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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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추리소설이 선전하고 있다. 스웨덴 추리소설은 예전에도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헤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더 시리즈가 나왔을 때 말이다. 하지만 그 뒤로 좀 뜸하더니 요새 다시 나오고 있다.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날씨와 색다른 독특함을 아무래도 주목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추리소설이 주는 추리소설로서의 기본을 눈여겨보게 된다. 다른 것들은 겻가지일뿐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작품 어촌 마을 피엘바카라는 곳을 배경으로한 사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경찰의 조사, 작은 마을 특유의 답답함과 전통적 시골스러움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알렉스라는 미모의 여인이 사체로 발견된다. 알렉스의 시신은 그녀의 25년전 친구 에리카가 보게 된다. 전기 작가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향에 돌아오게 된 에리카는 아직도 어린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의 갑작스런 절교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알렉스의 부모는 부고 기사를 부탁하고 이에 에리카는 알렉스에 대해 더 알고자 주변을 기웃거린다. 

피엘바카의 경찰인 에리카의 어린 시절 친구 파트리크는 이 사건을 수사하는 책임을 맡아 조사하던 중 경찰서에 온 에리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조사를 하고 에리카는 파트리크에게 자기가 조사한 것들을 알려주며 하나의 살인 사건과 25년전 실종 사건과의 관계, 어울리지 않는 상류층 부인이 된 알렉스와 알코올중독자이지만 화가이기도 한 안데르스와의 기묘한 관계, 그리고 살해된 알렉스가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에 대해서 밝혀나가며 작은 마을이 품고 있는 거대하고 잔인한 비밀에 다가간다.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친하게 지내는 작은 마을일수록 어떤 문제가 생기면 쉬쉬하고 덮어두기는 경향이 있다. 또 그러는 것이 쉽기도 하고. 사람이 사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는 스웨덴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이 저지르는 죄는 인종이나, 국적, 종교 등 모든 것을 초월해서 같으니 그것 또한 참 희한한 일이다. 작품은 작은 마을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사정을 하나 하나 잘 풀어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기에 에리카와 파트리크의 로맨스라는 양념을 더해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좀 허무한 감을 준다. 

극적일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너무 마무리를 급하게 한 것 같이 느껴진다. 아직 에리카의 동생 안나의 문제도 남아 있고 또 율리아의 문제도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사람살이의 일부분으로 보여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거기에 처음 살인자로 지목된 안데르스의 알리바이를 잘못 알려준 이웃에 대한 문제는 그냥 넘어갔다. 큰 틀에서 보자면 생략해도 좋을거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모든 것을 긴장하면서 본 나는 마지막에 맥이 빠져버렸다. 그건 어쩌면 파헤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파헤친 탓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된 파트리크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더 큰 공포가 시한폭탄처럼 걸어다니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찌 해볼 수 없는 그런 막막함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작품이다. 범죄는 어떻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범죄자가 눈에 보이고 눈으로 보아 판단된다면 그는 범죄자가 아니다. 범죄자는 눈으로 판단할 수 없기에 위험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안나처럼 폭력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여성들이 있는 한 범죄는 계속 가정에서부터 자라게 방치하는 거라는 걸 깨닫기를 바란다. 만약 안나가 게속 남편에게 맞고 살고 아이들까지 맞고 자랐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으니까. 얼음의 차가운 표면만 보지 말라고 작품은 말하고 있다. 그 얼음 아래 숨어있는 더 냉기 가득한 범죄를 보라고. 그것은 바로 우리 옆에서 냉기를 뿜어내고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듯한 작품이었다. 

스웨덴 특유의 마을 특색을 잘 담아내고 있으면서 마지막은 그래도 유머러스하게 에일레르트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뜬금없으면서도 한 노인의 집념의 승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이래서 어떻게 세상을 사나 싶다가도 살게 되는 게 아니냐고, 세상 살 만하다고 작가가 마지막에 윙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얼음같은 차가운 세상에 한 줄기 따사로운 햇빛같은 조화를 이뤄주는 씬 스틸러, 에일레르트 아저씨 화이팅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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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1-0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이제야 읽었군요.
난 이 책 좀 그렇드라구요.
영화를 보는 것 같은데 건드려만 주고 뭐 하나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게 없었어요.
내가 보는 게 문제가 있었나? 암튼요...

물만두 2010-01-04 11:51   좋아요 0 | URL
마지막이 좀 그랬죠? 하지만 확실하게 하기에는 소재가 그랬죠. 또 이런 문제는 이 작품처럼 되기가 더 현실적이다 싶기도 하구요. 픽션이 픽션답지 않아 재미는 반감됐지만 대신 생각할 여지는 남겨준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뭐 마지막에는 유머도 있었구요.
 
명탐정 홈즈걸 1 -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명탐정 홈즈걸 1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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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서점 나들이는 9살때 아버지와 여동생과 함께 동네 서점에 간 거였다. 거기에서 아버지는 내게 톨스토이 아동용 전집을 사주셨고 동생에게는 팝업북을 사주셨다. 나는 물론 바보 이반이 나오는 내 책은 보지도 않고 동생 팝업북을 같이 보며 신데렐라 호박 마차, 과자로 만든 집을 움직이며 놀았다. 그때 이후로 나는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아홉살 어린 나이에 동네 서점은 큰 대형서점처럼 보였고 그 많은 책들이 보물처럼 느껴졌더랬다. 아마 그속에도 명탐정 홈즈나 홈즈걸이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쯤 그분들은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겠지만. 

정말  서점에서는 어떤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아기자기한 단편들로 구성된 책이다. 이야기는 세후도 서점의 베테랑 정직원이지만 서점에서 하는 일 이외에는 순발력과 추리력이 떨어져 사건만 맡게 되는 교코와 아르바이트생이지만 교코에게 사건이 의뢰되면 명석한 머리를 가진 다에가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명탐정 홈즈걸이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탐정이 별건가 사건을 해결하면 탐정이지라고 생각하면 다에 탐정과 다에를 탐정으로 일하게 만드는 단 두명뿐이지만 우두머리라고나 할까 뭐 그런 존재인 서점이라는 곳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교코 언니의 활약상이 조화를 이루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교코를 왓슨 박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왓슨 박사가 사건의 의뢰를 맡는 건 아니니까. 무조건 홈즈와 왓슨이라는 콤비의 조합을 만들려는 생각은 이제 버렸으면 싶다. 차라리 분업, 각기 맡은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에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교코니까 말이다. 

모두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지만 <판다는 속삭인다>는 서점과 미스터리의 조화를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었다. 병을 앓고 치매기가 있는 할아버지가 어떤 책을 사다 달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마치 암호같아서 무슨 책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교코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누구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때 다에가 추리를 한다. 서점이 있는 동네를 생각한다. 그리고 서점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본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는 서점들은 어쩌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지켜내야만 하는 그런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병 든 할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책을 전달할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사냥터에서, 그대가 손을 흔드네>는 이십년 전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갑자기 만화책을 보고 사라져 그 딸이 교코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십년 전 일이 밝혀지는 이야기다. <배달 빨간 모자>는 고지식한 아르바이트 직원이 배달을 갔다가 사고를 당하고 미용실에서는 배달한 잡지에 이상한 종이가 들어 있어 손님을 화나게 만들어 곤란을 겪게 되어 주변 상가들이 염려하던 중 엉뚱하게 사건이 해결되는 이야기다. <여섯 번째 메시지>는 병원에서 어머니가 서점 직원에게 도움을 받아 사다 준 책이 마음에 들어 인사 온 여자에게 그런 직원이 없어 그 직원 찾기에 나서는 이야기다. 도대체 서점 직원이 아니면서 서점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디스플레이 리플레이>는 코너를 디스플레이해서 콘테스트를 하려던 중 한 만화가 표절이라는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 디스플레이에 누군가 악의적 장난을 쳐서 범인을 잡는 이야기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 동네 서점이라고 말할 오프라인 서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나는 온라인 서점을 동네 서점처럼 생각하지만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상점과 상점이 소통하고 여러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곳을 잃어간다는 점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서점에 다니던 생각이 난다. 정말 책 이름, 저자를 몰라도 내용을 이야기하면 찾아주던 직원이 달인처럼 신기했고 어디 있는지 몰라 찾아달라고 하면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너무 쉽게 찾아주던 베테랑 직원을 본 적도 있엇다.  

그 시절 책 한권 사서 서점 카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읽던 여유로움은 얼마나 즐거운 기쁨이었는지 잊었었다. 이 책은 그런 우리가 너무 바빠 놓치고 있는 여유로운 아날로그적 책이 있는 곳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읽어 좋았다. 서점 냄새가 나는 것 같고 그때 마시던 에스프레소 향기가 나는 것 같아서. 이 책을 읽고 가까운 서점, 동네 서점 나들이라도 하는 건 어떨지. 아마 즐거운 마음의 여유를 주지 않을까 싶다. 서점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미스터리 이야기를 읽으며 서점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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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12-3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이 리뷰가 올해 마지막 올리는 리뷰는 아니겠소?
올해도 줄기차게 읽었구료.
내년에도 좋은 책 많이 읽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료.^^

물만두 2009-12-30 11:04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아마도 그렇게 되지 싶습니다.
그런다고 했는데 모자란 거 같아요 ㅜ.ㅜ
감사합니다.
님도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스탕 2009-12-3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홈즈는 요즘 큰녀석 지성이가 한참 관심을 갖는 캐랙터라지요 ^^
만두님. 건강 잘 살피시고 새해에 더 자주 뵙도록 해요, 우리.
복 많이 넘치도록 받으시고요~ ^^*

물만두 2009-12-30 14:00   좋아요 0 | URL
지성이에게 한국 추리의 미래가 달렸군요^^
많은 지원 부탁드려용.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3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올한해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내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물만두 2009-12-30 14:01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울보 2009-12-30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요,
내년에는 그동안 뜸했던 알라딘서재지기님들이 모두 모였으면 좋겠구요,
님의 재미난 이야기도 더 많이 듣고 싶어요,
그때가 좋았는데 ,,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물만두 2009-12-31 10:32   좋아요 0 | URL
울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음, 기력이 쇠하여 어쩔수가 없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soyo12 2009-12-3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런 서점 꼭 가보고 싶어요.^.~

물만두 2009-12-31 10:32   좋아요 0 | URL
동네에 있었음 좋겠죠^^
 
돌 속에 흐르는 피 블랙 캣(Black Cat) 21
프랜시스 파이필드 지음, 김수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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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호텔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을 우연히 찍히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던 악명 높은 범죄자만을 변호해서 무죄로 풀어주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냉열한 변호사가 마지막 변호를 맡았던 릭 보이드의 사건이 종결된 직후 자살을 한다. 왜 메리언 시어러는 자살한 것일까? 모두의 궁금증과 사건은 그녀의 뒤를 따르게 된다. 

살면서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변호하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거 하나뿐이랴마는 증거가 분명하고 피해자의 진술이 확실하고 무엇보다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가 더욱 놀라울 뿐인데 범죄자에게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고, 범죄자도 인권이 있고, 법이 유죄를 판결하지 않는 한 무죄라는 논리에 입각해 그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의 모습이 모두 이 작품 속 메리언 시어러같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 메리언 시어러같은 자신의 성공과 사디스트적인 피해자를 공격하는데서 희열을 느껴 범죄자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해자보다 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라니 법의 존재에 회의감마저 든다. 

메리언 시어러의 죽음 뒤 그녀의 유언을 집행하는 사무 변호사인 그녀의 친구 토머스는 그녀가 숨긴 재산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그녀의 하나뿐인 혈육인 남동생 프랭크는 누나의 모든 것을 상속받기 위해 꿈에 부풀어 있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변호했던 릭 보이드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그에 관한 불리한 증거를 찾기 위해 토머스를 찾아 감언이설로 다시 그를 회유하려 든다. 여기에 토머스의 메리언에 대한 조사 의뢰를 받은 피터는 릭 보이드 사건때 검사측 변호사로 있었던 만큼 그 사건의 희생자 언니인 헨리에타에게 죄책감과 함께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작품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메리언이 숨겨둔 것들을 찾기 위해 각자 나름의 방식을 동원하는 동안 메리언이 법정에서 얼마나 잔인한 변호사였는지를 법정 장면을 간간히 섞어서 보여주며 마지막에 그녀가 왜 자살해야만 했는지까지 그런 법정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헨리에타의 직업인 클래식 의복을 드라이 크리닝하는 것과 메리언에게 애인이 있었고 메리언이 클래식 복장을 입고 춤을 추거나 클래식 의복을 멋으로 입는 취미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며 두 사람의 연결고리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메리언의 클래식 복장에 대한 고상한 취미는 그녀의 콤플렉스에 대한 보상 심리로 보여진다. 이것은 나약한 여성에 대한 공격성과 무관하지 않은 자기 과시 심리다. 하지만  헨리에타의 직업적이면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관심은 한 여성의 강한 의지에 대한 표현이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힘들고 무시하는 일이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므로 행복을 느끼는 헨리에타를 통해 현대 여성과 현대인이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통해 메리언과 헨리에타를 비교하게 작가는 만들고 있다. 

처음 메리언의 법정에서의 행동에 분노하고 피해자의 어리숙함과 이용당하는 것에 화가 나지만 읽어나가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잘 표현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헨리에타의 부모에 대한 반응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그것이 마지막까지 작품을 읽게 만드는 호기심을 유발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살면서 잔인한 행동만을 한 메리언이 죽으면서까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든 점이 놀라웠다. 자신이 해결하고 죽을 수 있었을텐데 남에게 맡기다니 끝까지 변하지 않는 본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런 요소요소에 적절한 문제를 배치해서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조마조마함을 전달하고 있다.  

작가는 단순 명쾌하게 인물들의 성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단 몇줄만 읽어도 캐릭터가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게 쓰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더 복잡했더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 어떤 잔인한 장면보다 더 잔인한 장면을 법정 장면을 통해 보여주며 릭 보이드의 행보를 통해 스릴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고 다른 작품과 다르게 현대적 폭력과 그로테스크한 면없이 추리소설적 묘미를 만끽할 수 있게 만든 점은 높이 사고 싶다. 반전이라는 장치없이 전통적 추리소설의 영국적인 풍미가 전해 내려온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 여류 추리작가들의 계보를 잇는데 손색이 없는 작가를 만날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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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3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6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자의 별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4
이시다 이라 지음, 김미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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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4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다. 기다림이 길었다. 얼마만에 만나는 마코토란 말인가. 이 젊은이의 장점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한다는 점이다. 의뢰를 받건 사건을 감지하고 뛰어들던 돈은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돈에 초연한 인생은 세상을 모르는 한심한 인생이거나 낙오자, 패배자로 보기 마련이지만 마코토는 그런 이들의 생각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고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애를 쓴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의 어느 조그만 과일 가게 앞에서 상한 과일을 다듬는 청년을 그려본다. 그의 모습에서 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얼마전이라면 쯧쯧쯧, 좀 더 나은 일을 하지 젊은애가 왜 저런 일을 하고 있담? 이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년 새 세상은 변했고 이젠 그런 젊은이를 보면 참 젊은애가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코토가 사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도 변하고 있지만 모든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마코토같은 젊은이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런 젊은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이 시리즈를 읽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케부쿠로 동쪽 출구 라면 라인>은 마코토의 친구 다카시가 보스로 있는 G보이스에서 나와 라면 가게를 운영하는 쌍둥이 형제들의 라면집이 누군가의 악의적인 헛소문에 시달린다. 이에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크 파크의 무보수 탐정 마코토가 범인 잡기에 나선다. 라면에 목숨 건 이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나 할까. 단순하지만 시대의 치열함과 인간의 삭막함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왈츠 포 베이비>는 우연히 추운 이케부쿠로의 겨울 밤을 걷던 마코토가 만나게 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그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건을 조사하다가 결코 건드려서는 안되는 사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검은 보자기의 밤>은 우연히 가게에 썩은 과일을 얻으러 온 미얀마 소년을 알게 되면서 그 소년의 사연에 분노해서 학교도 못다니고 매춘을 강요당하는 소년을 구하는 이야기다. 남의 나라 이야기는 사실 제대로 평가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쨌든간에 어떤 일에도 연좌제는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민주화 투쟁은 중요한 일이지만 어린 소년의 자유조차 지켜주지 못하고 이용하는 이가 말하는 민주화가 무엇일지 그것이 궁금하다. <전자의 별>은 역시 일본인도 자신들의 나라각 변태 천국이라는 건 아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신체 절단쇼라니. 그것을 보는 이들과 동영상을 사는 이들, 그리고 돈때문에 그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이들이 있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파키스탄에서는 고리대금에 자식들이 노예가 되는 것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신장을 판 아버지가 있었다. 모든 것이 돈 때문이라는 생각에 참 씁쓸해지는 이야기였다. 

마코토가 사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에는 좋은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 대부분이 소위 나쁜 사람들이다. 마코토가 어울리는 친구들도 갱들, 야쿠자 부하들이 주요 인물들이다. 마코토도 학창시절 한 주먹하던 솜씨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이분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객관적으로 보면 좋은 사람에 속하는 이들이 한겹 벗겨보면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이 작품은 알려준다. 소위 세상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놈과 감추는 놈이 있을뿐이라고. 그래서 마코토가 사는 이케부쿠로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번듯한 곳만을 만들려다 지구를 파괴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듯이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 모두 각각의 사연을 안고 각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걸, 누구도 그들을 평가하거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난 이 작품을 보면서 꼭 마코토가 듣는 음악을 듣는다. 그러면 조금 내 일상이 여유로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내게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이다. 누군가의 일상에 여유를 줄 수 있는 작품보다 더 좋은 작품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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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2-2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보는 시리즈입니다.
만나보아야겠네요.

물만두 2009-12-28 11:40   좋아요 0 | URL
이 시리즈를 처음보신다니 놀라워요.
꼭 읽어보세요.

Mephistopheles 2009-12-2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아는 마코토는 애니메이션 밖에 없다는..(아 나는 무식쟁이..~~)

물만두 2009-12-28 14:45   좋아요 0 | URL
메피님 에니로도 나왔을겁니다. 드라마도 나왔다던가 암튼 많이 나왔으니 그 마코토가 맞을겁니다^^

요구르트소녀 2009-12-29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께서 적으신 글들이 저에게 많은 도움도 되고 제가 더욱더 추리소설을 좋아하게 만드네요!! 물만두님! 더욱더 좋은 글 적어주세요!!~

물만두 2009-12-29 19: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투 미닛 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은행 강도에게도 룰이 있다. 그것이 바로 2분 법칙이다. 은행을 털러 들어가서 2분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하고 돈을 갖고 튀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무조건 2분이 넘으면 돈을 포기하고 달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2분을 넘기면 붙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작품은 두 명의 은행강도의 막무가네식 은행강도짓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도취되서 2분 법칙을 어기고 경찰이 출동하자 경찰과 총을 난사한 끝에 사망한다. 

여기 또 다른 전직 은행 강도가 출소를 하루 앞두고 있다. 그는 철저하게 2분 법칙을 지키던 남자였다. 하지만 딱 한번 지키지 못했고 그것으로 인해 잡히게 되었다. 이제 나이 마흔을 넘긴 그는 새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에게는 나가면 찾아야 하는 여자가 있고 아들이 있었다. 그와 달리 경찰이 된 자랑스러운 아들이. 그런데 그 아들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이제 그의 목표는 바뀌었다. 그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찾는 것이다. 

작품은 한 남자의 뒤늦은 참회와 같은 아들을 위한 자신의 마지막 할 수 있는 일을 애잖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를 사사건건 가로막는 경찰들의 집요함과 홀먼이 찾는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여기에 홀먼을 감옥에 가게 만든 전직 FBI요원이었던 폴라드가 홀먼의 도움의 손길에 응하게 되면서 묘한 콤비를 탄생시킨다. 전직 범죄자와 전직 경찰이라는. 이들은 경찰의 모든 보도에 의문을 품으며 재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홀먼은 경찰에게, 폴라드는 FBI에게 경고를 받게 되고 심지어 협박과 린치, 납치를 당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들이 숨기는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홀먼의 아들은 어떤 사건에 휘말린 것인가? 점점 사건에 다다가면서 홀먼은 아들이 부패한 경찰이 아니기만을 바라게 된다. 그건 그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래도 아버지인 모양이다. 이건 홀먼이 근본적으로는 나쁜 인간이 아니기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만약 범죄자 아버지를 둔 경찰 아들이 서로 만나고 그 아버지가 결코 나아지지 않는 구제불능이라면 아들에게 아버지는 지워버리고 싶은 존재가 될 것이다. 아버지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새 삶은 시작하기 힘들다. 힘든 만큼 노력이 필요하다. 홀먼의 어린 시절 소년원 친구 치가 자식을 위해 합법적 사업을 하고 있듯이 말이다.  

돈 없는 자에게 돈은 유혹이다. 욕망이고 권력의 상징이다. 그래서 은행 강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 강도만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 더한 날강도도 세상에는 많다. 이 작품에서처럼. 한쪽에서는 범죄자가 보통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는데 다른 쪽에서는 보통 사람이 범죄자가 되려고 애를 쓴다. 어쩌면 이것은 변하지 않는 인간 욕망의 법칙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지막까지 작품은 은행강도의 2분 법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 2분 법칙은 작품 전체에 스릴과 서스펜스를 주고 있다. 등장 인물들을 만날 때마다, 사건이 조금씩 양파껍질 벗겨지듯 드러날 때마다 긴장은 점점 고조되고 홀먼과 폴라드에게 몰입하게 된다. 예전에 좋아하던 범죄자 캐릭터가 있었다. 로렌스 샌더스의 <앤더슨의 테이프>에 등장한 주인공이다. 그 캐릭터보다 더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라고 말하고 싶은 캐릭터가 바로 맥스 홀먼이다.
 
아들의 장례식에서 범죄자 아버지라고 아들의 아름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에서, 결혼했어야 하는 아들의 엄마 무덤에서 혹 아들이 자신을 닮아서 잘못된 길을 간 건 아닐까 자책하며 통곡하는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스릴넘치면서도 가슴 따뜻해지는 작품이었다. 리치가 살아 아버지를 만났다면 아마도 아버지의 좋은 모습을 금방 발견했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가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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