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장경현 감수 / 고려원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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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딕슨 카하면 떠오르는 것이 우선 밀실 트릭의 대가라는 점이다. 그는 다양한 작품에서 밀실 트릭을 여러번 독특한 방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또한 프랑스 경감 방코랑 시리즈와 기데온 펠 박사 시리즈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창조했다. 카터 딕슨이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는 헨리 메리벨 경 시리즈를 썼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작품 속에 등장시키고 구현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역사 미스터리를 쓴 줄은 몰랐다. 역시 대가다. 그가 보여준 역사 미스터리는 고전적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품격을 느낄 수 있다.  

오컬트적 미스터리를 쓴다는 점이 동시대 추리 작가와 딕슨 카와의 차이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역사 미스터리, 즉 지금으로 말하자면 팩션을 쓴 작가다. 놀라운 일이다. 물론 다른 작가들도 역사 미스터리를 썼지만 그것은 추리적인 수사 기법의 응용 영역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오는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딕슨 카는 그보다 현대적인 팩션의 고전적 형태로서의 작품을 쓰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장미의 이름>이나 <다빈치 코드>같은 팩션이 그냥 작가의 머리 속에서 툭 튀어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그들에게 선구자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딕슨 카가 그다. 

240년 전에 일어난 살인 사건을 막고자 악마에게 영혼을 판 닉 펜튼 교수, 그는 그 시대로 가서 자신이 사모하던, 하지만 진짜 닉 펜튼(이름이 같은 몸의 주인공)에게는 사랑받지 못한 리디아가 비소 중독으로 살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그곳에서 닉의 정부인 메그 요크가 그를 따라 온 동 시대 그의 친구 딸인 메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녀의 유혹을 뿌리친다. 그는 리디아를 독살하려는 범인을 잡아 쫓아 내고 리디아가 죽기로 되어 있던 날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날짜를 지워 나간다. 

하지만 세상은 변해도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역사를 변화시키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닉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노 교수 닉이 분노할 때마다 몸의 주인인 난폭한 닉이 정신을 지배하게 되고 그 순간 또 다른 닉은 기억 상실증에 걸린 듯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불안해야 마땅함에도 노교수의 자신감과 자신이 원하던 사랑과 자신이 원하던 시대를 살고 있다는 행복으로 그는 사건과 시간, 그리고 자신이 계약한 악마가 있다는 사실마저도 망각을 한 채 역사를 이리 저리 바꾸려 애를 쓴다. 급기야 그는 심각한 적을 만들고 만다. 

딕슨 카는 역사 미스터리에 충실함을 보여주면서 그 시대를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충실함을 보여주고 있고 여기에 추리소설의 기본 요소를 끝까지 잊지 않고 끌고 나간다. 제목이 이 작품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벨벳의 악마는 칼을 잘 쓰는 검사 닉 펜튼이 벨벳 옷만을 입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또한 악마와 계약한 닉 펜튼 교수를 뜻하기도 한다. 악마의 등장이라는 다소 황당함을 주는 장면에서조차 진지함을 느끼게 만들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면이 딕슨 카의 작품을 사람들이 왜 읽고 싶게 만드는지를 알려준다. 다소 비현실적이었고 마지막 장면은 좀 유치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어울리는 엔딩이 아니었나 싶다. 이 작품이 그야말로 역사 미스터리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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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0-07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딕슨카의 작품이 어느새 꽤 많이 나왔네요.앞으로도 계속 나오길...^^

물만두 2009-10-07 15:29   좋아요 1 | URL
네.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작갑니다^^
 
백기도연대 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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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에 백가지 기물에 깃든 요괴 이야기를 적어 놓은 책이 <백기도연대>다. 그 백기도연대를 바탕으로 다시 재해석하고 미스터리를 붙여 만든 작품이 <백기도연대-雨>와 <백기도연대-風>이다. 이 작품들은 교고쿠 나쓰히코의 두 탐정이 모두 등장한다. 아니 교고쿠도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등장을 한다. 하지만 교고쿠도 시리즈가 교고쿠도 고서점 주인 주젠지를 중심 인물로 했다면 이 백기도연대 시리즈는 장미십자탐정소를 운영하는 에노키즈가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시리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세키구치가 빠져있다. 아, 불쌍한 세키구치는 에노키즈의 등살에 앓아눞기라도 한 것인가. 대신 화자로 세키구치만큼이나 불쌍한 모토시마가 등장해서 그만큼 당한다. 

첫 작품이 세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단편들을 일어나게 하고 이어주는 시발점이다. 9살의 나이에 유곽에 팔린 처녀가 20년만에 어머니를 만나러 주인 몰래 고향집을 찾아갔더니 어머니가 자신을 몰라보더라는 것이다. 이 처녀의 유곽 주인과 친구의 주인은 철천지 원수 사이다. 이들 사이에는 살인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자리잡고 있고 그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을 풀어내는 것은 미스터리스러웠지만 또 다시 에노키즈는 발광에 가까운 몸짓을 하고 주젠지는 장광설을 읇고 있다.  

얼결에 에노키즈의 조수라고 하는 바람에 다시 에노키즈와 스스로 인연을 만들어버린 전기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시민 모토시마는 다음 사건에서는 영감 탐정이라며 에노키즈에게 탐정 대결을 신청한 자의 미끼가 되고 마지막 작품에서는 에노키즈의 진짜 조수 탐정인 마시마와 함께 도둑으로 몰리기에 이른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주젠지가 그렇게 에노키즈와 어울리면 바보가 된다고 인연을 끊으라고 했건만 인연인지 악연인지 모토시마는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에노키즈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도 계속 그를 찾아 탐정 사무소를 드나들게 된다. 정말 평범한 소시민 모토시마 수난기라고 하고 싶은 작품이다. 왜냐하면 평범하지 않은 인간인 주젠지와 에노키즈는 사건의 본질을 이미 알고 있는데 당하기만 하는 평범한 모토시마는 이해하기 힘들고 어렵고 당한 뒤에나 사건의 내막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어백물어>를 읽고 감탄한 지가 얼마 안됐건만 도로 머리 아프게 됐다. 간단한 사건을 이리 장황하게 다시 늘어 놓다니 글재주 하나는 비상한 작가다. 백기도연대에 風자가 붙은 것은 바람에 휘날리듯 물건에 휘둘리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리라. 여기에는 고양이상인 마네키네코, 운외경이라는 이상한 거울, 오래되어 보이는 화를 부른다고 봉인된 가면이 등장한다. 거기에는 모두 인간의 욕심과 허영, 욕망, 집착 등이 담겨 있다.  

물건이 오래되면 귀신이 된다는 옛말이 있다. 이것은 동양의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일본은 여기에 요괴 이야기를 덧붙여 시대에 따라 제각각 변형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이 작가의 이런 안목은 탁월하다. 사실 별 이야기가 아닌 사건들을 너무 포장을 잘해서 그럴 듯하게 독자에게 내 놓고 있다. 주젠지의 장광설과 에노키즈의 오버액션이 그들 캐릭터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좀 덜하기만 하다면 더욱 좋을 것 같은 시리즈다. 그나저나 백가지 이야기 중에 세가지씩 쓰면 언제 백가지 이야기로 재탄생된 이야기가 완성될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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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9-10-0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리뷰랑 상관 없는 댓글을.. ^^
추석 즐겁게 지내세요. 맛있는것도 많이 드시구요.
:D

물만두 2009-10-01 12:26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10-0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이 녀석은 패스패스~

물만두님 추석잘보내세요 ^^*

물만두 2009-10-01 14:14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추석 잘 보내세요^^

[그장소] 2013-08-0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 읽어야지!!
 
내 안의 살인마 밀리언셀러 클럽 103
짐 톰슨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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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작가의 요즘은 너무 진부한 소재가 되어 버린 이야기라 사실 읽으면서 조금 뜨악했다. 도대체 이 작품의 시대 배경이 언제지? 라는 의문을 읽자마자 품었어야 하는데 나는 늘 조금은 늦게 뭔가를 느끼기에 읽는 도중 1952년이 작품의 배경임을 알게 되었다. 1952년의 미국 남부가 배경인 작품인 것이다. 그것만 먼저  알았더라도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작품이다. 그러나 또 하나 의문을 품었다. 짐 톰슨이라는 작가는 이 작품을 언제 쓴 거지? 지금 살고 있는 작가가 배경만 1950년대로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작품 자체가 1952년 작품이다. 작가도 이미 고인이 된 분이다. 이런 책에 대한 약간의 조사를 하고 읽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이렇게 작가와 작품에 대해 알고 읽는 것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50년 초 석유개발로 인구가 갑자기 늘어난 소도시의 부보안관으로 있는 마을 사람 모두가 사람 좋다고 인정하는 루 포드는 그러나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지금 쓰고 있는 가면이 벗겨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 그에게 그 가면이 벗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을에 자리를 잡은 창녀 조이스와의 만남이다. 그 만남으로 루는 자기 안에 억제하고 있던 살인 본능을 뿜어내고야 만다. 물론 조이스때문만은 아니다. 자신 대신 어린 시절의 죄를 뒤집어 쓰고 소년원에 갔다가 나와 사고로 죽은 아버지가 양자로 들인 형에 대한 복수심도 있었다. 그 복수를 부추기는 노동 조합장이 있었고, 아들과 창녀 사이를 떼어달라고 명령을 한 마을의 유지 원수 체스터도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이런 복합적인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살인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계속하는 루의 모습과 그 모습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서 점차 멀어지는 모습 속에 폐쇄적인 마을에 떠도는 범죄의 그림자를 느끼게 된다.   

지금 작품과 비교하면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시대를 감안하고 보면 잘 쓰인 작품이다. 살인자의 심리 묘사와 마을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고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느릿느릿함이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느낌은 좋았다. 아마 그 시대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읽어도 괜찮다. 살인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루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마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심정과 일치시키고 있는 점은 그 시대, 그런 마을의 폐쇄성과 살인이라는 폐쇄성을 동일시하고 있다. 루에 의해 점점 밝혀지는 그의 과거와 감추어진 추악한 진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점과 그들이 밝히는 이야기들은 작품에 집중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한 마지막 반전은 그 나름대로 당시에는 꽤 신선했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을 조여오는 것들을 알면서도 '인생에 위기가 찾아오면 관심 분야가 적어진다.'고 받아들인다. 그의 관심은 단 하나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그러면서 그가 묻는다. 누가 게임을 시작한 것이냐고. 마지막 '우리 모두'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모르던 작가의 몰랐던 작품을 뒤늦게나마 누군가의 안목에 의해 내가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모르고 지나간 작가들이, 작품들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다. 그 모든 작품들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누구에게는 정당한 평가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 작품은 범죄자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범죄자가 화자로 등장해서 자신의 범죄를 드러내고 자신의 심리를 보여주는 한편 스쳐지나가듯 다른 이들의 모습 속에 담겨 있는 범죄, 사회가 묵인하는 범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의 사회와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범죄자는 더 잔인해지고 악날해졌지만 그만큼 사회도 더욱 변하지 않고 화석처럼 단단해졌음을 알게 된다. 스타일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인간 자체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자신 안에 그 어떤 악도 없다 자신할 수 있겠는가. 숨겨진 보석, 흙 속의 진주란 이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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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9-09-29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또 언제올지 모르니 미리 메리 추석이요.!!

물만두 2009-09-29 15:03   좋아요 1 | URL
파비아나님 추석 잘 지내세요^^

sooninara 2009-09-30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리 추석^^
성님이 알라딘을 지켜주시는 동안, 동생은 딴데서 놀다 올만에 오네요.
앞으로는 알라딘에도 열심히 출석하겠습니다^^

물만두 2009-09-30 16:16   좋아요 1 | URL
수니아우 방가방가^^
추석 잘 보내.
나도 알라딘에는 뜨문뜨문 하네.

[그장소] 2013-08-03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리언셀러클럽은..전부 족족..본지라..^^
 
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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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이어지는 유가와 교수와 구사나기 형사가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빼면 단편집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본격추리소설의 플롯은 단순하다. 그는 본격추리소설의 법칙에 철저하게 따르는 작가다.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간단한 범인찾기를 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가장 심열을 기울이는 것이 트릭이다. 어떻게 범죄를 일으켰을까? 이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범인을 잡게 되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에서는 전작 <탐정 갈릴레오>에서 보다 더 본격적으로 이것이 범죄일까 싶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기이한 현상으로만 여겨질 사건들을 과학탐정인 물리학 교수 유가와가 논리정연하게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현상에 대한 해석과 범죄자의 사건 은폐를 꾀뚫어보며 해결하는,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는 별거 아닌 듯하게 느껴지지만 유가와가 나서지 않으면 이 단편집 속의 이야기들처럼 심령 현상 내지는 초능력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일들이 다시 한번 펼쳐진다. 

이제는 아예 심령 현상에 대한 이야기만을 내세우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결혼할 여자의 꿈을 꾸고 그 이름을 기억하며 산 남자가 운명처럼, 기적처럼 그런 이름의 여자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라거나 술이 취한 남자 친구 앞에 나타난 여자 친구의 모습이 불길해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순간 살해당했다는 이야기, 실종된 남편을 찾는 부인을 돕다가 남편이 자주 찾는다는 노부인이 죽었고 그 집에 조카와 그의 친구가 사는데 누군가 감금당한 듯이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 남편이 빌려준 돈을 받으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딸은 아버지와 도깨비불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불길한 느낌을 말하고 그 말처럼 남편은 살해당한 채 발견되는데 용의자로 그 아내가 지목되지만 미궁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맞은 편 아파트에서 여자가 자살하는 것을 목격한 여자 아이와 그 아이의 말처럼 내연남이 보는 맞은 편 아파트에서 자살을 한 여자 이야기까지 모두 예지몽이거나 홀터가이스트, 귀신, 도깨비불이 연상되는 사건들이 펼쳐진다.   

모든 사건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없는 사건은 없고 증명할 수 없는 사건 또한 없다.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이 미처 알지 못하거나 규명하지 못한 일일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학이다. 범죄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명확하게 증거에 의해서 사건을 파헤치고 범인을 잡아야만 해결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이제 자백에 의한 증거를 점차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자백과 함께 명확하게 입증될 증거가 있어야만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그런 점에 입각해서 인간이 간과하고 소홀히 할 수 있는 증거가 없어보이고 규명이 어려워 보이는 기이한 사건들도 잘 파악하고 조사를 하면 인과를 알게 되고 인과를 통해 사건의 발생 원인과 방법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작가가 유가와를 통해 증명하는 사건들의 모음이다. 

가가형사 시리즈와 함께 유가와 교수 시리즈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앞으로도 계속 써줬으면 하는 작품들이다. 이 캐릭터들은 정말 마음에 든다. 무엇이든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유가와와 그를 잘 믿고 사건을 의뢰하는 구사나기 형사는 참 잘 어울리는 콤비다. 유가와의 모습에서 나는 홈즈의 느낌을 받는다. 작은 단서 하나에서 예리하게 과학적으로 분석을 하고 자신이 해결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완전 홈즈의 모습과 닮았다. 이렇게 우리의 셜록 홈즈는 백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탐정의 모습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점을 보는 것이 탐정 소설을 즐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단편도 좋지만 <용의자 X의 헌신>에서처럼 장편에서의 활약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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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9-09-2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점점 선선해지는데 잘 지내시지요? 괜히 전 맘만 바빠서 잘 들어오지도 못해요

물만두 2009-09-24 10:55   좋아요 0 | URL
뭐, 그저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겨진 자들 메두사 컬렉션 2
제프리 디버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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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인적이 없는 숲 속 별장에서 쉬러 온 부부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그 직전 남자는 911에 전화를 걸어 한마디를 남긴다. 그 한마디를 단서로 보안관은 집에서 쉬는 부보안관 브린을 잠깐 별장을 살펴보게 한다. 정말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간 곳에서 브린은 두 남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그들이 쫓던 피해자들의 친구를 만나 도망을 다니게 된다. 어둠 속에서 적이 어디서 나올지도 모른 채 마냥 도망가야 하는 모습과 동물적 감각과 급히 만든 나침반에 의지해서 속고 속이는 모습은 정말 스릴 만점이었다. 그 아슬아슬함은 읽는 이의 등에도 땀이 흐르게 만든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이 읽었다. '위험해.', '피해.'라고 외치는 나를 발견했다. 책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되서 숲 속에서 내가 쫓기는 느낌이 들었다. 읽으면서 아니 왜 혼자 보낸 거냐고, 원래 경찰은 2인 1조로 움직이는 거 아냐? 라고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혼자 범인을 검거하려다가 범인에게 당한 경찰의 안타까운 소식을 뉴스에서 듣곤 하니까 픽션을 너무 사실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여기에 노동조합장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어떤 비리가 있는 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브린 매켄지라는 부보안관이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브린은 캐릭터적으로도 마음에 드는 인물이다. 시리즈가 나와도 좋을 것 같은 매력적인 여성 경찰이다. 여기에 조경일을 하면서 재혼의 위기를 겪는 남편 그레이엄의 상반된 성격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론 추격신에서 보여준 하트와 콤프의 조화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브린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며 브린에게 집착하게 되는 하트의 캐릭터는 범죄자의 또 다른 성공적 캐릭터의 창조라고 할만 하다. 숲속에서의 추격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그런 스릴은 좀처럼 느끼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다.   

작품의 대부분을 숲 속에서 한 밤중에 쫓고 쫓기는 장면에 쓰고 있는데 거기에서 오는 긴박감이 대단하다. 그 짧은 시간에 살려는 자의 의지와 죽이려는 자의 의지가 기지를 발휘하게 만들어 속고 속이는 살벌한 투쟁속에 몰입하게 만든다. 두 여자와 두 남자, 무장하지 않은 여자들과 총을 가진 남자들, 경찰과 살인청부업자의 대결이라는 상반된 입장이 그들만의 연합전선을 구축하게 한다. 하지만 제프리 디버는 마지막에 대반전을 남겨두었다.  

거기에서 멈췄더라면 스릴은 만끽할 수 있었겠지만 남는 것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의 결말은 그 숲 속에서의 생존 투쟁을 무색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생각해보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생존투쟁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숲 속에서 청부살인자에게 쫓기는 경험을 하겠는가. 그러므로 이 대 반전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준다. 처음의 스릴과는 또 다른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장치라는 것이 숲 속의 장면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전해진다.   

하긴 사람이 꼭 어떤 직접적인 위협이 있어야만 삶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건 아니다. 남편과의 사이가 안 좋은 브린은 첫 남편이 폭력 남편이었던 관계로 아직도 맞아서 성형한 턱을 쓰다듬고 있는데 그걸 재혼한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고 아들에게도 너무 관대해서 과잉보호하거나 마치 빚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며 남편과 아들이 친해질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열지 않는 모습에 남편 그레이엄은 상처를 입는다. 가족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래도 아내가 너무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자 아내를 찾아 나서는 의붓 아들 조이 대신 아내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한번 벌어진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대화와 시간이 필요하다. 

남겨진 자들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작품 속에서 피해자를 죽이려고 사주한 범인이 누구인지 남겨진 자를 궁금하게 만들고, 그러는 한편 피해자들 말고 목격자라는 남은 제거해야 하는 대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건을 완벽히 하려면 남겨진 자가 있어서는 안되니까. 거기에 삶에 남겨진 자들이 있다. 남겨져 섞이기를 바라는 자들이 이어가려는 삶의 모습. 작가의 반전이 조금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제프리 디버는 제프리 디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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