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고리타분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지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일은 없다고 여겼다. 그들에게 듣고 배우는 삶의 지혜가 나를 키웠다는 걸 잊고 있었다. 노인의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려 한 적이 없었기에 부끄럽게 생각한다. 나는 늙고 있고 다가올 노년의 삶은 당연한 일인데. 클레어 폴리의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은 그래서 더욱 인상 깊고 특별하게 남은 소설이다.


세상에나,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이라니 어떤 클럽일까. 가입 조건이 까다로운 곳일까, 아니면 최고령 노인들이 대단한 것일까.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함께 사교 클럽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영국 런던의 작은 마을 해머스미스의 낡고 오래된 주민센터에 일주일에 세 번 오후에 열리는 사교 클럽이 있다. 주인공 ‘대프니’는 일흔 번째 생일을 맞아 아파트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로 시작하고 사교 클럽에 가입했다. 이곳에 이사 온 지 15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15년 만에 처음으로 타인과 만났다는 게 맞겠다. 연애도 할 수 있겠다는 기대와 다른 것도 모자라 사교 클럽 첫날에 사건이 일어난다. 천장이 무너져 사교 클럽 회원 한 명이 사망했다. 키우던 개를 남기고 말이다. 대프니는 리디이와 아트와 함께 돌아가며 개 매기를 맡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의회는 낡은 복지관을 부수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공고를 냈다. 사교 클럽 운영자인 ‘리디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대프니뿐 아니라 사교 클럽과 복지관을 이용하는 모두에게 마찬가지였다. 19살 미혼부 ‘지기’는 딸 ‘카일리’를 맡아줄 유아원이 필요했다. 말 못 하는 다섯 살 아이 ‘러키’, 주인을 잃은 개 매기까지.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복지관 운영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했다. 유아원 아이들의 성탄극으로 관심을 모으기로 한다. 은퇴한 배우인 아트가 연출자로 연극 공연과 축제 분위기라면 승산이 있었다. 공연 당일 아트가 집에서 가져온 스타벅스 물건들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아트에게는 물건을 훔치는 이상한 취미기 있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딸과 손녀의 빈자리 채우기 위한 아트만의 방법이라고 할까.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으니 멈출 수가 없었다.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좋은 마음이었지만 스타벅스 매니저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매니저는 경찰에 신고한다고 소리치고 곤경에 처한 아트를 구한 건 대프니였다. 대프니는 아트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소리쳤으니까. 대프니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지기도 대프니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보충 공부를 하는 동안 대프니가 카일리를 돌봐주고 있었으니까. 사실 리디아도 그랬다. 성장한 두 딸은 리디아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았고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대프니는 그런 리디아를 지나칠 수 없었다. 매기를 맡기러 온 리디아를 집 안으로 들였다. 이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리디아가 새로운 시작을 하기를 바랐고 변신을 위해 자신의 옷을 내어주었다. 그녀가 당당하고 멋진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응원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복지관을 구할 수 있을까? 실의에 빠진 아트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의회는 아파트 짓기에 더욱 적극적이다. 다시 대프니가 나서야 했다. 우선 아트에게 전화를 거니 다른 남자가 받고 상황을 설명한다. 대프니가 한 번 더 아트를 구했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린 아트는 치매에 걸린 대프니의 남편이 되었으니까. 대프니의 곧바로 물건으로 가득 찬 아트의 아파트도 정리한다. 리디아와 복지관 이용자들이 함께 도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복지관을 이용자에 불과했던 사람들은 복지관이 없어지기 않기를 바랐고 그 중심에는 대프니가 있었다. 대프니는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정녕 모두가 대프니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연대하기 시작한다. 저마다의 어려움을 나누고 해결하려 노력한다. 그 모든 일에는 대프니의 말이 주문처럼 따라온다.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죠.” (303쪽)


대프니는 한 번의 상처와 실수로 삶을 포기하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안겨준다. 미혼부 지기에게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도와주고 홀로 외롭게 지내는 아트를 세상 밖으로 이끌고 리디아에게 남편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니 당신이 예상한 대로 복지관을 고치고 운영할 기금 모집도 성공한다. 물론 그 방법은 알려줄 수 없다. 당신이 멋진 대프니를 만날 기회를 날려버리면 안 되니까.


궁금하지 않은가?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말이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대프니의 활약을 직접 마주하길 바란다. 유머 넘치고 감동까지 안겨주는 소설을 놓치지 않기를. 분명 호쾌한 대프니의 매력에 흠뻑 빠질 것이다. 따뜻한 소설을 찾는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하다면,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을 만나보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5-05-21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뭘까요?
엄청 궁금한데요^^

자목련 2025-05-23 15:55   좋아요 1 | URL
재밌게 읽었어요. 예상했던 해피엔딩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전개도 있고요!

hnine 2025-05-22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영국 출신이라니 이 소설의 분위기가 상상이 되어 흥미가 생기네요. 노인이 활약하는 소설들이 재미있는 것들이 꽤 있지요. 고리타분하게 집을 지키는 노인들이 아니라 활약하는 노인들이 나오는 책, 영화, 드라마, 환영이요.

자목련 2025-05-23 15:56   좋아요 0 | URL
네, 멋지게 활약하는 노인의 모습이 좋았어요!
시트콤으로 만들면 좋겠다 싶은 생각에 배우 김영옥, 선우용녀를 떠올리기도 했어요^^
 
모린
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 것 같은 마음이 있다. 알 것 같은 것이지 아는 것 아니다. 그 마음을 아는 건, 오직 마음의 당사자뿐이다. 비슷한 상황,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기에 상태를 짐작한다. 주저하고 조심한다. 마음은 유일한 것이고 마음은 소하니까. 안윤의 소설집 『모린』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마음 곁에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깨질 것 같은, 얕은 숨에도 사라질 것 같은 그런 마음을 지키려 애쓰는 마음을 보았다.


표제작 「모린」 은 고객의 불평불만을 상담하는 ‘미란’과 장애인 ‘영은’의 이야기의 사랑 이야기로 읽을 수 있고 상실과 회복에 대한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시각 장애인 낭독 봉사를 하는 미란은 그곳에서 영은을 처음 만났다. 자신의 전부였던 할머니를 잃은 미란에게 다가온 영은. 둘 사이에 흐르는 감정과 서로를 향한 마음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위안을 주는 유일한 존재, 무엇이든 다 말하고 싶은 상대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존재. 소설 속 가장 선명하게 남은 문장처럼 유일한 사람.


모린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모린」, 9쪽)


설령 헤어졌다고 해도 그 고유함은 사라질 수 없다. 누군가를 알고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미처 전부를 다 알지 못해도 애서 지우려 해도 끝까지 남아 있는 어떤 것이 있으니까. 그래서 먼 훗날 가만히 떠오르는 기억에 이름을 불러보게 된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 당신에게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서로의 전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랑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도 한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별을 한다. 「담담」 속 ‘혜재’와 ‘은석’처럼 말이다. 11년이라는 긴 연애를 끝낸 혜재는 소개로 만난 은석에게 양성애자라 말한다.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은석에게 혜재의 정체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은석에겐 유가족이라는 정체성이 그러했으니까. 「담담」이란 제목처럼 둘의 만남은 그렇게 지속되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일부러 캐묻지 않고 일상을 공유한다. 무엇 때문에 슬픈지, 무엇이 상처로 남았는지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그 마음이 어떤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털어놓은 일과 서로를 이해하는 일, 한 사람을 아는 일 간에 정확히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그것이 관계에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지 갈수록 알 수가 없어진다. 서로를 이해하는 일, 한 사람을 아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조차도. (「담담」, 121쪽)






안윤이 그리는 관계는 밀착이 아닌 떨어진 사이다. 그러니까 그림자를 볼 수 있는 정도라고 할까. 그건 그림자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게 느껴져서 나는 안윤의 소설이 좋았다. 읽을수록 좋아졌다. 「모린」과 「담담」에서 상처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마음, 남겨진 흉터를 어루만지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런 마음은 「하지夏至」에서도 만난다. 서울에서 제과점을 하던 ‘수림’은 모든 걸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서울을 떠나기 전 오랜 친구 ‘지언’과 이별 캠핑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수림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저 곁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지언. 수림이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지 짐작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둘 사이에 흐르는 믿음이 있기에. 수림이 고향으로 내려가고 지언은 너는 잘 지내라는 문자를 보낸다. 수림을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잘 지내지 않고 괜찮지 않더라도 잘 지내고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수림이 아닌 내가 회복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고 낮이 길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천천히 회복될 거라고.


너는 잘 지내. 그건 마치 지언이 내게 거는 주문 같았다. 너는 잘 지내. 그 주문에 단단히 걸려들고 싶었다. (213쪽)


낮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 나는 안다, 때가 되면 다시 점점 길어지리라는 것을, 어김없지만 전과는 같지 않을 낮이. (「하지夏至」, 214쪽)


직접적으로 묻거나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어떤 상처와 마음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건 상대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확인하고 확인받으려는 욕망이 아닌 그런 마음. 서툴고 어려워서 시간이 지나서야 보인다. 초라했던 이십 대 초반을 떠올리는 ‘의선’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던 ‘준수’를 회상하는 「작은 눈덩이 하나」. 그 시절 의선에게 유일한 사람은 준수였을 것이다.


그런 유일한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아무런 징조 없이 증발해 버린다면. 「틈」에서 ‘사희’가 그러했다. ‘인애’는 사희를 수소문하지만 찾을 수 없다. 사희는 이혼을 했고 사라졌다. 나중에야 사희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다. 우연하게 잡지에 실린 사희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다. 구 년 만에 사희는 인애를 근처 저수지로 안내한다. 그 풍경을 사진에 담으면서 그곳에서 다시 살아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황량하고 덧없는, 무위에 가까운 풍경들, 자신의 내면과 어딘가 닮은 대상들을 포착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때 사희는 철저히 관찰자가 되었다. 자신이 이 세계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건너다보고 있다는 감각이, 거대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고작 찰나를 붙잡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위안을 줬다. (「틈」, 240쪽)


인애에게 사희가 유일한 사람이었던 시절은 과거가 되었다. 아니 그 시절을 통과했다고 할까. 사희에게 인애의 사과나 위로가 필요한 시간도 지나가 버렸다. 놓쳐버렸다는 게 맞겠다. 사희가 보낸 시간을 알 길이 없고 그 시간을 놓쳤지만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거리가 생긴 것이다.


안윤은 이처럼 저마다의 유일한 사람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각자의 삶 속에서 유일한 사람을 지키려 노력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마음을 온전히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런 기억을 품고 살아가도 충분한 거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월되지 않는 엄마 - 임경섭의 2월 시의적절 14
임경섭 지음 / 난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자고 나는 가정의 달 5월에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작정했을지도 모른다. 조금 울고 싶어서, 엄마가 그리워서 말이다. 『이월되지 않는 엄마』란 제목에서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곁에 없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거라는 것을.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거나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삶, 그 곁에 머무는 죽음, 부재로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기록이라 하겠다. 여느 ‘시의적절’ 시리즈가 그러하듯이.


시인 임경섭의 『이월되지 않는 엄마』는 2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의 기록이고 그날 그날 느끼는 감정을 시, 에세이, 짧은 소설로 표현했다. 엄마가 암이라는 소식을 들은 2월 1일, 그날은 매년 2월의 첫날을 지배할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어느 해 어느 날, 어느 달은 그렇게 온통 한 사람으로 채워진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5월은 아버지의 달이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엄마만 생각했는데, 엄마 없이 살아온 시간의 설움만 떠올렸는데 막상 글을 쓰는 지금은 아버지가 생각난다. 5월이라 그런 가 보다. 5월이라서. 5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된다고 했던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영영 부정하고 싶다. 빨리 고아가 된 나는 그 자리를 고모와 형제가 대신해 주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고 회복할 때 당연한 듯 고모에게 부탁했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는 건 고모 때문이다. 전화를 안 받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 걱정한다. 그런 고모의 사랑에 한 번씩 짜증을 내기도 했다. 분에 넘치는 줄도 모르고. 지금도 안부를 먼저 묻고 살피는 작은아버지께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무엇이고 자식은 무엇일까. 죽는 순간까지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 좋은 시인이 되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 저자의 엄마.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죽음과 이별은 얼마나 다행인가. 이른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낸 슬픔과는 별개로 나는 그런 이별이 부러웠다. 내게 엄마의 죽음은 통보였고 아버지의 죽음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2월 내내 글을 쓰면서 저자는 돌아가신 엄마와 함께였을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특별한 한 달, 언제나 그립지만 2월은 더욱 그러했을 터. 엄마가 좋아하는 꽃 ‘마가렛’으로 시작하는 봄, 엄마가 만들어준 기억하며 음식을 만들고 가만가만 그해 2월의 시간을 떠올린다. 짧고도 긴 2월을 그의 곁에서 보낸 이들도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빈자리가 문득문득 느껴질 때야 비로소,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큰 무게로 돌아올 때야 비로소 진짜 슬픔이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걸 몸소 깨달을 때야 비로소 진정한 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엄마에 대한 추념은 끝이 없거니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다. 어쩐다. 나는 엄마의 죽음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170쪽)





정말 슬픔은 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웃고 떠들고 맛있는 걸 먹고 잘 지내다 문득 슬픔에 목이 멘다. 서러워서 울고 만다. 아, 나는 엄마가 없구나. 나는 엄마랑 이 풍경을, 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구나 실감하는 것이다.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 낡고 흐린 사진 속 서툴게 웃고 있는 엄마의 표정만이 남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엄마는 어린이날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날 그 친구를 생각한다. 나와 똑같이 고아가 된 내 친구. 우리는 모두 그렇게 부모를 잃고 남겨졌고 살아간다. 농담처럼 죽음을 말하면서 정작 가까운 이의 부재를 두려워한다. 부재를 인식하지 않으려고 잊고 살다가 무슨 날에 화들짝 놀란다. 어버이 날인 내일도 그런 날이다.


나는 이제 카네이션을 준비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달아드리긴 했을 텐데. 항상 할머니가 먼저여서 할머니만 드린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 보다 엄마가 먼저 돌아가셔서 그 후에는 할머니와 아빠에게만 드렸으니.


눈부신 5월이 쓸쓸하다. 아프다. 아버지와 이별한 그해 5월과 엄마와 이별한 그해 6월의 통증이 몰려온다. 시인의 2월이 그러하듯 나의 5월이 그렇다. 다가올 6월이 그렇다. 이월되지 않는 감정이다. 이월될 수 없어서 영원히 곁에 머물러 차곡차곡 쌓인다.


그해 2월은

도무지 이월되지 않고

여기까지 와 있다

그해 2월은

잊히지 않고

기어코 여기까지 와 있다

그해 2월이,

아팠던 그해 2월이

죽어 사라지지 않고

여기까지 같이 와 보란듯이 옆에 서 있다

원망스러운 그해 2월이,

그해 2월만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이런 글을 쓰지도 않을 것 같은 나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2월이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온전히 내 옆에 살아 있다

죽지않고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죽지 않을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다 ( 「2월」 전문, 176~177쪽)그해 2월은


울다 지쳐 잠들었던 밤, 멍하니 보낸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순간들이 저만치 달아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살아서 이렇게 새로운 5월을 맞이했고 엄마의 부재를 실감한다. 산다는 게 이런 거냐고 묻는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엄마에게 묻고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5-05-0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인생은 왜 이리 슬플까요. 이별하고 사라지고...자목련님 글이 이 화창한 봄날에 더욱 슬픕니다.

자목련 2025-05-08 11:41   좋아요 0 | URL
그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일 텐데. 가끔 부정하고 거역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페넬로페 2025-05-0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은 그리움의 달도 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론 언젠가 모두 가야할 곳이라는 생각에 시니컬해지기도 하고요^^

자목련 2025-05-08 11:43   좋아요 1 | URL
5월은 특히 그래요. 어버이 날인데, 마음이 쓸쓸해요.
모두 가야할 곳. 김혜자가 나오는 드라마처럼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젤소민아 2025-05-0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도 농도가 다 다른 게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예뻐요, 자목련! 시는 슬퍼요...ㅠㅠ

자목련 2025-05-09 09:38   좋아요 0 | URL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시는 슬프고도 슬퍼요.
 
알피는 가족이 필요해
레이첼 웰스 지음, 장현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에게나 이별은 힘들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반려동물을 잃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러니까 주인을 잃은 반려동물의 슬픔과 절망 말이다. 방송을 통해 주인을 구하는 개나 죽은 어미 곁을 지키는 새끼 강아지 사연을 본 기억은 있지만 그들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이 이어진 적이 없다. 레이첼 웰스의 소설 『알피는 가족이 필요해』 속 알피를 만나면서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이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주인공 ‘알피’는 가족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주인 마거릿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았기 때문이다. 마거릿의 딸과 사위는 알피를 보호소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알피는 스스로 가족을 선택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집 밖을 나선 순간 알피는 길고양이로 전략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알피는 공격하는 고양이들, 내쫓는 인간이 많았다. 아, 알피의 앞날이 걱정될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알피는 굴하지 않는다. 알피에게 ‘마당냥이’라는 걸 알려준 단추가 있고 맘에 드는 에드거 로드를 만났으니까. 이제 알피는 가족이 될 만한 인간만 찾으면 된다.


알피는 이삿짐을 내리는 집을 발견했고 슬그머니 그 집으로 들어갔고 클레어를 만났다. 클레어는 알피를 발견하고 안아주며 길을 잃을 고양이라 여기고 먹을 것도 챙겨줬다. 목에 달린 이름표를 보고 알피라고 불러주고 주인을 찾아주려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알피는 클레어와 살기로 결정했다. ‘무릎냥이’로 마거릿과 살 때와는 달랐기에 다른 가족을 더 찾아야 했다. 클레어가 출근하면 혼자 있어야 하니까. 그런 알피 앞에 등장한 후보는 조너선이란 남자. 클레어 집에서도 가깝다. 조너선 혼자 살기에는 무척 넓은 집이다. 알피를 발견한 조너선은 불평을 하지만 내던지지 않았으니 합격이다. 클레어와 마찬가지로 목의 이름표를 보고 전화도 걸었다. 알피는 고마운 마음에 쥐를 잡아 조너선의 현관 매트 위에 올려놨다.


알피는 클레어와 조너선의 집을 오가며 생활하며 두 사람을 관찰한다. 클레어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런던으로 이사를 왔다. 클레어는 혼자라는 사실에 슬퍼했고 우울해했고 싱가포르에 살던 조너선은 해고를 당하고 그 때문에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이곳으로 왔다. 둘의 사정을 알게 된 알피는 클레어의 슬픔과 조너선의 외로움에 공감한다. 다리에 털을 비비거나, 애교 있는 눈망울과 울음소리를 내거나 맛있게 밥을 먹는 방법으로 그들을 위로한다.


자신만의 가족을 찾아 나선 알피의 여정과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이 있다. 매일 씻는 인간을 재미있다고 여기는 알피. 알피는 인간으로 치면 자존감이 높은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알피는 클레어와 조너선에 그치지 않고 다른 가족이 더 필요했다.


인간들은 재미있다.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침 안의 성분으로 그루밍하는 고양이와 달리 씻는 행위를 하고, 그런 다음 수건이나 옷으로 몸을 감싸는 게 말이다. 고양이로 사는 게 훨씬 더 쉬웠다. 우리는 항상 몸에 털을 두르고 있고, 원할 때면 언제나 씻을 수 있으니까. 정확히는 털을 깨끗이 닦는 동시에 빗질까지 할 수 있다. 고양이는 인간보다 더 잘 설계돼 있는 생물이다. (145쪽)





에드거 로드에서 새로운 두 가족을 발견한다. 클레어와 조너선의 집보다는 훨씬 좁은 두 집, 아이가 있다. 둘 다 남편의 직장 때문이다. 낯선 환경에 아기와 적응하기 힘든 폴리는 알피가 아기를 헤칠까 걱정이 많고 폴란드에서 이사 온 프란체스카는 영어와 이웃의 편견 때문에 힘들다. 그러니 이 두 가정에도 알피가 필요하다.


내가 선택한 가정들은 서로 다른 형태의 공통점이 있었다. 클레어네도, 조너선네도, 폴리네도, 이곳도 각자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토록 그들에게 끌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는 내 사랑과 다정함이 필요했고, 내 지지와 애정이 필요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내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175쪽)


아, 알피는 이제 네 집을 오가며 지내야 했다. 클레어와 조너선의 집에서는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고 프란체스카의 아이와 놀아줘야 하고 불안한 폴리를 들여다봐야 하니까. 어디 그뿐인가. 클레어의 남자친구 조와 조너선의 여자친구 필리파도 주시해야 했다. 조는 형편없는 남자였고 필리파는 이기적이었다. 배려를 모르고 무엇보다 둘은 알피를 싫어했고 학대하기까지 했다. 알피는 클레어와 조너선을 이어주려는 계획을 세운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꼭 실행해야만 했다. 미리 알려주자면 알피의 계획은 성공했다는 것.


네 가족을 만든 알피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가만히 곁을 지킨다. 불평과 불만을 알피에게 털어놓던 조너선은 알피와 있을 때 편안했고 사랑받기 원했던 클레어는 알피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알피가 바란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모두 알피의 가족이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람도, 고양이도 완벽히 상처로부터 치유될 수는 없다. 그저 이해하게 되는 것뿐이다. 한편으로 회복 중이더라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상처 입은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격의 일부가 되고, 결국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회복은 그렇게 진행된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까. (185쪽)


세상에 혼자 남았던 알피가 가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 소설은 따뜻하고 보드랍다. 유쾌하고 유머가 넘친다. 거기다 감동적이다. 알피는 잊고 있던 가족의 소중함,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준다. 책 속에 있던 알피가 책 밖으로 나와 내 다리를 감싸는 것만 같다.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트리플 31
장아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경험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귀신을 봤다거나 반려동물이 말을 걸었다거나. 바라고 바라는 마음이 헛것을 봤거나 들었다고 말할 게 뻔하다. 그뿐인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과 맞닥뜨렸을 때 그것은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 된다.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꺼내는 순간은 쉬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오긴 올 것이다. 장아미의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속 이야기처럼.


장아미가 들려주는 세 편의 이야기는 기이하면서도 슬프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시대가 변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무너지고 붕괴되는 자연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표제작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1년에 한 번 음력 7월 보름인 백중(百中)에 은비는 죽은 친구 재희를 만난다. 그러니까 귀신이 된 친구를 본다는 거다.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소설처럼 1년에 단 한 번 죽은 이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날의 일들이 나를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재희는 은비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다 은빛 방울 키 링을 건네고 사라진다. 그건 은비가 재희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은비는 산모퉁이에서 새어 나온 불빛을 보고 걷다가 마주한 금줄을 넘는다. 한밤중에 펼쳐지는 야시장, 그곳에서 은비는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그림 속에 갇히고 만다. 은비를 노리는 건 인간이 아닌 귀신이니까. 어디선가 나타난 재희는 은비에게 고양이라고 말하고 은비는 정말 고양이가 된다. 위험에서 빠져나온 둘은 은비의 집 앞에서 헤어진다.


누군가 궁금할 것이다.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그 둘을 연결해 주는 존재가 누구일까. 제목에서 짐작했듯 은비가 기르는 고양이 ‘포’다. 원래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재희가 기르던 고양이였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존재라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건 아닐까.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에서 죽은 이를 보는 고양이처럼 「능금」에서는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를 보는 이가 등장한다. 죽은 아버지가 남긴 산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능금’이다. 그녀 앞에 부상을 당한 남자 ‘해수’가 등장한다. 처음 보는 해수가 낯설지 않은 능금은 그를 기다렸다고 말한다. 둘은 함께 지내며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해수의 몸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한다. 해수는 타인을 해하려는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스스로를 사냥하려 한다. 누가 봐도 해수는 괴물이었다.


“사람들은 신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할 거라고 생각하죠. 아뇨, 신은 울어요. 짖고 포효해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도 않죠. 신이 제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게 좋겠지만, 모두 경악하며 달아날 거예요.” (「능금」, 101쪽)

해수가 상징하는 건 무엇일까. 아버지가 절대 팔지 말라던 산의 신령일까. 아니면 인간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파괴하는 자연일까. 과연 해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금 같은 이들은 존재할까. 문득 괴물 같았던 지난달의 산불이 떠오른다. 마구잡이로 산을 깎고 파헤치는 인간의 욕망.


장아미가 그리고 싶은 건 모든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죽음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그런 세계. 설령 그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용기와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삵, 직녀, 파도 같은 영적인 존재가 인간으로 변해 만나는 「산중호걸」이 그렇듯 말이다. 소설은 우리에게 당부한다. 다시 만날 세계를 꿈꾸고 바라는 일을 멈추지 말라고.


그래, 여기는 현실이 아니니까. 전혀 다른 질서로 움직이는 세계니까. 그래서 우리가 닿아있을 수 있나 봐.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3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