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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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요트에서 습격당한 채 발견된다. 숨을 거둔 상태는 아니지만 희망도 없다. 범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사건 현장에서 지문이 발견되었지만 해결 실마리는 아니다. 원한에 의한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잔혹한 짓을 벌인 것일까? 언론은 모두 이 사건에 주목하고 연일 기사를 쏟아낸다. 사건의 피해자는 이탈리아의 유명 기업가인 아버지의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상속녀다.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뿐인가.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 남편과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가던 중이다.


상속녀는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사망한다. 맨 처음 용의자로 의심받을 이는 누구인가? 맞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사람. 바로 남편이다. 하지만 알리바이가 명확하니 제외된다. 경찰청 강력반은 범인을 잡기 위해 다각도로 애를 쓰지만 1년이 지나도록 제자리다. 놀랍게도 1년이 지난 후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살해도구가 있는 장소를 안다는 제보를 받는다. 그곳은 피해자의 저택에 딸린 지하 보트 창고였다. 지문을 감식한 결과 남편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사건 당시 없었던 지문이 왜 이제야? 소설을 읽을 때는 들지 않았던 의문이 이제야 생긴다. 누군가 남편에게 누명을 씌우는 게 아닐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남편의 치밀한 계획일까. 아내가 죽으면 그 많은 유산이 모두 자신의 몫이니까.


이제 사건을 지휘하고 풀어갈 경찰이 등장할 타이밍이다. 용의자 남편을 상대할 경찰 팀장은 중년의 여성이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상태지만 전 남편의 SNS를 훔쳐본다. 아이는 필요 없다던 남편이 원 아이를 낳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다. 마음을 다잡고 남편을 취조한다. 팀장은 자신의 일과 가정에 충실한 남편의 진술이 거짓이 없음을 알고 당황한다. 하지만 증거를 보면 범인은 남편이어야 한다. 거기다 남편에게 피해자 말고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남편은 모른다는 주장으로 일관한다. 남편의 연인이란 여자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누구일까?


작가는 네 명의 등장인물을 화자로 내세워 하나의 사건을 다양하게 풀어낸다. 네 명의 화자 중 하나인 상속녀가 요트에서 피습을 당하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이야기가 소설의 핵심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엄마를 잃고 오랜 시간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진료를 받았다. 사고가 남긴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뇌종양 4기 판정을 받는다. 어떤 치료도 불가한 상태로 남은 시간은 겨우 2달 정도다. 그녀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남은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사실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상속녀를 중심으로 등장인물 각각의 거침없는 욕망을 흥미롭게 펼쳐진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나 짜임새 있는 구성은 나쁘지 않다. 끝까지 다 읽어야만 제목인 『미로 속 아이』 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게 되니까. 나 같은 독자는 그렇다. 그런 이유로 기욤 뮈소의 데뷔 20주년 기념작으로 대대적인 홍보에 비하면 아쉽다. 기욤 뮈소의 열열한 팬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인생은 뭘까 생각하게 된다. 영원을 약속했지만 배신과 증오만 남는 사랑.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괴로운가. 인생은 알 수 없다는 허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니 과거에 미련을 두지 말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생각하는 지금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더한다.


비극적인 사건들은 지하나 바닷물 속을 흐르는 자연 발생 전류처럼 우리의 실존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항상 위험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어 아무리 조심해도 모든 사고를 예방할 수는 없다. 그저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바라는 수밖에 없다. 물 위에 떠다니는 한 줌의 지푸라기처럼.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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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2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다가올 날을 걱정할 때가 많겠습니다 그런 것보다 지금을 잘 살면 좋을 텐데... 지금도 바로 지나가고 지난 시간이 되겠습니다 배신 당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사는 게 뭔가 할 듯하네요


희선

자목련 2025-01-22 11:11   좋아요 0 | URL
지금을 잘 살아야지 싶은데, 어느 날은 과거에 매달려 속상하고 그런 것 같아요.
미세먼지 가득한 날들, 건강하게 지내세요^^

새파랑 2025-01-2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욤 뮈소 신작이군요~!! 요새 기욤 뮈소의 작품을 안읽었는데 이 책은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자목련 2025-01-23 11:02   좋아요 1 | URL
기욤 뮈소의 신작을 기다리셨다면 흡족할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안보윤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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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버티고 있어서 피할 수 없다. 선의로 위장해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악으로부터 도망쳐 멀리 달아났다고 안도하면 그곳엔 새로운 악이 고개를 쳐든다. 그래서 선의의 싹은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 안보윤의 소설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속 전수미는 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화자는 그런 악으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고 억눌린 채 살아가는 동생 수영이다. 유난스럽거나 까칠한 정도의 행동으로 부모의 관심을 받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사건사고의 중심이자 문제아 그 자체다. 전수미가 등장하는 곳에는 항상 사건이 발생한다. 때문에 부모는 수영을 살필 여력이 없다. 수영은 모든 걸 견디고 참을 수밖에 없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비슷한 생김새로 수영을 수미로 착각해 난데없이 머리통을 때리는 이가 늘었고 수미의 난폭함과 기괴함은 폭발한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부모는 사과를 합의를 하고 상담을 받는다. 자연과의 교감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받아 부모는 캠핑을 떠난다. 캠핑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수영에게 좋았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나무를 관찰하는 일이 수영에겐 행복했다. 수미가 텐트에 불을 지르면서 모든 게 사라졌지만 말이다.


이처럼 교묘하고 악랄한 수미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독립뿐이다. 수영은 가장 힘들다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버텼다. 전수미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일, 그게 전부였다. 주변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든 상관없었다. 혼자만의 공간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제 수영에게 악은 사라진 것일까.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기대하고 바랐던 건 수영이 수미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었다. 수미가 수영에서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는 일 말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악이 그럴 리 없다.


수영의 주변에는 언제나 악이 있었다. 그러니까 새로운 전수미의 등장이라고 할까. 수영은 집 앞에 들어선 동물병원을 겸한 노견돌봄센터에 취직한다. 아프고 병든 노견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지만 바빠서 곁에서 돌보지 못하는 보호자를 대신해 돌본다. 침을 닦고 사료를 먹이고 기저귀를 채우고 산책을 시키고 사진을 찍어 보호자에게 전송한다. 금요일마다 개가 죽는다는 걸 알게 된다.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인 죽음, 구 원장의 선택에 달렸다는 걸 말이다. 편안하고 간단한 죽음, 죄의식은 사라진 죽음이었다. 보호자가 더 이상 찾지 않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개들이 죽은 자리에게는 새로운 개가 입소한다. 언제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병든 노견이니 그래도 괜찮은가.


수영은 이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리고 싶다. 금요일에 센터에서 보내는 문자나 연락은 받지 말라고. 하지만 CCTV의 감시 아래 불가능하다. 그러다 수영은 노견 하나의 배에서 멍울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사실을 구원장에게 알리지 않는다. 치료 시기를 놓쳐 노견은 죽고 CCTV로 모든 걸 지켜본 구 원장은 센터의 운영방식을 함구하게 만든다. 구 원장은 전수미와는 다른 악이었다. 그가 직원을 채용하며 친절하게 말했던 절박함은 잘 짜인 악의 시작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호인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함께하는 이미지 뒤로 차곡차곡 부를 쌓는다. 설령 신고가 들어와도 폐업을 하고 다른 곳에서 다시 병원을 열고 센터를 개소하면 그뿐이다.


나는 전수미에게서만 벗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전수미가 있었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의 뒷면이었다. 온 세상이 전수미였다. (117쪽)


이제 소설은 점점 복잡해진다. 요양병원에서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전수미는 노인의 죽음을 방치했다. 구 원장이 그랬던 것처럼 이 역시 ‘편안한고 안전한 죽음’으로 주장할 수 있다. 어쩌면 영악한 전수미답게 치밀하게 계획했을지도 모른다. 수영과의 통화 내용을 알리바이로 주장한다. 전수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 캠핑장에서 수미는 자신이 텐트에 불을 질렀던 일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언급한다. 자작나무 숲에서 벌어졌던 일을. 그 대가로 수영이 자신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압박한다.


전수미가 노인의 죽음을 방치한 것, 수영이 돌봄센터에서 아픈 개를 죽게 만든 것. 그것은 같은 행위가 아닌가. 그렇다면 수영도 수미와 다르지 않다는 게 아닐까. 아니 그렇지 않다. 수영은 결코 수미처럼 살지 않을 것이며 과거 수미의 그늘에서 달력의 뒷면에 인쇄된 그림자처럼 살았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수영은 보았다. 아픈 노견을 사랑하는 견주를, 구 원장의 의도대로 죽은 개를 애도하는 동료 소란의 진심을 말이다. 그래서 수영은 결심하고 행동한다.


비밀을 삼킨 채로는 자작나무처럼 위로 뻗어 나갈 수 없다. 비밀은 너무 크고 무거워 나를 땅속으로 가라앉힌 뒤 도무지 도망칠 수 없게 뿌리로 옭아맬 테니까. 그러니 나는 모든 비밀을 토해낼 것이다. 더는 세계의 뒷면에 나를 가둬두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전수미가 아니니까. (168쪽)


소란이 구 원장과 자신이 다르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처럼 수영도 수미와 다른 인간이라는 걸 자신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이 부분에서 소설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과연 쉬운 일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걸.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의 기운을 외면하고 물리칠 수 있는 용기는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돌아보게 만든다. 잠깐만 방심해도 누구나 ‘세계 모든 곳의 전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수미가 아닌 전수영으로 살아가려 애쓰고 노력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응원해야 한다고. ‘세계 모든 곳의 전수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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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2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전수미가 될 수 있겠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다르게 먹으면... 하지만 그런 사람보다 전수영 같은 사람이 더 많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전수미는 왜 그렇게 된 걸지 하는 의문이 남기도 합니다 본래 그렇게 태어나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희선

2025-01-21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활체육과 시 일상시화 5
김소연 지음 / 아침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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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불가능하겠지만. 그러니까 이 말은 김소연 시인의 『생활체육과 시』가 좋은 책이라는 말이다. 얇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책. 그 안에서 펼쳐지는 글은 쉽고 정겹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며 간결하고 힘 있다. 모두가 바랐을(어쩌면 일부는 바라지 않았을) 어제의 일과 앞으로 기대하는 일들을 생각하며 이런 글을 다시 읽는다. 우리가 배우고 공부했던 것들, 그것을 말하고 쓰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혐오의 말들에 대하여 글로 써보기로 했지만,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이런 주제로 집필된 책들이 어느덧 내 방 책꽂이에 빽빽하다. 읽고, 밑줄을 긋고, 이해하고, 공부해온 문장들. 그러나 실재하는 사건들, 참사들, 재난들 앞에서 나는 자주 재확인한다.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람. 피부에 새겨진 것들이 이토록 없을 수 있다니. 앎은 간단히 휘발되고, 무지했던 신체로 무력하게 리셋된다. (32쪽)


연합은 힘을 키운다. 그 힘을 어떤 연합은 권력을 얻는 데에 쓴다. 패권이 목표다. 폭력의 말은 그에 대한 기표이다. (48쪽)


곳곳에서 연합하는 이들, 유튜브를 즐기지 않기에 어제 뉴스에 나온 유튜버의 말에 나는 심히 놀랐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걸 몰랐다. 더 알아야 할까 하다 검색하는 일은 그만두었다.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서 더 정치적인 사람이 되고 있다고 느끼는 날들이다. 『생활체육과 시』이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기 해야 하는데 정치라니. 그러다 문득 우리에겐 생활정치가 필요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책은 좋다. 시도 좋고 김소연의 산문도 좋다. 작가는 이런 유행의 글(시인의 글에 의하면 시 청탁에, 산물을 사은품처럼)에서 산문을 군만두로 표현했는데 덕분에 나의 책 읽기는 풍요롭고 만족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를 읽는 독자가 많이 없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다. 나부터도 그런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그래서 이런 유행이 끝나기를 바라는 시인의 바람에 한편으로는 동의한다.





책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할 것 같은 책이 있고 일부러 책에 대해 말을 아껴야 할 것 같은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의 속한다.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말을 아낀다는 건 그만큼 비밀스럽거나 나만 알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기도 한데 좋은 책일수록 그렇다. 탁구 경기를 하고 테니스를 치는 김소연 시인을 상상한다. 시인들이 모여 응원하는 모습도 함께. 건전한 생활체육은 얼마나 좋은가. 이 책의 시작인 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공을 주고받는 사람, 소통하는 사람, 더 잘 해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가득 채운 생기 넘치는 공기.


캐치볼을 하러 가자

글러브를 하나씩 끼고 마주 보며 멀리 서 있자

공을 던지자

공을 받자

또 공을 던지고 또 공을 받자

잘 던지고 잘 받고 조금 더 잘 던지고

조금 더 잘 받자

그만하고 싶어도 조금 더 해보자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일부)


그러면서 무언가를 견디고 아직 말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쏟아낼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시를 몰라도 반복해서 읽는다. 이런 부분을 말이다.


말해줄래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줄넘기를 이렇게 잘하게 된 이유를

신발장에서 줄넘기를 꺼내어 손에 들고 매일매일 옥상으로 올라간 이유를

팔자더블스윙을 연마한 지난주와

옆 떨쳐 모아 뛰기를 연마한 어제에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줄래

(중략)

우는 입을 비로소 보이고

낯선 사람들과 마주 앉았다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어요

인사를 건네고 오늘의 할 일을 의논하는

한가로운 여행지의 조식 시간처럼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일부)

시은 홀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에게 던져진 질문이 무엇일지 알지 못해도 나는 끝내 만질 수 없는 시인의 감각과 시선을 흠모한다. 1991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지금은 구하지 싶지 않은 김소연 시인 말하는 ‘나만의 시집’ 이 궁금하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가까운 이에게 선물할 목록에 포함시킨다.

책을 읽는 일도 여느 경험과 마찬가지로 실패의 연속 경험을 통과하게 된다. 그래야 안목이 생긴다. 어떤 허위를 알아보는 눈이 뜨인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데 나는 어째서 이것이 별로인가?”라는 질문이 그 시절의 나에게는 나의 정체성을 파악하기에 유용했다. ‘별로’라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내 자신을 향하여 세부적인 질문들이 생겨났다. 싫어할 수밖에 없는 가치 기준이 필요했다.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채는 기준들이 태어났다. (103쪽)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 기쁘다. 더 많이 읽어서 나만의 안목을 키우고 싶은 소망을 품는다. 좋은 글은 좋을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 설령 좋은 글이 아니더라도 뭔가 더 쓰고 싶은 동기가 된다. 『마음사전』을 만났을 때의 마음이 떠오른다. 그 책과 더불어 곁에 두고 자주 열어보게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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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5-01-2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만나, 안목을 키우는 것
이야말로 우리 독서인들이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런지요. 건승.

자목련 2025-01-21 09:48   좋아요 1 | URL
네, 더 많은 책을, 더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건 또 쉽지 않네요.
 
다른 길 (반양장) - 박노해 사진 에세이,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리커버 개정판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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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고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아쉬움뿐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무엇이 그리 아쉬운가. 무엇이 그리 부족한가. 아니다. 모든 게 감사하다.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다는 것. 무탈하게 지내왔다는 것. 속 시끄러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다음으로 이어왔다는 것.


지난 12월은 모두에게 특별한 달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탄핵 가결, 촛불 집회.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모두가 뜨거웠던 순간. 앞으로의 과정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 고민의 시간을, 누군가 고민을 끝내고 선택의 시간을, 누군가 이전과 다른 삶으로 나갈지도 모른다. 박노해의 사진 에세이 『다른 길』에서 이곳이 아닌 그곳의 삶, 다른 삶을 마주하며 나의 삶을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을 잠시 잊어버렸을지언정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지 않을 때, 지금 이 길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질 때, 바로 그때, 다른 길이 나를 찾아온다. 길을 찾아 나선 자에게만 그 길은 나를 향해 마주 걸어온다.


나는 알고 있다. 간절하게 길을 찾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속에 자신만의 별의 지도가 빛나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진정한 나를 찾아 좋은 삶 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다른 길이 있다.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9쪽)





박노해의 첫 사진에세이 『다른 길』이 출간 10주년을 맞아 리커버 개정판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만났을 것이다. 141컷의 사진과 박노해의 짧은 글이 전하는 묵직한 울림.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검색이나 지도를 통해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닌 직접 가야만 알 수 있는 삶이다. 거룩하고 숭고한 삶의 조각들이다. 태고의 시간이 여기 존재할 것 같다.





이곳 소농들은 동그란 자연의 곡선을 깨지 않는다.

기계가 아닌 물소와 사람의 손으로만 비탈을 깎고

찰흙을 다져 층층이 백 수십 결의 계단논을 창조해냈다.

그 어느 신전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후손에게 물려주는 최고의 문화유산이 아닌가.

세계의 토박이들은 오늘의 도시 문명과 인류의 밥상을

떠받치고 있는 피라미드 밑돌과도 같은 존재이다.

이 지상의 작고 힘없는 가난한 이들이 무너져내리면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세계는 여지없이 무너지리라.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 27쪽)


사진 속 계단논을 보면서 이제는 관광지가 된 어느 지역을 떠올린다. 신성한 노동으로 삶을 이어온 사람들, 여전히 삶의 터전인 그곳을 향하는 마음과 태도는 조금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내가 직접 보지 못했기에 치열한 뜨거움을 알 수 없다. 어느 삶이든 다르랴.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소박하지만 가장 풍요로운 삶, 넉넉함을 잃어버린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각자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짜이가 끓는 시간.

양가죽으로 만든 전통 풀무 마시키자로 불씨를 살리고

갓 짜낸 신선한 양젖에 홍차잎을 넣고 차를 끓인다.

발갛게 달아오른 화롯가로 가족들이 모여들고

짜이 향과 함께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 (「짜이가 끓는 시간」, 99쪽)


141장의 사진에 모두 붙잡았지만 유독 오래 머문 사진이다. 보는 순간, 고요한 평화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분쟁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아름다운 자연의 질서만이 존재할 것 같은 곳. 막강한 힘이 이곳을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 그곳에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열망까지 품게 된다.





높고 깊은 산맥에 소중히 숨겨진 가쿠치 마을.

흰 만년설과 푸른 하늘과 붉은 흙집과 노란 나무가

저마다의 색깔로 빛나는 가을날.

남자들은 산 위에서 야크를 치고 땔감을 구하고

여인들은 양털을 자아 옷감을 짜고 빵을 굽는다.

따사로운 가난마저 고르게 빛나는 마을.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한 작은 흙집.

마음까지 환해지는 내가 살고 싶은 집. (「내가 살고 싶은 집」, 143쪽)

언제부턴가 개인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나를 생각하고 나를 위하는 삶이 잘못은 아니지만 함께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모두가 힘을 더해 벽돌을 찍어내는 사진과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것을 얻는 우리는 다르다고 말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에겐 비교의 삶이 아니라 연대와 공존의 삶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모두 모여

마을 공동으로 사용할 흙벽돌을 찍어내는 날.

자신의 노동이 빛나는 날이기에 웃음꽃이 핀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결핍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다 사르지 못하고

자기 존재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

‘잉여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고통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이 아무 의미 없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잉여 인간’은 없다」, 177쪽)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에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진이었으면 좋겠다. 쓸모없는 건 없다고, 존재 자체로 가장 소중하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말이다. 때로 막막하고 온통 깜깜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모르겠다. 경이로운 자연을 품은 삶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때로는 사람이 깃발이 되는 것이다.’ 이 문장이 고맙고 눈물겹다.





멀리 야크떼를 바라보고 서 있는 청년의 천막집에

티베트 불교의 상징물인 롱다가 펄럭인다.

롱다는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초원을 달리는

티베트 말과 같다 하여 ‘바람의 말馬’이라 불린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의 등뼈를 곧게 세우고

깃발도 없이 길을 찾아가다 보면

때로는 사람이 깃발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깃발」, 343쪽)


책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삶이라는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버티는 이들에게 박노해가 건네는 위로는 마음의 다른 길로 안내한다. 마음의 길이라는 소망을 품고 찾아 나선 이에게는 지표가 될 것이다. 떠나지 않는 이에게도 만족하며 감사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길이 생긴 것이다.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음’의 주어진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있음’의 가능성에 다해 분투하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며 감사와 우애로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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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5-01-12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절하게 길을 찾아 나선 사람에게 길이 다가와 마주한다는 것,,영상 이미지로 떠올리면서 글을 읽으니, 자목련님께서 글에 담으신 에너지들이 한층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위로가 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만 가득한 2025년이 되시길 바랄게요^^

자목련 2025-01-14 08:48   좋아요 1 | URL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는 책이 아닌가 싶어요.
전야제 님이 원하는 길, 즐겁고 행복하게 걸어가시길 바라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그레이스 2025-01-12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존과 연대의 중요성...200퍼센트 공감!

자목련 2025-01-14 08:44   좋아요 1 | URL
박노해의 글을 읽을 때면 매번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레이스 님,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평온한 날들 이어가세요^^
 
시작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윤성희 외 지음, 강미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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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누군가에게 쉽고 누군가에게는 어렵다. 남들이 보기에 뭐든 쉽게 시작하는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은 어려울 수 있다. 막상 시작하고 보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시작해야 알 수 있다. 시작하는 마음의 시작은 어디에서 올까. 시작하는 마음에 필요한 건 뭘까. 시작하기를 주저하는 마음을 독려하는 힘은 뭘까. 시작을 테마로 한 『시작하는 소설』을 읽고 한 동한 ‘시작’에 붙잡혀 있었다. 시작해야 할 것을 미루고 있는 내가 보여서, 미리 실수나 실패를 예상해서 시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시작하는 소설』 은 새해가 되면 작성하는 어떤 목표들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새 학년, 취직, 연애, 운동 같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작심 3일로 그친 운동, 100권 읽기 같은 보통의 목록. 그런 맥락에서 김화진의 「근육의 모양」은 가장 친근하고 익숙한 시작을 들려준다. 소설은 필라테스와 담배를 동시에 시작한 재인과 재인의 필라테스 강사 은영의 이야기다. 재인은 ‘해 본 것’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두 가지를 추가할 수 있었다. 얼핏 ‘해 본 것’이라고 하면 그냥 해보았을 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해보았다는 건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해보았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잘하거나, 성공 같은 것과는 별개로 더욱 대단하게 다가왔다.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여러 번 해 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하고 싶다는 사춘기적 마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해야 할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엉뚱한 짓을 해서 우스꽝스러워지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마음 같은 것. 때문에 뭔가를 한다는 건 정말이지 부담스러워지만, 그럼에도 재인은 ‘한다’와 ‘하지 않는다’ 사이에서는 ‘한다’쪽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무조건 남는 게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 (「근육의 모양」, 80쪽)


재인이 필라테스를 배우는 은영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강사가 된 지 4년째다. 은영은 회사를 다닐 때 일을 잘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러니까 상사의 눈치를 보고 능력 이외의 것들의 평가를 받는 일에 아무렇지 않아야 했다. 은영은 그럴 수 없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라 몸에 집중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시작하기 위해서는 때로 그만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은영이 회사를 그만둔 것처럼. 재인의 경우 결혼을 앞둔 연인과 헤어지는 일이 그러했다. 결혼은 나가는 것,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그러나 파혼도 시작이 될 수 있다. 모두에게 시작이 같은 의미일 수 없으니까. 누군가는 실패라고 규정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해 본 것’에 속할 수 있다. 그것은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되고 또 다른 시작의 자양분이 된다.


시작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경우 혼자가 아니면 좀 괜찮다. 이를테면 윤성희 「마법사들」 속 가출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 십 대 소년의 가출기라고도 볼 수 있다. 민호와 성규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가출을 한 민호와 성규는 영화를 보고 영화관에서 밤을 새우기로 한다. 둘만 남은 영화권에서 민호와 성규는 같이 본 영화 속 할머니가 한 "애쓴다"라는 말을 꺼내면서 서로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처를 꺼내어 말하는 일을 시작하므로 서로의 애씀을 위로한다고 할까. 앞으로 민호와 성규가 시작할 모든 것들에도 애씀이 따르겠지만 그 시작과 우정을 응원하고 싶다.


어른이 되면 시작 따위는 두려울 게 없을 것 같지만 더 어렵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외국어룰 배우고 대입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떠한가.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속 칠십 대의 할머니는 손주들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했다. 할머니에게 프랑스의 모든 것은 시작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에서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할머니에게 다가온 피아노 소리와 브뤼니에 씨와의 우정.


문득, 시작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구나 생각한다. 장류진의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처럼 불합격 통보를 받고도 새로운 이력서를 쓰는 시작의 반복은 얼마나 위대한가. 정소현의 「어제의 일들」 속 상현은 주차장에서 일한다. 장애가 있는 그녀에겐 지울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로 온전한 기억은 어제의 일들뿐인 상현이지만 살아 있어 다행이다. 상현에게는 살아 있음이 시작 그 자체이므로.


차마 다 기억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그것들은 명백히 지나가 버렸고, 기세등등한 위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다행이라 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어제의 일들」, 156쪽)


시작할 수 없다고 믿는 누군가에게 이 소설들은 시작할 수 있다는 응원을 건넨다. 시작하면 달라진다고, 아니 달라지지 않더라도 ‘해 본 것’이 생기는 건 꽤 괜찮은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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