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병, 위생사관, 통신병, 저격수, 보병, 야전세탁부대 병사, 외과의, 간호병, 고사포 병사, 비행대 대장, 운전병, 의사 보조, 빨치산 간호병, 빨치산 병사, 전화 교환수, 자동소총소대 소대장, 전투기 조종사등등
전쟁에 참여한 여러 계급의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겪어 낸 무수한 육성의 증언들은 실로 참혹하다.
읽는 내내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의 승패에 상관 없이,
그들은 일상 생활이 불가능 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그 악몽을 견뎌 냈을까?
일상도 전쟁의 연속이지 않았을까? 싶다.
1943년에 딸이 태어났어・・・・・・ 남편과 함께 숲으로 숨어들어 빨치산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지. 늪지대의 짚더미 위에서 딸을 낳았어. 기저귀는 내가 품에 넣고 따뜻하게 해서 말린 다음 다시 채웠어. 사방이 불바다였어, 사람들이 산 채로 마을들과 함께 불태워졌지. 놈들은 학교로 교빙 둘러 석유를 뿌렸어. 다섯 살난 내 조카애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마냐 숙모, 만약 내가 불에 타면 뭐가 남는 거예요? 덧신만 남아요?‘라고 묻더군. 자, 보라니까, 우리아이들이 우리한테 무슨 질문을 하는지・・・・・・나는 불길에 타고 남은 뼛조각들을 모으러 다녔어 내 친구의 가족을 찾아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거야. 사람들은 남은 재 속에서 뼛조각들을 찾아냈고, 조그만 옷조각이라도 발견하면 색깔이 어떻게 변했든 옷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봤어. 모두 자기 가족을 찾아다녔지. 내가 옷조각 하나를 찾아 들어 보였더니 친구가 ‘우리 엄마 블라우스‘라며 그대로 기절해버렸어...….… 어떤 사람은 머릿수건에 또 어떤 사람은 베갯잇 속에 뼛조각을 찾아 모았어. 그렇게 다들 몸에 지니고 온 것 중에 담을수 있는 곳이 있으면 다 담아 갔어. 나는 친구와 함께 가방에 넣었는데, 가방이 채 반도 안 차더라고. 다 같이 무덤 하나를 만들어서 거기다 유품들을 묻었어. 전부 다 검게 탔는데 뼛조각들만 하얗더군. 사람이 타고 남은 뼛가루를.. 이제 나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어. 그건 하얀게, 정말 새하얗거든………… 그 일을 겪고 나니까 어떤 임무가 주어져도 두려울 게 없더라고 나는 아직 3개월밖에 안 된 갓난쟁이 우리 아이를 작전에 데리고 다녔어. 지휘관은 나를 임무에 보내놓고 자기가 마음 아파 울었지. 도시에서 의약품이며 붕대, 혈청제 등을 공수해오는 게 내 임무였어. 나는 아이의 - P122
양손과 양발 사이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은 다음 포대기로 꽁꽁 싸매는 식으로 물건을 들여왔어. 숲에서는 부상자들이 죽어가고 있었어. 가야만 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사방에 독일군 검문소와 경찰 초소가 깔려있고 경계가 삼엄해서 누구도 그 일을 해낼 사람이 없었어. 나만 통과할수 있었지. 우리 아이랑. 포대기 속에 있는 우리 아기랑.. 아, 이제 그 일은 입에 담기도 끔찍해. 얼마나 죽을 힘을 다했는지 몰라! 아이 몸에 열이 올라서 울게 만들려고 소금으로 아이 몸을 문질렀어. 그러면 아이의 온몸이 새빨개지고 발진이 올라오면서 피부에 부스럼이 돋았지.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어. 검문초소에서 나를 불러세우면 ‘티푸스예요, 장교님 ・・・・・・ 티푸스……… 라고 둘러댔어. 그러면 "베크! 베크!‘ 하고 냉큼 사라지라며 우리를 쫓아냈지. 소금으로 문지른것도 모자라 마늘까지 포대기 속으로 집어넣었어. 갓난쟁이였던 내 아기는 아직 젖을 빨고 있을 때였어. ..... 검문초소들을 무사히 빠져나와 숲에 도착하면 한없이 울었어. 엉엉 목을 놓아 울었어! 우리 아이가 가여워서 마음이 찢어졌지. 그래도 한이틀 지나면 다시 임무에 나섰어....." 마리야 티모페예브나 사비츠카야-라듀케비치, 빨치산 연락병 - P123
역사는 앞으로도 수백 년은 더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라며 고민하겠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디에서 왔을까? 상상을 한번해봐. 임신한 여자가 지뢰를 안고 가는 장면을・・・・… 체르노바는 당연히 아이를 기다렸지....… 삶을 사랑했고 또 살고 싶어했어. 당연히 두려워도 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길을 갔어・・・・・・ 스탈린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녀는 무릎을 꿇어가며 살아야 하는 삶은 거부했어. 적에게 굴종하는 삶 따위는・・・・・・ 어쩌면 그때 우린 눈이 멀었던 건지도 몰라. 그리고 그때 우리가 많은 것을 놓치고 보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겠어. 하지만 우리는 눈이 멀었으면서도 동시에 순수했어. 우리는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당신은 그걸 꼭 알아야해....." 베라 세르게예브나 로마놉스카야, 빨치산 간호병 - P133
"어디서 있었던 일인지는 기억이 안 나……… 거기가 어디였는지.....한번은 헛간에 부상자들이 200명 가까이 꽉 찼는데, 위생병은 딱 나혼자였어. 전쟁터에서 부상자들이 생기는 대로 곧장 헛간으로 데려오다보니 그렇게 많아졌던 거지. 마을 이름은 잊어버렸어‥………… 그후로 몇 년이나 흘렀는지도 모르겠고……… 꼬박 나흘을 잠 한숨 못 자고 잠깐 앉을 새도 없이 뛰어다녔던 것만 기억나 그 많은 부상자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나를 불러댔지. ‘간호병 간호병! 제발 도와줘요!‘ 이 사람 저사람에게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한번은 발이 걸려 넘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지 뭐야. ‘조용! 명령이다. 모두 조용히 한다!‘라는 고함소리에 잠이 깼지. 지휘관인 젊은 중위였어. 역시 부상당해 들어온 그 중위가 다치지 않은 옆구리로 반쯤 몸을 일으켜 소리치고 있더라고, 중위는 내가 쓰러질 지경이라는 걸 안 거야.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명령이고 뭐고 당장 죽을 것 같은데. ‘간호병! 간호병!‘ 부상병들은 계속 나를 불러댔어. 나는 벌떡 일어나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뛰어다녔지. 그리고 그때 전선에 온 이후 처음으로 울고말았어. 그리고 ・・・・・・ 사실 사람은 자기도 자기 마음을 모를 때가 많아. 한번은겨울에 우리 부대 옆으로 독일군 포로 행렬이 지나갔어. 포로들은 찢어 - P156
진 옷으로 머리를 싸매고, 불에 타 구멍이 숭숭 뚫린 외투만 걸친 채 추위에 꽁꽁 얼어 있었어. 그때 날이 얼마나 춥던지 날아가던 새가 다 떨어질 정도였지. 새들이 날다가 그대로 얼어 죽은 거야. 그 행렬 속에 병사 하나가 가는데 ・・・・・・ 어린 남자애였어… 울었는지 뺨에 눈물 자국...... 이 얼어 있더라고・・・・・… 그때 마침 나는 손수레에 빵을 담아 식당으로 가져가던 중이었어. 그 아이가 빵수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거야. 옆에 있는 나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지 수레만 뚫어져라 바라봤지. 빵이다………… 빵………… 나는 큰 빵 하나를 집어들어 좀 떼어서 그 아이에게 줬어, 아이가 받긴 받는데..……… 어리둥절한 것 같았어.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 그래, 믿을 수가 없었겠지. 나는 행복했어. 내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사실이 기뻤어. 그리고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도 많이 놀랐지..…." 나탈리야 이바노브나 세르게예바, 사병, 위생병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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