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도시 중경과 한국의 이리(익산으로 지명이 바뀜)에서
장률 감독이 만든 영화 두 편(<중경>, <이리>)이 연달아 개봉되었다.
폭발 직전의, 무언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듯한 느낌의 도시 중경과
30여 년 전 이미 대폭발을 경험한 도시 이리는 영화 속에서 놀랍게 닮아 있다.
만약 장률 감독이 서울의 가리봉동이나 노고산동에서 영화를 찍었대도
적막하고 황폐한 분위기는 비슷하지 않을까. 
전작 <망종>의 여주인공 순이나, <중경>의 쑤이, <이리>의 진서가
닮아 있는 것처럼.
그녀들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치통을 견디듯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줄 싸구려 진통제조차도 그녀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쓰레기통을 뒤져 얻은 몇 푼의 돈으로 거리의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였다가
공안에게 발각, 경을 치게 된 쑤이의 아버지는 부끄러운 기색도 없다.
아버지를 훈방해준 공안은 욕망도 없이 쑤이를 안는다.
사랑은커녕 최소한의 교감도 없는 남녀의 잠자리는 삭막하고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다.

동네의 중국어학원과 경로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택시운전사인 오빠와 사는 진서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30여 년 전 이리역 폭발사고 때 엄마의 뱃속에 있었던 것이 원인.
사과 몇 알을 살 때도 계산을 못해 주인에게 지갑을 통째 맡기는 그녀다.
경로당의 꺼칠한 노인들 속에서 그녀의 말간 얼굴과 통통한 종아리는
눈부시다.
중국어어학원 원장은 몇푼 되지 않는 그녀의 수고비를 자꾸 미루고
주변의 놈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니, 그녀는 자주 하혈을 하며 쓰러진다.






장률 감독은 오래 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그들을 바라볼 뿐 내게 다른 권리는 없다.

호들갑과 과장된 탄식 속엔 되려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듯한 기미가
농후한 법인데, 장률 감독의 시선은 그럴 수 없이 드라이하다.
관객인 나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그저 바라볼 뿐.

"엄마, 아버지는 또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고 저는 자꾸만 더러워져 가요."

엄마의 묘소를 찾은 쑤이의 독백이다.
그런데 꼴도 보기 싫은 아버지의 밥숟가락 위에 거친 손길로
반찬을 올려주는 장면과 함께 쑤이의 북경어 수업시간이 좋았다.
강사의 선창에 이어 수강생들 목소리로 초여름 창 밖으로 흘러나오는
이백의 시와 주자청의 수필 <背影> 한 구절.
(중국의 시인들 중에서 이백을 특히 좋아한다는 장률 감독은
몇 년 전 <당시唐詩>라는 영화를 만든 바 있다.)

--그해 겨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실직했으니
설상가상의 날들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먼저 주자청의 산문집을 펼쳐보았다.

--그해 겨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뒷모습> 82쪽, 박하정 譯, 태학사 刊)

이리에 사는 진서와 중경의 쑤이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리역 열차사고 당시 근처 극장에서 리사이틀을 하고 있다가
무명 코미디언인 사회자 이주일의 등에 업혀 구출되었다는 가수 하춘화.
바로 그녀의 노래를 즐겨 부르고 가끔 듣는다는 것이다.
사랑이 어쩌고 이별이 저쩌고 하는 아주 구성진 가락의 유행간데
이리역 폭발사고로 다리를 잃은 한국인 수강생 김씨의 선물이다.

하춘화의 노래 외에 두 영화에 또 나오는 게 있으니
동네 모퉁이에 어색하게 자라잡은 성인용품 가게.
살아갈 의욕은커녕 식욕조차 없어 모래알을 씹는 것 같은
영화 속 인물들은 그래도 그 성인용품 가게에 들러 콘돔도 사고
대형 고무인형도 산다.
시무룩한 낯짝으로.

"당신의 영화에는 왜 희망이 없느냐?"고 한 평론가가 물었다.
장률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희망을 삶에서 찾아야지 왜 영화에서 찾냐고.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


영화 <중경>을 찍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중경의 쓰촨 지역에서는
대지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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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2008-11-3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정성일이다. 우선 댓글 먼저 쓰고 읽기 시작~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8-11-30 13:21   좋아요 0 | URL
이 얼룩말 님이 그 얼룩말 님이시군요.^^

twoshot 2008-11-3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도 버거워서 장률의 영화는 피하게 되네요-.-;;
그보다는 어째 주자청의 산문이 떠 끌립니다.^^

로드무비 2008-11-30 18:20   좋아요 0 | URL
영화 속에서 만나는 주자청의 산문이 더 매력적이더군요.^^

치니 2008-11-30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망종> 하나도 참으로 버거웠던 기억인데, 정말 2개를 주루루 볼 수 있을지...저도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찜 해둡니다.

로드무비 2008-11-30 18:25   좋아요 0 | URL
영화 두 편을 개봉일에 맞춰 사흘인가 나흘에 걸쳐 보고 나니
아닌 게 아니라 기진맥진한 기분이었습니다.

2008-12-01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1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8-12-01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버지의 뒷모습'이 옛날 국어 교과서에 나오던 그건가요? 제겐 꽤 감동적인 작품이었는데... 저는 장률의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다 로드무비님 덕분이지요... 언제고 볼 기회가 오겠지요..

로드무비 2008-12-01 15:37   좋아요 0 | URL
옛날 교과서에 나왔습니까?
그것이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교과서를 읽고 감동하긴
쉽지 않은 일인데......
장률 감독 영화가 제 입에 잘 맞습니다.
에로이카 님껜 어떠실지.

nada 2008-12-0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밥상.
밥상은 한 가족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를 말해주는 거 같아요.
황량하고 푸석푸석해 보이는데, 그래도 또 따듯한 느낌도 있네요.
참내 애비란 인물들은...


로드무비님이 소개해주시는 장률 영화들이 좋아요. 영화 읽어주는 언니 같아요.^^

로드무비 2008-12-02 12:16   좋아요 0 | URL
쑤이와 아버지가 마주한 밥상과
진서와 태웅이 마주한 밥상이 같습니다.
아무 말 없이 화난 사람들처럼 밥만 먹는데
정말 맛없이 먹습니다.
제가 웬만하면 밥상위의 반찬들을 아주 유심히 관찰하거등요.
뭘 먹나 해서......
그런데 그들이 먹은 게 뭔지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
<누들>을 보고 와선 한동안 국수를 그렇게 먹었고
<굿'바이>를 보고 와선 당장 치킨을 시켜먹었던 제가 말이죠.
복어정자를 구할 수 없으니 치킨이라도 먹어야지요.^^

무해한모리군 2008-12-0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의 영화 읽어주는 언니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시네요.
왠일인지 점점 잔인하거나 충격이 클 것 같은 영화들을 잘 못보게 되요.
참 좋을거 같은데, 너무 마음이 아플거 같아서 또 볼 엄두가 안나네요..
소심쟁이 ㅠ.ㅠ

로드무비 2008-12-02 16:58   좋아요 0 | URL
잘 모르는 사람이 언니라고 하면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정색했는데 요즘은 언니 소리 들으면 반갑더라고요.ㅎㅎ

'생선 한 마리 못 잡으면서 뭐라고 토를 다는 인간' 여깄습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소심과 연결이 되어서요.

2008-12-19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9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 일찍 깨어 최일남의 소설집 <아주 느린 시간>을 읽고 있는데
마루의 텔레비전에서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 흔한 게 사랑이라지만 나는 그런 사랑 원하지 않아
바라만 봐도 그냥 괜히 좋은 그런 사랑이 나는 좋아

읽던 책을 손에 들고 나는 홀린 듯이 밖으로 나왔다.
가수 이적을 닮은 신인가수가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을 열창하고 있었다.

'왕중왕'을 가리는 도전가요 프로그램.
이적을 닮은 신인가수는 2 A.M.의 멤버란다.
'왕중왕' 특집답게 노래열전을 벌이는 가수들의 면면이 화려했다.
1980년대 노래를 어떻게 알고 있냐고 사회자가 물었더니
해사한 얼굴의 그 청년 이렇게 대답한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곡이라고.

그들이 준결승에서 맞붙고 있는 상대는 이모뻘,
혹은 어머니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수라였는데
그녀는 올백으로 앞머리를 넘기고 궁둥이까지 닿는 긴 말총머리와
짝 달라붙는 검정색 로커의 복장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묻어버린 아픔>뿐만이 아니다.
도전자들이 부르는 한 곡 한 곡이 어찌나 가슴속을 파고드는지,
김양이 부르는 방실이의 <첫차>와 뮤지컬 가수 최정원이 부르는
<찬바람이 불면>도 좋았다.
김양과 짝을 이뤄 나온 송대관의 <낭만에 대하여>도 구수했다.
최정원의 끼와 실력은 단연 돋보였는데 정수라도 막상막하.
이효리의 노래 <Hey Mr. Big>을 멋지게 부르고 나자
최정원이 다가가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는데 보기좋았다.

-- 찬바람이 불며언 내가 떠난 줄 아아세요~

<찬바람이 불면>을 최정원이 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질금질금 나왔다.
요 며칠 잠자리에서 읽고 있는 책이 최일남의 본격노년소설
<아주 느린 시간>이다.
소설 속 노인들의 심경과 상황들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쯤해서 갱년기를 받아들여야지,
콧물을 들이마시며 나는 그런 결심을 얼핏 한 것 같다.

심드렁한 열창
젊어서도 그렇고 지금도 나는 열창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열창하는 사람들을 보면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오금이 저린다.
노래방에서도 아주 심드렁하게 부르나마나한 노래를 부르는데
이광조의 나들이, 이상은의 언젠가는, 그리고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노래들이다.
다행히 수상한 나의 열창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친구들이 몇 있었다.

그나저나 흘러간 유행가는 힘이 세다.
재밌게 읽던 책을 덮게 하더니 사람을 마루로 불러낸다.
그리하여 아침밥도 미루고 이 시간에 이러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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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2008-11-30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와...정말 재밌었겠어요. 보았음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드네요

로드무비 2008-11-30 13:23   좋아요 0 | URL
트로트 가수 김양의 <노바디>도 멋졌답니다.^^

Arch 2008-11-3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이 프로 보는데 오래된 노래 나오면 저도 좋던걸요. 내가 언제, 저 노래를 들었는가 싶어지다가도 금세 입에 착 달라붙어서 응얼거리게 되더라구요. 옛날 가요들을 7080으로 묶는건 낯뜨겁지만 옛날 가요라 일컬어지는 노래들에서 가을을 느낄때가 많아져요. 가사를 보면 무심하게 툭툭 간단하게 지어냈을 것 같은데 어느 한 순간 아, 싶어지는. 겨울도 아닌데 괜히 몸서리가 쳐지는. 그런 노래 중의 하나가 제겐 '세월이 가면'이랍니다. 이 무슨 일요일 낮부터의 긴 댓글인지^^

로드무비 2008-11-30 18:23   좋아요 0 | URL
한경애의 '세월이 가면'인가 최호섭의 노랜가,
갑자기 헷갈리네요.
심지어는 하춘화의 노래도 좋더라고요.
이 무슨 심리인가 싶어 의아하기도 합니다.^^

Arch 2008-11-30 21:19   좋아요 0 | URL
최호섭이요. 전 이분의 이 노래만 알고 있는데도 참 좋더라구요. 음... 로드무비님 살짝 귀 좀...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아니면 취향이 바뀌어서던가. 전 예전 노래 들으면볼이 발그레해지고, 민망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로드무비 2008-12-01 10:56   좋아요 0 | URL
시니에 님, 살짝 귀 좀.
저 하춘화 송대관 무지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꽤 괜찮더라고요.
맞아요. 나이 탓인 것 같아요.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듣고 싶네요.
인터넷 뒤져봐야겠어요.
어느 분이 올려 놓으셨을라나?!

waits 2008-12-01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출근해서 이 페이퍼를 읽고는 저도 모르게 '찬바람이 불면'을 죙일 흥얼거렸답니다.
일하다 중간에 담배 피러 나갈 때마다 어찌나 찬바람이 불던지 얼어죽는 줄...ㅎㅎ
12월이예요, 향수와 함께 시작되는.. 훈훈한 페이퍼,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8-12-01 10:52   좋아요 0 | URL
나어릴때 님, 이번주 춥다네요.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저도 어제 티셔츠 바람에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요.^^

2008-12-01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1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1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1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8-12-0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광조의 나들이... 그거 쉬운 노래 아닌데..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이 땅에 흙냄새 나면 아무데라도 좋아라' 이제 가사도 잘 생각 안 나네요...

로드무비 2008-12-01 15:44   좋아요 0 | URL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과 정답게 얘기하리라.
산에는 꽃이 피어나고 물가에 붕어 있으니~~~

에로이카 님의 기억을 돕기 위해 떠오르는 대로 적어봤습니다.
고음불가의 제 목소리랑은 잘 맞습니다.ㅎㅎ

2008-12-19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9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주 빼빼로데이 다음날 저녁, 우리 집에선 작은 행사가 열렸다.
'푸른버섯 공화국' 빼빼로데이 이벤트.
주최자는 우리 집(즉 푸른버섯 나라) 대통령, 딸아이였다.

대선 후,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의 면상을 보자
자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딸아이는 멋대로 선거일을 정했다.

그리하여 바로 옆동에 사는 외삼촌 가족까지 모두 참여,
압도적인 지지 속에 대통령으로 뽑히고 취임했으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그렇게 불러쌓더니
'푸른버섯 나라'에서 거창하게 '푸른버섯 공화국'이 되었다.)


얼마 후 다가온 만우절에 우리 가족은 대통령령으로
거국적인 첫 행사를 치렀다.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었는데
아쉽게도 나는 탈락, 남편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번 빼빼로데이 행사도 대통령 마음대로였다.
몸치인 동주는 누나가 작사작곡율동까지 담당한 괴상한 노래를
며칠 동안의 강훈으로 모두 소화해야 했다.

행사 전 날, 아빠와 외삼촌 외숙모가 바쁜 일이 있어
참가할 수 없다고 통보하자
딸아이는 친한 친구 세 명을 제멋대로 초대했다.
가장 절친한 친구답게 민지는 두 살 아래의 남동생까지 데려와
참가자는 모두 여섯 명으로 늘어났다.

나는 우엉조림을 잘게 다져 넣은 유부초밥을 한 접시 만들고
분식집에서 사온 김밥 네 줄과 어묵찌개로 기본 식탁을 차린 후
메인 요리로 프라이드 한 마리와 양념치킨 반 마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순간적인 기지로
빨간색 모직 담요를 롱스커트라며 뚱뚱한 허리에 두른 후
아이들 앞에서 상기된 얼굴로 동시 두 편을 낭송했다.

주하와 4-3반 소속 세 친구는 얼마 전 학예발표회 때 했던 깃발춤을
멋지게 재연했다.
딸아이의 깃발춤은 특히 얼마나 절도있고 씩씩한지
<어떤 나라>(북한의 소녀 둘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의
군무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남의 집은 아이가 부모님 앞에서 춤과 노래 등
재롱을 열심히 부린다는데,
우리 집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결혼식날에도 안 입은 뻘건 드레스를 입고......




이런 기록은 꼭 필요하다.
나중을 위해서......
('양질의 모정'의 증거자료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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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19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8-11-1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헤헤, 사진도 올려주시짐.

로드무비 2008-11-19 16:47   좋아요 0 | URL
카메라와 컴퓨러가 바뀌어서
사진 올리는 게 불가능합니다요.ㅎㅎ


瑚璉 2008-11-1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질의 모정'.
페이퍼 전체에 부모님의 애환이 뚝뚝 흐르는 듯 합니다 (-.-)b

로드무비 2008-11-1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瑚璉 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3=3

라주미힌 2008-11-19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다음엔 관객으로 참여하고 싶네용 ㅋㅋㅋㅋ

로드무비 2008-11-19 21:27   좋아요 0 | URL
다음 행사는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무렵이지 싶은디.=3=3=3
라주미힌 님, 오신 김에 저랑 못다한 이야기 좀 나누십시다요.
두어 번 들락거렸는데 대답도 못 얻고.( '')

마법천자문 2008-11-1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새끼들' 카테고리에 무슨 글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집에서 키우는 개들에 관한 내용인가요?

로드무비 2008-11-19 21:30   좋아요 0 | URL
아뇨, 승냥이과에 가까운 깡패 개들에 관한 카테고린데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이 더러워지는 것 같아
없앨까 생각중입니다.

바람돌이 2008-11-19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질의 모정을 위한 기록!! 정말 중요하죠 그럼요. ㅎㅎ
주하는 여전히 멋지게 크고 있군요. ^^

로드무비 2008-11-20 09:14   좋아요 0 | URL
나중에 몇 배로 돌려받으려면 기록이 중요합죠.
그런데요, 가끔 주하가 순진한 건지 모자란 건지
아리송할 때가 있습니다.
바람돌이 님은 어떠세요?^^

조선인 2008-11-20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주하는 훌륭한 딸이에요. 어쩜 그리 깜찍 발랄 유쾌한 행사를 기획할까요? 게다가 혼자서 작사작곡율동이라뇨. 존경합니다.

로드무비 2008-11-20 09:33   좋아요 0 | URL
불협화음이 심오한 곡에
거의 행위예술에 가까운 율동이었습니다.
존경은 오로지 조선인님의 몫입니다요.=3=3=3

마노아 2008-11-20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질의 모정에 브라보~ 근사한 행사였군요. 이건 비디오 자료로도 남겼어야 했는데 아쉬워요!

로드무비 2008-11-20 09:09   좋아요 0 | URL
저도 아쉽습니다. 헤헤.^^

2008-11-29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30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9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9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쇠살에 부딪쳐
다쳤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

쇠살만큼
착하고 여린 것도 없다
자르면 자르는 대로
댕강댕강 잘려나가
작아진다
구부려 놓으면
그게 저인 줄 알고
갈면 가는 대로 저를 덜어낸다
강철이건 잡철이건
금세 녹아 한 덩이 된다
1센티미터도
저를 속이지 않는다

억지로 미니까 후려친다
강제로 자르니 무너진다

          -'쇠살' 송경동, 시집 <꿀잠> 중



몇 주 전 방영된 KBS스페셜 '두 도시 이야기, 부산과 볼로냐'를
오늘 오전 뒤늦게 챙겨 보았다.
1970년대 제조업의 메카에다가 대표적인 경제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부산과,
그 당시 가장 가난한 도시였던 이탈리아의 볼로냐를 소개하는 다큐였다.
부산은 공장을 비롯한 지역자본이 외지로 빠져나가면서
실업률 전국 최고, 경제자립도도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거기엔 아마도 대형마트에서 쇼핑할 때
지역의 대표 브랜드인 부산우유를 외면하고 1 플러스 1 우유를
장바구니에 넣었던 소비자들의 무심한 행태와도 관계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볼로냐는 협동조합 체제를 구축,
철저하게 조합원과 지역경제를 보호하여 오늘의 번영에 이르렀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볼로냐의 살라미햄은
볼로냐 지역에서 생산된 고기만 사용하여 그 지역의 생산자들을
보호하고 있었다.(다국적 기업은 발도 붙이지 못하는 풍토.)
협동조합의 수익금은 고스란히 더 좋은 제품의 개발과
출자자인 농민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이렇게도 비교될 수가 있나!
주인인 농민들을 무시하고 수익금의 대부분을 높은 급여 등
자신들 몫으로 빼돌려 물의를 일으킨 경북 상주 함창농협.
그 농협 간부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인터뷰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농협도 엄연히 금융기관인 것이고 금융기관이라면
어느 정도 레벨의 급여가 있는데 농민들 수준하고 같이 갈 순 없잖아요?"

내가 이래서 얼마 전 '개새끼들'이라는 페이퍼 카테고리를 만들었던 거다.
입으로도 발설하지 못하는 말을 차마 글로 할 수 없어서 그냥 비워 두었지만.
(<개새끼들>은 정을병의 사회비판 소설로  입학한 후 얼마 안 되어
대학 도서관에서 처음 대출하여 읽은 책이다. 제목에 끌려...)


꼬막 껍질 하나에 옴싹 들어갈
짜디짠 말 한마디 갖고 싶다(<꿀잠> 104쪽 '詩' 전문)


'짜디짠 말 한 마디'가 그토록  갖고 싶은 송경동 시인은
최근 옮겨간 기륭의 새 사옥 앞에서 농성중인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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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8-11-05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로냐의 경우는 우석훈이 근작에서 말한 '제3부분'과 겹치네요. 헌데 이놈의 나라는 어째 막걸리도 '서울'막걸리가 베스트셀러니...(미안하다 서울막걸리...니가 맛은 있는데)
그리고 '개쉐이덜'이라는 카테고리 이름, 맘에 듭니다~~^^

로드무비 2008-11-05 21:5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막걸리조차 서울막걸리가 제일 맛나니......
볼로냐는 공방 골목의 작은 가게들을 보호하여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여럿 탄생시킨 건 물론
관광객들도 엄청 몰려들고 있더군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피맛골도 북아현동도 모두 싹
밀어버리는 분위기니 생각만 해도 화가 납니다.

그나저나 twoshot 님이 맘에 드신다니
저 카테고리를 살려볼까요?ㅎㅎ

2008-11-06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6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8-11-0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분, 정말 '개새끼'시네요.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농민들한테 이익이 돌아갈까 싶어서 조금 멀리 있는 농협 하나로마트를 이용해요.
대형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보면 소름이 끼치기도 하구요.
근데 농협이란 조직도 관료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이런 짓이 소용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더라구요.
저런 간부가 그런 회의에 불을 지르네요. --;;;

로드무비 2008-11-07 09:46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 님이 그리 장단을 맞춰주시니 속이 시원합니다.
뻥 뚫렸어요.ㅎㅎ
맞아요, 이런 짓이 소용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허튼 곳에 마음과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데
순간순간 분기탱천하네요.
헤헤, 그래도 '저분' 덕분에 페이퍼도 쓰고 꽃양배추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2008-11-09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9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여기 사람 같지 않아요."
술잔을 비우고 스탠드의 여자를 향해
어설프게 미소 짓는다
서울이라고 말하기 싫다
아무데면 어떤가
나는 나머지 술을 비우고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건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고
때가 되면 지나온 생에
미소를 지어야 한다.
지금 나는 그저 술 마시는 남자
어떤 여자 앞에서도
다르게 보이고 싶지 않다.
취해서 떠드는
이 숱한 남자들 속에서.
              -'구미시 이번 도로1', 우영창 詩



몇 개월째 나란히 동네 스포츠센터에 함께 다니는 책장수님과 주하.
어제는 좀 멀리 운동을 하러 간다기에 그 시간에 나는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마침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극장에서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를 상영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어렵게 들어간 다이고는
거액의 빚을 얻어 첼로를 장만하는데 재정난으로 오케스트라가 해체된다.
아내와 상의, 작은 카페를 운영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향집(그 카페)으로
내려오는데, 여행 도우미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갔더니
사장왈, 그 신문광고에 실수로 중요한 단어가 빠졌다고 시치미를 뗀다.
알고보니 시신을 염하고 납관하는 영원한 여행(죽음) 도우미였던 것이다.

<씨네21>에 의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체 역할 배우 오디션장이
미어터졌단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배우들은 전혀 미동이 없어야 하는
어려운 연기
를 잘도 해냈다고.

'하고많은 연기 중에 시체 연기를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스르르 의문이 풀렸다.
매일매일 장작불로 자신이 직접 끓여낸 물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던
목욕탕집 할머니는, 곱게 단장을 끝낸 관 속에서 초절정의 미를 보여준다.

카페('和'라는 이름의 문패도 떼지 않았다)를 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30대 주인공 부부의 낡은 집도 좋았고,
어린 시절에 사용했던 작은 첼로로 어른이 된 다이고가 연주하는 곡들도
묵직하면서 따뜻했고, 곧 허물어질 것 같은 그 대중목욕탕의
김이 서린 내부 풍경도 좋았다.
첼로 연주자에서 납관사 도우미가 된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첼로 연주는 물론 납관의 절차까지 직접 거의 완벽하게 해냈다고.
(음악은 히사이시 조)

'죽음'을 너무 심각하게 다룬다거나 또 희화화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납득이 갈 만한 선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진솔하게 펼쳐보이다니......

오늘 아침, 책꽂이에서 문득 눈에 띈 <현대시세계>(1989년 겨울호)를
펼쳤더니 우영창의 시가 나왔다.
영화 이야기와 매치가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페이퍼로 올린다.


장마가 시작되던 날
그는 사직권고를 받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차라리 이유 없는 편이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빗속을 걷고 또 걸어
생전 다시는 들르지 않을 술집에서
못 마시는 술을 마셨다
머리 속에서 콸콸
빗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갑자기
모든 기억이 흐려져 갔다

잠이 깼을 때
그는 변두리 여관의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질척거리는 시장의 식당에서
국밥을 뜨며
국밥 속에 전혀 낯선 얼굴이
떠오르는 것도 보았다
               - 우영창 詩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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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11-03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 바이 보고 싶어졌어요.
요새 일본 영화 중 좋은 작품이 많이 들어와 기쁘답니다. *^^*

로드무비 2008-11-03 13:44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이 영화 좋더군요.
첼로의 선율과 함께 겨울 정취도 최고.^^

무해한모리군 2008-11-0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보고 싶었는데, 원래 회사노는날인데 사장이 비상근무 운운하며 오전근무만 하자더니 오후 4시까지 퇴근을 안시켜주네요. 볼 수 있을라나 ㅠ.ㅠ

로드무비 2008-11-03 22:31   좋아요 0 | URL
휘모리 님, 12일까지 한답니다.
꼭 챙겨보세요.^^

무해한모리군 2008-11-04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보았답니다.
미안하게도 맛있단 말이야 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네요.
먹는 행위와 죽음을 밀접하게 그린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

로드무비 2008-11-04 10:17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에 사무실에서 치킨 먹는 장면 나오잖아요.
그날 밤 바로 시켜 먹었습니다.^^

Arch 2008-11-0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둠의 경로(이거 아니면 볼 수가)로 봐야겠어요. 맛있고, 좋고 귀가 즐겁고 가볍지 않은 묵직함. 많은 형용사 대신 찬찬히 시간을 두고 보려구요. 로드무비님 영화 얘기 참 좋아요.

로드무비 2008-11-04 14:19   좋아요 0 | URL
시니에 님, 아이고 그렇군요. 아쉽지만 어둠의 경로로라도...
몇 마디 주절거림 정도에 불과한데,
제 영화 얘기 좋다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요.^^


2008-11-0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