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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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보다 민주주의 이슈가 불거진 요즘. 어둠과 죽음, 폭력은 조금이나마 걷혀졌으나, 권력과 법과 힘 있는 자들의 농간들은 쉬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불과 몇 달 전, 특검 한가운데에 울려 퍼졌던 억울한 외침을 기억해본다.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아주 당당하게 말하던 최순실. 그 모습을 보고 분노를 담아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이 있었고, 혀를 끌끌 차며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편에, 40년 전 재판정 앞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한 여자를 추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독재정권 물러가라! 민주주의 쟁취하자!" 교도관이 영초언니의 입을 틀어막았고, 언니는 거세게 발버둥 쳤다. 우리에게 다가오려는 가족들은 교도관과 법원 경비들에게 차단당했고, 가족들은 격렬하게 항의하고 소리치며 몸부림쳤다. 아비규환, 아수라장이었다. (199쪽)

 

 너무도 다른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어감과, 두 상황과 두 시대의 간극이 이 책을 나오게 했다. <오마이뉴스> 편집장이자 제주 올레길로 잘 알려져 있는 언론인 서명숙은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천영초'라는 이름을 세상에 더 많이 알리기로 결심했다. 제주에서 태어나 박정희 키드로 자랐던 저자가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감옥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중심에는 좋은 세상을 위해 누구보다 열렬히 싸웠던 영초언니가 있었다. '담배를 가르쳐준 나쁜 언니'이자 부조리한 일이라면 기꺼이 나섰던 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환멸을 받고, 불운의 사고로 어린아이가 되기까지의 일들을 저자 서명숙의 시선으로 담았다.

 

 혹독했던 유신정권 아래, 거리에선 최루탄과 곤봉, 발길질이 난무하고, 사람들은 독재에 신음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런 사회에서 평안하게 대학생활을 하는 것은 허울뿐임을 알고 있었다. 저자는 대학에서 '행동하는 양심' 영초언니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알아갔다.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들을 영초언니의 집에서 읽고, 전태일의 가장 큰 소망은 '자신들을 도와줄 법을 아는, 대학을 나온 친구(51쪽)'였다는 사실을 듣고 야학에 참여하기도 했다. 몇백 장에 이르는 유인물을 직접 등사하여 세상에 뿌리고 시위를 했다. 영초언니에게 붙은 감시를 통해 '산천초목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학교는 보란 듯이 제적 처리를 했다.

 

 특히, 책 속에서 가장 마음을 흔들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가라열'이라는 고려대 여학생들의 모임이었다. 지독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여성들은 몰매를 맞는 시대였다. 영초언니는 <동일방직 똥물 사건>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의논을 통해 만들어진 이 모임에선 여성들이 모여 자유롭게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었다. 열정적이며 진취적인 청춘이었다.

 

'영초언니'라는 제목 속에는 그때 거리에 나갔던 많은 사람들의 이름까지 담겨 있다. 연약한 외모로 '짭새'들의 아지트를 박살냈던 혜자언니, "여자들끼리 술먹고 담배를 피우는 주제에(123쪽)"라는 옆테이블 남자에게 막걸리를 부은 순자라는 이름과, 엄주웅, 문화 형, 그리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과 노동자들…… 그 그리운 이름들. 영화 <택시운전사>의 화면 속 스쳐 지나간 모든 사람들의 희생과 도움이 값진 것이었던 것처럼, <영초언니>를 통해 본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도 무척이나 눈부시다. 기억해야겠다. 감사한 마음으로,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53쪽,
"유치환의 시 「깃발」처럼 명숙이 네가 남겨두고 간 빨래를 깨끗이 빨아서 마당 빨랫줄에 가지런히 널어놓고 보니 네가 너무나 보고 싶다. 네 빨래 펄럭이고 내 그리움도 펄럭이고……"
아마 연인에게서도 이런 애틋한 엽서를 받긴 힘들 것이다.
뿌리 뽑힌 채 이식된 것 같은 낯설고 삭막한 서울에서의 삶, 철저하게 ‘기브 앤 테이크‘로 일관하는 듯한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 붙일 곳 없어 서성대던 나였다. 그런 내게 언니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오랜만에 햇볕을 쪼인 화초처럼 쑥쑥 자랐다.

79쪽,
"한꺼번에 다 잡혀들어가는 게 능사는 아니야. 남아서 뒷바라지할 사람도 필요하고, 다음에 데모할 사람도 있어야지. 차례차례……"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인지, 도망치는 자의 비겁한 자기변호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눈앞에서 남학생들이 마치 비료포대처럼 질질 끌려가고, 팔이 뒤로 꺾인 채 닭장차에 집어던져지는 걸 보면서도 어찌 이리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104쪽,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엄주웅이 사랑한 대상은 ‘서명숙‘이라는 특정한 여학생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암울한 시대에 불의한 국가권력과 감히 맞장을 뜨려는 자가 끊어내야 하는, 포기해야 하는,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그 모든 그리운 것들의 한 조각이었는지도 모른다.

256쪽,
모두들 돌아가고 난 뒤 그제서야 아이를 꽉 끌어안으니 갑갑한지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끄으윽 엉엉……" 둑이 터지듯 참았던 울음이 쏟아져내렸다. 그 공포스럽던 순간이 이렇게 무탈하게 지나가다니. 허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다시는 절대로 영초언니와 엮이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그 한낮의 해프닝을 계기로 나는 나 자신을 더욱더 소시민적인 삶 안에 가둬놓았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그날까지 더 가열하게 싸우겠노라‘고 구치소 앞에서 선언했듯이 가파른 투쟁의 길로 걸어들어가는 영초언니와는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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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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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그대로 엮어 만든 책들은 특별한 구성이나 미사여구 없이도 마음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나와는 관계없는 시대와, 사람들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 우체통에서 방금 편지를 꺼내와 읽는 것처럼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왜일까. 오랜만에 만나본 편지글 형식의 책 『채링크로스 84번지』에도 눈에 띌만한 독특한 문장이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는 없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이나 책을 주문하는 요청의 편지가 다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리듬으로 주고받은 편지들이다. 그런데도 이 책이 출간된 후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남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의 가난한 작가 '헬렌 한프'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 먼 바다를 건너 영국의 채링크로스 헌책방에 편지를 보낸다. 작가의 요구는 고집스럽다. 판본과 장정,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까다롭게 책을 고른다. 채링크로스 가에 위치한 마크스 서점은 이 까다로운 고객의 요구에 친절히 응답하고, 이들은 곧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선물을 주고받는 친구가 된다. 처음 편지를 나눴던 담당자 '프랭크' 뿐만 아니라, 서점 동료, 이웃집 어르신, 프랭크의 가족들까지 모두 친구가 된다. 바다 건너 먼 거리를 오가는 편지 속에 진득한 우정이 깃든다.

 


한 장의 편지 속에 고스란히 담긴 '마음'은 책을 읽는 독자를 흐뭇하게 한다. 게다가 첫 번째 편지와 마지막 편지에 찍힌 '날짜'를 보면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1949년부터 1969년. 무려 20년에 걸쳐 편지를 나눈 그들이다. 또한, 가장 궁핍한 시대에도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일상을 보내면서, 가끔가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구해달라는 책을 아직 찾지 못했냐는 장난스러운 핀잔도, 짓궂은 농담도, 편지 속에 수두룩한 책의 제목들도 (물론 다 알지 못하지만) 남다른 재밋거리다. 무엇보다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있겠다.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사실 이제는 시대가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편지의 아날로그 감성을 되찾기엔 너무도 편리한 것들이 많이 나왔고, 우리는 편리함에 이미 너무 익숙해졌다. 일일이 한 자 한 자 마음을 다해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 발송하는 건 자주 하기엔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아주 작고 사소한 핑계를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읽은 책을 이웃들에게 보내면서 작은 쪽지 하나라도 적어보고, 일부러 인사 한번 더 해보고, 고마움을 전해보고. 비록 20년간의 편지에는 비할 바 못되겠지만 따뜻한 마음이라면 된 것이다.

 

 

50쪽,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에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

112쪽,
임대료에 적당한 가격 같은 건 없어요. 그리고 가만히 적당한 가격으로 있어주지도 않고요 - 광고에 뭐라고 떠들던 간에 말이죠. 하긴 이제는 광고라고도 할 수 없죠. 그냥 장삿속이죠.
저는 코앞에서 영어가 겁탈당하는 것을 목격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미니버 치비가 그랬듯이, 저는 너무 늦게 태어난 거예요.

131쪽,
"당신과, 당신의 그 오래된 영국 책들이란!"
어떤지 아시겠지요. 프랭키? 살아 있는 사람 중 저를 이해하는 사람은 당신뿐이랍니다.

145쪽,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대로가 나을지도. 너무나 긴 세월 꿈꿔온 여행이죠. 단지 그곳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영국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요. 오래 전에 아는 사람이 그랬어요. 사람들은 자기네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러 영국에 간다고. 제가, 나는 영국 문학 속의 영국을 찾으러 영국에 가련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더군요. "그렇다면 거기 있어요."
어쩌면 그럴 테고, 또 어쩌면 아닐 테죠. 주위를 둘러보니 한가지만큼은 분명해요. 여기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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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누이
싱고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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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하얀 공백을 무서워할 때가 있었다. 글자가 빽빽하게 들어찬 책들은 쉽게 읽어내리면서도 빈 공간에 생각을 꽉꽉 채워야 할 것 같은 시집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해석의 부담감은 내가 '시'에 접근하는 것을 늘 어렵게 했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 썼고 왜 이렇게 제멋대로 흘러가는지, 왜 갑자기 이런 단어가 튀어나왔으며 아름답다가도 슬픈지 해석해보려 할수록 시는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부턴 일부러 편안하게 시를 읽어보았다. 소설처럼, 에세이처럼, 그저 흘러가는 얘기처럼 자연스럽게.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내 상황과 기분에 따라 마음에 쏘옥 담겨 깊이 읽어지는 시들이 있었다. 물론 한도 끝도 없이 불친절한 시들도 있고 그것도 그들만의 매력이 있겠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시가 다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


요즘엔 특히 시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원래도 시 에세이, 시화집, 시론집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이 출간되어 있었지만, 종이책에 국한하지 않고 시대에 맞춰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나와 비슷하게, 시라는 장르에 부담감을 가졌던 독자들을 위한 소중한 가이드다. 그중 『시詩누이』 는 듣도 보도 못한 시 웹툰이다. 시와 만화의 조합이라, 독특하고 새롭다.


"시라는 장르가 너무 권위적이고 장벽이 높아졌어요.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시집 산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시집을 읽는 걸 별종이라고 생각하거나 마니악한 취미라고만 생각하지, 시집이 소비재가 될 수 있다는 차원까지 안 가더라고요. 문학이 소수를 위한 향유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하게 누리는 것도 문학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결과물이 어떤지는 각각 평가가 있겠죠." (작가 인터뷰 중에서)


 <싱고,라고 불렀다>라는 시집을 쓴 시인 신미나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말을 붙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편안하게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인은 이런 웹툰을 구상했다고 한다. '싱고'라는 이름의 작가 캐릭터와,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반려묘 '이응옹'이 함께 만화 속에 등장한다. 다분히 일상적인 고민들과 추억들을 담았고 가끔은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시인은 함께 읽기 좋은 시를 에피소드의 끝에 소개한다. 언뜻 보기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구성과 연결이지만, 털어놓은 생각들이 그저 시인만의 것은 아니어서.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것들과 퍽 다르지 않아 이 만화는 시인의 바람대로 아주 깊게- 읽힌다.


왠지 모를 막막함을 주듯 툭- 던져진 시집을 읽기 전에 워밍업으로 읽으면 참 좋을 것이다. 시인이 조심스레 털어놓은 생각을 발판 삼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 시에 가까이 다가가다 보면, 어느새 시에 대한 두려움이 떨쳐져 마음에 드는 시집을 집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 연결 속에서 좋은 시를 함께 읽기를 바라는 시인의 다정함이 느껴진다는 게 특별하다. 기분 좋은 책이다.



 

- 마음이란 게 하나의 색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다른 색을 보려 하지 않는다 / 한 사람의 마음 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가야 /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색을 볼 수 있을까

- 다른 이와 주파수를 맞추며 사는 건 쉽지 않다 / 주는 이는 선물이라 생각하지만 / 받는 사람은 부담스러울 때 / 친해지고 싶어서 건넨 농담이 / 지나고 보면 무례했다 싶을 때 / 적정선을 넘으면 ‘뚜뚜뚜‘ 울리면서 내 감정의 컨디션을 알려주는 센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언제부터였을까요 / 타인의 진정성에 추를 달아 얼마나 묵직한지 재보고 남들은 어떤 가면을 썼는지 의심하는 일로 감정을 낭비했던 날이 /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세련되게 감추는 거라고 믿게 된 것이

- 위로도 성급하면 체하게 된다 / 마음에 수분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게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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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쏜살 문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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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보물섬』 이라는 소설로 잘 알려져 있는 소설가 '스티븐슨'에겐 작가의 행복한 명성만 있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던 그는 마흔넷으로 요절하기까지 늘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끈질기게 작품을 골몰하고 집필하였다. 활동적인 삶을 갈망하던 그는 많은 곳을 여행하고 뜨거운 삶을 이어나갔다. 그래서였을까. 국내 첫 번역된 그의 에세이집에선 행복과 죽음에 관한 언급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의 삶과 연결해 생각하면 책에 등장하는 행복과 죽음의 상반된 이미지의 연결고리를 파악할 수 있다.

 

'젊은이들을 위하여 Virginibus Puerisque'라는 책의 원제도, 인생의 '후배'들을 염려하고 행복의 관해 전하는 작가의 말이 왠지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책에는 표제작인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을 비롯하여, 다양한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진정한 행복을 찾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행복을 위한 삶과 죽음, 청춘과 노년, 사랑과 결혼, 여행의 맛,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포함된다. 철학적 사유와 고뇌가 담긴 글은 그 길이가 아무리 짧다고 하더라도 읽기 쉽지는 않으나, 다양한 은유적 표현과 강렬하고 매력적인 스티븐슨의 문체는 소중한 글들을 깊이 음미하게 한다.

 

그가 전하는 행복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게으름'인데, (예상했을지 모르나) 이는 아무것도 안 하며 빈둥대는 개념이 아니다. 지나치게 근면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지식보다는 지혜를, 소유보단 진정 원하는 것을, 극도의 분주함보다는 여유로움을, 지배계층이 만들어낸 시스템을 벗어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라는 이야기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젊은이들에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나 젊은이의 패기와 용기가 맞붙어 발휘되는 것을 상상하면 그리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을 보고 "그때 용기가 더 있었더라면"이라는 후회 섞인 말로 잠깐 지난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금 늦었다고 아쉬움에만 잠겨 있는 것은 작가의 바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혜와 지성을 찾고, 고정된 일상과 사회에서 벗어나 게으른 행복을 찾는 것. 이 작은 책 속에 꼭꼭 담긴 작가의 마음이 내게 전해준 용기에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는 바닥에 물이 새는 배를 타고 거칠고 위험한 바다를 항해한다. 해군의 구슬픈 옛 노래에서 한 구절을 따오면, 우리는 인어의 노래를 들었고 마른 땅을 결코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늙거나 젊거나 우리 모두 마지막 유람중이다. 담배 한 대를 가진 선원이 있다면 출발하기 전에 부디 한 모금씩 돌려 피우기로 하자!" (50쪽, 심술궂은 노년과 청춘)

 

 

 

 

23쪽, 엘도라도
삶이 행복할 때 우리는 하나가 다른 하나로 끝없이 이어지는 상승 음계에서 살아간다. 앞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우리는 작은 행성에서 보잘것없는 일에 빠져 살아가고 짧은 기간 너머로 영속하지 못하더라도, 별처럼 도달할 수 없는 희망을 품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희망의 시간을 늘려 가게 되어 있다.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시작하는가의 문제이지 어떻게 끝내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의 문제이지 무엇을 소유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78쪽, 사랑과 결혼의 미로
"아, 잠시만 죽어 있을 수 있다면!" 이라는 톰 소여의 열망을 누구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그보다는 "해적질을 계속하는 한은 자신의 행동이 절도죄라는 오명을 다시 쓰지 않으리라."라는 두 해적의 결심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소년 시절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소년기는 끝났고 (글쎄, 언제 끝났을까?), 스무 살에 끝나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스물다섯에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서른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아직도 그 목가적 시기의 한가운데 있을지 모른다."

145쪽, 도보 여행
우리는 너무 바쁘고, 실현해야 할 먼 장래의 계획이 너무 많고, 상상의 성에 착수하여 자갈땅 위에 견고하고 살 만한 저택을 세워야 하므로, 생각의 땅과 허영의 언덕으로 유람을 떠날 시간이 없다. 깍지를 끼고 밤새 난로 앞에 앉아 있으면 실로 시간이 달라진다. 그 시간을 보내며 아무 불만 없이 생각에 잠겨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의 세계가 달라진다

195쪽, 가스등을 위한 간청
이 별이 그것의 원형만큼 안정적이지 않고 그만큼 밝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 광채는 최고의 밀랍 양초만큼 우아하지 않다. 그러나 가스등은 더 가까이 있으므로 목성보다 실용적이고 유용하다. 또한 가스등이 창공에서 필요에 따라 하나씩 켜지는 별처럼 고유하게 자발적으로 빛을 발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스등을 켜는 점등원은 매일 저녁 부리나케 움직였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렸다. 이렇게 천체의 정확성을 흉내 내려는 사람의 모습은 근사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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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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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데자뷰처럼 떠오른 장면은 수년 전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었다. 책에 담긴 감정도, 내가 책을 바라보는 감정도 유사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라는 2년 동안, 내게 온 변화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도 지금도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운 좋은 일이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기에 언젠가 내게 찾아올 슬픔에 대한 두려움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읽고 있던 책은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였다. 작가가 어머니를 잃고 난 뒤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이다. 사람과 동물이라는 대상의 차이가 있지만, 형식을 포함하여 책에 담긴 마음, 슬픔이라는 감정 등 많은 것이 겹쳐있다.

 

"그녀의 죽음 이후, 그 무언가를 새롭게 "꾸미고 만들어가는 일"이 싫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외다. 그건 왜일까? 문학, 그것은 내게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다. (마망이 그랬던 것처럼). (<애도일기> 235쪽)"

 

"방에서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녀석이 나를 방해했으면, 짐승들 특유의 그 거절 못 할 수법으로 산책을 하자고 보챘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녀석이 살아 있다면 이렇게 글을 쓸 필요도 없을 것이고 - 글쓰기는 삶과는 상반되는 것이므로 - 따라서 방해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글을 채워나갈 종잇장조차 내 앞에 두지 않을 테니까." (<어느 개의 죽음> 65쪽)

 

다른 책 이야기를 이리 길게 하는 것을 용서해주길 바란다. 내가 <애도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슬픔의 감정이 어떤 대상에 따라 섣불리 판단될 수 없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누구는 가족을 죽어서 슬퍼하고, 누구는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어 슬퍼한다. 대상은 중요치 않다. 소중한 존재 - 그것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더 나아가 식물이든 무엇이든 - 를 잃어버린 사람의 감정은 모두가 똑같다. 결핍을 마주한 두 작가가 소중한 존재를 애도하고, 자신의 슬픔을 어루만질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글쓰기였다.

 

 작가 '장 그르니에'는 개의 죽음을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마음은 말라비틀어진 상태로 접어들고 항시 우울함이 감돌지만, 여전히 감미롭고 충만한 세상을 본다. 고통과 절망, 죽음들과 같은 어두운 단어들과, 행복한 삶과 관계된 아름다운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충돌한다. 작가 "자신 내부의 두 존재가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51쪽)"이다. 결핍을 견디기 위해 그는 종이와 펜을 들어 그 모든 사유에 대하여 기록한다.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삶을 생각할 수 있다고 하던가. 작가는 오랜 세월 함께 했던 '타이오'라는 개의 행동을 추억하기도 하고, 위선적인 인간들과는 다른 동물들의 특성을 그리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하는 자연의 위대함, 그 속의 수많은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한다. 염세적인 시선도 드러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가 글을 쓴 상황 속에서 슬픔을 부정할 수 없었을 뿐이다.

 

 죽음으로 시작된 글쓰기였기에, 텍스트를 넘은 엄청난 우울함이 독자인 나에게도 전달이 된다. 그러나 사랑으로 가득 찬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위안이 되었다. "사랑하자. 위선과 가식과 자만이 없는 사랑을 하자."라고 말하는 듯한 작가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면서 책을 덮는다. 삶을, 삶의 소중한 존재들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또는 사랑할 마음을 지닌 대상을 사랑하자. 보잘 것 없는 설득력을 이용하려 들지 말고, 우리가 보다 나은 존재라고 믿지도 말자.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놀라운 은총을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우리들을 고립시키는 커튼을 걷고 누군가 우리에게 손을 뻗는다. 서둘러 그 손을 붙잡고 입을 맞추자. 만일 그 손을 거두어들인다면 당신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오직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9쪽,
두렵지 않은 수호신의 가호를 빌듯이, 밤에 잠을 청할 때면 나는 녀석을 떠올렸다. 녀석은 그 가혹함과 광대함을 두려워하던 대자연에 내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중재자였던 것이다. 녀석을 통해서 나는 마음을 달래주는 자연의 속성들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침묵, 잠, 걱정도 후회도 없는 만족, 언제나 눈앞에 펼쳐져 세상을 감싸고 있는 햇빛, 발 아래에서 우연히 찾아낸 샘과 같은 것들 말이다. 녀석을 본보기로 삼음으로써 나는 진정으로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다.

58쪽,
지금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모두 공허할 따름이다. 이를테면 나는 말라비틀어진 상태에 놓여 있다. 내게 머무르던 감정의 거대한 물결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나를 엄습했던 그 물결 속에 언제까지나 잠겨 있으리라 믿었는데……. 그 물결은 언제고 곧 되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 메마름을 즐기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것은 행복이 아니라 결핍이기 때문이다.

63쪽,
6월 1일이다. 새들이 지저귀고, 멀리 암탉이 운다.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수탉이 울기 시작한다.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실선으로 그려진 세상의 모습 너머, 점선으로 이루어진 형상들을 본다. 내가 본의 아니게 그것들에 눈길을 고정하게 되면, 그 형상들은 실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로 불어나고, 마침내 실선으로 그려진 세상의 모습은 사라지고 만다.


84쪽,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들, 가축들, 우리의 부모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생존하는 동안 육신의 여러 부분들이 우리에게서 벗어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다.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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