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들지 않는다 -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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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련과 싸움의 연속이다. 아무리 윤택한 환경에 있는 자라도 시련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인간이란 그렇게 살 운명이다. 그 또한 인간 역시 야생동물의 일원이라는 증거다. 야생동물이라면, 자신이 지닌 모든 능력을 발휘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인생의 길을 걸어야 생명은 그 빛을 발하고, 진정한 젊음도 획득되는 것이다.’(50쪽)

 

 아직은 자신 있게 마루야마 겐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단호함과 당당함에 끌리는 정도가 맞겠다. 자신의 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 작가인 것 같다. <나는 길들지 않는다>라는 제목처럼 말이다. 길들지 않는다는 말은 자유롭다는 말이라 생각한다. 자유롭다는 건 책임을 질 줄 아는 삶으로 확대된다. 그러니 마루야마 겐지는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시류에 휩쓸려 사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규칙대로 생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모든 상황에 있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건 어렵다. 물론 마루야마 겐지가 주장하는 바는 독립적으로 살아가라는 게 아니라 세상의 지배가 아닌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진정한 젊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가족, 직장, 지배자에게 길들지 말라고 강력하게 직언한다. 태어나면서 필연의 관계가 되는 가족에게 길들지 말라는 이상하게 들리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언제라도 편안하고 쉽게 기댈 수 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다는 건 옳다. 특히 그의 말처럼 어머니라는 존재는 가장 위험하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직장에서 대해서도 그는 단호하다. 직장인이라는 삶에 안주하지 말라고 말한다.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어려운 시대, 과연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떤 이는 비전을 보라는 말로 해석할지도 모른다. 마루야마 겐지는 하나의 대안으로 농업을 제시한다. 자신의 손으로 가꾼 땅에서 얻은 수확물로 생활하는 삶을 통해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산 자에게 유일무이한 보물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아무도 지배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고 진정한 자립이며 진정한 젊음이다. 하지만 무수한 욕망과 무수한 정념이 그 길을 가로막아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자는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192쪽)

 

 재산, 명예, 지위라는 욕망에 눈 돌리지 않고 자신의 목표대로 정진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안주하고 만다. 생애를 치열하게 살아내는 야생동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가슴이 뜨끔거린다. 우리의 삶은 어떤 삶인지, 살아 있는 자인지, 살아 있지 않은 자인지, 질문이 뜨거운 화살처럼 박힌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자는 진정 살아 있는 자이고, 타인에 기대 살아가려는 자는 가짜 산 자이다. 전자는 ‘살아 있는 자’이며 후자는 ‘살아 있지 않은 자’이다. 요는 살아 있을 것이냐, 살아 있지 않을 것이냐이다.’(207쪽)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책은 아주 멋진 젊음 처방전이 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무기력해지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세대에게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발점이 되고 경제적 독립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이든 확고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삶, 그것이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삶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마루야마 겐지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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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 2014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공간 3부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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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은 유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하다. 반대로 예측할 수 없는 유한의 것이기에 소중함을 모르고 살기도 한다. 남은 삶을 측량할 수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살기를 원할 것이다. 주위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지막을 위한 현명한 이별 방식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임에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말이다. 그러니 자유롭게 살아가는 김기창 장편소설 <모나코>속 노인이야말로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사람이다.

 

 노인은 거대한 저택에 고양이 두 마리와 출퇴근 도우미 ‘덕’과 살고 있다. 외손녀까지 있는 ‘덕’ 역시 치매에 걸린 노모를 위해 다른 도우미 고용을 위해 돈을 번다. 노년의 삶은 고단하고 외로운 것이다. 노인은 이웃과 교류가 있거나 동네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다. 집 안에는 그를 위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다.  건강을 위해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집안 곳곳에 다양한 약은 물론 영화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까지 따로 있다. 노후의 걱정이나 근심을 찾아볼 수 없는 삶이다. 때때로 세 아들의 형식적인 방문이 기다려질 때도 있고 죽은 아내가 그립지만 혼자인 게 좋다.

 

 노인의 즐거움은 동네 산책이며 ‘진’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진’은 유부남의 아이를 낳고 수녀원에서 생활하는 젊고 어린 여자다. 손녀 뻘인 ‘진’을 보면 설레고 흥분된다. 젊음을 느낄 수 있는 것, 욕망을 상상하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다. ‘진’도 다르지 않다. 노인에게 돈을 목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다. 말이 통하는 친구, 자신과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 보는 노인이 나쁘지 않을 뿐이다.

 

 ‘노인은 자신과 진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아무도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지금껏 혼자인 것은 다른 사람들 탓이 아니다. 지금의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젊은 사람 중 관계의 시달림보다는 외로움을 택하는 사람이 있듯이 노인도 그럴 수 있다.’ (65쪽)

 

 고백하자면 소설을 읽는 내내 노인과 ‘진’ 사이에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진부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을 초대해 맛있는 밥을 먹이고 따뜻한 물에 아이를 목욕시키는 일이 전부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나코로 떠나 둘만의 시간을 갖거나 노인이 자신의 재산을 진에게 남기는 일 따위는 없었다.

 

 고양이와 말을 나룰 정도로 외로웠지만 노인은 죽음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에게 남겨진 삶이 길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과 약이 있어도 곧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걸 누구보다 먼저 알았던 것이다.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노인도 그랬을 것이다. 다만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일 아침에 내가 살아 있으면 그때 가서 고민해도 안 늦어. 그리고 또 하루가 갈 거야. 나는 그다음 날 또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 그다음 날도. 또 그그다음 날도. 그그그다음 날도.” (111쪽)

 

 거칠 것 없는 노인의 당당함 뒤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은 혼자 겪어야 한다. 작가는 아무도 없는 커다란 집에서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노인의 모습은 통해 그 사실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곧 유한의 삶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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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시작이다. 이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의 따뜻함과 달콤함이 고맙다. 이 즈음의 날들은 불안이 짙어지기도 하고 오히려 담담해지기도 한다. 마음을 모으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난분분 꽃잎이라면 아름답겠지만 조각난 마음은 그 모양새가 아주 밉다. 아버지의 유산 아닌 유산으로 인감을 떼는 일이 잦아졌다. 좀 전에 걸려온 올케언니의 전화의 통화 내용에도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가 있었던 시절은 봄이었고, 그 봄은 유일하고 특별한 계절이 될 것이다.

 

 어제는 장승리의 『습관성 겨울』과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시인 장승리의 첫 시집이라서, 제목 때문에 나는 그 시집이 읽고 싶어졌다.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바라보게 만드는 눈, 막심 고리키의 『은둔자 』, 존 버거의 시집 『아픔의 기록』, 어린 시절 갖지 못한 동화 『안데르센 메르헨』, 놀라운 할인가로 유혹하는 (이 책에 대한 호평도 읽었고) 『위대한 박물학자』, 다자이 오사무의 『쓰가루. 석별. 옛날 이야기』가운데 일부가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이제니의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김경욱의 『소년은 늙지 않는다』, 빅지혜의 『햇빛』, 정끝별의 『은는이가』도 이 계절에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을 위한 마지막은 계속될 것이다. 그 끝은 11월 20일이 된다.

 

 

 

 

 

 

 

 

 

 

 

 

 

 

 

 

 

 

 

 

 

 

 겨울은 시작되었고, 나는 지난 4월의 어느 날 찍어둔 이런 사진을 보고 있다. 김혜순의 시와 함께 말이다.

 

 

 

딸기

 

 

 접시에 붉은 혀들이 가득 담겨 왔다

 

 찬송 부르는 성가대원 입속의 혀처럼 가늘게 떨고 있었다

 

 네 혀가 내 혀 위에 얹혀졌다

 

 두 개의 혀에서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세상이 온갖 맛을 음미하다 이제 돌아와 우리는 좁쌀 같은 돌기들을 다소곳이 맞대었다

 

 너는 입속에 혀만 있고 이빨이 없는 사람 같았다

 

 몸 저린 뿌리가 내장 사이로 번개처럼 뻗어내리고, 전기처럼 차디찬 시냇물이 머리결을 타고 흘러내렸다

 

 깨물면 붉은 물이 돋을까 봐, 나는 얼굴이 한정없이 게워낸 붉은 것들을 가만히 물고만 있었다 

 

 눈 맞은 나뭇가지처럼 포근한 네 개의 팔이 얽히고, 접시 가득 이 키스를 거두어들였다!

 

 그 작은 돌기들이 모두 네 씨앗들이었다는 말은 내가 네 혀를 다 짓이긴 후에야 들었다

 

 - 『당신의 첫』 44~45쪽

 

 

 

 

 

 

 

 

 

 

 

 

 

 

『당신의 첫』/ 문학과지성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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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1월이 되었다. 11월에는 11월을 노래한 시를 찾게 된다. 이규리의 「11월」로 시작하는 11월, 친구가 보낸 문자에는 나희덕의 「11월」이 있었다.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에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넣어 말리고 있다  (「11월」의 일부)

 

 

 바람이 달라졌고 달라진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올까 무서워 동동거리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11월의 첫날에는 캔맥주와 치킨을 먹었다. 냉장고에 남았던 마지막 캔맥주였다. 캔맥주를 좀 더 마시고 싶은 밤이었다. 취하기 좋은 밤, 취해도 괜찮은 밤이 더 맞겠다. 11월은 마지막을 위한 마지막, 음력으로는 여전히 9월인 11월이다.

 

 도서 정가제 실행을 준비하는 온라인 서점의 마케팅은 마지막이다. 마지막을 위한 마지막 구매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마지막을 위한 마지막은 계속된다.  구간 시집과 세계문학을 검색한다. 그러다 이런 표지가 반가워 다시 신간 검색.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떠올리는 표지 염승숙의 『그리고 남겨진 것들』은 장편이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무조건 끌리는 시인의 산문집 『소란』, 박연준 시인의 첫 산문집이라 더 끌린다.

 

 신중하고 신중한 마지막을 위한 마지막 첫 번째 리스트는 『열세 걸음, 『왼손잡이』, 『프랑켄슈타인』,『다른 방식으로 보기』, 『여인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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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점점 사람이 없어지는 걸까 저 겨울나무가 상실한 것은 없다 당신이 안 보이는 곳으로 갔을 뿐, 

  -「11월」전문, 71쪽

 

 

 

 

 

 


 

 이규리의 시로 시작하는 11월.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 계절에 태어난 이들도 떠올린다.

 내게 안부를 전하지 않는 당신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기를 바란다.

 

 불안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해도 괜찮다.

 작년을 살았듯 올해도 살아가면 된다.

 날카로운 바람이, 당신의 체온을 질투한다면

 바람과의 키스도 나쁘지 않겠지.

 그런,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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