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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좌파 : 세 번째 이야기
김규항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김규항을 읽으면, 돌아보지 않아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상처들이 쿡쿡 찌른다.
그렇지만 그 상처는 내 몸에 있었던 것인데, 나는 나의 상처라고 여기지도 않았던 것들이다.
내가 무심하게 욕하고, 두고두고 열받던 것들을 그는 국외자의 입장에서 짓쳐들어오는 것 같다.
그가 다 옳지는 않다.
그가 욕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나름대로 사람사는 곳이기 때문인데,
옳은 것을 옳다고 끝까지 밀고 나가기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지옥화되었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지면의 글을 짜깁기한 이런 책을 싫어하는 나의 성벽에도 불구하고, 김규항의 책은 어쩔 수 없이 미뤘다가 사서 보게 된다.
때 지난 시론을 몇 년 뒤에 읽는 것도 못마땅하고, 여기저기 언론 귀퉁이들에 쓰였던 글들을 모아둔 책은 읽기 낯간지런 부분이 많은데, 김규항의 책을 읽는 일은, 무릇 선지식을 얻는 일이기도 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기도 하는 일이어서 마지못해 읽게되는 편이다.
김규항의 논리는 참 쉽다.
계급의 원칙에 따라 살면 된다는 것인데, 그 계급에 대한 인식을 몰개념화하는 것이 이 나라의 교육이었던지,
아니면 독재 시대의 삶의 원칙이었는지, 계급에 따라 생각하지 말고,
국익을 보고 생각하라는(그의 가진 자의 이익이 국익이란 말은 전적으로 옳지만) 통념이 먹힌다.
진짜 아는 것은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하는 것(93)이란 아이들과의 대화에 나는 요즘 공감하고 있다.
자기 생각이란 '실천'하며 사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의 교육에 대한 관점들이 그렇다.
보수적인 부모는 경쟁으로 아이들 내몰고, 진보적인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그렇게 한다고...
일류대 학생이 되기를 바라지만, 진보적인 부모는 거기다 진보적인 일류대 학생을 바란다고...
김대중, 노무현 시대 이전에 이미 신자유주의 물길을 트기 시작했는데, 그저 절차적 민주주의만 보고 그 시대를 평가한 것이 한국의 잘못임을 지적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에서 민주노동당까지 비판하는 '옳은 소리'는 과연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먹혀들는지...
정치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에 대한 몰염치한 닥달은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물결의 최고봉이 되고 있다.
연대의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있지만, 전교조 같은 집단에서도 쉽사리 꺼낼 수 없는 것이 중고교의 대입문제다.
초딩까지도 온갖 학원에 내몰리고 있지만, 정작 심한 것은 중고교의 파행적 교육이다.
독서 교육조차도 '스펙'을 위한 것으로 상품화되고 있는 현실, 386은 그 시장을 이용해 돈번다고 김규항은 엄청 까댄다.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고래'보다 더 큰 연대의 목소리가 절실한 것은 중고교의 이야기다.
물론 '현실은 바꾸기 어렵지만, 바꿀 수 있으며, 그 힘은 나에게 있다.'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는 고맙지만,
현재 비정규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58%이고,
임금은 정규 노동자의 49%이며,
노조 조직률은 고작 3%이다.(301)
이런 자료를 학생들에게 들이대야 하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진실을 깨닫게 하기도 쉽지 않고,
아름다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체험에서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겐 희망이 없다(303)는 이야기를 그는 잘 한다.
그렇지만, 체험도 '예방주사'처럼 약한 것이었다면 면역이 생길 수 있지만,
한국 사회처럼 '목숨을 건 체험'은 사람을 '살아남기'에 목매달게 할 수 있단 것도 간과해선 안 되겠다.
그가 원하는 엘리트는 이런 사람이다.
학벌이나 직업이 유별나지 않아 멀리서 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특별한 사람,
아무리 곤란한 일도 마법처럼 해결책을 제시하는 현명한 사람,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따뜻한 가슴의 사람,
이 복잡하고 간교한 자본의 체제를 훤히 들여다보는 맑은 눈의 사람,
제 소신과 신념을 '그래도 현실이...' 따위 말로 회피하지 않는 강건한 사람...
어느 하나 가지기도 힘든데, 이 모든 것을 가져야 하다니... 에효... 엘리트다.
그의 예수전을 하루 30분만이라도 읽으며 예수의 삶을 반추해 보는 것도 좋겠단다.
물질적 욕망과 경쟁심이 스물네 시간 좀먹고 있는 세상에, 30분은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그래, 읽는 일, 먹는 일보다, 생각하는 30분... 이걸로 자신을 채워야 하는 것인데...
정말 오랜만에 아옌데의 연설을 다시 만난다.
광주의 마지막을 보는 듯 하다. 눈물을 흘리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수많은 칠레 인민들의 가슴에 뿌린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게 될 것입니다.
적의 힘은 강합니다. 그래서 적은 잠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의 진보는 범죄와 무력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입니다. 역사는 인민이 창조하는 것입니다.
곧 다시 역사의 큰 길이 열려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칠레 만세! 칠레 인민 만세! 칠레 노동자 만세!
이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마치 광주 도청에서처럼 그들은 산화해 갔다.
과연 칠레산 포도가 이국 만리 한국땅 이마트에서 이렇게 팔리게 될 것을 그들이 알았을까?
과연 칠레 노동자들의 만세 소리가 담긴 포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전태일의 문장도 오랜만이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예수전을 읽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소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가난한 휴머니즘>
이시영,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이런 책들을 그를 통해 얻어 둔다.
그의 이야기 중, '우민'에 대한 정의는 멋지다.
이런 개념 정리가 간혹 잘 된 것을 만나는 일도 김규항을 읽는 즐거움이다. 역시 난 우민이다.
우민은 '못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도 어리석은 사람'이다.(490)
앞에서 말한, '체험에서 배우려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가 만드는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로고로 <생각하는 힘, 함께 하는 마음>이란 게 있다고 한다. 원래 '언제나 누구나 즐겁게'였다는데, 난 이게 더 맘에 드는데... 생각~은 좀 논술 문제집 생각이 난다.
어제 시사 2580인가에서 '건강보험 이사장' 정모란 새끼가 '불법 시위로 입은 부상은 보험이 안 된다'고 멋대로 해석해서 돈을 게워내라고 통지서를 보냈단 소식을 듣고 혈압이 뻗쳤다. 역시 텔레비전은 '개콘'만 보고 안 봐야 된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뉴스라는 게 알아서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 혈압만 높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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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사무실에 들렀는데 완전 찜통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차를 내오는 그에게 에어컨 고장 났냐고 물으니
몹시 겸연쩍어 하면서 말했다.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 생각하니 못 틀겠더라고요.
그래서 며칠 전부터 끄고 지내고 있어요." 2009. 8. 6(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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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 안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두 아저씨의 대화가 볼썽사나운 대한민국의 현재를 잘 진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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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니미럴 요새는 장례식장에 가보면 두 가지 욕밖에 없더라."
"뭔데?"
"하나는 이렇게 죽을 걸 그렇게 욕심을 냈나!"
"우하하, 또?"
"이렇게 죽을 거면 보험이라도 많이 들어 놓고 죽지!"
"죽인다. 사람 장례가 아니라 돈 장례구나 시발."
그러다, 김규항에게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는 말씀이네요."
"저희는 가방끈이 짧아서요."
"배운 사람들은 말만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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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사람들이 못 배운 사람보다 나을 거라는 착각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배웠다고 다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란 걸 가르쳐야 한다.
나은 인간이 아니고, 말만 어렵게 할 거면, 차라리 못 배우니만 못한 걸...
김규항을 읽는 일은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이고,
철저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일이고,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을 욕하는 소리를 듣는 시원스런 일이고,
갑갑한 한국의 옥상에서 '까깝하다~'는 소리도 제대로 못 내지르는 이들에게 소리치라고 부추김을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를 읽게 되고, 당분간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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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그가 즐겨 본다는 개그콘서트의 '노마진'은 '노우진'의 잘못인 듯... 혹시 그가 알면서도 개그로 '마진없음'이라 붙인 건 아니겠지? ㅎㅎ
410. 오타... 불길이 번질 때가 없는데... 번질 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