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얼룩진 세상에 머물다 일상으로 돌아와 평범한 생활을 누리긴 힘들 것이다. 다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 텔레비젼에서 한비야 구호 활동가도 냄새에 민감하다고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워낙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재해로 인해 사상자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시체 냄새에 예민해져서 평소에도 그런 냄새가 나는 듯 하다고 하였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그 냄새가 꼭 시체 썩는 냄새를 상기시켜 트라우마가 작동되는 듯 하여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담당은 무조건 자신이 한다고 했었던 점이 인상 깊었다.
늘 밝게 웃으며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한비야님도 어쩌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하물며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말로 해서 무엇하랴!
빨간색만 보아도 양팔에 반점이 돋고, 물집이 생겨 버리는 알러지 반응은 충분히 납득되면서도 안타깝다.
전쟁은 왜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인데,
누구를 위하여 수많은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걸까?

"나는 기차에서 곧장 최전선으로 가겠다고 요청했어・・・・・・ 곧바로 가겠다고……… 때마침 이동중인 부대가 있어서 즉시 거기로 합류했지. 생각해보니까, 후방에서 집에 가는 것보다 최전선에서 가는 게 하루라도더 빠를 것 같더라고. 집에 엄마 혼자 계셨거든 내 친구들은 지금도 내가 위생중대를 떠나고 싶어했다며 당시를 떠올리곤 해. 맞는 말이야 나는 위생중대에 가면 얼른 씻기만 하고 속옷을 챙겨서 다시 내 참호로돌아갔으니까. 최전선의 진지로, 나는 몸을 사리는 법이 없었어. 기어다니고 뛰어다니고..…..… 하지만 피냄새는 피냄새만큼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전쟁이 끝나고 산부인과 병동에서 조산원으로 일했어. 하지만 얼마못하고 그만뒀지. 아주 잠깐 일했어...... 아주 잠깐...... 나는 피냄새에 - P532

알레르기가 있거든. 내 몸이 피를 거부해 피라면 전쟁터에서 몸서리가쳐지게 겪었으니까. 더이상 몸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산부인과를 나와 ‘구급센터‘로 옮겼어. 역시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고 숨을 쉴 수가 없었지.
언젠가 빨간색 천으로 블라우스를 만들어 입었는데, 다음날 양팔에반점 같은 게 돋았더라고. 물집도 생기고, 내 몸은 빨간 사라사는 물론,
장미나 패랭이꽃 같은 빨간 꽃에도 거부 반응을 보여 빨간색이나 피 색깔은 어느 것도 견디질 못하지...… 그래서 우리집엔 빨간색이 하나도없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거야. 사람의 피는 아주 선명하지. 자연 풍경에서도 화가들 그림에서도 나는 피처럼 선명한 색은 아직 본 적이 없어. 석류즙이 조금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야. 아주 잘 익은 석류즙도.……"
마리야 야코블레브나 예조바, 근위대 중위, 위생소대 지휘관 - 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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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7-25 2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빨간색에 알러지 반응 읽는데 정말 숨이 컥컥 막히더라구요.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여린데... 이렇게 상처받기 쉬운데. 상처 받은 후에는 회복이 어려운데... 왜 전쟁은 끊이지 않을까, 전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고생 많았어요, 책나무님! 우리 모두 다 수고했어요, 토닥토닥!!

책읽는나무 2022-07-25 22:43   좋아요 1 | URL
저도 저 대목에서 헉!! 했어요.
빨간색 트라우마는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예를 든다면 몸이 경직된다든가, 숨이 가빠진다든가, 기분이 나빠진다든가... 근데 바로 피부에 발진이 일어나고, 물집까지 생겨버리는 급성 알러지는 정말 심각한 지경인 것인데...어떻게 삶을 살아냈을까? 싶더군요.ㅜㅜ
몸이 불구가 된 사람들은 또 어떻게 그 세월을 살아냈을까요?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은 나라인데, 전쟁 후유증을 겪으시는 분들도 얼마나 많을까요??
그리고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또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 될테고...ㅜㅜ
어휴~~이 책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계속 뭅니다.
책을 읽으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참담한 심정이지 싶어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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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행위 자체가 힘겨운데, 그에 앞서 그들 앞에서 직접 듣고, 기록했을 작가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숭고해진다. 또한 그에 앞서 전쟁을 직접 겪은 여성들을 생각하면 그저 할말을 잃게 만든다.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곡함과 이름을 다르게 써 달라며 숨기고 싶은 난처함. 오래 기억해야 할 참혹한 전쟁, 여성 피해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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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7-25 16: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나무 님도 다 읽으셨네요.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07-25 16:55   좋아요 2 | URL
날짜가 임박하지 않았다면, 이 달의 책이 아녔더라면....
어쩌면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읽고 나니 전쟁의 경각심을 더 크게 가질 수 있어 읽길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님 말씀처럼 애써 외면하여 모르는 것보다는 알고 있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다락방 2022-07-25 18:52   좋아요 3 | URL
책나무 님, 제가 딱 그랬어요. 함께읽기 책 아니었다면 저 포기했을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2-07-25 20:47   좋아요 2 | URL
매번 느끼지만, 함께 읽기의 힘은 이렇게나 강하네요!!
토닥토닥~^^

거리의화가 2022-07-25 16: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완독 정말 고생하셨어요! 특히나 힘겨운 책이었을 것 같아요. 증언은 때론 외면하고 싶은 경우가 많으니 말입니다. 작가의 기록 정신과 그 앞에서 인터뷰했을 많은 피해자분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었어요.

책읽는나무 2022-07-25 17:00   좋아요 2 | URL
기록하는 그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작가가 책 한 권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고충이 컸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리고 기억하지 않으려고 잊고 지내고 있는 여성 참여자들은 지난 날 전쟁의 트라우마를 다시 떠올리며 겪었을 시간들이....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닌 거겠죠?
에혀~~~ 전쟁이란 것은!!!ㅜㅜ
화가님도 읽으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에혀...ㅜㅜ

미미 2022-07-25 17: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완독 수고하셨어요!!
역시 함께했기에 또 읽어냈죠^^*
치유의 말하기, 치유를 위한 공감하기를 경험한것 같아요.
우크라이나에서 중동등 세계 곳곳에서 아직 진행중인 일들이라는데 그 무게감을 느낀 책이었네요.

책읽는나무 2022-07-25 20:54   좋아요 3 | URL
미미니이랑 화가님은 늘 부지런하셔서 일찍 읽으시고, 꼴찌인 저를 잘했다 칭찬해 주시니 늘 감사합니다.^^
읽고 나면 늘 생각합니다.
와~~다들 이 책을 어떻게 읽으셨대??? 하구요^^
치유의 말하기!!! 맞네요?
그녀들은 그동안 묻어 왔던 기억들을 말하면서 어쩌면 조금은 치유의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게 아녔을까? 걱정이 좀 됐었거든요. 그래도 작가가 공감하면서 들어줬었기에 많이 치유되었을 수도 있겠어요.
읽으면서 계속 그쪽 전쟁이 떠올라 양가감정이 들어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네요. 그래도 완독 후 느낀 점은 읽길 잘했단 생각이 들어요^^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mini74 2022-07-26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완독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북플님들 읽으시는거보고 다시 읽어볼까하다가도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ㅠㅠ 어찌 인간이란 존재가 저럴 수 있나 싶기도 했던 기억도 납니다. 더운 여름 고생많으셨어요 나무님 !!!

책읽는나무 2022-07-26 14:41   좋아요 0 | URL
미니님은 일찍 읽으셨더군요?
역시 다독가의 안목!!!^^
이 책은 재독하기엔 너무 힘겹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고 싶긴한데...여름 지나고 읽으려구요^^
전쟁은 정말 잔인하고, 무섭습니다ㅜㅜ
암튼 읽으셨기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그 기분이나 분위기를 같이 느낄 수 있어 좋네요. 감사합니다^^
 

전쟁의 기억, 전쟁의 소리, 전쟁의 환영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고, 어느 다른 소녀였다.라는 읊조림은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독일군은 여자병사들은 포로로 잡지 않았어・・・・・… 바로 총살해버렸지 아니면 자기 병사들 앞에 끌고 나와 ‘자, 여기 이것들은 여자가 아니다. 추악한 괴물이다‘라고 하거나.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총알을 따로 가지고 다녔어. 불발될 경우를 대비해 두 발씩.
우리 간호병 하나가 독일군에게 붙잡혔어. 하루가 지나 우리가그 마을을 공격해 들어갔는데 사방에 죽은 말이며 오토바이며 장갑수송차 등이 나뒹굴고 있더라고. 독일군에게 잡혀간 우리 간호병을 찾아냈지. 세상에, 눈알이 도려내지고 가슴이 잘려나가서는…………… 놈들이 말뚝에 박아놓았더라고. 몸은 살을 에는 추위에 꽁꽁 얼어 새하얗고 머리는 완전히 백발이 되어 있었어. 그 아이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어. 우리는 그 아이 배낭에서 가족이 보낸 편지들과 고무로 된 작은 파랑새를발견했어. 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장난감 고무새를・・・ - P243

전쟁터에서는 사람이 사람 같지 않다는 게 를 또다른 끔찍함이었어. 전쟁터에서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절대 믿지 않아. 항상 소매를 팔꿈치까지 말아올리고 다니는독일군이 모습을 드러내고 오 분이나 십 분쯤 지나면 공격이 시작됐어.
그러면 온몸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하지. 오한도 나고, 하지만 그건 처음· 막상 전투가 시작되고………… 지휘관총을 한발 쏘기 전까지만 그래의 명령이 떨어지면, 어느새 그런 기억은 모두 사라져버려. 다른 전우들과 함께 정신없이 앞으로 돌진하는 거야. 무서운 거고 뭐고 느낄 새도없지. 하지만 다음날이면 벌써 잠이 안 와 또 무서워져서. 전부 다 기억이 나는 거야. 하나하나 전부 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미치면 이제 무서워서 미칠 것 같지. 전투가 끝나면 사람들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 게 차라리 나았어. 다들 평소에 보는 보통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완전히 딴 얼굴이 되어 있었으니까. 서로 눈을 피하는 거야. 나무도 똑바로 못 쳐다보고 서로, 가까이 가려고 하면 그러지. 저리가 저리 가라고! 아・・・・・・ 그게 무엇이었는지, 표현할 방법이 없어. 조금씩 정신이 나갔다고들 해야 할까. 짐승 같은 뭔가가 번뜩였다고 할까.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어. 나는 아직도 내가 살아남았다는 게 안 믿어져. 살아 있다는 게……… 부상도 당하고 상처도 입었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
눈을 감으면 그 모든 게 다시 눈앞에 나타나.... - P262

기억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끝도 없이 ・・・・… 그런데 가장 중요한게 뭔지 알아?
나는 전쟁의 소리를 기억해. 사방에서 으르렁, 쾅쾅, 쨍쨍 불을 뿜어대던 그 소리들‥………… 전쟁터에서는 사람의 영혼마저 늙어버리지. 전쟁이 끝나고 나는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 그게 제일 중요한 점이지. 내 생각엔 그래
--결혼은 하셨나요?
ㅡ했지. 아들 다섯을 낳아 길렀어. 아들만 다섯. 딸은 하늘이 주시지않더라고, 나 스스로도 가장 놀라운 일은 그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겪고도 예쁜 아이들을 낳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 게다가 좋은 엄마에 좋은할머니까지 되었다는 사실이지.
이제 와서 모든 걸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아. 어느 다른 소녀였지..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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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참여했었던 남자들은 훈장을 보여주며, 승리자와 영웅으로 떠받들어 주는 그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여자들은 평범한 여자의 생활이라도 누리고 살아가려면 전쟁에 참여했었던 과거를 침묵하고, 훈장을 숨겨야만 했다.

수부츠를 시장에 내다팔고 구두를 샀지. 처음으로 원피스를 입었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거울 앞에 서서도 내가 나를 못 알아보겠는 거야.
4년 동안 바지를 벗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부상당한 몸이라고 누구한테 털어놓겠어? 말했다가, 나중에 직장도 못 구하면 어떡하라고결혼은? 우리는 물고기처럼 입을 다물었어. 전선에 나가 싸웠다는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지. 하지만 우리끼리는 계속 연락하며 지냈어.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사람들은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기시작했지. 30년이 지나서야.
모임에 초대도 하고 ・・・・・・ 처음에 우리는 과거를 숨기며 살았어. 훈장도 내놓지 못했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분하고 억울했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전선에서는 남자들이 우리를 존중했고 항상 보호해줬는데. 그런데 이 평온한 세상에서는 남자들의 그런 모습을 더이상 볼 수가 없는 거야. 퇴각하다가 땅바닥에 누워 쉴 때면 우리에게 자기들 외투를 벗어주고 본인들은 얇디얇은 군복만 입고 버티던 남자들이었는데, ‘우리 소녀병사들 우리 소녀병사들부터 덮어줘야지.… 그러면서. 어디선가 솜이나 붕대 조각 같은 것을 구해와서 가만히 ‘자, 받아, 필요할 거야..….‘라며 건네주기도 했어. 수하리 하나라도 있으면 같이 나눠 먹었지. 전선에서 남자들은 따뜻하고 선량했어.
다른 모습은 본 적이 없어. 그런 건 아예 알지도 못했지.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차라리 아무 말 않겠어.
아무 말도·· 무엇이 우리의 추억을 훼방 놓는 줄 알아? 그 추억들을 견딜 수가 없다는 점이야... - P221

지금은 전쟁박물관에서 자주 초청을 받아 ・・・・・・ 답사여행을 이끌어달라는 요청을 해오지. 그래, 지금은 그래. 40년이나 지난 지금은 장장 40년만에! 얼마 전에 젊은 이탈리아인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했어. 꼬치꼬치 한참을 묻더군. ‘어떤 의사한테 치료를 받았나요?‘ ‘어떻게 아팠나요?‘
이상하게도 그들은 내가 정신과 의사한테 상담은 받았는지 어땠는지,
궁금해하더라고. 그리고 내가 무슨 꿈을 꾸는지도 ‘전쟁에 대한 꿈을꾸시나요?‘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서 싸운 러시아 여인이 그들에겐 수수께끼인 게지. 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전장에서 부상자들을 구해내고 상처를 돌보는 것도 모자라 직접 총을 쏘고 폭탄을 터뜨렸을까.. 남자들을 서슴없이 죽이고………… 또 ‘결혼은 했느냐‘고 묻더라고. 내가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는 눈치였어. 혼자일 거라고 웃었지. ‘다들 전쟁에서 트로피를 가져왔지만 나는 남편을 데려왔죠. 딸도 있어요. 지금은 손자들이 자라고 있지요. 당신한테 사랑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 지금은 못하겠어, 마음이 그래. 다음에 할게………… 당연히 사랑도 있었지! 암, 있었고말고! 사랑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살아남을 사람이? 우리 대대장이 나한테 반해서는……… 전쟁 내내 나를 보호하고 다른 사람은 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지. 제대하고는 병원에서 나를 찾았어. 그때 고백을 하더군・・・ 뭐, 사랑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또 와, 꼭 다시 와 내 둘째 딸 하자고 나는 당연히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어. 아이들을 좋아하거든. 하지만 딸 하나밖에 못 얻었어...딸 하나...건강도 안 좋았고 그럴 여력도 안 됐으니까.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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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병, 위생사관, 통신병, 저격수, 보병, 야전세탁부대 병사, 외과의, 간호병, 고사포 병사, 비행대 대장, 운전병, 의사 보조, 빨치산 간호병, 빨치산 병사, 전화 교환수, 자동소총소대 소대장, 전투기 조종사등등
전쟁에 참여한 여러 계급의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겪어 낸 무수한 육성의 증언들은 실로 참혹하다.
읽는 내내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의 승패에 상관 없이,
그들은 일상 생활이 불가능 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그 악몽을 견뎌 냈을까?
일상도 전쟁의 연속이지 않았을까? 싶다.



1943년에 딸이 태어났어・・・・・・ 남편과 함께 숲으로 숨어들어 빨치산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지.  늪지대의 짚더미 위에서 딸을 낳았어. 기저귀는 내가 품에 넣고 따뜻하게 해서 말린 다음 다시 채웠어. 사방이 불바다였어, 사람들이 산 채로 마을들과 함께 불태워졌지. 놈들은 학교로 교빙 둘러 석유를 뿌렸어.
다섯 살난 내 조카애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마냐 숙모, 만약 내가 불에 타면 뭐가 남는 거예요? 덧신만 남아요?‘라고 묻더군. 자, 보라니까, 우리아이들이 우리한테 무슨 질문을 하는지・・・・・・나는 불길에 타고 남은 뼛조각들을 모으러 다녔어 내 친구의 가족을 찾아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거야. 사람들은 남은 재 속에서 뼛조각들을 찾아냈고, 조그만 옷조각이라도 발견하면 색깔이 어떻게 변했든 옷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봤어. 모두 자기 가족을 찾아다녔지. 내가 옷조각 하나를 찾아 들어 보였더니 친구가 ‘우리 엄마 블라우스‘라며 그대로 기절해버렸어...….… 어떤 사람은 머릿수건에 또 어떤 사람은 베갯잇 속에 뼛조각을 찾아 모았어. 그렇게 다들 몸에 지니고 온 것 중에 담을수 있는 곳이 있으면 다 담아 갔어. 나는 친구와 함께 가방에 넣었는데,
가방이 채 반도 안 차더라고. 다 같이 무덤 하나를 만들어서 거기다 유품들을 묻었어. 전부 다 검게 탔는데 뼛조각들만 하얗더군. 사람이 타고 남은 뼛가루를.. 이제 나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어.
그건 하얀게, 정말 새하얗거든………… 그 일을 겪고 나니까 어떤 임무가 주어져도 두려울 게 없더라고 나는 아직 3개월밖에 안 된 갓난쟁이 우리 아이를 작전에 데리고 다녔어. 지휘관은 나를 임무에 보내놓고 자기가 마음 아파 울었지.
도시에서 의약품이며 붕대, 혈청제 등을 공수해오는 게 내 임무였어. 나는 아이의 - P122

양손과 양발 사이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은 다음 포대기로 꽁꽁 싸매는 식으로 물건을 들여왔어.  숲에서는 부상자들이 죽어가고 있었어. 가야만 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사방에 독일군 검문소와 경찰 초소가 깔려있고 경계가 삼엄해서 누구도 그 일을 해낼 사람이 없었어. 나만 통과할수 있었지. 우리 아이랑. 포대기 속에 있는 우리 아기랑..
아, 이제 그 일은 입에 담기도 끔찍해. 얼마나 죽을 힘을 다했는지 몰라! 아이 몸에 열이 올라서 울게 만들려고 소금으로 아이 몸을 문질렀어. 그러면 아이의 온몸이 새빨개지고 발진이 올라오면서 피부에 부스럼이 돋았지.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어. 검문초소에서 나를 불러세우면 ‘티푸스예요, 장교님 ・・・・・・ 티푸스……… 라고 둘러댔어. 그러면
"베크! 베크!‘ 하고 냉큼 사라지라며 우리를 쫓아냈지. 소금으로 문지른것도 모자라 마늘까지 포대기 속으로 집어넣었어. 갓난쟁이였던 내 아기는 아직 젖을 빨고 있을 때였어.
.....
검문초소들을 무사히 빠져나와 숲에 도착하면 한없이 울었어. 엉엉 목을 놓아 울었어!  우리 아이가 가여워서 마음이 찢어졌지. 그래도 한이틀 지나면 다시 임무에 나섰어....."
마리야 티모페예브나 사비츠카야-라듀케비치, 빨치산 연락병 - P123

역사는 앞으로도 수백 년은 더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라며 고민하겠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디에서 왔을까? 상상을 한번해봐. 임신한 여자가 지뢰를 안고 가는 장면을・・・・… 체르노바는 당연히 아이를 기다렸지....… 삶을 사랑했고 또 살고 싶어했어. 당연히 두려워도 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길을 갔어・・・・・・ 스탈린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녀는 무릎을 꿇어가며 살아야 하는 삶은 거부했어. 적에게 굴종하는 삶 따위는・・・・・・ 어쩌면 그때 우린 눈이 멀었던 건지도 몰라. 그리고 그때 우리가 많은 것을 놓치고 보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겠어.
하지만 우리는 눈이 멀었으면서도 동시에 순수했어. 우리는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당신은 그걸 꼭 알아야해....."
베라 세르게예브나 로마놉스카야, 빨치산 간호병 - P133

"어디서 있었던 일인지는 기억이 안 나……… 거기가 어디였는지.....한번은 헛간에 부상자들이 200명 가까이 꽉 찼는데, 위생병은 딱 나혼자였어. 전쟁터에서 부상자들이 생기는 대로 곧장 헛간으로 데려오다보니 그렇게 많아졌던 거지. 마을 이름은 잊어버렸어‥………… 그후로 몇 년이나 흘렀는지도 모르겠고……… 꼬박 나흘을 잠 한숨 못 자고 잠깐 앉을 새도 없이 뛰어다녔던 것만 기억나 그 많은 부상자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나를 불러댔지. ‘간호병 간호병! 제발 도와줘요!‘ 이 사람 저사람에게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한번은 발이 걸려 넘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지 뭐야. ‘조용! 명령이다. 모두 조용히 한다!‘라는 고함소리에 잠이 깼지. 지휘관인 젊은 중위였어. 역시 부상당해 들어온 그 중위가 다치지 않은 옆구리로 반쯤 몸을 일으켜 소리치고 있더라고, 중위는 내가 쓰러질 지경이라는 걸 안 거야.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명령이고 뭐고 당장 죽을 것 같은데. ‘간호병! 간호병!‘ 부상병들은 계속 나를 불러댔어. 나는 벌떡 일어나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뛰어다녔지. 그리고 그때 전선에 온 이후 처음으로 울고말았어.
그리고 ・・・・・・ 사실 사람은 자기도 자기 마음을 모를 때가 많아. 한번은겨울에 우리 부대 옆으로 독일군 포로 행렬이 지나갔어. 포로들은 찢어 - P156

진 옷으로 머리를 싸매고, 불에 타 구멍이 숭숭 뚫린 외투만 걸친 채 추위에 꽁꽁 얼어 있었어. 그때 날이 얼마나 춥던지 날아가던 새가 다 떨어질 정도였지. 새들이 날다가 그대로 얼어 죽은 거야. 그 행렬 속에 병사 하나가 가는데 ・・・・・・ 어린 남자애였어… 울었는지 뺨에 눈물 자국......
이 얼어 있더라고・・・・・… 그때 마침 나는 손수레에 빵을 담아 식당으로 가져가던 중이었어. 그 아이가 빵수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거야. 옆에 있는 나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지 수레만 뚫어져라 바라봤지. 빵이다…………  빵………… 나는 큰 빵 하나를 집어들어 좀 떼어서 그 아이에게 줬어, 아이가 받긴 받는데..……… 어리둥절한 것 같았어.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 그래, 믿을 수가 없었겠지.
나는 행복했어.
내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사실이 기뻤어. 그리고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도 많이 놀랐지..…."
나탈리야 이바노브나 세르게예바, 사병, 위생병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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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7-19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나의 뉴스피드>에는 안뜨고 <화제의 소식>에만 뜨네요. 몇 페이지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서 전쟁의 승자도 대가를 치러야 했다고. 대를 이어 병을 앓거나 불행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고 본것 같아요. 결국 누구도 승자가 아닌 전쟁. 그냥 전쟁하고 싶은 당사자들끼리 (당시에는 스탈린과 히틀러)싸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둘이서 그 잔인하다는 백병전으로요.

책읽는나무 2022-07-19 23:23   좋아요 1 | URL
제가 그날 그날 독보적에 링크한 책에 밑줄 긋기한 글들은 나의 뉴스피드에 올라가지 않게 설정을 걸어뒀던 것 같아요. 완독하지 않았어도 완독한 것처럼 숫자에 포함되는 것 같아 몇 년 전에 설정을 그리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화제의 소식>에는 뜨나 보죠??
그리 화제가 될만한 소식은 아닌 듯한데 말이죠?ㅋㅋㅋ
근데 책이 화제가 되다 보니 한 번씩 글이 올라갈 때가 있나 봅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아니...지네 둘이서 싸우지??
왜 엄한 무고한 희생자들을 저렇게 양산시키는지??? 지금도 그러하잖아요.ㅜㅜ
러시아는 체제가 달라서인지? 여성들이 이렇게나 조국을 위해서 앞서 지원하는 분위기였던 건가? 읽으면서 좀 놀랐습니다.
적군, 아군 알고 보면 모두가 다 희생자들입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