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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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 권정생 / 양철북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책을 읽고 나서

 

 최근에 읽은 서간집이 괜찮은 느낌을 주었기에, 비슷한 형식인데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동 문학가 '이오덕'과 '권정생'이 약 30년간 주고받은 편지는 이 책에서 시간순으로 나열되어 있었고, 출판사 측에서도 과도한 편집은 자제하고 원문 그대로 실으려는 노력이 보였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가장 사소한 구원』은 책으로 출간하기 위하여 특정한 주제를 이야기하며 스승과 제자와의 따뜻한 대화를 보여줬다면,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삶의 동반자인 두 문학가의 삶을 그대로 담은 느낌이지요. 어떤 작위적인 주제가 없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는 이 서간집은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통해서도 정다운 느낌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기지우(知己之友)라고 했던가요. 『강아지 똥』,『몽실 언니』 등, 평생을 어린이만을 위한 동화를 쓰며 살아갔던 권정생 작가님과 아동문학가이자 평론가, 교사였던 이오덕 선생님. 진정한 친구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분은 서로를 온 마음을 다해 걱정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편지 한 통으로도 속마음을 다 알 정도로 가까운 인연이었고, 짧은 글 속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조심스럽게 '선생님'이라고 서로를 칭하며, 서로의 문학을 존중하고, 어떤 문제가 있다면 세심하게 챙겨주기도 하지요 ("원고료 만 원 부칩니다"라는 말이 어찌나 뭉클하던지요). 또한, 권정생 작가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하려고, 이오덕 선생이 많은 애를 쓰셨습니다. 권정생 작가는 자신의 많은 작품을 그와 논의하고, 이오덕 선생은 자기 일처럼 앞장서서 작품을 알리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나라, 고국이었지만 권정생 작가에게 많은 외로움을 주게 했던 한국이란 땅에서, 이오덕의 존재란 어찌나 든든했을까요.

 

사실 처음에는, 짧은 글 (편지)가 어떠한 주제도 없이 묶여 있어 단숨에 읽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의 삶을 순서대로 따라가듯 천천히 읽다 보니, 내내 이상하고 두근두근한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30년 동안 이어진 편지 속에는 한국 사회 속의 아동문학에 대한 따끔한 질타도. 가난과 고통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들도 등장하는데요. 마음을 담은 편지이기 때문일까요. 모든 이야기는 얇은 종이 속에서 묵직한 감정으로 전해집니다.

 

 아, 이 책을 읽으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속에 있는 말들까지 싸악 비워줄 수 있는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일평생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서 지껄일 수가 있었다"는 권정생 선생의 말이 뭉클해지는 순간입니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서간집/ 아름다운 편지/ 아동문학 

출생지가 남의 나라였던 저는 여지껏 고향조차 없는 외톨박이로 살아왔습니다. 아홉 살 때 찾아온 고국 땅이, 왜 그토록 정이 들지 않는지요?

나에게 한국이라는 조상의 나라가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무명 치마폭에서만이 느낄 수 있었을 뿐입니다. 소외당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고국은 나에게 전쟁과 굶주림, 병마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위에 몸서리쳐지는 외로움을…….

누가 자기 나라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나는 무던히도 나의 이 한국 땅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메말라진 흙 속에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어, 여지껏 목말라 허덕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나 자신이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와 함께 살다 죽겠습니다. 선생님만은 제 마음 이해해 주실 겝니다.

나라고 바보 아닌 이상 돈을 벌 줄 모르겠습니까? 돈이면 다아 되는 세상이 싫어, 나는 돈조차 싫었습니다. 돈 때문에 죄를 짓고, 하늘까지 부끄러워 못 보게 되면 어쩌겠어요? 내게 남은 건, 맑게 맑게 트인 푸른 빛 하늘 한 조각.

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13쪽)

오늘도 종일 누웠다가 이제 일어났습니다. 하루 이틀 무리하고 나면 사흘쯤은 열에 시달려야 됩니다. 열이 오르면 음식 맛이 하나도 없어져요. 먹어야 살기 때문에 굶어서는 안 되지요. 아랫마을 가게에 가서 새끼 명태 백 원어치 사 왔습니다. 밥이든, 죽이든 넘어가는 데까지 삼키고 나면 `이제 살았다` 싶습니다.

지독하게도 살아왔다고 생각됩니다. 절대 남 보는 데서는 울지 않습니다. 아픈 척도 않습니다. 아픈 척, 슬픈 척, 해 봤댔자 알아주는 이 없으니까요. 도리어 업신여김받기가 십상이랍니다. 행복한 척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병든 사람은 병든 사람만이 위로해줄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만이 도와줄 수 있답니다. 신 김치일망정, 쓴 된장일망정,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를 찾아오는 가난한 이웃들을 저는 저버릴 수 없습니다. 제가 돈이 생기게 되면, 건강해진다면, 사회가 알아주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많은 것을 잃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싫답니다. (55쪽)

과잉생산이란 과잉 소유욕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 고루고루 잘살기 위한 방법이 아닙니다. 인간이 도대체 `생산`을 한다는 것이 잘못된 말일 것입니다. 생산은 어디까지나 자연이 만들어 낸 소산이며 인간은 다만 수확을 하는 것뿐입니다. 이 수확의 공정성에서 벗어나 많이 갖게 되면 그것은 도둑이며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많이 가져도 된다는 권리는 누가 베풀어 준 것입니까? 하느님이 이 지구를 한자리에 고정시키지 않고 움직여 돌게 한 것은 고루고루 가지게 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요인이 바로 많이 갖는 과잉 소유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한 그릇 이상의 밥을 먹으면 다른 한 사람의 몫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입니다. 내가 넓은 토지를 소유할 때, 내가 큰 집을 가지게 될 때, 내 이웃은 그만큼 좁은 곳으로 쫓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188쪽)

우리 아동문학은 지금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아동문학이 아이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잡지 편집자, 일반 문학인들에게까지 멸시받는 판입니다. 아동문학 작가들은 아동문학에 대한 신념을 잃고 성인 문학의 뒤를 따르려고 하여 그 흉내를 내면서 문인 행세를 하는 경향이 있고, 성인 문학지 한 귀퉁이에 작품이 실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실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동문학이 문학으로서 대접을 못 받는 까닭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작가, 시인들의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아동문학의 정체성과 위기는 오직 우리 문학인들의 반성과 진지한 노력으로서만 타개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재미있게 읽히면서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써서 독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한편 문단과 사회에는 우리 아동문학을 옹호하고 그 존재를 과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5쪽)

어린이를 미숙하고 유치한 존재로 보고 있듯이 아동문학을 그렇게 가볍게 취급하고 있으니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들이 여가 선용이나 취미로 하지 않듯이, 우리 아동문학도 온 생애를 바쳐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같이 병들고 무능한 인간이 아닌, 건강하고 역량 있는 작가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 편의 동화를 빚어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뜨거운 작가가 나와야만이, 아동문학이 구원을 받고 또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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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 #남미 #라틴아메리카 #직장때려친 #30대부부 #배낭여행
정다운 글, 박두산 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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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정다운, 박두산 / 중앙북스

직장 때려친 30대 부부의 '다정한' 남미 여행기

 

 

 한동안 여행 에세이만 보면 눈이 번쩍 뜨이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호기심이 반쯤, 아니 80프로 정도는 떨어진 상태다.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이유 중 가장 많이들 얘기하는 대리만족이야 분명히 느껴지지만, 어떤 특정한 테마 - 이를테면, 음식이나 집, 자신만의 특별한 여행 모토 - 없이는 모두 다 비슷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 책도 비슷한 느낌이어서 살짝 고민했지만, 끝내 받아보게 된 것은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남미' 여행에 국한된 에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요즘 남미 지역의 책을 부쩍 접하기도 해서인지 운 좋게 다가온, 오랜만의 여행에세이.

 

 

 가장 먼저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라는 제목은 감성적인 여행 에세이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어쩌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위험한 제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라는 말이 자칫 '우리는 그만큼 여유가 있어서'라고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롤로그 처음부터 이러한 글이 있었다.

  

 

결혼한 지 2년째 되던 해였고, 둘 다 30대 초반이었다. 나는 IT기업의 과장, 남편은 게임회사의 대리, 수도권 아파트에 살며 아침이면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근을 했고, 가끔 야근을 하지 않는 날이면 한께 장을 보고 저녁을 해먹었다. 주말에는 보통 밀린 잠을 잤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별일이 없다면 그렇게 몇 년은 더 잘 지낼 것이었다. 오늘처럼 내일을 살고, 내일처럼 모레를 사는 일은 쉬웠으니까.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못 본 체할 수 있다면, 퇴근하는 그의 축 처진 어깨를 모른 척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대로 쭈욱, 지낼 수 있었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그들은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고,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지나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수많은 이유, 그리고 가장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을 위해 둘 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들의 여행은 그동안의 바쁜 날들에 대한 보상이었고 오랜 꿈이었다. 그리고 물론, 6개월 뒤에는 다시 이전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제한된 꿈이었다.

 

 

 느낌이 좋은 곳에 머무르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그들의 여행은 참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유독 젊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 함께 여행길을 걷고, 고생하면서도 그곳의 에너지를 듬뿍 받아 힘을 내는 모습을 봐도 그렇고, 분명 부부의 여행인데도 여행길을 동행하는 친구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서였다. 걸어서 넘는 '과테말라'와 '멕시코' 사이의 국경, 경이로운 사진들로만 구경했던 '우유니 사막', 위험한 지역이라 여겨졌지만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던 '콜롬비아'를 거치는 그들의 여행은 부러웠고, 왠지 모르게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것처럼 여겨졌다.

 

  현실적인 것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오래된 카피가 떠오른다는 점이었다. 책 속의 여행은 장소와 기간은 달라도 많은 직장인(혹은 청춘)들이 잠시 멈춤 하는 여행을 하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랄까. 그리고 비현실적인 것은, 어쩌면 모든 이들의 목표인 '행복'을 찾아 직장을 때려치웠던 그들의 용기였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 당장 직장을 때려치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남미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들의 '잠시 멈춤'도 자유롭고 아름다웠다. 친구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있는 부부의 모습과 책에서마저도 한 켠을 나눠주고 있는 ('그의 시선'이라는 페이지가 간혹 등장한다) 구성이 참 예뻤다. 책의 마지막, "한동안은 손이 닿는 곳에 배낭을 둘 생각이다"라는 말은 그들이 언젠가 또 여행을 떠날 거라는 계획으로 여운을 주고 있었다. 유독 특별하지는 않지만, 담백하고 다정하게 진심을 전하는 느낌이어서 읽는 동안 참 편안한 여행 에세이였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여행 에세이/ 남미/ 배낭여행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식사 중에 펼쳐진 여행 이야기. 20년간 아프리카며 아시아며 전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셨단다. `환갑 기념`으로 남아공에서 번지점프를 하셨던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입을 떡 벌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6대륙을 넘나드는 그 길고 진한 여행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그 말씀을 허세 없이 담담히 들려주신다는 거였다.

이 정도면 책을 여러 권 내고도 남았을 텐데, 이렇게 조용히 세상을 걷는 사람이 있었다. 긴 여정을 시작하려는 때에 이런 어르신을 만나다니.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는 걸 무슨 훈장처럼 여기고 우쭐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던 우리에게 겸손한 여행을 하라는 신호가 아닌가 싶어, 우리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분의 이야기를 새겨들었다. (23쪽)

오늘 하고 싶은 것이 오늘 할 일이 된다는 것,

어제 하지 못한 것이 오늘 할 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내일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오늘 미리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온전한 오늘의 의미에 익숙해지면서 비로소 여유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쉬는 법을 조금씩 알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시간의 단위가 복잡했다. 업무 다이어리는 1년의 시간을 분기로, 월로, 주로, 일로, 시간으로 쪼갰다. 단위가 정교해질수록 열심히 일하는 척할 수 있었다. 때론 너무 비대해진, 그래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에 단위에 짓눌리기도 했다. 일일 업무보고, 주간계획 작성, 월간목표 수립, 분기별 성과보고, 연간계획 수립, 중장기 비전 설정까지. 모니터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시간을 위해 나의 하루는 완결된 단위로 기능할 수 없었다. (60쪽)

그런데 이상하다. 이 모든 부조리함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쿠바를, 아바나를 왠지 싫어할 수가 없었다. 좋아할 이유보다 싫어할 이유가 훨씬 많았지만 나는 의외의 부분에서 너그러워지곤 했다. 아바나에는 어제 걸었던 그 거리를 오늘 또 걷고, 다음 날 또 걷고 싶어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비록 삐끼에 지쳐 한 시간만에 되돌아오더라도, 또 기운이 나면 바로 나가고 싶어지는 그런 에너지 말이다. (121쪽)

`이러다 차가 기울어 벼랑으로 떨어질지도 몰라요!`

나는 그만 화가 나서 사람들에게 꽥 소리 지를 뻔했다. 간신히 참고 혼자 조용히 왼쪽 끝으로 옮겨 앉았다. 그때 오른쪽 창으로 몰려간 사람들이 본 것은, 무려 절벽 아래에 떨어져 있는 버스. 최근에 있었던 사고라고 했다. 그때부터 도서관이고 뭐고, 다시 돌아올 길이 걱정되어 사색이 되었다. 그런 길을 3시간 반 더 달렸다.

내 인생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이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만 울 것 같아져 버렸다. 남편은 얼굴이 질려버린 나를 보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지만 나는 점점 몸이 뜨거워졌다. 집에 가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집에 누워 있었으면. 내 방에는 가습기도 있고, 푹신한 침대도 있고, 빠른 인터넷도 있는데. (209쪽)

아주 가끔씩은 몇 년 혹은 몇십년째 배낭여행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찾을 수 있는 어떤 공통점이라면 사진을 그다지 즐기지 않거나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말하자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애써 타인에게 전하려 하지 않고, 굳이 기록으로 남기려 하지 않고 그 여력으로 자신에게 보다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자기 확신이 몹시 부러울 때가 있다.

그런 장기 여행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유분방함에 대한 동경도 동경이지만 세속적인 호기심도 떨칠 수가 없다. 대체 여행자금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떠나기 전에 돈을 많이 벌어둔 것일까, 부모님이 재벌인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차마 물어볼 수 없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입가를 맴돈다. 요컨대, 두어 달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가 슬퍼질 때가 있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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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꽃들 -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이야기
김민철 지음 / 샘터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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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꽃들』 김민철 / 샘터

문학작품을 더욱 피어나게 하는 꽃들의 향연







 ▒ 책을 읽고 나서.


 두 사람이 함께 걷다가 같은 풍경을 본다. 한 사람은 "목련이 예쁘게 피었네" 혹은 "어머, 저 가랑코에 색이 정말 화려하다."라고 말한다. 다른 한 사람은 그저 "꽃이 예쁘다."라고 말한다. 물론 각자의 관심사가 다를 수 있지만, 이는 커다란 차이를 준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마주했을 때 두 눈으로 확인하고 감탄하는 것, 그 재미는 '모르고' 감상했을 때보다 몇 배는 커진다. 이 두 사람의 경우를 생각했을 때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후자에 속한다. 다양한 야생화와 식물들을 알고 싶긴 하지만, 그것을 찾아보고 눈에 담아 기억하기엔 관심이 부족하고 세심하지 못한 탓이다.



 꽃(혹은 식물)과 문학, 이 둘은 정말 짝을 이룬 것처럼 잘 맞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들이다. 김훈의『내 젊은 날의 숲』에서는 수많은 식물, 그리고 식물들이 연상시키는 의성어들로 풍성하고 유려한 문장들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작품을 구성하는 소재로서 세상의 무엇 하나 쓸모없는 것들이 없지만, '꽃'을 포함하는 '식물'들은 특히나 한글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뽐낼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알고 싶어진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야생화들과 이름 모를 식물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등 유명한 것들 말고는 내 눈으로 구별할 수 없는 튼튼한 나무들을.



 이 책의 작가는 이전에 『문학 속에 핀 꽃들』이라는 책으로, 꽃과 문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더욱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로 책장을 꾸몄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은희경의 <새의 선물>, 권정생의 <몽실 언니> 등 비교적 잘 알려진 작품들을 포함하여, 작가의 이름 또한 조금 생소하지만, 꽃에 관한 아름다운 문장이 깃들어있는 작품들도 모아두었다. '좋은 문장들을 쓰고 싶으면 꽃에 관해서 좀 알아두자'는 개인적인 다짐을 한 적이 있지만, 이제는 그 다짐을 더욱 굳게 지켜야 하겠다 싶을 정도로 한국 문학 속에는 수많은 꽃이 만발해있다.




3월의 시작과 함께, 나는 첫발이 미끄러지듯 새 학기의 시작이 주는 쥐꼬리만 한 스트레스를 조르바에게 털어놓았다. (중략) 그래서 그날은 조금 과하게 술을 마셨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고 물론 그녀와 함께였다. 다음 날엔 그녀가 졸업 학기의 시작이 주는 쥐똥만 한 스트레스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이거야 원, 다음 날 학교를 결석할 만큼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자꾸만 생겨났다. 나와 그녀에게 아무 일이 없으면 조르바가 쥐며느리만 한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마치 왈츠의 리듬처럼 그다음 날엔 조르바의 친구가 쥐방울 만한 스트레스를 털어놓았다. (중략) 결국 한 그루의 쥐똥나무만 한 스트레스가 서로의 마음속에 자라나 버렸고, 급기야 서로가 어우러진 울창한 쥐똥나무의 숲이 형성되어 버렸다. 결국 그해의 봄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36p,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단순히 그 꽃(그리고 식물들)을 묘사하는 장면만을 상상할 수 있지만, 작가들의 개성과 글솜씨로 이런 문장들도 등장한다. 쥐꼬리만 한 스트레스, 쥐똥만 한 스트레스가 모여서 한 그루의 쥐똥나무만 한 스트레스를 이뤘다는 표현은 기발하고도 매력적이다. 독특하기로 잘 알려진 '박민규' 작가의 글이지만, 과연 이래서 '작가'인 듯싶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은 마치 한편의 독서 에세이를 읽는 것도 같고, 가볍게 쓰인 식물도감을 보는 것도 같다. 책 속에 담긴 우리 문학 작품들은 풍성했고 읽어보고 싶은 것들도 많았지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각 장의 내용이 조금 짧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쓰인 작가의 이력 등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문학'과 '꽃'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기대가 커서 책은 오히려 조금 가볍게 여겨졌지만, 뒤로 갈수록 쌓이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책에 대한 만족도를 올려 주었다. 현재 출간된 많은 독서 에세이 (문학 에세이)들 중에서 특별한 소재로 중심을 잡고 있는 것도 큰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문학, 독서 에세이/ 야생화, 꽃

서평단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그날 마음 사람들과 아버지는, 용내천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커다란 용수버드나무를 발견했다. 금방 잘린 듯한 나무 밑동 곁에는, 손잡이에 핏물이 밴 낡은 톱 한 자루가 버려져 있었다. 그날을 회상할 때마다 어머니는 깊이 파인 손바닥의 상처를 들여다보곤 했다.
어머니가 용수버드나무를 이용해 용내천을 건너 읍내로 내달릴때 아이는 소생했다. 미친 듯 달린 어머니의 몸이 아이의 횡격막을 자극한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진창에 주저앉아 이년아, 이년아, 하고 울었다. 간수를 얻기 위해 어둠과 습기를 빨아들인 소금가마니처럼, 어머니는 어둠과 습기를 기꺼이 받아들여 자식들을 사랑으로 지켜온 것이다. (78p, 구효서 <소금가마니>)

<옛 우물>도 하나하나 따지며 의미를 부여하거나 페미니즘을 의식할 필요 없이, 그냥 중년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좋은 소설로 읽어도 무방할 듯 싶다. 주인공이 나무를 껴안고 희열을 느끼는 장면 등도, `그`의 죽음의 충격으로 생긴, 다소 일탈적인 행동 중 하나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결혼을 해본 남자라면, 여자를 사귀어 본 사람이라면 여자들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 상태에 빠져 다소 엉뚱한 일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107p, 오정희 <옛 우물>)

먼저 그녀의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목덜미에서부터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주와 빨강의 반쯤 열린 꽃봉오리들이 어깨와 등으로 흐드러지고, 가느다란 줄기들은 옆구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오른쪽 엉덩이의 둔덕에 이르러 자줏빛 꽃은 만개해, 샛노란 암술을 도톰하게 내밀었다. 몽고반점이 있는 왼쪽 엉덩이는 여백으로 남겼다. (중략) 그는 이번에는 노랑과 흰빛으로 그녀의 쇄골부터 가슴까지 커다란 꽃송이를 그렸다. 등 쪽이 밤의 꽃들이었다면, 가슴 쪽은 찬란한 한낮의 꽃들이었다. 주황색 원추리는 오목한 배에 피어났고, 허벅지로는 크고 작은 황금빛 꽃잎들이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292p, 한강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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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박성혁 지음 / 다산3.0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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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박성혁 / 다산 3.0

마음을 다져야 진짜 공부의 시작이다

 

 

 

 ▒ 책을 읽고 나서.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이런 뻔하디뻔한 말을 뼛속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평생 '공부가 재미있었던 순간'을 생각하면 딱 두 번을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대입 준비 때,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 운명인 줄만 알았다. 첫째 딸이었던 언니에게 과도하게 닦달을 했었던 우리 엄마는 둘째인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어느 정도 놓아주는' 방식을 택했다. 공부하라고 크게 혼내지도 않았고,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뭘 하든 즐거워 보여서 그냥 그대로 놔두었다고 했다. 아무 걱정 없이 참 즐겁게 살았다. 그러다보니 성적은 보통을 유지하다가 싫어하는 과목은 슬슬 내려가기 시작했고, 시험 하루 전에 후다닥 공부하는 날도 흔했다. 고등학교 때는 보충수업과 야자를 째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 먹으러 가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는 점심시간 때까지 내리 졸다가, 시험기간에 후다닥 밀린 공부를 했다. 그나마 벼락치기를 한 탓인지 성적은 바닥을 치진 않고 보통에 머물렀지만, 대학을 가기에는 턱없이 안정권에 모자란 성적이었다. 부모님께 호되게 혼나도 별 감흥이 없었다. 부모님은 아마도 내가 전문대학에 갈 거로 생각했다고 한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 의미 없이 나버리고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도 2살 터울의 언니가 대학입시를 하는 모습을 보고 터닝포인트를 잡았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나는 영어 단어장을 손에 쥐고 다녔다. 이미 뒤떨어진 영어 실력을 보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미친 듯이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내가 일궈낼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를 잡았다. 정말 처음으로 부푼 각오로 독서실을 잡아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했고, 내 손으로 문제집을 이것저것 골라 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려 꾸미던 다이어리는 스터디 플래너로 변신했고 시간을 조각조각 나누어 해야 할 일들을 적어나갔다. 하루에 목표한 것들을 실행한 뒤 스스로 점수를 적고, 집중한 시간을 스톱워치로 잰 것을 밑에 적었다. 5시간, 7시간, 9시간, 10시간…… 점점 시간을 늘려나갔다. 그리고나선 점점 뿌듯한 결과들을 내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7등급을 찍었던 과목은 모의고사에서 2등급을 찍었다.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받았다. 맨날 잔다며 구박하던 선생님의 눈은 조금씩 부드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궈낸 나만의 목표는 남들이 보기에 대단할 정도도 아니었고 훌륭한 성적도 아니었지만, 스스로에게 뿌듯할 만큼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닌, 내 스스로 '마음'을 결단한 탓이었다. 어떤 책에선가 '내가 스스로 잡은 것은 절대로 놓지 않는다'라는 비슷한 말을 읽었다. 어떤 의미로는 '공부'라 말할 수 있는 '책에 미친 지금'도 내 스스로 그것을 선택하고 즐겼기에 가능한 시간이 틀림없다.

 

 

 

공부……. 하라고는 하는데 저에게는 그저 뜬그룸 잡는 소리 같고, 멀게만 느껴지더라고요. 도대체 왜 해야 하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렇다고 멋진 곳에서 짜릿한 경험을 하며 노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라도 홀가분한 것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놀든 빚지도 도망 다니는 사람마냥 왠지 모를 불안감이 떨쳐지지 않았어요. 내 할 일로부터 도망쳐 숨어 다니는 사람만의 주눅이라고 할까요.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니 어깨 활짝 펴지 못하고 움츠러들어 있었던 거죠. (29p) 

 

 이 책을 쓴 저자 또한, 원래는 잉여짓의 달인이라고 할 정도로 아무런 목표 없이 살아가던 청소년이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자신의 인생이 '엎질러진 물'이라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아무 의미 없는 인생을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했는지, 어떤 감흥도 없던 나날들이었다. 그렇지만 갑자기, 벼락을 맞은 것처럼 탁- 하고 '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한심하고 비참한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고 한다. 결심이 말라버리기 전에, 문제집을 사서 작은 목표들을 세우고 독하게 결심했다. 그리곤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나가기 시작했다. 잉여짓 하는 인간에서, 공부하는 인간으로.

 

 

 어떤 좋은 학원에 다녀도, 유명한 선생님을 만나도,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공부를 시작하게 하는 것은 결국 인생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사실, 이런 책을 읽는다고 해서 청소년들의 방황 어린 눈들이 갑자기 확- 뜨일지는 모르겠지만, 공부 (혹은 공부라 생각되는 많은 것들)에 대하여 고민해볼 기회만큼은 제공해준다. - 책 속에는 춤, 그림, 운동, 요리 공부를 위해 반쯤 미쳐본 사람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공부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성적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자신의 힘으로 이끌어갈 목표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어떤 일에도 이 공식이 적용되는 것임을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 책 속에는 잘라서 책상 등에 붙여놓고 각오를 다질 수 있는 '힐링 포스트잇' 페이지가 있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힐링 에세이/ 공부, 자기계발​

서포터즈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한번 앉으면 몇 시간이고 꼼짝 않겠다는 독한 각오, 내 심장박동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팽팽하게 당겨놓은 긴장감, 모르는 내용은 알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 나쁜 습관은 모조리 끊어내겠다는 단호함. 1분 1초를 치열하게 채워나가는 절박함을 갖추기만 한다면 지금 내 성적표 따위는 의미 없는 `종이 쪼가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됩니다. 세상에 보여준 적 없는, 그래서 아직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내 안의 가능성을 잘라버리지 마세요. 내 안에 들어 있는 `진짜 나`에게는 이기지 못할 절망 따윈 없습니다. 내 잠재력을 이대로 묻어버린다면 두고두고 내가 나한테 아주 `나쁜 놈`이 될 겁니다. (27p)

저는 내 인생을 하찮게 여겼고, 나를 그다지 사랑하지도 않았고, 나에게 거는 기대도 별로 없었어요. `내가 돌보아주지 않으면 내 인생은 녹슬고 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저는 어리석고 멍청했습니다. 결코 끝이 나지 않을 바퀴를 굴리는 햄스터처럼, 저는 옴짝달싹 못하고 `하던 짓`만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한 번뿐인 내 인생은 무척 귀해요. 나에게 이 기회는 절대로 두 번 주어지지 않거든요. 껐다가 다시 켤 수도, 되감을 수도, 멈출 수도 없이 오직 딱 한번. 우리는 인생을 딱 한 번 살아볼 수 있습니다. 주눅 들지 말고, 머뭇거리지 말고, 멋지게 한 번 힘껏 내달려볼 필요가 있어요. 나를 놓아버리고 내팽개쳐두면 안 되는 겁니다. 내 인생에게 미안하잖아요. 몇 년 후, 혹은 삶의 끄트머리에 가서 뉘우친들 그렇다고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니까요. (58p)

우선, 라이벌은 나와 고만고만한 친구일 확률이 높습니다. 승부욕이 제대로 발동하기 어려울 정도의 `나보다 훨씬 뛰어난 친구`를 라이벌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죠. 대부분 나보다 `쬐끔` 잘하는 친구를 라이벌로 정해요.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이 라이벌 친구는 점점 나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 라이벌이 나보다 잘하고 있을 땐 자극이 되기보다는 기분이 잡치고, 라이벌이 별로 열심히 안 하는 것처럼 보일 땐 안심이 돼서 공부가 안 되는 겁니다. 결국 라이벌은 내 공부할 마음을 빨아먹는 `뱀파이어`가 되어버리고 말아요. 처음 라이벌을 정한 목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버리죠. 나에게 경쟁자는 눈앞의 그 친구뿐만이 아니잖아요. 내 눈앞에 안 보이는 경쟁자가 몇 만 배는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정한 라이벌만을 기준으로 삼고 나면 어쩐지 그 친구보다 조금만 더 잘해도 될 것 같은 `비교의 함정`에 빠져버리는 겁니다. (1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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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법 아우름 4
주철환 지음 / 샘터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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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주철환 / 샘터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법

 

 

 

 ▒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보는 순간, 제일 먼저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와요.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법"……. 그야말로 우문현답인 것 같아요. 수동적인 행동을 버리고,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 뒤통수를 딱 때리는 문장이에요. 언젠가 한 친구를 보고 느꼈던 기분이 문득 생각이 나요. 그 친구는 누구에게나 허물없이 대하곤 했어요. 누군가의 허물을 알게 되어도, 똑같이 대했죠. 그 친구의 가장 큰 장점은, 새로 만나는 친구에게도 선뜻 다가간다는 것이었어요. 그에 반해, 저는 친해져서 나를 다 풀어놓기까지의 시간이 참 오래 걸려요. 낯을 많이 가려서 먼저 다가가기가 어려운 성격이죠. 친해지면 개그도 치고 많이 나를 풀어놓지만, 언제나 '시작'이 참 무거웠어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은 때론 위험을 감수할 수 있지만, 그만큼 행복을 선물 받을 기회도 많이 얻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진정한 친구를 만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예요. '시간이 답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시간은 친구들을 갈라놓기도, 진정한 친구를 가려내기도 하죠. 그러나 세상을 사는데 풍성한 인연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게 있다면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놓고서 말이죠.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에선 친구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법을 소개하고 있어요.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1. 시비지심보다 측은지심

2. '기브 앤 테이크'는 잊어라.

3. 상대가 원하는 '거리' 배려하기

4. 아무래도 가까워지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총 열 개의 조언을 담아두고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만 담아놨어요. '친구 사귀기를 좋아한 덕분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저자는, 인간관계에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어느 정도의 선도 두고 있어요. 4번에서 아무래도 가까워지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저자는 '서로 부딪칠 일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제시하죠.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싫은 사람이지만 '나쁜'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 사람은 단지 나와 맞지 않을 뿐이지요. 반면에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과 '줄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어요. 장황히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마음인지 알아채는 것, 슬플 때 같이 울어줄 수 있는 것, 진짜 힘들 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공감이죠. 그리고, 사랑을 하면 누군가가 '퍼주는 역할'을 담당하듯이 친구 사이도 은근 비슷한 것 같아요. 좋아하는 만큼 정을 주고,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 보답을 바라지 않고 줄 수 있는 마음이죠. 그리고 가끔은 친구가 원하는 '거리'를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하고요. 그 선을 지키는 것도 가끔은 중요한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저는 사람 만나는 데에 너무나 많은 제약을 두게 됐어요. 과연 일종의 방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첫인상과 다른 모습들을 목격하기도 했고, 어렸을 때의 친한 친구와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서 멀어지기도 했어요. 친구 사이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을 읽어보니, 새삼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가끔은 폐쇄적이기도 하고 편견도 있고 아집도 있었음을……. 지금으로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을 열어두는 것 같아요. 진정한 친구, 좋은 친구를 만나려고 강박적으로 매달리기보다도, 먼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 할 것 같아요.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자기계발/ 아우름 시리즈

소장중인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아임 온 유어 사이드, 오~ 웬 타임즈 갯 러프" (I`m on your side, oh when times get rough)

내가 너의 편에 설게. 언제? 시절이 거칠어질 때, 고난이 왔을 때.

시절이 좋을 때, 시절이 스위트할 때 곁에 있는 건 친구가 아니에요. 그건 그냥 멤버십membership이죠. 프렌드십freindship은 그것과는 달라요.

언젠가 `인생 항해에 필요한 일곱 척의 배`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리더십, 프렌드십, 파트너십, 오너십, 멤버십, 스킨십, 스포츠맨십이 바로 그 일곱 척의 배라고 말이지요. 말장난 같지만, 우리가 타야할 그 배들 중 저는 프렌드십이란 배를 가장 좋아합니다.

프렌드십이란 말없이 그 사람의 편이 되어 주는 것이죠. 이 때 편이란 이편저편 편 가르기 할 때의 편이 아니라, 그의 옆자리가 비어 있을 때, 고난이 왔을 때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22p)

진심이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심이 칼과 비슷합니다. 칼집에서 나오는 순간 자를 수도 있고 찌를 수도 있습니다. 깎을 수도 있지만 벨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진심을 사용할 때는 지혜와 용기와 절제가 필요합니다. 칼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진심이라도 내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솔직함과 정직함은 차이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정직함이지요. 하지만 솔직함은 내 마음속의 판단이기 때문에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솔직함을 드러낼 때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67p)

친구를 반드시 많이 가지려 할 필요도 없고, 친구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집착할 필요도 없습니다. 친구는 고정불변이 아닙니다. 세월 따라 상황 따라 친구도 자연스럽게 모였다 흩어집니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친구라 자처하던 많은 사람이 떠나갑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힘들 때 내 손을 잡아 주는 사람, 세월이 누가 친구인지를 가려 주는 것이지요.

왔다가 떠나고 그중에 남고, 나중에 어쩌다 다시 만나고, 그럼 또 반갑고, 그게 자연스러운 인생의 모습입니다.

가장 슬픈 인생은 내가 준 것에 집착하며 서운해하는 인생입니다. 내가 이만큼 해줬는데, 내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하면서 원망하는 인생은 어리석습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상대방은 그렇게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기브 앤 테이크 give and take` 의 공식에 매달리는 한 진실한 친구를 갖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랑의 기술은 한마디로 주는 기술이지요. 주는 게 기쁠 때 우리는 진짜 친구입니다. (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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