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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 1
차이나 미에빌 지음, 이동현 옮김 / 아고라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읽으면서, 그리고 읽는 내내 이 작품에 대해 내가 뭐라고 쓸 수 있을까 두려웠다. 도대체 이런 괴물같이 내 마음에 드는 환타지 소설이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한마디로 WOW한 작품이다. 아서 C. 클라크상을 수상한 걸 보니 SF 작품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SF와 환타지의 경계를 잘 모른다. 모르면 어떠리. 톨킨의 <반지의 제왕>보다 재미있고 어렵지 않고 조금 단순하면서 거기에는 없는 생생한 하드보일드를 경험하게 하는 작품인 것을 말이다. 이 작품을 읽지 않고도 환타지 소설을 읽었다 말할 수 있을런지 궁금할 뿐이다. 지금까지 읽은 환타지 작품 가운데 최고다.
뉴크로부존의 중심에는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이 있다. 그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을 중심으로 많은 종족들이 부대끼며 산다. 인간은 물론이고 아이작의 여자친구 린처럼 상체가 벌레인 케프리, 야가렉처럼 새와 인간의 조합을 보여주는 가루다, 자신들만의 온실에서 자치구를 형성하고 살고 있는 선인장 인간 캑터케이, 날아다니지만 지능은 떨어져서 인간의 심부름을 하고 사는 위어먼, 물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개구리를 닮은 보디야노이 등 온갖 종족들이 모여 산다. 또한 비밀에 가려진 핸들링어들도 있다. 여기에 리메이드라는 개조된 이들도 있다. 스스로 개조한 이도 있지만 대다수는 죄를 짓고 벌로 개조를 판결받은 이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국가가 법이라는 것으로 어떤 짓까지 하게 되는 지를 인식시킨다. 이것이 작품속에서만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느 날 가루다 야가렉이 아이작을 찾아온다. 그는 날개를 잘린 상태로 왔는데 그에게 날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불법적인 일도 마다 않고 주류 과학을 비웃으며 자신만의 과학을 연구하던 아이작은 처음에는 온갖 날개가 달린 것들을 모아 날개를 연구한다. 그 중에 얻게 된 것이 정체불명의 아름다운 애벌레 한마리였다. 하지만 곧 자신의 연구인 위기 연구로 그를 날게 만들기로 하고 모든 날짐승을 날려보내거나 버리지만 애벌레만은 어떤 곤충이 되는 지 호기심때문에 지켜보는데 먹이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안 먹던 애벌레가 아이작을 찾아온 마약쟁이가 가지고 있던 드림싯이라는 환각물질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먹여 키운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할 일을 한다. 린은 케프리 예술가로 인정을 받아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작품 의뢰를 받는데 그 남자가 바로 모틀리라는 뉴크로부존 최고의 암흑가의 제왕 마약상이었다. 그 위험을 알면서도 작품을 만들기로 하면서 위험을 자초한다. 린의 친구이자 편집자이자 반체제 운동가인 더칸은 반정부 신문을 만들어 몰래 사람들에게 퍼트린다. 그리고 기계이면서 바이러스에 의해 생각하는 능력이 생긴 컨스트럭트도 있다. 그는 기계신을 자처하고 직조자라 불리는 거미는 세계라는 틀을 짜는 일을 하는 존재다.
이런 이들이 뭉치게 된 것은 애벌레가 거대한 괴물 나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작의 동료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발견되었을때만 해도 무슨 일인지 몰랐는데 슬레이크 나방이라는 이 곤충은 인간의 꿈을 먹고 악몽을 배설하는 공포의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드림싯은 이들의 젖으로 만든 물질이었던 것이다. 이 한마리 슬레이크 나방이 나머지 갇혀있던 네마리 나방을 풀어주면서 도시 전체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아이작과 친구들은 친구의 복수를 위해 나방 사냥을 나선다. 도대체 드림싯은 어떻게, 누가 만든 것이고 슬레이크 나방은 어떤 목적으로 들어오게 된 것일까? 그들은 나방을 찾아 이것들을 밝히게 된다.
작품은 환타지를 표방하고 있고 작가는 정치적 색체를 띤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정치적이라기 보다는 현대 사회에 대한 완벽한 풍자 그 자체라고 말해도 좋을 작품이다. 예를 들어 린이 처음 모틀리의 모습을 보게 되는 장면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하던 말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인간도 아냐.', '짐승만도 못한 짓이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의 모습은 바로 마약상이 가지고 있는 내면 그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정치적인 모습에서 보여주는 것도 현대 정치와 다르지 않고 부와 권력의 편중과 환경 오염에 따른 심각성을 가장 처음 느끼게 되는 이들은 힘없는 가난한 이들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각각의 종족간의 이질적 모습은 현대 대도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인종에 대한 모습과 다르지 않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단순하게 생각할만큼 사회의 시스템이 간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이작 일행은 나방을 잡기 위해 양심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게 된다. 이것은 정치인들이 '시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세계를 조직하고 구멍을 메운다는 직조자조차도 사회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렇게 되어가게끔 만들어진 것이 사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은 처음 야가엘의 등장으로 시작해서 야가엘의 마지막 모습으로 끝이 난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아이작이 아니라 잠깐씩 도시를 방황하며 날으는 자유를 그리워하던 모습을 보여주던 야가엘이었던 것이다. 그의 마지막 행동은 하나의 삶만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날으는 것만이 자유는 아니다. 가루다는 조인족이기때문에 날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날개를 잃은 그가 가루다이기를 그만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전에 린이 케프리로써의 삶을 버리고 다른 삶을 선택한 것과 같이. 혼로서기를 하게 되는 야가렉의 모습에서 현대 사회의 고독한 비정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꿈은 꿈일 뿐이고 그 꿈조차도 내가 선택해서 꾸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자위하며 살고 있다. 정말 슬레이크 나방이 배설한 것이 악몽이었을까? 아니면 악몽이기에 배설된 것일까? 누구도 악몽은 좋아하지 않는 법이니까. 여기 뉴크로부존이라는 도시 한가운데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이 있다. 그 한가운데 바람이 분다. 어쩌면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아닐런지. 우리의 머리 위로 화려한 무늬로 우리를 유혹하는 나방이 날아다니는 것은 아닐지.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악몽을 더 많이 꾸게 되는 것은 아닐까. 궁금하다면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에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