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이토 씨
나카자와 히나코 지음, 최윤영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읽기 전부터 어떤 책을 판단한다는 것은 참 미안한 일이지만, 유독 (나를 향해) 강한 아우라를 뿜는 책들이 있다. 내게 소중한 책이 될 것 같은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이 책은 좋아야만 한다"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확 끌리는 그런 책들이 있는데, 『아버지와 이토 씨』는 분명 그 정도의 아우라는 아니었다. 그냥 '좋은' 느낌으로 다가와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따뜻한 시간을 보낼 것 같은 그런 예감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예상이 빗나갔다. 딱 일본의 감성 소설 느낌인 이 책이 뭐가 그리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며칠, 또 일주일이 지날 정도로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가족'이라는 소재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 '감성 소설'의 조건과 분위기, 그 모든 것들에서 이 소설은 아주 약간, 한 발짝 정도 물러나 있다. 웃겨지나 싶다가도 진지하고, 독특하다 싶다가도 정말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남자친구와 동거하는 집에 아버지가 무작정 짐을 싸고 들어온다는 설정은 기가 막힌데, 그 뒤에 오는 상황들은 현대의 가족 문제와 아주 닮아있기도 하다. 아버지와 딸의 미묘한 감정, 갈 곳 없이 떠도는 노인들, 가정을 이루는 복잡한 과정을 생각하게 한다. "누가 먼저, 그리고 누가 더 잘못했냐"는 물음이 불필요한 가족 간의 문제가 현실에서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 것처럼, 소설 속에서도 아버지의 비밀을 시원하게 터뜨리지 않은 채 그저 결과로만 가족들의 상황을 보여줄 뿐이다. (만약 다른 '가족 소설'이나 '감성 소설'이라면, 비밀을 터놓고, 이해하고, 시원하게 화해! 이런 순서였겠지만, 이 소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점이 재미있다.)

 아버지가 어딘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딸인 '아야'는 상반된 감정에 고민한다. 언제나 무례하고 티격태격했던 아버지가 맘에 들지 않지만, 그의 존재와 가족이라는 이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그들의 관계와 아버지의 진심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딸 '아야'의 동거남 '이토 씨'다. 시종일관 담담하고 여유로운데, 무례한 아버지에게 따끔한 말을 던질 줄 아는 대담함도 가진 독특한 캐릭터다. 아버지를 향한 딸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고, 답은 정해주지 않은 채 오로지 정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조언가이기도 하다. "도망가지 않으니까-"라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입버릇은, 어떤 부정적 미래에도 불구하고 딸이 아빠의 손을 잡게 하여주는 짠한 대사가 되기도 한다. 제목의 한 자리를 꿰찰 만큼의 공이다.

 이 책의 작가인 '나카자와 히나코'는 원래 희곡을 전문으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사에 힘이 있고, 장면 장면에 강력한 한 방이 있다. 아버지의 고향 집, 번개에 터져버리는 박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비교적 조용한 소설 속에서 번쩍, 하고 빛난다. 내가 이 소설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영화로도 나온다 하니 또 한 번 이 감동을 즐길 수 있음에 설레는 마음이다.


80쪽,

​상대 좀 해 주라는 마음과, 다시 어디든 나가 버리라는 마음. 상반되는 두 감정이 내 안에 있다. 어느 쪽의 감정이 보다 강하게 말로 스미어 나올까.

91쪽,

"이래저래 우울하던 때에 아이가 세 살 정도 됐을까,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 `이것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고. `육아가 힘든 시기는 대개 오 년 정도로, 그건 긴 인생 중 겨우 오 년이잖아.`하고. 한창 힘들 때에는 잘 모르기 쉽지만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야. 대부분의 것은. 그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꽤 편해졌어. 그 뒤부터는 `기간 한정, 기간 한정`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어."​

​ 설마 간마니와 씨의 입에서도 `기간 한정`이 튀어나올 줄은. 어쩌면 정말로 마법의 주문인 걸까.

136쪽,

똑 닮은 할아버지들은, 그러나 왠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다. 오래도록 살아온 작은 집에서 쫓겨난 개처럼 무료한 듯했다. 조금 전 자유 공간에서 본 여자들이 모두 반들반들 빛나고 생기가 넘치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여자들은 이곳에 오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는 느낌이지만, 할아버지들은 `강요받고 있다.`는, 그런 느낌.



208쪽,

​"……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말이야, 의미란 게, 세상 모든 일이, 그 한가운데에서는 좀처럼 안 보이잖아? 그 당시에는 `왜 이런 짓을.`하면서 어리석다고 생각하거나 귀찮게 여기기도 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아- 그런 의미였구나.`하고 수긍이 간다고 할까, 납득하게 되는 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삿포로의 여인
이순원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꽤 오래전부터 선생을 알아왔다. 고백한 적은 없지만, 선생을 이룬 것 중에 내가 은밀하게 샘내는 것이 있다. 선생의 대관령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있다고 해도 선생처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선생은 선생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관령을 말한다."

 

황정은 작가의 추천사가 인상깊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내내 줄곧 그 말에 수긍하게 되었다. 평소에 여러 책을 접하면서 항상 생각하던 것이 있는데, 소설가에게 모든 경험은 극복의 대상이든 소중한 것이든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것이다. 이순원 작가의 경우, 그 경험은 '고향'이란 곳에 있으며, 아주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이전에 읽어봤던 작가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첫사랑'과 '고향'은 중요한 코드로 등장하며, 둘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은 동일하다. 되돌아갈 순 없지만 아련한 추억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고 각자의 생활을 겪으면서 잊게 되었던 그것들은, 어느 순간 우연히 물꼬가 트인듯 흘러나온다. 하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또 하나가,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것이다. 그때는 첫사랑인지도 몰랐던 '연희'와 대관령을 떠돌았던 기억도, 그의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오수도리 산장과 길 아저씨에 대한 기억들도, 그들과 나눴던 모든 대화의 기억들도 '고향'과 '첫사랑'이라는 이름 속에 아로새겨진다. 왜 잊어버렸는지 모를 아련한 기억들과 순정한 시간들은 대관령의 따뜻한 풍경 속에서 그려진다.

 

사랑했던 누군가나 고향의 어떤 사람들이나, 누구 하나 더 부각되는 것은 없이, 작가는 순수하고 다정하게 그 추억들을 차곡차곡 꺼내보인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못하고 흘러갔던 것들에 대해 슬퍼하거나 회한하는 마음 없이, 그저 그렇게 지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다독인다. 단 하나 안타까운 시선이라면, '연희'의 아버지이자 한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유강표'라는 존재다. 빠르게 변화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던 아쉬움은 소설 속에서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감정이지만, 그것 또한 극복의 여지가 있기에 아주 슬프지만은 않다.

 

과하지 않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차분하게 쓰여진 글은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읽힐 것 같다. 특히 대관령의 풍경과, 일본의 삿포로의 풍경이 다른듯 겹쳐지는 절경이 일품이었다.

 


 


 

45쪽,
"지금 기자님께서 시간이 순정하다고 하신 말은……."
저쪽에서 말을 하다가 중간에 끊기에 주호도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가 싶어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제가 지난번 삿포로에 갔을 때 연희도 똑같이 그렇게 말했거든요."
"시간이 순정하다고 말인가요?"
"예. 지난번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는 대관령에서 참 힘들게 자랐어요. 집안 형편이 안 좋아 연희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때가 자기한테는 가장 순정한 시간이라고 했어요."
"그랬군요."
"그냥 순정하다는 말은 누구나 쓰는 말이지만 시간이 순정하다는 말은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닌데, 기자님이 그렇게 말하니 지난번에 연희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요."
"듣고 보니 그 말이야말로 순정하군요."


100쪽,
저마다 아버지들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톱과 자귀와 대패로 아들의 스키를 만들어주었다. 스키 앞머리는 불에 바짝 달구어 힘을 주어 휘었다. 스키에 신발을 끼우는 앞 바인딩은 깡통을 오려서 만들고 뒤축을 고정시키는 뒤바인딩은 철사를 꼬아 앞뒤로 끈을 묶어 신발을 고정시켰다. 스키화는 눈 위에서 신는 고무장화를 사용했다. 검정운동화보다 장화가 뒤축이 높고 든든해 나무스키를 발에 묶기가 좋았다. 양말도 두툼하게 신을 수 있었고, 신발 속에서 발목을 놀리기도 편했다. 스키폴도 대나무로 만들었다.

160쪽,
"열심히 일만 하며 지나가는 시간이나 인생을 즐기며 지나가는 시간이나 다 똑같이 귀한 `그때의 시간`이지. 열심히 일하고 나중에 폼 나게 즐기려 하면 `그때의 시간`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는 거야. 그건 청춘의 시간도 마찬가지고 장년과 노년의 시간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인생은 그때의 시간으로 즐겁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 거라고. 인생에서 다음이란 미래의 시간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 접근할 수 없는 과거나 마찬가지의 시간이지.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다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다음에 가면 그건 또다시 그때의 시간으로 접근할 수 없는 다음이 되는 거지."


196쪽,
대관령에는 어느 여인이 입다가 벗어 놓은 흰 치마처럼 겹겹이 눈이 내렸는데, 멀리 바다는 하늘보다 더 새파란 모습으로 겨울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는 트럭에서 내리지 않고 연희만 내리게 했다. 연희가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바다 멀리 엄마를 부를 때 그는 연희가 누구에겐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민망하지 않게 일부러 창문을 더 꼭 닫고 반대편 하늘과 맞닿은 흰 산을 바라보았다. 산이 아무리 험해도 눈이 많이 내리면 산의 전체 모습이 곡선처럼 부드러워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모리 아키마로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첫 문장이 좋았어요. 조금 의외였지요. 가볍게 생각했는데 진지하게 나와버려서. "청춘은 긴 터널이다. 누구나 눈을 꼭 감고 싶어질 정도로 밝은 빛을 향해 달리고 있을 터지만, 터널 한가운데에서는 빛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저 마구 달리는 이름 없는 영혼인 것이다." 그러니까요. 이름 없는 영혼, 나비와도 같은 청춘들이 주인공이고요. 아주 풋풋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그렇지만 왜 '취하지 않아'라는 말이 들어갔냐고요? 이 부분은 살짝 골 때립니다. 주인공이 '추리'를 좋아하는데 착각을 한 나머지 '추리 연구회가 아닌', 술독에 빠지는 '취리(醉理) 연구회'에 들어가게 된 거죠. 웃기는 건, 술독에 빠져 즐기고 즐기는 그들에게 미스터리 같은 사건들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소설은 이 작은 사건들을 5편의 연작 소설로 담았어요.

 

추리를 좋아하는 소녀, '조코' 그리고 어딘가 미스터리한 선배 '미키지마'의 살짝살짝 건드리듯 풋풋한 로맨스가 보이며, 기상천외해 보이는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아니, 사건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해프닝' 정도로 할까요? 이 책이 추리 소설이 아닌 로맨스이므로, 그들이 소속된 동아리가 '추리 연구회'가 아닌 '취리 연구회'이므로, 어떤 살인 사건이나 무서운 사건들이 아니라 어쩌면 진짜 있을법한 이야기나 해프닝 정도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조코'와 '미키지마'의 콤비는 어떤 추리소설의 콤비들 만큼이나 잘 어울리지요. 캠퍼스를 배경으로 잡은 만큼, 그들의 유쾌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깊게 몰입할 수는 없었던 게 아쉬웠어요. 청춘 연애 미스터리라는 신선한 장르는 좋았지만, 어느 하나 확실히 잡아주는 게 없어서 애매한 느낌이었지요. 신선한 조합이 될 거라는 생각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으나, 그 기대감은 싱거워졌습니다. 그리고 묘하게 일본틱한 대사들은 읽는 내내 툭툭 걸렸지요. 예를 들면 이런 부분들입니다.

 

첫인상은 '휴일에 골프 치면서 땀을 빼고, 연인에게 바비큐를 강요할 것 같은 아웃도어 착각남'이라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경박한 채로도 어른이란 게 될 수 있구나.'라는 말의 대표 격인 오라를 뿜어내고 있어서, 나는 지레 거절 모드에 돌입했다. (106쪽)

 

꽤나 특수한 짬뽕이 아닐 수 없다. (113쪽)

 

청춘의 통통 튀는 상큼함을 표현했던 것일까요. 그런 면에서 번역은 아주 놀랍게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합니다만, 진지한 부분은 또 너무 성숙하리만큼 진지해서 가벼운 장면이 더 어색하게 보이는 함정이 있었어요. 작가가 일본에서 출판사와 재단이 협력해 주최하는 '애거서 크리스티'를 수상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좋은 문장들이 많이 보여서 더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술에 취한 듯, 사랑에 취한 듯 복잡하고 풋풋한 청춘의 감정을 그려낸 부분은 참 좋거든요. 가볍게, 술 한잔하듯 읽어내려 갔다면, 괜찮았을는지.

 

 

9쪽,
"조코, 인생에 뭘 바라니?"
선배가 그날 내게 그렇게 묻지 않았더라면 터널 도중에서 맨홀을 찾아내 시궁쥐와 놀며 일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스튜어트 서트클리프처럼 거기에 목숨을 놓고 잊어버리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자유라는 도랑에 빠져 죽을 권리를 방기했다.
선배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한 것이다.
"모르겠어요, 아직 아무것도."
"음, 그럼 말이지. 어쨌든 1년간 우리에게 맡겨보라고."
"뭘 말인가요?"
"네 인생을."

101쪽,
"취기란 게 다양한 곳에 있는 거로군요."
"사람한테도 있지. 세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어. 취하는 인간과 취하게 만드는 인간. 혹시 네 스스로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인간이라고 교만을 부릴 테면, 무엇으로 취하게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게 어때?"
무엇으로 취하게 만드는가.
생각하고 있자니, 창밖 풍경에서 고층 빌딩이 사라지고, 하천 부지를 넘어 녹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130쪽,
그러한 미주(美酒)를, 빨대로 마신다니. `아아 죄송합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시더라도 그 부드러움이 변하지는 않을 터라고 벌써부터 감동에 젖고 말았다. 물보다도 마시기 쉽고, 입속에 물이 있는데도 물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기분 좋은 게 있었다.
아무래도 혀가 내 자신이 된 것처럼 `이 순간 혀를 뽑히기라도 한다면 반드시 죽고야 말겠지.`라는 영문 모를 생각을 하는 건, 다시 말해 진미의 한가운데 있다는 뜻이다.
아아, 이건 바다다. 지금 나는 바다에 있다.

189쪽,
"목적이란 게 때로는 달처럼 구름 너머로 숨어 버리곤 하잖아. 인간이라는 것도 아무리 발아래를 똑바로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득 어떤 타이밍에는 뭘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생물이라고. 그래서 아마도 달을 보는 거겠지. 달이 뜨지 않는 밤에는 `그런 거지`라고 포기할 수 있고, 또 달이 뜬 밤에는 `좋아, 그렇다면 나도!`라고 할 수 있잖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많은 책들이 한데 얽혀 있던 한 에세이에서, 나는 이 작품을 처음 만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 같다. 글자가 만들어낸 문장들은 아름다웠고, 꽃으로 온전히 변해가는 '그녀'의 이미지는 관능적이고도 엄숙하리만큼 진지했다. 한순간에 강렬하게 기억 속에 각인되어버린 이미지는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만들었지만, 그 상상은 짧은 순간에 멈췄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꽃으로 변하고 싶었던, 꽃으로 '변해버려야만 했던' 그녀의 모습이 두렵기도 했으므로.


연작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소설은, 단행본의 가장 처음에 배치된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꿈을 꾼다. 시뻘건 고깃덩어리들, 살인, 뚝뚝 떨어지는 피, 끔찍하고 환멸스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입속에 느껴지던 미지근하고 물컹거리는 날고기의 감촉. 하룻밤의 악몽으로 날려버리기에는 어딘가 낯설고도 너무나 익숙한 그 광경들이어서, 그녀는 꿈을 꾼 이후로 고기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필연적으로 그래야만 했다는 식으로, 의지가 아닌 의무인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을 견디지 못 했던 가족들이 그녀의 입에 고기를 쑤셔 넣었을 때쯤, 덮어만 놓았던 곪은 상처는 살갗을 찢고 그 끔찍한 모습을 드러낸다. 어린 날의 그녀를 물었던 그 나쁜 놈의 개가 참혹한 모습으로 끝끝내 고기가 되어 자신의 입으로 들어왔을 때, 너무나 당연하게 그릇을 쓱쓱 긁어먹었던 흉포한 자신의 모습을.

 

마치 정상적인 여자 같았다. 아니, 실제로 정상적인 여자야.
그는 생각했다. 미친 건 내 쪽이지.

 

트라우마와 맞닥트린 '영혜'의 반응은 분명 소설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지는 <몽고반점>, <나무 불꽃>에서 우리는 고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모습보다 더욱 보기 힘든 어떤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예술에 대한 갈망과 육체적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는 <몽고반점> 속 '영혜'의 형부, 폭력의 굴레에 서 있었지만 생존을 위해 회피하고 외면했던 <나무 불꽃> 속 '영혜' 언니의 이야기까지……. 이 모든 것이 '영혜'의 '미친듯한' 행동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비틀려있는 지점을 깨닫는 순간 알게 된다. 그녀는 단지 상처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 발버둥치던 '그들' 중 한 명이었음을.


'정상적'이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 미친 것은 무엇일까. '영혜'의 행동이 어떤 신념이나 의지였든, 악몽으로 인한 의무 혹은 운명적이었든, 그것을 미친 것이라 규정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어떤 사람이, 특정한 범주에 끼워지는 것 그 자체가 억압이고 폭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현실의 이미지와 부합하기에 이 소설은 슬프고 아름다우며, 청초하게 꽃으로 변해 끝끝내 땅 속에 뿌리를 내려버리는 '영혜'의 모습이 애처로울 수밖에 없다.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140쪽)" <몽고반점> 속의 문장처럼, '한강' 작가는 아릿하고 쓰디쓴 상처를 독자로 하여금 함께 앓게 하고야 만다.

 

 

60쪽, <채식주의자>
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 있어. 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104쪽, <몽고반점>
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 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넓은 창으로 모래알처럼 부서져내리는 햇빛과, 눈에 보이진 않으나 역시 모래알처럼 끊임없이 부서져내리고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 몇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와, 지난 일년간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던 성욕조차 누그러뜨렸던 것이었다.

188쪽, <나무 불꽃>
그녀는 영혜의 입술에 조심스럽게 수박조각을 문지른다. 두 손가락으로 동생의 입을 벌려보려 하지만 굳게 다물려 있다.
…… 영혜야.
그녀는 낮은 소리로 부른다.
대답해. 영혜야.
동생의 굳은 어깨를 흔들고, 억지로 입을 벌리고 싶은 충동을 그녀는 억누른다. 고막이 찢어지게 영혜의 귀에 대고 고함을 지르고 싶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죽고 싶니. 정말 죽고 싶어? 자신의 안에서 뜨거운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를 그녀는 망연히 들여다본다.

207쪽, <나무 불꽃>
저 껍데기 같은 육체 너머, 영혜의 영혼은 어떤 시공간 안으로 들어가 있는 걸까. 그녀는 꼿꼿하게 물구나무서 있던 영혜의 모습을 떠올린다. 영혜는 그곳이 콘크리트 바닥이 아니라 숲 어디쯤이라고 생각했을까. 영혜의 몸에서 검질긴 줄기가 돋고, 흰 뿌리가 손에서 뻗어나와 검은 흙을 움켜쥐었을까. 다리는 허공으로, 손은 땅속의 핵으로 뻗어나갔을까. 팽팽히 늘어난 허리가 온힘으로 그 양쪽의 힘을 버텼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00여 쪽이라는 방대한 분량보다, 이 책에 붙은 여러 수식어가 오히려 약간의 두려움을 갖게 했다. 빨간책방 강력 추천, 전미도서상 수상작, 그리고 미국의 대표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이름까지. 그러나 그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컸기에, 이 책을 읽고야 말았다.

 

어떻게 이 책을 말해야 할까. 두꺼운 책의 위풍당당함이야 감수하고 읽어나가긴 했으나, 책은 '이야기적으로' 내게 흥미를 주진 못했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는 혹자의 말을 믿을 수 없었고, 초반이 가장 힘들다는 혹자의 말도 나와는 반대였다. 오히려 초반보다 후반부, 더 흥미로운 서술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쉴 새 없이 박아놓은 머릿속의 글들로 지쳐있을 때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덮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끝내고 나서, 이 책이 '역사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폭력으로 얼룩진 격동의 세계에 있었던 그들, '로레타', '모린', '줄스' 그들의 삶은 책 속에 쓰인 대로 "갑자기 풍선이 위로 부풀어 오르는 (341쪽)" 것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파격이기만 해서, 책 속의 그들을 따라가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에 의아한 감정을 계속 품었다.

 

그러나 '이야기적'으로 불만만 늘어놓아선 안 될 것이, 소설은 문학적으로는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던 사건들과 시점 변화, 순간순간 멈칫하게 하는 수많은 구절은 '조이스 캐롤 오츠'라는 이름의 명성이 어떻게 얻어졌는지 알 수 있게 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중반부쯤 나오는 '모린'의 편지다. 작가인 '조이스 캐롤 오츠'가 이 책에 관한 영감을 얻었던 실제 경험 (편지의 수신), 그리고 큰 상처를 받았던 '모린'이 깨어나는 이 부분은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아주 짜릿한 부분이다. 그들(them)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지 않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냉소적인 말들을 던지는 '모린'의 모습은 묘하게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텍스트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현실'과 '환상'이 줄타기하고 있는 듯 상상이 되는 부분이랄까.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

 

사랑을 갈구하고, 충동적인 선택을 반복하고, 집착하고, 끝끝내 살아가고, 때로는 사악하기까지 했던 '그들'은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기로 한 '모린'은 행복했을까? 끊어질듯 아슬아슬한 줄이라도 부여잡고 각박한 인생을 살아가야 했던 그들의 모습을, 언젠가 다시 천천히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29쪽,
나중에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언뜻언뜻 기억했다. 마치 화면이 뚝뚝 끊기는 옛날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웃기는 영화에 나오는, 웃기는 옷을 입은 사람들은 고통도 고뇌도 느끼지 못했다. 저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인간일 수 있을까? 줄스 웬들은 과연 아이였던 적이 있을까? 정말로 아이였을까?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의미의 아이였던 적이 있을까? 그런데 아이였던 적이란 과연 무슨 의미지? 예전 아이였을 때의 줄스가 그의 골격 안에 아직도 존재한다는 뜻일까?

197쪽,
이제 그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시내의 성당들이 지나가는 그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았다. 우울한 유혹.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을 신비로운 물살로, 비밀, 보상,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특별한 지식에 대한 약속으로 꾀어들인다는 전설 속의 거대한 동굴 같았다. 줄스는 개이치 않았다. 아버지도 그런 일에 신경 쓴 적이 없었다. 그 안에는 분노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두개골 위에 하얀 피부가 팽팽하게 덮여 있는, 매끈한 공백이었다. 그것이 아버지였다.

341쪽,
그는 자신이 육체라는 늪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몸부림치는 순수한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육체라는 지구, 중력의 힘, 죽음과 씨름하는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동안 그는 자신을 이렇게 보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폐한 순간들, 예를 들어 사우스웨스트 일대에서 설치고 다닐 때나 병원 침대에 누워 다시 살아나려고 애쓰고 있을 때에만 자신을 향해 한숨을 내쉬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인생은 미친놈이 상상한 이야기 같구나!`

449쪽,
모린의 몸의 조각들, 축축하고 따뜻한 그 조각들이 짝을 맞춰서 덩치 큰 그녀의 몸이 된다. 변장이다. 그녀는 불편한 잠을 잔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들릴까 봐 신경을 곤두세운다. 텔레비전의 단조로운 소리 너머로 새로운 소리들이 들린다. 바깥의 소리들, 계단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밖에 있는 사람들……. 아주 많은 사람들……. 따뜻한 날씨로 창문들이 열리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온다. 그녀는 본의 아니게 귀를 기울인다. 호기심과 수줍음과 약간의 분노, 두려움으로 귀를 기울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