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수록 놀랍고, 지극히 현 시점에서 반박할 수 없이 타당한 현상이란 것이 서글퍼진다. 이런 구조적 현상의 불합리한 일터 조건을 개선시켜 보려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묵살되고 있어, 우리도 차별적 대우를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걸 겪어 보지 못한 밀레니얼 세대가 어떻게 감당해 내겠는가!
종종 뉴스에 올라오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악조건의 현장에서 사고를 당하여 목숨까지 잃게 된 소식들이 오버랩된다.
읽을 수록 <요즘 애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요즘 어른>들이 개선하고, 개선되어야 될 문제들이 더 산재해 있는 듯 하다.

노동자들이 게을러지고 있거나 멀티태스킹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끈기나 야망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일터의 조건이 나쁘고, 더 나빠지고 있다. 일터가 불안하고, 더 불안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터가 어쩌다가 이렇게 시궁창이 되었는지 이해하려면, 일단 과거를 살펴보아야 한다. 임시직의 역사뿐아니라 컨설팅, 사모펀드, 투자은행의 얽히고 설킨 역사를 파헤쳐 보아야 한다. 일터에 어떻게 균열이 생겼는지, 기반 자체가 어떻게 깨져버렸는지, 그 결과로 생긴 불안정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해야 한다. - P173

하청 업체 활용은 컨설턴트의 사고방식에서 이익의 걸림돌로 여겨지는 노동조합을 제거할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노동자들이 이익의 걸림돌이라면, 힘이 있는 노동자들은 분명히 걸림돌일 테다.) 노조 문제의 해법은 간단하다. 회사에서 고용한직원을 전원 해고하고, 하청 업체를 통해 복지 혜택을 받지 않고 똑같은 업무를 해줄 사람들을 다시 고용하는 것이다. 회사가 모든 직원을 해고하고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신규 직원들을 직접 고용했다면, 그건 위법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경우에 회사는 조합을 대놓고 죽이지 않았다. 단지 조합에 가입한 직원들을 전부 제거했다. 갱신이 느린 노동법은 버려진 조합원직원들을 구제할 수단이 없다. 심하게 균열된 지금의 일터에서 위태로운 직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또 다른 교활한 술책은 프랜차이즈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 본부가 세계 전역에서 개인들이 소유한 브랜드의 수천 개 점포에 대해 직접 책임을 피하는 효과적 - P188

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는 식품을 준비하고, 유니폼을 세탁하고, 손님에게 제공될 음식 온도를 맞추는 방법들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세웠다. 하지만 와일이 지적하듯 기업 자체는 직원에게 초과근무 수당을 주지 않거나, 관리자의 직원 성희롱을 제재하지 않거나, 위험한 세척 물질 노출 등의 책임에서 꽁무니를 뺄 것이다. 회사는 이익을 원하고, 브랜드 관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직원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
이것이 2019년에 맥도날드 직원 다수가 심각한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회사를 고소했을 때 드러난 사실이다.
미주리의 한 직원은 자신의 상사인 지역 관리자를 반복적 성희롱으로 고소했으나 무고로 역고소당했다. 플로리다의 한 직원은 남성 동료 직원의 성희롱을 보고한 뒤 관리자에 의해 주당근무시간을 24시간에서 7시간으로 크게 삭감당했다. 맥도날드는 성희롱과 편견 없는 일터를 지키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주장하나, 2019년과 같은 소송이 3년 사이 벌써 세 번째였다.
성희롱을 견디는 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제 수단이 없어서, 혹은 신고로 해고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참는건-균열 일터의 여러 증상 중 하나에 불과하다. 2016년의 한연구에서는 패스트푸드 사업에 종사하는 여성 직원의 40퍼센트가 일터에서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 중42퍼센트는 일자리를 잃을까 봐 성희롱을 문제 삼지 말아야한다는 압박을 느꼈고, 이들 중 21퍼센트는 문제를 제기한 후 - P189

근무시간 감소, 바람직하지 못한 스케줄, 임금 인상 거부 등의 보복을 경험했다고 보고했다. 패스트푸드 업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호텔 프랜차이즈(퀄리티 인, 모텔 6, 더블트리 등) 직원의 80퍼센트가 별개의 관리 업체에 고용되어 있다. 2016년에 접객업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조합 유나이트 히어에서 시애틀의 객실 청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3퍼센트가 일터에서 희롱을 경험한 적 있다고 보고했다. 시카고에서는 그 비율이 60퍼센트까지 올라갔다. 그로부터 2년 전, 시애틀 유권자의 77퍼센트의 동의를 얻은 주민 법안이 있었다. 모든 호텔에서 근로자들에게 위급 시 누를 수 있는 패닉 버튼을 제공하고, 성희롱으로고발당한 이용객들을 ‘이용 금지 리스트‘에 올리라는 것이었다. 또한 100개 이상 객실을 보유한 큰 규모의 호텔이 직원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직원들이 직접 내야 할 건강보험료에 대해 매월 보조 지원금을 제공하라는 조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국 호텔숙박협회에서는 법안을 번복하라고 워싱턴주를 고소했고, 승소했다. 20 우리 호텔에선 성희롱을 용인하지 않으며 직원들을 소중히 여긴다고 주장하는 것과,
실제로 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자원을 할당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 P190

이런 발언은 노동자들, 특히 일터에 대해 다른 경험을 해보지 못한 밀레니얼들로 하여금 시궁창 같은 현실에 속한 기분이 오로지 자기 탓이라고 믿게 만든다. 어쩌면 당신이 진짜로 게으른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일을 더 열심히 하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고된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두가 참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당신의 가장 친한친구도 힘들어 하고, 여동생도 힘들어 하고, 동료 직원도 힘들어 하지만, 그건 모든 게 훌륭하다는 더 큰 서사에 등장하는 작은 일화일 뿐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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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음, 정소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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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로 촉망받던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딸로서, 일상의 삶을 살던 작가가 겪고 있는 ‘전쟁 일기‘ 그림 에세이다. 전쟁이 터지기 전날 밤엔 남편과, 새로 구입한 아파트 수리건에 대해 미래를 이야기 나눴지만, 하루 아침에 모든 삶이 황폐화 되어, 나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된다. 한 나라의 이기심으로 아이들이 어두운 지하실에서 ‘평화‘라는 글자를 적는 것을 바라보는 이네들의 마음이 어땠을지...모쪼록 진짜 평화가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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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7-12 16: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표지를 볼 때마다 너무 슬픕니다ㅠㅠ 아직도 그곳에 전쟁이 계속된다는 걸 생각하면 하… 잊지 말아야겠다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7-12 16:43   좋아요 3 | URL
그죠??ㅜㅜ
짧은 글과 그림들이 더 울림이 큰 것 같았어요. 도서관에 갔더니 이 책이 있더라구요.
지금 ‘전쟁은 여자 얼굴~‘이랑 같이 읽으니까, 아이러니 하면서도 뭐랄까? 전쟁은 더 끔찍하게 다가오네요.ㅜㅜ

mini74 2022-07-13 0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 아침에 란 말이 확 다가옵니다. 일상이 하루아침에 가족이 하루아침에 삶이 하루아침에 ㅠㅠ 정말 전쟁이 지금이라도 끝나면 좋겠어요

책읽는나무 2022-07-13 11:40   좋아요 2 | URL
그죠?
하루 아침에 어떻게 이런 참담한 일이???
정말 그 나라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가늠도 되지 않아요.
나라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을 떠나 난민의 길에 올라서서 불안해 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지???
끔찍한 일입니다.ㅜㅜ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할텐데 말이죠ㅜㅜ

독서괭 2022-07-13 1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맘 아팠어요 ㅜㅜ 짧은 글과 스케치들이 그 황망함을 더 잘 보여주는 느낌이더라구요!

책읽는나무 2022-07-13 15:50   좋아요 2 | URL
맞아요. 짧은 글과 스케치가 더 많은 뜻을 말하고 있는 듯 하여 맘이 아프더라구요.
특히 지하실의 칠흑같은 어둠!!!ㅜㅜ
 

2장 가난부터 배우는 아이들,
3장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이 소제목부터 뭔가 70% 정도 책 이야기를 말해 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지인의 딸과 딸 친구 얘기를 전해 들었다. 지금 대학 4 학년이니 ˝요즘 애들˝의 범위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딸 친구 두 명이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하여 각각 상담을 받고 있다고 하여 좀 놀란 적이 있었다.
한 명은 정말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인데 집에 들어가면 정반대의 성격이 되곤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집에 오래 있다 보니 그동안 속이 답답하여 상담을 받으러 다닌다고 하고,
한 명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서 상담을 받는다고 하여 듣는 내내 이해가 되질 않아 갸우뚱 했었다.
헌데 오늘 이 책을 읽다 보니 어렴풋이 혹시 헬리콥터 엄마로 인해 아이가 성인이 되어 혼자서 결정 내리고, 여가를 즐기는 단순함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쉴 때 죄책감을 느낀다는 아이!
집 밖에서는 더 없이 명랑했던 아이가 집에 들어가면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되는 아이!
밀레니얼 아이들을 보고, 평가하고, 습성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혀를 찰 일이 아닌 듯한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워 놓았으니 말이다.
모든 일에 쉽게 번아웃을 느끼게 만들어 버린 상황들이 큰 문제인 것이다.
자식 교육 어떻게 시켜야 될지? 좀 고민이 되는 책이다.
일단 더 읽어보는 수밖에....

"처음 제가 바쁘다고 느낀 건 일곱 살 때였어요." 1980년대워싱턴 D.C. 교외에서 자랐고, 스스로 혼혈이라 밝힌 케이틀린이 내게 해준 말이다. 처음엔 수영, 티볼(크리켓, 야구, 소프트볼을 4-6세 아동에게 맞도록 변형시킨 팀 스포츠-옮긴이), 미술 등 하루에 최소 한 가지 이상의 방과후 활동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엔 과외 활동에 대한 발언권이 생겼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무용과 연극에 전념했다. 맞벌이였던 케이틀린의 부모는 늘 풀타임으로 일했고 아빠는 자주 출장을 다녔다. 따라서 케이틀린을 각종 학원에 픽업해 주고 방과 후 숙제를 감독하는 건 오페어Aupair(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현지 가정에 머물며 아이를 돌봐 주는 사람으로, 주로 젊은 외국인 여성이다. -옮긴이)의 몫이었다. 엄마는 성적에 대단히 연연하는 사람이었기 - P67

에 A학점과 B학점이 아니면 용납할 수 없었고 딸이 ‘올바른 친구들과 어울리는지 점검했다. "어른이 되어보니,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케이틀린은 말한다. "그냥 쉴 때 죄책감을 느껴요. 대학에서는 학기당 18학점에서 19학점을 듣고,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동아리 활동과 자원 봉사를 하고, 연극과 뮤지컬에 참여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뭔가 부족하다는 기분이었죠" - P68

이로써 오늘날 성공한 중산층이 되기 위한 모범 답안이 설명된다. 이력서를 만들고, 대학에 들어가고, 다시 이력서를 만들어 인턴십을 하고, 또 이력서를 만들어 링크드인에서 사람들과 연결고리를 만들고, 다시 이력서를 만들어 영혼을 짓밟히더라도 감지덕지하라는 말을 듣는 직급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을 계속하고, 또 이력서를 만들어 계속 노력한다. 그러면 종국에는 완벽하고 안정적이고 보람차며 연봉도 좋은, 중산층의 한 자리를 보장해 주는 직업을 찾을 것이다.
물론 밀레니얼이라면 누구나 이 길이 고되고, 연줄과 문화적 지식 없이는 좋기 어려우며,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결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계급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대입 준비에 열을 올린다. 아이가 명 - P109

문대 길에 오르기만 하면 안정적인 좋은 직업이 시야에 들어오니까!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미래를 주기 위해 필요한 건 혁명이나 정권 교체나 세금 인상이 아니다. 적어도 제일 처음 필요한 건 딱 하나, 자녀의 대학 합격 통지서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전적으로 새로운 건 아니다. X세대와 베이비붐 세대도 대학 교육이 중산층으로 가는 티켓이라 믿으며 자랐다. 그러나 경제학자 마티아스 돕커와 파브리지오질리보티가 지적하듯, 경제적 불평등의 부상과 계급 불안에 대한 공포는 부모들의 태도와 행동을 바꿔놓았고, 특히 교육적 성취에 관해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냈다. 그들은 적는다. "판돈이 커진 세상에서, 허용의 육아는 그 매력의 빛을 잃었다.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성공 지향적인 행동을 채택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많은 부모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녀 대신 이력서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요새 아이들》에서 해리스는 자녀의 가치를 키우려는, 즉 이력서를 만들어 주려는 강박이 어떻게 집중 앙육의 신조와 교차했는지 지적한다. 예를 들어 즉석에서 열리는 공놀이 경기는 장차 이력서에 한 줄을 추가할 경험이 되도록 연중 계속되는 리그 스포츠로 조직되었다. 재미로 하던 아기 연주는 이력서에 추가할 한 줄이 되기 위해 관객 앞에서 평가받는 연주로 바뀌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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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7-12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사연들 듣기만 해도 마음이 아프네요ㅠㅠ 요즘 아이들 누구보다 자신감을 가져도 될 아이들인데 말이죠ㅜㅜ

책읽는나무 2022-07-12 13:33   좋아요 1 | URL
코로나로 인해 환경 탓인지?
교육의 잘못 탓인지?
저도 지인의 딸 이야기 듣고 안타까웠어요.
요즘 대학생 아이들은 캠퍼스에서 친구를 많이 못사귀나 보더군요.
다들 고딩 친구들을 만나는 분위기라 왜? 그랬더니 캠퍼스 생활을 한 시간들이 적어 친구 사귈 기회가 없었다는군요.
이래갖고 나중에 사회생활 못한다고 혀를 찰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 책은 미국 작가가 쓴 책인데 미국 현실이나, 우리네랑 별반 차이가 없어 보여 또 많이 놀랐구요!!
 

가장 좋았던 편의 가장 좋았던 작가의 글.
덕분에 나도 연어를 먹기가 미안해질 정도다.
연어 스시 좋아했는데....
작가의 말처럼 이제는 동물을 주제로 하는 축제의 방향이 바뀌어야 함이 절실하다.

종종 작가가 느끼는 지역축제의 한계성에 대한 진지한 통찰도 있지만, 여전히 김혼비는 김혼비다.
김혼비만의 매력이 발산하는 여행기다.
헌데 박태하 남편도 만만찮다.
남자 김혼비다.
사자에게 머리 물리는 남자.
나 오늘 이 여자 믿고 간다. 라고 외칠 줄 아는 남자.
멋진 여자 곁에 멋진 남자였네.



장한다. 하지만 물살이들을 한정된 공간에 억지로 가두어 놓고 수백 명의 사람이 동시에 달려드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채집이나 천렴은 세상에 없다. 축제에서 맨손잡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행위다. 겁에 잔뜩 질려 패닉 상태에 빠진 점프대 위의 돼지와 물속에서 미친 듯 도망치는 연어가 뭐 그리 다를까.
"어차피 곧 먹힐 운명인 돼지였다."라는 말만큼이나 "어차피먹힐 연어다."라는 말은 비겁하다. 어류가 고통을 민감하게지각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과학 연구들도 쌓여 가고 있지만 그 전에 연어의 처절한 몸부림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것은돼지가 내지른 것만큼이나 크고 무시무시한 비명이었다.
‘체험‘이라는, 교육적이면서 적당히 모험적인 느낌까지섞여 있어 어디에 갖다 붙여도 그럴싸해지는 마법의 단어로포장한들 결국에는 대량 살상 행위의 일부가 되는 체험이 아이들에게 교육적일 리도 없다. 최근 몇 년 새 동물원이 "자연에서 동물을 뚝 떼어 도시로 데려와 전시하는 가혹한 공간"이자 "가장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동물을 대면하는 곳"이라는비판적 공감대가 조금씩 넓어져 가고 있는데(모 TV 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박사가 쓴 표현을 빌렸다.) 축제 속 맨손 잡기는 그걸 훌쩍 뛰어넘는다. 대면하자마자 죽이는 거니까. 아니, 죽이려고 대면하는 거니까. 동물을 대상화하는, 그 - P224

들을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방위적으로 송출하는 이 행사를 통해 아이들은 그 메시지를 내면화하고 펄떡펄떡 뛰는 생명을 제 손으로 너무나 간단하게 앗아 가는 전능의
‘손맛‘까지 알게 된다. (물론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놓아주게 하는보호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만 이는 극히 소수이며, 물고기가 겪는 고통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물을 아끼는 사람이 인간도 아낀다."라는 말은 믿지 않지만(히틀러만 봐도 그렇다.)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인하다."라는 칸트의 말은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라는 말로 맨손 잡기 같은 체험을 요약하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인간의 생명 vs. 동물의 생명‘이라는 화두까지는 어림도 없고, ‘인간의 재미 vs.
동물의 생명‘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간의 재미‘를 선택하는 그 해맑은 가학성이 별생각 없이 돼지를 번지점프대에 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번지점프하는 돼지를 보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고 즐거운 유희였을 것이다. - P225

다가 한 마리가 물살을 타 넘어 시야에서 사라지자 "넘었다!"
환호성을 뱉을 만큼, 그래, 이런 장면을 원한 거라고!
정말 그랬다. 연어축제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건 바로 이런 거였다. 연어가 거센 물살에 맞서다가 온 힘을 다해 도약하는 순간 같은 것. 그 순간 우리 마음에 넘실대던 따뜻한 바닷물 위 윤슬 같은 감정, 도망치는 헤엄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헤엄, 지켜보는 사람들이 어느샌가 연어와 한마음이 되어 연어의 전진을 응원하고, 그 응원이 조금씩 번져서 연어의 존재를 응원하게 되는 경험. 아이들이 체험해야 할 좋은 교육이란 연어를 쫓을 때의 스릴도, 연어를 만졌을 때의 촉감도, 연어를 맨손으로 잡아 구워 먹는 재미도 아니고 눈앞에 있는 이 생명이 얼마나 대단한 여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경이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 나아가 아무리 먹기 위해 기르는 생물이라고 해도 어떻게 하면 그 생물에게 가해지는 통증과 고통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아닐까.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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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김혼비.박태하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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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축제를 몇 군데 찾았다가 실망한 후론, 부러 찾지 않는 곳이 지역 축제였던지라, 실은 이 부부가 지역축제를 어떻게 취재를 하여, 입담을 살릴지 궁금했었다. 신기하게도 허술한 축제의 묘한 단점들을 콕콕 집어 내고 있어 상당히 공감되는데, 글이 밉지 않고, 쿡쿡 웃음이 나면서 몇 군데는 찾아가고픈 생각이 들게 만든다. 마지막 편에 나온 산청 곶감의 촉촉함처럼(먹어 봤어요.) 은근 촉촉하고 진득하게 스며드는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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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11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의령 의병축제 가고 싶어요. 망개떡 좋아하거든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2-07-11 12:11   좋아요 2 | URL
망개떡 좋아하시는군요?^^
전 밀양 축제 편에서 낄낄 거리고 웃다가, 가깝기도 한데 밀양 축제 한 번 가봐? 그런 생각을 좀 했더랬습니다^^
망개떡 상한다는 대목도 좀 웃겼어요ㅋㅋ
산청 곶감 진짜 맛있던데..^^
하동 대봉 곶감도 맛있고,
곶감 이야기도 나와서 반가워 산청 곶감 축제도 가보고 싶은데 정초부터 한다고 해서.....ㅜㅜ
왜 정초부터 할까요??
암튼 책의 초반은 조금 느릿하게 읽다가 중반 넘어가니까 술술 읽히더군요..재밌었어요^^

희선 2022-07-12 0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역축제 거의 모르지만,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거 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축제하는 곳과 가까운 곳에 살면 가기 쉬워도 멀면 가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네요 이런 책이 나와서 어떤 지역축제가 있는지 알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