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책 속에 묻혀 사니 마음은 봄날이고
온 들에서 들려오는 농부가도 장관이네
분수대로 살아가니 나의 생계 족하여
털끝만 한 세상사도 관여하지 않는다


13.
초동은 풀을 베러 산속으로 들어가고
어미새는 새끼 데리고 낮은 담장에 모인다
검은 옷에 관을 쓰고 괭이를 잡으니
선비와 농부는 옛부터 같았다네


- <성호 이익 시선> 閒居雜詠二十首 중에서, 예문서원 刊




지난달, 강명관의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를 읽다가 조선 시대의 학자 성호 이익에 꽂혀
그의 책들을 몇 권 주문했다.
요즘은 대부분의 책들을 이동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는데(2주에 여섯 권)
사서 읽는 것보다 좋은 점도 더러 있다.
시간에 쫓긴다거나 여차저차하여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는 작가나 어떤 부류의 책들을
고르게 되기도 하는데 생각지도 않은 재미와 감동을 선사받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의 접점도 그렇게 이루어지고 새로운 물꼬를 튼다.
(문학평론가 방민호가 묶은 <모던 수필>을 주문해 읽다가
김기림 시인의 재기발랄한 글에 꽂혀 그의 평전과 시집을 사들여 읽어댄 것이 시초였다.)

지난 달,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를 읽고 조선 시대와 성호 이익에
관심이 생기는 바람에 조선 시대 역사책과 이익의 저작을 꼼꼼히 챙겨 읽게 되었다.
듣자하니 조선의 관리나 양반, 선비들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를 반기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가 가관이었다. 어리석고 간악한 백성들이 글자를 알면 이것저것 따지고
기어오를 것이라나?!
그들이 이룬 학문의 성취가 어떠하든 그 우월감과 독점욕에는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저자 강명관 씨에 의하면 이익의 <성호사설>은 조선의 지식인이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의 극한치까지 도달한 책이란다.
성리학이 판치는 지적 풍토에서 당대의 사회를 치열하게 고민한 그였다.
'대저 재물이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백성의 노동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백성이 부유하면 나라도 흥성한다.'
이 구절을 읽고 그에게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성호 이익의 시선집도 재미나게 읽힌다.
'분수대로 살아가니 나의 생계 족하여 털끝만 한 세상사도 관여하지 않는다'고 그는 쓰고,
선비와 농부는 뿌리가 같다고 말한다.
선비와 농부는 뿌리가 같단다.

<선조실록> 32년 5월 25일의 기록에 의하면 허균은
'오직 문장의 재주로 세상에 용납되었다'고 적혀 있다는데,
내게 있어서는 문장의 재주도 재주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랄까
그런 데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것 같다.
엊그제, 전경린의 산문집 <붉은 리본>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 나서,
나의 그런 생각에 도장을 찍었다.

전경린의 글을 통해 <수단 항구>라는 소설을 구하게 된 것도 조그만 수확이라면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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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2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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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0 0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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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0 0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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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0 0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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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3 08: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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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1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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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7 1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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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8-06-02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 무식함이 새삼스레 다가오는군요.
 

일요일 아침, 리모컨을 누르다가 모처럼 KBS TV <체험 삶의 현장>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탤런트 임현식이 된장인지 고추장인지 전통장을 순 우리 식으로 만드는 곳에 나가
특유의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일당 7만 원, 성금 15만 원, 도합 22만 원이 든 두 개의 봉투를 흔들며
공중의 목마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체험 삶의 현장>은 <전국노래자랑>과 함께 내가 꽤 오래도록 좋아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사회 저명인사나 인기 연예인이 허름한 옷으로 갈아 입고, 혹은 앞치마를 두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논밭에 엎드려, 혹은 식당 같은 데서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일에 서툰 그들이 실수라도 할라치면 일당에서 제하겠다느니 호통을 치고 놀려먹는
주인이나 관리자의 모습도 유쾌했다.
하루의 노동에서 풀려난 연예인이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몇 푼 안 되는 일당을 받고
환호하는 모습이나, 함께 일한 사람들과 얼싸안고 악수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고대한 장면은 점심이나 새참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 개 두 개 거슬리는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기 가게나 공장 등 일터로 직접 왕림한 연예인의 '딱 하루 혹은 한나절 노동'에
지나치게 감읍하는 태도라든지, 너무나 작위적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출연자의 모습은 그렇다고 치고.
제일 수상한 건 언제부턴가 등장한 일당 외의 봉투이다.

땀을 뻘뻘 흘리고 궂은 일을 하고 돌아가는 연예인에게 미안해서인지,
혹은 불우이웃돕기라는 프로그램의 정신에  공감해서인지 일당 외에
목욕값, 맥주 한잔 등의 명분으로 의뢰자들이 봉투를 하나 더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에 1만 원 내외였다.
그런데 점점 그 액수가 커지더니 이번주 오랜만에 봤을 땐 일당의 두 배를
거뜬하게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
임현식에 이어 뻘밭에서 연근 캐는 일을 하고 돌아온 방송리포터 조영구와
그 멤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불우이웃을 돕는 데 한푼이라도 더 보태는 건 좋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이상하다.
유명인사의 육체노동, 정당한 노동의 댓가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취지였다.
일당보다 높은 성금 액수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사람도 적지 않을 듯.
아무도 모르게 슬금슬금 잠식해 들어와 뿌리를 내리는 잘못된 전통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구축되는 것일까.

그 또 하나의 봉투는 '성금'이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되었지만,
내 눈엔 상품값보다 비싼 팁을 지불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우스워 보인다.
모쪼록, 그들이 자기 일터의 식구들도 그렇게 후하게 대접하기만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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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13: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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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0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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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13: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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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0 1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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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0 1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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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8-03-20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니 이렇게 추천이 넘치지요. 이렇게 좋은 글이니.

로드무비 2008-03-20 09:57   좋아요 0 | URL
네꼬 님, 정말 어여쁘셔라.^^*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렇게 짧은 글로 정리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님께 칭찬도 받고요.

조선인 2008-03-2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배배꼬인 마음을 탁 짚어주시는 어여쁜 우리 님!
그 성금 낼 돈으로 노동자 임금 올려주면 얼마나 이뻐요.

로드무비 2008-03-20 15:46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지.
조선인 님도 그러셨군요.
저만 배배 꼬인 게 아니었다니 위안이 됩니다.^^

하얀마녀 2008-03-20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 봉투 출연자들이 자비로 내는 거 아니었나요?
제가 너무 오랫동안 티비를 안 본 듯.

로드무비 2008-03-21 09:40   좋아요 0 | URL
하하, 자비 봉투라니!
하얀마녀 님 티비 오래 안 보신 것 맞네요.
그 시간에 뭐하셨으까?=3=3=3

2008-03-23 0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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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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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지 않나?
미안하네, 이상한 소릴 지껄여서.
그냥 내가 요새 고독해서 말야.
문득 돌아보니 마누라는 뚱뚱한 아줌마가 돼 있고.
아들은 미국 갱단 흉내낸다고 애비더러 "YO!" 이러질 않나."

"말해 주겠어. 난 아버지고, 남자고, 역시 나는 나고,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사노 이니오 <이 멋진 세상> 2권, 에피소드 13편 '잘 자요' 68쪽)

"정말 싫어. 지긋지긋해! 일하는 보람도 없고, 윗대가리들은 하나같이 바보고,
보너스만 받으면 당장 때려치울 거야, 이 따위 회사."
"그래그래, 이 지랄 같은 세상 거저 준대도 안 갖는다. 그럼 우리 둘 사랑의 도피라도 할까?"

"아가씨,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애인은 있습니까?
...그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닙니까."
(2권 에피소드 14편 '달과 어묵' 중에서.)


.......................

지지난해인가 7천 원짜리 미니어처 인형을 주문했더니
어찌된 일인지 인형은 안 오고 달랑 가발(가로세로 5센티 정도)만 왔다.
그 미니어처 인형 전용의......
(당연히 나에겐 그 인형이 없었다.)

옛날옛적 처음 상경했을 때 청계천에서 "청바지 500원!"이라는 노점 상인의 말에 혹해
청바지를 하나 골라들었다가 오백 원이 아닌 오천 원임을 알고
뒤통수가 뜨끈했던 때보다 100배는 더 무안했다.

도처에 구멍이다.
시덥잖은 쇼핑에서 낭패를 보는 것 정도는 애교에 속한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고 엄살을 떨지만 사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1980년생 아사노 이니오.
필명 '이니오'는 집에 있던 보험증의 여러 기호에서 따온 것이라고.
(책날개에 그렇게 소개되어 있으니.)

함께 주문한 단편집 <빛의 거리>보다 <이 멋진 세상> 1, 2권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장래 꿈이 만화가(화가에서 만화가로 바뀌었다)인 딸아이를 위해
책값이 좀 비싸더라도 출혈을 감수하고 쟁여 두어야 한다는 생각.=3=3=3

연작도 아니고 옴니버스도 아니고 아무튼 좀 묘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만화.
예를 들어 에로 잡지 창간작업에 동원된 30대의 카스카베와
그를 불러들인 마흔 혹은 오십줄 중견 편집자의 대화(순서는 거꾸로)가
에피소드 13편 '잘 자요'라면,

에피소드 14편의 위에 소개한 장면은 거리 한 모퉁이의 라면 포장마차가 배경으로,
술이 떡이 되어 거리에서 헌팅되어 온 아가씨가 취하여 내뱉는 대사이고
라면을 말던 노인이 "그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한 마디 툭 던지는데.
등장인물들은 가족이나 친구, 혹은 사돈의 팔촌이거나 스치고 지나가는 행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제법 익숙한 형식이지만 나는 늘 참신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 페이퍼를 쓰는 중요한 이유.
--문득 돌아보니 마누라는 뚱뚱한 아줌마가 돼 있고.

영악한 초등학생, 사춘기의 소년소녀, 미혼남녀, 무능한 중년,
노인의 고독과 애환이 각 에피소드로 거의 망라되어 있다면
그 뚱뚱한 아줌마의 이야기만 쏙 빠진 것이다.

아사노 이니오의 다음 작품에서 그녀를 꼭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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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5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싸 보관함으로 골인...헤트트릭입니다..세권이다 보니.

로드무비 2008-01-26 09:08   좋아요 0 | URL
앗싸, 헤트트릭이라니!^^
요즘은 자살골 연속이었는디.=3=3=3

2008-01-25 18: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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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6 0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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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8-01-25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읽은 책인데 어째 저 주옥같은 대사들이 저에겐 남아있지가 않네요-_-;;
기억력과 감수성....부럽습니다.

로드무비 2008-01-26 08:58   좋아요 0 | URL
twoshot 님, 바로 어제 읽은 책이니 기억력이 좋은 건 결코 아니고,
책을 맛있게 읽는 능력은 타고난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답니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시는군요. 반가워요.^^

2008-01-25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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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6 09: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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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1-2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보관함으로 넣어요. 호감이 모락모락해요. :)

로드무비 2008-01-27 22:42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그 '호감'을 믿으시라요.
김까지 모락모락 난다니.^^

2008-01-29 0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30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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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1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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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14: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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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0 06: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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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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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1 2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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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3: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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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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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에서 '죽음 직전'을 선고받은 영수(황정민)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더 노닥거릴 자유, 평소 살던 대로 흥청망청거릴
유예된 시간이었다.

아침을 깨우는 제대로 뽑은 원두커피 한잔, 재즈의 선율과 함께 마시는 위스키 온더락,
실크슬립과 함께 감겨오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애인의 낯익은 향수 냄새.
고층, 통유리 창문이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새벽과 아침과 정오와 늦은 오후와 저녁,
그리고 깊은 밤 저마다의 불빛으로 반짝이다 스러지는 도시의 스카이라인.
그것이 설령 겉멋이며 나쁜 습관에 속한 것이라 해도......

건강과 일생의 사랑,
그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 뻔한 소중한 기회를 발로 뻥 찬다.
자신이 떠나면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를 연인을 버려두고.
건강이 좀 회복되자 그가 다시 악착같이 기어드는 건 바로 그 소굴.
그 소굴이 언젠가 자신을 내팽개칠 거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행복>의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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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8-01-2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슴아픈 얘기는 못 보는 병이 있어서...병을 고쳐야 할까요^^

로드무비 2008-01-22 13:01   좋아요 0 | URL
가슴 아픈 얘기는 못 본다고 스스로 믿는 게 어쩌면 병.=3=3=3
(산책 님, 반갑슴다.^^)

chika 2008-01-2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이예요.
지금 '길에서 영화를 만나다'라는 책을 읽는 중인데, 출판사가 '쿠오레'예요. 책을 집어들때부터 로드무비님 생각이 났거든요. 그래서 더 반가워요 ^^

chika 2008-01-22 13:47   좋아요 0 | URL
아, 근데 왜 전 '흥청망청'이라는 로드무비님 페이퍼 제목보면서 주하랑 관련된 얘기일꺼라 생각했을까요? ^^;;; (아마도... 그동안의 페이퍼가...;;;;)

로드무비 2008-01-22 14:48   좋아요 0 | URL
치카 님, 앗, 쿠오레라는 출판사가 있어요?
'길에서 영화를 만나다'라니 바로 저 로드무비를 말하는 것 같고.
그런데, 제 알뜰하고 살뜰한 도러와 '흥청망청'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씀인지.=3=3=3
아무튼 반갑습니다요, 치카 님.^^

chika 2008-01-22 15:18   좋아요 0 | URL
헤헤헤~
로드무비님은 항상 그 알뜰하고 살뜰하고 이쁘기까지 한 도러에게 딴엄마들과는 다른 기준으로 잘 해주시잖아요. 전 그런 내용인줄알고요..이번엔 또 어떤 모험담(?)인가, 했거던요. ^^
- 댓글쓰고, 지금 이시간까지 회의자료준비땜에 서있었더니 다리가 막 아파요.. ㅠ.ㅠ

로드무비 2008-01-22 17:29   좋아요 0 | URL
이제 뭉친 다리 좀 풀리셨나요?^^
먹고살기 위해 일하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최대의 존경이 담긴 인사랍니다.)

프레이야 2008-01-2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에 '잘 죽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한 대 담배를 피우던 나이든 남자,
박인환이 제일로 기억에 남아요. 행복은 그런 것인가 봐요.
담배를 피우던 폐암환자 그 남자나 그 소굴로 기어들던 영수처럼요..^^

로드무비 2008-01-22 14:51   좋아요 0 | URL
혜경 님, 마지막 담배 한 모금 맛이 과연 어땠을까요?
박스 하나로 정리되는 그의 삶이 나쁘진 않아 보였습니다.
 


전수일 감독 <검은 땅의 소녀와>
...내 눈에는 어린 보살처럼 보이는 소녀 영림 



'무슨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그는 그토록 많은 말을 지껄여댄 것일까.'
(<검은 사슴> 한강, 61쪽)


세상에는 "무슨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그토록 많은 말을 지껄이는 사람"과
무슨 말을 꼭 하고 싶은데 입을 꾹 다무는 사람들이 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지나가는 개도 시퍼런 만 원 지폐를 입에 물고 다녔다는
탄광도시 철암.
광부들과 그 가족들도 모두 떠났는데 고집스레 남아 있는 한  민중미술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그곳을 찾는 잡지사 기자와 그 후배의 여정이 중요한 얼개를 이루는
한강의 장편소설 <검은 사슴>은 저 한 문장으로 마음속에 남았다.




황재형 '식사' 1985 가을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쭈그리고 앉아 먹는 밥


몇 개월 전 소설 <검은 사슴>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화가 황재형을 떠올렸다.
'황지'라는 그림으로 대한민국 화단에 자신을 알린 화가는
1983년 가족과 함께 철암으로 아예 거주지를 옮겼다.
탄광화가로 불리는 그는 몇 년 전 KBS 심야 프로그램 '디지털 미술관'에 나와
'철암'이라는 다소 낯선 지명의 황량한 풍경과 함께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7년 12월 초부터 2008년 1월 6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16년 만에 그의 전시회가 열렸다는데 아깝게 놓쳤다.

흔히 탄광에서 일하는 걸 갈 데까지 다 갔다고 하여 '막장 인생'이라고 하는데,
화가는 이렇게 말한다.
"닫힌 현실이라는 점에서 서울도 막장이다."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는 갱 속과 갱 밖 광부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황재형 'In My Heaven' 1997 겨울
...저 골짜기 나부끼는 빨래를 보라. 제목이 특히 인상적인 그림.




황재형  '기다리는 사람들'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일까.




사택도 곧 헐린다는데, 진폐증으로 해고당한 아버지.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










'어디로 갈까?  아홉 살 소녀 영림의 시선.



'내 안에 부는 바람'이라든가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등,
나이브한 제목 때문일까 지나치게 심정적이고 멋을 부린 것 같아서 전수일 감독의 영화에
나는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검은 땅의 소녀와>를 보고 나의 편견과 완고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한마디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
가장  압도적이고 아름다운 라스트 신으로 기억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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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1-1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ㅡ저도 디지털미술관에서 같은 다큐 봤었어요. 그때 진짜 먹먹하고 KBS가 그래도 공영은 공영이구나 막 그랬는데...
이 영화, 저도 볼 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로드무비 2008-01-18 14:03   좋아요 0 | URL
치니 님, 그 프로에서 '철암 그리기'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죠?
이 영화 이상하게 보고 싶더라고요.
극장을 나올 때 환장할 것 같은 기분과 먹먹함이 교차하더군요.

2008-01-18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9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瑚璉 2008-01-19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볼 줄은 모르지만 'In My Heaven'이라는 그림은 사고 싶을 정돈네요(문제는 돈 -.-;).

로드무비 2008-01-22 22:10   좋아요 0 | URL
앗, 호련 님, 숨어 계시다니.^^
저도 저 그림이 좋아요.
네, 문제는 돈입죠.

Mephistopheles 2008-01-19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읽고 떠오르는 탄광촌의 또 다른 비극 "정선카지노" 생각해부렸어요.

로드무비 2008-01-22 13:18   좋아요 0 | URL
그럼요, 당연한 연상작용이지요, 메피스토 님.^^

사량 2008-01-1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 사슴>, 꼭 10년 전쯤 스산한 마음으로 읽었던 소설인데 이렇게 그림과 영화와 만나네요. 현실이 황량하고 먹먹한 폐허처럼 느껴지는 요즘에 더욱 저릿해지는 그림들과 스틸샷입니다.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8-01-22 13:17   좋아요 0 | URL
사량 님, 반갑습니다.
<검은 사슴>이 10년 전에 나왔군요.
그때 읽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뒤늦게 읽자니 온갖 잡생각이 끼어들더군요.
최근에 열린 화가의 전시회 놓친 것 알고 정말 아까웠습니다.


2008-01-20 0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2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9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30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