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너며 NFF (New Face of Fiction)
카릴 필립스 지음, 안지현 옮김 / 시공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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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F (New Face of Fiction) 라는 시공사의 문학 시리즈의 이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소설에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었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장편소설에, 인물과 형식이 다른 네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으면서도 조화롭지 못하거나 생뚱맞지 않았다. 문체 또한, 아름다웠다. 그리고, 여러 개의 악장이 모여 하나의 교향곡이 이루어지듯, 이야기는 작가가 말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통해 강하고 아름다운 한 편의 장편소설로 탄생되어 있었다.

 

절박한 어리석음이었다. 흉년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팔아넘겼다. (11쪽)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네 편의 이야기는 미국 대륙 곳곳으로 흩어진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서문'과 공통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강 건너, 미국 남부 혹은 또 다른 어떤 곳으로 도피하고 떠나야만 했던 그들의 흔적을 추적한다. 작가는 그들의 삶을 그저 '보이는 대로' 추적하고 잔잔한 문체로 전해주며, 그 속에 품은 '경고'나 '물음'을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먼저,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1부는 자신이 교육하고 지원하여 아프리카로 선교를 보낸 노예 '내시'를 찾아 나서는 주인 '에드워드'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얻은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창조된 땅에 뿌리내리려 했던 모순된 자신감을, 그로 인해 아프리카인이자 선교사였던 '내시'가 받은 상처와 병폐를 지적한다. 2부와 3부에 숨은 이야기는 가장 끔찍하다.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2부는 강 건너 지옥으로 떠나지 않기 위해 개척자로 향하다가 죽어갔던 마사의 이야기를 아주 생생한 증언으로 다룬다. 그리고 3부는 노예를 수송하고 '무역'했던 선박의 항해일지로, 아주 건조하게 당시의 (잔혹한) 일상을 전한다. 가장 분량이 많았던 4부는 언뜻 '흑인 디아스포라'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외된 한 여성과 그가 사랑했던 흑인 병사와의 이야기를 통해 '흑인 디아스포라'에서 더욱 대상을 확대한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메시지로 목소리를 높인다.

 

버림받고, 뿔뿔이 흩어지고, 상처받고, 차별받고, 소외되었던 모든 사람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소설 『강을 건너며』. 작가가 남겨놓은 어떤 '여지'와 관련해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내시. 나의 마사. 나의 트레비스. 그들의 부서진 삶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또 다른 '내시', '마사', '트레비스'의 삶의 기록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105쪽,
매디슨은 이 모든 질문을 빨아들인 후 뒤로 돌아 자신의 전 주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에드워드의 얼굴 반쯤은 짙은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춤추는 불길에 따라 그 색깔과 형태가 바뀌었다. 매디슨이 질문 세례를 받고 답을 하려고 하는 찰나에 에드워드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손을 위로 올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매디슨의 손을 맞잡았다. 고향과 자신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너무 멀게 느껴진다고 매디슨에게 부드럽게 속삭였고, 백인과 흑인을 포함하여 자신의 종족이 있는 곳에 있길 원한다고 말했다. 매디슨은 에드워드를 쳐다보며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점점 더 꽉 쥐어오는 손을 신호로 보고 매디슨은 '아니요'라고 답했다. 작은 오두막에 그 말이 퍼져 나갔고, 그 묵직함과 의도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압도했다.

 

118쪽,
이제 다시 그는 우리 쪽으로 몸짓을 한다. 내 목은 타 들어간다. 일라이자 메이는 몸을 뒤척이고 나는 아이의 손을 잡는다. 아이가 운다. 조용히 하라고 아이를 꼬집는다. 미안하지만, 아이를 위해 그렇게 한다. 경매인은 상인들을 향해 오라고 손짓한다. 그들은 처음엔 남자들을 구경한다. 상인 한 명이 막대기로 루카스의 알통을 찌른다. 상인이 남자를 사면, 강 아래로 데려간다. 죽음을 향해. 그 정도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집안일을 할 노예가 필요한 가족이나 번식할 처녀가 필요한 농부들은 건너편에 있는 우리를 보고 차례를 기다린다. 나는 번식하기엔 너무 늙었다.

 

183쪽,
사랑하는 당신, 나 역시 심한 역겨움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하오. 하지만 증오심이야말로 나의 자연스러운 열정을 설명하기엔 그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한 듯하오. 왜냐하면 이런 식의 무역을 계속 마음껏 하면서 깊은 신앙심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듯, 실로 한 사람의 마음 안에 사랑과 증오심이 서로 싸우며 공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오.

 

215쪽,
그는 서른 하고도 일곱의 나이였다. 그들이 내가 있는 걸 잊고 끄덕거릴 때가 난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랜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는지 난 궁금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랜과 나는 한 몸이어야만 하니까, 세상에 대항해 한 팀이 되어야 하니까. 남자와 부인. 그이와 나. 내가 그들 편을 들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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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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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싶기도 하고, 포기한 채 입을 다물고 싶은 마음도 든다. 쓰다 보면 감정이 과잉될 것 같아 주저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내가 과연, 넘칠 만큼이 아니더라도 감정을 느낄 자격이 있는 것인지 마음 한쪽이 싸해지기도 한다. 부끄럽다. 이 책을 왜 끝까지 외면해왔을까.


 꾹꾹 눌러 넣은 문장 속에 많은 감정이 뒤섞인다. "동호야"라는 가냘프고 애처로운 목소리와 그것과는 반대로 너무나 강한 이야기들이 마음 한쪽을 콕콕 쑤신다. 우리가 흘러가는 이야기로 듣고, 여러 곳에서 읽고 보아왔던 '기억'들이 우리 마음을 강하게 죄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하지만 문득 그 감정이 간접적으로나마 그것을 경험한 사람 만큼에 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숨 쉴 수 없을 만큼의 아프고 슬픈 감정들은 어느새 일상 속에서 다른 일들 사이로 스르르 사라져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금방 잊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강'작가의 글은 이상하다. 도무지 빠르게 잊어버릴 수가 없다. '너'라는 이인칭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동호, 정대, 은숙 누나, 어머니, 수많은 사람의 눈을 통해 목격한 영상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텍스트 너머에 있는 독자들을 아주 조용히, 그곳으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성을 버리는 그 순간들,
인간이 순결함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겪어야 했던 모든 고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늘에서 양지로, 빠져나가야만 하는 애수 어린 과정을, 우리는 똑똑히 보고야 만다.
지켜보고 있는 우리의 눈은 시리다. 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작가에게도 분명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잔혹하고, 슬픔으로 흠뻑 젖은 시간과 공간을 마주하면서 고통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전달자의 역할로서는 더 많은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고민했을 것이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부담과 좌절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펜 끝에 모아둔 모든 이야기를 잠시나마 놓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현재의 한국문학에서 그려내고 있는 쓰디쓴 이야기 중에서도, 너무나도 견딜 수 없게 쓰디쓴 이 이야기는, 상처를 온전히 내보이면서도 희망적인 밝은 불빛을 내고 있다. 사실 밝은 빛이란, 어쩌면 어두운 곳에서의 작은 촛불 하나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촛불 하나의 잔상은 어쩌면 더 먼 곳까지 닿을 수 있기에.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확신보단 바람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동호야" 라는 가냘픈 목소리를. 소리없는 울음을. 본능적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미련스런 마음을. 그리고, 해야 할 일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무엇을 응시해야 하는지를.

 

- 담아둔 문장


45쪽,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79쪽,
거칠게 꿰매어진 문장들, 문단째로 검게 지워진 자리들, 우연히 형상을 드러낸 단어들을 그녀는 생각한다. 당신을. 나는. 그것은. 아마도. 바로. 우리들의. 모든 것이. 당신은. 어째서. 바라봅니다. 당신의 눈은.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그것은. 또렷이. 지금. 좀더. 희미하게. 왜 당신은. 기억했습니까. 숯이 된 문장과 문장들 사이에서 그녀는 숨을 몰아쉰다.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115쪽,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134쪽,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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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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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 혹은 스릴러 소설이라면,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의 쫄깃한 기분과 두근거림이 일품입니다. 그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일부러라도 이런 책들을 찾아 나서서 그 기분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숨막히는 속도감을 즐겨보려 하는 편인데요. 간혹, "이 작품 또 쫄깃하겠구나"하는 와중에, 독특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어요. 바로, 스릴러 속의 '감성'이죠. 이런 작품들은 작가의 관점에서 특히나 더 풀어내기 어렵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스릴러나 추리 쪽에서는 자칫하면 좀 지루해질 수도 있거든요.

 

통곡하던 남자의 모습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탐정 일을 하던 시절에 가장 싫었던 일이 피해자의 가족과 만나 그들의 슬픔을 직접 봐야 하는 것이었다. (24쪽)

 

이 작품이 작가와의 첫 인연은 아니고, 전에 『환상의 여자』라는 작품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창백한 잠』만큼 분량이 많았고, 그때도 묵직한 이야기 속에 세세한 감정선이 드러나 있어 미묘한 기분으로 읽었었죠. 이번 작품 또한 감성적인 부분이 크게 도드라진 느낌입니다. 끔찍한 살인사건에 너무 자세히 집중하지 않고, 그것과 관계된 사람들의 심리적 관계와 사회적 분위기에 집중하는 편이지요. 흡인력은 좋지만, 속도감은 '추리소설'치고는 약간 잔잔하게 느껴집니다. (이 느낌이 나쁘진 않고 좋았어요. 독자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독백과 상황 묘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은 폐허가 된 작은 어촌 마을을 묘사하면서, 그곳을 둘러싼 공항 건설계획에 대한 두 입장을 초반부터 드러냅니다. 공공개발과 자연파괴. 각각의 입장에 선 마을 사람들의 논쟁을 살인사건 이면에 다루고 있지요. 하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을 가리진 않으면서, 관련된 다른 사건으로 중심을 옮겨갑니다. 일종의 함정이자 반전인데, 저는 사회 비판 쪽으로 더 흘러갔으면 해서 살짝 아쉬운 마음은 있었습니다. 이야기 구성 면에서 뭔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우리는 부두 끝에 나란히 섰다. 항구의 콘크리트 슬로프에 양륙되어 늘어선 어선 중 몇 척은 선체가 녹슬고 낡아서 마치 난파선 같았다. 그 뒤편에는 키가 작은 집들이 납죽 엎드린 것처럼 띄엄띄엄 서 있었다. "뭘까요, 다쓰미 씨. 소중한 것들이 매일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267쪽)

 

하지만 폐허가 된 마을의 을씨년스러운 잿빛 풍경과, 그것에 몰입한 주인공의 모습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직 탐정답게 살인사건을 만나자 (마음은 밀어내지만 머리로는) 홀린 듯 빠져들어 가는 모습이 흥미롭기도 했고요. 왠지 작가가 이 작품에서는 살인사건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인공의 심리에 많은 공을 들인 느낌이었습니다.

 

여러 추리소설이 그러하듯이, 결말은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귀결됩니다. 그러기에 마지막까지 씁쓸함과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군청색의 세계 속에 오도카니 홀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는 폐허"를 다룬 남다른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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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리처드 포드 지음, 곽영미 옮김 / 학고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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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드 (지은이) | 곽영미 (옮긴이) | 학고재 | 2016-01-20

 

 

남겨진 생각들

 

 "나는 우선 우리 부모가 저지른 강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다음에는 나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라는, 이 책의 첫 문장을 보고 놀랐고, 『이방인』의 "오늘 엄마가 죽었다." 라는 문장 만큼이나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다음에 오는 문장에 난감해하고 말았다. "이 세상에 절대로 은행을 털지 않을 사람이 딱 둘 있다면 우리 부모님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부모님이 왜 은행을 털었을까.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필연과 우연이 뒤섞여있었던 것일까?

 '만약에'와 '나였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가 없다. 만약에, 나였다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한순간에 엎질러진 모든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었을까? 소설 『캐나다』는 한 가족을 뒤엎은 '나쁜'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공군 대위였던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가 은행강도가 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델'이라는 한 소년은 그 모든 상황을 바라본다. 여느 때와 다른 부모님의 아주 작은 변화의 행동들, 불안한 예감들, 미스터리하기까지한 상황들, 묘한 긴장 속에 있는 것 같은 순간들을 소설 속에서 아주 차분하게 살펴낸다.

 모든 것을 곧게 바로잡아주고 있던 '가족'이라는 기둥이 무너진 그에게 인생은 막다른 길에 불과하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고 나름대로, 거침없는 항해를 시작한다. 엄마가 들려주었던 시인 예이츠의 명언 "찢겨 보지 않은 것은 완전해질 수 없다"라는 말이 '델'의 인생 속에서 절대로 잊히지 않고 남아있는 것처럼 '델'은 계속해서 걸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땅을 발견한다. 부모님을 잃은 소년 혹은 미국인, 그 어떤 것으로도 대변될 수 없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는 곳, '캐나다 (Canada)'.

 소년의 길고 긴 항해는 최근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 『황금 물고기』속 소녀의 모습과 비슷해서, 코끝 찡한 감동이 일었다. "그런 상황에 부닥쳐 보기 전에는 어떻게 행동할지 아무도 모른다(213쪽)"는 말처럼, 우리 누구도 인생을 확신할 수 없지만, 그저 나아가고 노력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미스터리 인생에서, '내 삶의 증거'와 '내가 누구라고 믿는 것(411쪽)'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해주고 있었다.

 인생의 교훈을 차분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전해주었던 소설 『캐나다』. 이야기적인 부분에서는 지루함 없이 읽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각각 맞닿은 사건들과 문장에서 삶에 관한 차분한 시선이 느껴져서 여운이 깊게 남았다. 소설의 긴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잔잔한 물결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Written By. 리니

 

내게는 이것이 매혹적이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절벽 끝처럼 느껴진다. 표면적으로는 삶이 변한 게 없었던 만큼 두 사람은 여행하는 내내 이야기하고 비밀을 나누고 애정 섞인 말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그때 흉악범이 아니었다. 정상(正常)이라는 것이 얼마나 멀리까지 연장될 수 있는지 놀랍지 않은가.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면 육지가 점점 작아지듯, 아니면 기구를 타고 대초원의 바람기둥에 휩쓸려 올라갈 때 땅이 넓어지고 평평해지면서 아래 세상이 점점 흐릿해지듯, 정상으로부터 멀어지면서도 어찌 하여 여전히 그것이 시야 안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127쪽)

"학교는 걱정하지 마."

"계획을 얼마나 많이 세워 놨는데." 내가 말했다.

"나도 알아.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어." 어머니는 이런 어리석은 대화를 그만하고 싶은지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고 안경 너머로 눈을 깜박였다. 지쳐 보였다. "유연해져야 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유연하지 않으면 큰 사람이 될 수 없어. 엄마도 유연해지려고 노력해."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같았다. "이치에 닿다"라는 말처럼. 나는 어떤 유연함을 뜻하든 내가 그렇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188쪽)

나는 지금 동화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동화되거나 그들을 위해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 동화되었다. 동화되는 건 그렇게 어렵지도 위험하지도 영구적일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자 또다른 해방감을 들면서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고, 앞서 말했듯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듯했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사람 말이다. 움직임은 세상 만물의 섭리였다. 좋든 싫든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내가 어떻게 느끼든 계속 변할 것이다. (330쪽)

플로렌스는 뻣뻣하게 일어섰다. 그녀는 키가 크지 않았고 어머니처럼 날씬하지도 않았다. 갈색 코르덴바지를 솔로 털어 낸 뒤 몸이 추워졌는지 온몸을 흔들고 양어깨와 펄럭이는 모자를 툭툭 쳤다. 나는 격자무늬 재킷을 입고 있었다. 확실히 추웠다. "여기가 캐나다여서 그럴 걸." 그녀는 히죽 웃었다. "우리가 늘 정해 놓고 다니는 건 아니잖니." 그녀가 말했다. "때로는 그냥 그곳에 닿는 거지. 아서가 그랬어. 그렇게 된 거야. `난 미국에 가는 게 아냐, 파리를 떠나는 거지.` 이건 위대한 예술가 뒤샹이 한 말이야. 그가 내 그림을 보았다면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을걸." 그녀는 우체국과 텅 빈 거리 - 우리 앞 광경 - 를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난 맘에 들어. 전부는 아니지만." 그녀가 말했다. (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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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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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포터 (지은이), 김이선 (옮긴이)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 원제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남겨진 생각들  

 

 

 제목을 보면 과학책인 것 같지만, 과학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과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옮긴이에 의하면, '리처드 파인만'의 과학 이론 중 하나인 <양자 전기 역학 : 빛과 물질에 관한 이상한 이론>이란 게 존재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느 누구도 빛 입자가 자신의 경로를 선택하는 과정을 알지 못하며, 특정 입자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볼 때까지 과학에 해당하는 어떤 지식의 문장이, 인생에 대입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다루는 소설들은 많다. 살면서 벌어지는 불가피한 우연들, 그것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많은 소설이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묘사의 방식은 작가마다 문체마다 현저히 다른데, 작가 '앤드류 포터'의 방식은 무척 특이하다. 어두운듯하면서도 온전히 까만색은 아니고, 밝게 빛나고 있지는 않다. 시간이 흘러 지나갔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을 회상하는 방식이 그렇다. 길을 걸어가다 숨겨져 있던 구렁 속으로 빠지듯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서 떠오르는 서늘한 기억들을 (「구멍」), 그와 같이 어떤 사물 혹은 글자로 순간의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찾아갔던 기억 (「코요테」) 을, 작가는 부드러운 손길로 건져낸다.

 후회는 필연적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후회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들은 흘러간 것을 그리워하거나 되돌리고 싶다는 것보다는 그저 응시하고 있다. 누군가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도, 얼마만큼의 개입이 필요한 것인지 (「아술」) ,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면서도 행하게 되었던 미련한 모든 일과 자기방어에 대하여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느꼈던 것을 응시하며, 아주 건조한 말투로 그려낸다. 후회가 남은 기억들은 현재에 와서야 아주 큰 타격으로 우리의 일상을 내리친다. "그럴 때마다 발을 디디는 곳을 보지 않았던, 아래쪽에 무엇이 있는지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던 우리의 대책 없음에, 우리의 눈먼 행동에 아직도 몸이 떨려온다." (「외출」) 그때는 대단치 않다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의 말과 행동들이, 삶에 이면 속에서 툭 하고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을 느껴보지 않은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기에, 이 소설들은 마음 속으로 깊이 다가온다.

 

 

 그러나 어딘가 싸한 이야기들이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빛나는 어떤 것으로 환기되는 것은 이런 부분들이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폭풍」), 혹은 "돌아왔네", "돌아왔어" (「코요테」)의 대화들 속에서, 툭툭 털어내는 손짓을 우리는 본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회상 속에서도, 그때의 기억을 품을지라도 그것에 끔찍해 하며 살아가기에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어쩔 수 없음을, 지나간 기억을 바꿀 수는 없음을 인지하고.

 

 

 끊어 읽어도 좋은 '단편'들이지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내도 좋을 것이다. 단편과 단편이 비슷한 부분으로 연결되고, 마지막 문장들은 그저 책을 덮어버릴 순 없게 만드는 진한 여운들이 있다. 이제는 책장에 쏘옥 박혀 있는 그의 신작 장편 『어떤 날들』을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괜찮을 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는 내 품에 안긴 그녀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녀가 아술에 대해, 이제 그 아이에게 벌어질 일에 대해, 그 아이의 부모에 대해 해야할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자기 집 부엌에 서 있는 그 아이의 아버지, 전화기 너머로 멀게 들려올 그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괜찮을 거야, 나는 다시 말한다. 그냥 찰과상이야. 그러나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그녀의 척추를, 등의 긴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렇게 몇 분여를 보낸 후에야 우리는 마침내 뒤돌아 우리의 지나간 행동을 직면한다. (89쪽, 아술)


나는 그 순간, 그제야 우리 사이에 지금껏 말을 넘어선 교감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는 그때 그가 너무나 쉽게 나를 이해해버리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 그가 훗날 내게 그랬다. 만약 내가 정말로 모든 일을 끝내고 싶었다면 자기에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는 것으로 끝을 보았을 것이라고, 자신의 아파트로 직접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날 밤 그의 아파트 밖 거리에 서 있을 때 나는 내가 그와의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은 것은 그래야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내게 그런 물음을 던지고 나를 바라봤을 때 내가 대답하지 않은 것은 고집이거나 고의적인 거부가 아니었다. 그가 그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122쪽,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태너와 내게는 좋은 여름이었다. 최고의 여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금요일 밤이 오기 전까진 거의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다. 푹푹 찌는 날씨 탓에 낮에는 집 안에 틀어박혀 공포 영화를 보고 아이스티를 들이부었으며, 밤이면 태너가 모는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돌아오는 금요일에 할 일을 계획했다. 우리가 시간을,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부모님들은 말했는데,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 싶었다. 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반이 될 터였기 때문에 벌써 우리는, 우리가 별 볼일 없는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 여름은, 우리가 아직 용돈을 받고 일자리를 얻지 않아도 될 만큼 어릴 수 있는 마지막 여름이었다. (174쪽, 외출)

잠시 나는, 어린 시절 그곳에 앉아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를 디라디너 지난날의 늦여름 오후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덕 아래로 아버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 누나가 미소짓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251쪽,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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