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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리영희 선생이 고인이 되신 지 5개월이 되었다.
그 무렵 사두었던 책을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 읽었다.
리영희 선생님의 책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 나로서는,
매운 최루탄 냄새와 함께 대학을 다니면서 리영희 선생님의 모든 책을 읽었으니,
나 역시 '의식화의 원흉' 덕택에 삐딱선을 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청운의 꿈을 품고 들어간 대학 내에는,
온갖 대자보와 투쟁가 뿐이었다.
광주에 대한 죄책감이 가장 무르익었던 85년에 신입생이던 나는,
<과외 독서>를 통해 단기간에 반정부적 입장으로 무장하게 된 것인데,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시작으로,
<8억인과의 대화>, <베트남 전쟁>, <분단을 넘어서>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교사 의식화 교재 <페다고지>도 선생이 번역했다니 제대로 세례를 받은 셈이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베트남 전쟁이었다.
요즘엔 '응오 딘 디엠'으로 표기되는 이름조차 '고 딘 디엠'으로 적힌 책으로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 속에 끼인
한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읽곤 했던 날들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미 고인이 되신 리영희 선생의 삶을 읽는 일은 벅찬 현대사를 읽는 일이었다.
리영희 선생은 연합 통신 등에서 치열한 세계 정세 읽기의 달인이 되었고,
그 속에서 한국의 격동의 시기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읽어주는 유일한 스승이었다.
다른 운동가들처럼 그저 통일을 감정적으로 되뇌거나
독재 반대를 외치다가, 자기 편이 정권을 잡으면 어정쩡한 자리에서 권력의 단맛을 보다가
또 제대로 된 길이 무엇인지 잃어버리는 일은 리영희 선생의 삶에선 없었다.
국제사회에서의 '객관적인 자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국민에게
'주체적인 자기'가 있을 리 없다.(235)
리영희 선생에게 분단과 국가 보안법과 군사 독재 정권의 발호는,
세계 정세 속에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일부였을 뿐으로 보였다.
전체 구도를 보는 이에게는 작은 나사들의 작동이 한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네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식을 버려라.
네가 진실로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은 허위의식, 그러한 미신들을 네 머릿속에 주입한
이 우상들의 세계와 분질을 꿰뚫는 새로운 눈으로써 이 세계를 다시 바라보라.(257)
보아야 할 것들을 올바로 보아야 함을 맵차게 보여주는 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몇 해의 법정 스님, 리영희 선생의 죽음은 그런 면에서 큰 손실이다.
자신의 생각이 건전하기 짝이 없고 온건하고 올바르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리영희 선생의 이 평전과 <대화>를 읽어볼 일이다.
거짓된 상식이 주입된 채로,
권력의 단물을 빨아먹는 주제에 자신이 올바로 보고 있는 상식인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리영희는 <우상과 이성>을 썼던 것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재량을 지니는 자율적인 인간의 창조를 위하여,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광신적 반공주의에 대해 저항적 입장에서,
군인 통치의 야만성, 반문화성, 반지성을 고발하기 위하여,
시대정신과 반제, 반식민지, 제3세계 등에 댛나 폭넓고 공정한 이해를 위하여,
남북 민족간의 증오심을 조장하는 사회 현실에 반발하면서
두 체제 간의 평화적 통일을 원하는 입장에서...(257)
한국 내에 산적한 숱한 모순들의 핵심 고리는 바로 '외세에 의한 분단'에 있었다.
그 모순을 바로잡을 수 있는 비전을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부터 이야기했던 바,
그것이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 치욕의 시절을 살고 있음은 이 민족의 불행이요, 부조리한 세상의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우상과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짓눌린 백성, 민초들이었고,
이 아이를 사갈시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를 암흑으로 몰아가는 권력에 눈이 뒤집힌 자들이었다.
뭣이건 바른 것, 옳은 것, 아름다운 것, 화평한 것, 착한 것, 진실한 것을 보기만 하면 눈알이 뒤집히고
온몸에 경련이 이렁나는 정신병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의 위대한 우상을 믿고 있었다.
반 무슨무슨 주의, 냉전 논리, 흑백 이분법, 총검 숭배 따위가 그것이다.
평화는 약자의 도덕이라는 믿음에는 니체 숭배자였고,
권력의 의지만이 최고의 철학이라는 데서는 히틀러의 아류들이었다.
이들에 의해서 짓눌린 백성들은 이성을 믿고,
그 회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고, 뒤집혀 있고, 일그러져 있는 세상에 이성의 빛이 활짝 비치기를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282)
우상과 이성의 책 제목에 얽힌 이야기다.
지금 다시 세상은 우상 숭배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촛불 집회를 거쳐 4대강이 몸살을 앓고 있으며, 한미- 유럽 FTA도 통과되어,
자유롭게 외제 자동차를 탈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려 그토록 노력했건만,
다시 어두운 세상 속에서 눈을 감으신 선생의 심사가 얼마나 불편하셨으랴.
어두운 시대일수록 선생이 루쉰을 등불로 삼아 삐뚤게 걷지 않으려 노력하셨듯이,
이런 책을 읽으며 바로 걸으려 힘쓸 일이다.
백범이 통일정부 수립 협의차 북행하기 전에 쓴 서산대사의 시는 그래서 그가 남긴 발자취를 떠올리며 상념에 잠기게 한다.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마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이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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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1980년 1월 9일 출감, 323. 1월 19일 출감... 바로 잡기 바란다.
412. 1987년에 마침내 홍콩을 ... 반환하였다는 말은 1997년 7월 1일로 바로 잡아야 한다.
430. 1889년 헝가리와 국교를 수립... ㅋㅋ 1989로 바로 잡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