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피터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6
이시다 이라 지음, 김미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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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등학생이 몰카로 야한 사진찍어서 돈을 버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도 이해하기 힘든, 뉴스에서 듣고도 믿지 못할 일들이 마구마구 일어나고 있는데 그래도 스트리트 갱단 두목이 친구고 야쿠자 중간 보스가 친구인 마코토도 희한한 일이라고 말하면 세상 돌아가는게 버겁다고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회색 피터팬이 돌아다녀도 야수와 포옹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왜, 불행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꿈을 부수어야만 하는 것일까. - 라고 마코토는 한탄하는 일이 <야수와의 포옹>에서 일어난 일이다. 부모를 여의고 남매가 친적집을 전전하다가 성인이 되어 같이 살면서 이탈리아 음식점을 내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오빠가 강도를 만나 돈 3천엔 때문에 다리를 못쓰게 된다. 여동생은 마코토에게 복수를 의뢰하지만 그 범인의 사연을 듣고 보니 그 또한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왕따를 당해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 봄이 다시 찾아오듯이, 우리들의 마음에는 스스로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자연적 치유능력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 같이 여린 것을 어느 누가 일생 지니고 살아나갈 수 있겠는가. - 이 작품이, 이시리즈가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여린 마음을 마코토가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작품 속 인물들의 우리네 인생사같은 고만고만한 일들이 마음에 와닿아 내 마음을 잘 간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산다. 또는 상처를 입히고 산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세상 속에서 이런 일은 알게, 혹은 모르게 일어난다. 그 상처가 복수를 생각할만큼 크기도 하고 그저 욕 한마디하고 잊어버릴 정도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든 상처준 사람은 잊어버려도 상처받은 사람은 잊지 않는다. 잊을 수 없기에 더 괴로운 것이다. 그들은 용서와 화해를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평화, 내게 상처를 준 이가 그래도 어떤 사연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나를 상처입힌 자가 나와 같은 인간이기를, 사람의 탈을 쓴 야수가 아니기를 말이다. 세상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직 살만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지 싶다. 그 여린 마음들이 강한 비바람에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세상에는 정도만 걷는 사람도 있고 약간 다른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고 업수이 여길 수 있는 사람들도 살아갈 권리가 있고 이유가 있다. <역 앞 무허가 보육원>은 아이들을 늦은 밤에 맡겨야 하는 호스테스들의 아이들의 보육 현실과 어린 아이를 노리는 추악한 변태의 이야기다. 그리고 단지 수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변태 용의자로 몰린 청년의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이들이 많을텐데 이들의 아이들은 지금 누가 보고 있을지, 누군가는 관심이나 있을지 궁금하다. 아니 키울 수나 있을런지. 

자, 이제 정치인들에게 보라고 하고 싶은 장면이 나왔다. 주목!!! <아케부쿠로 불사조 계획>이라는 계획을 가지고 정화 작업을 한다고 모든 윤락업소에 철퇴를 내리고 외국인을 잡아가고 그렇게 해서 그곳 상권을 침체시키고 다른 합법을 가장한 윤락업소가 들어오게 만들어 악순환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마코토는 단순히 호스트에게 빠져 풍속업소까지 가게 된 언니를 구해달라는 여동생의 의뢰를 받고 시작한 일이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비정상적인 모의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이야기같지 않은가? 뉴스에서 많이 접하던 내용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정치인들은 너무 가시적인 성과만을 보고 일을 한다. 그게 정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 희생당하는 이들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들 또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고 국민인데 말이다. 너무 쉽게 단속하고 너무 쉽게 부수고 너무 쉽게 몰아 낸다는 생각은 안드는가. 그 안에 있는 이들은 사냥꾼에게 몰이당하는 동물이 아니고 인간이란 말이다. 내가 쇠 귀에 경 읽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지만 마코토도 한번쯤 정책을 세울 때 그 정책에 의해 희생당하는 이가 없나 생각해달라고 하니 나도 좀 그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작은 사건에서 큰 사건까지 이야기는 다양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하나다. 사람!!! 그 거리에 누구든 사람이 산다는 것이다. 누구든 사람이 살지 않는 거리는 거리가 아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도,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단지 그렇게 두가지로만 나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회색지대가 있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 단순할 수 있다면야 이 과일가게 청년이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않기에 오늘도 과일가게 청년 마코토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잽싸게 거리로 나가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나쁜 짓을 하면서도 의뢰를 하는 곳이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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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01-27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계속 나오는군요. 몰랐네요. 하긴 소재는 무궁무진할 거 같아요.

물만두 2010-01-27 10:17   좋아요 0 | URL
6권이 끝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상처 - 매혹의 미녀 연쇄살인범
첼시 케인 지음, 이미정 옮김 / 리버스맵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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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희대의 엽기적인 미녀 연쇄 살인마 그레첸 로웰와 그녀를 잡으려다 죽을 뻔하고 그녀에 의해 살아난 형사 아치 세리단이라는 두명의 목숨을 건 싸움이 시작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레첸 로웰에 대해 질식의 작가 척 팔리니는 '한니발 렉터의 탄생 이래로 가장 매혹적이고 독창적인 연쇄살인마.'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보면 볼수록 토마스 해리스의 한니발 렉터 시리즈와 닮았다. 마치 토마스 해리스에게 바치는 트리뷰트 작품같기도 하고 한니발 렉터를 오마쥬한 작품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엽기적인 미녀 연쇄 살인마 그레첸 로웰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다. 살인에 아무런 가책도 없고 살인을 놀이처럼 하는 괴물이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다. 아니라면 우린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괴물이 괴물이기때문에 선천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면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나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과후 살인자같은 연쇄 살인범, 죄의식을 드러내면서도 살인을 멈추지 않는 살인마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병들었다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괴물로 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무서운 것은 사이코패스든 병든 살인마든 우리 안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 우리 이웃으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구별하기 힘들고 구별이 가능하게 되었을때는 이미 그들이 사건을 저지르고 난 뒤라는 점이다. 

작품은 아치 세리단이 그레첸 로웰의 자수로 살아 남아 치료를 받은 뒤 2년이 흐른 지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아치 세리단은 다시 등장한 '방과후 살인자'라는 어린 여고생만을 납치해서 살인하는 살인범을 잡기 위해 복귀한다. 그리고 해럴드 기자 수잔 워드는 이 사건을 집중 보도하게 되고 아치 세리단을 기사로 쓰게 된다. 여기에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진행으로 작가는 세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첫번째로 아치 세리단 형사의 고통과 고뇌, 그리고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들을 만나지 않으면서 그레첸 로웰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현재와 2년전 과거를 넘나들며 보여준다. 두번째는 기자 수잔 워드의 좌충우돌하는 삶의 방식과 기자 정신, 그리고 그녀의 과거를 사건과 엮어가며 풀어내고 있다. 세번째는 그레첸 로웰이 유죄협상에 의해 사형을 면하고 아치에게만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들을 묻은 위치를 알려주며 그를 조종하려고 하는 이유를 궁금하게 만들고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오싹한 공포를 느끼게 하고 있다. 그러니까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한니발 렉터 시리즈 1편과 그 유사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우선 방과후 살인자를 찾는 방식은 연쇄 살인범을 찾아내는 방식과 같다. 여기에 만신창이가 되어 지금도 약에 의존하는 형사의 존재는 아슬아슬하게 마음 졸이며 안타까운 연민의 심정으로 보게 만들고 매스컴에 대한 사람들의 알 권리를 기자들이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지 아니면 명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지 기자를 통해 짜증과 분노를 터트리게 된다. 하지만 매혹의 미녀 연쇄살인범이라 불리는 감옥에 갇혀있는 전대미문의 살인마에게는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 아치의 말처럼 시한폭탄이 터질 것 같은, 아니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편이 기대된다. 본격적인 아치와 그레첸의 쫓고 쫓기는 혈전이 시작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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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1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굿모닝!! 요즘 리뷰가 많이 올라오니 좋군요. 뒤늦게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를요..

물만두 2010-01-19 11:00   좋아요 0 | URL
Manci님 좋은 아침입니다.
뭐, 일주일에 두편 올리고 있습니다.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아직 경인년은 아니니까 늦으신건 아니랍니다^^

pjy 2010-01-19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의 리뷰를 보니 당장 장바구니가 무거워지는군요,,읽기도 전에 투를 기다리는건 힘든일이예요~^^

물만두 2010-01-20 10:28   좋아요 0 | URL
쬐송함다^^

카스피 2010-01-20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혹의 미녀 연쇄 살인마라.. 만두님의 리뷰를 보니 급 땡기는데요.근데 현실에서 의외로 여자 연쇄 살인범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물만두 2010-01-20 10:30   좋아요 0 | URL
간간히 있기는 했죠. 미국에서도 19세기에 있었고 요즘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구요. 남자에 비하면 거의 없는 편이지만요^^;;; 사이코패스 비율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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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데뷔작이다. 역시 작가는 데뷔작에서부터 과햑으로 증명하기 힘든 소재, 그런 것들이 주는 공포가 일상 생활에서 또는 비일상적 사건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다중 인격을 다룬 작품이다. 다중 인격을 가진, 즉 13개의 인격을 가진 소녀 치히로와 인간의 마음을 느끼는 능력으로 인해 가출하게 된 유카리가 한신 대지진때 만나면서 시작된다. 

다중인격을 알게 된 유카리는 치히로를 걱정하며 그녀의 상담 교사를 찾아가기에 이르고 그러면서 치히로 안에 있는 인격 중 지진으로 인해 13번째 인격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 인격의 이름은 이소라, 비밀에 쌓여 성격을 파악하기 힘든 인격인데 유카리는 그 인격에서 살기를 감지하며 그 인격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치히로가 어떤 이유로 다중인격이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여기에 이해하기 힘든 치히로 주변에서 치히로를 괴롭히던 이들이 돌연사하는 일이 발생하자 유카리는 치히로의 13번째 인격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고 감시하게 된다. 

다중인격은 진짜라고도 하고 가짜라고도 하는 말이 많은 증상이다. 해리성 인격장애라고 불러야 맞다고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보편적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콘트롤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분출되는 현상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얌전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화가 나서 주변 사람을 괴롭히면 보통 '안 그러던 사람이 변했다.', '마치 딴 사람을 보는 것 같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런 것으로 이해하면 좀 쉽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다중인격에 대한 미스터리는 계속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 한가지 초능력과 비슷한 인간의 마음을 읽는 엠파스라는 능력에 대해 나오는데 다중인격과 이 초능력이 합쳐져서 마지막까지 가슴 졸이게 되는 공포소설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한신 대지진이라는 자연이 준 공포가 좀 더 사실적으로 배경에 묘사가 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유카리를 통해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심어주는 공포는 만만치 않다. 역시 기시 유스케는 데뷔작부터 남달랐던 것 같다. 기이한 일로 시작해서 기이한 공포를 남기고 끝나는 책을 덮은 뒤 으스스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일상에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공포와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기이한 공포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다양한 공포의 체험장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숙부내외와 살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대받은 치히로의 삶과 다른 사람과 다른 능력을 가졌지만 가족에게조차 말할 수 없어 정신병원에까지 가게 되고 급기야는 가족의 냉대와 따돌림속에 집을 나와 험한 일을 하며 살게 된 유카리의 삶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공포다. 여기에 한신 대지진이라는 자연이 준 공포가 더해지고 인간의 탐욕이라는 공포가 더해지면 그야말로 공포스런 괴물이 탄생하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느껴야 하는 공포는 우리의 무심함이라는 공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다운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작품이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 세계를 알려면 필히 봐야 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그가 <검은집>이라는 호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추리소설을 보여준 뒤 청춘 소설같은 느낌의 <푸른 불꽃>으로 혼란에 빠지게 했다가 <천사의 속삭임>이라는 호러 작품으로 귀환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들의 베이스에는 어두운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이 각기 다른 소재에 따라 각기 다른 인물을 만나 다른 모습으로 보여질뿐 근본적인 작가의 호러에 대한 탐구는 변함이 없음을 나는 오히려 그의 데뷔작을 읽고 깨닫는다. 약간은 허술한 듯하기도 하지만 공포만은 살아있는 데뷔작다운 신인 기시 유스케의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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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15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진짜 공포는 늘 사람들이 만드는 관계속에 있는듯 합니다.

물만두 2010-01-15 13:34   좋아요 1 | URL
그걸 잘 표현하는 작가가 기시 유스케라 생각됩니다.
 
신성한 관계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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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 다섯권 중 세번째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스릴 넘치는, 신성한 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했다.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첫사랑이었지만 패트릭이 앤지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앤지가 패트릭 친구와 결혼하면서 서로 파트너이자 친구로만 지내던 남녀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기본 구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 의뢰를 받는 켄지가 간단한 의뢰라고 생각하고 덥석 받아오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거대한 사건이 숨어 있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음모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늘 그들은 위험에 빠지고 총을 쏘게 되고 부바의 도움을 받게 된다.  

도대체 이 시리즈가 왜 켄지&제나로 시리즈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켄지가 쓸모 있는 점은 좀 더 보통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과 허우대가 멀쩡해 보인다는 점, 그리고 다른 탐정들과 마찬가지로 말하나는 잘한다는 점뿐인데 말이다. 이번 사건도 켄지는 별로 한 일이 없고 결정적일 때 그를 구한 건 부바와 앤지였다. 부바가 감옥에 들어가서 나 정말 켄지가 너무 걱정됐었는데 부바의 빈자리를 앤지가 차지했다. 좀 뭐가 바뀐거 같지 않나??? 응? 켄지, 말을 해보라고~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대재벌이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고 켄지와 제나로에게 의뢰를 한다. 그의 딸 데지레가 실종된 건 그녀의 엄마가 살해당하고 하마터면 아버지마저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는데 다시 아버지가 암에 걸리자 심한 우울증에 걸리더니 사라졌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켄지의 탐정 스승이기도 한 제이 베커가 사건을 맡았었는데 그마저 실종됐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지난번 사건의 여파로 한동안 쉬고 있었는데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거기에다 거대한 수수료에 혹해서 사건을 맡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데지레의 발자취를 따라, 제이 베커의 발자취를 따라 가기 시작하는데 그들이 처음 만나게 된 것이 슬픔 치료소이라는 희한한 사이비 종교단체다. 여기서부터 사건은 점점 크게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제목이 신성한 관계다. 여기서 말하는 신성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인간의 신성한 관계는 부부의 관계다. 그 관계가 신성하지 못하면 신성해야할 가정이 불행해진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있다. 마치 삼강오륜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게 되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옳은 가치관은 어디에나 적용된다. 그리고 사제지간도 신성해야 한다.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고.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 또한 같다. 이 작품에는 이런 신성해야 할 관계들이 어떻게 일그러지고 망가져 우리 시대를 핏빛으로 물들이고 그늘지게 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제대로 잘 보이게 작가는 잘 조절하며 사건의 큰틀과 작은 틀을 짜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제대로 된 관계를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켄지와 제나로와 그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말이다. 

또한 명예가 인간에게 있었던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물론 이것은 신성한 관계 안에 포함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름 다른 방면에서 되새겨 보고 싶었다. 인간이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아 왔는데 명예는 무슨.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는 세상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명예라면 명예고 예의라면 예의를 지키는 자가 여기 있다. 바로 패트릭 켄지. 의리의 사나이. 부바가 인정하는 친구. 누구든지 친구로 삼으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을 인간. 그래서 이 시리즈가 특별한 것이고 주인공이 켄지인 것이다. 그가 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해도, 부바보다 잘났다고 잘난체를 해도, 사건에 뛰어들어 해결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고 명성은 자기가 차지하는 경향이 내게는 보이더라도 용서가 되는 것이다. 그가 의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 안에서 항상 그보다 더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멋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타고난 밥그릇의 크기를 아는 인물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이런 세상에 자기 그릇에 맞게 행동하는 그를 보며 이 작품에 감탄한다. 지금 시대가 원하는 탐정은 바로 이런 탐정이기 때문이다. 뭐, 나도 켄지같은 친구가 생긴다면 좋을 것 같다. 단, 부바가 반드시 같이 와야 한다. 그러니까 원 플러스 원 상품이라면 부바가 정품이고 켄지가 옵션이라는... 켄지, 미안하다. 난 아무리 그래도 부바가 좋다.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는 비슷비슷한 소재들을 선택해서 작품을 쓰면서도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면과 함께 픽션적이고 환상적인 면을 공유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이 작품에서만 보더라도 명탐정 제이 베커를 통해 탐정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탐정은 두뇌가 누구처럼 뇌세포 하나하나가 몽땅 탐정 기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탐정적인 부분과 인간적인 면이 공존한다는 걸 알려준다. 마찬가지로 모든 일은 진실과 거짓, 위와 아래가 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내가 보는 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앤지는 말한다. 의심하게 만드는 가운데 진실을 심어주고 포장하지 않은 인간미를 드러내게 만드는 점, 그리고 거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점이 그의 작품을 대단하게 보게 한다.  

그런 시리즈가 다섯 작품밖에 안된다니 너무 아쉽다. 뒤죽박죽 출판되었지만 이제 다 출판되었다. 읽을 작품, 다음을 기약할 작품이 없다는 얘기다. 아, 아쉽게 부바와 이렇게 작별하게 되는구나. 나는 왜 켄지와 제나로와의 이별보다 부바와의 이별이 더 안타까운건지. 그런고로 데니스 루헤인은 여섯번째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반드시 써야 한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빨리 써라. 마지막 작품 나온지 십년도 더 지났다. 그리고 부바의 활약상을 좀 더 많이 보여주기를 바란다. 켄지&제나로&부바 시리즈로 더욱 강력하게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겠다.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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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0-01-1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바부바~ 꼭 나오는 시리즈였으면 좋겠어요~

물만두 2010-01-12 13:36   좋아요 0 | URL
네, 작가를 압박하고 싶어요.

lazydevil 2010-01-2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바의 이야기가 주가 되는 번외편은 어떨까요?

물만두 2010-01-20 15:19   좋아요 0 | URL
그거 좋습니다. 번외편... 그러다 좋으면 부바 시리즈로 만들구요^^

[그장소] 2015-01-25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부바만오고 켄지는 안올때의 문제점..사건의뢰가 없다.
없는 빈방에서 놀고있네요. 이렇게나..오래 되었나..싶고..신기합니다.내내 안녕 하시기를..여전히 상위에 링크된 물만두님의 전적을 보며 아..아직도 읽으것은 널려있구나..그럽니다.그런데..엄살이라니..누가 보지 않아도 좋을 얘기를 하는것.그런 곳이 있어서 저는 좋은데 물만두님은 귀찮을까요? 거기서 주무시다가..저때문에 ..아아..귀찮아..이러며 깨는건 아닐지..
근데..왜.눈물이 나려고 하지. 힘든가봐요.제가..요즈음.참 감정 컨트롤이 안되요.어떻게 견디었냐고..물어보면..몹쓸것..하겠죠?
당신에겐 없는..시간을 살고 있으면서..미안해요.그래도..대답없는 곳에 남겨지는 이 시간이 소중한걸 알아요.
좋은책..또 건져서 가요. 자꾸 책욕심 그만 내야 하는데..큰일...ㅎㅎㅎ 그럼..거기서도..굿나잇..!
 
자살 반대 클럽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5
이시다 이라 지음, 김미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눈이 내리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눈이 많이 오는 날, 빙판에 넘어진 사람들은 짜증이 났겠지만 아이들은 눈밭을 좋아라 뒹굴렀을 것이다. 하나의 자연 현상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연과 사건이 넘쳐나겠는가. 뭐, 그 사연, 사건들을 살펴보면 비슷비슷해서 놀라게 될 때도 있지만 그게 사람이라는 동물이 사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마찬가지로 마코토가 사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에서 일어나는 일도 모두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스카우트 맨 블루스>는 각종 윤락업소에 여자들을 스카우트해주는 스카우트의 달인을 만나 마코토가 한 수 배워볼까 하다가 사건에 끼어들게 되는 이야기다.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디디면 지뢰를 밟게 되는 것이 세상이다. 내가 지뢰를 밟았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수렁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스카우트맨을 좋아한다고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지 알면서 그런 일을 해야만 그를 만날 수 있기에 자처해서 윤락업소 스카우트맨을 찾아갔다가 곤경에 빠지게 된 순진한 웨이트레스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여기에 이제는 한물 간 스타가 야쿠자에게 협박당하는 <전설 속의 별>의 내용 또한 본 듯한 이야기다. 소설속에서가 아닌 현실에서 말이다.  

<죽음에 이르는 완구>는 중국 하청업체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알리기 위해 일본 회사를 찾아 온 중국 여자를 도와주는 안타까운 이야기다. 월드컵의 해가 돌아왔다. 또 사람들은 축구공을 만드는 저임급과 아동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언니가 죽은 것이 살해됐다고 말하는 것이 마치 70년대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세상은 이렇게 돌고 돈다. 여기가 아니면 저기에서 누군가는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게 되고 누군가는 그런 돈을, 누군가의 피에 젖은 돈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코토의 기도처럼 내가 사는 물건에 누군가의 처절한 피가 아닌 공정한 댓가가 지불되었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그건 그저 구매자, 소수의 소비자들이 마음 편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가 싶다. 눈가리고 아웅이거나 못 본체하는 거 아닐까.  

<자살 반대 클럽>은 자살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인터넷 자살사이트 운영자를 잡기위해 마코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야기다. 자살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살면서 행복하기만 해서 사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하지 않다 자위하거나 가끔 찾아오는 행복이라 생각되는 어떤 것을 맛보기 위해 끈질기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살을 하는 건 자유다. 그걸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찰라의 순간에 자살을 막아 그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닐까? 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자살할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죽으면 슬퍼할 가족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뭐라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할 수 있겠는가. 산다는 건 별거 아니다. 별게 아니라서 죽겠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별거 아닌 삶이 혹 아는가 끝까지 살아 나가는 동안 무언가 좋은 걸 발견하게 될지.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기에 사는 것이다. 궁금하지 않는가. 이 삶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말이다. 

이시다 이라는 마코토를 통해 내 마음을 파고 든다. 단타를 치는데 장타만큼의 위력이 있다. 그게 이 이케부쿠로웨스트게이트파크 시리즈의 매력이다. 나는 오늘도 마코토처럼 하늘 한번 보지 못하고 저녁을 맞이했다. 쌓인 눈조차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떠랴. 그런 것은 봤다 쳐도 좋은 것을. 마코토가 앉아서 보는 하늘이 보여 좋은 게 아니고 그가 걷는 거리가 보여서 좋은게 아니듯 현실과 픽션 모두 내 마음을 어루 만져주면 그만인 것을.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삶이 무료한 사람들에게 이케부쿠로웨스트게이트파크의 해결사, 과일가게 아들이자 칼럼도 쓰는 마코토를 만나보기를 권한다. 그가 아마도 당신의 문제도 해결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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