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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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옥씨부인전>을 즐겁게 시청했다. 노비의 딸로 태어났지만 양반의 아내가 되고 외지부로 약자와 소수를 변호하는 당당한 여인의 삶. 허주은 장편소설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에서 다모 ‘설’을 만나며 <옥씨부인전>의 주인공 구덕이(옥태영)이 떠올랐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억압받고 나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 설정만으로 흥미롭다. 거기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소설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의 이 모든 걸 두루 갖춘 소설이다.


소설은 정조 승하 후 어수선한 조선의 한양에서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시작한다. 여인의 시체를 마주한 이들은 잔인함에 경악한다. 코가 베인 채였다. 양반의 자제를 누가 이토록 끔찍하게 죽였을까. 시체를 살핀 다모 설은 한성부 포도청의 종사관 ‘한도현’을 돕는다.


설은 왼쪽 뺨에 비(婢)라는 낙인이 찍힌 열여섯 살의 소녀로 호기심이 많고 당차다. 인천 흑산도 출신으로 포도청 노비로 팔려왔다. 설은 한양에 온 목표가 따로 있었다. 한양에서 오빠 인호의 소식을 듣는 것. 언니는 오빠가 죽었다고 했지만 설은 오빠가 살아있을 것만 같다. 친구도 동료도 없는 설을 차별 없이 대해주는 이는 종사관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종사관을 보면 자꾸 오빠 생각이 나서 더 열심히 종사관을 돕는다.


죽은 여인의 하녀 ‘소이’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아씨는 하녀에게 종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며 동등하게 대해줬고 아씨에게 정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건 당일 누군가의 편지를 받고 그를 만나러 나갔다는 사실이다. 편지를 보낸 이는 누구일까. 혼처가 정해진 양반 규슈에게 정인이라니. 그 사실을 알고 혼인할 집안에서 벌인 일일까. 아니면 자신의 정체가 탈로 날까 두려웠던 정인의 짓일까. 아니면 소문대로 서양의 이교 때문에 죽였을까.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의문은 커진다. 모든 걸 말해주던 소이가 도망치고 종사관과 설은 소이를 찾아 산을 오르다 호랑이와 마주친다. 모두가 두려움에 떠는 상황에서 설은 활을 쏘아 종사관을 살린다.


이를 계기로 종사관은 사건이 해결되면 설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돕겠다 약속한다. 종사관을 향한 믿음은 커지는데 설은 혼란스러운 일과 마주한다. 종사관의 의심스러운 행적으로 죽은 여인이 살해당할 시간에 그녀와 지나친 것이다. 왜 그것을 숨긴 것일까. 종사관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설을 무시하는 포졸 견은 그것을 빌미로 종사관을 함정에 빠드린다. 종사관을 믿고 따른 설도 혼란스럽다. 어느덧 설과 하나가 되어 소설을 따라가던 독자도 마찬가지다. 왜 종사관은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것일까. 그날 밤, 술에 취한 종사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나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과 권력의 중심에 있던 정순왕후가 남인을 치기 위한 신유박해의 역사적 사실을 들려주는 소설은 끝을 향할수록 더욱 흥미진진하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천주교 박해의 생생함을 전달하다. 그 가운데 설의 눈부신 활약과 성장은 대견하다.


나를 구해줄 사람은 나 하나였다. 견이 또 머리를 후려지쳐하자 나는 그의 손을 피하며 벌떡 일어났다.

“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요?”

되묻는 목소리가 쇠처럼 소리가 단단했지만 무릎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활을 제대로 들 줄 아는 여자요. 본인이 표적을 맞힐 능력이 없다고 나를 탓하지 마세요” (119쪽)


설은 종사관을 돕는 노비가 아닌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로 자신을 억압하는 이들에게 굴하지 않는다. 이는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 모두가 동등한 삶, 연대와 공감이 필요한 지금을 사는 모두에게 말이다.


하지만 익숙한 설정과 드마라가 많기에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이 지닌 유일한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아쉽다. 어쩌면 역사적 사실이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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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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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고 보는 세상이다. 화면에 모든 걸 담을 수 있다고 믿는다. 화면을 삭제하고 다음으로 넘기고 화면을 저장한다. 좋으면 바로 구독하고 아니다 싶으면 해지한다. 구독과 해지를 반복한다. 모든 게 소비되는 세상. 잘못된 뉴스와 정보를 그대로 믿기도 한다. 쏠림 현상으로 이어지다 파국을 맞기도 한다. 신중하게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고 빠르게 변한다. 모든 게 속도전이다. 김기태의 단편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읽고 나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첫 번째 단편집에 수록되기 전 단편 「보편 교양」을 읽고 이렇게 쓰다 말았다. 아무튼 김기태의 「보편 교양」좋았다. 소설의 주인공 곽은 고등학교 교사로 자유선택으로 고3에게 '고전 읽기'를 가르친다. 고심해서 고전 목록을 정하고 나름 교실을 꾸미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그러나 예상했듯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대부분 대놓고 잠을 자거나 다른 과목 문제집을 푼다. 특별할 것 없는 고3의 수업이라 볼 수 있다. 학부모의 민원이 들어오기 전가까지 말이다. 민원을 넣은 건 수업에 집중하는 은재의 아버지였다. 은재가 마르크스를 읽고 있다는 이유였다.


다시 읽은 「보편 교양」도 나쁘지 않았다. 자신만의 가치와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무너지지 않으려는 안간힘 같은 게 느껴졌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소설집 전체의 분위기가 그랬다. 어떤 안감힘. 그러나 그게 전부였고 한계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에서 김기태는 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양새다. 정작 독자에게는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니면 그런 모호함을 구축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신춘문예 당선작인 「무겁고 높은」과 비슷한 결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당선을 목표로 쓴 소설이 있고 쓰고 싶은 소설이 있을 것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함께 데뷔한 아이들의 음악과 그들의 팬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세상의 모든 바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등장하는 연애 프로그램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롤링 선더 러브」, 유행과 인기가 아닌 소신 있는 음악으로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의 이야기를 다룬 「로나, 우리의 별」 은 현재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보여준다. 나름의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단편이지만 그게 전부다. 물론 작가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바다」에서는 군중 심리나, 혼란스러운 정체성 같은 것, 「롤링 선더 러브」에서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말이다. 세태를 풍자하면서 뼈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과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보면 더욱 그렇다. 같은 중학교를 다닌 진주와 니콜라이는 선생님에게 봉투를 받는 학생이다. 봉투를 열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알 수 있다. 내야 할 돈을 내지 않았다는 그런 내용. 진주와 니콜라이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고 사회적 도움이 필요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 학생이었다. 진주는 마트에서 일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어른이 되었고 니콜라이는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되었다. 우연한 만남으로 밥을 먹고 술을 머시고 서로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연애 비슷한 것, 혹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그런 사이. 중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라는 선생님의 말은 어른이 된 그들에게 당도한다. 농담처럼.


“우린 친한 사이야.”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142쪽)


그런가 하면 계획표대로 세상이 원하는 모범생처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인생이 끝내 전락하고 말 것 같은 예감을 던지는 「전조등」이나 기묘한 반전이나 스릴러가 아닐까 기대하는 「태엽은 12와 1/2바퀴」은 냄새만 풍길 뿐 정작 향도 없고 어떤 맛도 전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젊은 광부들이 넘쳤지만 지금은 카지노가 들어선 폐탄광촌의 고등학교 역도 선수 송희의 이야기 「무겁고 높은」는 여운이 많이 남았다. 역도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송희가 역도를 들게 된 이유. 우연히 마주한 역도에서 훈련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송희에겐 성공이나 1등 수상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목표가 있었다.


송희는 들어보고 싶다기보다 버려보고 싶었다.( 「무겁고 높은」, 245쪽)

버리려면 들어야 했다. 버리는 것과 떨어뜨리는 것은 아주 달랐다. (「무겁고 높은」, 249쪽)


버리기 위해 들어야 하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차마 버릴 수 없어서 주저하다 무겁다는 이유도 외면하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놓쳐서 떨어뜨리는 게 아닌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들어서 버릴 수 있는 삶. 자신 있게 버릴 수 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은 송희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울 수 없다.


SNS상에서 다들 좋다고 하는 소설도 나에게 별로일 수 있고 내가 추천하는 소설도 상대에게는 그저 그럴 수 있다. 어쩌면 소설 읽기도 구독과 비슷해서 쉽게 구독하고 해지하고 다른 소설을 구독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설을 소비하는 세상이라는 걸 이제야 알아차렸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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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3-1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점점 제 선택이 옳았다는 쪽으로..... ^^;;

잠자냥 2025-03-18 17:4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저도 그런 생각했어요!
 
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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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뭘까. 이 나이에 사랑이 뭐냐니. 뜬금없지만 사랑이 뭔가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소연의 『사랑과 결함』 을 읽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계속 그 마음이 떠나지 않는 것, 그것 때문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많다는 것. 단순하게 사랑은 그런 것이다. 조금 더 나가면 그 사람의 형편을 살피는 일,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일, 그 사람의 아픔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 함께는 아니어도 우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게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된 예소연의 『사랑과 결함』에서 작가는 사랑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인간, 동물, 제도) 과의 사랑 말이다. 그것은 곧 모든 관계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닫힌 결말이 아닌 박 터지게 싸우고 고집을 부려서라도 열린 결말을 지향하는 관계. 예소연의 단편 속 인물의 사랑은 좀 복잡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그들과 보낸 시간을 곱씹고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을 마주하며 미칠 것 같다.


크로스핏 센터에서 만나 친구가 된 석주와 맹지의 이야기 「우리 철봉 하자」만 봐도 그렇다. 석주는 의대생인 맹지의 남자친구가 맹지를 힘들게 하는 게 싫다. 대놓고 맹지에게 너 남자 없이 못 사냐고 할 정도다. 늦깎이 의대생 주제에 공부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맹지에게 푸는 것 같고 그 모든 걸 받아주는 맹지가 못마땅하다. 그건 과거 석주가 남자친구를 대했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이용하는 지질한 방식의 사랑 말이다. 그래서 석주는 맹지가 그런 사랑을 하지 않기를 바라서 모진 말로 상처를 주고 견딜 수가 없다. 석주는 맹지에게 지질한 남자 친구는 줄 수 없는 그런 사랑을 주고 싶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석주 자신이 원했던 사랑이었다. 맹지와 같이 살며 이야기를 나눌수록 석주는 뒤늦게 깨달았다.


맹지가 덧붙였다. 너는 너를 돌봐야 해. 좀처럼 항변할 수 없었다.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나를 돌보려면 나를 돌아보아야 하는데, 나는 나를 돌아보는데 미숙했다. 일은 졸렬하게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좋아했다. 사랑에 있어서는 늘 나를 함부로 대하고 선을 넘어버렸다. (「우리 철봉 하자」, 33쪽)


석주 같은 마음은 「아주 사소한 시절」, 「우리는 계절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 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 속 희조의 마음과 비슷하다. 희조와 미정을 통해 십 대 시절, 사춘기, 청소년기의 마음이 어떻게 변모하는지 잘 보여준다. 세상과 어른을 바라보는 예민하고 비뚤어진 태도.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희조와 친구 미정의 관계. 희조와 미정은 친한 사이였고 종종 미정의 집에서 희조가 자고 오기도 했다. 희조가 미정 아빠의 죽음을 목격한 이야기를 학교에서 하면서 둘 사이는 틀어진다. 전학을 간 미정이 희조가 다니는 중학교로 전학을 오고 둘은 다시 가까워지는 듯했다 다시 멀어진다. 희조는 미정을 좋아했고 일진 남자친구가 아닌 자신의 친구이길 바랐다. 희조가 미정에게 바랐던 마음은 사회적 통념으로 우정으로 불리겠지만 석주가 맹지를 향한 마음과 같지 않을까.


예소연은 우정과 사랑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아주 잘 다룬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사랑의 겹을 안다고 할까. 친구나 연인과의 사랑만이 아닌 부모와 가족 간의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흐르는 뒤엉킨 시간과 감정을 「팜」과 「그 개와 혁명」에서도 마주한다. 두 단편에서 아버지는 가족보다는 세상을, 미래를 위해 힘쓰고 투쟁한다. 단순히 세대 차이로 치부할 수 없는 부녀 사이. 아버지의 자리에서 딸의 돌봄은 안중에도 없다. 그런 아버지를 딸은 사랑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개와 혁명」 속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달라진다. 딸 수민은 아버지가 보낸 시간을 헤아릴 수 없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자신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장례식에 아버지가 키우던 개를 데리고 오게 된다. 엉망진창이 된 장례식장도 나쁘지 않고.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방식으로 딸을 사랑했다.


부모 세대가 전하는 사랑을 우리는 온전히 알지 못한다. 표제작 「사랑과 결함」에서 화자인 나(성혜)를 끔찍이 사랑하는 고모(순정)의 사랑처럼. 아버지를 키우고 뒷바라지를 하느라 젊음을 다 보낸 고모. 늦은 결혼을 실패하고 동생네 집으로 돌아온 고모. 정신병을 앓는 애물단지. 엄마와 고모는 나를 두고 경쟁한다. 나는 때로 엄마의 입장에서 고모를 미워하기도 하고 때로 고모에게 받은 돌봄으로 고모 편에 서기도 한다. 사랑과 돌봄을 받을 때는 모든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나중에 고모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그 심연의 아픔을 알고 나서야 조카를 사랑하는 일이 고모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 된다.


어떤 사랑은 전부를 내어준다. 어떤 사랑은 아주 작다. 어떤 사랑은 지긋지긋하다. 어떤 사랑은 증오와 분노를 키운다. 어떤 사랑은 다른 사랑을 데려오고 어떤 사랑은 끝내 알지 못한다. 사랑해 한 마디가 어려웠던 순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견딜 수 없어서 나를 내동댕이쳤던 시절로 되돌릴 수 없기에 사랑은 상처로 남지만 그 경험으로 우리는 다른 사랑을 꿈꾼다. 그 이름은 연대가 될 수 있고 돌봄이 될 수도 있다. 예소연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사랑은 그런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은 사랑, 용기가 필요한 사랑. 사랑이라는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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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발견 -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랑하는 법
캐스린 슐츠 지음, 한유주 옮김 / 반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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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에겐 엄마의 죽음이 그러했다. 처음 맞이하는 사랑하는 죽음이라 그랬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생각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고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게 충격이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건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 모든 걸 받아들이고 엄마의 부재를 아무렇지 않은 일로 만들었다. 오히려 나의 힘듦을 엄마가 모르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족음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상실을 삶으로 데려왔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준비할 수 있다는 감사를 불러왔다. 며칠이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고 암 투병을 하는 큰언니를 보며 죽음을 예감했다. 그러나 그들의 부재가 얼마나 큰 힘을 지녔을지 준비할 수 없었다.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던 아버지의 죽음이 만든 부재는 큰 구멍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자리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거기 없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캐스린 슐츠의 『상실과 발견』은 아버지의 죽음을 시작으로 상실에 대해 말한다. 상실의 의미를 보여준다. 상실의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할까. 가족의 죽음으로 비롯된 지극히 개인적인 상실에 대한 감정이 아닌 상실 그 자체에 대한 은유와 통찰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한 사람이 사라지는 과정, 한 사람의 생이 부재한 자리에 채워지는 상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자 애도의 글은 모두를 상실의 구덩이로 빠지게 만든다. 아니, 상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 그리워한 것은 아버지를 통해서 여과된 삶. 아버지의 내면의 빛에 비추어 바라본 삶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사라져버린 가장 중요한 걸 다시는 손에 넣을 수 없음을 나는 즉시 깨달았다. 아버지의 방식대로 바라봤던 삶. 철저하게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대로의 삶. 내 모든 기억들을 다 모아도 아버지처럼 존재하는 단 하나의 순간도 만들어낼 수 없고, 내가 겪은 상실 전체는 아버지가 경험한 상실 앞에서 창백해진다.(99쪽)


한 사람의 존재, 역할, 사소한 집착, 취미, 습관, 이 모든 게 한순간 부재하며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의 시간은 측량할 수 없고 측량될 수 없다. 상실이란 그런 것이니까. 가족의 죽음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일은 최대한 미루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그것은 우리 앞에 도달하고 상실의 시간은 이어진다. 상실을 경험하는 동안 우리는 상실이 삶을 지배하고 전부라 여긴다. 상실을 이길 다른 감정이 스며드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캐스린 슐츠가 ‘발견’에 대해 사유하고 내려간 사랑은 우리 삶에 상실과 대등한 위치에 놓인다.







그녀와 C의 만남, 그녀가 발견한 사랑, 그녀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을 발견하는 과정은 아름답고 경이롭다. 이 역시 상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경험이며 감정이지만 발견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일인이 우리는 알게 된다. 발견이 지닌 놀랍고도 신비한 힘, 그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배우고 깨우친다.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 발견을 발견했다고 할까. 아무튼 굉장하다. 그녀의 사유에 감탄한다.


애도와 마찬가지로 사랑 역시 유동적인 속성을 지닌다. 사랑은 어디로든 흐르며, 어떤 형태의 용기도 채울 수 있고, 흠뻑 스며들지 않는 것이 없다. (166쪽)


상실은 세계를 축소하지만, 발견은 풍성하게, 풍부하게, 재미있게 한다. (228쪽)


상실이 삶을 지속적으로 우울하게 만들었다면 발견은 삶을 기쁘고 황홀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는 상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상실에 대한 부분을 힘들게 읽었기에 발견의 주제로 넘어오면서 나는 이 책에 더 좋아졌다. 고백하자면 좋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그런 책이다. 엄청난 책인데 그것에 대해 잘 소개하지 못해서 속상한 마음이다. 너무 좋은 책은 너무 좋은 마음이 급해서 서툴기 마련이라고 포장한다.


누군가를 발견한다는 건 한없이 경이롭다. 우리 감각의 척도는 상실로 인해 우리가 엄청나게 작은 데 비해 이 세상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걸 깨달으며 바뀔지도 모른다. 발견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유일한 차이는 우리가 발견에서 절망이 아닌 경이로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끝없이 드넓은 이 우주에서, 삶이 무한히 변이하는 가운데, 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경로들, 그리고 가능성들 가운데, 나는 여기 이 집, C의 곁에 있다. (233쪽)


우리 삶에 발견이 없다면 어쩔 뻔했는가. 상실을 대신할 발견은 아니지만 상실은 상실대로 발견은 발견대로 우리를 충만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 캐스린 슐츠는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했고 자신의 경험에 비춰 눈부시게 담아냈다. 한없이 작은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고 발견됨으로 성장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상실은 일종의 외부적 의식으로, 우리에게 유한한 날들을 잘 사용하라고 한다. 우리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고, 인생을 잘 산다는 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이다. 고귀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대상을 돌보고,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과 이미 사라진 것을 포함한 이 모든 것에 우리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우리는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켜보기 위해 여기 있다. (300~301쪽)


상실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에게 가만한 위로를 전하며 다가올 상실에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상실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니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살아가면서 발견하는 존재가 전하는 벅찬 감동이라고. 상실과 발견이 반복되는 그것이 삶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그 모든 걸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하는 게 살아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의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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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3-1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좋았어요. 자목련님이 통과한 상실의 과정에 절절하게 공감이 갑니다....인생의 후반기가 상실로 채워지고 결국 나도 갈 거라 생각하니 요새 왜 이리 마음이 쓸쓸한지 모르겠어요....내가 잘 견딜 수 있을까 자꾸 자신이 없어져요.

자목련 2025-03-13 15:06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책이에요. 잃어버리고 사라지는 것들은 늘어나는데 자꾸만 붙잡으려고 애쓰는 마음이 힘들지요.
죽음과 직면할 때, 말씀처럼 나는 잘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하면...
 
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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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상수다. 변하지 않는다.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은 변수다. 원하는 대로 변하기를 바라지만 그런 삶은 어디에도 없다. 믿었던 이는 나를 배신하고 사랑했던 이는 나를 배반한다. 아, 그러니 삶 자체는 상수가 아니라 변수다. 자꾸만 고꾸라진다. 배신하고 배반한 이들처럼 나 역시 그런 선택을 하고 싶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몇이나 될까. 혹시나 하며 배신한 이의 소식을 기다리거나 배반한 사람이 잘 살기를 바라기도 하는데.

김지연의 단편집 『조금 망한 사랑』을 읽다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조금 위안이 된다. 나 혼자 망하고 나 혼자만 되는 게 없는 것 같아서 속상했던 마음이 살짝 괜찮아지는 거다. 이래서 소설이 좋다. 현실 아닌 소설마저 누구나 잘 살고 누구나 성공하면 속상해서 살맛이 안 나니까. 그러나 왜 이렇게 사는 건 힘들고 좋은 일은 늦게 오거나 소식이 없는 것일까 속상함이 밀려온다. 아무튼 김지연의 단편은 나쁘지 않다. 좋다.


베프는 아니더라도 좋은 친구, 좋은 사람을 만나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기를 바라지만 그건 참 어렵다. 전 남자친구가 주변 사람과 가족에게 돈을 빌리고 연락을 끊어버린 「포기」는 가장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배신이다. 돈의 액수를 떠나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냐는 마음에 힘들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을 알게 된 이들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서다. 따지고 보면 돈을 빌려주거나 업무를 진행한 사람은 그들인데 말이다. 한데 이상한 건 소설 속 돈을 빌린 ‘민재’를 걱정하는 나의 사촌 ‘호두’의 마음도 알 것 같다. 돈을 갚는 건 둘째고 무슨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 말이다. 그리하여 소식이 닿은 민재가 돈을 조금씩 보내는 게 반갑고 기쁜 것이다. 심지어 돈을 다 갚으면 관계가 완전히 끝나겠구나 싶은 아쉬운 마음까지.


이불을 개면서 더는 만나지 않는 친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던 사정은 조금 나아졌는지, 모두에게 상처를 주며 잠적해야만 했던 일에서는 벗어났는지,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 잘 지내는지, 건강한지, 아픈 덴 없는지, 아무리 고심해 봐도 나로서는 그런 질문들에 답을 내릴 수 없고 그 답을 아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를 바라다가고 이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어버린다. (「포기」, 38쪽)


마음은 언제나 그렇다. 알 수 없다. 삶이 알 수 없듯이 마음이 그렇다. 김지연은 이렇 마음을 잘 포착한다. 내 맘 같은 갈팡질팡한 마음. 동거하던 동성 연인과 헤어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긴 끝」의 ‘문애’의 마음과 이혼하면서 양육권을 포기한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듣고 복잡해진 ‘인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좋아하는 마음 없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연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끝이 났다는 걸 실감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미련 때문에 주춤한다.





연인과의 관계가 그러한데 혈연으로 이어진 자식과 부모는 어떨까. 전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을 하면서 모든 관계가 끝났다고 여겼는데 전 남편의 죽음으로 달라졌다. 어찌 된 일인지 보험금 수령자가 인지였다. 보험금의 일부를 양육비로 받고 싶다는 아이의 새엄마. 인지 역시 재혼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렸지만 아이는 없다. 때문에 아이가 친엄마와 살고 싶다는 소식에 혼란스럽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아이를 키운 새엄마의 마음은 무엇일까. 데려오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이 충돌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변하는 마음,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마음 아니겠냐고 김지연은 말한다.


“그럼, 이제 끝?”

“응, 끝.”

“진짜 끝?”

“진짜로, 끝.”

인지는 모든 것이 완전히 끝일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한 건 오늘 그들을 생각하는 일은 그만둘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에 다시 또 생각난다면 그때 그냥 내버려둘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167쪽)


이처럼 삶은 엉뚱한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결혼할 수 없지만 결혼 같은 걸 할 수 있겠다 믿었던 문애에게 코로나의 여파는 결국 이별까지 불러왔다. 이혼하고 남남이라 여겼지만 아이가 둘 사이를 오가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되는 게 없다고, 이번 생은 망했다고 농담을 해 보지만 망했다고 삶이 그 순간 멈춰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우리는 힘을 쏟을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연인 ‘서일’은 떠나고 남겨진 빚을 갚아가는 「반려빚」의 ‘정현’처럼 말이다. 사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편을 꼽자면 「반려빚」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 나 반려견, 반려묘, 반려나무, 반려그림도 아닌 반려빚이라니. 현실을 풍자하는 것 같지만 그게 우리의 실상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자동차 할부와 은행 대출 때문에 사표를 낼 수 없고 다시 한 달을 살아간다는 웃지 못할 이유처럼 정현은 그렇게 살아간다.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말이다. 그럼에도 서일이 연락을 해 오자 반갑고 잠깐 동안 정현의 집에서 지낼 수 없냐고 물었을 때 냉큼 그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라니. 우여곡절 끝에 빚을 다 갚고 서일의 전화번호를 쓰는 초등학생과 통화를 하는 정현의 마음을 알 것은 건 나뿐일까.


김지연이 담아낸 인물과 일상은 뻔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라 함부로 욕할 수 없고 함부로 편을 들 수도 없다. 돈의 크기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는 생계와 직결된 것이고 단 칼에 끊어낼 수 없는 게 관계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능을 마친 조카가 삼촌과 유자밭에서 유자를 따고 유자청을 담그는 소소한 일상을 들려주는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에서 행복과 불행으로 채워진 삶이라는 걸 발견하는 이런 문장에 울컥해질 수 밖에.


사람은 지극히 행복할 때 느닷없이 슬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알지만.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 293쪽)


우리가 사는 삶은 마냥 행복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불행한 건 아니다. 행복한 기억을 빌려 불행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언제 다가올지 모를 불행이라는 변수와 담담하게 혹은 힘 있게 악수하며 살아가는 게 삶인지도 모른다. 조금 망했다고 삶이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만 한정된 게 아니라는 보통의 진리가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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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3-1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반려빚이 제일 인상 깊었어요. 일단 너무 와 닿아서... 빚이 반려라니... 무슨 납치혼도 아니고 강제로 반려가 되었지만 솔직히 강제도 아니죠 뭐 자본주의 무섭습니다.ㅠㅠ

이 책 읽고 요즘 세상이 그런가보다 했어요. 청년들은 정말 힘들겠구나 싶었구요.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2,30대라는 과거는 미화되는지 그렇게까지 힘들었던가 싶기도 하지만 그 때 좀 덜 힘들었더라면 지금 이렇게까지 지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했어요. 여러모로 위안 받으며 많은 생각을 했네요.^^

자목련 2025-03-11 09:39   좋아요 0 | URL
각자의 반려빚을 생각합니다. ㅠ.ㅠ
대학 졸업 후 갚아야 하는 대출을 생각하면 정말 암담하고요. 어쩌다 이런 시대가 되었을까 안타까워요. 그러면서도 20~30대에만 그런 게 아니라서 서글프기도 하고...

민선진 2025-03-10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어요!

자목련 2025-03-11 09:39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으시길 바라요^^

전야제 2025-03-1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저에게 딱 맞는 처방전과도 같은 글이에요.
조금 망했다고 삶이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에 눈물이 주르륵.
이 책 꼭 읽어볼게요!
오랜만이에요ㅎㅎ
바쁘다는 핑계로 서재에 이제서야 들어왔지만,
자목련님 글들 보면서 변하지 않는 일상의 힘을 한껏 느낍니다.
변함없이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천히 모두 읽을게요!

자목련 2025-03-18 16:34   좋아요 1 | URL
전야제 님,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은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바쁜 일상 속 작은 여유도 있으면 더 좋겠고요.
눈 내리는 3월, 건강하고 따뜻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