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드 노아이유 시선 : 사랑 사랑 뱅뱅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2
안나 드 노아이유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사랑 사랑 뱅뱅』 안나 드 노아이유 / 아티초크

한낮에 작렬하는 태양 같은 '사랑의 시'​

 

 

 

 

  책을 읽고 나서

 

 '안나 드 노아이유'라는 이름을 책에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본 것 같은데 (아니면 아이유라는 이름의 착각일 수도), 현재 인터넷 서점을 기준으로 출간된 책은 '아티초크'의 시선 『사랑 사랑 뱅뱅』이 전부다. 그러나 내가 만약 이 빈티지 시선을 번호별로 모으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사지 않았을 것이다. 왠지 모를 여성적인 향기를 폴폴 풍기고 있는 표지와 '사랑의 시'라는 카피, 그리고 첫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리즈를 모으고 있던 덕분에 '다행히'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했던 큰 착각을 바꿔놓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사랑의 시'가 단순히 여성적이거나 꽃처럼 아름답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신파적인 느낌일 거로 생각했던 나의 착각은, 아마도 작가인 '노아이유' 백작 부인에 대한 편견이었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이런 시를 썼겠더라는 은연중의 암시, 더군다나 나는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편견은 작가인 '노아이유'가 가장 싫어했던 것이겠지. 그는 수많은 사랑의 시를 남기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무수한 가슴>으로 수상자로 지명이 되었으나, 전원 남성으로 이루어진 심사위원으로 인해 수상 탈락을 하게 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는 '페미나 상'을 창설했다. 12인의 여성작가로 구성된 프랑스의 문학상, 이름은 Femina 여성적인 이름을 달았으나 남성에게도 수상 되는 문학상이다. 진지한 문학을 주류로 했던 당시 문단에서, 여성의 본질에 주목한 노아이유의 시는 하찮은 것으로 취급받았지만, 꿋꿋이 자신만의 사랑 노래를 만들어나간 그의 배짱이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허무다, 우주는 허무다 / 마음과 감각으로 그 허무를 감지한 사람에게 / 그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다 / 파란 많은 위험한 인생 / 음산하고 게걸스러운 땅속의 영원한 잠// 허무다, 어디를 보아도 허무하고 우스꽝스럽다 / 사방에 가슴을 모독하는 것들뿐이다 / 운명의 신은 인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 방패가 없는 인간의 고결함에 창을 던진다 // 그 모든 끔찍한 고통 속 / 도취적 사랑의 원천은 너밖에 없다 / 벨벳 가면을 쓴 작은 신 / 닳고 닳았으면서 순수한 너, 달고도 쓴 너 / 잔인하면서 온화한 위로자 / 그 이름 사랑이여. (64쪽, CLXXV) 

 

 사랑은 어쩌면 대단히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도, 대단히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 정열적이며 격렬한 광란의 그 감정을, 노아이유는 끈질기게 자신의 시에서 형상화해내고 있다. 그의 사랑에의 도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허무감을 반복하는 그의 입을 통해 그 강렬함은 더욱더 커 보이게 만든다. 노아이유의 '사랑의 시'는 속삭임이 아니라 울부짖는 절규의 느낌이다. 그의 감정에 공감하며 읽어나가다가 터져 오르는 그의 감정에 북받친다. 사랑, 나와 너, 존재에의 자각, 허무,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시는 상상했던 『사랑 사랑 뱅뱅』의 이미지와 달라서 뜻밖의 큰 충격을 준다. 한낮에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과도 같은 '안나 드 노아이유'의 시선 『사랑 사랑 뱅뱅』에서처럼, '세상이 우리 없이는 안 돌아갈'것 같은 크나큰 도취의 사랑은 언젠가 만날 수는 있을까?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을 이제 두 권째 보고 있는데, 또다시 비슷한 느낌의 리뷰를 남기고 있다. 첫 이미지와 너무나 달라서, 착각을 뒤집어 놓았다는 반성의 리뷰랄까. 이게 시든, 소설이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학이라는 점은 나에게 더없이 반가운 일이고.

 

  

 

 

 

Written by. 리니

프랑스 시/사랑의 시/ 국내 초역/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2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새들은 훨훨 완벽한 자태로 날아오르고 / 푸르른 하늘에 만물이 / 빨려 들어가는 듯하던 그 시절 / 우리는 상상의 날개를 펴 떨리는 손으로 / 향기를, 공기를, 수평선을, 파도를 잡아보았지 // 우리는 그때 고독한 승리자였는데 / 가슴속 깊은 곳에 흐르는 강물을 느끼고 / 정상에서 새벽을 마시고 숭고한 기분을 주는 / 말할 수 없이 성스러운 느낌을 맛보았는데 / 욕망은 담대한 독수리처럼 / 은빛 둥근 선을 그리며 태양을 향했지! / 우리는 사색에 잠겼지 / 세상이 우리 없이는 안 돌아갈 줄 알았는데 (19쪽, 눈부심)

행복과 권태는 / 밤을 여행하는 두 줄기 강물처럼 / 꿈꾸며 무모하게 흘러가 / 쓰라린 인생의 바다에서 길을 잃는다 //

마음이 아플 때나 / 사랑을 할 때는 왜 / 언제나 그 어느 쪽도 / 일시적이 아닌 것처럼 보일까 (59쪽, CXIX)


신중하고 견고하게 지어진 벽이 /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 갈라 놓는다. 인간의 행과 불행은 / 우리의 은신처에 이르지 못한다. / 아! 죽음이 빨리 왔으면, / 너의 무릎에 머리를 비비대면서 / 나는 극단적이고 신속한 운명을 애타게 기다린다. / 나의 사랑은 네가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큰데! / 나의 도취는 무덤처럼 / 우리 둘을 한데 넣고 밀봉한다. / 그 무시무시한 순간은 / 너무나 정염에 불타고 아름다워 / 창문이 새벽빛으로 서서히 물들며 잠을 깨는 순간 / 나는 존재하기를 멈추는 듯하다. (69쪽, 나는 깨어 있을 때 너를 금한다.)


그것은 있었지만 영원 속으로 사라졌고 /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 그것을 알기에 / 상실과 갈망의 우주인 나는 / 나에게 지친다 //

너의 부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 나는 헛되이 / 망각, 희망, 무의식을 추구한다. (79쪽,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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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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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애도일기』 롤랑 바르트 / 이순

슬픔이라 하기에도 모자란

 

 

 

 

  책을 읽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는 슬픔이란 어떠할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 감정은 슬픔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라며, 세상의 수많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일 것 같다. 물론, 나는 그것을 아직 '상상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놓여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서 죽음으로 떠난 적도 없거니와, 나와 직접 관계하던 이가 떠나간 적도 없다. 그리고 이전의 수많은 죽음 - 편찮으셔서 돌아가셨다는 외할아버지의 경우- 도 내가 아주 어릴 때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러한 점에서는 행운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가는 두려움은 너무나 크다. 이런 두려움은 절대 누구도 적응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롤랑의 마망(엄마)이 그의 곁에서 떠나간 뒤 날짜와 함께 써 내려간 이 기록은 어떤 수정도 거치지 않은 아주 날 것의 글로 보인다. 제목에 붙여진 '일기'처럼 각각의 순간마다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들을 그대로 적어낸 글은 너무나 솔직해서 애달프다. 이 책, 『애도일기』를 중심으로, 롤랑은 다른 작품들에 애도와 스스로에 대한 위안을 쏟으며 글쓰기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에게 문학은, 책 속에서도 언급했듯,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관한 한, 어떤 효과가 있다고 깊게 믿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가장 순수하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치료제라는 것이다. 헤세는 정신적 고통을 위해 수많은 소설에 자신을 투영하며 글을 썼고, 하루키는 상실의 아픔을 자신의 펜촉에 그대로 녹여놓았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의 자전적 작품에서도 이러한 것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롤랑은, 이 글쓰기로부터 치유를 얻을 수 있었을까 물어본다면, 확실히 대답할 수가 없다. 자신을 파괴하는 모든 것 중에서도,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과 그것을 잊고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어떤 일보다 절절하고 애달픈 것이기 때문이다. (아, 갑자기 세월호가 떠오른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 

 

 슬픔의 정도에 대하여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크나큰 슬픔을 잊으려는 몸부림이 어떤 의미라고 규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풀어낸, 롤랑을 괴롭히던 생각들 - 좌절감, 허탈감, 무미건조함, 우울함, 그리고 마망의 죽음 후 자신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한 회의감 - 은 결국 나에게 '사랑'이란 감정으로 치환되어 다가왔다. "내 슬픔은 사랑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그리고 생생하고 집요한 '애도'의 기록이 결국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혹은, 그토록 간절한 사랑의 절규를 보는 이 마음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나의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리니

영미 에세이/ 애도 시/ 삶과 죽음, 그리고 슬픔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20쪽)

…… 그녀는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하게 파괴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 이 사실은 무얼 말하는 걸까. 그건 내가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 미친 것처럼, 정신이 다 나가버릴 정도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건, 그 불안으로부터 한 발짝도 비켜날 수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이리라. (31쪽)

나는 이제 가는 곳마다, 카페에서나, 거리에서나,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음이라는 시선으로, 그러니까 그들 모두를 죽어야 하는 존재들로 바라본다. - 그런데 그 사실만큼이나 분명하게 나는 또한 알고 있다, 그들이 그 사실을 결코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 (62쪽)

내가 너무도 사랑했었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죽고 또 그들보다 오래 살았던 이들마저 죽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거라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죽어서도 계속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내가 살았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마망에 대한 기억이 나와 그녀를 알았던 이들이 죽은 뒤에도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내가 죽은 뒤에도 기억되어 차갑고도 위선적인 역사의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남게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나 혼자서만 "기념비"가 되고 싶지는 않다. (204쪽)


그녀의 죽음 이후, 그 무언가를 새롭게 "꾸미고 만들어가는 일"이 싫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외다. 그건 왜일까? 문학, 그것은 내게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다. (마망이 그랬던 것처럼).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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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라종일.김현진 지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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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소한 구원』 라종일, 김현진 / 알마

답 없는 청춘을 위한 가장 소중한 구원

 

 

 

 

  책을 읽고 나서

 간간이 친구와 얘기를 나눈다. "전화해도 돼?" 혹은 "나 고민이 있어"라는 말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대개 고민 상담이다. 청춘, 그리고 사회 초년생이라는 경계 안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고민을 털어놓고, 우리는 서로 될 수 있는 한 좋은 방법으로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조언을 남긴다. 하지만 역시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비슷한 출발선에서 달려, 비슷한 거리에 머물러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원할 것 같은' 답을 내어줄 수밖에 없고, 선택 또한 자신의 몫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아직 선택의 끝을, 결과를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는 바라던 정도의 위안을 얻고, 다시 집에 돌아가 같은 고민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이럴 땐, 제대로 인생을 경험해본 누군가의 말 한마디라도 있었음 좋겠다. 답을 내려주진 않더라도, 약간의 힌트라도 누가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 '가장 사소한 구원'이라도 필요로 하는 애송이 같은 청춘에게 말이다.

꽤 여러 번이나 답답함을 맛보고 나니, 속마음을 진심으로 내보일 '인생 선배'가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모든 것을 터놓을 만큼 가깝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직접 대면해서도 좋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서신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여기, 나의 부러움을 한가득 담은 책 한 권이 있다.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가장 사소한 구원』이다.

궁지에 몰린 쥐가 도망칠 틈새를 찾아내듯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구원에 매달렸다. 그것이 선생님과의 서신 교환이었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선생님은 고통을 활자로 옮기라며 단호하게 이야기하셨다. "이야기된 고통은 더이상 고통이 아니다. 당신이 그 고통들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당신은 비로소 낫게 될 것이다." (7쪽)

 돈도 빽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보내는 ‘은밀한 연서’는 차근차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라종일 교수에게 닿는다. 자기 비하와 한탄이 가득한 청춘의 편지에 답하는 노교수의 회신에는 "기다렸다."라는 따스한 말과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온 조언이 함께한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행복에 대해,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청춘이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 꼭 갖춰야 하는 게 뭘까요?"라고 물으면, 스승은 "왜 어른이 되려고 합니까?"라고 다시 묻는다. 청춘이 "우리 사회 청년들의 곁길이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조언을 구하면, 스승은 "에덴의 낙원 이후에 세상이 자기에게 친절하리라는 기대를 하면 안 된다."라는 따끔한 말을 던져주는 것이다. 질문이 질문을 부르고, 당연하게 답이 나와 있을 것 같은 물음에 또 다른 의문이 생기는 이 스릴 있는 서신 교환은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현실과 맞물려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저는 늘 당신 편입니다"하고 모든 이야기를 마음을 다해 들어주고, 투정 섞인 신세 한탄에 내가 보지 못한 이면을 가르쳐주는 누군가가 못내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쯤, 편지의 수신자를 나에게로 돌려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나의 이야기'이기에 허공에 질문을 던져보고, 스승의 따뜻한 말들을 되짚어 읽어본다. '가장 사소한 구원'이라 이름 붙인 그들의 서신이 나에게 닿아 '가장 소중한 구원'이 될 때까지.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편지, 서간집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선생님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요즘 그렇게 할 수 있는 청년들이 몇이나 될까요. 오히려 사회가 요구하는 규칙을 온몸을 다해 준수한 다음, 그것을 자신의 선택이라 생각하고 자긍심을 가지면서 경쟁이 극도로 격화된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것이 젊은 세대의 생존법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주류 사회의 길에서 벗어난, 혹은 낙오되어버린 저 같은 사람은 그저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지만, 한때 그 안에 소속되어 있었던 사람으로서, 또 한사람의 (늙은?) 젊은이로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기 스스로 생각해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71쪽)

그런데 얼마 전 "우리나라의 앞날은 십 년 후 필리핀처럼 될 것이다."라는 글을 봤습니다. 지금처럼 자기계발로 역량을 높여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는 시대는 지금이 마지막이고, 결국 계급이 고착화될 것이라는 예상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도 이제 우리나라의 `계급`은 완전히 고착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교육 문제도 그렇고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이제 저물어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좀 천한 소리까지 동원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대학을 가느냐가 그 사람 인생 절반 정도는 결정해버리는 것 같아요. (120쪽)

우리가 어려운 일들은 잘 헤쳐나왔으니 앞으로도 잘될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앞으로 닥쳐오는 문제들은 어쩌면 이제까지 당면했던 문제들보다 결코 쉽지 않은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불합리한 장애 없이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어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공동의 공적인 사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사적인 존재에만 안주하지 말고 공적인 인간으로서 함께 참여하고 함께 노력할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140쪽)

제가 너무 낙관적인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낙관적이지도 않고 더구나 우리나라가 훌륭하다는 생각도 않습니다. 제가 진보이고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면에는 구석구석 어려운 일들이 도사리고 있겠지요. 그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비판적인 안목으로 날카롭게 바라보고, 그 내부의 부정적인 면을 파헤치는 것도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좋아지겠지요. 적어도 "부러울 것이 없다"든지 "아름다운 것만 보라"는 것보다는 좋은 일입니다. 단지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보다 보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것, 가족, 친구들, 자기가 사는 세상 등을 우선 귀하게 여기고 부족한 것을 고쳐 나가는게 좋아 보입니다. 항상 현실에 비판적인 안목을 유지하면서 개혁과 개선을 추구하는 것만큼이나 이미 이뤄놓은 것을 평가하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그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요.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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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웃었다 - 오늘, 편애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
장우철 글.사진 / 허밍버드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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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생각들  

 일단은 참 예쁜 책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이 빼곡한 책은 언제나 예쁘니까. 하지만 책을 열었을 때 살짝이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기장 형식의 사진과 글. 이런 배치를 보면 '자신만의 사소한 기록'을 책으로 뽑아낸 것에 대한 일종의 시샘과 함께, 약간 삐딱한 생각이 든다. "예쁘고 감각적인 책"이라는 것을 넘을 수 있을까? 글은 어떨까? 어차피 느낌이 좋아 읽기로 선택한 마당에, 쓸데없는 질문은 뒤로 한 채 열심히 읽어본다.

 

 

 어,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했던 것보다 느낌이 훨씬 좋다. 글밥이 적다고 생각했던 페이지는 예쁜 '시'가 정갈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거창하지 않게 적어낸 글인 것 같은데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마음에 푹 잠긴다. 그래, 어쩌면 2015년의 마지막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흔적과 흐름을 따르는 이 글이 더 좋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얼핏 보면 '잘 짜인, 그리고 잘 꾸며진' 일기장으로 보일지 모를 테지만, 이 책은 신기하게도 '시'로도 읽히고, 글밥이 적지만 절대 단숨에 읽을 수 없는 '사진집'으로도 읽히고, 매정하게 또 한 번 여행의 욕구를 자극하는 '여행 에세이'로도 읽힌다. 저자인 '장우철'에 대해서는 GQ Korea 에디터라는 것과 언젠가 언뜻 보았던 『여기와 거기』라는 책을 쓴 사람이라는 것만 아는데, 그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기록이 이렇게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다. 그의 글을 보고 있자면, 정말 묘하게 그가 편애하는 것들이 사뿐사뿐 다가와, 나도 '좋아서 웃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거창하지 않게 자신을 표현하는 문체도 마음에 들었다. 이 작가, 글 참 잘 쓰신다. (사심 가득)

 

 

 ​ 그의 진심이 담긴 글들을 쭉 읽고 나니, 순간순간을 담는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것들에 주목하는 건, 의도가 어쨌든 세심하게 순간과 인생을 돌아보는 행동이기에. 새삼스럽게도, 스쳐 지나가면 금세 잊힐 수밖에 없는 모든 것들을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잊어버릴 만큼 시간은 야속하니까) 꾸준하게, 그리고 꼼꼼히 담아내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게 바로, '일기를 쓰면 좋은 이유'와 같지 않을까. 

 

 

Written by. 리니

 

봄이라 말하려니

겨울에 나는 어울리는 값을 치렀던가?

막무가내 눈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 혹시 그 몫이었나?

공원을 나와 요쓰야 쪽으로 걸었다.

붕붕거리는 소음이 유난히도 봄처럼 들렸다. (39쪽)


향나무 아래 팥알만 한 열매가 지천이라 갸웃했더니, 향나무의 것이

아니라 팥배나무가 떨군 것이었다. 만져 보면 딱딱하다. 맛이 떫고

시큼해서 사람보다는 산새가 좋아하겠다. 그런가 하면 향나무는

한껏 제 몸을 구부려 회오리를 흉내 낸다. 팥배나무가 까르르 웃는다. (99쪽)

빵이란 무엇인가. 빵이란 대개 턱없이 부족한 맛의 요소를 엉뚱한 덩어리감으로 귀여운 척 만회하려는 모종의 시도, 혹은 그 덩어리 자체를 가리키는, 한국어 중에서는 제법 희귀한 발음을 지닌 말이다. 나는 빵같이 생겨 가지고 왜 빵을 싫어하느냐는 반박하기 힘든 핀잔도 듣지만, 빵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빵을 볼 때나 먹을 때나 똑같이 생각한다. 어디서 맛없는 빵만 먹었느냐, 맛있는 빵도 있다, 똘똘한 누군가는 끊임없이 설파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너나 드세요." 하며 고개를 쌩 돌리지는 않고, 주는 대로 받아먹긴 다 받아먹으면서도 `역시 빵은 이래`, 확신한다. 빵은 웃기는 짜장면도 아닌 그냥 빵이다. 가끔 좋아라 이 빵을 고를 때도 있지만, 빵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찌개가 좋다. (123쪽)

나는 코트를 도로 입는다.

혼자 산다는 건

이제라도 다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라서 나는

코트 주머니에 땅콩을 한 줌 넣는다.

아예 양파를 넣을까?

혼자서 그럴 수도 있다. (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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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탐구생활
김현진 지음 / 박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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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나서

 

 요즘엔 '폴 오스터'의 『겨울일기』라든지, '다니엘 페낙'의 『몸의 일기』라든지, 육체로 인생을 회고하는 책을 줄곧 사들이는 중인데, 이 책도 그 관심의 연장선으로 내게 들어왔다. '육체 탐구'라 하면 모든 오감을 총동원하여 어떤 일과, 사건과 때로는 찰나의 순간까지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육체 탐구'라는 단어와 깊게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초반의 강렬한 기억을 빼놓고서는. 오히려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쭉 나열한 에세이에 가깝다. 간혹 육체의 고통과 육체가 느끼는 사랑 같은 게 등장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육체 탐구'라는 말을 붙였느냐 하면은 말이지. 아마도 이 '김현진'이라는 에세이스트의 '글을 쓰는 방식'에 있는듯하다.

 

 

 『가장 사소한 구원』이라는 책에서 처음 만난 '에세이스트 김현진'은 당당하고 솔직하게 청춘을 대변하고 있었고 그 책의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약간의 친절함과 편지글의 대상이 대상이니만큼 약간의 공손함을 갖고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 그녀는 모든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거침없음을 넘어 다소 거친 듯한 어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육체파 에세이스트' 혹은 '육체파 칼럼니스트'라고 불린다. 몸으로 뛰고 실제로 겪어보며, 글을 쓰기 위하여 단식까지도 불사한다. 파업 현장에 뛰어들어 플랜카드를 들고 온몸으로 맞서기도 한다. (그것은 물론 글감 때문이기보다도, 그의 관심이 반은 들어가 있는 듯 보인다) 그렇게 발로 뛰고 얻은 글감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그만의 독특한 문장으로 재탄생한다. 녹즙을 배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도시 빈민, 자칭 타칭 미스김,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말 그대로 '음성지원'이 되는 듯 하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지만 왠지 머리를 땡땡, 하고 울리게 하는 외침 같다는 느낌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시체'가 등장하는 책의 시작은 못내 당혹스럽다. 너무도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초반에 느꼈던 당혹스러움은 뒤로 갈수록 조금씩 나아진다. 작가가 쓰는 글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고부터다! 툭툭 뱉는 말 속에서 느껴지는 위트,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동질감, 그래서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아픔과 슬픔. 온몸을 부딪치며 살아온 그의 일상이 힘들지라도, 그의 신념은 무겁게 버티면서 자본주의 사회 속의 비정함과 그 비정함을 너무도 당연하게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하고, 노동자들이 겪는 부정함을 그려낸다. 특히나 인상 깊은 것은 2008년 MB 정권의 시위를 <안티고네>에 비유하여 묘사한 장면과 자칭타칭 '미스김'의 일상을 3인칭으로 그려낸 장면들이다. 전자는 아프고 분노가 치밀며, 후자는 말그대로 '웃프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 아니 대다수가 보기에, 나는 30대 초반에 이미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기준으로 보면 얼마든지 책을 보고 마음대로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이다.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지만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벌 수 있는 거래 관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내가 원할 때 일할 수 있다. 아, 왜 나는 좋은 회사원이 되고자 그토록 노력했던 걸까. 아마 그건 내가 이 사회의 낙오자가 아님을 증명하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떨며 몸부림친 것일 테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경쟁 시대에서, 누군가는 낙오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무실에 들어앉아 있을 때 즐기지 못했던 가을 정취 속을 개를 데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인정했다. 그렇다 나는 낙오자다, 또한 하자품이다. 그리고 아주 낭만적인 낙오자다. 지금은 이것으로 좋다. (52쪽) 

 

  "알고 있어요? 이렇게들 살아요."하고 보여주는 그는 자신에게, 그리고 또 다른 자신에게 살아갈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쿨한 위로를 건네준다. 그의 육체는 힘들지라도, 그는 분명 뜨거운 삶을 살고 있다. 직설적인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것도 이 '살아가는 힘'에 있다. 굳세어라, 미스 김! 굳세어라, 또 다른 미스 김이여!

 

 

 

Written by. 리니

한국에세이, 칼럼/ 사회 비평/ 노동, 도시빈민의 에세이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더 구질구질한 기분이 드는 건, 좀 없이 사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들이 그 고함도 훨씬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다는 것이다. 너 돈 없지, 당장 급전 빌려라! 애들 수학 학원 보내라! 편한 알바 안 해볼래? 싼값에 아가씨 끼고 술 마셔라! 그러다 보니 아아 돈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리를 평생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돈 있으면 이 꼴을 안 볼 것이 아닌가. 돈 있으면 회사 바로 앞으로 이사 가서 광고 안 볼 수 있고, 돈 빌려가라는 광고지 꽂힌 지하철 탈 일이 없어서 그 고함 소리를 안 들어도 될 게 아닌가. 돈이란 건 좋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나쁜 것을 막아주는 기능도 있어서 다들 돈을 좋아하는 거였다. 다들 사치하고 싶어서, 좋은 걸 누리고 싶어서만 돈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 꼴 저 꼴 안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돈을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하고 뒤늦게 아주 절절히 깨닫고야 말았다. (39쪽)

화내야 할 때 화낼 줄 모르고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모르는 불균형한 어른이 되면서 내 영혼은 몸에서 달아나는 법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모멸과 슬픔에 맞서 싸우지 않고 천장 어디쯤에서 남처럼 자기 몸을 쳐다보면서, 저기 가서 좋은 일이 없었다면서. 잊고 싶은 기억이 불로 지지듯 들고 일어나 어제 일처럼 쿠킹호일 구기듯 마음을 구겨버리면 술을 찾아 사고를 저지르고 후회한 게 지난 10년이었다. 누구 탓도 할 수 없고 이제 나를 때릴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나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그런데 내 영혼이라는 년은, 천장 어디쯤에 붙어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저기 가서 좋은 일이 없었어, 하고 되풀이하면서. (83쪽)

사람들이 언제 `멀쩡한 일 가질 거냐`고 물어볼 때마다 짜증이 와락 치민다. 멀쩡한 일과 안 멀쩡한 일의 구분은 뭐고 녹즙 배달하는 건 어디가 어떻게 안 멀쩡한 일이며 도대체 어느 정도로 멀쩡해야 멀쩡한 일 취급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며칠 전 프로야구 우승 결과를 가지고 내기하자는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대강 짐작이 갔다. 내기를 해서 자기가 이기면 한 달 녹즙 공짜로 해달란다. 미스 김이 이기면 어떻게 할까 묻기에 그럼 나 대신 한달 배달하라고 했더니 사람 시간이라는 게 단가가 있는 건데 너무하다면서 자신은 단가가 비싼 사람이니 한 달 공짜 녹즙 대 자신이 하루 대신 배달하는 게 공평하단다. 녹즙병으로 때려주고 싶은 사람 명단에 이렇게 한 명이 추가되었다. 사람 시간 단가 운운하는 건 그 사람의 값을 매기겠다는 이야기인데, 한마디로 내 시간은 네 시간보다 몇십 배 비싸다는 이야기를 너무 당당하게 하니 미스 김은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192쪽)

그런 대접을 당하고 싶지 않았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런 일 할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런 일 할 사람들의 일, 남의 일 이렇게 칼같이 줄을 그을 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그런 일 할 사람, 아닌 사람으로 우리가 남을 판단한 바로 그 잣대로 나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의 시장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에서 사람 사는 질서라고 칼같이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나처럼 시장 가치가 없는 사람과는 별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런 분들과는 마구 척지고 싶다. 있는 대로 척지고 싶다. 평생 척지고 싶다. 만나봤자 서로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확실하게 척지고 사는 게 피차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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