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지음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2주 전인가 3주 전, 금요일 밤에 길을 나섰다.
"겨울바다를 보러 가자"고 아이를 꾀었지만,
최종목적은 '겨울바다'가 아니라 대포항의 '회'와 강구의 '대게'였다.
회와 대게 여행이라니, 1년에 한 번 정도는 이런 호사도 필요하다.

먹다남은 찌개에 물을 부어 새로 끓인 찌개처럼 만드느라,
그동안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식탁뿐 아니라, 가물에 콩 나듯 들어오는 일감도, 알량한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다행히 남편은 나의 그 모든 뻔한 수작을 모른체 눈감아 주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 다시 신발을 벗고 들어와 한강의 책과 음반을 챙겼다.

서너 시간을 달려 새벽 두 시에 바닷가에 도착,
혹시 문을 연 횟집이 없을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
그곳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새벽에 바닷가에서 먹는 회와 매운탕과 술은 기가 막혔다.

다음날 아침(이라 해봤자 정오 경) 눈을 뜨자마자 예쁜이 아줌마 노천횟집에 가서 
또 회를 시켜 먹었다.
따로 시켜야 하는 오천 원짜리 매운탕에 웬일로 우럭이 한 마리 통째 들어 있어 행복했다.
우노윤호를 닮은 금발의 청년이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매운탕 냄비, 빈그릇을 챙기려고
비닐 포장을 걷자 짙고 푸른 초록인지 진회색인지 울렁울렁한 바다가 다가왔다.
다가왔지만, 솔직히 바다는 뒷전이었다.

7번국도를 따라 차를 달리며 한강의 노래를 들었다.
연필조차 손에 들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도 어떤 멜로디가 찾아왔다고 한다.
깊은 산골 점방, 노파의 외상장부처럼 그렇게 이 작가는 멜로디를
자신의 공책에 떠듬떠듬 옮긴 것일까?
그리고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마침내 입을 열었을까.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은 것같은, 소설가 한강의 바람을 닮은 목소리.
그 목소리가 자신이 작곡한 어떤 노래에는 참 잘 어울리고
어떤 노래에는 좀 엉뚱하고 생뚱맞다 싶기도 했지만.
이 작가의 골수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일 듯.

이 책은 흥얼거리다, 귀기울이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그리고 (추신) 검은 바닷가 그 피리소리,
네 부분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그 중 두 번째는 임방울의 '쑥대머리'나 들국화의 '행진', 메르세데스 소사의 '인생이여, 고마워요'
자신이 한때 혹은 오래 귀기울였던 음악들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놓고 있는데
오래 전 메모지에 또박또박 적었던 나의 음악다방 신청곡과 여러 곡이 겹쳐 참 반가웠다.


그러고 보니 이 리뷰도 먹다남은  찌개에 물 부어서 끓인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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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1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owup 2007-02-2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먹다 남은 찌개에 물 부어 끓인 게 더 진하고 맛있다구요.^^
삼탕까지는 괜찮아요.>.<

로드무비 2007-02-21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 님, 하하, 김지원 채원 자매가 어머니 최정희 씨가 끓인 삼탕사탕 찌개를
질색했다는 글을 언젠가 재밌게 읽었는데.
명절 뒤끝의 잡탕찌개가 전 또 그렇게 싫었거든요.
이젠 없어서 못 먹습니다.^^
(namu 님도 찌개 물 부어서 재탕 삼탕 끓이세요? 못 믿겠어라.=3=3)

주저리주저리 수다장이 님, 애인과 함께 저를 모시고, 불끈=3
꼭 그런 날이 오기를!^^

oldhand 2007-02-2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1월에 정동진과 울진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대게'를 먹으러 간거지요. 아, 진짜 맛있었어요. 아울러 7번 국도의 경치도 마음에 잘 담아 왔습니다.

하루(春) 2007-02-2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X5
마지막 줄... 정말 요점정리 잘하셨어요. 사고 싶군요.

nada 2007-02-2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여인네는 무슨 재주가 그리 많답니까. 항상 가만가만, 평온해 보여서 좀 정이 안 가요. 리뷰, 전혀 먹다 남은 찌개 같지 않아요~

로드무비 2007-02-22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 님, 하하, 좀 그렇죠?
그런데 글을 읽어보면 그 평온해 보이는 모습 뒤에
많은 것을 겪고 있더라고요.
남 모르는 방황과 고독도 멸치국물처럼 우려서
글이나 노래로 풀어내다니, 정말 놀랐어요.^,.~

하루 님, 하x5가 뭡니까요?
그리고, 지가 또 요점정리라고 하면 일가견이 있습지요.=3=3
(사시는 것 찬성!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또 모르지요. '')

올드핸드 님, 하하, 반가워라.
울진 후포항에도 잠시 들렀는데
대게가 좀 신통치 않더라고요.
다음엔 주문진과 태백에서도 노닐고 싶어요.
콩주가 냠냠짭짭 대게살을 잘도 받아 먹었겠군요.^^

진달래 2007-02-2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가만 따스해지는 글인데요... ^^
아무튼 맛은 새로 끓인 찌개처럼 산뜻합니다. ^^

치니 2007-02-2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가 노래도 잘 하나보네요. 어찌된게 한가지 재주가 출중한 사람들이 다른 재주도 가진 경우가 주변에 허다한거 같아요, 무재주 상팔자라나 뭐라나, 헤헷.

에로이카 2007-02-22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이 드디어 판을 냈군요... 옛날 '검은 사슴'을 보고 먹었던 충격 때문에 가리왕산 하얀 자작나무숲, 태백 그 동네 일대를 갔던 적이 있었어요... 폐광 전이었는데... 그 소설과 계속 겹쳐서 참 마음이 무거웠던 걸로 기억하네요.

맛있고, 즐거운 나들이길이셨겠어요... 부럽습니다. ^^

로드무비 2007-02-2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우와, 소설 정말 많이 읽으셨군요.
천지간에 이어, 작품 속 지명 따라 여행까지......
이번 여행길에 태백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였어요.
행선지를 좀 바꿔볼까 하다가 다시 강구 쪽으로......
대게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었답니다.
가리왕산 하얀 자작나무숲이라니, 텔레비전 디지털미술관에서
언제 그림이나 사진으로 본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가보고 싶네요.
2년 만의 먹자판 나들이였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언제 님도 꼭!^^

치니 님, 노래라기보다 허밍 같기도 하고......묘한 분위기였어요.
재주 많은 사람 보면 별로 안 부러우시죠?(그럴 것 같아요.)
전 부럽습니다.=3=3=3

카페인 님, 페이퍼로 올릴까 리뷰로 올릴까 잠시 망설였는데,
그리 말씀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2007-02-23 0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23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니앤 2007-04-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신간소식이네요_ 2개월이 지났지만: - )
저는 어제 바다가 너무 고파서(?) 춘장대 해수욕장 다녀왔어요
갯벌이 무한대~ 좋았어요
 

심혈을 기울여 끓인 육수가 어쩌다 맛이 못 미칠 경우, 그날의 장사를 포기하고 솥째 쏟아버린다는
시장통 식당 여주인의 얼굴이 생각난다.(텔레비전에서 봤다.)
콩국수 식당의 한 여주인도 준비한 콩물이 신통찮으면 몽땅 버리고 가게 문을 하루 닫는다고 했다.
이상하게 1년에 하루이틀은 꼭 그런 날이 있더라고.
그들의 자부심이 정말 부러웠다.

-- 아이, 그렇다고 솥째 버릴 건 뭐람, 오늘은 음식 맛이 좀 덜하다고 손님들께 솔직히 얘기하고
반값만 받든가, 서비스로 그냥 대접하든가.

나는 내심으로는 그 멋진 여주인들을 부러워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장편이 나왔길래 두말없이 주문하고 어제오늘 바로 읽어치웠다.
아아, 정말로 낯설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 성실성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큰 주제를 하나 미리 정해놓고 억지로 이야기를 짜맞춘 듯한,
생동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들의 구태의연한 대사와 행동들.
영혼의 변화.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길래......

그는 도대체, 그로부터 얼마만큼 멀리멀리 흘러가 버린 것일까.

옛날옛날 내가 살던 동네 합정동의 로터리에는 낡은 건물 2층에 '민컴'이라는 컴퓨터 관련
사무실이 있었다.
출퇴근길 오며가며 그 사무실 창문을 바라보았던 건 민청학련 주인공 중의 한 명이었던
국회의원 이철이 아내와 함께 칼국수집을 하다가, 또 먹기살기 힘들어 호구지책으로
컴퓨터 관련 잡지 창간에 뛰어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민컴'으로 그 장소였던 것.
국회의원 이철이 사형수에서 벗어나 생활인으로 열심히 일하던 현장을 매일 지나다니는 것도
나에겐 감격이었다.

내가 모르는 당신들의 사정도 있을 터이니 나를 계속 감동시켜 달라는
무리한 주문은 안하겠지만, 한 명 한 명 너덜너덜한 문짝이 되어 떨어져 나간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존경하는 작가가 또 어마무쌍한 추천사를 책 뒤에 써놓았다.
내가 그의 소설을 심각하게 잘못 읽은 것은 아닐까?

아무튼 지금은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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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7-02-12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인지 말씀을 해 주셔야... -_-a

로드무비 2007-02-12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말해야 해요?-_-b

치니 2007-02-12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말해주세요, 그래야 또 다른 피해자(?)를 미연에 보호하죵 ~

로드무비 2007-02-12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님, 혹시라도 제가 그 책을 잘못 읽었으면요?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해 미치겠다 하는 분에게는
귓속말 정도 해드려도 되겠지만, 페이퍼상으론 안 밝힐랍니다.
이해해 주세용.

진달래 2007-02-12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궁금해 미치겠는 걸요... 안 사보려고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꼭 사볼 듯... 해요. 아님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궁리 중. (뭔 책인지도 모르면서...)

nada 2007-02-1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마지막 문장이 왜 이리 재미난지. 저도 가끔 그런 기분 드는데. 히. 심혈 육수만 해도 그래요. 솥째 버릴 건 뭐람, 에너지 낭비잖아요. 근데 그런 존심 때문에 대가인가 봐요. 그 문짝 모르긴 몰라도 안타깝네요. 살짝 골방에라도 넣어두면 안 될깝쇼.

2007-02-12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02-12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놈의 추천사들은 뭐 거의 주례사 아닌가요? 아니다 싶으면 거절도 하고 아니라고도 쓰고 그래야 추천사든 비평이든 살아남을 수 있을텐데말입니다. 너덜 너덜 문짝들이 그래도 아직 고칠 수 있을때 여기저기 수리해서 다시 반듯해지면 좋겠구만요. ^^

2007-02-12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12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07-02-13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궁금해서;;;;;;
귓속말이라도 알려주시어요;;;

2007-02-13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ndcat 2007-02-1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멋져요, 아침마다 문짝 거리를 지나오거든요. -_-
홍제동 쪽 가다보면 문짝집이 즐비.
여기저기 휘파람 부느라고 바쁘시지요? 제 방에도 좀.

2007-02-13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13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감감한지라 님, 하하, 어쩜 그리 잘 아시는지.
궁금해서 뒤늦게 리뷰들을 읽어봤는데 별 다섯 개가 많더군요.
제가 변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암튼 샤프하셔요.>,, <

아침마다 문짝거리 님, 휘파람은 잘 못 불지만, 삐이익~~(삑사리)

여러 모로 힘든 세월 님, 지난해 송년회 때 몇 년 만에 만난 후배들이
저를 보고 힘빠졌으면 어쩌죠?
제가 좀 후배 몇몇에겐 인기가 있었는데, 영육간에 워낙 망가져서.
님의 댓글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꼴저꼴 지켜보는 것 힘드시죠?
하지만 님은 정말 멋지신걸요.^^

키티 님, 잠시만 지둘리세요.^^

할 일의 무게 님, 능력이 있으니 그런 할 일들이 생기는 거랍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래요.
메모해 주신 것 수첩에 옮겨적었습니다.^^

족집게 님, 자리 펴시죠.=3=3=3

FTA반대 바람돌이 님, 수리할 에너지가 없습니다.
성한 문짝을 제가 잘못 본 건지도 모르겠고요.
균형 잡힌 추천사, 참 보기 어렵죠?
명사들이 추천사 쓰기 싫어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 듯.;;

번듯한 문짝 행세 님, 하하하~ 제가 보기엔 그래도 충분히
될 것 같은데요?^^*
(나중에 다시 나가떨어지더라도.)

꽃양배추 님, 심혈육수! 으으~
요즘 제가 제일 탐내는 게 그 심혈육수랑 잘 말린 시래기입니다.
대가의 자세는 다르죠?
남이 버리는 육수에도 껄떡대니, 전 꼭 시궁쥐 같구만요. ^^
(골방에 잠시, 거 좋은 생각입니다요.)

카페인 님, 아이구, 제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나요?
잠시.=3=3=3













건우와 연우 2007-02-13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한때 문짝이 되어주었던 것에 감사해야하는걸까요...
아직 남은 추위에 너덜너덜해지는 문짝은 목덜미를 제법 선득하게 합니다. 작가뿐 아니라 추천사를 쓰신 분까지 미더웠던 마음을 식게 해버렸나봐요...
궁금하지만 어느날인가 좀더 내놓고 씹고 싶은날 그땐 알려주시어요....

2007-02-13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13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7-02-13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페이퍼가가 어쩌다 수준에 못 미칠 경우, 그날의 뻬빠질를 포기하고 통째로 비공개로 돌려버리는 어느 알라딘 서재인이 생각난다.(가끔 로드무비님 서재에서 봤다.)=3=3=3=3=3

로드무비 2007-02-14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 니임,

1. 저는 페이퍼나 리뷰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
2. 그럼에도 수준에 못 미치는 페이퍼는 없습니다.=3=3=3
3. 가끔 카테고리 통째 비공개로 돌리는 건, 그날 올리는 페이퍼와 아무 상관 없이
너절하게 늘어놓은 게 너무 많다고 생각될 때.
그러다 퍼올 글이 생기거나 영화 이야기 쓰고 싶으면 서랍 열고요.

이상, 묻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성실한 답변이었습니다요.^^*

파리의 연인들 님, 비가 내리면 참 아늑하죠?
길거리에 있어도, 집에 있어도.
저도 그 영화 보고 싶어요.
볼 수 있을지......
명절 인사는 나중에 드릴게요.

풋사랑 님, 취향도, 생각도, 보는 시각도 모두 다르니까요.
어찌 보면 제가 웃겨요.
혼자 좋아하고 기대 잔뜩 했다가 혼자 실망하고.ㅋㅋ
그런데 실망했다기보다 화가 나더라고요.
좋아하는 작가도 내 서방처럼.
제가 아직 그렇게 순진무구하답니다.=3=3=3

건우와 연우 님, 한때나마 문짝이 되어주었던 것에 감사.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훌륭한 작품을 몰라보고 패악을 부리는 게 될까봐
이름과 작품을 안 밝혔습니다.^^





2007-02-15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2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랑소년 님, 세월의 선물은 어땠는지요?
저도 명절에는 형님 댁에서 전 부치는 게 전붑니다.
이번에는 그나마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못하고, 설겆이만......
보내주신 추억의 도시락은 야곰야곰 한 개씩 잘 까먹고 있답니다.^^
 
느낌으로 아는 것들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노후에 대비해 개인연금을 따로 부을 용의가 없냐는, 어느 날 걸려온 모르는 이의 전화에 
이 책의 주인공은 능청맞게 대꾸한다.

--노후에 대해 왜 걱정을 해야 하는데요? (220쪽, 에필로그)

상인이나 여호와의 신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바쁘다며 인터폰으로 따돌리는 데는 이력이 났지만
"왜 문을 열어보지도 않고 사람을 돌려보내느냐?"는 딸아이의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건 이미 내가 세상에 대한 불신과 의혹으로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서운 세상이니 함부로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그렇게 가르칠 수도 없고......

호어스트 에버스는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를 쓴 사람이라는데
난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모두가 좋다고 하면 왠지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것도 내 병폐.

어제 오후, 불량한 자세로 드러누워 이 책을 읽다가 나는 프롤로그만 읽고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잡았다.
커피메이커와 거미와 자기자신을 엮은 대수롭지 않은 얘기만으로도 사람을 홀딱 빠지게 하다니......

동전을 넣어도 제멋대로인 커피 자판기를 보며 그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는 자판기를 이해한다. 늘 이건 무리다 싶고 어딘가 고장난 것 같은 그 상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바로 내가 그러니까.
지난해만 해도 나는 거의 항상 망가진 상태로 마냥 퍼져 지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그런 세월들도 있달밖에.
물론 가끔 상태가 좀 나은 날도 있었다.
('망가지는 거야 순간이지' 40쪽)

이를테면 그는 공원 같은 곳을 산책하다가 아이들이 차던 공이 자기 앞으로 굴러오면
제깍 돌려주는 법 없이 나름대로 온갖 현란한 묘기를 선보이다가 도리어 웃음거리가 되는 타입.

--이 황당하고 생뚱맞은 공연은 흔히 아주 길게 이어지곤 했다.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은 땅거미가 드리울 무렵 공을 돌려보낼 주소를 적어 내게 찔러주고
플레이스테이션을 하러 집으로 갔다.
('더이상 우리의 능력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된다고?' 66쪽)

나는 이 책에 나오는 황당하고 생뚱맞은 이야기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개인연금  권유하는 전화를 걸어온 이를 잘 구슬러 휴대전화가 잘 터지게 하는 여행가방
팔아넘기는 데 성공할 정도이니, 그 능청이라니!

전화나 인터폰으로 사람을 따돌릴 때 희미한 가책을 느끼는 내가
세상에서 단 한 가지  배우고 싶은 게  바로 그 능청. 독창적인 처세술!
<느낌으로 아는 것들>이란 이 책의 제목과 유니크한 그림의 표지를 보는 순간
나도, 느낌으로, 딱, 알았다.

호어스트 에버스는 역자(김혜은)를 정말 잘 만났다.
내용에 어울리는, 산뜻하고 도발적인 문장이라니......
혼자 보기 아까워서 옮긴이의 멋진 말도 몇 줄 소개한다.

--물론 순 '뻥',  십중팔구 지어낸 얘기겠죠. 하지만 호스트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유치원생)아이의 공작 준비물 챙겨주는 일, 누가 대신해줬으면 싶은,
그러나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 어른애진짜 애를 거두는 일의 신산함을.
떠밀려 무늬나마 어른이 되어가는 일의 난감함을. 천근만근 무거워진 구두를.
역시 후생後生은 가외可畏입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224쪽)

(독일 지명 중심의, 책 맨 뒤에 있는 '찾아보기'도 무지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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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2-1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옮긴이의 말 때문이라도 읽고 싶어지네요.
능청스럽다는 말을 가끔 듣지만, 정말로 능청 부릴 자신이 없는 저로선
끌리는 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로드무비 2007-02-1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장수 님, 능청도 학습이나 부단한 연습으로 가능할까요?^^

나비80 2007-02-1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넉살이나 능청이라면 제가 대표급입니다.^^
고로 식당에서도 아주머니들에게 가장 양 많은 식판을 선사받곤 했죠.
그러나 그게 어른들에게만 약발이 듣는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애인이 없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게 들켰겠지요ㅋㅋ)

로드무비 2007-02-11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부답 님, 열 아주머니에게 인기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하하.=3=3=3
(사실은 부러워서용.^^)

nada 2007-02-11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옮긴이의 말이 혹하게 만드네요. 무비님 리뷰도 참으로 탐스럽고요. 으윽...신산한 자판기 인생.

로드무비 2007-02-11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 님, 와락.=3
요즘 많이 바쁘십니껴?
(지난주 울진을 잠시 차로 지나쳐 오느라 사투리가!ㅋ)
이 책 제 취향엔 맞았어요.
옮긴이의 말은 정말 최고였고요.^^

sudan 2007-02-11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찾아보기'가 재미있다는 말씀에 궁금해져서 저도 모르게 장바구니에담기 단추를 클릭해버렸어요.(요즘 긴축재정 모드인데. ^^;;) 로드무비님은 읽으신 책들에서 좋은 점을 잘 찾아내시는 것 같아요. 책이 실망스러웠다던가 하는 말은 잘 못들어봤어요. 재미없는 책은 아예 리뷰를 안 올리시는건가요?

라로 2007-02-11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그 방대한 독서량과 글빨에 주눅들었는데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를 읽지 않으셨다니 갑자기 룰루 랄라
물론 읽지 않으신 이율 들었지만 서도~~~으쓱~~.ㅋㅋ
한심하죵?ㅋㅋㅋ
단순한게 무기랍니다. 능청엔 사실 한심과 단순이 기술이거든요~~.ㅋㅋ

로드무비 2007-02-1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bi 님, 방대하긴요, 저야말로 편향적인, 가벼운 독서만 하는 사람인데.
다음 주문 때 <세상은~>도 넣을려고요.
그리고 한심하긴요, 귀여우십니다.
한심과 단순이 능청의 기술이라는 말씀도 이해가 됩니다.^^

수단 님, 내일 몇십 원 들어오겠군요. 히히~
읽고 별로 느낌이 안 좋은 책에 대해 쓰는 건 시간이 아까워서요.
그 리뷰 보고 혹여라도 누가 스트레스 받을까봐 그것도 신경 쓰이고.
그리고 제가 선택한 책은 대체적으로 괜찮더라고요.
취향 따라 고른 것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제 리뷰 보고 책 샀다가 낭패스러운 분도 더러 계시겠지요?
수단 님은 어떤지 문득 궁금합니다.^^
(긴축재정이 풀리도록 보너스 많이 받으시길 기도.^^*)

라로 2007-02-1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몇백원 들어오실거야요~.
제가 몇권 주문했걸랑요~.ㅎㅎ
(꼭 밝혀야 직성이 풀리는 못말리는 성격!!흑)

로드무비 2007-02-12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bi 니임~ 돈 몇백 원에 절로 콧소리가 나오는군요.
자신의 선행은 꼭 밝혀야 직성이 풀리는 못 말리는 성격, 바람직합니다.
저도 그런 경향이 있거든요.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2007-02-13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16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터라겐 2007-02-2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듯 합니다. 책을 보면 제목은 읽은게 기억나는데 왜 작가 이름은 생각이 안나는지.. 저도 세상은.. 이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그 재미에 다시 빠지게 생겼습니다. 내일 월급날인데 제대로 지름신이 내려옵니다..^^ 연휴는 잘 보내셨지요? 저는 아주 앉지도 못해요.. 3일동안 불어 버린 뱃살이 같이 춤추자고 합니다.

프레이야 2007-02-2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좀 '능청'을 배워야겠어요.
리뷰가 아주 재미있어요.^^

2007-02-21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2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물게 솔직하고 힘찬 님, 헤헤, 뭐 잠시 그런 충동을
희미하게 느꼈던 거고요.
'불편한 자의식'이라는 표현에 잠시 멈칫했답니다.
자의식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언제 이야기 좀 나누어요.^^

배혜경 님, 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
원하시는 만큼 능청을 획득하시길요.^^

인터라겐 님, 오늘이 월급날이군요.
장바구니 터지게 담으세요.ㅎㅎ
덕분에 연휴, 잘 보냈고요.
뱃살과 함께 블루스를, 저와 같은 형편이시군요.^^


반딧불,, 2007-02-2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추천수에 놀라고 있습니다.
설 잘 쇠셨죠??

로드무비 2007-02-2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 님, 님도 설 연휴 잘 보내셨지요?
추천수는, 이런 책의 경우 먼저 쓰는 사람이 몰아서 받는 것 아닌가요? 히히^^*

비로그인 2007-02-2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를 쓸 줄 아는 것은 -
분명 재능이지요. 문장력과 '끌림'을 가지고 있달까. 문장력이 이쁘고 멋진 꽃이라면
'끌림'이 아주 달콤하고 영양많은 꿀이겠지.
꽃이 이쁘다고 모든 곤충이 오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로드무비'님의 글에는 꿀이 발라져 있어요. 하지만 무슨 색일까?

로드무비 2007-02-2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 SHIN 님, 혹시 된장이 발라져 있는 건 아닐까요? 하하~~
 

그 식당 차림표에는
열 가지가 넘는 메뉴가 준비되어 있고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인데
가령, 낙지볶음은 한 접시에 기껏 오천 원이다

홀 한쪽에는
주방으로 쓰는 싱크대와 장탁자가 있고
식탁은 세 개
의자는 열세 개 있다

손님은 하루 평균 여남은 명인데,
어쩌다 술손님을 한 팀 받기라도 하는 날이면
주인아줌마는 기꺼이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그 식당이
텅, 텅, 비어 있던 어느 날
나는 거기서 짠 국밥 한 그릇을
신김치와 콩나물무침으로 먹은 적 있다

어쩌다 이렇게 조용한 주택가 길목에
이런 식당이 허술하게 문을 열고 있담,
생각하는 것이 상식, 그 상식을
보기좋게 뒤집으며 식당은 거기 있는 셈인데......
한번은 세무서에서 나온 젊은 주사가
조용히 업종 전환을 권유한 바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식당 아줌마는 늘 준비해 놓은 반찬 중에서
날짜를 못 이겨 상하기 직전인 것만으로
자신의 식사를 해결하곤 하는데,
그 처연한 혼자만의 식사를
그 앞을 지나다니며 무심히 몇번 보았다

삶이란 게 그런 것은 아닌가,
쉬어빠지기 직전의 음식을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느릿느릿 씹어대는, 어떤 말로는 다 못할
무심함 같은 그런 나날들의 이어짐......

                                    -- 시집 <물방울 무덤> 중에서, 2007년, 창비 刊

 



--------------------------------------

얼마 전 인간극장에서는 혼자서 환경미화원 일을 하며 어린 세 자매를 키우는
씩씩한 젊은 여인의 생활을 보여주었다.
갓 서른.
자신의 직업도 처지도, 그녀에겐 도무지 당당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구역에서 죽은고양이를 만난다.
어떤 더러운 것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치우는 그이지만,
죽은 동물의 몸뚱이는 아킬레스건.
망설이다 울며 부들부들 떨며 진저리를 치며 그 무서운 것을 치우는 그녀를 보며
함께 가슴 졸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산다는 건  자신에게 가장 무서운 것을 번쩍 들어 치울 수 있기까지의
지난한 단련, 혹은 수행 과정이 아닐까?

낡은 '잠바'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소읍을 느린 걸음으로 돌아다니던
엄원태 시인의 시집이 12년 만에 나왔다.
그의 정다운 눈길과 발길은 여전히 그 소읍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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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2-10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속으로 달리는 일상생활에서도 그래도 가끔은 한턴씩 쉬어주면서
사소한 것일지라도 느끼고 뒤돌아보는 생활을 지향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더라구요...^^

2007-02-10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2-10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지 않은 일이 삶을 지속하는 일 같습니다.

로드무비 2007-02-1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어빠지기 직전의 음식엔 토마토 케첩을 듬뿍 뿌리면 최고지요.
국물 쪽 음식이라면 마늘과 고춧가루를 팍팍.
그런 에너지가 없어서 버리는 쪽입니다. 저는 가차없이.....

물만두 님,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고, 그죠?

뭐라 말할 수 없이 님, 고달프고 울적하고,
어제 저는 <느낌으로 아는 것들>이란 책을 읽고 원기를 좀 회복했습니다.^^
(리뷰 쓸까봐요.)

메피스토 님, 광속으로 달려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전 한 번이라도 꼭 그렇게 살아보고 싶군요.=3=3=3
(님은 한 턴 아니라 두 턴씩 쉬어주시는 분 같은데요? 가끔!^^)

에로이카 2007-02-12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도, 인간극장 얘기도... 참.. 가슴 깊이 남습니다... 혼자 밥 먹는 일이 많은 저는... 볼이 터져라 밥을 쳐넣고 눈물 흘리는 게 가장 서러운 눈물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시인의 시각이 다소 부담스럽습니다... "그 처연한 혼자만의 식사"라니... 혼자 먹는 밥도 오래 먹다 보면 괜찮은데 말이예요... 어쩌면 시인이 '무심히' 몇번 보았다고 썼지만, 그 아주머니는 그 눈길에 오래 노출되고 싶지 않아 허겁지겁 먹었을지도 모를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괜한 자기동일시입니다.. 헤헤..

로드무비 2007-02-1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제가 새끼손톱만한 금붕어도 죽으면 못 건져올리는
위인이거든요.
그러니 고양이는......으으으......
사람마다 속으로 무서워하는 게 다 다를 것이고.

그리고, =3 혼자 먹는 밥이 뭐 어때서요.
시인이 그 아줌마의 밥상을 오해했을 수도 있는 일이고.
혼자 먹는 밥도 맛나고 여럿이 먹는 밥도 맛나고,
그것이 저는 도리어 문제여라.^^


2007-02-12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12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12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12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없는 말, 전화, 참 딜레마지요.
현명하게 잘 판단하시길.
반신욕 끝났죠?
지금 반짝반짝 무지 예쁘시겠어요.^^*
 

오늘 아침 등교준비를 하면서, 방학 동안 만들기 한 것이 없으니
에그몽이라도 가져가야겠다며 열두어 개 조립하여 책상 위에 모아 놓은 걸
딸아이는 태연한 얼굴로 보조가방에 주섬주섬 담는다.

"에그그, 그걸 방학숙제로 가져간다고?"

나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걀 모양의 초콜릿 안에 들어 있는 아이 새끼손가락만한 플라스틱 조립 장난감은
깜찍한 것도 있지만 조잡한 것도 있다.
자동차, 동물,  놀이기구, 뭐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네다섯 종 묶여서 나온다.
문제는 가게에서 무작위로 골라야 한다는 것.
겉으로 봐서는 어떤 놈이 어디 들었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가령 어제 바퀴를 굴리는 곰돌이를 만들었는데 오늘 또 똑같은 게 나오면
그렇게 맥이 빠질 수 없다.
어른이 이런데 아이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의 정성 가득한 카드를 받았을 땐
자신은 사둔 카드와 편지지가 없다며 스케치북을 북 찢더니 가위로 쓱싹쓱싹 오리고
풀로 붙여 직사각형의 봉투를 만들었다.
그리고 연필로 뚜껑에 해당하는 부분에 크게 V 모양을 그려 그것이 봉투라는 걸 
확정 짓는 게 아닌가.
저런 거침없는 태도와  단호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예쁜 카드를 사러 가자니 필요없단다.
자신은 당장 편지를 써야 한다고.

다음날  남편은 그 괴상한 크리스마스 편지를 출근길에 가지고 가
출판사의 봉투에 책을 한 권 넣어 함께 부쳤다.

오늘 아침 나는 에그몽 장난감 몇 개를 만들기 숙제라고 학교에 가져가는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문득 오래 전 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사한 집으로 초대를 하여 갔더니 카레라이스를 한 그릇 달랑 내놓았다.
혹시 김치는 없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도 얼마나 태연한 얼굴인지......적어도 그때는 김치 없는 상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6년차 주부였다.)

쓰다보니 나 자신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는, 이상한 글이 되어버렸다.








에그몽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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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7-02-0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실례되는 행동이 아닐까 전전긍긍하고 사는 것보다
뻔뻔스러울 정도의 당당함(?)이 나에게도 남에게도 더 보기 좋은거다.
이런 얘기 아닐까요?^^ 아님 말구.
(저 자신 저런 태도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눈치보는 자신을 느낄 때가 있지요^^)

BRINY 2007-02-0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임기응변 능력은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숙제 못했다고, 개학날 아침에 징징거리는 아이보다 백배 천배 낫지요~

로드무비 2007-02-0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 님, 임기응변 능력이라기보다는 얼렁뚱땅 능력 같아서요.^^

깍두기 님, 아님 말구.ㅋㅋ
한상 떡 벌어지게 차리고도 뭔가 모자라다고 느끼는
그 경지에 오르고 싶기도 하고.
오락가락합니다.
그때그때 느낌대로 살야야죠, 뭐.^^

플레져 2007-02-0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선 제압! ㅎㅎ
주하에게 배울 점이 많아요.
저두 오늘 누구누구에게 무엇무엇을 주기로 했답니다.
무엇무엇이 좀 빈약하지만 이게 다, 라고 단호히 말하렵니다. 키키.

2007-02-06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7-02-0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는 엄마나 아빠, 둘 중 한 명을 닮기 마련일텐데... 주하가 그런 것은 누구 피 때문인가요? ^^

나비80 2007-02-06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 글을 보면 아이의 행동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데요 뭘.^^

건우와 연우 2007-02-06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도 얼마전까지 에그몽에 얼마나 빠져 있었는지 몰라요.^^
주하의 단호함과 당당함이 얼마나 멋진지요!!@.@

oldhand 2007-02-06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떳떳함과 소신, 21세기를 살아갈 우리 나라의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런지요. 콩주도 주하 언니를 닮아가야 할텐데 말이죠.. ;-)

blowup 2007-02-0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고 막힘 없는 주하가 좋아요. 로드무비 님은 천연덕스러운 척 하셔도 그렇지 못하시잖아요. '저런 신기한 종자들이라니' 하고 부러워하시는 거죠?(이건 제 마음)

얼룩말 2007-02-0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나요

반딧불,, 2007-02-0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주하에게 추천.

Mephistopheles 2007-02-06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다보니 나 자신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는, 이상한 글이 되어버렸다."
딱...엄마 닮은 겁니다...주하는...키득키득..

waits 2007-02-0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양을 한나절만 빌려주신다면, 기운이 날 것 같아요. 정주하 화이팅! ^^

로드무비 2007-02-10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택, 나어릴때 님, 이번 겨울방학에 주하를 2박 3일로
남친 집에 보낸 적이 있는데요.
미칠 것 같더군요, 보고잡아서.
예전에 신난다고 남편이랑 놀러다녔는데.
애정전선에 이상 있음을 확인만 했답니다.

지금은 기운 펄펄 나시죠?^^*

메피스토 님, 하하, 맞아요, 이상한 건 나 닮았어요. 긁적긁적.

반딧불 님, 추천 캄사!^^*

얼룩말 님, 엄청나긴요. 헤헤~

namu 님, 저도 거침없는 하이킥 쪽인데요?( '')=3=3=3

올드핸드 님, 아무 걱정 마옵소서.
콩주로 인해 일어날 즐거운 일들이 기대됩니다.^^

건우와 연우 님, 아주 가끔 그런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연우는 매일이잖아요.^^

소이부답 님,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기뻐요.
사실 여부를 떠나서.^^

에로이카 님, 둘 다 안 닮는 경우도 더러 있더군요. ㅎㅎ
그런데 저런 얼렁뚱땅 불성실은 제가 쪼매 갖고 있는 덕목입니다.=3=3=3

갈팡질팡 님, 그날 점심에 가락국수를 드셨는지요?^^*

플레져 님, "무엇무엇이 좀 빈약하지만 이게 다"라는 말도 빼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