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이제사 알게 되었다. 그저 옛날 용어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도 눈에 띄거니와 책의 서문은 의미심장한 말이 많다.
밑줄을 긋다 보니 오늘도 밑줄 도배판이다.

임신중지의 합법화 이면에는 많은 사안들이 얽히고 설켜 합당한 여성들의 선택이 되기 위한 최종안이 되려면 아직도 험난함이 산재해 있다.
특히나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이 ‘태아적 모성‘이란 단어를 내세울 때는 임신한 여성 또는 임신하지 않은 여성들은 갑자기 할말을 잃게 만든다. 태아를 저버리는 또는 모성을 저버리는 무책임감을 나쁜 엄마로 몰아가니, 이것이 바로 ‘죄책감‘과 ‘수치심‘의 감정으로 교묘하게 규범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다.
부정적인 단어의 굴레에 얽매일 필요 없이
‘아이를 갖지 않을‘ 권리는 곧, ‘아이를 가질 권리 그리고 출산을 조절할 권리, 낳은 아이를 잘 기를 권리‘로 고쳐 고려되어야 함을 지적한 문구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이를 셋 낳아 어느 정도 다 키워 가고 있는 현재의 아이들 엄마인 나도 예전에 아이들이 많이 어렸을 때, 생리가 뜸하여 혹시 또 임신한 건가? 덜컥 겁이 났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이 셋 키우는 것도 아득한데 아이 넷을 키운다는 건 별개로 그저 눈 앞이 캄캄하였다. 다행히 아이 셋에 그쳐 낳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그때 네째를 임신 했었더라면 아마도 임신중지의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 생각에 미치게 되면, 늘 뒤따라오는 약간의 죄책감이 일곤 하여 기분이 썩 좋질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주변에 그런 일을 겪어 슬픔을 느끼는 사람도 지켜본터라 더욱 기분이 가라앉게 되는데, 서문을 읽으면서 조금씩 그런 죄책감을 떨쳐 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란 기대감이 인다.
더 읽어봐야 할 책, 그래서 공부가 될 책,
이번 달에도 그러한 책이 분명하다.

임신중지의 범죄화는 정치적이고 입법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법은 임신중지의 실제 실행 여부를 결정짓는다.
앞서 말했듯이 임신중지 관련 법은 모성 이환율羅患率(병에 걸리는비율) 및 사망률과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 다른 한편, 임신중지 관련 법이 상대적으로 자유화된 국가에서는 법이나 그 법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여성이 임신중지에 접근하는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 대체로 임신중지 법은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가 등장하기 전에 생겨났다.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는,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을 막아 자궁벽을 허무는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과 자궁을 확장해 임신을 막는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을함께 사용한다. 두 약물은 임신 9주까지에 해당하는 초기 임신에 1~3일 간격으로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때 이뤄지는인공유산은 언뜻 생리혈이 많이 나올 때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론상으로 여성은 임신 초기,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를 위해 일반의에게 처방전을 얻어 동네 약사에게 약을 받고 원할 때 복용할 수 있다.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 여성들은 차츰 이런 방식으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술을 통한 임신중지만 가능하거나 ‘뒷마당 임신중지‘(자가 임신중지를 일컬으며 암암리에 행해진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 옮긴이)를 우려한 법적 제약이 있는 곳에서는 승인된 의사만 임신중지를 실행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P16

진정한 선택이 가능하려면 임신중지를 합당한 선택으로 인정하고, 임신한 여성이 더 이상 임신상태를 지속하고 싶지 않을때 일상에서 문제없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임신중지가 통계상 평범한 일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규범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다. - P18

임신중지의 문화는 관련법이 만들어지는 데 바탕이 되기도 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단단히 매어 주는 도덕적·사회적 코드는 임신중지의 범죄화를 뒷받침한다. 모성과 결혼에 따라붙는 ‘정절‘이라는 엄격한 규범 내에서, 여성이 임신중지를 - P19

바란다는 것은 혼외 성관계나, 기혼 여성일 경우 모성에 대한 거부를 나타냈다. 임신중지에 대한 바람은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실제로는 널리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1970년대 전환기를 맞아 임신중지를 의료화한 나라들에서는 젠더화된 이런저런 권력관계 때문에, 임신중지 여부를 당사자 여성이 아닌 의사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실렸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법은 여성을 감정적이고 성급하고 나쁜 선택을 할 잠재성이 있는 존재로 여겨, 가부장적 가르침과 권위·지식 그리고 (남성의 속성인) 합리성을 갖춘 의사들의 관리 아래 두었다.  - P20

학자들은 임신중지에 가하는 ‘낙인‘과 이를 ‘끔찍한 일‘로 만드는 과정에 나타나는 규범적 제약을 연구하면서, 임신중지가
‘불쾌한‘부터 ‘혐오스러운‘에 이르는 부정적인 말로 표현될 때가 - P20

압도적으로 많다고 주장했다. 임신중지는 필요한 것으로 여겨질 때조차 피해야 할 것, 여성에게 불가피한 고통을 안기는 것으로 지목되기 일쑤다. 임신중지가 끔찍한 일로 낙인찍힐 때, 모성은 임신에서 문제없이 도출되는 유일한 산물로 그려지며, 다시금 임신중지는 비정상적이고 여성에게 해로운 선택이 되고 만다. 이와 관련한 감정의 목록이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경험이라고들 말하는 ‘괴로움‘과 ‘애통함‘ 같은 특정한 감정이 임신중지를끔찍한 일로 만들며 (2장과 3장 참고), ‘수치‘를 통해 낙인이 내면화된다(4장 참고).
- P21

내가 이 책에서 ‘태아적 모성‘을 말할 때 드는 도식은 이런 내용을 망라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재생산과 결합하고, 모성은 여성의 기준점이 되며, 임신은 어머니가 독립적 개체로서의아이와 맺는 관계라는 것이다.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중요한 건 태아적 모성이 인종·계급 등을 축으로 해 여성을 ‘착하고 책임감 있는 어머니‘와 ‘나쁘고 무책임한 어머니‘로 구별한다는점이다. 그런데 임신중지 여성은 자신이 배태한 배아나 태아의 어머니가 되지 않기를 선택하며, 임신에 대해 주체로서 자기 위치를 주장한다. 따라서 임신중지라는 선택은 태아적 모성이라는규범과 그에 따른 숱한 문화적 산물에 균열을 내려 한다. 그렇기때문에 임신중지가 그토록 논쟁적인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 P28

 장애가 있는 태아에대한 선택적 임신중지는 여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뿐더러 장애차별을 가중시킨다. 또한 어떤 아이가 장애를 면해야 한다는 믿음은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평가 절하할 수 있다. 하지만 태아보다 임신한 여성에게 초점을 두는 임신중지 모델에서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의 돌봄을 주로 맡은 이들이 엄마임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돌봄은 종종 비용이 많이 들고 평생 헌신해야 할 일일 수 있다. 우리는 장애인을 위한 더 나은 지원망을 만드는 일이, 장애가 있는 태아의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여성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리라고 주장함으로써 여성의 선택을 지원할 수 있다. - P29

임신중지의 정당성은 단지 임신상태로만 판가름되는 게 아니다. 캐럴 생어가 지적하듯 "출생이라는 복잡한 사건 외에, 성인 여성의 삶을성인 남성의 삶과 구별짓는 육아의 의무, 즉 모성의 사회적 결과"
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책에서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을 담론적 열망이 투영된 존재로 바라보지만, 그는 물질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여성이 경제·사회적 조건상 양육을 할 수 있을 때라야 임신중지 역시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임신중지의 권리와 더불어 유급 양육 휴가나 국가 양육 보조금등의 조치를 얻기 위한 싸움이 함께 가야 한다.
- P32

임신중지에 대한 규제는 재생산과 관련해 여성의자유를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 중 하나이며, "아이를 갖지 않을"
권리는 "아이를 가질 권리 그리고 출산을 조절할 권리, 낳은 아이를 기를 권리"와 함께 고려돼야 한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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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8-16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은 사랑입니다ㅎㅎㅎ
미국의 상황도 있어서 시기적절한 읽기인것 같아요. 어렵게 얻은 권리를 빼앗긴다는건 정말 화가날것 같은데...
반대자들의 시위모습, 인터뷰할때 험악한 표정보면 요즘 시기에
타인의 몸에 관해 이렇게나 당당하게 침해하는 사안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이 책 읽기 속도를 내 봐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22-08-16 09:14   좋아요 1 | URL
밑줄은 사랑이 맞나요??ㅋㅋㅋ
완전 전 문장이 다 밑줄이어 어떤 밑줄을 골라야 할지 모를 서문이었습니다.
서문이 이렇다면 본 내용은????
밑줄 긋기가 두려워지네요??ㅋㅋㅋ

시위모습이나 기사는 찾아 보진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종종 전해 듣는 소식만으로도 합법화를 위해 오랜 기간 분투해 왔을 그 시간들에는 충분히 공감되고, 많은 생각들을 가지게 됩니다.
여성이라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요^^

맘 잡고 읽기 시작한다면 모든 문장들이 공감되고, 몰랐던 부분들을 많이 알게 되는 책이네요~
어제까지 휴일!
월요일 같은 화요일!
파이팅입니다^^
 
나는 고백한다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0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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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경험의 진실을 예술(문학 작품)로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완벽하게 성공하였다. 너무도 생생하게 종횡무진, 멀미가 날 정도로 악의 역사를 눈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 하다.
‘심판의 날은 한밤의 도둑처럼 닥쳐 올 것이다.‘
악은 악으로 심판될 것인가? 선으로 심판될 것인가?
문학 작품 속에서 이렇게 소름 끼치는 체험을 해 보기는 처음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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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8-11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멀미가 날 정도였다니!! 저 그런 느낌 좋아합니다(응?)ㅎㅎ
이 책도 올해 꼭 읽고 싶은데
과연 언제 뚜껑을 열 수 있을지...
나무님의 100자평보고 다시금
읽어야되느니! 다짐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8-11 23:57   좋아요 2 | URL
미미님도 읽어 보시면 이해하실거에요.
서체가 아주 독특하여 시대를 넘나드는 왔다리, 갔다리~~
정말 멀미가 날껍니다!!ㅋㅋㅋ
처음엔 뭐가 뭔지 헷갈리던데 확실히 먼저 읽으신 분들의 말씀이 맞았어요. 1권 후반부터 서체에 익숙해 지면서 점점 흥미가 돋고, 2 권부터는 ‘악의 서사‘에 몰입하면서 소름 돋는 장면들도 있어 생각이 많아지게 되더군요.
미미님이 읽으시고 쓰시게 될 리뷰가 벌써 기대가 되네요.^^
올 해는 넘기지 마시길요♡

scott 2022-08-12 00:07   좋아요 2 | URL
뚜껑 여는 순간 미미님
👌권 빛의 속도로 완독 하신다에
제🖐을 ^^

책읽는나무 2022-08-12 00:12   좋아요 2 | URL
저두요!!🤚
미미님 에밀 졸라 책 읽으시고 열이 났었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이 책도 열을 쏟아 가면서??^^
아...졸라 하니까, 목로주점 2 권 빨리 읽어야 함을 또 뒤늦게 상기합니다..끙~

scott 2022-08-11 2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무님의 고백(리뷰)
끄덕끄덕 🙊

책읽는나무 2022-08-12 00:03   좋아요 2 | URL
끄덕끄덕...저도 다른 분들이 왜 극찬하시는지 읽으면 읽을수록 끄덕끄덕×2 가 되었어요^^
저는 뭐 리뷰랄 것도 없이 그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의문점들이랄까요??
마지막 편을 읽고 나니 심판의 방향도 결국 악을 악으로서 처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이제 3 권에선 결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페넬로페 2022-08-12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2권 첫 부분이 젤 압권이었어요.
휘몰아치는 감정으로 책 속에 빨려 들어갔었거든요.
저도 소름끼치는 체험이었어요~~
책나무님, 이제 3권도 화이팅!

책읽는나무 2022-08-12 10:15   좋아요 2 | URL
끄덕끄덕~~ 제 고개가 용수철 달린 인형이 되었네요?ㅋㅋㅋ
고백 책 덕분에 다른 책들이 뒷전입니다ㅜㅜ
근데 전 한번씩 친구 베르나트가 좀 웃겼어요. 아니 왜 자꾸 소설을??
그리 아드리아가 악평을 하는데도??ㅋㅋㅋ 악평하는 친구더러 재수 없다고 서운해 하면서도??? 어휴~~
3 권에서 이혼 당한 베르나트도 궁금해지네요^^

페넬로페 2022-08-12 10:39   좋아요 2 | URL
베르나트!
이 인물을 3권에서 주목해 주세요
말하고 싶지만 스포일러 금지^^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 봄알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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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책 읽기 1 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이 되니 이 책에 나오는 여성 철학자 6인 중 스피박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다 알고 있는 위인이란 것이 그저 놀랍다. 이 모든 게 장족의 발전이겠지만, 깊이감은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 철학자 6 인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고, 그들의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도나 해러웨이와 크리스테바는 결코 쉬운 책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읽어 보고 싶게 인도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 작은 책은 그저 경이로웠고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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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8-10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나무님 👍 저도 덩달아 읽었더니 뭔가 생각하는 폭이 좀 넓어진듯 해서 북플님들 나무님 모두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ㅎㅎ

책읽는나무 2022-08-10 20:05   좋아요 1 | URL
네?? 제가요???ㅋㅋㅋ
여성주의 책 읽기 리더는 다락방님이시잖아요!!!
읽으세요~~~~ 지령 떨어지면 우린 우다다다다🏃‍♀️🏃‍♀️
허벅지 찔러 감서 읽었죠ㅋㅋㅋ
저는 첫 책인 <제2 의 성> 진짜 허벅지 여러 번 찔렀어요ㅜㅜ
벽돌책 한 권 읽고 나니까 어? 내가 읽었네? 어찌나 뿌듯하던지...^^;;;
그럼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읽어 내자!!
또 허벅지를.....
근데 진짜 1 년이란 시간이 지나니까 작년의 나와 올 해의 내가 좀 많이 달라진 게 느껴지더라구요. 미니님도 느끼셨나요??? 그럼 찌찌뽕입니다.ㅋㅋㅋ
저는 그래서 다락방님과 그외 임원들? 그분들이 감사하네요.
그리고 같이 읽어 나가시는 분들 미니님같은 북플친님들도 감사하죠^^
내년의 나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또 같이 12 권을 읽어 보아요^^
다락방님이 이번엔 이거!!!!!
지령 떨어지면 바로~~ㅋㅋㅋ

단발머리 2022-08-11 0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고 예쁜 책 좋아해요. 다른 책 읽다가 궁금하면 꺼내서 그 부분만 다시 읽어봐도 좋고요. 뭐, 거의 필수템이라고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김은주 작가님 오래오래 흥하세요!!!!

책읽는나무 2022-08-11 18:38   좋아요 0 | URL
앞으로 계속 책을 써주셨음 싶은 책이었습니다.
계속 다른 철학가, 그리고 사유의 고퀄 책들...읽어도 내가 무엇을 읽은 것인가? 싶었던 부분들을 너무도 명료하게 설명을 해놓으셔서 읽으면서 와!!!!! 하면서 읽었어요^^
단발머리님 말씀처럼 궁금하면 다시 꺼내 읽어볼 필수인 책이 아닐까? 싶어요.
아니...이런 책들을 어떻게 미리 알고 찾아서 읽으셨대요??
그러니 리더 및 임원직들 하실만 하세요ㅋㅋㅋ
작가님은 다른 책들은 더 안내셨대요??^^

단발머리 2022-08-11 18:54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 철학 입문>이 있습니다. 두껍고 검은 책이에요. 참고 바랍니다^^

책읽는나무 2022-08-11 19:44   좋아요 0 | URL
헐~~그 책 작가님이셨어요??
저 예전에 공쟝님이랑 바람돌이님 서재에서 초보자들 읽기 좋대서 구입은 해뒀어요^^
지금 다시 보니 김은주 작가님 맞네요!! 이런 이런~😅😅😅
이제 보이네요..보여~~아니까 보이네요.ㅋㅋㅋ
감사해요^^
 

한나 아렌트,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 도나J. 해러웨이, 시몬 베유,
쥘리아 크리스테바 이 여섯 명의 여성 철학자들을 읽고, 분석하고, 경외하고, 그리고 그들을 소개해 놓은 책이다.
2018년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책 표지는 썩 읽고 싶어지지 않는 책이지만, 책 제목을 어떻게나 자주 접했던지...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다 이렇게 얇고 작은 판형이었는데도 책 제목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실은 아직도 책 제목을 정확히 외우진 못하지만, 여자, 괴물 키워드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책을 읽어 보려고 관련 책을 네 권이나 사다 놓았고(읽어야 할텐데..) 도나 해러웨이는 지지난 달 사이보그 선언문 책을 읽었던 터라 이 두 사람 부분의 챕터는 아주 집중되어서 읽으면서 놀라웠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라는....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나머지 철학자들의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책이어서 너무나 놀라운 책이다.

이러한 타자는 로고스가 설명하지 못하는,
그러나 거대한 힘을 지닌 괴물의 이미지로 세계에 등장한다. 유명한 신화들은 언제나 괴물을 목격하여 지혜를 얻은 자를 그린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욥과 레비아탄의 만남이 그렇다. 그들은 괴물을 가두고 자신에 관한 지혜를 얻지만 이때 괴물은 설명되지 않은 채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결국 괴물에 대한 서사는 사유와 지식의 한계를 그린다. 괴물은 지식의 한계 밖에서 출몰한다. 낯선존재인 타자들은 언제나 괴물로 낙인찍힌다. 어떤 타자는 때때로 천사와 같이 신성한 괴물로 추앙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속죄양으로 전락한다.
대체로 타자는 배척의 대상이며, 박해받고 거주지 밖으로 추방된다. 타자는 어둠에서 죽은 듯, 없는 듯이 살아간다. 하지만, 괴물로만 모습을 나타내는 타자는 철학의 밝은 빛과 상관없이 스스로 드러난다. 괴물의라틴어 어원 monstrare(보여주다)에서 알 수 있듯, 타자,
괴물은 끝까지 감추어질 수 없고, 나타난다. 사라지지 않는다.
타자와 괴물을 몰아낸 기반에 뿌리 내린 철학에서,
여성은 타자다. 타자로서의 여성은 자신의 입말이 아니라, 자기를 탄압하고 옥죄는 언어로 사유와 철학을 시작한다. 여성을 타자로 규정한 철학 안에서 철학적 사유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얼어붙고 어두운 시기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정한 공간에서 온 - P10

힘을 다해 힘겹게 머무는 일이다.


이것은 그런 계절에 대응하는 우리의 유일한 방어기술이다.
이런 것은 우리가 배워야 했던 기술이다.
불안정한 지역에 살고 있기에 


그럼에도 여성들은 철학을 포기할 수 없다. 여성 역시 지혜를 욕망한다. 지혜를 향한 사랑인 철학은 성찰, 비판, 창발의 측면에서 여성들로 하여금 자기를 억압한 말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도구가 된다. 여성들은 압제자의 언어에서 새로운 말과 사유를 고민하면서.
당연히 여겨져온 말과 생각을 의심하고 길을 잃는 아포리아(aporia)적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면서기존의 사고와 기준, 가치를 철학이라는 망치로 부수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다.

"여성의 철학적 사유는 보편적일 수 있는가?"
여성 철학자에 대해서 쓰면서, 이 오래된 질문을 떠올린다. 남성의 철학은 인간 전체에 대해 보편적으로 사고한다고 당연히 여겨지지만, 여성에게는 왜 이질문이 따라붙어왔는가? "여성주의 철학이 보편 학문이라는 철학의 입지를 유지 할 수 있는가?"라는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실상 세계 밖의 위치에서 진리를 보증하는 방식으로 보편적·객관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바람일 뿐이다. ‘절대적 진리‘가 허망한 - P11

환상이라는 사실은 철학사에서 이미 목도했다.
실상 탈맥락적 보편이란 말은 허구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에서, 말하고 사고하고 행위한다.
철학적 사유는 자신이 거주하는 시간과 공간을 표시하고 말해야 한다. 예전에 만들어진 개념은 당연하게도 새로운 개념과 이론에 의해 비판되며 수정되고 새로쓰인다. 개념은 그 흔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
철학이 배제한 타자인 여성은 철학 개념들과 이론들에 명시적으로 또 암시적으로 배어 있는 여성 평가 절하의 논리를 추적하고 비판하면서 겹쳐 쓰고 같이 쓰면서,
수목철학의 죽은 뿌리를 거두고 리좀(rhizome)의 망으로 어디든 살아낸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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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8-10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은주 철학자가 워낙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잘 쓰지 않나 싶어요. 그대의 길을 응원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8-10 14:50   좋아요 1 | URL
정말 그랬어요!!
쏙쏙 들어왔어요. 어쩜 저렇게 어려운 내용들을 알기 쉽게 풀어주시는지!!!!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큰 공부가 되겠어요.
저도 1 년동안 읽어 놓은 게 있어서 알아들은 건가? 싶기도 하구요.
읽으면서 시몬 베유 사상가에게 좀 끌렸어요^^
실은 6 분 모두에게 절로 끌리긴 했지만요ㅋㅋ

미미 2022-08-10 0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발췌문에서 <여성괴물>도 느껴집니다. ^^* 나무님이 말씀하신 도나 해러웨이 부분 어떻게 쓰여 있나 찾아봐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22-08-10 14:46   좋아요 1 | URL
여섯 분들의 각각의 밑줄 긋기 작업을 하고 싶긴한데...죄다 그어야 할만큼 문장들이 좋아서..도배 밑줄이 될 것 같네요^^
도나 해러웨이편은 사이보그에 대한 정의가 설명되어 있어서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습니다.
공부가 많이 되는 책이었어요.
강추 드립니다^^
 

최초의 모래 알갱이는 눈을 간지럽힌다. 그리고 손의 가시가 되더니 뱃속에서 불덩이로 변하고, 호주머니에서 걸리적거리기까지 하다가 좀 더 나쁜 운과 만나 양심의 가책에 무게를 더한다. 모든 것, 그러니까 모든 삶과 이야기는, 사랑하는사라, 이처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해한 모래 알갱이로부터 시작되는 거였어. - P123

"어디에다 정리하려고?"
"철학책은 거실에 수학책, 천문학책과 같이 두려고 문헌학과 언어학은 작은 롤라 방에 소설은 각각 해당하는 복도에두고."
"그럼 옮겨 볼까."
바르토크는 어느 오케스트라와 연주하고 싶은 거야?"
"내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보려고."
"이런, 정말 잘됐네. 그렇지?"
"어디 행운의 종소리가 울릴지 한번 두고 보자고종소리보다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야겠지."
"그래. 책장을 더 주문해야 할 것 같은데."
책장을 더 주문했다. 아드리아의 주문이 그칠 줄 몰라 플라나스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천지 창조 넷째 날에 카테리나는 중요한 승리를 얻어 냈다. ‘주님‘으로부터 서재에 있는 책을 제외한 집 안의 모든 책의 먼지를 털어 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에도 작은 집안일들을 처리하러 방문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녀는 일 년에 한 번씩모든 책의 먼지를 털 수 있었다. 아드리아는 원하는 대로 하세요, 작은 롤라. 이 일에 관해서는 저보다 더 잘 아시니까요.
"카테리나라고요."
"손님방에 빈 공간이 더 있으니 종교학, 신학, 민속학, 그리고 그리스 로마에 관한 책들을 두어야겠어요."
‘주님‘이 물을 갈라 땅은 마르게 하시고 바다를 만드신 순간이었다. - P147

"너는 말이야...... 뭐가 더 좋아, 고양이야. 아니면 개야?"
"둘 다 별로야."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둘 다 싫어"
"집 안에서 볼일보는 게 싫은 거지, 그렇지?"
"그것 때문은 아니야."
"물론 그렇겠지, 네가 그리 말한다면………." 바닥에 책을 쌓던베르나트가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그래도 애완동물을 한마리 들이면 너한테 좋을 것 같은데."
"누가 죽는 게 싫어. 알겠어?" 그는 욕실 앞 두 번째 줄을 슬라브어 책들로 채우며 말했다. 가축이 창조되었고, 야생 동물이 땅을 채웠다. 그는 그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첫 번째 복도의 어두운 바닥에 앉아 그의 슬픔을 자세히 읽어 내려갔다.
"이런, 카를 마이잖아. 나도 그의 책이 많아."
"이것 봐. 살가리의 책이야. 이런 세상에, 아니다. 살가리 책이 열두 권이나 있잖아."
"그리고 베른. 도레의 판화가 담긴 판본이 있었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데?"
"누가 알겠어."
"그리고 에니드 블라이턴, 산문집 중 가장 잘된 건 아니지만 벌써 서른 번이나 읽었어."
"그리고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어떻게 할 거야?"
"아무것도 버리고 싶지 않아. 다만 어디에 정리해야 할지모르겠다는 거지."
"집에 아직 빈 공간이 많잖아." - P148

‘주님‘은 맞아, 빈 공간이 많지, 하지만 난 책을 계속 사고싶어라고 말했다. 내 문제는 카를 마이와 쥘 베른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 거야, 이해했어? 베르나트는 그렇고말고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화장실의 작은 수납장과 천장 사이에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열의에 찬 플라나스는 튼튼한 이중 책장을 만들었고, 아드리아가 어릴 때 읽었던 모든 책들은 그곳으로 보내졌다.
"떨어지지 않을까요?"
"만일 떨어지면 제가 직접와서 남은 인생 동안 받치고 있겠습니다."
‘아틀라스처럼 말이죠."
"네?"
‘카리아티드처럼 말이죠."
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점만 확실히 말씀드리죠. 마음 놓고 똥을 누셔도 좋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 말은,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작은 화장실에는 잡지를 두고."
"괜찮을 듯해." 베르나트는 로망어군 산문집을 보관하는 복도를 지나 20킬로그램 되는 고대 역사책들을 아드리아의 어린 시절 방으로 옮기며 말했다.
부엌에는 요리책을 두자고."
"달걀 프라이 하나를 하는 데도 참고 문헌이 필요한 모양이로군."
"모두 어머니의 책들이야. 버리고 싶지 않아."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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