역의 본질적 모습에 관심이 없고 필요에 맞도록 비틀었다고 한다.

공자가 죽간의 가죽띠가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도 유명하지만,

도개체 공자가 왜 주역에 그렇게 침잠하였던가를 생각하면, 그 사람, 참 집요했던 것 같다.

 

주역의 一陰一陽之謂道...를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을 진리라고 부른다'로 해석한다면 세상의 상대성, 순환성에 주목하게 되지만, 유교처럼 '음양의 구분'에 초점을 맞추면, 분별의 차등성의 기준이 되어버리는 것이 철학의 관점인 것이다.

 

<한비자>에서 개인 의지를 배척한 절대 국가주의의 권위론을 이야기한다.

군주와 국가의 이익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가치없음을 강조하는 저작은, 현대의 <국익> 개념과 유사할지...

암튼 법가로 이해하고 있는 이런 것들은 재미도 흥미도 없었는데,

 

<왕충>을 만나면서 눈이 번쩍, 귀가 쫑긋, 말초 신경이 확~ 쏠렸다.

질허망 疾虛妄... 공허하고 거짓된 지식에 대한 질타를 하게 되는데,

당시의 질서의 원리를 수립한 동중서의 생이지지... 나면서 알았다는 허상을 비판하고,

실제적 철학, 유비추리의 아날로지를 통하여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신선하다.

철학은 답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닐진대,

철학자들의 저작은 늘 한쪽으로 의견을 몰아댄다.

왕충의 '우연성'이 아름다운 이유가 그런 것이다. 뻔히 누구나 진리라고 아는 것들에 대한 메롱 날리기.

어쩌면 내가 서 있는 지점이 늘 이런 곳이어서 더 즐거운 독서였을지도 모른다.

 

사마천의 사기도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횡적 연구(究天人之際), 인간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종적 고찰(通古今之變), 종횡교차되어 연결됨으로써 문화적 사상체계 구성(成一家之言)한다고 정리하는 것이 깔끔하다.

 

<손자병법>을 탐색하면서 전쟁을 '고립적 행위가 아니라 일련의 행위 과정'으로 파악한다. 유가의 인자무적, 묵가의 비공, 수도, 법가의 법으로 지휘하는 상징적 언술에 비하면, 손자의 전쟁은 <군사 전문가>의 그것인 셈이다.

 

그 외에도 <육조단경>의 가치를 헤아리는 부분도 있다.

중국에 들어온 가장 대표적 외래 사상인 불교가 대승불교가 되면서

개인의 심리적 해방을 추구하던 사상이, 어떻게 국가의 종법 질서에 편승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혜안이 환하다.

 

<주자어류>를 인간에 대한 가혹한 선언...이라고 비판하는데, 아직도 이이, 이황을 위인으로 상정하여 지폐에 넣고 다니는 국민으로서 심히 부끄러웠다.

서양의 칸트가 이전의 타율적 윤리학을 자율적 윤리학으로 바꾸던 시대에,

동양의 주자는 공자의 자율적 윤리학을 타율적 윤리학으로 바꾸어 오래도록 정치철학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는 놀랍다.

모든 것이 <하나>에서 태어난다는, 나중에 나올 <이지>의 비판의 초점이 바로 주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추상적으로 윤리화된 이성은

주희 이학 체계에서 일종의 문화적 윤활유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곳곳에 충만하고,

원활하게 삼투하여 그가 세운 체계는 변하지 않는 관성의 가치체계를 이루었다.

이러한 시각에서 주희의 사상을 살피면 유학의 심각한 모순과 위기를 꿰뚤어 볼 수 있다.(596)

 

이런 비판을 한국 학자에게서 읽을 수 있을까?

아직도 한국의 <한국사> 책에서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는 조선의 철학, 성리학을 비판하는 일을 말이다.

 

<몽계필담>이란 책에서는 자연관, 수학, 물리학, 화학, 천문학과 역법, 기상지리지질학, 생물의약학, 공예, 야금, 건축, 농전수리공정 등의 자연과학 분야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었다고 한다. 나침반을 발명한 것이 중국인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유럽 중심의 과학관에 맞서기 위해 넣은 꼭지 같다.

 

<명이대방록>은 중국 초기의 계몽사상이라고 한다.

明夷괘는 위에 땅이, 아래가 불이 놓인 지화명이괘에서 나온 말로,

'도가 없이 무너진 세상'을 뜻한다고 한다.

천하의 가장 큰일은 야만인들이 도적이 되어 들어와 세금 징수하느라 쉴 틈이 없고 부세의 원칙도 없다...는 비판은 청에 대한 것이고,

명 왕조가 망해가던 시절 집필된 책으로 명왕조에 대한 회복의 희망은 잃었지만, 신념을 상실하지 않았음을 강조한 책이다.

'날 때부터 인간의 자신의 개성과 이익이 있다'는 개방적 이야기는 명말 이지 등의 신념과도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쑨중산> 손문의 이야기.

나의 혁명에 복종한다면 당연히 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쑨원의 건강하지 못한 생각도 비판하지만,

그의 사유가 철저하지 못했지만 역사의 진보를 따라가는 사상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여 유의미한 부분은 인정한다.

그것은 마우쩌둥이 인정한 마지막 고전...이란 제목에서처럼, 현재 상당한 무게가 실려있단 말일 수도 있다.

 

뒷부분으로 가면서 공산주의 국가가 내세우는 관점이 드러나있기도 하지만,

오히려 각 고전의 가치를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그들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이렇게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 고전들의 '주요 개념'은

복잡하게 붐비는 속에서도 다른 점들이 대조적으로 드러날 수 있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고전의 바다는 넓고도 깊다.

매일 새로운 책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그 바다는 더 넓어지고 깊어져 갈 것이다.

그렇지만, 그 바닷가에서 서성이다 보면,

우연히 알곡들로 붐비는 진수성찬을 만나는 날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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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2-03-0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 싶군요. 강신주님 책 읽다보니 요즘은 동양고전에 눈이 가네요..^^
불과 얼마전에 카프카 좋다고 그랬는데( ")
안 그래도 제자백가의 귀환 보면서 열국지 펼쳐들고 있는 요즘입니다. 다시보니 새삼 달라요... 역시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어떤 생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틀려지니 신기할 뿐입니다. 아직까지는 세세하게, 비판적으로 읽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저도 저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읽을 수 있는 때가 오겠죠?^^

글샘 2012-03-09 10:37   좋아요 0 | URL
그렇죠? 강신주 책 읽다보니 눈이 좀 넓어진 거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