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죽음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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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남자가 한을 품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된다. 내 말이 틀리다 생각되면 이 작품을 보시길. 이 작품은 1994년 <프랑스 범죄 문학상>의 국내 부분 수상 작품이다. 아마도 독특한 구성에 많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말 그대로 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살아서 느끼는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 아닐까.  

아름답고 치밀한 복수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은 에드워드 램이 그의 친구 니콜라 파브리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다루고 있다. 그 복수는 니콜라 파브리가 철저하게 에드워드 램이 가진 작은 행복을 파괴한 것에 대한 답례일 뿐이다. 그는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에드워드가 가진 단 두 명의 친구와 의절하게 만들었고 그가 열정을 불태우던 문학에 대한 창작욕을 꺾었고 그가 생을 통해 단 한 명 사랑한 여인을 죽게 만들었다. 그는 에드워드를 친구로 말하면서 친구로 대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에드워드의 열등감에 대한 표출일 뿐이고 시기심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세상엔 너무도 많은 니콜라 파브리가 존재하고 또 너무도 많은 에드워드 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번쯤은 에드워드 램처럼 자신을 나타내어도 좋지 않을까. 물론 그 방법이 누군가를 살인하는 것이나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것은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에드워드 램의 방법은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응징이었을 뿐이다. 또한 니콜라 파브리가 파멸한 것은 전적으로 그에게 원인이 있고 범죄자인 에드워드 램의 완전범죄와 행복 또한 그에게 걸 맞는 것이라 생각된다. 누가 세상이 공평하다고 했단 말인가.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그러니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줘도 되지 않을까. 

한 남자가 평생을 두고 한 남자를 증오해서 복수할 날 만을 꿈꾼다. 그러다 마침내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 보면 도서 추리 소설이면서 완전 범죄의 대표적인 작품인 <지푸라기 여자>보다 더 완전 범죄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면서 문학적 완성도도 뛰어나서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다. 단지 너무 쉽다는 것이 옥의 티라고나 할까. 복수가 이리 쉽다면 누군들 복수를 하지 않을까. 하긴 그래서 픽션이겠지만 어쩌면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한 실제로 있어 왔고. 반대적 의미에서 말이다.

예를 들어 까미유 클로델의 작품을 훔쳤다고 의심받는 로댕, 그로 인해 평생 정신 병원에서 보낸 그녀, 아내의 뛰어난 머리를 훔친 아인시타인. 그래서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제자들이 만세를 불렀다던가.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다. 이들의 행동이 사실이라면 누군가 한 명쯤은 복수를 했을 지 모를 일이고 자살한 자들이 많으니 어쩜 이런 사연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 이 작품을 읽으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아무튼 간만에 읽은 재미있는 프랑스 유머 가득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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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 밀리언셀러 클럽 104
리 밴스 지음, 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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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직장에서 보내고 있던 피터에게 경찰이 찾아와 아내가 강도에게 살해당했음을 알린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에 적응할 사이도 없이 그는 보통 경찰 수사의 기본 원칙에 따라 남편이기에 첫번째 용의자가 된다. 경찰들은 다른 범인은 없고 오로지 그만이 범인이라고 단정하고 그의 뒤만 캔다. 그러다 그가 아내와 사이가 안좋다는 사실과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로 인해 그는 아내의 장례식에서도 쫓겨나고 직장에서도 쫓겨난다. 이제 그에게는 오로지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런 그에게 아내가 소포를 가지러 갔다가 강도를 당했다는 사실을 경찰이 알려준다. 그 소포는 친구 안드레이에게서 온 것인데 그 소포가 사라졌다. 도대체 안드레이는 무슨 소포를 보냈고 그 소포는 왜 사라진 것일까? 그는 당장 안드레이를 찾아나서지만 그의 종적이 묘연하다. 

월스트리스의 투자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역사적 사건과 가정사를 드라마틱하게 잘 표현한 작품이다. 아내 제나의 이상주의적인 모습에 반감을 품지만 그것에 매료된 너무도 현실주의자인 피터, 그리고 어린 시절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피터는 파파보이로 자라 아버지 말이 절대적인 남자다. 그렇다고 그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입양에 대한 생각은 다른 입장을 취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상적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니까. 이런 세세하고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피터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어떤 과거와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이런 죽은 아내에 대한 뒤늦은 죄책감과 후회가 작품의 이야기를 담당하는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위험에 빠지고 혼자 힘으로 부딪히는 피터의 모습이 그려진다. 게속해서 살인 용의자로 쫓기다 국토안전부에 체포되어 그들의 심문을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거기서 아내가 살해된 그 즈음 안드레이를 찾아 다녔다던 문신한 남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피터는 결국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한다. 이 사건은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공을 들인 일이기 때문이다. 피터의 아버지 말은 그가 모두 믿었지만 결국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그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바람을 피운 책임을 아내에게 돌리고 피터에게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번지르르한 말이었을 뿐이다.  

작품은 금융만을 다루고 있지 않고 범죄 조직만을 다룬 것도 아니다. 신약 개발이라는 제약회사간의 다툼만을 다룬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무슨 2차 세계대전때 융단 폭격을 하는 거처럼 피터 앞에 그가 피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튀어 나온다. 여기에 친구 안드레이의 횡령 사건까지 알게 되고 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회장은 주주들 몰래 자신이 원하던 미술품 컬렉션을 사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데 누구도 그의 죄를 알지 못하고 알릴 수 없으니 죽을 맛이다. 어쩌면 모든 금융 위기들은 이런 웃선에서의 부정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가장 크다고 경고하는 것만 같다. 작품은 단순히 피터의 좌충우돌 아내 살인범 찾기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반전을 보고 나서야 왜 이 작품의 제목이 <반환>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생 참 어렵다. 그러니 톨스토이가 <고백>에서 '우리 삶에 있어서 변화는 우리의 양심의 소리를 따르느 것이라기보다는 다르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 틀림없다.'라고 말하고 작품 속에서 그것을 인용한 것이리라. 겁저가 아형가 사안의 <낙화>가 생각났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 작품의 마지막을 읽고 책을 덮고 나니 부질없이 쥐고 있던 것, 꺠닫지 못한 것, 삶은 한순간이라는 사실, 그러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것에 쓸쓸해진다. 정말 우리가 진정 반환해야 하는 것은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마지막을 읽고 나서야 괜찮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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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사각 - 201호실의 여자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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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하라 이치의 도착 시리즈 두번째 작품이다. 지난 번에는 아주 제대로 당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읽었다. 그런데 얼추 사건이 조금 느껴졌다. 뭐, 그래봤자였지만. 나도 그냥 속았다고 말하려니 마지막이 찜찜했다. 봉인을 해제한 뒤가 왜 맥이 빠지게 느껴지는 건지. 현대인의 집착과 광기를 제대로 그려내긴 했는데 마지막은 참 슬펐다. 

맞은 편 아파트 201호를 엿보다 시체를 발견하고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속앓이를 하다가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치료소에 들어갔다 나온 번역가 오사와 요시오는 1년 뒤 치료소에서 나와 새롭게 시작을 하려는데 다시 맞은 편 아파트 201호에 새로 여자가 입주한 사실을 알고 고민에 빠진다. 큰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엿보기가 취미가 되어 버린 이 남자는 자신이 그 여자로 인해 다시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두려워한다. 

이제 막 도쿄에 취직을 해서 온 마유미는 여행사에 다니면서 직장에 나름 잘 적응하면서 회사의 유명한 바람둥이 유부남 다카노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요시오와 같은 알코올 치료소에 있다 나온 절도범 소네는 우연히 마주친 요시오가 자신을 미행한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그의 약점을 잡으려다가 마유미를 요시오가 엿본다는 사실을 알고 그 집 열쇠를 복사해서 마유미 집을 드나들며 마유미의 일기장을 훔쳐보며 다카노에게 분노한다. 그런 와중에 사건이 일어나고 각자 그 사건에 대처하는 자세는 그야말고 각자에게 어울리는 광기어린 것들의 표현이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얽히고설켜서 현대인의 억눌린 심리와 범죄 사이의 다리를 작가가 놓고 있다. 작가는 다시 한번 독자로 하여금 글과 글 사이의 행간을 눈여겨 보게 만들고 있다. 요시오와 마유미의 일기가 번갈아 등장하고 여러 사람들의 돌발적 행동이 미스디렉션으로 작용하도록 교묘하게 꾸며 놓았다. 그 미스디렉션을 간파하고 마지막까지 잘 도착하는 것이 관건인데 작가가 여전히 만만하지 않다. 이야기는 <도착의 론도>보다 쉽게 전개되는데 그 쉬운 전개가 또 다른 미스디렉션으로 작용하는 것만 같다. 

이번 도착에는 관음증이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엿보기다. 인간은 모두 엿보기를 좋아하고 엿보기를 일상화하고 있다. 매스컴의 보도를 보는 것, 인터넷을 하는 것도 엿보기의 일종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그야말로 병이 된다. 관음증 환자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엿보기를 하며 괴로워하고 자신의 그런 습관을 여자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인물인 요시오와 아주 당당하게 남의 집에 들어가서 엿보기를 하는 소네가 등장해서 서로 다른 엿보기 행태를 보여준다. 여기에 책의 마지막을 봉인해서 독자를 책속의 엿보기에 동참시키고 있다. 이 작품의 놀라운 점은 여기에 있다. 마지막까지 관음증이란 소재를 놓치지 끝까지 이어가고 있는 점이다. 

작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정글처럼 싸워야 하는 대도시에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냐고. 어쩌면 그런 것이 관음증이라는 도착에 빠지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이들을 측은하게 바라보게 하고 있기도 하다. 약한 동물에게서 먹이를 가로 채는 맹수를 탓할 수 있으며 궁지에 몰린 약한 동물의 몸부림은 얼마나 가련한지를. 도착의 사각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시 도착 시리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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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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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 울리치의 작품은 어둡다. 그의 작품은 제목에도 많은 들어 있지만 색으로 표현하면 검은색이다. 까만 밤처럼. 그 밤을 배경으로 작가가 독특한 작품을 썼다. 시간의 제한을 두고 점점 불안과 공포로 숨막히게 만들고 그런 한편에서는 경찰들이 실체가 모호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초를 다툰다. 과연 작품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짧은 시간 동안의 인간의 불안한 심리와 조여오는 실체없는 공포를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숀은 어느 날 밤 한 여자가 자살하려는 걸 막는다. 그 여자는 자신을 살려준 것을 원망하며 자신이 왜 자살하려는 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공포의 시작은 부잣집 외동딸인 진의 집에서 하녀 한명이 그녀의 아버지가 비행기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저 불쾌하게 여겨 그 하녀를 쫓아내지만 그녀도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결국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아버지가 탄 비행기가 사라졌다 추락해서 전원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녀는 결국 그 하녀의 집을 찾아 나선다. 그곳에는 앞날을 예언하는 이상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그녀의 아버지는 무사할 거라는 걸 알린다. 예언은 적중되고 아버지는 불안해하는 딸을 위해 그 남자를 찾아가 사기꾼임을 증명하려 하지만 그 남자의 말에 빠져들어 모든 것을 그와 의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남자는 진의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음을 얘기하고 여기에 불안해진 진이 자살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숀은 자신이 경찰임을 알리고 그가 그들을 보호해주겠다고 나선다. 숀은 상관에게 이 일을 보고해서 그 남자가 사기꾼이자 살인자임을 밝히려 애를 쓰고 그동안 진의 집에서 함께 있으며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로 한다. 숀의 상관은 각각의 경찰들에게 그동안의 일들이 조사에 의해 현혹시킨 속임수임을 알아내도록 지시하고 경찰들은 그 일을 입증하기 위해 나선다. 또한 죽음에 연관되는 사자에 대해서도 조사하기에 이른다. 이미 그녀의 아버지는 시시각각 줄어드는 자신의 삶의 시간을 재며 넋이 나간 상태였고 하인들은 불안해서 공포에 떨며 집을 거의 모두 나가고 만다. 도대체 사자가 죽일 거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그의 예언은 진짜였는지, 어떻게 경찰들이 모든 것을 밝히게 될지 불안과 공포는 점점 그들은 짓누르는 가운데 시간은 분단위로 쪼갤 수 있는 아주 모래알 같은 시간만이 남는다. 

누군가 죽음을 예언한다고 해서 이렇게 공포에 떨수 있을지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저 흔한 집시 노파의 수정구슬 점으로 치부하고 웃어 넘길 것 같다. 오히려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의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진과 그의 아버지는 부자다. 부자들은 외롭다. 누구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누군가의 말을 더 잘 믿게 된 건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말이다. 그리고 자기도 잊고 있던 기억까지 맞추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리라는 것 또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 불안 심리와 거기에서 오는 공포를 작가는 잘 표현하고 있다. 잘못된 믿음의 결과가 어떤 일을 가져오는지 편집광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마지막은 정말 믿기 힘든 결과로 다가온다.  

아주 단순한 불안을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나는 코넬 울리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밤 하늘의 별조차도 불안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건 마치 어린 아이들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들에서도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것과 같다. 밤 하늘의 별이 무섭다면, 그것이 자신을 감시하는 눈처럼 보인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이겠는가. 작가는 이런 불안과 공포를 단순하게 그것이 시작된 진과 그의 아버지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모든 등장 인물들에게 전염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옆 사람이 불안하면 그것을 보는 사람도 불안해진다. 공포를 느낀다면 그 주위 사람들도 느끼게 되어 있다. 이런 불안과 공포를 확산시키면서 작품 전체를 극한의 서스펜스로 마지막까지 몰아가고 있다. 밤과 어둠에 역시 탁월한 작가다. 그 동안 이 작품을 볼 수 있을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보게 되서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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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2-14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오래전 헌책방에서 구입했던 중학생이란 잡지에서 번역되었던 한회를 봤던 기억이 나는 작품입니다.드디어 나왔는데 물만두님 리뷰를 보니 더욱 보고 싶어지네요

물만두 2009-12-15 10:23   좋아요 1 | URL
코넬 울리치란 이름만으로도 설레게 만드는 작품이지요.
 
수상한 미술관
이은 지음 / 노블마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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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누가 스피노자를 죽였을까?>를 보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 작품을 나는 감히 그해 최고의 국내 추리소설로 꼽았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어 안타까워 하던 중 <미술관의 쥐>, <코미디는 끝났다>를 계속 발표해서 나는 기쁘게 해줬다. <수상한 미술관>은 연이어 발표된 두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미술관의 쥐>는 미술을 소재로 한 작품이고 <코미디는 끝났다>는 휴대전화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두가지 소재가 결합해서 <수상한 미술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별 볼일 없이 시간 강사를 전전하며 미술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미술평론가 김이오는 전날 아내와 싸우고 난 뒤 아내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낯선 휴대전화로 걸려온 이상한 남자의 전화는 그를 악몽속으로 끌어당긴다. 남자는 김이오의 평론으로 몰락한 교수이자 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그의 아내 수진을 납치했다고 한다. 그의 요구조건은 아주 황당하다. 자신이 김이오의 미술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고쳐주겠다며 여러 미술관을 다니며 내는 문제를 맞추면 아내를 풀어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냐고 하고 싶지만 직접 겪게 된다면 누구라도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까 싶게 빠른 전개를 보이고 있다. 하루 동안, 시간 별로 벌어지는 미술관 순례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미술에 대한 지식과 패러디와 표절에 대한 차이,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아내의 목숨을 담보로 문제를 푸는 남자의 심리와 태연하게 문제를 내며 토론하려 하는 범인이라는 색다른 느낌과 주인공의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과 문제를 푸는 동안 드러나는 심적 부담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낯선 등장 인물은 긴장감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주인공의 일거수 일투족에 몰입하게 만든다. 도대체 범인의 목적은 무엇인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얼핏 평범해 보이는 작품이 이런 물음을 던지며 눈을 떼지 못핳게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진과 미술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나는 유진 스미스의 <목욕하는 도모코>라는 사진을 처음 봤다. 그런데 동생은 그 사진을 보자마자 알아봤다. 미나마타병에 걸린 소녀에 대한 사진이라고. 사진 작가든 화가든 소설가든 그들은 어떤 이유로 작품을 찍고 그리고 쓴다. 단순히 보는 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일수도 있고 자기 만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작가가 마지막에 보여준 반전으로 드러나는 것이리라.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만한 것을 작가는 잘 담아내고 있다. 시원스레 끝맺고 있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얼마나 좋을까? 현실이 과정이 아닌 결과만 이리 된다면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의 답은 모르겠다. 또 왜 제목이 수상한 미술관인지가. 이해가 되는 듯하면서도 마치 수상한 미술관이 언제 등장하는지 기다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말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표절이 패러디로 둔갑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진리는 들통나지 않은 거짓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들통이 나더라도 우길 수 있다면 거짓말도 진실로 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역사란 미술사뿐 아니라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하면서 명쾌하고 깔끔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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