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꿈꾸는 토론학교 : 사회.윤리 -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열 가지 쟁점 청소년을 위한 토론학교
김범묵.윤용아 지음 / 우리학교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논술이 좋은 제도라는 것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지만,
한국처럼 채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논술 시험이란 것은 의미가 없다는 데도 의견을 함께 한다. 

논술 내지 구술 면접이란 제도가 정착되지 못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학생들은 '사고력'을 뒷받침하는 '독서'의 이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적거나 말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하느님이 보우하사' 수능을 몽땅 찍어서 맞히면 연세대나 고려대는 입학할 수 있다.
그러니 변별력 없다고 비중을 낮춘 내신보다는 수능에 올인하는 것이 현명하고도 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공부를 해봤더니 도저히 내신을 따라내지 못할 성적이 나오는 학생들은 논술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거기 근거를 들이대는 글쓰기가 논술이고, 그런 말하기가 구술 면접이라면
이제까지의 참고서와는 전혀 다른 참고서가 <우리 학교>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다. 

학생들은 이 책을 읽어 가면서 다양한 사안에 대하여 '관점을 정립하는 법'과,
근거를 만들어서 주장을 뒷받침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들( 외모 지상주의, 대학 입시, 인권 등)을 다루고 있어 재미도 있을 것이고,
따끈따끈한 그림들과 그래프들은 오히려 쓰기 문제를 낼 때 응용해야겠다는 내 욕심이 앞선다.
숫자를 활용하고 그림을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이 얼마나 설득력이 강한지를 함께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학교들은 마지막 페이지의 <참고 도서> 목록을 참고하여,
독서 동아리, 논술 동아리 등에 활용할 수도 있겠다.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생각의 지도>를 펼치는 일이다.
생각의 지도를 펼치려면 우선 생각이 여러 곳을 흘러가야 하는데,
그 흘러가는 곳이 맨날 뻔한 뉴스나 인터넷 기사, 교과서 내용이라면 참신한 글이 나오기 힘든 것이 당연지사다.
고등학생 정도라면 우리 학교의 <토론 학교> 시리즈를 꾸준히 구입하여 읽도록 지도하는 것도 좋은 학습법의 하나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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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월드비전 희망의 기록
최민석 지음, 유별남 사진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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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월드비전은 굶주리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생긴 단체다.
이 슬픈 단체가 탄생한 땅은 슬픈 이 땅이다.
한국 전쟁의 화상으로 아파하는 아이들을 구호하기 위해 생긴 단체.
이제 한국도 20년 전부터 수혜국에서 구호국으로 바뀔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구호해야할 아이들도 많다. 

전쟁과 질병, 가난의 트라이앵글은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다.
거기다가 여성이라는 질곡은 인간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한 달에 3만원 후원하면 한 명의 어린이가 생의 희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고시원에 사는 여학생이 지난 달 돈이 없어서 못냈다며 미안하다고 전화를 하는 바보같은 사람들이 이런 데 기부한다.
죽은 남자친구가 후원하는 아이를 돕겠다고 여자친구가 전화를 한다.
다 바보들이다.
이 경쟁의 시대에, 바보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눈에 밟히는 바보들... 

희망만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희망없이 살 수는 더욱 없다.(249) 

오지를 돌아다니며 이런 생각들보다 눈물을 더 많이 쏟는 작가.  

볼리비아, 보스니아, 네팔, 베트남, 케냐, 에티오피아...  

삶의 하루하루가 전투라면, 인생 전체는 전쟁인 곳.
승리하기 위해서 매일의 전투를 치러야 하는 사람들.
비유법으로서의 전투가 아니라, 실제로 생존을 위해서 날마다 고통스러운 전투가 필요한 땅은 아직 많다. 

생명이 있는 한, 인간은 무엇인가 바랄 수 있다.(286, 세네카) 

온갖 가난과 기아, 질병 속에서도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개념조차 세우기 힘든 삶을 사는 조건에서,
과연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아이들, 여성들, 노인들...
월드비전의 움직임을 따라서 <아름다운 美> <이야기 口>들이 모인 <선함 善>을 생각하게 하는 착한 책. 

내 욕심을 조금 줄여서 배고픈 이들에게 빵을 나눠줄 마음을 열게 하는 책.
오어이병으로 수천이 먹고도 수천 바구니의 빵과 물고기가 남는 기적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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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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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는 그의 프로필, 얼굴, 키, 말빨, 직업,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이름조차, 조국인가. 

조국의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노무현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부엉이 바위의 비극은 없었을 것을...
이런 생각을 수없이 하면서,
바보 노무현이 남긴 것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진보>의 유능함에 자부심까지 가지게 된다. 

정치인은 악마적 힘과 손잡는 사람이다.
악마적 힘과 손을 잘못 잡으면 내가 넘어가고,
                        포기하면 반대 정파가 이 힘을 사용하여 나를 억누른다.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막스 베버, 253)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힘을 줘도 못 쓴 부분. 

노무현은 두개의 전선을 만들었어야 했다.
개혁 입법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2중 전선을...
전자에 올인 할 것이 아니라 후자에 제도적 말뚝을 박는 데 힘을 배분했어야 했다.(138) 

정치적 기본권과 <밥>의 문제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인데, 그만 놓쳐버린 그 것을 한나라당이 주워가진 것이다.
"밥 먹여준다"가 승리한 것이다.
진보의 과제는 "더 좋은 밥을 행복하게 먹여줄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진보가 꿈을 꾸는데만 그친다면 맨날 무능하단 소리밖에 못 듣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꿈을 다른 사람과 같이 꾸면서 현실화해야, 일상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진보로 거듭날 수 있다. 

물론 조국의 <진보, 개혁>의 범주는 명쾌하지 않다.
2007 경향신문 <한국 사회 지식인 지도>에서 '중도 좌파 탈민족주의 진보적 사회시민론자'로 분류된 그의 시점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지형도는 <수구 꼴통>과 <진보, 개혁>의 연합체 구도를 살피게 된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고 난 한국 사회는 러셀의 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를 해 왔다.

   
  어리석은 자들은 독단적으로 자신만만한데 반하여,
똑똑한 자들은 의심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 세상의 문제다.
 
   

그래서 분열과 반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전임 대통령을 비극 속에 보낸 국가로서,
이제는 진보의 집권을 준비하고 학습 효과를 드러낼 때가 되었다. 

그러기에 이 책은 노무현의 유작들에 비하여 훨씬 비중있게 과거를 분석하고 미래를 그려 보여 준다. 

그러나 정치권의 행태도 한심하다.
"왕이 되기를 포기하고 영주에 머물고자" 하는 봉건적 야당 민주당(72)도 개조해야 한다.
촛불 정국 이후로 지친 386도 끌어 안아야 한다.
그럴 때, 그는 적절한 시구절 하나 옮겨 온다.
이렇게 시까지 아는 완벽한 남자, 좀 징그러울 지경이다.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네.
그러나 잠들기 전에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더 걸어가야 할 몇 마일이 남아 있다네. (로버트 프로스트, 79) 

386이 앞으로 더 걸어가야 할 길을 이 시 한 구절로 마무리되는 걸로, 그의 이야기의 간결함이 돋보인다. 

세네카가 했다는 말,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일어나는 것(312)'도 한국 정치에 거는 기대와 부합하지만,
"뭐든지 애매하게 방치해 두면 안 된다.
그것은 후배들, 후세대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
짚을 것은 붐명히 짚고 넘어가는 풍토가 진보, 개혁 진영에서 만들어 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223)"이 그와 오연호의 기대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모두 신자유주의 추종자이므로 <진보>로만 뭉치자는 사람들은 더욱 반성해야 하고,
'영주'에 머물려는 우스운 야당도 과거를 통해 많이 배워야 한다. 

결국, 부엉이 바위에서 배우지 못하는 시민은, 독재 세력의 젯밥이 되어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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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6 0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6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0-11-0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책 살꺼예요.^^

글샘 2010-11-06 21:32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 봐야 하는 책이라 생각해요. ^^

북극곰 2010-11-1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나오기도 전에 글샘님의 소개글을 보고 미리 구매?해놨더라지요. 요즘은 책을 안 읽기로 한 상황인지라 조금씩만 보고 있어요.^^ 자주 들러서 많은 것들 배우고 갑니다.

글샘 2010-11-12 12:05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선 배울 점이 많습니다. 차분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죠. ^^
그나저나 조국 교수도 인권위에서 나오고... 인권이 없어지는 판국이네요.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 (특별부록 : 이크종 캐릭터 수첩) - 뭘 좀 아는 이크종의 백수지향인생
이크종(임익종) 글.그림.사진 / 예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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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니 77만원 세대니 하는 위기섞인 말이 흔히 나돈다.
우석훈처럼 '명랑'을 외치는 사람은 한 마디를 해도 조심해야 되는데, 말이 좀 흔하다.
명랑하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패배의식'을 절대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는 '삼성'의 가족이 되었다면 좋아할지 모른다지만, 많은 SKY 졸업생들이 삼성 입사를 꺼리거나,
입사 몇 년 후 나오고 만다고 한다.
그 비인간적 근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통령조차도 주어진 휴가를 찾아먹지 못하는 더러운 나라.
이명박도 불쌍하다. 

그런데, 멀쩡한 Y대를 나온 넘이, 혼자서 백수 생활을 한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그 DKNY(독거노인)의 삶 그 자체다. 

그런 통 큰 넘이, 왜 그렇게 책은 쪼잔하게 해 놨는지, 돋보기 들이대고 읽었다. 나쁜 넘! ㅋㅋ 

아마 A4로 그려서 A5로 인쇄한 탓이 클 게다. 제발 담번엔 이런 포악 부리지 마라.
나처럼 근시인 사람도 잘 안 보이는데, 하긴, 주 독자층인 젊은애들이야 잘 보겠지만... 

그의 만화는 유쾌해서 좋다.
그의 하루하루를 보는 일은 나의 젊은 '자취 생활'의 단면들과 만나게 돼서 재밌었다.
나야 백수로 살지 않아 그와는 다르지만, 자취생의 대부분은 혼자서 뒹굴고 혼자서 즐기는 뭔가가 있게 마련이다. 

그의 이 책을 뭘로 분류할까 하다가 '역사'에 넣었다.
이 책은 '만화'지만, '그림이 뛰어난' 예술은 아니고, 뭐 맨날 홀랑 벗고 있지만 하나도 야하지도 않고...
이야기가 있지만, 글타고 '문학'적이지도 않고...
그런데 딱 보면, '한국형 21세기 백수의 미시사'에 딱 맞다. 

힘겨운 88만원 세대들에게, 취업 준비로 토익 공부에 형광빛 도서관 안에서 열중하고 있을 시들어가는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살아도 즐거울 수 있다~ 이런 유쾌함을 날리는 메시지를 읽는 일은
깨알같은 글자에도 적응하며 웃게 만든다. 

 

<최호철, 도서관 풍경> '을지로 순환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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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좌파 : 세 번째 이야기
김규항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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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을 읽으면, 돌아보지 않아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상처들이 쿡쿡 찌른다.
그렇지만 그 상처는 내 몸에 있었던 것인데, 나는 나의 상처라고 여기지도 않았던 것들이다.
내가 무심하게 욕하고, 두고두고 열받던 것들을 그는 국외자의 입장에서 짓쳐들어오는 것 같다.
그가 다 옳지는 않다.
그가 욕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나름대로 사람사는 곳이기 때문인데,
옳은 것을 옳다고 끝까지 밀고 나가기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지옥화되었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지면의 글을 짜깁기한 이런 책을 싫어하는 나의 성벽에도 불구하고, 김규항의 책은 어쩔 수 없이 미뤘다가 사서 보게 된다.
때 지난 시론을 몇 년 뒤에 읽는 것도 못마땅하고, 여기저기 언론 귀퉁이들에 쓰였던 글들을 모아둔 책은 읽기 낯간지런 부분이 많은데, 김규항의 책을 읽는 일은, 무릇 선지식을 얻는 일이기도 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기도 하는 일이어서 마지못해 읽게되는 편이다. 

김규항의 논리는 참 쉽다.
계급의 원칙에 따라 살면 된다는 것인데, 그 계급에 대한 인식을 몰개념화하는 것이 이 나라의 교육이었던지,
아니면 독재 시대의 삶의 원칙이었는지, 계급에 따라 생각하지 말고,
국익을 보고 생각하라는(그의 가진 자의 이익이 국익이란 말은 전적으로 옳지만) 통념이 먹힌다. 

진짜 아는 것은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하는 것(93)이란 아이들과의 대화에 나는 요즘 공감하고 있다.
자기 생각이란 '실천'하며 사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의 교육에 대한 관점들이 그렇다. 

보수적인 부모는 경쟁으로 아이들 내몰고, 진보적인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그렇게 한다고...
일류대 학생이 되기를 바라지만, 진보적인 부모는 거기다 진보적인 일류대 학생을 바란다고... 

김대중, 노무현 시대 이전에 이미 신자유주의 물길을 트기 시작했는데, 그저 절차적 민주주의만 보고 그 시대를 평가한 것이 한국의 잘못임을 지적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에서 민주노동당까지 비판하는 '옳은 소리'는 과연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먹혀들는지...  

정치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에 대한 몰염치한 닥달은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물결의 최고봉이 되고 있다.
연대의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있지만, 전교조 같은 집단에서도 쉽사리 꺼낼 수 없는 것이 중고교의 대입문제다.
초딩까지도 온갖 학원에 내몰리고 있지만, 정작 심한 것은 중고교의 파행적 교육이다.
독서 교육조차도 '스펙'을 위한 것으로 상품화되고 있는 현실, 386은 그 시장을 이용해 돈번다고 김규항은 엄청 까댄다.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고래'보다 더 큰 연대의 목소리가 절실한 것은 중고교의 이야기다.  

물론 '현실은 바꾸기 어렵지만, 바꿀 수 있으며, 그 힘은 나에게 있다.'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는 고맙지만,
현재 비정규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58%이고,
임금은 정규 노동자의 49%이며,
노조 조직률은 고작 3%이다.(301)
이런 자료를 학생들에게 들이대야 하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진실을 깨닫게 하기도 쉽지 않고,
아름다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체험에서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겐 희망이 없다(303)는 이야기를 그는 잘 한다.
그렇지만, 체험도 '예방주사'처럼 약한 것이었다면 면역이 생길 수 있지만,
한국 사회처럼 '목숨을 건 체험'은 사람을 '살아남기'에 목매달게 할 수 있단 것도 간과해선 안 되겠다. 

그가 원하는 엘리트는 이런 사람이다.
학벌이나 직업이 유별나지 않아 멀리서 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특별한 사람,
아무리 곤란한 일도 마법처럼 해결책을 제시하는 현명한 사람,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따뜻한 가슴의 사람,
이 복잡하고 간교한 자본의 체제를 훤히 들여다보는 맑은 눈의 사람,
제 소신과 신념을 '그래도 현실이...' 따위 말로 회피하지 않는 강건한 사람...
어느 하나 가지기도 힘든데, 이 모든 것을 가져야 하다니... 에효... 엘리트다.  

그의 예수전을 하루 30분만이라도 읽으며 예수의 삶을 반추해 보는 것도 좋겠단다.
물질적 욕망과 경쟁심이 스물네 시간 좀먹고 있는 세상에, 30분은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그래, 읽는 일, 먹는 일보다, 생각하는 30분... 이걸로 자신을 채워야 하는 것인데... 

정말 오랜만에 아옌데의 연설을 다시 만난다.
광주의 마지막을 보는 듯 하다. 눈물을 흘리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수많은 칠레 인민들의 가슴에 뿌린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게 될 것입니다.
적의 힘은 강합니다. 그래서 적은 잠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의 진보는 범죄와 무력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입니다. 역사는 인민이 창조하는 것입니다.
곧 다시 역사의 큰 길이 열려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칠레 만세! 칠레 인민 만세! 칠레 노동자 만세! 

이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마치 광주 도청에서처럼 그들은 산화해 갔다.
과연 칠레산 포도가 이국 만리 한국땅 이마트에서 이렇게 팔리게 될 것을 그들이 알았을까?
과연 칠레 노동자들의 만세 소리가 담긴 포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전태일의 문장도 오랜만이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예수전을 읽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소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가난한 휴머니즘>
이시영,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이런 책들을 그를 통해 얻어 둔다.  

그의 이야기 중, '우민'에 대한 정의는 멋지다.
이런 개념 정리가 간혹 잘 된 것을 만나는 일도 김규항을 읽는 즐거움이다. 역시 난 우민이다. 

우민은 '못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도 어리석은 사람'이다.(490)
앞에서 말한, '체험에서 배우려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가 만드는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로고로 <생각하는 힘, 함께 하는 마음>이란 게 있다고 한다. 원래 '언제나 누구나 즐겁게'였다는데, 난 이게 더 맘에 드는데... 생각~은 좀 논술 문제집 생각이 난다.  

어제 시사 2580인가에서 '건강보험 이사장' 정모란 새끼가 '불법 시위로 입은 부상은 보험이 안 된다'고 멋대로 해석해서 돈을 게워내라고 통지서를 보냈단 소식을 듣고 혈압이 뻗쳤다. 역시 텔레비전은 '개콘'만 보고 안 봐야 된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뉴스라는 게 알아서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 혈압만 높일 뿐... 

   
  후배 사무실에 들렀는데 완전 찜통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차를 내오는 그에게 에어컨 고장 났냐고 물으니
몹시 겸연쩍어 하면서 말했다.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 생각하니 못 틀겠더라고요.
그래서 며칠 전부터 끄고 지내고 있어요." 2009. 8. 6(511) 
 
   

아,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 안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두 아저씨의 대화가 볼썽사나운 대한민국의 현재를 잘 진단해 준다. 

   
 

"하여튼 니미럴 요새는 장례식장에 가보면 두 가지 욕밖에 없더라."
"뭔데?"
"하나는 이렇게 죽을 걸 그렇게 욕심을 냈나!"
"우하하, 또?"
"이렇게 죽을 거면 보험이라도 많이 들어 놓고 죽지!"
"죽인다. 사람 장례가 아니라 돈 장례구나 시발." 

그러다, 김규항에게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는 말씀이네요."
"저희는 가방끈이 짧아서요."
"배운 사람들은 말만 어렵죠." 

 
   

배운 사람들이 못 배운 사람보다 나을 거라는 착각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배웠다고 다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란 걸 가르쳐야 한다.
나은 인간이 아니고, 말만 어렵게 할 거면, 차라리 못 배우니만 못한 걸... 

김규항을 읽는 일은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이고,
철저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일이고,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을 욕하는 소리를 듣는 시원스런 일이고,
갑갑한 한국의 옥상에서 '까깝하다~'는 소리도 제대로 못 내지르는 이들에게 소리치라고 부추김을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를 읽게 되고, 당분간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

377. 그가 즐겨 본다는 개그콘서트의 '노마진'은 '노우진'의 잘못인 듯... 혹시 그가 알면서도 개그로 '마진없음'이라 붙인 건 아니겠지? ㅎㅎ

410. 오타... 불길이 번질 때가 없는데... 번질 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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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6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 2010-10-26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저녁에 김규항님이 강의를 온다는데..다시 한번 가서 작심삼일을 할까 말까 하네요.
뭔가..여기저기에서 찔리는 데가 많아서도.
강의적마다 '고래가그랬어' 신청서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멋지다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글샘 2010-10-26 20:51   좋아요 0 | URL
작심삼일을 3일마다 한번씩 해야죠. ㅎㅎ
맞아요. 불편한 게 김규항의 무기죠.
고래가 그랬어... 처럼 어린아이들부터 가르쳐야 되는데...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