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국 평전 -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정운현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출판사에 꽤 알려진 자신의 이름과 해사한 얼굴을 빌려주고, 대필 작가를 무슨 몸종 부리듯
이래라 저래라 온갖 사항을 지시한, 한 유명 여성의 어이없는 메모 내용을 
오늘 오전 키노 님의 페이퍼로 보았다.
그것이 초고라니, 기가 막혀서!
그래놓고도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부끄러운 줄 모르니, 아무 상관 없는 내가 다 낯이 화끈하다.

임기가 끝난 국회의원들이 의정원인가 의정단인가 하는 단체를 조직하여
공공건물에 공짜로 상주하며  시 예산을 갉아먹고 있다는 보도를 며칠 전 접했는데,
단체관광을 '시찰'로 둔갑시키질 않나, 그들은 온갖 명목으로 시민들의 혈세를 뜯어내고 있었다.
더구나 어느 시 의정회의 대표는 공금유용과 서류 조작 건이 들통나
취재기자가 끈질기게 물고늘어지자,
"이 사회가 얼마나 썩었는데, 겨우 이 정도의 돈을 가지고 그러느냐며 화를 버럭 내는 것이었다.
국회의원이라고 현역시절에 큰소리 치고  치부하고 살았으면 됐지,
죽을 때까지 단물을 빨아먹겠다는 노욕 앞에서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며칠 전 수중에 들어온 <임종국 평전>을 만지작거리다 내심 2007년의 첫 책으로 찜해놓고 있었는데
참지 못하고 야곰야곰 파먹다보니 오늘 새벽에 다 읽었다.
이런저런 마음속의 갈증 때문이겠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는 경제적으로든 뭐든 딱할 만큼 요령과 주변머리가 없었던 그는
미간에 깊이 주름을 세우고 닥치는 대로 애꿎은 물그릇이나 발로 차며 지냈다.
젊어 천재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는데, 참혹한 가난은 그에게 두터운 벽이었다.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의 그가 생활고 때문에 화장품 외판과 참빗 행상에까지
뛰어들 정도였으니,  <선데이서울>의 원고청탁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생활을 위해 온갖 허드레 원고를 쓰던 중에 일생의 과업을 만나게 되었으니
바로 친일파 연구.

붙잡아야 할 필생의 업이든 사람이든 어느 날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이상(李箱) 시인을 연구하다 보니 일제 강점기가 눈에 들어오고,
모 신문의 청탁으로 '흘러간 성좌'를 연재하다 보니 친일을 했던 이들이 아무런 반성 없이
떵떵거리고 사는 이 땅의 말도 안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는 식.
친일파 문제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그와 연결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제일 감탄했던 부분은 가난과 병고와 결혼생활의 파탄 등
참기 어려운 인간의 구체적인 고통 속에서 비록 가까운 가족에게 화풀이를 하면서도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의 필생의 작업이다.
친일파 청산 없이는 이 나라에 올바른 미래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
<친일문학론>을 써내고 사람들의 관심을 기대했지만,  세상은 끝까지 그를 외면했다.
그는 말년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로 식솔을 끌고 내려가 사과궤짝을 엎어놓고
원고를 썼다. 나이 오십줄에 친일파 관련 자료 수집을 위해 어린 아들과 상경하여
단칸방에서 자취를 하다가 병이 더욱 깊어지고.
연구비를 어느 단체에서 지원받자고 하는 지인의 제안에
지원금을 받으면 손이 떨려 글을 못 쓴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한 그이다.

타협을 모르는 성미 탓도 있겠지만, 연치에 비해 너무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마디로 사는 게 편치 않은 그의 얼굴을 다음 페이지에서 새로운 사진으로 만날 때마다
나는 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일찍이 천재라는 칭송에, 시를 쓰고 클래식 기타며 각종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등 
예술가적 자질이 넘쳐났던 그가 아니던가.

오래 전 <친일문학론>을 책으로 읽었을 때의 충격이 되살아나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와 문덕수의 친일문인  옹호론을 소개하며 이 평전을 쓴 정운현 씨는
존경하는 스승 청마 유치환을 보호하기 위해 백석 정지용 등의 친일 사실을 언급하며
물귀신 전법으로 일관한 문덕수를 유종호와 비교해 사정없이 깎아내리는데,
문덕수는 아예 언급할 가치도 없고,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지적인 유종호의 견해가
나는 더욱 갑갑하게 느껴졌다.

일제 강점기에 교사로 근무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일본말을 가르치고 천황에게 절을 하게 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뜻에서 지금도 매일 온 동네를 깨끗이 쓸고 다닌다는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못 들어봤나?!

반민특위의 후신격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일을 하며 평소 흠모하던 선배의 삶을
꼼꼼하게 기록한  정운현은 딱 이 평전의 적임자다 싶으면서도  
6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집필일기를 부록이라고 평전 뒤에 떠억하니 실어 사람을 기함시켰다.
재밌게 읽긴 했지만 이건 영 아니라고 본다.
그 형식도 내용도 임종국의 묵직한 삶과 어울리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집필일기는 지면을 마련하여 관심있는 독자에게만 따로 소개했으면 좋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학 휴학 후) 죽치고 앉아서 암담한 생각으로 해를 보내고 있을 때
내 안에서 중뿔난 소리가 들려왔다.
타고난 오기라 할까, 반골의 소리가 나를 유혹했던 것이다.
권좌에 앉아서 만 사람을 머리 숙이게 하지 못할 바에야,
내가 만 사람에게 머리 숙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권력을 내 것으로 못한다면
대신 자유를 가지면 될 게 아닌가?
권좌에 연연하고 뇌물에 머리 숙이는 치사한 인간이 되느니 철저하게 자유인으로 살자!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뜬구름 한 조각이 되어 권력 대신 하늘만한 자유를
내 것으로 하면서 사는 거다!
이리하여 나는 신주단지 모시듯하던 법률책들을 술과 바꿔 버리고 말았다.
후련한 것도 같고, 서운한 것도 같았던, 젊은날의 자화상 한 토막이다.
                                                             (임종국의 글  '술과 바꾼 법률책' 중 인용, 182쪽)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밥헬퍼 2006-12-2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얼마전에 살던 집을 이사하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던 책들을 골라,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결국 파지 주우러 다니시는 노부부에게, 필요하시면 가져가시라면서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날 저녁 곧바로 오셔서는 늦게까지 두 분이 리어카에 몇번을 싣고서 몽땅 가져가셨습니다. 도와드릴까요 했더니 한사코 손사래치며, 준 것만도 고마운데 그럴 것 없다고, 괜찮다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한번 물었지요. 꽤 될텐데 얼마 받으세요. 오늘은 좀 무게가 나가니 낫겠지요 뭐...짐작하건데, 나의 그 애지중지했었던 책들은 아마도 '기천원'의 판결이 났을 것이다. 책 팔아 술먹어 버릴 때의 심정은 잘 모르겠지만 내 손에서 애지중지하던 책, 그것을 치워버리고 나니 한편 허전하기도 하지만, 돌이켜, 내 안에 그것들의 그 아련한 잔상이 남아있지 않는다면, 엄청나게 값싸면서, 쓸데없는 무게만 잔뜩 품고 있는 파지 아닐까 싶어 조금은 씁쓸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돌아보면 안그래도 좁은 집에 파지 짊어지고 사느니, 누군가에게 소중한 기천원이라도 남겨주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한편의 리뷰가 한 책을 대신할 때가 이 서재에는 자주 있네요. 연말 잘 보내시죠?

2006-12-26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26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2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헬퍼님, 아이고, 그 책들 아깝습니다.
기천원이든 기만원이든 노부부의 일당에 도움은 되었겠지만
말입니다.
전 결국 버리지 못하고 다 싸짊어지고 왔습니다.
나의 독서행위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 봐야겠어요.
밥헬퍼 님도 최근 주소가 바뀌셨군요.
정신없이 바쁘셨겠어요.
님의 댓글을 보니 얼마나 반가운지.^^

로드무비 2006-12-2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도를 지키는 것이 님, 어떤 때는 정말 속에 천불이 납니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의롭게 산 그를 일러 주변에서
'기인 아닌 기인'으로 평할 정도이니 어떻겠습니까.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쓰다만 책 님, 친필유고요?
정말 궁금하네요. 어떤 인연으로 접하셨는지.
그의 저작을 모두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친일문학론> 말고는 읽은 게 없거든요.


nada 2006-12-2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공하려면 뻔뻔해야 되나 봐요. 아니면 그 반대든가. 한씨 사건, 정말 기막혔어요. 제목만 보구선 무비님 서재 떠나신다는 소린줄 알았잖아요. ㅎㅎ

가랑비 2006-12-26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sudan 2006-12-2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일 문학론부터 읽어야겠어요. 어유. 로드무비님 리뷰 읽고 나니까 새삼 열받아서 손 떨려요.

2006-12-26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짱꿀라 2006-12-27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마이 뉴스 신문을 보다가 서평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서평도 좋은 인상을 주었답니다. 오늘 로드무비님의 서평을 보니 또 한 번의 좋은 인상을 받고 가네요. 지금 주문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마노아 2006-12-27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 댓글을 능가하는 리뷰였어요! 정말 한 편의 리뷰가 책 한권을 그대로 꽂히게 만드는군요.

로드무비 2006-12-2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 그의 업적보다 인간적인 측면을 많이 파고들어간
평전이었어요.
짬짬이 읽고 리뷰를 쓰고 싶게 만든.
좀 신통치 않게 써졌지만요.^^

santaclausly 님, 정운현 씨가 오마이뉴스 편집장이었죠?
장황한 집필기를 평전 뒤에 실은 건 명백한 실수라고 봐요.
읽고나면 리뷰 꼭 올려주실 거죠?
님의 감상이 궁금합니다.^^

클릭하고서 뜨끔 님, 제 낯짝도 그래요. 사는 게 편치 않은......
맞아요, 마음이 자꾸 가는 쪽이 있어요.
성탄절엔 서울의 근사한 레스토랑에 진출, 맛난 저녁을 먹었습니다.
주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없다고 나발을 불다가
결국 선물을 못 받았고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걸어둔 양말을 보고 실망하던 얼굴이라니!ㅎㅎ)

sudan 님, 윤봉길 의사가 나라를 위해 행동을 개시하는 동안
이광수는 어린 소년의 동성애 경향에 관한 소설을
일본어로 집필하고 있었다는군요.
<친일문학론>을 읽은 후 동시대를 산 작가들을 볼 때
'친일' 여부가 중요한 관건으로 작용하더군요, 나도 모르게.^^

FTA반대벼리꼬리 님, 오랜만입니다. 와락=3

꽃양배추 님, '...님 때문에 제가 서재를 뜰 수가 없답니다.'
이런 말 되풀이하는 사람 제가 제일 싫어해요.
'떠날 때는 말없이'가 저의 신조. ㅎㅎ
그 여인은 정말 웃겼죠?
코미디가 따로 없어요.^^



waits 2006-12-28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없다고 나발을 불다가
결국 선물을 못 받았고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걸어둔 양말을 보고 실망하던 얼굴이라니!ㅎㅎ)
... 아, 주하한테 미안한데, 너무 웃겨요. 낮에 사무실에서 보고 한참 웃었어요.
다시 봐도 너무 웃음이~^^;; 그래도 야무진 주하는 금세 씩씩해졌겠죠?
주하 엄마도 참 못지 않으시구요. ㅎㅎ

2006-12-30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3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택, 나어릴때 님, 동주가 크리스마스 선물 받을 거라고 자랑하니까
초를 치느라고 한 소린데 딱 걸렸지 뭡니까요.
동주는 선물을 받았거든요.
급히 나가서 선물을 하나 준비할까 하다가 그녀의 발언이 얄미워서
냅뒀습니다.
저도 한 심술하거든요.
님이 웃으셨다니 즐겁습니다.^^

해사한 낯짝 님, 아니 지가 낯짝을 얼굴로 바꾼 걸 어찌 아시고!
질투라는 단어는 님과 저에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습니다.( '')

2006-12-31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4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주 맛나게 생긴 키위막대사탕을 딸아이는 먹지 않고
달라고 조르는 동주도 주지 않고
어제 학교에 가져가 짝궁에게 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짝궁이 "고마워!"했다고 내게 자랑한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옆에서 자기도 먹고 싶다고 달라고 했나보다.
주하는 기분이 좋은 김에 내일 주겠다고 약속하고.
퇴근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동네 구멍가게에서
막대사탕을 사다달라고 부탁하더니.......

오늘 아침 그 바쁜 중에도 친구에게 줄 사탕을 챙긴다.

-- 어떤 아이가 보고 또 달라고 하면? 내일 준다고 할 거야?

-- 아니, 이제 안 줘.

-- 그냥 거절하면 친구가 무지 섭섭할 거야.
"미안, 이제 사탕 살 돈이 없어!"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

-- 그렇게 말하기 싫어. "미안, 이제 사탕이 없어!"라고 말할래.

"미안, 이제 사탕이 없어!'라고 말하면 될 걸,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쓸데없는 말들을 덧붙였던가!
'배려'라는 미명하에.....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6-12-2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안 지나간 사탕은 더이상 돌아오지 않아..!!"
이 대사는 주하가 하기엔 좀 철학적이겠죠...^^

로드무비 2006-12-2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 님, 제가 하기에도 너무 철학적입니다.ㅋㅋ

에로이카 2006-12-2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금방 적응한다는 말은 맞긴 맞나 봐요. 다행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알지만, 이치가 경우를 압도하지는 않는... 이치 바르고 경우 바른... 따님이네요. ^^

로드무비 2006-12-2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맞아요.
주하는 괜찮은데 제가 적응이 잘 안 되네요.
이 낯선 동네에.

이치가 경우를 압도하지 않는......멋진 표현입니다.^^

oldhand 2006-12-2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랍게도 저 지금 점심먹고 구내식당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눠준 키위 막대사탕 빨아먹고 있어요. 그건 그렇고 주하양의 언어 조탁 능력은 탁월하군요!!!

sooninara 2006-12-2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뜨는 유행어인 한예슬의 '지나간 짜장면은 돌아오지 않아'가 생각나네요.
주하는 역시 현명해^^

로드무비 2006-12-2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 님, 아아, 그 드라마에서 나온 말이군요.
주하는 현명하다기보다 깍쟁이 같은 면이 가끔 보입니다.^^

올드핸드 님, 구내식당 밥 오랜만에 먹어보고 싶어요.
그나저나 우리가 인연이긴 인연인가 봐요.=3=3
키위막대사탕이라니.^^

chika 2006-12-2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깔끔하고 간단 명료해요.
저도 키위막대사탕 먹어보고 싶어요. 없죠? ^^;
그나저나 넘 오랜만에 글 남겨요, 로드무비님 ^^

2006-12-22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22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룩말 2006-12-2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매력적이예요. 영원히 기억해두고 싶은 ...

로드무비 2006-12-2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떨떨 님, 앞으로도 잊지 마세요.
오늘의 기쁨을, 어제의 마음졸임을.
정말 축하드려요.^^

아주아주모테치카 님, 전 감귤쪼꼬레또가 먹고 싶은데요.
정말 맛있더이다. 후릅짭짭.
그러게, 오랜만에 뵙네요.^^

얼룩말 님, 주하의 저 말은 왠지 님과도
잘 어울리는 말이라는......^^


날개 2006-12-2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니 "미안, 이제 사탕이 없어!'라는 말.. 그렇게 쉬운게 아니더라구요..^^
주하처럼 살고싶어요..

2006-12-22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짱꿀라 2006-12-2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가지 색으로 원 모양을 그리고 있는 사탕을 보니 먹고 싶어지네요.
로드무비님,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

2006-12-22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12-23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려' 라는 새 브랜드의 사탕이 출시되었는데
로드무비님은 아직 모르시나요. ^^

마노아 2006-12-2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의 대답이 놀라워요. 솔직하면서 진심이 담겨 있잖아요.

로드무비 2006-12-23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 꾸미지 않은 그냥 솔직한 말이 최고인 것 같아요.^^

니르바나 님, 그 사탕 두 알만 사주세요.^^

일물일어 님, 어떤 때는 나의 모든 말과 행위가 부질없는 짓 같아서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허튼 소리라도 지껄이면서 사는 게 인생이겠지요?
의식과 자극, 사이좋은 말이네요.^^

santaclausly 님, 굵은 설탕이 박힌 왕구슬 막대사탕을 찾으니
그림이 없더라고요.
아무튼 크리스마스 기분은 좀 나지요? 헤헤~
성탄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건우와 연우 2006-12-2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명한 주하... 깔끔한 꼬마아가씨예요.^^
로드무비님 메리크리스마스~

실비 2006-12-25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자꾸 저사탕에 눈이 갑니다...
저거저거 나중에 꼭 보면 한번 사먹어보리라.+_+

로드무비 2006-12-26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 님, 언제 저런 사탕 보면 사서 보내드릴까요?
교보 같은 데서 본 것도 같은데.^^

건우와 연우 님, 메. 메. 메리 크리스마스. 히히
지송해서.^^
 
소라닌 1
아사노 이니오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라닌(solanin) - 감자의 싹에 있다는 독.
목숨을 뺏을 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은데 '솔라닌'은 배탈 등 갖가지 증상을 일으킨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의 방황과 고독을
이 만화는 감자의 싹과 독(毒)에 빗대었다.

겉모습만 보면 넙데데하고, 꾀죄죄하고, 나사가 한 개 빠진 것 같은 남녀 주인공들이
멋진 바닷가가 아니고 동네의 개천 가에 우두커니 서 있거나 제각각 쪼그리고 앉아 있다.(표지)
다행히 고무보트가 뜰 만큼 제법 규모가 큰 하천 같은 개천. 
<저녁뜸의 거리> 이후 표지만으로 단번에 나를 사로잡은 만화인데
솔직히 <저녁뜸의 거리>보다 더 마음에 든다.
청춘의 하릴없음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없으리라.
생각해 보면 푸른 바다를 꿈꾸며 동네의 냄새 나는 개천가를 배회하는 것이
대부분 청춘들의 모습 아니던가.

좋게 말해 개성적인 외모(나쁘게 말하면 다소 떨어지는)에 출중한 재능도 배경도 
구체적인 꿈도 없이 호구지책으로서의 밥벌이만 간신히 하고 있는 주인공들.
그나마, 유부남 부장의 호된 질타와 추파를 동시에 받던 날, 주인공 메이코는
"기분이 너무 엿 같아서 조퇴하겠습니다!"하고 사무실을 뛰어나와서는 그 길로 사표를 낸다. 
열아홉에 만나 스물셋,  애인이라는 위치에서 기둥서방 비슷한 것으로 전락한 애인 다네다는
잡지에 일러스트를 그려 자신의 용돈 정도나 벌면서, 애들 장난 같은 밴드 활동을 하는  프리터.

재능도 그렇고 마음자리도, 믿을 수 없이 시시한 것이 바로 자기자신이고 인생이라는 걸
깨닫는다고 해서 그 당장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굴욕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인내도 어른의 바로미터는 아니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같은 건 어떤 경우 말장난에 불과하다.
인생에는 일보후퇴로 소중한 것을 영원히 잃는 순간이 있다.

"저어, 메이코. 만약에 우리 부자 되면 아까 그 장어요리 먹으러 가자."

메이코의 엄마가 상경하여 인사를 하고 점심을 얻어먹고 돌아오는 길,
다네다가 메이코의 손을 잡으며 씩씩하게 말한다.
연인의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뜬구름 잡는 약속들에 비하면 얼마나 진솔한지.

서면의 동보극장에 전화를 걸어 떨리는 목소리로 물은 적이 있다.
"<내 마음의 풍차>를 꼭 보고 싶은데, 미성년자 관람불가인데,
너무너무 보고 싶으니 저 좀 몰래 입장시켜 주시면 안 되나요? 네에?"
최인호의 원작에 얼마나 열광했던지, 그것이 내겐 일생의 용기를 건 최초의 전화였다.
약간 병든 감수성.
나중에 보니 작가는 '길'이 어떠니 저떠니 하면서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시시하게 살다가 시시하게 죽어간다.
이 만화의 주인공들처럼 나도 일찍부터 감은 잡고 있었지만,
최근에야 조금씩 구체적으로 납득하기 시작했다.

-- 잠깐잠깐. 우리들의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있을까?
아마 없을 거야.
그렇다면 내가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사람은?(제2권 16쪽)

-- 인간은 살아가는 것만도 몹시 힘들고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중요한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거야.(201쪽)


일상의 고린내가 물씬한 생생한 그림은 물론이고, 별 대수로울 것 없는 대사들까지
가슴 속에 콕콕 와 박히는 것도 이 만화의 강점.

***제목의 '호박'은 나나난 키리코의 만화 <호박과 마요네즈>에서 가져왔습니다.

-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aits 2006-12-1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나 고린내 물씬한 만화로 인생의 시시함을 음미하고 계시다니.
창으로 들어오는 환한 겨울 햇살이 요상하게 따뜻하여, 문득 시시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한 시절의 중간에 있는 것 같은 날인데...
패기는 없지만 반가운 맞장구 같은 리뷰, 좋네요. ^^

로드무비 2006-12-1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택, 나어릴때 님, 쓰고 보면 고린내니 뭐니 그 장단이 모두
그 장단인 것 같아서 요즘은 리뷰 써놓고도 영 거시기합니다.
모처럼 만화 보고 '필'은 받았는데 말이지요.
그나저나 요상하게 따뜻한 겨울 햇살이 왜 님의 창에만 기어드는 걸까요?^^

2006-12-18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6-12-1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고, 추천도 꾸욱.

sudan 2006-12-18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의 고린내 말고 따듯한 방에서 까먹는 귤 향기같은 만화 읽고 싶어요. 흑흑흑. 일보후퇴로 소중한거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는 말 너무 무서웠어요. 흑흑.

포인트 몇 백원만 더 쌓이면 만원 되거든요. 만원 되면 바로 주문해서 봐야겠어요. ^^ 좋은 만화 추천 감사해요.

로드무비 2006-12-1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 님, 저도 저 말 쓰면서 무서웠어요.
알면서도 뒷걸음치는 순간이 더러 있거든요.
포인트 몇백 원 뚝 떼어드리고 싶어라.^^

치니 님, 빨리 장바구니로 옮기시길.^^

그날 막 입사했는데 님, 님이 너무 예뻐서 그랬던 것 아닐까요?
점심이라도 거하게 드셨다니 다행.
정말 꼬소했겠어요.
저도 그런 전화 한 번 받아봤으면.=3=3=3

2006-12-18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1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송하다는 님, 저는 '시시'와 '황송' 사이를 왔다갔다 합니다.
그런데, 그, 그나마도 없애셨군요.
서운해라.;;

2006-12-18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18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blowup 2006-12-1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라닌은 그 솔라닌이군요.
저거 가정인가 가사 시험 문제에 나오던 거 아닌가요.ㅋㅋ
로드무비 님 서재에 드나드는 분 중에 저 만화에 열광할 이들 많겠어요.
저도!! 당장 보관함에 넣어요. 보증수표 같은 리뷰예요.

2006-12-18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19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한마디 님, 지난번에 주신 건 어쩌고요.
그에 비하면 약소하지요.^^*

namu 님, 소시지의 독 이름이 뭐더라?
'톡'자가 들어갔던 것 같은데.
전 그게 무서웠어요.
가사 시간은 또 을매나 싫었는지.

'보증수표 같은 리뷰'라니 입이 절로 벌어집니다.^^

2006-12-19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19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2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장해 두고 참고서처럼 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구나 CD꺼정 준다니.
사람 심뽀가 참 이상해요.
내 마음에 쏙 든 건 빌린 것도 자꾸 반납하기를
미루게 되거든요.ㅎㅎ

'겨울햇볕처럼 소중한 시간입니다.'
저도 그대로 따라해 봅니다.
쾌적한 하루 되시길.^^

난 그냥 ㅇㄹ으로 님, 제가 철모르고 날뛰던 시절을 기억하시는군요.
아닌가? 헤헤, 찔려서.
아무 염려 마시길요.^^

2006-12-20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2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메기 엽서 님, 헤헤. 제가 카드 대신 이 만화를 두세 분께
드리려고 했거든요.
쓸데없는 인사말보다 이 만화가 낫겠다, 하여.
그게 머리에 각인됐나 봅니다.
크리스마스 인사는 몇 줄 쓸 법 했는데. 그죠?
다음에 저의 지렁이 기어가는 멋진 글씨로 엽서 한 통 쓰지요. 헤헤~

주말에 좋은 곳 가시는군요.
'진주'는 제 마음속에도 예쁜 그림엽서로 간직되어 있는 곳입니다.
잘 다녀오시고, 메리 크리스마스!!!
(그곳에서 성탄절 연휴 보내시는 거 맞죠?^^)

2006-12-21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23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25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들레햄 땅의 마굿간 님, 좀전 좀 거칠게 리뷰 한 편 썼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니 리뷰를 꼭 쓰고는 싶은데 이상하게 잘 안 써져
끙끙거렸습니다.
반갑게 읽어주시겠지요?
라면집 그림은 다시 봐도 좋군요.
그걸 베들레햄의 마굿간으로 보신 님의 기지에 감탄하면서,
성탄절 잘 보내셨군요.
책은 오늘 주문합니다.^^
산타 노릇 재미있던가요?^^

 

제품명 : 겨울단상
모델명 : / 1314721933
제조자 / 국가 : / 중국
판매자 / 국가 : / 미국
가격 : \28,000 \24,500
배송 정보 : 수급 안정 / 공동 구매 종료 후 6일 이내 (토,일,공휴일 제외)
수량 :    공구 기간 : 2006-12-13 ~ 2006-12-21   Qty : 112/100
추가 정보 : 하단 코멘트란 필독
바쇼의 방랑규칙에 보면  '옷과 일용품은 꼭 필요한 것 외엔
소유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는데(중얼중얼)
다행히 토요일 밤, 눈이 왔다네.
지금 사방은 눈천지!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6-12-18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 보라가~ 휘이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우에~~
왜 이노래가 생각나는지 거참..^^

바라 2006-12-1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탐납니다...

BRINY 2006-12-1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건 정말 틀리네요!

2006-12-18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6-12-18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거 10x10에서 파는 건가요?

로드무비 2006-12-18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 님, 펀숍에서 파는 건데 품절되었다네요.
너무 아쉬워요.

아앗, 정말 이쁘군요 님, 우짭니까. 품절인데.
말씀만으로도......감사.^^
(어떻게 꼭 좀 구해 주시믄...*.*)

새벽별 님, 이제 멀쩡한 눈 뜨셔도 됩니다.=3=3=3

브리니 님, 저도 처음 보고 눈이 화등잔만해졌다지요.
그놈의 절약정신 때문에 놓치다니!^^;;

바라 님, 저도요.^^

메피스토 님, "그음순아, 오데로 가고"까지 써주시지 않고.=3=3=3


하루(春) 2006-12-1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뭐예요. 특이한 게 다 있네. 사신 거예요?

로드무비 2006-12-1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님, 저도 놓쳤답니다.;;

플레져 2006-12-18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세상에!
겨울을 가슴에 품을 수도 있었는데!

로드무비 2006-12-1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장난감 광고 한 번 거창하죠? 히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하는 마음.^^

2006-12-18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6-12-1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과 일용품은 꼭 필요한 것 외엔 소유하지 말라'
잠시 컴퓨터를 등지고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아이고머니나..
꼭 필요한 저녁거리는 막막한데.. 그 외의 잡동사니들은.. ^^;;;
그나저나 .. 저거 너무 신비로울 것 같아요.. 실제로 보고 싶네요 ..

로드무비 2006-12-1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iny 님,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로 딱인데!('' )
저녁거리는 막막한데, 책상 위며 방 꼴이며 저는 님보다 더합니다.
보나마나......
위안으로 삼으심이.^^

새벽별 님, 호호, 저도 꿀꺽꿀꺽. 볼 때마다......^^

확인해 보세요 님, 저 가게는 2년 전부터 들락거린 걸요.
다행히 산 건 몇 개 안 됩니다.
굴소년 피규어 세트를 저기서 구입했군요.
참 신기한 가게입니다.
품절 풀렸다는 정보 알게되면 꼭 달려와 귀띔해 주시길.^^


2006-12-18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1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러셨군요.
펀샵은 상품 밑에 댓글들도 무지 재밌던데
어떤 물건이던가, 서로의 취향을 확인하고 기뻐 날뛰는
두 남자가 인상적이었어요.
혹 그 중 한 분은 아닐랑가요?=3=3=3
 

정종 한 병 사들고 할아버지 제사에 갔지요
아버지 목소리가
집 앞, 옥수수 키처럼 높아졌지요
그래도 장남이 따라주는 술을 제상에 올리는 아버지는
오랜만에 장승처럼 커보였지요


"아비가 못 먹히고 못 입혀서
네 놈이 운동하는 것 같아
항상 맘이 편치 않다"
아버지의 삶은 소금꽃,
제 삶의 첫 선물이었어요
흉터 같은 첫사랑이었어요


"능력이 서로 다른데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가질 수는 없다
사회주의는 땀 흘리지 않고 돈 벌려는 도둑놈 심보가 아니냐
이철이나 김문수 같은 놈들 봐라
한때 운동한다  동네방네 떠들다가도
운동권 경력삼아 여당 야당 들어가서
입 다물고 있는 꼴 좀 봐라
저렇게 운동하려면
일찌감치 때려치워라"


- 아버지
사회주의는 현실의 모순에 눈 돌리지 않는 거예요
아버지의 삶처럼 벼랑 끝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거예요
이건희의 얼굴이 김영삼의 얼굴을 닮아가듯
사회주의는 이 땅 아버지의 모습처럼
정치권력을 바꿔내는 거예요
수십 년을 하루로 압축한 날들이 와요 아버지!

"내 그런 날이 생전에 살아 생전에 올지 모르겠다만
이제 네 나이도 서른인데
운동을 하더라도
네 살 궁리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
굳이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엄마 마음 고생하지 않게 해라"


아버지는 제사상처럼 오래도록 말이 없었지요
말없이 술을 드시던 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제 살을 태워 길을 낸 지방처럼
말씀했지요


"그리고 네 놈이 詩를 쓴다고 하니
한 마디만 덧붙이자
詩는 우주만물을 몇 문장 안에 표현하는 일이다
시는 무한히 크고 또한 작은 것이다
말장난하지 말고 영혼으로 써라!
詩에 네 운명을 표현해라!"

                      
                               -- 조성웅 시집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중
                                       '詩에 네 운명을 표현해라'  全文,  2001년, 도서출판 갈무리 刊

 

감옥에서 나온 지 벌써 3개월
쉴만큼 쉬었다
그러나 눈썹 밑을 파고드는 이 불안함은 무엇인가
활동은 온전하게 내 것이었는가?
칠순 아버지는 갈수록 술주정이 심해지고
아버지의 술주정을 피해 시간을 보내려던
칠순 어머니는 매일 양말공장으로 출근한다

                    (조성웅詩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중에서)

 

도서출판 갈무리의 '마이노리티 시선' 11권.
시인의 칠순 술주정뱅이 아버지 말씀보다 남편의 술주정을 피해 양말공장으로 출근한다는
어머니의 삶에 시선이 꽂힌다.
"이철이나 김문수 같은 놈 봐라"는 아버지의 말도 통쾌하고.
갖은 핑계를 대며 현재의 자신을 합리화하지만 그게 어디 통해야 말이지.
그나저나 시인의 말처럼 '수십 년을 하루로 압축시킨 날'이 올까?

새벽에 일어나 정신을 번쩍 깨우는 찬물 한 사발 같은 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udan 2006-12-1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은 드셨어요? ^^
덕분에 좋은 시 읽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6-12-1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dan 님, 이 누꼬!
반가워라.
아니요, 좀 있다 먹으려고요.
님은 벌써 출근하셨겠네요.

큰 기대 없이 주문한 시집인데 시들이 좋아서 흐뭇합니다.^^

2006-12-14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owup 2006-12-14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로드무비 님.
이런 시들을 어쩜 그리 잘 찾아내시는지.
찬물이 아니라 얼음물처럼 얼얼해요.

urblue 2006-12-14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인데 일이 많으신가봐요. 다행인가 불행인가. ^^

에로이카 2006-12-1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십년을 하루로 압축시킨 날"과 "우주 만물을 몇 문장 안에 표현하는 일" 간의 댓구가 인상적입니다. 이런 시들은 가볍고 얄팍하니 하루하루 사는 제 모습을 반성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죄책감과 미안함이 눈썹 밑으로 파고들지요.. 잘 봤습니다.

플레져 2006-12-1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송전차, 샀어요. 어제 조금 읽었는데 회송전차의 의미가 너무도 맘에 들었어요 ^^
(페이퍼와는 다른 댓글이지만...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ㅎㅎ)

짱꿀라 2006-12-15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오랫만에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가네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 시였습니다.

니르바나 2006-12-1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시인들은 로드무비님 같은 독자가 있어서 행복하실 듯 싶어요.
이름이 보이는대로 시인 성함 몇 분만 적어도
조성웅, 이병률, 박흥식, 우영창, 이재무...
시인협회에서 상 주겠다는 이야기는 없으신가요.ㅎㅎ

로드무비 2006-12-15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 님, 앞으로도 좋은 시들 꾸준히 소개할게요.
그리고, 글쎄말입니다.
상을 준다고 하면 덥석 받을 텐데......^^

santaclausly 님, 많은 것이 불쑥불쑥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연말이라 그럴까요?
님도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플레져 님, <회송전차>는 오래 전에 사두고 최근에 읽었어요.
책을 읽는 시기도 보면 정해져 있더라고요.
그런 산문들을 저도 쓰고 싶어요.

에로이카 님, 가볍고 얄팍한 하루하루라면 저를 따라올 사람이 있을라고요.
그래도 저 반성 안합니다.
시를 열심히 읽는 것으로 시인들에게 최소한의 보답을......^^*

블루 님, 일이 많기는요. 게을러서 그렇죠.
그래도 이번주에 책장수님이 책들을 싹 정리했어요.
사두고 읽지 않은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먹지 않고도 배가 부릅니다.^^
(연말이라 바쁘신가요?)

namu 님, 나어릴때 님 페이퍼를 보고 알게 된 시인입니다.
시들이 참 좋아요.
든든합니다.^^

속삭이신 님, 시가 마음에 드신다니 흐뭇합니다.
선이 굵으면서도 섬세한 결을 갖춘 드문 시인 같아요.^^






2006-12-15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15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12-1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퍼갑니다.
좋은 시입니다.

로드무비 2006-12-1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 님, 퍼가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침마다 보따리 님, 아이고, 그렇군요. 짐작은 했지만.
제 남동생도 아버지에게 '빠따'를 맞고 책들을 압수당한 적 있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생활이 조금 더 쾌적해지길 바랄게요.^^

반가운 분이 누구일까요?( '')
버선발로 달려가겠습니다.^^


2006-12-17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17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