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시간은 왜 이리 빠르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분명 수술 후 회복의 시간을 견디던 1월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2016년을 채운 365일 가운데 5개월이 지났다. 곧 6월이다. 여름의 한가운데에 놓인 날들이 시작될 것이다. 눈앞에 놓인 달력을 보니 오늘은 월요일. 저마다 다른 이름의 요일들이 내게는 모두 같은 이름의 요일로 다가오는 일상을 산다. 그러다 이런 시를 읽으며 어제는 일요일이었구나 생각한다. 어떤 시는 과거를 불러오고 어떤 시는 현재를 마주 보게 만든다. 박은정의 시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점에 서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어떤 시는 길을 잃고 헤매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누군가를 보여주고 어떤 시는 현재를 부정하고 과거에 매달리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일요일의 미로

 

 일요일, 손을 내밀어도 잡히지 않는 손, 발목이 비틀린 짐

승이 낮게 뒹굴었다 너의 머리 위를 지나는 구름을 기억하

렴 풀무치들과 죽은 해바라기까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우리는 걸었다 그쪽으로, 빛이 멀어지고 키 큰 나

무들이 두서없이 흔들렸다 혀를 말고 잠이 든 까마귀와 밤

사이 불어난 이끼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어 일

요일은 계속 걸었다 지겨운 짐승들의 울음이 위안이 될 때

까지, 오늘의 운세는 북쪽을 피하라 이곳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야 우리는 일요일처럼 설핏 웃었다 긴 밤이 덮쳤다 돌

아보아도 돌아갈 수 없는 어둠만 되풀이되는, 그럴수록 귓

바퀴를 돌던 물소리는 얼마나 환하게 반짝였던가 나가는 길

을 찾을 수 있을까 흔적만 남은 풍경이 너의 다리가 될 때까

지 그쪽으로, 일요일은 걷고 또 걸었다  (63쪽)

 

 

 창밖으로 쌓인 눈이 녹고 있는 산 중턱을 바라보던 지난 겨울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더듬어 본다. 시간이라는 미로에 갇혀 요일의 이름을 잊고 사는 이들의 건조한 시선을 좇는다. 일요일 다음의 월요일을 향해 걷는다고 믿었던 시간도 존재했을 터. 여전히 시간이라는 미로 속에서 반복해서 걷고 또 걷는 놀이를 즐기는 이는 없다. 미로를 좋아하는 건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 아이들은 출구가 존재한다는 걸 믿기 때문이고 어른들은 그 출구를 끝내 찾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포기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이였던 어른이 시간 속에 믿음은 사라졌다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니 계절이 바뀌는 일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신비로움이 아니라 반복된 삶일 뿐이다.

 

 

 긴 겨울

 

 

 겨울이 지겨울 때마다 그 짓을 했다 길고 나른하게 서로의

몸을 껴안으며 둘 중 하나는 죽기를 바라듯 그럴 때마다 살

아 있다는 게 징글징글해져 눈이 길게 찢어졌다 사랑이 없

는 밤의 짙고 고요한 계절처럼 이 반복된 허기가 기나긴 겨

울을 연장시켰을까.

 

 네 손바닥에 모르는 주소를 쓰고 겨울의 조난자들처럼  방

을 찾던 저녁이었지 방은 아담했고 누런 벽지의 무늬와 흐

린 불빛이 섞여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언 몸을 녹이자

너는 더운 입김을 내뿜으며 웃었고 나는 네 얼굴을 핥는다

자꾸 잠이 오는데 괜찮을까

 

 흔들리는 벽지 아래 서로의 손목을 쥐여주면 꽤 멋진 연인

이 되었다 우리는 가짜와 진짜처럼 정말 닮았구나 시린 외

풍이 불어와 겹겹의 바닥으로 쌓이는 밤 이불을 덮는 지루

함도 없이 이 겨울을 나자 궁색하게 남은 목숨의 자국이나

껴안으며 가까워질수록 사라지는 표정처럼 지겨워 지겨워

태어난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울고 있었을 뿐인데  (90쪽)

 

 

 그 겨울에 다녀간 선배 언니는 겨울이 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언니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겨울인 양 보였다. 모든 요일을 같은 이름의 요일로 살고 있는 나는 언니의 말에서 겨울이 따뜻한 계절이란 걸 발견했다. 그 뒤로 나는 주문처럼 겨울이 길었도 괜찮겠다고 중얼거렸다. 겨울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계절, 혼자가 아닌 둘이 될 수 있는 계절이었다. 긴 겨울이 사라진 뒤 봄이 찾아오면 겨울은 얼마나 슬플까. 봄이 되면 조금은 이상한 방식으로 포근했던 겨울의 온기를 잊고 살겠지. 다시 추워진다는 일기 예보와는 상관없이 거실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도 긴 겨울을 통과하는 걸 아쉬워하는 것만 같다. 하나의 계절을 통과한다는 건 성장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겨울과 봄이 지났고 여름을 맞는 지금, 나는 조금이라도 성장했을까?

 

 

 대화의 방법

 

 평생 인형의 얼굴을 파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는 아이

 네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내 이빨은 단단해졌다

 말을 해도 말이 하고 싶어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살을 꼬집으며

 되물어보던 허기처럼

 형광등은 깜빡이고

 인형은 얼굴도 없이 던져졌다

 

 오늘 이 자리,

 용기가 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겠지만

 모두들 처음 보는 사람처럼 앉아

 손뼉을 치며 웃는다  (14쪽)

 

 

 내 목소리로 생성된 말을 잃은 시간, 아무 목적도 없이 눈으로 시를 따라 읽는다. 아이와 인형의 대화를 들을 수 있을까, 반복해서 읽는다. 그러나 둘은 서로에게만 들리는 눈빛 언어나 복화술을 쓰는지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다. 박은정은 그런 모호함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입구와 출구가 존재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미로를 즐기는 어른이라고 할까. 그녀가 선택한 시어는 밝거나 명랑하지 않다. 일부러 잔혹한 말들을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걷다 발견한 이정표가 오히려 길을 잃게 만드는 것처럼. 하여 누군가는 도돌이표처럼 걷다가 걷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자신과 닮은 시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이런 풍경을 보며 웃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포기를 한 건 아니지만 온전한 웃음을 발견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모두가 같은 이름의 요일들을 살고 있다.

 

 

 풍경

 

 

 아무것도 아닌 것이

 풍경이 되는 일은 아름답다

 회복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기도처럼

 

 가방을 열면

 너의 손이 담겨 있지

 의미도 무의미도 없이

 피어나는 꽃으로

 

 이상한 유언을 쓰다가

 부끄러워 살고 싶어질 때

 

 경계도 없이

 투명한 공중으로 던져올리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나는 왜 여기에 없고

 너는 왜 여기에 있는가

 

 고통스러운 두 사람을 본다

 

 내가 만지는 네가

 웃고 있는 풍경  (4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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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천 개의 유혹 - 욕망이 만든 뜻밖의 세계사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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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욕망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떠오르는 생각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남들이 지닌 물건에 대한 욕심, 나는 왜 갖지 못했을까, 그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은 마음. 그것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 불행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뇌. 『보석 천 개의 유혹 』을 읽으면서 나는 잠깐 가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서랍에서 잠자는 다이아 반지, 목에 걸린 평범한 목걸이, 나중에 하나쯤 갖고 싶은 우아한 진주 반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고대사와 물리학을 전공하고 보석 디자이너이자 제작자인 저자 에이자 레이든은 독자가 이런 생각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랬다.

 

 책의 본문에 등장하는 보석은(사진, 그림) 정말 매혹적이다.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누군가는 사람을 속이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분쟁이 생겼다. 아름다운 보석에 숨겨진 역사라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렇다면 왜 보석일까. 인간의 욕망과 가장 많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욕망도 누군가의 마케팅이라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그렇다. 다이아몬드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건 바로 드비어스였다.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영화 속 여배우에게 다이아몬드를 제공했다. 그저 광고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뇌는 약혼, 결혼반지는 반드시 드비어스로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보석의 가치는 결국 인간의 욕망이 만든 것이다.

 

 책은 이처럼 보석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보석 전체를 다루는 게 아니라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진주, 황금달걀과 역사 속 에피소드를 접목해 들려줄 뿐이다. 프랑스 혁명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진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와 파베르제의 황금 달걀을 통해 보석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준다. 거기다 양식진주 개발이 불러온 일본의 성장과 손목시계의 가치 변천사까지 들려준다. 저자는 보석이 정치적 수단이었고 권력의 상징임을 설명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러 면에서 마케팅의 귀재라 할 만했다. 여왕이 판 물건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진주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대표하게 된 것은 단지 여왕이 진주를 무척 많이 가지고 있었고 항상 몸에 둘렀기 때문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는 일부러 진주와 진주가 연상시키는 모든 덕목을 자신과 결부시켰고, 진주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가장 핵심적인 통치 도구였던 거대한 상징화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258~259쪽)

 

 저자는 보석을 통해 세계사를 들려준다. 색다른 시선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단순하게 보석과 세계사에 얽힌 에피소드가 아니라 보석을 통한 인간의 욕망과 경제학, 심리학을 두루 다룬다고 봐도 좋다. 그러니까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역사서이고 누군가에는 물건의 가치, 광고, 가격을 매기는 경제학처럼 다가올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보석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읽든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욕망이다.

 

 ‘진짜 ‘보석’은 땅속이나 실험실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서 태어난다. 보석은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보석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보석은 그저 물건일 뿐이다. 보석은 우리를 살릴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으며 무언가를 만들지도 상상해내지도 못한다. 보석이 지닌 단 한 가지 본질이자 목적은 상을 맺고 다시 반사하는 것이다. 보석의 반짝이는 표면과 마찬가지로 보석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우리의 욕망을 반사해 다시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 (4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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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월요일 친하게 지내는 언니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한 시간 후에 온다는 것이다. 나는 언니에게 얼마의 시간이 허락되었는지 물었고 수목원에 가자고 제안했다. 작약이 피었을 것이고 나는 작약을 봐야 한다고. 커피와 빵을 먹으며 볼 일을 본 후 우리는 수목원으로 향했다. 수목원에 도착해서야 얼마 전 언니가 수목원에 다녀갔다는 걸 알았다. 작약을 좋아하는 내가 작약을 보고 싶어 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좋아하는 곳을 자주 찾는 걸 즐기는 나와는 달리 언니에게는 수목원을 찾을 이유가 없었을 텐데, 고마운 일이다.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많았다. 모자를 쓴 방문객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5월 중순의 수목원은 말 그대로 초록의 공간이었다. 제법 뜨거운 햇볕도 우리는 막을 수 없었다. 오로지 작약을 향한 전진, 작게 조성된 작약은 내게 기쁨을 안겨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내내 즐거웠다. 아지 피지 않은 작약은 봉오리도 예뻤다. 그곳의 풍경을, 그곳의 공기를 한 줌 가져오고 싶을 정도였다. 붉게 물든 얼굴과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비가 내리는 아침, 그 작약은 꽃잎을 떨구었을지도 모르겠다. 뜨거웠던 날들을 식혀주려고 꽃을 쉬게 하려고 비가 내리는지도 모르겠다. 작약을 떠올리면 유희경의 시집 『오늘 아침 단어』이 함께 온다.

 

 

 

  네가 심었다던 작약이 밤을 타고 굼실거리며 피어

나, 그게 언제 피는 꽃인지도 모르면서 이제 여름이

라 생각하고, 네게 마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게 아니면, 화분에다 심었는지 그 화분이 어떻게

허연빛을 떨어뜨리는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네가 심

은 작약이 어둠을 끌고 와 발아래서 머리 쪽으로 다

시 코로 숨으며 번지며 입에서 피어나고, 둥근 것들

은 왜 그리 환한지 그게 아니면 지금은 어떻게 설명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봄은 이렇게 지

나고 다시 여름이구나 몸을 벽에 붙여보는 것이다 그

러니 작약이라니 나는 그게 어떻게 생긴 꽃인지도 모

르고 나도 아니고 너는 더구나 아닌 그 식물의 이름

이 둥그렇게 떠올라 나는 네가 심었다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고 또 그런 작약이 마냥 지겨운 건 무슨 까닭

인지 심고 두 손을 소리 내어 털었을 네가, 그 꽃이.

심었다던 작약이 징그럽게 피어

 

-「심었다던 작약」, 전문

 

 

장석남의 작약도 있다.

 

빈방에서 속눈썹 떨어진 걸 하나 줍다

또 그 언저리에선 일회용 콘택트렌즈 마른 걸 줍다

이 눈썹과 눈으로는 무엇을 보았을까

이 눈썹과 눈의 주인을 생각한다

눈물 위에 이걸 띄워서 무엇을 보았을까

 

 

작약싹 올라온다

작약꽃이 피어 세상을 보다가

떨어질 것을 생각한다

 

 

작약 겹겹 꽃잎 속에

이 눈의 주인과 내가

눈 꿈쩍꿈적하며 나눈 말을

숨겨두리라

 

 

작약,

숨겨두리라

 

-「작약」, 전문

 

 

 

 

 

 

 작약을 보러 간 수목원은 언제나 그렇듯 평온한 생기가 넘쳤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새소리, 가장 매혹적인 향기,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건네는 나무들, 자세히 보게 만드는 잎사귀들, 우리가 그것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작약을 보고 온 후 『슈베르트와 나무』를 주문했다. 나무를 더 가까이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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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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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는 실체가 아니다.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작가 윤대녕에 대한 이미지는 사막, 안개, 푸른빛. 그의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건 서툰 관계와 삶에 대한 회의를 지탱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탐구라고 해도 좋을까. 그러니 오랜만에 만난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에서 내가 기대한 것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여전히 문장은 매끄럽고 아름다웠다. 상처를 가진 인물이 등장했고 그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존재도 있었다. 생에 대한 애착을 버린 사람들,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마마’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을 숨길 수는 없다.

 

 어쩌면 마마를 중심으로 아몬드 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는 알 수 없는 우주의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인지도 모른다.  재기를 꿈꾸는 극작가 김명우, 생부의 존재를 몰라 자신의 존재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마마의 조카 김현주, 소비되는 내가 아닌 자유로운 삶으로 전진하는 사진작가 박윤정, 연인의 잔혹한 죽음 후 관계의 단절로 생을 이어가는 윤태,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는 고등학생 정민. 마마가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며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살아간다. 온갖 역경을 헤치고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마마는 그들이 서로의 절망과 상처를 위로할 수 있는 존재라 믿은 것이다.

 

 화자 김명우를 통해 들려주는 그들의 지나온 삶은 고단함 그 이상의 고역의 연속이다.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느라 타인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 해체된 가족, 회복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다. 윤대녕은 혼자서는 풀 수 없는 생의 무게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남겨진 생이 훨씬 가볍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먼저 경험한 생의 일부가 누군가에게 조언이 될 수 있으니까. 각기 다른 세대는 서로가 통하지 않는다고 쉽게 말하지만 같은 세대가 아니기에 객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감정을 나누고 소통하는 방법은 아닐까.

 

 ‘나는 유대감에 대해 말했다. 상대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에서 얻어지는 친밀감을 통해 힘들 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원했던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라는 걸 알기 위해서라도 늘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 법이었다.’ (165쪽)

 

 선뜻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고 떠도는 아몬드나무 하우스 사람들이 정해진 날에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장면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드러내어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들 자신은 얼마나 외로운 존재였던가. 혼자서도 모든 걸 해결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현대인에게 타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게 만든다. 집이라는 공간, 함께 할 수 있다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돌이켜보면 위로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그저 들어주는 것,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는 것.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다. 내가 알았던 것을 당신에게 전해주는 일. 마찬가지로 당신이 알고 있는 걸 내게 전해주는 일. 그것은 소설 속 윤정과 명우가 나누는 대화 속 순환이다. 순환이 쌓이고 쌓이면 걷잡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힘. 그것은 소설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고자 하는 윤대녕의 힘이다.

 

 “일정한 주기의 반복이 가져다주는 삶의 에너지라는 게 존재하는군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순환이라고 봐야겠죠. 모든 존재는 순환하면서 나이를 먹고 성장을 거듭하니까요.”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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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5-1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단순한 걸 알아도 고장난 부품처럼 잘 안되는거거나 못하는 것...일테지 싶기도...하네요..모두 한마음 같지 않으니까. 타인들여서 지켜진 것들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가족이었다면 오히려 안되지않았을까...싶어요.
멋진리뷰 잘읽고 갑니다.^^

자목련 2016-05-19 15:13   좋아요 1 | URL
때로는 단순해서 더 쉽게 잊고 지나치는 것 같아요.
여름처럼 더워요, 아니 입하가 지났으니 여름인가요. ㅎ

[그장소] 2016-05-19 15:2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 곁에 있는 사람 특히나 가족에 대한 건 ..늘 그래왔는데 ..타인들 구성으로 이루어진 관계로 역광을 비추니 외려 잘 보이는 ,
겉으로 봐서는 사연이 풍선글처럼 떠있지 않는한 모를...일들이네요..^^
 
봄의 정원 - 제15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7
시바사키 도모카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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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나의 공간에 대한 기억은 다양하다. 학교는 친구와 선생님이라는 그리운 존재와 함께 시험과 성적이라는 스트레스가 따라온다. 하여 공간의 기억은 때로 잔혹하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집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겨운 공간이 되기도 하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럼 공간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생성되는 것일까. 아니, 공간에 대한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전혀 상관없는 공간에 대한 동경은 내가 한 번도 그곳에 머물지 않았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현재는 아파트에 살고 있어 이 공간이 주는 편리함에 익숙해졌지만 어린 시절 아파트는 거대한 성 같았다. 예쁘고 반듯하게 정리된 비싼 장난감처럼 함부로 소유할 수 없는 공간으로 존재했다. 소유하지 못했던 것들을 향한 욕망이 자라듯 특정한 공간에 머물고 싶은 욕망도 멈추지 않는다.

 

 ‘물빛 집은 확실히 눈에 띈다. 서양식 저택 같은 건물이다. 가로 방향으로 댄 벽널은 밝은 물빛으로 칠했다. 적갈색 기와지붕은 납작한 피라미드 같은 각뿔형이고, 꼭대기에 창끝 모양의 장식이 달렸다. 빙 두른 흰 담장에는 미장이의 흙손 자국이 비늘 모양을 그리고 있다. 골목에서는 2층만 보인다. 왼쪽에 베란다, 오른쪽에는 세로로 열리는 작은 창문이 둘. 둘 다 지붕과 똑같은 적갈색으로 창틀을 칠했다.’ (18쪽)

 

 문장만으로도 한 번 들어가고 싶은 집이다. 아니, 그 집에는 누가 살며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하다. 시바사키 도모카의 『봄의 정원』에 나오는 물빛 집이다. 물빛 집이라니. 쪽빛이나 청록색을 상상하다 고개를 젓는다.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빛깔이다. 철거가 예정된 연립주택에 살고 있는 ‘다로’와 ‘니시’에게 물빛 집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는 다로는 그 집을 기웃거리는 여자 니시를 통해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과거 젊은 광고 감독인 남편과 여배우 아내가 이 집에 거주하며 촬영한 「봄의 정원」이라는 사진집을 냈다는 것이다. 니시는 그 사진집을 무척 좋아했고 우연히 물빛 집을 발견하고 근처로 이사까지 왔다. 사진에서 만났던 집안 곳곳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갈망 때문이다. 다로는 니시를 이해할 수 없지만 물빛 집이 점점 궁금해진다.

 

 ‘빈집이었을 때는 정지되어 있던 시간이 움직이고 있었다. 건물 자체는 집 안에 아무도 없었던 일주일 전과 똑같은데, 그곳의 기척이며 색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있는 데 그치지 않고 집 자체가 별안간 생명을 되찾은 듯했다. 사진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고 바라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집이 자기 의사를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57쪽)

 

 니시의 행동으로 나는 물빛 집에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다로와 니시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건 아닐까 기대했다. 그러나 소설은 아주 평화롭고 조용하며 단조롭다. 연립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이웃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반복된 일상, 큰 변화 없이 흘러가는 다로의 직장생활과 동료와의 관계, 사진집과 물빛 집을 비교하는 니시의 이야기가 전부다. 그러나 이상하게 지루하지 않다. 계절마다 변하는 물빛 집에 대한 풍경과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친근하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다로가 매일 출근을 위해 걷는 길, 물빛 집 아이들과 친해져 초대를 받은 니시가 마주한 봄의 정원도 그랬다.

 

 일상을 벗어나야 일상은 소중한 그리움이 된다. 이제 다로와 니시에게 연립과 물빛 집은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사라져 버릴 연립, 다시 찾아올 수 없는 물빛 집이었다.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공간이기에 평범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계절이 변하듯 삶도 변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조금씩 천천히 마모시킨다. 당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간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존재로 다가온다는 걸 모른 척 말이다. 다로가 물빛 집에서 바라본 연립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 고요한 것처럼 우리는 그런 시간을 원하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베란다와 창문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형태가 똑같은 창으로 햇빛이 비쳐 들었다. 2층 집은 벽에, 1층 집은 바닥에도, 볕이 드는 곳과 그늘의 경계가 보였다.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를 내는 것도 없었다. 해시계처럼 양달과 응달의 경계가 이동할 뿐이었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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