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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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바이 동물원』 강태식 / 한겨레출판

  동물이 되어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역설

 

 

 

  ▒ 책을 읽고 나서.

 

 여기는 동물의 왕국. 있는 놈들이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범접하고, '보통' 사람들은 그들 밑에서 일하며 갑질을 참아낸다. 먹이사슬을 유지하는 것은 밥도, 영역도 아닌 오로지 돈이다. 돈에 관한 한 본능보다 철저한 이성을 드러내는 이 왕국의 현실은 아프리카 초원보다 치열하다. 있는 놈들은 나가는 돈이 아까워 '열정'이란 이름으로 누군가를 농락하고, 농락당하는 대상은 대개 그 정도의 돈마저 버릴 수가 없어 끊임없이 인내한다. 그러나 먹이사슬 바깥으로 밀려나기 직전인 누군가가 있다. 그들은 홀로 방 안에서 마늘을 까고, 봉투를 붙이고, 인형 눈깔을 붙인다. 본드 냄새를 맡고 날아다니는 우주와 파워맨과 싸우며 실실거리며 웃는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사슬 속에 존재하기 위하여, 혼자만의 사투를 벌인다.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잘린 주인공 '김영수'는 마늘을 까면서, "어쩌면 나는 마늘을 까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까?"라고 질문한다. 고작 마늘을 까기 위해서 십여 년간의 교육을 받고, 고작 마늘을 까기 위해서 4년제 대학에 들어가고, 고작 마늘을 까기 위해서 입사를 했던 것도 아닌데……. 아니, 아니 어쩌면 "나는 원래부터 마늘 까는 기계였던 것일까."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긴다. 자그마치 '공무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고, 일하는 장소는 동물원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아줌마와 체력 경쟁을 벌여 2:1의 경쟁률을 뚫었다.

 

 

"당신이 사용할 장비예요."

카메라가 장비의 뒤통수를 클로즈업한다. 순간, 목이 뒤로 꺾인다. 얼굴이 드러난다. 이마가 아래쪽이고 턱이 위쪽이다. 얼굴은 뒤집혀 있다. 그 얼굴이 화면을 꽉 채운다. 쿠쿵, 대포 소리 같은 효과음, 노약자나 임산부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는 장면이다. 털은 없다. 하지만 검게 번들거리는 피부가 무시무시해 보인다. 바로 고릴라의 얼굴이다.

"진짜 같죠?"

검게 변한 화면과 그 위에 뜨는 여자 사육사의 대사.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

"입어요. 오늘부터 당신은 고릴라예요!" (94p)  

 

 마늘을 까고 인형 눈깔을 붙이는 대신, 상하의 온몸에 털이 북실한 고릴라 옷을 입는다. 그리고 세렝게티 동물원에 출근한다. 철창 안에서 관람객들이 던지는 바나나를 먹고, 가슴에 멍이 푸르게 들도록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날린다. 12m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맨손으로 오르며 사람들의 호기심과 환호를 불러낸다. 빌딩 꼭대기엔 각기 다른 색의 버튼이 있다. 그것을 누르면 성과급이다! 남들보다 더 많이, 먼저 눌러야 한다. 게다가 동물원에는 고릴라만 있는 게 아니다. 피그미하마, 판다, 캥거루, 아프리카 코뿔소……. 그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한다. 지정된 행동을, 동물과 닮은 제스처를, 관람객을 불러 모을 하루의 미션을!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려나, 하고 그들이 묻는다. 그리고 또다시 '사람 구실' 하고 사는 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고릴라 우리 속에 있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가 생존 경쟁에 밀려 그곳으로 들어왔다. 누구는 부업을 하다가 본드에 취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동물원에 왔고, 누구는 기계처럼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동물원에 왔고, 누구는 회사의 폭탄 처리반으로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다 되돌아온 화살에 맞아 동물원에 들어왔다.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을 하며 살아가려면 '사람다움'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세렝게티 동물원에선 '사람 구실'을 못해도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동료들과 싸구려 소주와 안주를 먹으면서 서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마감하고, 낙오되는 사람을 위해 한 명씩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버튼을 눌렀다.

 동물이 돼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역설, 그야말로 '웃픈' 현실을 그리고 있는『굿바이 동물원』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절규다. 현실과 맞물린 소설의 끝이 해피엔딩이어도 절대 웃을 수 없는, 고릴라 탈을 쓰고 진짜 아프리카 초원으로 자유를 찾아 떠난 이를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다.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그러고 보니 4월이었다. 정신없이 훈련만 하느라 4월이 됐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눈을 떴다. 체육공원 주변에도 여러 종의 화사한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먹고 사는 건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왠지 모르게 휴우, 한숨이 나오는 한때였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한 때 나에게도 4월은 빛나는 꿈의 계절이었다. 눈물 어릴 만큼 슬펐고, 그래서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까마득하게 오래된 일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송 과장의 노래를 듣는 동안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련히 멀어져간 내 인생의 4월이……. (63p)

정말 조풍년 씨의 몸값이 몇십 억씩이나 할까? 내 몸값은? 앤과 만딩고는? 과연 진짜 마운틴고릴라보다 비쌀까? 모르겠다. 모르지만 비쌀 거라고 믿고 싶었다. 내 몸 어딘가에 분명히, 조풍년 씨와 만딩고, 앤의 몸 어딘가에도 반드시, 진짜 마운틴고릴라보다 비싼 정찰가가 붙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어, 안 죽었다."

여자 친구 관람객의 말을 듣고 눈을 떴다. 와-아! 관람객들의 환호성도, 짝짝짝, 아낌없이 쏟아지는 박수 소리도 두 배쯤 볼륨을 높인 듯 커져 있었다. 휘잉, 여전히 강한 바람이 불었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정상에서는 고릴라 조풍년 씨가 검은 털을 날리며, "우후우후." 월드컵 최종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스트라이커처럼 멋지게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멋져, 굉장해. 관람객들도 탄성을 연발했다. 멋져요, 조풍년 씨. 나도 감탄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정상에서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 조풍년 씨에게 묻고 싶었다. 과장님,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요? (128p)

"자기야, 인생이라는 게 뭘까?"

그걸 아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될까? 생각했다. 설령 몇 명이 그걸 안다 해도 나는 그 몇 명 중에 들지 못했다. 나 역시 마늘을 까던 지난날, 숱하게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던가. 하지만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할 때마다 한숨만 나오고 마음만 어두워졌더랬다.

"마늘을 까고 있으면 있잖아,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쩌면 마늘을 까기 위해서 태어난 건 아닐까? 마늘을 까기 위해서 여태까지 살아왔고 앞으로의 사간도 마늘을 까기 위해서 주어진 게 아닐까? 어떨 땐 내가 마늘 까는 기계가 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자기도 마늘 깔 때 그랬어?"

나도 마늘 깔 때 그랬다. 나란 무엇일까? 나에게 마늘이란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손에 밴 마늘 냄새처럼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정체성은 오래전에 유행이 지난 액세서리처럼 이리저리 방바닥을 굴러다니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곤 했더랬다. (162p)

사람이면 어떻고 고릴라면 어떤가. 사람이라고 해서 꼭 행복한 건 아니다. 고릴라가 불행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인권? 존엄성?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런 게 없다. 다 옛말이다. 있는 놈과 없는 놈이 있을 뿐이다. 빈부의 차가 개인의 가치를 판가름하고 결정짓는다.

상대적 빈곤감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인본주의 대신 물본 주의가 물만난 고기처럼 판을 치고,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해야 하는데 사람 보기를 돌같이 하고, 그래서 목숨보다 돈이 중요하고, 그래서 툭하면 약을 먹거나 밀폐된 자동차 안에서 연탄을 피우거나 건전하지 못한 목적으로 한강에 가고, 아무리 자본주의라지만 정부는 그런 국민을 나 몰라라 방치하고,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게 일한 만큼 버는 건데 이 나라를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민주주의라는 것도 그렇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씨발, 욕부터 나오고, 있는 놈들은 있는 놈들끼리만 노는데, 결혼도 있는 놈들끼리만 하는데, 민주주의는 개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니 지랄, 전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리고,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계속 몸부림 쳐야 하고, 쥐구멍에 해 뜰 날은 영원히 오지 않고, 내일의 태양 같은 건 절대 뜨지 않고, 그런 세상인데……. (2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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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여행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정희.남기철 옮김 / 이숲에올빼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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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여행』 슈테판 츠바이크 / 이숲에올빼미

이토록 절묘한 사랑의 단상

 

 

 

 

 

▒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는 '이별'이라는 단어에 움찔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낭만적인 표지에 감미로운 이야기를 상상할지도 모르죠. 표제작이자, 소설의 첫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편소설 이별여행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을 여럿 가진 두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한 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청년이 사장의 총애를 받아 그의 집에 개인 비서로 들어갑니다. 그가 오래전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으리으리한 집에 경멸감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청년은 한 여자를 만납니다. 바로, 사장의 젊은 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수만 가지 묘한 매력들을 뿜어내고 있었죠. 선량함과 온화함, 차분함과 자애로움, 순결함과 모성애…​… 그의 눈에 완벽한 이 여자는 낯선 집에 마음을 붙일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보이지 않는 야릇한 유대감 속에 사랑은 피어납니다. 이들의 사랑은 예상과 달리 조용하고 은은하게 흘러갑니다. 주인공이 뿜어내는 격렬한 사랑의 문장들을 빼고선 말이죠.

 

 

  놀랍도록 달콤한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인정하는 과정'의 황홀한 순간들을 아주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다고 할까요. 주인공이 자신의 가슴속에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설레는 감정을 의식적으로 -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 - 살짝살짝 밀어내는 조심스러운 행동부터,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찾아오는 복잡한 사랑의 감정과 그토록 열기로 가득했던 사랑이 식는 순간까지 짧은 소설에 그대로 담아냅니다.

 무심한 세월과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인해 그들이 멀어졌다가 다시 또 우연히 만나 여행을 떠나기로 할 때, 주체할 수 없이 황홀하고 열정적인 사랑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진부하다고만 생각했던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에 뼛속 깊이 실감하게 될 만큼요. 뜨거웠던 사랑을 다시 시작하려고 떠난 여행에 피치 못할 '이별'이라는 단어를 붙여야만 한다는 절망감, 과거의 추억을 상기시키고 다시 그 감정을 모으려 하지만 도저히 잡히지 않는 이상한 기분. 그들은 어찌할 수 없는 길 위에 서서 세상의 온갖 허무함을 맛보고 있지만, 소설 속에서만큼은 이들의 사랑이, 잡을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다운 추억으로 존재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사랑과는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여기서 사랑은 남녀 간의 로맨스에 한정합니다) 두 번째 중편 『당연한 의심』도 어떻게 보면 참, 오묘하게도 사랑에 마주 선 우리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옆집 가족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이 중심인 이 소설은 주인의 조건없는 사랑과 보살핌에 오만방자해진 반려견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존심 강하고 교만하며 응석받이로 자란" 옆집 남자의 개 '폰토'가 갑작스러운 아기의 탄생에 사랑을 뺏기고, 절망과 처절함에 잠식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격렬하면서도 오싹합니다.

 

 

 대상과 분위기는 확연하게 다르지만, 두 소설은 비슷한 흐름과 주제를 갖습니다. 설명하기 모호할 뿐인 사랑의 시작과 끝을 비교적 분명하게 그려내고 있지요. 시작의 설렘과 끝의 허무함, 황량함…​…. 중편 소설집 이별여행은 두 가지 색다른 '사랑의 모습'을 매끄럽게 표현해내면서도, 오르막과 내리막을 단숨에 롤러코스터처럼 지나치는 것 같은 격렬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또한, 화려하진 않지만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힌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이점이지요.

 

 

 

Written by. 리니

독일 소설/ 중편/ 사랑 이야기

소장중인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그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꿈에서조차 그를 온통 사로잡은 이 감정이 절대적인 열정이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그를 뒤흔들어놓을 만한 결정적인 계기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감정을 명료하게 의식하고,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하는 행위였다. 그는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그 감정을 감탄, 경외심, 애착, 따위의 이름을 덧씌워 부르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것이 미친 듯 날뛰는 절체절명의 열정적 사랑이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비굴한 것이 이 인식을 억눌러 선명하게 느끼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3p, 이별여행)

사랑을 사랑으로 인정하는 과정은 어떻게 시작될까? 그것은 사랑이 태아처럼 어두운 몸 안에서 고통스럽게 꿈틀대기를 멈추고, 숨결과 입술을 통해 감히 밖으로 나와 스스로 사랑이라고 이름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고치 속 번데기처럼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완강하게 숨어 있던 그녀에 대한 감정은 어느 순간 불현듯 껍질을 뚫고 까마득히 올라갔다가 다시 무서운 힘으로 철렁! 하고 가슴 밑바닥으로 떨어져 그를 놀라게 하곤 했다. (25p, 이별여행)

그 순간, 그는 뚜렷한 무엇인가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 수줍은 듯한 그림자 유희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일러주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우물처럼 그의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어떤 것을 기억의 두레박이 불안하고 위험하게 건드리기라도 한듯, 그것은 흔들흔들 요동치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것은 무엇인가. 그는 모든 감각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여기 잠든 숲 속에서 이 그림자 유희가 그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히 어떤 말, 어떤 상황, 어떤 체험, 귀로 들었던 것, 마음으로 느꼈던 것, 그러나 하나의 멜로디에 둘러싸여 아주 깊은 곳에 파묻혀 있던 어떤 것,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가 건드리지 않았던 어떤 것이었다. (82p, 이별여행)

나를 바라보며 애원하는 듯한 그 절박한 눈길을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동물의 눈길은 인간의 눈길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분명히 감정을 드러내는 모양이다. 인간은 대부분 감정이나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만, 동물은 말을 할 수 없기에 모든 감정 표현을 동공에 몰아넣는다. 나는 그 당시 폰토의 눈동자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을 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처절한 모습이었다. (125p, 당연한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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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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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아멜리 노통브 / 열린책들

​당신에게 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만약 무인도에 한 권의 책만 들고 가야만 한다면, 당신은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 너무나 식상한 질문인가? 그래도 한번 대답해보라. 책장에 책 한 권만 있는 사람은 없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좋아하는 책을 한 권만 고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같은 질문이 온다면, 아마 며칠이 걸려 고민할 것이다. 어떤 책을 오랫동안 곱씹을 수 있을지, 다시 읽어도 새로운 문장이 보이고,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책들, 혹은 무게에 제한이 없다면 좋아하는 책 중 가장 오랫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지 않을까. '책'이라는 것이 너무나 흔한 세상에서, 하루에도 몇 권씩 매력적인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좋아하는 책들에 시한부를 선고하는 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동시에 누군가가 같은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유독 예상치 못하게 풀어내는 작가, 노통브가 전하는 '책' 이야기는 어떨까. 그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독특하다고 하기에는 아쉽고 굳이 표현하자면 괴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불쏘시개』도 역시 별나긴 하지만 그녀의 책 중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비교적 친절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책이다. 장르는 희곡, 역시나 중편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얇다. 그러나 노통브는 정말로 매력적인 소재를 들고 왔다. 이야기를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추위와 전쟁 속에서 불쏘시개로 삼을 만한 것이 책밖에 없다면, 당신은 어떤 책을 먼저 불태울 것인가?"라는 것이다.

 

  조금은 극적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현실적일 수 있는 이 상황에서 사실상 책의 가치는 반쯤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상상할 수 있다. 도시는 전쟁으로 인해 포위당했고, 그나마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집은 꽁꽁 얼어 불쏘시개가 필요하고, 주인공 교수의 집에는 책장 가득 불을 붙이면 활활 타오를 책들이 그득하다. 교수와 조교, 그리고 조교의 애인은 추위를 감내하는 고통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어, 책장 속에서 조금은 덜 가치 있는 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따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책의 내용부터 표지, 결말, 문장...... 총탄이 날아드는 바깥의 상황은 잠시 외면한 채 그들은 책에 대한 담론을 펼친다. 생존을 앞에 두고 있는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에서 문학과 어법에 대하여 떠드는 그들의 대화는 왠지 모르게 우스우면서도 슬픈 아이러니를 담아낸다.

 

  책 자체에 대한, 그리고 가치 있는 책들에 대한 조건 없는 작가의 사랑은 그들의 대담 속에서 특히나 두드러지고, 책의 의미에 대해서 고심할 여지를 주고 있다. "무인도에 가면 어떤 책을 - "이라는 아까의 식상한 질문에서 나는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결국엔 가장 두께가 있는 책을 택했다. 『불쏘시개』도 마찬가지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책의 가치는 떨어지고, "오직 두께로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뿐이다. (83p)"

  ​그러나 책의 가치를 따지기에 앞서서, 좀 더 본질에서 따져보자. 노통브는 너무나 사랑하는 책을 그녀의 문학 속에서 왜 태웠을까? 왜 책에 불쏘시개라는 역할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을까? 결국엔 '생존'이다. 『불쏘시개』 속에서 책은 생존을 위한 도구가 되었고, 그녀의 삶 속에서 책도 이만큼의 가치를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이 이야기는 책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경고이고, 극적인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책의 의미에 관해서 하는 실험적 질문이다.

 

 

마리나 : (마침내 그를 바라보며, 아주 상냥하게) 선생님, 제가 굳이 어려운 작가의 작품을 골라서 이해하려고 읽는 게 아니에요. 지금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시나요? 저는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신중하게 읽고 있어요. 그 문장 하나하나를 읽으며 혼자 물어보곤 합니다. <이 주제에, 이 동사에, 이 보어에, 이 부사에, 난로 한가운데서 아름다운 불꽃으로 탈 만한 무엇이 있는가? 이 문장의 깊은 (또는 그렇게 상정된) 의미는 이 방에서 온도 1도를 올리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인가?> 보세요, 제가 선생님께 눈에 들어오는 대로 문장을 하나 읽어 드리지요. <침묵이 이처럼 수상쩍었던 것은 오래전이었다.> 저는 이 문장에 대해서 비판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문장이 담고 있는 심오한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런 의문이 드는군요. 이 수상쩍은 침묵이 어떤 점에서 1분 이상의 열기보다 더 가치가 있는가 하고. (32p)

다니엘 : 하지만 선생님은 무슨 근거로 저한테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우리는 지금 현실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예술적 가치가 없을 수도 있죠. 그러니 문학은 더더욱 예술적 가치가 있어야죠.

교수 : 그러니까 문학이 자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아닌가. 자네의 삶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어. 그런 이유로 문학은 자네에게 위안을 주는 거야.

다니엘 : 그래도 제 삶은 분명 선생님의 삶보다 더 하찮을 겁니다.

교수 :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가? 다니엘, 자넨 장님이군. 첫 번째 만남에 대한 판단처럼 내 삶에 대해서 판단하는 기준이 말이야.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링 위에서 다시 만난다. 즉석 경연 대회가 권투 시합장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군. 그전에는 그 두사람이 결코 만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잊지 말게. 그러다가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돼. 그들은 열여섯 살이고, 아름답다네. 그들은 권투하는 링 위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거야. 멋지지 않은가? (65p)

다니엘 : 독서가 더이상 무익하지 않도록 독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우리 몫이죠.

교수 : 독자를 교육시킨다! 독자를 교육시키듯 한다! 자넨 그렇게 바보 같은 말을 내뱉을 정도로 더 이상 어리지 않아. 사람들은 삶에서도 그렇듯이 독서에서도 똑같아. 이기주의적인 데다가 쾌락에 빠져 들고 달라지기가 힘들지. 작가의 몫은 독자의 보잘것없음에 대해서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독자를 받아들이는 거지. 만일 그 작가가 독자를 바꿀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렇다면, 낭만적인 바보는 바로 그 작가라네. 블라텍의 책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네.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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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하는 삶 - 개정판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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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하는 삶』 이창래 / 알에이치코리아

'세계와 자아의 균형을 맞춘다'는 변명의 삶

 

 

  실제의 자아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교묘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척뿐인 삶'이라고 하면 너무 갔지만, '척하는 삶'이라는 말의 위화감이 거의 들지 않는 걸 보면, 지금도 우리는 이런 삶과 너무도 당연하게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척'을 하며 사는 까닭, 그 이유는 꽤 다양하겠다. 물질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이유를 나 자신이 아닌 밖에서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를 밖으로 돌리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놀랍도록 대단한 소설, 이창래 작가의 『척하는 삶』은 아마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보이고 있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의료기기 가게를 운영하면서, 닥 하타라고 불리며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그는 너무나 편안하게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입양한 딸, '서니'는 그를 겉돌고 있다. 온갖 필요와 사랑을 모두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딸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왜 또한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지 의문이다. 그 이유가, 그의 회상 속에서 밝혀진다. 그는 미국에서 살게 된, 한국계 일본인이었다. 어딘가 너무나 복잡하지 않은가. 그는 초반부터 말하기를, 그 작은 동네에 터전을 마련하면서도 '끼어들 수 없다는 느낌'과 어색한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닥 하타, 라고 존경 어린 말을 건네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는 중간 속에서 머무르는 주변인이었다.

 

  소설은 현재 '닥 하타'의 삶을 살고 있는 시점과 과거의 젊은 시절, 일본군에서 군의관으로 일했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 서술은 담담하며 침착하지만, 과거의 시점은 너무나도 강렬하다. 일본군에 있었던 '위안부'와 그곳에 있었던 사랑하는 여자 '끝애'와의 이야기를 묘사한다. 그는 그곳에서도 마치 지금과 같은 삶을 산다. 위안소의 여자들을 필요치 않았지만, '끝애'라는 여인은 '필요'했고 소유하려 했다. 어디까지나 중간인으로서 존재했고, 사랑했던 여인마저 구하지 못했다.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그의 삶을 지배했을까. '척뿐인 삶'을 증오하며 자아와 완벽하게 일치하길 원했던 '끝애'의 행동 (입양 딸인 '서니'는 그녀와 닮았다. 그리고 역시 그와 맞춰가질 못한다), 그리고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나는 그가 죄책감에서 '척하는 삶'의 이유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이전부터, 그래 왔는데도.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의 이유를 밖으로 돌리면서 위치를 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언급될 때, 철저히 거부했다. (닥 하타라는 이름도, 결국엔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는데도.) 놀랍도록 담담하고, 마치 감정이 없어 보이는 문장은 이런 그의 행동을 묘하게 소름 끼치게 했다. 그토록 큰 풍파를 겪었지만, 너무도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약간은 아찔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며 살아왔고, 중간인으로서의 삶을 다하면서 세계와 자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는, 어느새 자신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그 균형을 교묘하게 맞추어나갔던 것이다.

"지금은 똑똑히 보이지만, 사실 나는 그 상황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 사실 무시무시한 것은 우리가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순진하게, 동시에 순진하지 않게 더 큰 과정들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414p)​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쓴 『척하는 삶』속에서 아마도 많은 사람이 '위안부'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민감할 수 있는 그런 주제와 한국인의 한(恨)을 노골적이지 않고 우회적으로 담담하게 다루고 있다.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묘사하는데도), 슬픔과 고통을 그대로 분출하지 않고 조금씩 터뜨려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서술을 통해, 외적인 상황보다 내적인 감정을 더욱더 충실하게 보도록 만들고 있어서 참 좋았다.

 

 

떠난다는 생각을 할 때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모두가 이따금씩 느낄 수 있는 어색함이었다. 예를 들어, 매일 다니는 거리나 가게에서, 또는 다른 경우라면 은은하고 푸릇푸릇한 공원 그 이상일 수 없는 곳에서 주변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저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그리한다.)에 대해 의식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 궁리하는 것, 내 생각이든 남의 생각이든 나는 정말이지 이런 식의 생각을 좋아한 적이 없으며, 그래서 내가 이 타운에서 나 자신을 위해 꾸준하게 조성해 온 그런 상황 속에 들어가 있기를 늘 원해 왔다. (...)

그런데 이 모든 조화로운 관계에 당혹스러운 측면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언제 어떻게 생긴 것인지, 실제로 지금도 생겨나고 있는지 어떤지는 나도 모르지만, 뭔가가 진행 중인 것만은 틀림없다. 집 밖으로 나가 마당을 걸으며 지붕의 예각, 따뜻한 색깔, 시간이 아로새겨진 전면을 살필 때마다, 마치 처음 보듯이 새로운 눈으로 볼 때마다, 평생 가야 이런 집을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말소리가 느낌보다 더 깊다. 나는 이제 뭘 `본다`해도 내가 보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내가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 중간쯤으로 우리가 삶에 기대한 것 때문에 만들어 놓고 공유하는 환상인지. 아니면 이렇게 묻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최대한 버텨 내고 만족하고 목적을 부여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만 할까? (116p)

나는 선량한 닥 하타에서 괜찮은 노인네에서 저 늙은 동양인이 누구냐로 바뀌었다. 그 질문 (지난 여름 처치 스트리트의 새 식당에서 점심 값을 치르다 그런 소리를 들었다)에는 심각한 악의나 편견은 담겨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의아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처량하게 자신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이라면 모두 겪는 일, 심지어 한창 때는 적당한 위치를 확보했던 사람들조차 겪는 일이 틀림없다. 그러나 내 경우는 시간으로 인해 흐릿해지는 것과도 다르고 현대 생활에서 늙어 가면서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둘째 치고, 내가 어떤 인종에 속한 사람이냐 하는 것이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사실로 남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라는 단순한 항상성. 따라서 나와 같은 사람은 사소한 손실들은 받아들이면서, 삶에서 생기는 위안들에 행복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의견이나 감정이 날카로운 사람이라 해도 적어도 나를 속속들이 알고는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일까? (280p)

이런 생각 자체에서도 순수의 맛이 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을 알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 기만적이고 위험한 바람이다. 하물며 삶의 가장 먼 영역에 다가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실 나 같은 사람은 기억의 모든 조각과 부스러기를 갈망해야 마땅하다. 마침내 자신이 겪은 일들의 우연성이라든가 정황이라든가 얄궂은 면을 인식하고, 그런 일들이 많은 경우 필연적이었음을 인정해야 마땅하다. 어떤 신이 허락을 한다면, 이 모든 일들을 확고하게 움켜쥐고, 그런 풍부한 경험들을 살아냈으니 나는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 경험들 때문에 자신이 되풀이하여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고, 가장자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서는 걸음에 어룰리게 살짝 고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멈추는 것, 뒤로 도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아니면 발끝으로 땅을 파며 뛰쳐나가, 노인네처럼 뻣뻣한 자세로 돌아다니다가 절벽 너머로 뛰쳐나가는 것. 툭 튀어 오른 첫번째 바위만 제대로 피해 그대로 자유 낙하를 할 수 있다면, 그 짧은 비행을 즐길 수만 있다면, 나는 정말 감사할 것이다.(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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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2015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한강 | 강영숙 | 권여선 | 김솔 | 김애란 | 손보미 | 이기호 | 정소현 | 조해진 | 황정은 | 문예중앙 | 2015-11-10

 

 

 

남겨진 생각들  

 

 여러 작가의 글이 모여있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오랜만이다. 그런데 작품집은 처음이다. 단편보다는 장편을, 작품집 보다는 한 작가의 단편집을 쭉 읽어내려가는 것을 선호하는 터라, 이번 책은 작품 하나하나 꼼꼼히 읽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 싶었다. 하지만 수상작에 '한강', 이어지는 후보작들에 붙은 이름들을 보니 그동안 좋은 느낌으로 읽었던 작품의 주인들이어서, 꽤 흡족한 독서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익숙한 작가의 이름이 많이 보이니 반갑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러 문학상에 반복해서 비슷한 이름이 보이니 '역시 또?' 하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어쩌겠는가. 한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개성 넘치는, 쟁쟁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니. 그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일일 수밖에.


 이렇게 오래 살아가는 것들 아래 있으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가 해치지만 않으면, 어쩌다 불이 나거나 벼락만 맞지 않으면 수백 년도 살 수 있는 것들 아래에서, 이렇게 짧게 꼬물꼬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다음 달, 다음 해, 아니, 오 분 뒤 일조차 우린 알지 못하잖아. 그렇게 시간에 갇혀서 서로 찌르고 찔리면서 꿈틀거리잖아.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어딘가 있다 해도, 그가 우릴 사랑할 것 같지 않아. 우리가 상처 난 벌레를 보듯 혐오하지 않을까? 무관심하지 않을까? 기껏해야 동정하지 않을까? (39쪽,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한강)

 

 

​ 의도했는지, 아니면 우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딱 지금 읽을 수밖에 없는 제목을 가진, '한강' 작가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보이는' 독특한 소설이다. 한쪽은 사회에 의해 자행된, 차가운 현실을 그린다. 그리고 한쪽은 주인공이 쓰는 희곡을 생생하게 그린다. 전자인, 주인공의 현실은 지금의 바깥 기온처럼 차디차다. 죽은 지 3년이 지난 뒤에 찾아왔지만, 나에게 이렇게 찾아올 만큼 가까운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는 존재의 '선배'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회사의 파업, 해고, 침묵, 누군가가 잃어버린 자존감, 그리고 죽음을……. 그 모든 것을 회상하면서 쓰는 '희곡'은 고요한 듯하지만, 날카로운 감정들이 뒤섞여 피를 내고 있다. "내가 그 고통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무섭도록 생생해서" 더는 쓸 수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는 묻는다. 남겨진 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평화를 말해야 하느냐고. '한강' 작가는 찢어질 듯 날 선 감정들을 스산하고 잠잠하게 글 속에 가둔다. 후끈한 열기로 가득한 방, 차디찬 바깥 공기가 들어올 틈 하나는 남겨 두고서. 그래서 더욱 쓸쓸하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뒤이어 차례대로 나온 9편의 최종후보작은, 각각의 개성이 돋보이는 좋은 작품들이었다. 기대했던 작가의 작품은 역시나 좋았고, 작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아보자면 권여선, 손보미, 조해진 작가의 작품이었다. 자신과 불가촉의 관계였던 이모가 생을 정리하는 두렵고도 아득한 과정을 지켜보는 <이모 (권여선)>. 젊은 부부의 집에서 많은 일을 떠맡으면서도 단지 '임시'로만 머무는 <임시교사 (손보미)>, 폐쇄된 과거 속에 존재하는 사물은 덧없는 조각이라는, 슬픈 추억을 그린 <사물과의 작별 (조해진)>. 문장과 묵직한 사유를 주는 작품들로 인해, 이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을 더욱 궁금해할 기회가 되었다.

​ 제 1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10편의 작품들은, 수상작을 비롯하여 각각의 색채가 짙어 당연히 어떤 통일된 느낌이 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득한 거리, 혹은 무언가를 잃은 불안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프지만 마주 보아야 할, 그런 일들을 녹여놓은 그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듣느라, 페이지를 다 넘길 즈음에는 안도감과 후련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힘들었지만, 다시 읽고 싶은, 오래도록 품고 싶은 소설들이다.

 

 

 

담아둔 문장

 

그녀가 기대감에 가득 차서 돌게장의 껍데기 속에 모아놓은 노르스름한 알과 내장을 입에 넣었을 때였다. 누군가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녀는 입속의 것을 꿀꺽 삼켰고, 거대한 압착기에 얼굴이 끼인 것처럼 이를 딱 부딪쳤고, 그 엄청난 악력에 혀끝이 짓씹혔다. 눈앞이 번쩍 하더니 모든 기억이 반지 모양의 작고 까만 원형 속으로 빨려들었다. 지독한 통증이었다.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혀끝을 만져보니 침과 함께 피가 묻어났다. 혀끝에 뜨겁고 얇은 쇳조각이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181쪽, 이모 - 권여선)
 
 
 아내는 연주를 끝낸 뒤 수 천 명의 기립박수를 받은 피아니스트마냥 울었다. 사람들이 던진 꽃에 싸인 채, 꽃에 파묻힌 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마냥 내가 받치고 선 벽지 아래서 흐느꼈다. 미색 바탕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흰 꽃이 촘촘하게 박힌 종이를 이고서였다. 그러자 그 꽃이 마치 누군가 아내 머리 위에 함부로 던져놓은 조화(弔花)처럼 보였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놓은 국화같았다. (247쪽, 입동 - 김애란)
 
 
 사는 건 그런 거지. 그녀는 생각했다. 아, 괜찮을 거야. 언젠가, 마치 끈 하나를 잡아당기면 엉킨 끈이 풀어지듯이 잘못된 일들이 고쳐질 거야. P부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 건, 생각보다는 언제나 쉬운 일이었다. (280쪽, 임시교사 - 손보미)
 
 
 병원 문을 열고 나가면 실타래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굴러갈 것이고, 실타래에서 풀려나간 실은 밟히고 쓸리고 상하면서 먼지가 되어갈 것이다. 친밀했던 사람, 아끼던 사물, 익숙한 냄새를 잃게 될 것이고 세상도 그 속도로 고모를 잊어갈 터였다. 어느 날은 거울 속 늙고 병든 여자를 보며 이유도 모른 채 뚝뚝 눈물을 흘리기도 하리라. 하나의 실존은 그렇게 작아지고 또 작아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절연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 누구의 배웅도 없이, 따뜻한 작별의 입맞춤과 헌사의 문장도 없이…… (379쪽, 사물과의 작별 - 조해진)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냥 하던 대로 했겠지. 말하자면 패턴 같은 것이겠지. 결정적일 때 한 발짝 비켜서는 인간은 그 다음 순간에도 비켜서고…… 가방을 움켜쥐는 인간은 가방을 움켜쥔다. 그것 같은 게 아니었을까. 결정적으로 그, 라는 인간이 되는 것. 땋던 방식대로 땋기. 늘 하던 가락대로 땋는 것.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피륙이 있고 그것의 무늬는 대개 이런 꼴로 짜이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직조해내는 패턴의 연속, 연속, 연속. (407쪽, 웃는 남자 - 황정은)
 

Written by. 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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