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막다른 골목 아닌 적이 어디 있었던가' (손택수 시 중에서)

바다를 바로 눈앞에 끼고 꼬불꼬불 도는 부산의 산복도로 골짜기 동네에는
100만 명이 넘는 부산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범일동에서 시작하여, 수정동 초량동 영주동 대청동을 지나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지나......

사흘간의 촬영을 마치고 "산복도로의 끝이 어디예요?"라고 묻는 스태프의 질문에
한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산복도로는 끝이 없다!"







산복도로 위에는 내가 태어난 메리놀병원이 있고,
대학 1학년 때  짝사랑했던 머스마가 다니던
계단 가파른 남자 고등학교도 있다.


학교 졸업하고 몇 년째 펑펑 놀며 혼자 책 읽고 영화 보고 돌아다니는 게 미안해서
한 가톨릭 모임에 들어가 점자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점자는 너무 어렵기도 하고 시각장애인들을 에스코트하는 게 더 적성에 맞았다.
어느 날 1대1 봉사(수녀님과 기사님 포함 전체 열두 명)로 동광동 사는
세실리아 아줌마를 모시고 2박 3일인가  미리내 성지에 다녀왔는데,
그만, 봉고차를 운전했던 청년과 눈이 맞아버렸으니......
세실리아 아줌마가 사는 집도 바로 저런 가파른 계단 위.






동네마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골목에는 거무튀튀한 평상이 하나 있고
노인들이 사과며 배를 깎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신다.
함흥이 고향이라는 실향민 할아버지, 1.4후퇴 후 거제도에서 피난생활을 하다
이 동네에 정착했는데 거제도 사람들이 얼마나 인심이 좋고 심성이 착했는지
잊을 수가 없다며 울먹이시고.

얼마 전 읽은 유종호 선생의 산문집 <그 겨울 그리고 가을 - 나의 1951년>에는
피난민들을 들이기 싫어 '우리 동네엔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라는 방을 써붙인 마을이
그렇게도 많았다는데......
충격이었다.








수정동인지 초량인지 영주동인지 동네 이름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진리길'이라는 명패를 붙인 한 골목의 할머니 전용 카페.
녹차 커피 300원, 대추차 쑥차 500원......

집안일을 하다가 단골들의 성화에 불려나왔다는 주인 아주머니,
"이런 게 좋지, 너무 잘살아도 재미없을 것 같아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일단 한 번 잘살아보고 나서 저런 말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게
버릴 수 없는 나의 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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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9-10-24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 산복도로 얘기가 이곳에 뜨다니 정말 반갑네요. 제가 학교 졸업하고 가장 먼저 취업했던 곳이 산복도로 밑에 있는 대청동/광복동 부근 전자 골목이었답니다. 아아~, 어떻게 변했는지 찾아가보고 싶습니다. 그때 궁핍했던 부산 생활의 추억이 그립군요.

제가 산복도로를 알게 된 까닭은, 제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님 누님께서 대청동에서 산복도로를 타고 올라가다가 그 언덕배기 중간쯤 오른쪽 자락에 살고 계셨는데요, 제가 가서 끊어진 전기선을 이어주고 형광등을 새로 달아드렸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그 당시의 지형이 저 위에 있는 둘째 사진과 아주 비슷했죠(물론 저 위 사진은 대청동 위쪽 산복도로가 아닌, 다른 동의 산복도로 사진인 듯한데요). 저 사진들을 보니까 그때의 옛 추억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는군요. 옛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아나게 해주신 로드무비(roadmovie) 님의 위 글과 사진, 정말 반갑고 고맙습니다.

(2009-10-24-맑음. 19:43)

로드무비 2009-10-24 22:55   좋아요 0 | URL
qualia 님, 지난주 프로그램 끄트머리만 보고 안타까워 하다가
오늘 낮 다시보기로 챙겨봤습니다.
제가 부민동에서 태어났거든요.
동광동 인쇄골목에서 딱 한달 이상한 직장생활도 경험해 봤고...

그래서 님이 들려 주시는 동네 이야기가 꼭 제 이야기 같습니다.
(형광등 하나 바꿔 다는 데 두서너 달 걸리는 처지지만 어쨌든...)

페이퍼를 하나 쓰고 싶어 사진들을 좀 긁어모았습니다.
좋아해 주시니 저도 반갑고 기쁘네요.^^

qualia 2009-11-11 04:28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 님, 혹시 동광동 인쇄골목이라면, 대청동하고 붙어 있는 데가 아닌가요? 로드무비 님께서 동광동 인쇄골목을 말씀하시니까, 제 기억에서 또 다른 추억 하나가 호출돼 나오는데요... 제가 잘 가던 실비집이 인쇄골목 쪽에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근무하던 전자골목에서, 광복동 쪽을 바라본 상태에서 대청동 오른쪽으로 한두 거리를 가로질러 가면, 아주 싸고 맛있고 푸짐한 우동(혹은 칼국수)을 파는 실비집이 있었어요. 그 당시 제 월급이 쥐꼬리보다 적었는데요, 그래서 저는 제 나이 어린 동료랑 그 싸고 맛있는 실비집을 자주 갔었죠. 구수한 내음과 함께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우동에다 톱밥 같은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서 먹는 그 맛, 정말 잊을 수가 없네요.

제가 한번 인쇄골목의 한 인쇄소에 업무차 갔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의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지금도 제 귀에 윙윙거립니다. 어쩌면, 로드무비 님과 저는 동일 시간, 동일 공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서로 교차했을지도 모릅니다.^^

로드무비 님의 동광동 인쇄골목 얘기 하나로 매트릭스의 세계가 따로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추억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2009-11-11 02:39)

2009-11-11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4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4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4 23: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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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5 01: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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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9-10-2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맞아버렸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2009-10-24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ptrash 2009-10-2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둘레길 첫 마을, 지리산 매동마을 편을 하더라고요. 무한도전 재방을 보다가 친구의 문자를 받고 돌려서 봤는데... 같은 디자인의 야구모자를 쓴 어르신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야구 모자 앞에 쓰인 '신드롬' '수도왕' '마그마' 같은 단어에 혼자 웃고, 사흘 간의 촬영을 마치고 내려가려는 VJ에게 "차비 줄까?" 하며 서운해하시는 할머니 모습에 짠해도 하고.

후니훈님의 <풍경과 상처>를 앞에 놓고, 읽지는 않고 어느 분의 리뷰를 먼저 봤어요.

"대동여지도에 관한 나의 생각은 '고향'에 대한 생각과 맞물려 있다. 나는 고향에 관한 사람들의 그리움 섞인 이야기나 문학과 유행가 속에 나오는 고향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을 경멸한다. 증오한다라고 쓰려다가 경멸한다라고 썼다. 내 고향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이다. 그 먼지 나는 거리에서 나는 자랐다. 그리고 나는 내 '고향'에서 길 하나 건너간 곳에 있는 회사에서 밥을 번다. 손바닥만한 도심의 공간이 내 한 생애의 공간이다. (중략)

고향에 집착하는 인간을 경멸한다는, 내 서두의 헛된 진술을 나는 이제 파기한다. 나는 속으로 운다. 나는 다시 쓰겠다. 나는 고향일 수 없는 고향에 마음 쓸리우면서 새롭게 고향을 세우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내 고향 서울 종로구는 자동차와 먼지뿐이다. 고산자여 내 고향을 네 대동여지도 속에 넣어다오."

언젠가 다 털고 조용한 산골마을에 돌아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먹이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인간을 사랑하는 김훈 선생의 입장에서라면 그건 좀 비겁한 일이겠죠?

아참, 잘 지내시나요?

로드무비 2009-10-25 02:04   좋아요 0 | URL
언젠가 도시 생활에 신물이 나면 이곳으로 돌아와 살겠다던
부산대 사학과 학생(산복도로 길 위에서 만난)의 말이 좋았습니다.
산복도로 동네에서 바라본 야경도 정말 근사했고요.

<풍경과 상처>는 오래 전 참 좋아했던 글들이 묶인 책입니다.
그런데 이 제목으로 책이 다시 나온 줄 모르고 있었네요.

poptrash 님, 반갑습니다.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오늘, 아니, 어제 매동마을 편은 못 봤습니다.
일요일엔 채널권이 없는지라... 꼭 챙겨볼랍니다.^^)




2009-10-25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5 1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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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9 16: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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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9 1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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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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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희 2012-10-1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그립네요... 부산 떠난지 8.9년 정도 되어 가는데.. 영주동에서 17년 살았거든요..
이번에 부산 여행을 한번 갈려고 해요.. 옛추억도 떠울리고 제가 태어나 메리놀 병원 봉래초등학교 은하아파트 야경 전부 다 보고 싶네요
 

오늘 아침, 학교에 간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젯밤에 쓴  효행일기를 책상 위에 두고 왔으니 좀 갖다 달라고.
(효행일기는 학교 주말 숙제다.)

온 가족이 낄낄대며 모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밤 열 시가 넘는다.
딸아이는 그때부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는데,
- 엄마 커피 타줄까?
- 허리 주물러 줄까?

수학공책도 아니고(수학공책에는 나, 뭐랄까, 외경심을 품고 있다)
효행일기라니 못 갖다준다고
신경질을 있는 대로 내고는 부랴부랴 얼굴을 씻었다.

독립심이든 뭐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모른척 할 일이지만 먼 장래는 나중 문제다.
그나저나 이렇게 살다보면 발등의 불만 끄다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걸으면서 딸아이의 효행일기를 펼쳐봤더니,
낯이 뜨거워진다.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갑자기 담이 올라말라 해서 등과 허리를 주물러 준 것이 전체의 절반.
심지어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엄마의 요청으로 흰머리를 뽑아주려고 했는데 흰머리가 너무 많아져 골치가 아파서
포기했다는 이야기.
갑자기 늘어난 엄마의 흰머리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뭐 이렇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어젯밤엔 궁리 끝에 딸아이와 상의, 메뉴를 달리 하기는 했다.
커피에서 보이차로.
얼마나 산뜻한가.

지난주엔 경상도 사투리를 조사해 오라는 학교 숙제가 있어
나의 전공이라며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할 기회라고 쾌재를 불렀는데
딸아이는 뭐가 못 미더웠는지 도와주겠다는 나의 간청을 싸그리 무시했다.

'천지빼까리'도 있고 '입수구리'도 있고 뭐도 있고 뭐도 있고 신나서 주워섬기는데
냉정한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조사하겠다며.

효행일기 좋아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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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0-19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로드무비 2009-10-19 21:52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

마노아 2009-10-19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웃자니 미안하지만 아니 웃을 수가 없군요.^^ㅎㅎㅎ

로드무비 2009-10-19 21:52   좋아요 0 | URL
웃어 주시니 저도 좋아서, 히히히.^^

에로이카 2009-10-1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랜만에 보는 로드무비님 페이퍼, 즐겁게 잘 봤습니다. ^^

로드무비 2009-10-19 21:51   좋아요 0 | URL
너무 이른 시간에 세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했는데
돌아오는 발걸음은 또 가뿐하더라고요.
오랜만에 페이퍼도 하나 쓰고, 정말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조선인 2009-10-1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그나저나 '입수구리'보다는 '주듸'를 찾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로드무비 2009-10-19 21:50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그럴지도 모르지요.^^



바람돌이 2009-10-1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만나는 로드무비님 글이랑 주하 소식이 이렇게 반가울데가.... ^^
아이들이 이렇게 독립을 해나가는군요. 엄마를 슬프게 하면서... 예전에 로드무비님 페이퍼보고 우리 애들은 언제쯤 이렇게 예쁜 짓을 하나 싶었는데 요즘 그러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엄마말을 무시할때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겠죠? ㅎㅎ

로드무비 2009-10-19 21:48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페이퍼 제목을 '악행일기'로 잡으려다 참았습니다.
주하 처녀 태가 납니다.
좋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합니다.^^
바람돌이 님의 두 자매는 애교가 여전하죠?
그때가 제일 좋은 땝니다.
곧 끝나겠지만.=3=3=3

치니 2009-10-19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주하 최고! 당하는 로드무비님이 하나도 안 불쌍해요.
너무 멋진 처녀로 자랄 거 같은 예감이 들어서.

로드무비 2009-10-19 21:46   좋아요 0 | URL
에잉? 제가 언제 당했습니까!^^
치니 님, 저 좀 불쌍히 여겨주시라요.^^



릴케 현상 2009-10-1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 정말 재밌네요

로드무비 2009-10-19 21:42   좋아요 0 | URL
저의 유머 감각은 녹슬지 않았죠?=3=3
(이런 말만 안하면 평균은 된다는 말을 듣는디.^^)

2009-10-19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9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9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애들은 효행을 너무 행동에서만 찾으려 한다니까요. 마음은 싸그리 무시하고..^^(우리아이만 해당될수도..)

로드무비 2009-10-19 21:39   좋아요 0 | URL
정 님, 마음은 언감생심, 행동이라도 제대로 된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얀마녀 2009-10-1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재미있네요.

로드무비 2009-10-19 22:05   좋아요 0 | URL
헤헤, 고마워유.^^

twoshot 2009-10-19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참으로 즐거운 페이퍼였습니다.^^

로드무비 2009-10-19 22:13   좋아요 0 | URL
간만에 저도.^^

2009-10-20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0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9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1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


다섯 편의 영화를 함께 한 헤이조크와 킨스키의 애증의 관계를 잘 묻어나는
‘나의 친애하는 적-클라우스 킨스키’.
광기어린 배우와 그를 지켜본 감독과의 우정 아닌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이 영화는
1991년 사망한 킨스키를 그리며 1999년 제작되었다.

절대로 같이 쓰일 수 없는 것 같은 ‘친애’와 ‘적’이라는 단어가 함께 들어간 제목은
아이러니함을 안겨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다면 밉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고,
이해하지만 동조할 수 없는 한 배우를 설명하는데 가장 절묘한 문장이라고 느껴진다.

원제목은 'My best fiend'. 얼핏 본다면 ‘fiend’를 친구를 뜻하는 ‘friend'로 착각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러나 ‘fiend’는 사전적으로 ‘악마’, ‘마귀 같은 사람’ ‘어떤 것에 미친 사람’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
친구-악마, 사랑-증오로 대변되는 킨스키와 헤이조크를 관계를 이해하는데 적절하다.

헤이조크의 ‘친애하는 적’ 킨스키는 언제나 공격적이고, 거칠었다.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법 없이 소리를 질렀고 싸움을 걸었다.
많은 배우들이 그의 예민함을 무서워했고 매서운 눈빛을 두려워했다.

영화 촬영에 도움을 주었던 인디언들은 그의 사나움에 ‘저 자를 없애 드릴까요?’라고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고.
헤이조크 역시도 ‘킨스키를 죽이기를 시도했으나 그의 집 앞을 지키던 사냥개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킨스키는 괴짜였지만 꽤나 매력적인 사람임은 틀림없다.
영화 촬영을 위해 정글에 들어가는 것은 꺼리면서 자신의 소장용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정글의 나무에 걸터앉아 폼을 잡았다.

거칠고 난폭하던 킨스키는 영화 마지막에서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 나비와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강렬한 연기와 괴팍한 성격을 가진 배우였지만
그 뒤에는 연약한 모습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게 했다.

헤이조크가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마도 단단한 방패 뒤에 숨어 있던
킨스키의 인간적인 면모를 추억하기 위함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한경닷컴 bnt뉴스 조은지 기자 star@bntnews.co.kr  

 




헤어조크 감독의 페르소나이자 우정과 애증의 관계를 넘나들었던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의
사후에 만들어진 작품. 헤어조크가 13살 때 이루어진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5편의 작품을
함께 하며 지속된 특별한 관계와 추억의 회고, 그리고 클라우스 킨스키의 광기를 보여주는
기행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스트라빈스키의 불꽃과 차이코프스키의 얼음이 만난다면 어떤 음악이 나올까.
광기의 에너지로 이글거리는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 그리고 그 통제 불가능한 야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차갑게 지켜보면서 카메라 프레임 속에 가두는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이 두 사람의 기나긴 애증 관계는 영화사에서 결코 도달 할 수 없을 것 같던
새로운 미적 영역을 개척한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1999년 작 다큐멘터리 <나의 친애하는 적>은 이 불꽃과 얼음의
극한 대립을 차분하게 풀어낸다.
<노스페라투>, <보이체크>, <코브라 베르데>, <아귀레, 신의 분노>, <피츠카랄도> 등
5편의 장편영화를 함께 했던 영화적 동지이자 원수였던 킨스키와의 첫 만남,
이후 영화 촬영 기간 내내 참아내야 했던 킨스키의 기행과 히스테리, 발작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실제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했던 일화들, 수백 톤의 증기선을 산 위로 끌어 올리는
무모한 촬영, 영화 속 스토리보다 더 회자된 정글 속 이야기들은 대단히 흥미롭다.
마지막 2분, 나비와 함께 애처럼 즐겁게 놀면서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킨스키가 비춰진다.
킨스키를 주목하던 카메라가 어느새 헤어조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순간이다.
나비의 날개짓같이 가벼웠던 킨스키, 평생 그의 광기를 카메라 프레임 속에 잡아 두려 했던
헤어조크의 미안함이 고백처럼 드러난다. 비로소 그는 그를 날려 보낸다. (오정호)


1999 상 파울로 국제영화제, 관객상

 


베르너 헤어조크 Werner Herzog
1942년 독일 뮌헨 출생. 산골 마을인 바바리아에서 자란 그는
영화는 물론 TV와 전화도 접하지 못한 채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린 나이부터 세계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철공소에서 번 돈으로 단편 <헤라클레스>를 제작,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첫 장편 <싸인 오브 라이프>(68)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면서 주목 받는 감독이 됐다.
이후 <아귀레, 신의 분노>(72)로 그의 페르소나,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를 만났으며, 뉴저먼시네마의 기수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잡았다. 그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목표를
추구해가는 광기 어린 인물들을 주로 다뤘으며, <하늘은 스스로 돌보는 자를 돌보지 않는다>(74),
<피츠카랄도>(82), 와 <그리즐리 맨>(05) 등을 통해 칸영화제를 비롯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1999년작, 96분

방영일시 2009-09-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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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7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8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7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9-28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갔다 --;; 하지만 다시보기가 되겠지요 ㅎ

로드무비 2009-09-28 12:03   좋아요 0 | URL
다시보기는 안 되지만 다음에서 하이라이트 부분 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BRINY 2009-09-28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봤어요. 이 사람이 나스타샤 킨스키의 아버지 맞죠?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의 역할이 제일 기억에 남았는데, 그 역할에선 상상하기 힘든 내용의 다큐였어요. 그냥 '미쳤구나'하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로드무비 2009-09-28 12: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의 딸.
<아귀레 신의 분노>를 찍을 때 그는 정말 광인 같았는데
뒤편으로 갈수록 어쩐지 쓸쓸한 것이...
헤어조크 감독의 깊은 눈매도 인상적이었죠?^^

2009-10-05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6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7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7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8 0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름도 다 갔는데 텐트를 주문했다.
어디까지나 딸아이 선물인데, 나도 가끔 마루에 펴놓고 들어가 책도 읽고 낮잠도 잘 생각.
'1초 만에 펴지는 자동텐트'라는 문구에 혹해 구입했는데
제대로 접지 못해 지금도 끙끙거리는 중.






비닐 여행가방.
1박 2일 혼자 떠나는 여행에 더없이 좋을 듯.

 



..님, '수달 비누받침'은 이렇게 생겼답니다.
궁금하실 듯하여...

 


12시가 되면 12는 보라색으로 변함.
남편에게 받을 생일선물로 내 맘대로 정하고 주문,
오늘 드디어 현금 뜯어내기에 성공! 

 



저 굴뚝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오릅니다.
'깊은 산속 오두막'  향꽂이. 

 



정을병의 소설 <개새끼들> 상,하권.
며칠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구입.
도서관에서 처음 빌려 읽은 책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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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4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oshot 2009-09-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달 비누받침 너무 탐나는군요!
이제 여름도 갔으니 로드무비님의 페이퍼를 올려주세요~~

로드무비 2009-09-24 23:46   좋아요 0 | URL
오천 원 정도만 해도 twoshot님께 선물하는 건데.=3=3
페이퍼 대신 리뷰 올리면 안 될까요?^^
(주전자는 사셨어요? 갑자기 생각나서.)

비연 2009-09-25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제목 넘 맘에 듭니다..'개새끼들'이라니! ㅋㅋㅋㅋ

로드무비 2009-09-25 11:17   좋아요 0 | URL
저도 제목에 끌려 골라든 거예요.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남아서.ㅎㅎ
혹 읽고 싶으시다면 빌려드릴 생각 있습니다.

Joule 2009-09-25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달 비누받침 어디서 사셨어요? 가만, 근데 나에게 저게 필요할까. 아무렴 우리 집엔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병아리 자명종도 있는걸요. 그래, 병아리가 좋아하겠어요. 어디서 사셨어요?

로드무비 2009-09-25 11:15   좋아요 0 | URL
수달 명함꽂이도 근사하더라고요.
가게는 텐바이텐.^^

Joule 2009-09-25 13:37   좋아요 0 | URL
수달 비누 받침 사러 갔다가 너무 비싸서 쓰레빠 끌고 그냥 집에 돌아왔습니다. 5,2000원어치만큼의 욕망은 아닌 것 같아서.

로드무비 2009-09-25 17:54   좋아요 0 | URL
2만 원 정도면 한 번 생각해 보겠는데 말이죠.^^

BRINY 2009-09-25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달비누받침 어디서 사셨는지 알고싶어요!!! 비누가 아니라도 다른 거라도 올려놓고 쓸래요!

로드무비 2009-09-25 11:14   좋아요 0 | URL
BRINY 님, 수달 비누받침은 10X10에서 팔아요.
전 지점토로 똑 같이 만들어볼 생각입니다.(어느 세월에...ㅋㅋ)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더라고요.

BRINY 2009-09-25 14:22   좋아요 0 | URL
저도 역시 10X10이구나! 하고 갔다가 너무 비싸서 돌아나왔네요.

로드무비 2009-09-25 18:00   좋아요 0 | URL
쓸쓸한 그 발길, 짐작했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9-25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텐트도 곱고, 비누받침도 곱고..
참으로 눈이 밝고 취향이 곱디고우십니다.

로드무비 2009-09-25 11:07   좋아요 0 | URL
취향이 어리디어리다고 쓰셨다가 다시 쓰신 건 아니고요?=3=3=3
아직도 큰 박스만 보면 거기 들어가 살림을 차리는 딸아이 때문에
큰맘먹고 산 건데요.(정말입니다.)
어른 세 명이 누울 수 있는 넉넉한 크깁니다.^^



조선인 2009-09-25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향꽂이에 눈이 확 꽂혔습니다.

로드무비 2009-09-25 11:02   좋아요 0 | URL
가로 10센티미터 정도 회백색의 콘크리트 창고 같은 건데요.
그게 또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있더라고요.^^

瑚璉 2009-09-2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달에 한 표입니다.

로드무비 2009-09-25 11:00   좋아요 0 | URL
<수달>이란 책이 있는데 표지도 좋고 거기 실린 소설들도
끔찍하게 좋습니다.^^

2009-09-25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5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5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5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5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6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09-09-25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텐트 넘 탐나요
저런건 얼마나 하나요

로드무비 2009-09-25 17:46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
6만몇 천 원에 샀습니다.
'에누리'로 검색해 보니 11번가가 제일 싸더라고요.

치니 2009-09-2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 저는 시계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로드무비님, 오랜만! ^-^ 와락 껴안고 있는 중.

로드무비 2009-09-25 17:45   좋아요 0 | URL
치니 님, 쪽.=3
무슨 음향일까요?^-^

바늘 없는 시계 마음에 쏙 듭니다.
심플하다 못해 어찌 보면 조금 허전한 것 같기도 하지만요.

 




얼굴 : 그웬델린 이야기 / About Face: The Story of Gwendellin Bradshaw



· 감독 메리 카츠케  
· 제작국가 미국 
· 제작년도 2009 
· 러닝타임 82min  
· 원작언어  
· 방영일시 2009-09-23 23:30
· 상영시간 EBS Space 2009-09-22 11:10
아트하우스 모모 2009-09-21 14:30
아트하우스 모모 (2차) 2009-09-24 18:00  


1980년, 생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그웬델린은 정신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에 의해 불 속에 던져졌고,
24년이 흐른 지금까지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이 작품은 알래스카의 추운 겨울날 그웬델린이 자살시도를 한 사건에서 출발하여,
치유와 회복을 위한 그녀의 5년에 걸친 여정을 담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상처받은 한 영혼이 그 트라우마와 직면하면서
자신을 발견해가는 일종의 성장기다.
생후 1년이 채 되기 전에 정신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에 의해 불에 던져져
얼굴과 몸에 지울 수 없는 화상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주인공 그웬들린 브래드쇼는
가장 가까운 어머니에 의해 거부 받은 심리적인 상처로 인해 끊임없는 불안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24살의 추운 겨울날 자살시도를 한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에 상처를 준
어머니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잃어버린 얼굴을 찾기 위한 5년 동안의 여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어머니를 찾아 나선 길은 어머니를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화해와 용서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디 다큐멘터리의 보편적인 형식과 정신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웬들린 브래드쇼의 자화상을 통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자신만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가지는
잔잔하지만 힘찬 울림이 있는 작품이다. (김현주)




메리 카츠케 Mary Katzke
텍사스주립대학에서 라디오, TV, 영화를 전공하고 뉴욕대학 티시
예술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알래스카에 거주하며,
1982년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알래스카의 사회 문제를 알리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Affinity Films를 설립했으며,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및 감독으로 3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다.

 

 

 http://www.eidf.org/2009/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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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16: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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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19: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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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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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16: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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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2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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