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단편집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젤라즈니표 SF작품의 성찬’이다. 젤라즈니의 작품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 어떻게 다를까? 그것은 이 작가가 모든 신화를 SF 작품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장편 <신들의 도시>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모든 종교의 성서, 신화, 신들을 작품속에 녹여내고 있다. 물론 그래서 약간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한다면 이 작가의 이런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이 단편집에서는 많은 다른 작가들이 그렸던 것처럼 가장 기본적인 화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다. 아마 SF 작가들이 이 인간에 대해 서로 그려내는 것들만 따로 모아 단편집을 만들어도 재미있고 우수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집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들처럼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실제적으로 간단하고 접하기 쉽게 보여주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이 단편집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신화를 차용한 단편과 인간에 대한 고찰을 한 작품으로 나눌 수가 있다.


신화를 다룬 단편을 살펴보자.


<12월의 열쇠>는 가장 기본적인 신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신은 만들어지는가, 신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 가 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를 미래 변형된 종족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우주의 진화된 어떤 종족에게서 뿌려진 씨앗들의 후손은 아닐까 하는 공상...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이 말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다. 화성에 생명체가 산다. 그들에게도 문명과 문화가 있고 신전이 있다. 그런데 그들을 가르치려 들다니. 이것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것과 남성적 중심의 사고가 만들어낼 수 있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이런 일들을 행하며 자신만의 옳음에 도취되어 사명감에 불타는 이들에게 헛된 일이라 말하고 싶다.

 

<사랑은 허수>는 한마디로 인간이기보다는 신이 되기를 원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실수이지만 신에게 사랑은 허수다. 어렵다. 여기에서까지 실수와 허수에 대해 알아야 하다니. 하지만 허수가 어렵듯, 인간에게 사랑은 그보다 더 어렵고 사랑보다 더 어려운 것이 신에 대한 믿음과 신이 되려는 자의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뭔 말인지 나도 모르겠다.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를 보면서 아더왕의 전설과 성배라는 소재가 끝없이 등장함에 감탄하는 한편 언제 이들이 이런 꿈에서 헤어날지가 궁금해졌다. 정복과 증거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믿음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신화가 그렇다지만 요즘의 팩션과 맞물려 이미 나온 작품이지만 이 작품처럼 ‘이제 그만’을 외치고 싶다. 하지만 반면 이렇게 다양하게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여러 작품을 만들어내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그들의 힘과 창조정신은 배우고 싶다.

 

인간을 다룬 단편을 살펴보자.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는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 무모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더 큰 것, 더 대단한 것, 더 위대한 것, 더, 더, 더, 외치고 있는 지금 우리의 미래는 정말 아무 생각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뇌의 크기가 진짜 그리 중요한 것도, 고등생물이라는 것의 증명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거 이미 우린 알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 단편집에서 단연 으뜸인 작품으로 꼽고 싶다.

 

<악마차>는 인간에게 반기를 들고 스스로 진화하는 차들의 이야기다. 인간과 지능을 가진 차의 싸움이라고나 할까. 왜 기계가 인간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인간 이외는 모든 것에도 해당되며 또한 인간들 사이에도 해당된다고 본다. 짧은 단편이지만 메시지는 강한 작품이다. 권력을 쥔 자가 모든 것을 가지고 복종을 강요하는 건 기계든 아니든 언젠가 이런 반란에 직면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죽음의 산에서>는 젤라즈니의 또 다른 한 가지 문제인 남성지향적인 문제점을 잘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산이 있어 오른다. 산을 타는 사람들은 누구나 말한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정복욕이고 그것은 남성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끝에 등장하는 여인은 아직도 남성들이 버리지 못하고 있는 기사도 정신을 느끼게 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산은 그렇게 어렵게 목숨 걸고 오를 필요가 없는 산이라는 점이다. 아직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남성들은 그 부분에서 웃지 못했을까? 나는 그 부분에서 너무 웃었다. 이제 제발 그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좀 벗어버리기를 남성 여러분께 호소하는 호소문같이 느껴졌다. 뭐, 작가의 의도가 어떠했든지 간에...

 

<수집열>은 짧지만 아주 재미있는 이 단편집에서 수작으로 꼽고 싶은 작품이다. 기가 막힌 반전이 숨어 있는 이 작품은 과연 수집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통해 인간의 무지함을 꼬집고 있다.

 

<완만한 대왕들>은 정말 재미있는 작품으로 이 단편집에서 최고의 유머를 뽐내는 작품이다. 우와! 젤라즈니가 이런 작품을?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이다. 대왕들, 너무 웃겼다. 뭐, 웃을 상황은 아니지만 인간이란 어차피 웃기는 존재 아니던가 싶다.

 

<폭풍의 이 순간>은 서글픈 작품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왜 우주로 나아가야 하는가. 인간이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한한 것들과 무한한 것들을 통해 미래 인간이 지향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주전쟁>에서의 시간 점프라던가,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는 냉동 수면 같은 것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불멸, 불사가 진짜 우리가 원하는 삶을 주는 지는 미지수이지만 인간이 그것을 지향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니 이런 작품을 통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 정의한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화이올리를 사랑한 남자>는 죽음과 불사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신화적이기도 하고 인간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는 인간적 몸부림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 죽음의 산에서>와 마지막이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프로스트와 베타>는 기계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인간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서 인간이 되기로 한 기계 프로스트의 마지막은 감동적이기까지 하지만 인간이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존재인지는 의문이고 거부감이 든다. 작가가 무엇이든 인간의 신격화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니었다. 단편이라지만 작품들마다 분량도 서로 다르고 각기 다른 모습에 적응하기도 벅찼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일관되게 글을 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 SF 작가들 중 한 획을 긋는 작가가 된 것도, 젤라즈니표라는 작품의 특징을 각인시킨 것도 그의 대단한 역량의 이루어낸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장르 소설이라는 분류 없이 그냥 문학 작품, 소설로 읽어도 이보다 좋은 작품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나를 혹사시킨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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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5-1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올해에 젤라즈니 걸작선이 나온다고 하던데.. 그것도 너무 기대 되요...ㅎㅎ

물만두 2006-05-1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습니까? 전 신화적이면만 좀 줄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넷 2006-05-1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행복한 책읽기에서 작가선집으로 나온다고 하네요~~ 여름방학쯤에 나온다고 하는 것 같던데... 잘 모르겠지만 빨랑 나왔으면 좋겠어용.~~ 젤라즈니 너무 좋아요~~>_<;;;

물만두 2006-05-14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겹치는 작품없이 나왔음 좋겠네요. 그 전에 다아시경부터 출판해줬음 좋겠어요.
 
기묘한 이야기 1 - 17 Short Short Story
호시 신이치 지음, 김은경 옮김 / 페이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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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시 신이치의 아주 짧은 정말 기묘한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단편집이다. 17편이나 수록되어 있지만 얇고 숏 숏 스토리라고 붙인것처럼 정말 짧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 한편 한편은 마치 이솝 우화처럼 재미와 생각꺼리를 준다. 교훈이라는 말은 좀 진부해서 붙이고 싶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삽화다. 그림이 재미있고 좋다. 그림과 함께 보면 어떤 작품은 시시하고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기묘한 이야기인 만큼 외계인도 등장하고 SF적 미래도 나오고 말하는 코끼리도 등장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건이 등장하는 작품도 있다. 딱 꼬집어 어떤 장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재미있고 간단하게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이 너무 얇은 것이 맘에 안 들기는 하지만 시집도 얇지만 좋기만 하지 않은가. 동화책도 얇지만 멋있기만 하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과히 나쁘지 않다. <기묘한 이야기 1>이라고 제목을 정했으니 2편도 나오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언제쯤 2편이 나올지 궁금하다. 설마 공수표는 아니겠지...


나른한 봄이 온다. 이럴때 가벼운 마음으로 등하교길에서나 출퇴근길에서,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면서 읽기 딱 좋은 책이다. 부담없이 보시길... 그 안에서 자신만의 보석을 찾으면 더욱 좋고... 누가 아는가. 지나가다 말하는 코끼리를 만나게 될지. 그럴때 아이에게 “엄마가 책에서 읽었던 그 코끼리구나.”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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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6-03-0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이런 책이 왜 이렇게 끌리는지. 추천하고 읽어볼게요.^^*

물만두 2006-03-0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와요^^

Kitty 2006-03-0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시 신이치씨 소설 강렬하죠 ^^
저도 일어 공부할 때 호시 신이치씨의 단편 소설 많이 읽었어요.
콧대 높은 여자 얘기도 있나요?

물만두 2006-03-0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콧대높은 여자얘기는 없는데요. 재미있었어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 - 전2권 세트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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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헨리라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시간 여행을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났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기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다. 그 남자에게 살아 있는 유일한 희망은 6살짜리 꼬마 소녀 클레어다. 미래의 자신의 신부가 될 소녀를 만나면서 그는 자신이 시간 여행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후로 일어날 삶의 모든 희망과 절망과 환희와 고통, 모두를...


클레어라는 여자가 있다. 6살 때 나이 든 한 벌거벗은 남자를 만나며 그녀의 인생은 이미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위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되고 만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헨리가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현실에서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운명과 사랑이 미리 정해진 것이라면 행복하게 받아들일 밖에.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 작품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러브스토리다. 결국 날 울리게 만드는 그런 소설. 그 슬픔에 몸을 맡긴 채 주체하지 못해 떠돌아다니게 만드는... 그렇다. 나는 울고 있다. 하지만 울면서 생각한다. 헨리의 아버지가 어느날 헨리가 시간 여행을 하며 엄마를 만난다는 얘기를 하자 아내가 과거속에 행복하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다는 말을 들으며 사랑이 위대한 것은 죽은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녀가 과거에 행복했음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현실처럼, 내 일처럼, 내 행복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기다림이다. 어떤 사람들은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아이 낳고 살다가 늙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삶을 마감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1년만에 잃어 그 아픔으로 평생 혼자 그리움속에 지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랑을 잊기 위해 다른 사랑을 찾기도 한다. 어떤 사랑이면 어떠랴. 사랑에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을. 하지만 만약 헨리가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가 클레어를 만났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자신의 아내가 평생을 그리움속에서 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만의 사랑을 고집했을까? 아니지만 바꿀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리라.


동화처럼 환상적인 로맨스 소설처럼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는 소설을 선호하지만 그런 소설은 읽다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뒤 그들은 서로 바람을 피우다가 재산 싸움을 하고 원수처럼 헤어졌습니다.’일 수도 있느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 작품도 ‘클레어는 대부분의 시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로 끝날 수도 있다. 그 사이의 시간 내내 클레어는 외로웠을 것이고 쓸쓸했을 것이지만 그리움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달랬을 것이다. 마치 전쟁때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평생 기다리며 자식을 키우다 세상을 떠난 우리의 이웃 할머니처럼. 우리는 그 삶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클레어와 헨리의 삶과 사랑도 아름답지 않다. 사랑이 아름답다는 것은 환상일뿐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음을 안다. 그러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오늘 하나의 사랑 이야기를 읽었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그 사랑은 슬프고 긴 여운을 남겼다. 어쩜 오늘 나를 찾아 나와 똑같은 이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슬며시 웃는다. 도플갱어란 어쩌면 시간 여행자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럼 나는 이런 말을 해주리라. "그대 두 팔에서 그리움을 던저버려라!"

 

마지막으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제 1 비가 중에서 한 소절을 적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세상 의지하고 우리 더 이상
편안할 수 없음을. 아마도 우리에겐
매일같이 보고 또 볼 비탈길 어느 한 그루 나무만이
남아 있으리라. 또한 어제 거닐었던 거리와,
우리가 마음에 들어 가지 않고 머물어 있는
습관의 뒤틀린 성실함이 남아 있으리라.
오오, 그리고 밤, 밤이 있다. 그때 세상 공간 가득한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먹는다. -누구에게 밤이 남아 있지 않으랴.
기다렸으면서도 부드러운 환멸을 느끼게 하며 외로운 마음에
고통스레 다가서는 밤.연인이라 해서 밤이 더 마음 가벼울까
아아,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운명을 감출 뿐이다.
아직도 그대 모르겠는가? 우리 호흡하는 공간 속으로
그대 두 팔에서 공허를 던져버려라. 아마도 새들은
그 더욱 열렬한 비상과 더불어 넓혀진 대기를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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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마
츠츠이 야스다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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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품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런 느낌이 가미된 블랙 숏 스토리 작품집이라고 부르는게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작품은 1장정도고 길어도 5장내외인듯하다. 그 안에 작가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인간의 욕망, 이기심, 파괴 본능, 망상, 소유욕, 괴담과 상실감 그리고 우리가 지금 잃어버리는 인간적인 것에 대한 것들과 반인간적인 것이 그리 나쁜 것, 지금보다도 더 나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물론 내가 이 작품 모두를 이해한 것은 아니다. 우선 <산기>에서 마지막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남자 아이인지 정좌를 하고 내려다 본 것이 무슨 상관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본식의 유머인지, 풍습인지, 아니면 상징적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작품집은 세 단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세 단원이 어떤 주제로 나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첫 단원이 풍자와 해학, 두 번째 단원이 블랙 유머, 세 번째 단원이 SF를 소재로 한 것이 아닌가 일단 생각해 본다. 물론 모든 작품들에 조금씩 SF적이고 블랙 유머적이며 풍자적인 것들이 들어 있지만 말이다.


첫 번째 단원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타조>와 <나비>를 들고 싶다.
<타조>는 잠언적이고 철학적인 인상이 강하고 <나비>는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은 공포의 근원에 대한 표출이라는 점에서 마치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 등장하는 검은 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원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웃지마>, <특효약>, <유행>이었다.
<웃지마>는 표제작으로 우리가 현실에서 진짜 이런 일을 친구가 한다면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그럼 우리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웃기지마!” 그것에 대한 실랄한 웃음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효약>은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좋은 약을 만든다하더라고 그것을 만든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지금 다국적 제약회사가 약을 비싸게 파는 이유와 저개발국에 실험용으로 임상실험도 거치지 않은 약을 마구잡이고 풀어 마치 선행을 베푸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얼굴의 인간... 바로 우리 안의 야누스다.


<유행>은 요즘 현실에 대한 서글픔이 담겨 있는 듯해서 씁쓸했던 작품이다. 기러기 아빠를 여기에 등장하는 목졸리는 아버지에 대입시킨다면 딱 맞지 않은가. 반대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살림만 하는 무능한 아내로 낙인찍힌 여자들을 어머니의 모습에 대입시켜보면 얼마나 실랄하고 잔인하게 우리가 우리를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웃을 수 없는 이유가, 웃기면서도 씁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무 잘 꼬집어 아프기 때문이다. 우리가 애써 감추려고 한 허망한 욕심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단원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붉은 라이온>을 들고 싶다.
여기에 자주 등장하는 아니마에 대한 작가의 집착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니마는 다른 작품에도 등장한다. 우리의 무의식을 나타내는 이 단어는 심리학적 용어다. 작가는 자신의 아니마, 독자에게 아니마를 보여주므로써 무엇을 느끼게 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현실도피, 즉 책을 읽는다는 행위도 자기 파괴적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 했던 건 아닐까. 아님 지금 작가가 글을 쓰고 있는 행위 자체가 피할 수 없는 자신과의 대면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글 안일까, 글 밖일까... 뛰어 나가면 어디로 가게 될까? 꿈에서 깬다면? 이런 생각에 조금 즐거워졌다.


책을 읽는다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읽는 다는 것, 그러면서도 웃게 된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면서도 즐거운 일이다. 조금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고 남들이 웃지 않는 대목에서 웃은들 어떠리. 내가 책을 읽고 그 책에 만족하면 그뿐인 것을. 작가도 그 이상은 아마 바라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저 이해 못한 부분은 남겨둔 채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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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2-2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그림도 마음에 들고....리뷰를 보니 더 사고 싶어 지내요...;ㅁ; 지를 만큼 질러서 더이상 지르면 안되는데...=_=;;

물만두 2006-02-2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로님 호객만두예요~^^

sayonara 2006-02-2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몇의 노골적인 알바리뷰들 속에 섞여있는 만두님의 호평이...
블랙유머는 어째 좀... -┎

물만두 2006-02-2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 제가 이 작가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가의 단편이 좋거든요. 블랙 유머라기보다는 SF적입니다~
 
마술사가 너무 많다 - 귀족 탐정 다아시 경 2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9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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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렉스 스타우트의 네오 울프가 등장하는 <요리장이 너무 많다>를 떠 올린 분들이 많고 사실 이 작품은 그 작품의 오마주 성격의 작품이라고 역자께서 말씀 하시니 그렇구나 했다. 하지만 책을 처음 열자마자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홈즈였다.

홈즈와 홈즈보다 머리가 좋다던 형 마이크로프트... 다아시경의 사촌형인 후작의 모습에서 홈즈를 떠올린 것은 그가 네오 울프라면, 물론 몸이나 생각이나 게으른 거 하며, 네오 울프는 난초광이었고 후작 또한 약초광이라는 점이 똑같고 아랫사람을 혹사시키고 자기는 머리만 쓰고 그러면서 마치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 하는 것 같은 거만함이 판박이처럼 똑같았지만 이 경우 누가 아치 굿윈인가 하는 점에서 볼 때 차마 다아시경을 아치 굿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물론 이 작품에서의 아치 굿윈은 다아시경이 아니지만 말이다.

단편만으로 이루어진 <셰르부르의 저주>를 보고 장편을 간절하게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오기만을 정말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앞에서 <요리사가 너무 많다>의 오마주라는 말을 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완벽한 추리 소설이다. 또한 그만큼 완벽한 SF 소설이다. 이 작품처럼 깔끔하게 대체 역사를 만들어 낸 작품도 드물 것이다. 그 안에 확실한 주인공을 심어 놓을 수 있는 작품 또한 드물다. 모든 것을 만족시키면서도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최대의 강점이다.

이 작품에는 두 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의 사건은 제국의 이중첩자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일이다. 그리고 그 뒤에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곳에는 마술사가 너무 많았다. 왜냐하면 마술사들의 모임이 열린 곳에서 마술사가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밀실에서... 오, 이것은 흑마술과 백마술의 대결이란 말인가. 그런데 하필이면 영악한 다아시경의 사촌은 다아시경의 마술사 숀 오 로클란을 범인으로 잡아 가둔다. 다아시경과 사촌의 한판 머리싸움도 초반의 볼거리다. 그 뒤에는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제국의 안위를 위한 첩자를 찾는 것과 흑마술사를 찾는 것이 볼거리로 다가온다.

끝까지 재미를 주는, 끝까지 독자에게 안개 낀 런던의 가스등과 함께 고풍스런 고전적 추리 소설과 SF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의 풍경은 마치 포와로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과도 같았고, 네오 울프가 그러는 것도 같았다. 또 어디에서 이만한 정통 추리 소설을 이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을지...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다아시경이야말로 필립 말로와는 다른 진짜 귀족 신사 탐정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을 보면 진짜 옛날 런던의 가스등이 켜져 있는 거리를 걷고도 싶고 마차를 타고 달리고도 싶어진다. 아, 이 작품을 보시려면 <셰르브루의 저주>를 먼저 읽으신 다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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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1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헤 저는 울프보다 아치 굿윈을 더 좋아해요. 굿윈이 대들때가 제일 통쾌하죠^^ 그런데 여기서는 좀 약했어요 ㅠ.ㅠ

물만두 2006-01-19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언니 아무리 그러셔도 아치가 최고야~입니다^^ 그리고 다아시경이 정말 책을 뚫고 우리 잡으러 올거같아요^^

비연 2006-01-1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추리소설 잠시 안 읽으려고 했는데..만두님. 넘해용...ㅠ.ㅠ;;
읽고 싶어지쟎아요...으흐흑~~

물만두 2006-01-1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안 읽으심 후회하십니다~^^

하루(春) 2006-01-1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이리도 별 다섯개짜리가 많단 말이오!

물만두 2006-01-19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제 서평은 별을 보심 안된다구요~ 그냥 이 책 안 보심 후회하실꺼라는 것만 알려드립죠^^

물만두 2006-01-2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해랑님 읽으셔야죠^^

galapagos55 2006-02-06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글 제목만 봤는데도 읽고 싶어지네요^^;
일단 잡은 일이 끝나면 꼭 읽어야되겠네요!^^

물만두 2006-02-07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라파고스님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