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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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금이 (지은이) | 푸른책들 | 2004-06-21

 

 

 

남겨진 생각들  

 

 

 작은 유진은 그때의 일을 모두 잊었다.

 큰 유진은 그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작은 유진의 부모는, 아이의 몸을 벅벅 문지르며 기억을 씻겼다.

 큰 유진의 부모는 "사랑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번번이 다독였다.

 

 

 유치원에서 일어난 큰 사건을 함께 겪었던 '유진'과 '유진'. 그들이 중학생이 되어 같은 교실에서 만났을 때, 그들의 부모가 각각의 방식대로 묻어둔 기억은 괘씸하게도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 둘에게 그때의 기억은 결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소름 끼치는 기억'이지만, 떠오른 기억에 대한 대처는 그 둘이 확연히 다르다. 기억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던 '큰 유진'은 담담히 이야기한다. '작은 유진'은 '큰 유진'의 이야기를 듣고, 조각조각 나뉜 기억에 괴로워한다.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162쪽)

 날카로운 것에 베여 상처가 나면 딱지가 생긴다. 흉한 딱지가 보기 싫어 자꾸 긁고 떼다 보면 더 선명한 흉터가 생긴다. 『유진과 유진』은 (나쁜) '기억'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상처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진과 유진, 그들의 부모는 자식의 상처를 어떻게든 잊게 해주려 안간힘을 썼고, 그 방법은 확연히 달랐다. 아마도 부모들은 서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쪽은 미숙했고, 한쪽은 성숙했다. 무조건 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음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시간은 기억의 정착제가 아니라 용해제다". 기억과 시간이 만나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큰 작용이 일어난다. 기억은 시간에 의해 잊히기도 왜곡되기도 한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두 소설은, 꼭꼭 묻어둔 판도라의 상자는 언젠가 틈이 벌어지게 마련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 틈으로 들어가 스스로 왜곡해 묻어둔 기억을 마주하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주인공 '토니', 그리고 어떻게든 묻어둔 기억을 '큰 유진'에게서 발견하는 『유진과 유진』 속 '작은 유진'의 배신감은 무척이나 컸을 것이다. 그러나 『유진과 유진』에서 중요한 점은 '배신감'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는 것이다. 사건 당시, '유진이'들은 사리분별이 부족한 어린아이였고, 기억을 묻은 주체는 '부모'였다. 이 소설이, 단지 '청소년 소설'에만 머무르지 않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사랑해, 네 잘못이 아니야.". 이 시대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야하는 말은 이것이 아닐까?

 소설의 후반부, 같은 기억을 공유한 '유진과 유진'은 '건우 엄마'를 이야기하면서 따뜻한 손을 맞잡는다. 표리부동한 인간들에게 분노하고, 아픔을 승화시키며 이 둘이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이들의 입장, 그리고 부모들의 입장,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에 맞게 담담히 풀어낸 『유진과 유진』. 내가 읽어본 최고의 청소년 소설이다.


 

다음날, 난 그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누군가 날 도와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해 보았자, `네 잘못이야`라는 대답을 듣게 될 것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터 그랬다. 초등 학교, 아니 더 전인 것 같다. 그때부터 내 편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를 지키는 방법은, 엘리베이터의 괴물처럼 더 강력한 것을 상상하거나, 공부 잘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전교 1등도 나를 지켜주는 완벽한 방패나, 갑옷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53쪽)

나는 그 날 밤, 엄마와 아빠에게 그 이야기를 다시 해야 했다. 엄마가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안았고, 아빠는 주먹으로 벽을 쳤다. 그때 내 기분은 …… 슬프고 무서우면서도 달콤했던 것 같다. 세 살짜리 동생한테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빼앗긴 채 외로움에 떨던 때였으므로, 엄마 품에 안긴 채 울음 섞인 사랑 고백을 듣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엄마가 우리 유진이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73쪽)

"니가 그 일을 기억 못 해서, 느이 식구들은 영영 그러길 바랬지만 나는 내내 걱정이었다. 늙어서 노망난 것도 아닌데 파릇파릇하니 자라는 것이 지가 겪은 일을 기억 못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다 알구, 그러구선 이겨내야지.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외할머니가 내 등판을 쓸었다. 갑자기 내 몸 군데군데 상처가 난 것처럼 여겨졌다. 엄마가 살갗이 벗겨지도록 내 몸을 닦았던 건 그 상처를 없애기 위해서였을까? (162쪽)


건우엄마가 했다는 말을 할 때 작은유진이는 내 손을 꽉 잡았었다. 그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엄마의 분노보다도 소라가 껴안아 줬을 때보다도 진정으로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아이는 또 다른 나인 것만 같다. 나는 작은 유진이의 손을 찾아 잡았다. 조그맣고 말랑말랑한 손의 느낌이 좋았다. 나는 그 애의 머리 위에 뺨을 기대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어 잠을 잘 수 있는 것, 이것만은 잘못된 일 같지도 후회스럽지도 않았다. 나는 아슴푸레한 새벽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241쪽)

나는 못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엄마에게 달려들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엄마는 허깨비처럼 내가 흔드는 대로 흐느적거렸다. 어하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엄마에게 떨어진 나는, 이겼으면서도 눈두덩이가 찢어져 바닥에 누운 상대편을 볼 수 없고, 입이 부어 터져 승리의 기쁨을 말할 수 없는 권투선수 같은 기분이 돼 간신히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그제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주 오래 묵은 것 같은 슬픔이 실 꾸러미 풀리듯 끝도 없이 울음 속에 섞여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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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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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은이) | 이항재 (옮긴이) | 민음사 | 2003-07-05 | 원제 Первая любовь (1860년)

 

 

 

남겨진 생각들  

 

 고통을 수반하는 황홀함, 첫사랑

 첫, 이라는 수식어는 풋풋함과 황홀함을 동시에 선물한다. 그리고 고통 또한 수반한다. 그런데도 '첫'이 아름답고 아련한 것은,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어떤 기억보다도 강렬한 추억과 잔상으로 남기 때문이다. <첫사랑>이라는 작품이 주인공 '블라지미르'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나이 열여섯, '청춘의 용솟음치는 삶의 기쁨이 싹트기 시작할 때 (13쪽)' 한 여자를 만났다. 운명이었던 것 같았다. 연상의 여인인 '지나이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고, 그의 불 끓는 열정을 장난으로 되받아칠 만큼 당돌한 여자였다. 그의 사랑은 마치 복종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온 우주가 나를 위해 돌아가는 것 같다고 했던가. 마치 그 꼴이었다. 그녀를 사랑할수록 그는 어린애처럼 작아졌다. 하지만 그 고통에도, 연모하는 감정은 점점 뜨거워져만 갔다.

 어린 사랑은 고통과 실패로 얼룩진다. 첫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청춘의 증표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그녀의 부재는 모든 것이 바스러져 버린 고통이다. 하지만 청춘이라는 시기는 되려 그 사랑을 배움의 기회로 바꿀, 당돌함을 선물하기도 한다. 어쩌면 뻔하디뻔한 사랑 이야기라 치부할 수 있는 이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건 서정적인 작가의 문체와 우수 어린 청춘의 고백이 가슴 깊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고통이다, 귀족의 보금자리

 

 인물의 역사를 설명하는 장대한 서술이 주를 이루면서, <첫사랑>에서 좋았던 서정적인 문장들은 가끔 톡 쏘는 양념처럼 튀어나온다. 그리고 소설 속 등장하는 '사랑'도 앞의 작품에서 등장한 '사랑'의 강렬함과 쌍벽을 이룰 만큼의 인상을 남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이 자랐고, '작품'도 자랐다. <귀족의 보금자리>에서는 작가가 더 깊은 내면을 끌어낸 느낌이랄까. 당대 러시아의 귀족사회를 대변하는 한 가정을 등장시키며, (당시에는 가능했던) 친척 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진지한 대화 속 인간의 속성을 파악하게 하는 무거운 작품이다. 당대 러시아의 귀족사회를 통해 슬라브주의자와 서구주의자의 대립, 러시아라는 작가의 모국에 대한 애정과 이상을 진하게 풀어내며, '사랑' 또한 그 역사와 맞물려 성숙한 전개로 드러내고 있다. 현실과 현재의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라브레츠키', 몸에 배어버린 관습과 윤리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순수하고 올곧은 인물 '리자'. 그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다소 지겹게까지 여겨지는 러시아 특유의 장황한 서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내리게 하는 힘이 되었다.“젊어서 사랑을 하든 나이 들어서 사랑을 하든 고통은 수반되기 마련이다.” <첫사랑>의 풋풋하고도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반전시키는 듯한 작품의 배치가 묘하게 느껴진다.

 지배와 억압에 바스라져버린 사랑, 무무

 <무무>는 세 작품 중에 가장 담백하고 침착한 듯 보이나, 가장 슬픈 절규를 담고 있어 마지막까지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벙어리이자 귀머거리 농노 '게라심'과 그가 애정을 주었던 강아지 '무무'. 한 번 사랑에 실패한 그에게, 위로와 의지와 더 큰 사랑을 주었던 '무무'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농노제도'라는 비참한 현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여지주의 횡포로 인해, 그 사랑은 바스러져 버린다. 현실에 굴복하여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 중에서 <무무>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큰 감정을 내보이고 있었던 작품이다. 지배와 억압에 대한 울분과 증오를 이렇듯 조용하고 담백하게 다룰 수 있을까. 가슴 아픈 사랑에 대처하는 가장 성숙한 모습이라고까지 여겨져, 오래도록 그 잔향이 깊게 남을 것만 같다.

 

나는 줄곧 겁에 질려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모든 것에 놀라움을 느끼면서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아침놀이 물들었을 때 종루 주위를 나는 제비 떼처럼, 공상은 언제나 같은 환상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면서 장난치는 것이었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슬픔에 젖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노래처럼 경쾌한 시나 황혼의 아름다움이 자아낸 눈물과 우수를 통해, 청춘의 용솟음치는 삶의 기쁨이 마치 봄풀처럼 파릇차릇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13쪽, 첫사랑)

오, 청춘이여! 청춘이여! 그대는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다. 그대는 마치 우주의 온갖 보물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우수도 그대에게는 위로가 되고, 슬픔조차도 그대에게는 잘 어울린다. 그대는 자신감이 넘쳐흐르며 대담무쌍하다. 그대는 "보아라, 사람들아! 나는 혼자서 살아간다."라고 말하지만, 그대의 좋은 시절도 흘러가고, 흔적도 없이 무수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그대의 모든 것은 태양 아래 밀랍처럼, 눈처럼 녹아 없어져 버린다……. 어쩌면 그대가 지닌 매력의 모든 비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대의 힘을 다른 무엇을 위해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바람에 흩날려 보내는, 바로 그런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120쪽, 첫사랑)

사방에서 정적이 그를 감싸고 있고, 태양은 잔잔한 푸른 하늘에서 조용히 떠가고, 구름도 조용히 흘러간다. 구름은 자기가 어디로, 왜 흘러가는지 알고 있는 듯싶다. 바로 이 시각에 지상의 다른 장소에서는 생활이 들끓고 사람들은 서두르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는데, 여기서는 똑같은 생활이 늪의 풀 위를 흐르는 물처럼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라브레츠키는 저녁때까지도 이 지나가는, 흘러가는 생활에 대한 관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나간 날에 대한 애수는 그의 마음 속에서 봄날의 눈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이처럼 깊고 강렬하게 고향을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229쪽, 귀족의 보금자리)

내가 숭배하곤 했던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고, 불태우곤 했던 모든 것을 숭배했노라…….

그러고 나서 그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여 집까지 내달렸다. 말에서 내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감사의 미소를 짓고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밤, 부드러운 밤이 언덕과 골짜기에 깃들어 있었다. 멀리 밤의 향기로운 심연에서, 하늘인지 땅인지 모를 그 어딘가에서 평온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흘러나왔다. (267쪽, 귀족의 보금자리)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모스크바에 데려올 때부터 길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여지주가 그를 데려온 시골에서 큰길까지는 약 2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그는 큰 길을 따라 굳건하고 용감하게, 절망적이면서도 기쁜 단호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그는 가슴을 활짝 펴고, 두 눈으로 열심히 똑바로 앞을 응시하며 계속 걸었다. 그는 늙은 어머니가 고향에서 자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타향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한 자기를 어머니가 고향 집으로 부르기라도 하듯이 서둘러 걸어갔다……. 이제 막 시작된 여름밤은 고요하고 따스했다. 태양이 지는 쪽에서는 아직도 하얀 하늘 언저리가 사라져 가는 하루의 마지막 반사광으로 엷은 홍조를 띠고 있었고, 그 반대쪽에서는 푸른 잿빛 어스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쪽에서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백 마리의 메추리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빙빙 날고 있었고, 흰눈썹뜸부기들이 앞 다투어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440쪽, 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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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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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지은이) | 민음사 | 2010-06-25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남겨진 생각들  

 

 나는 이 소설에 어떤 말을 보태야 할까? 작가마저 그 무거운 뭉치들을 간결하게 풀어놓은 이 소설에, "소설이 나온 것이 그냥 고맙다"고 말하는 평론가님의 말에 뒤이어, 수많은 독자의 감탄 어린 글 다음으로, 어떤 말을 주절주절 달아야 할까? 황정은의 소설은 독특한 느낌, 모호한 느낌, 좋다는 느낌이 차례대로, 쉽사리 정리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까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긴 버겁다. '나는 절대로 이런 문장들을, 생각 끄트머리조차 따라 할 수 없겠다'는 경외감이 섞인 자괴감과 더불어.

 

 

 곧 공원으로 바뀌기 위해 철거될 전자상가에 사는 그들에겐 그림자가 뻗어있다. 따라가면 안 돼, 조심해야 해, 되뇌곤 한다. 그림자는 때론 자라면서 일어설 기미를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그건 아슬아슬한 삶에 비틀거릴 때 나타날 듯한, 조금 따라가면 끌려갈 수밖에 없는 그런 무시무시한 것.

 두렵지만, 무서운 꿈을 꾸지만, 그들은 딸린 그림자를 뒤로 한 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애써 여기며 살아간다. 무정한 현실을 닮은 그림자, 그림자에 묻히지 않기 위해 다른 곳을 보려고 시도하며 담담하게 삶을 살아낸다.

 

 

 같은 상가에서 일하는 '무재'와 '은교', 그들에게 그림자를 없애버릴 시원한 그늘은 '사랑'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연애소설'이라고 칭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림자의 세계를 파괴할 희망으로 존재하는 것이 이 소설의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이라고 딱 잘라, 한 번도 얘기하지는 않지만 짧디짧은 대화의 흐름 속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선량함'과 '진심'이 은연중에 '사랑'을 가리키고 있다. '무재'와 '은교', 그들은 서로를 의지한다. 일반적인 언어의 통념을 부숴버리는 이상한 말장난 - 이를테면 "가마" (38쪽) 같은 -, "네"라는 무심하고도 짧은 대답 뒤에 숨은 위로의 무게에 그림자의 두려움을 잠시 잊혀둔다. 무거운 어둠과 같은 삶 속, 그들의 대화는 작가의 말 속의 "여전히 난폭한 이 세계에 / 좋아할 수 있는 (것)들"에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따뜻함이다.

 '무재'와 '은교' 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사람들 - 여 씨 아저씨, 유곤 씨, 오무사 할아버지 - 의 이야기 또한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작가는 세심하게, 또는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무척이나 '선량하게' 그들의 삶을 살포시 드러낸다. 말하자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감각적인 건물이나 예쁜 골목에서, 수년 전 무너졌을 누군가의 슬픔을, 떠나지 못하고 땅속에 묻혀버린 그들의 마음을 작가는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손길은 거칠지 않고 조심스럽다. 조심스럽고 따뜻해서, '씨발'이 난무하던 『야만적인 앨리스씨』보다도 더욱 처연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어두운 잿빛의 그림자로 어두워진 삭막한 세계인데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문장 속의 품은 무게 만큼은 무겁지 않은 문장들로 채워진 탓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함께 '걷고 있는' 그들의 모습 탓이다.

 겹치고 겹친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손을 잡고, 노래하면서…….

​은교 씨.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Written by. 리니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39쪽)

요즘도 이따금 일어서곤 하는데, 나는 그림자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저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까 견딜 만해서 말이야. 그게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맞는 것 같고 말이지. 그림자라는 건 일어서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그렇잖아? 물론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리면 그때는 끝장이랄까. 끝 간 데 없이 끌려가고 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하여간에 말이지, 라면서 여 씨 아저씨는 서랍 속에서 드라이버를 꺼내 앰프 껍질에 꽂힌 나사를 돌리기 시작했다. (46쪽)

입이랄지, 검은 것 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조그만 구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가져와, 가져와, 라고 말하다가 이내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말은 더는 말이 아니고, 이상한 방식으로 발성되며 발성 자체가 목적인 듯한 미미, 라거나 가가, 하는 소리일 뿐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버려진 상자 같은 건 벌써 며칠 전에 어딘가로 사라졌으므로 도무지 가져올 수는 없다고 이모가 빌고 내가 빌고 마침내 둘이 엎드려서 빌어도 용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마루에서 어머니와 그녀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림자는 이때쯤 검디검게 휘어져서 어머니의 몸을 빈틈없이 덮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걸 모르거나 상관없다는 듯 그림자를 내버려 둔 채로 이따금 입을 벌려 미미, 하고 가가, 하며 그림자의 말을 따라갑니다. (70쪽)

가동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는 나는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넓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앉아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다. 작네요, 라고 멍하게 말하자 무재 씨가 빈 우유갑을 반으로 접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좁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며 잔디밭 너머를 바라보았다. (111쪽)

은교 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 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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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코의 발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 스토리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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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나서

 

 일본소설과 친하지 않은 제가 이 작품에 대해 알게 된 건 '조경란' 작가의 『백화점』에서였습니다. 백화점 구두 매장 안에서, 여성 손님의 발에 구두를 신겨주고 있는 남성 판매원의 모습을 보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후미코의 발』을 생각했다는 작가.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손님의 발의 극적인 굴곡의 하이힐을 신겨주는 판매원의 모습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발을 만지는 게 좋은가요? 물어보고 싶다. 싫어도 어쩔 수 없죠. 뭐.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그러나 만약 네, 난 여성의 발을 만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라고 대답하면 뭐라고 말할까?" (84쪽)

 

 

 책 속에는 두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탐미주의(耽美主義 : 유미주의라고도 부릅니다)의 거장이라 알려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후미코의 발』, 그리고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한다는 '다야마 가타이'의 『소녀병』입니다. 먼저, 『후미코의 발』은 젊은 화가 지망생 '우노'가, 노인 '인쿄'와 그의 첩 '후미코'를 관찰하며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서술 속에서, 제가 처음으로 만나보는 낯선 시선이 등장하지요. 화자인 '우노'가 '인쿄'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후미코'를 발견하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그 여자 자체에 매료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모든 것들을 지나치게 집요한 시선으로 바라보지요. '후미코'의 실루엣, 정취, 눈, 코, 입, 속눈썹, 자세에서 나오는 그녀의 기분까지 샅샅이 훑어갑니다. 그렇게 그녀를 관찰하다 보니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지요. 노인이자 남편인 '인쿄'의 시선 또한 자신과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 남자로 태어나 살기보다는, 이렇듯 아름다운 뒤꿈치가 되어 후미코의 발 뒤에 붙을 수 있다면 그쪽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미코의 발뒤꿈치에 밟히는 다다미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의 생명과 후미코의 발뒤꿈치 중 이 세상에서 어느 쪽이 더 존귀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일언지하에 후자 쪽이 존귀하다고 대답할 겁니다. 후미코의 뒤꿈치를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죽을 수 있습니다. (45쪽, 후미코의 발)

 

 

 그들의 '후미코'를 바라보는 감정은, 사랑보다는 끈질긴 숭배입니다. 정신학적 용어로 '페티쉬'(성적 페티시즘)이죠. 그녀의 발에 밟히며 죽고 싶다는 두 남자의 병폐를, '뿌리깊은 성정性情'을, 그 에로틱한 바라봄을 작가는 강한 인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자의 몸 한 부분에, 성적으로 지배당하며 고백하며 서술하는 글이, 누군가를 발가벗기는 듯한 불쾌함까지 느끼게 할 정도인데, 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이 '악마주의'라고까지 불리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무서운 점은 이 작품이 1919년에 쓰였다는 사실이지요.

 

 

 그다음에 등장하는 『소녀병 少女病』은 전의 이야기와 비슷한 듯 다릅니다. 전차 안에서 아름다운 소녀들을 감상하고 아름다운 신체시를 쓰는 '스기다'. 그의 탐미 대상은 '소녀'이며 『후미코의 발』과 마찬가지로 숭배의 시선을 보내지만, 속까지 훑어내는 그 시선과는 조금 다릅니다. 시각적으로 존재하는 아름다운 욕망의 대상인 '소녀'를 단지, 감상적으로만 그려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속되고 너저분한 세상에 저렇게 고운 처녀가 있을까"하는 그의 독백에서도 드러나듯이, 작가는 혹독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그의 시선을 미화합니다. 그 시선 속에는 청춘에 대한 갈망, 나이듦에 대한 호젓함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죠. 이런 주제와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은교』도 떠오르더군요.

 

 

 작가가 다른 이 작품을 2편만 묶은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두 작품에 비슷한 면모가 있긴 하더라도, 연관되는 다른 작품들과 묶어 조금 더 묵직한 울림을 주는 한 권의 책으로 만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읽어보니 두 작품만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묘사와 여운은 무척이나 커서 두 작품 다 큰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 비슷한 시선을 다루면서도 서로 다른 선상에서 충돌하지 않는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어 좋은 조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Written by. 리니

일본 소설/ 단편 소설집/ 탐미주의, 자연주의 소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여자는 그 빈집에 올라가려고 툇마루에 앉아 진흙으로 더러워진 오른발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상반신을 획 왼쪽으로 기울여 거의 쓰러질 듯 비스듬히 된 몸체를 가느다란 한 팔로 겨우 지탱하며, 왼발의 발톱 끝으로 살포시 땅을 밟으면서 오른쪽 다리를 `<자` 형태로 구부려 오른 손으로 그 발바닥을 닦고 있는 자세, 그 자세는 옛날 유명한 우키요에 화가가 여자의 매끄러운 몸매 변화에 얼마나 예민한 관찰을 했으며, 얼마만큼 깊은 흥미를 갖고 있었는가를 증명하기에 충분할 만큼 놀라울 정도로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감탄한 것은 여자의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손발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데, 그저 쓸데없이 구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예민한 힘의 균형이 전신에 가늘게 퍼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30쪽, 후미코의 발)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설명하려고 애쓰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선생님께서는 대강 아셨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한 여인이 수양버들처럼 팔다리를 느슨히 풀고 멍청히 멈춰 서 있거나 흐트러져 잠든 모습도 정취가 있습니다만, 이 그림처럼 전신을 굽이굽이 완만하게 구부리며 채찍처럼 탄력성을 표현해야 할 곳을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린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거기에는 `유연함`과 동시에 `강직함`이 있으며, `긴장감` 속에 `섬세함`이 있으며, `움직임`의 이면에 `우약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리를 쥐어짜며 목구멍이 찢어져라 쉴새없이 지저귀는 꾀꼬리의 필사적인 귀여움이 나타나 있습니다. (33쪽, 후미코의 발)

어쨌든 재미있지 않나? 스스로도 건전하다고 자처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인정받던 사람이 지금 와서는 불건전도 이만저만이 아니니 말이야. 퇴폐의 표본으로 전락한 것은 본능을 업신여겼기 때문이야. 너희들은 내가 항시 본능 만능설에 사로잡혀 있다고 공격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무시할 수 없는 거라구. 본능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생존할 수 없어. (79쪽, 소녀병)

`서풍에 휘날리는 누런 먼지…… 외롭다. 외롭다. 왠지 오늘은 더욱 외롭고 괴롭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녀의 머리 향기가 그립다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또 사랑 할 수 있다 한들 아름다운 새를 유혹할 수 있는 날개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87쪽, 소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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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씨
다비드 넬로 지음, 최이슬기 옮김 / 김영사on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 나서

 

 어느 날 '네, 아니오'를 사용하지 않는 언어적 금기를 정해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계적인 업무 속에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외치는 바틀비의 모습도 어쩌면 자신만의 (의지에 따른 게 아닐지라도) 법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틴 씨'는 달랐다.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선언할 때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고 절망과 우울함이 가득했다면, '루틴 씨'의 일상이 아무리 지루하다 하더라도 행복을 찾을만한 소지가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걱정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가 갑자기 이상한 법칙을 정했느냐 하면, 단순히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의 직업은 호텔리어, 한순간 몰아쳤다가 계절이 바뀌면 떠나는 여행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가 부지기수였다. 반복되는 일상과 추워진 날씨는 그에게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무언가가 삶을 슬프게 만들고 있다"고 느끼게 했다. 우리에게 어느 순간 우울함과 무기력증이 찾아오는 것처럼, '루틴 씨'의 마음도 그러했다. 어쨌든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로 그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지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절대로 '응'이나 '네'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겠다. '맞다', '그래', '오케이' 같은 '긍정'에 해당하는 대체어도 절대로 쓰지 않겠다.

맞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겠다. (25쪽) 

 

 그리고 이 법칙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발틱 해에 1천 크로나(한화 15만 원 가량) 세 장을 던져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이 우스꽝 스러운 언어적 금기는 어느 순간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루틴 씨'는 '아니오'와 '나'라는 일인칭을 전혀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어딘지 모르게 장난스럽지만 제법 진지한 그의 도전은 주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결국엔 '행복'에 대해 시사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만의 남다른 철학 또는 규칙을 정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린 날 걷던 보도블록의 한 색깔을 정해서 밟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장난부터,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위해 작은 접시에 먹겠다는 작심삼일의 포부와 책장 속의 책을 진열하는 자신만의 방식까지……. 그 모든 것들은 사소해 보였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정해진 기로를 비트는 작은 표지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난이 너무 심해서는 안 되겠지!) 그 기로는 직진으로 갈 수도 있고, 좌회전, 우회전할 수도 있으며, 어쩌면 뜻밖의 상황으로 유턴해서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할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은 바쁜 시간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주말을 이용해 데이트하고, 친구와 정기적으로 만나 스트레스를 풀고, 이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자신만의 취미를 생성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일상탈출을 위한 시도지만,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조금 더 비틀어보는 것은 어떨까? '매주 월요일에는 빨간 구두를 신는다', '매일 11시 55분에 향초를 켠다'와 같은 엉뚱한 법칙으로 일상의 반전을 시도해보자. 중요한 건 두려워하지 말 것, 그리고 진지하게 수행할 것. '루틴 씨'처럼 말이다.

 

 

 

 

 

Written by. 리니

스페인 소설/ 중남미 문학/ 청소년 소설/ 언어적 금기/ 독특한 소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루틴 씨는 시간 날 때마다 단어를 가지고 놀거나 말장난을 하거나 쌍둥이에게 농담하는 것을 좋아했다. 젊었을 때에는 `말을 먹어버린 남자`라는 제목의 연극 대본을 한 편 쓴 적도 있었다. 어쩌면 바로 그 대본에 대한 추억이 그의 삶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은 것인지도 모른다. 루틴 씨는 지침서를 꺼내어 아래에 추가로 적어 내려갔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절대로 `응`이나 `네`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겠다. `맞아`, `그래`, `오케이` 같은 `긍정`에 해당하는 대체어도 절대로 쓰지 않겠다. 맞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겠다.

그는 이거면 그의 일상에 새롭고 흥미로운 상황이 생길 거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25쪽)

이런 모든 도전에도 루틴 씨는 여전히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아니, 자신의 삶이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얼굴을 보고,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루틴 씨에게는 새로운 삶을 위한 지침서에 넣을, 더 대담하고 새로운 방안이 필요했다. 루틴 씨는 침대에서 살그머니 일어나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한 계획을 하나 더 추가한 후, 루틴 씨는 침대에 들어와 곧 단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꿈에서 `응`이라고 세 번이나 말하고 무려 구천 크로나를 잃어버렸다. 그건 악몽에 가까웠다. (32쪽)


"아빠, 잘 하세요, 네? 우리가 지켜보고 있을게요." 토르가 말했다.

"무엇보다 이상한 말은 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아빠를 정신병원에 가둘지도 몰라요." 마그나르가 충고했다.

"페트루스는 최선을 다할 거야." 루틴 씨는 쌍둥이에게 대답하며 어쩌면 마그나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 보니, 그는 빈 맥주병에 삼천 크로나를 넣어서 발틱 해에 던져야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걸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인생 전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루틴 씨는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기에, 그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가겠다고 약속한 이상 그는 꼭 그렇게 해야만 했다. (87쪽)

"누가 저 병을 발견할까요?" 마그나르가 말을 꺼냈다.

"누가 되었든 얼마나 놀랄지 상상이 가요?" 토르가 말했다.

"어쩌면 돈이 든 병을 주운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도 있겠지." 루틴 씨가 말했다.

"그게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사스키아가 남편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사스키아.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요. 누구에게든 약간의 운은 언제나 필요한 거니까……."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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