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두려운 진실을 향한 용기 있는 전진
심포 유이치 지음, 이지영 옮김 / 태동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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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심포 유이치라는 작가는 미스터리 작가지만 그것보다 작품을 통해 인간과 인생, 살아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다. 그의 작품 <스트로보>도 그랬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라거나 그 부대낌같은 것은 모른다. 사람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나 열망도 없고 배신이라거나 질투를 해본 적도 없는 나는 참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그럭저럭 만족한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는 나는 이 부부의 이야기보다 외조부모의 이야기에서 감동을 받게 된다. 그것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인간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무한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늘 또 이렇게 내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역시 휴먼 미스터리의 대가다운 작품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편지를 쓴다.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다. 아내는 멀리 그리스에서 일을 하게 된 남편을 따라 가려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나중에 따라 오리라 생각했는데 편지로 이혼을 이야기한다. 자초지종도 설명하지 않고. 이런 아내가 답답한 남편도 편지를 보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당연한 반응이다. 이렇게 부부의 주거나 받거니 하는 편지는 아내가 외할머니를 닮았다는 말과 외할머니의 젊어서 일으킨 시건과 외할아버지의 죽음으로 50년을 거슬러 올라가 아내의 외조부모의 편지에 다다르게 된다.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힌 아내에게 보내는 남편의 편지와 아내의 기구한 운명과 절절한 감사와 한 여자로써의 욕망이 담긴 편지는 잔잔하게 전개된다. 여기에서도 아내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남편은 거부하지만 그 이혼에 대한 요구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서서히 밝혀지며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라는 위치와 변화를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 보게 된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 그런 뒤 다시 외손녀는 그 남편에게 자신이 이혼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그리스로 가지 못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이메일과 휴대전화로 간단하게 소통이 가능하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국제 전화, 심지어는 화상전화까지 가능한 지금 세상에서 편지라는 소재는 낡고 진부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 낡고 진부한 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것은 아직 남자와 여자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옛것이 모두 진실되고 정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편지라는 소재가 인간에게 더 정확한 사실을 토해내게 만드는 매개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편지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만들어 꾸밀 수 있는 여지를 준다. 하지만 그 꾸밈조차도 정성이고 그 꾸밈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인간관계의 발전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작가는 두려운 진실을 향한 용기 있는 전진을 담아내고 있다. 50년을 넘나들며 인간과 역사,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라는 나라에서는 이해가 될 이야기들이, 혹은 움츠려들지 않아도 될만한 사연들이 일본에서는 당연히 멸시받고 자기 스스로도 죄인 취급을 해야 한다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문제가 있음을 단순한 형식의 편지 안에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늘 그렇듯 작가에게는 인간의 사소한 일상과 일탈 자체가 미스터리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작가를 많이 좋아한다.  

작품속 여자들의 자신들의 행동에 죄책감을 갖고 반성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가두려 한다.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이다. 같은 행동에 남자들은 오히려 당당하고 뻔뻔하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것이 50년전이나 50년후나 변하지 않은 가치관이 가진 속성이다. 하나의 관습이나 문화적 도덕율이 자리를 잡으면 그것에서 이성적으로는 부당하다 생각하고 벗어나려 하지만 정작 잘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잘 생각하고 곱씹어보라고 등장한 것이 편지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행간에, 여백에 쌓인 글쓴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행복했느냐 불행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적이냐 인간적이지 않느냐의 문제다. 이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우리네 삶은 실수투성이의 삶이다. 그리고 상처받고 상처주는 상처투성이의 삶이다. 그 삶을 그래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조금씩 실수를 줄여가고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고 이해하려 애를 쓰기 때문이다. 그 뒤에 행, 불행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뒤 남편과 아내들이여, 서로에게 편지 한통 써보는 것은 어떨런지. 무미건조한 삶을 벗어던지기 위한 용기있는 전진의 시작이라 생각하고 한번 써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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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10-3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먼 미스터리라니까 확 끌리네요.
오늘이 그대 생일이군요.
축하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물만두 2009-10-31 11:49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읽으시면 좋을만한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
늘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2009-11-02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2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웃 1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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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는 독특한 작가다. 그녀의 작품에는 일관되게 자유를 갈구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마사코도 마찬가지다. 신용금고에 20년이나 다녔지만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말단에 있다가 반항했다는 이류로 정리 해고 된 여자. 그녀는 자신의 상처로 가족을 외면하고 도시락 제조업체에서 야근 파트타임 직원을 일을 한다.  

그녀가 직업을 낮 근무에서 밤 근무로 바꾼 것은 가정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녀의 가족. 남편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족과도 멀어져 자신의 세계만을 구축하고 아들은 퇴학당한 뒤 실어증에 걸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다. 그들 모두는 자폐증에 걸린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동료의 남편 살해는 어떤 의미에서 탈출구였는지 모른다. 여자도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나타내려는 그녀 안의 무언가가 자유롭게 표출된 것이다.    

이 작품은 네 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다. 삶에 찌든 여자들이 도시락 공장에서 야간에 일을 한다. 서로 다른 네 여자가 어느 날 한 여자의 남편 살해로 인해 모의를 하게 된다. 남편의 시체를 은폐하기로. 그 일의 중심에는 마사코가 있다. 그녀는 강인한 여자다. 언제나 기리노 나츠오는 여성들의 정체성 찾기를 작품에 중점을 둔다. 이 일로 시체 해부 사업까지 벌이는 여자들. 오로지 돈으로 뭉친 여자들. 하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삶, 지금까지의 평화로웠던 카멜레온같은 삶을 한 순간에 빼앗긴 남자가 복수를 위해 다가온다.

네 여자가 동료의 남편 살해에 가담하게 된다. 아내는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하고 그 일을 동료에게 의논한다. 세 여자는 동료의 남편의 시체를 처리해 준다. 그러면서 그들은 조금씩 달라진다. 한 여자는 살해당하고 남편을 살해한 여자는 보험금을 빼앗기고 또 한 여자는 딸의 가출을 기회로 집에 불을 지른다. 자리 보전하고 누워 있는 시어머니와 함께.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 마사코는 또 살해를 당하려다 살해를 하고 만다. 그리고 떠난다. 자유를 찾아, 돈을 갖고.  

삶은 이런 것일까. 산다고 사는데도 버겁기만 하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뻔하게 사는 것. 그래서 기존의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어두운 터널.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해야 한다. 공허한 메아리처럼 자신의 가슴만 치기에는 분하고 억울한 삶이다. 차라리 세상에서 아웃 당하는 게 낫다.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는 누군가를 궁지에 몰아 차라리 아웃 당하는 게 낫다는 생각하게 하지는 않는 지. 아니면 이 책을 읽는 자신이 그런 존재는 아닌지. 왜 삶이 이렇게 고단하고 서글퍼야만 하는지. 인간이 태어남에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등장 인물 모두가 조금씩 삶에서 비켜나 있는 인물들이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야만 하는 이들. 그들은 언제나 도움을 청하는 손을 내밀기는 하지만 누군가를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절. 이것이 이들을 삶의 밖으로 조금씩 밀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너머의 무언가를 찾게 만들기도 하고, 체념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자신의 조국에 돌아와 냉대만 받는 브라질에서 온 반 쪽 짜리 동포처럼. 하지만 작가는 이대로 주저앉게 만들지 않는다. 다시 길을 떠나게 하고야 만다. 무엇을 찾아야 할 지 모르지만 고인 물에서 탈출하기를 바라는 듯 보인다. 한번쯤은 당신도 자유롭게 날아 보라고 말하는 듯 한 작품이다.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말이다.    

작가는 마치 여자는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회는 여자에게 정당한가를 묻는 듯 하다. 작가의 인생사가 작품을 읽으면서 더욱 궁금해진다. 그녀에게는 어떤 상처가 있는 것일까. 그녀는 어떤 자유를 원하는 것일까. 가족과 사회로부터 자발적 아웃을 선택하는 것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아닌가, 그 길만을 남기고 막다른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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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11-03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족과 사회로부터 자발적인 아웃을 선택하는 것만이 자유를...'
그러게요. 저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거 같네요.

물만두 2009-11-03 13:15   좋아요 1 | URL
네. 이 작품의 마지막이 그래서 인상 깊었습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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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멍하니 있었다. 지금 내가 읽은 작품이 뭐였을까 종잡을 수 없었다. 뭔가 대단한 작품을 읽은 느낌은 드는데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 이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다른 작품 <새도우>를 읽었을 때도 놀랐었다.  그때 그 작품을 읽고 이런 글을 썼었다. '작가는 본격추리라는 추리소설의 한 분야를 완벽하게 트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물들의 단어 한마디, 행동 하나에 독자에 대한 속임수를 포진시키고 있는 작가의 주도면밀함과 본격추리소설이면서도 그것을 좀 더 새롭게 만든 작가의 글솜씨가, 그의 도전이 재미있고 좋았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 한 작품만으로는 배가 고프다. 더 작가의 작품을 맛있게 먹고 싶다.' 내 배고픔이 채워져야 하는데 더 욕심이 생긴다. 정말 폭식을 조장하는 작가다. 환상과 인간 개개인의 관점에 대해 더 확실하게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다. 삶이라는 이야기가 말이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종업식날 S가 오지 않아 담임 선생님의 부탁으로 S의 집에 과제물을 전해주러 갔던 미치오는 뜻밖에 자살한 S를 발견하고 선생님께 알린다. 그런데 이와무라 선생님이 경찰들과 함께 S의 집에 갔을 때 S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자살의 흔적도 사라지고. 도대체 누가 S의 시신을 가져간 것이고 S는 자살한 것일까,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하는데 거미로 환생한 S가 미치오에게 나타나서 자신은 살해당했고 살인자는 이와무라 담임 선생님이라고 알려준다. 미치오는 S를 대신해서 이와무라 선생님이 감춘 S의 시신을 찾고 경찰에 그를 신고할 계획을 짠다. 

여기에 그 마을에서 일어나던 개와 고양이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과 겹쳐지며 사건은 순식간에 엽기적인 연쇄 사건으로 다가온다. 다리를 부러뜨리고 입에 비누를 넣은 동물의 사체들. 하지만 미치오는 S의 말만 믿다가 어느 순간 의심을 하게 된다. 과연 S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이야기를 믿어도 좋은 것일까? 그러면서 이야기 전체가 다른 각도로 전개된다. 마치 이런 이야기가 싫다면 저런 이야기는 어때? 하며 방향 전환을 하는 이야기꾼의 입담처럼. 그리고 그 입담에 장단을 맞춰주는 만담꾼처럼 이야기는 작품 속에서 순식간에 파괴되고 재구성되기를 반복한다. 마치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죽은 뒤 환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작품은 신선하지만 단순하게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9살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환생이라는 기묘한 조화가 미스터리보다는 환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점차 이와무라 선생님이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되고 또 다른 등장 인물 다이조 할아버지가 긴장감을 고조시켜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미치오의 주변에는 좀 색다른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단서를 말해주는 국수집 도코 할머니, 미치오의 3살된 여동생 미카, 미카만을 예뻐하고 미치오는 싫어하는 조금 이상한 엄마와 그런 엄마를 바라보기만 하는 거북이같은 아빠. 이들의 부조화스런 조화 또한 이 작품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말 우린 모두 이야기를 만드는 존재다. 자기만이 안주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고 거짓과 실책과 실수와 나쁜 기억은 삭제하고 즐겁고 좋은 행복한 기억으로 진실처럼 위장을 한다. 그러다보면 진짜 어떤 것이 자신의 실제 이야기인지 모르게 되고 거짓도 진실로 받아들여 힘들 삶을 그럭저럭 살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9살난 아이의 머리 속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너무 어리지 않은가. 하지만 어리다고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리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것에 더 민감할 수 있는지 모른다. 

마지막은 참 소태처럼 쓰게 다가온다. 그리고 미궁에 빠지게 만든다. 작가는 독자에게 끝까지 모든 것을 다 알려주지 않는다. 삶이라는 이야기의 하나처럼 내가 지금까지 읽은 것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하고 또 마지막의 여운은 무엇인지 상상하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쨌든 현재진행형으로 이야기는 어디에선가 파괴되고 다시 구성되고를 무한 반복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이야기의 환생일테니까.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인간이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도 그렇게 반복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믿고자 하는 이야기만 믿는 사람에게는 환생도 믿을 수 있는 것과 같이 거짓된 이야기라도 포장만 잘하면 믿게 되는 거라고. 정말 미스터리하고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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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9-10-2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던 작품이지만, 만두님 리뷰를 읽으니 끌리네요.

물만두 2009-10-29 11:55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좋은 작품입니다.

[그장소] 2013-08-03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쓰르라미울적에...던가? 어쩐지..그 내용이..떠오르네요!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집어들었다가..
아직도 많은 온다리쿠와 히가시노 게이고,누쿠이 도쿠로,,기시 유스케,마쓰다 신조,
등등...미루고..미루고..ㅎㅎ
 
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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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읽으며 내 입에서 무심코 '헉, 대박이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정녕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란 말인가? 정말 대단한 데뷔작의 등장이자 대단한 작가의 등장을 알리는 강렬한 작품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지 내 머리는 그저 놀라서 멍할 뿐이다. 와우~ 심봤다!!! 

한 여교사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이야기로 작품은 시작된다. 그것이 거대한 고백의 시작이다. 그 고백 안에서 얼마 전 사고로 죽은 자신의 어린 딸이 살해되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그 범인이 바로 자신의 반 학생 두명이라는 것도. 아이들은 모두 놀라고 범인들은 숨죽인다. 교사는 소년법에 의해 처벌받지 않는 연령임을 각인시킨다. 그런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해서 자신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그 뒤 여교사는 퇴직을 하고 한 학생은 학교를 무단 결석하고 다른 학생은 왕따를 당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서로 다른 화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이야기하며 전개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 관점이 다른 화자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며 자신만의 시각으로 전달을 한다. 하나의 사건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여질 수 있음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두 범인도 직접 등장시키고 그 아이의 엄마도 등장시키는 등 그 주변 인물들이 겪게 되는 일에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시선을 주고 받는 지 알려준다. 이렇게 잘 짜여진 하나의 단순한 사건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 단순함을 넘어서 비범한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의 화자에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인 것이 독특하다. 성직자는 여교사의 독백이다. 소년들을 신고하지 않은 아이를 잃은 어머니. 순교자는 선생님이 파란을 일으키고 떠난 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휘말리게 된 소녀의 고백이다. 하지만 이 소녀가 과연 순교자였는지는 의문이다. 자애자는 소년 B의 어머니 일기에 담긴 고백이다. 과연 그녀가 자애자였는지는 뒤를 잇는 소년 B의 고백이 담긴 구도자를 보면 알 수 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갈구한 점을 구도자라 해야 할지, 자신의 능력을 엉뚱함에 구현한 점을 구도자라 해야할지. 그렇게 되면 신봉자는 당연히 소년 A의 고백이 된다. 어린 시절 헤어진 어머니를 신봉한 소년의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이려다 싸늘하게 만든다. 여기에 마지막 전도자가 등장해 대미를 장식한다. 각각의 단원에서도 할 말이 생기지만 결코 정의를 입에 담지는 않으련다. 이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가정과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함게 통찰하고 있다.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는데서 오는 어려움, 그런 싱글맘을 아직도 편견적인 시각으로 보는 현실, 왕따문제와 어린 아이들의 정의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일그러진 사춘기의 집단 히스테리, 범죄에의 동경을 부추기는 매스컴, 가정 폭력과 재혼 가정의 문제, 그리고 일반 가족 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가족과 부모와 자식의 여전히 계속되는 소통 부재, 자아 도취와 인간 실격의 끝은 어디인지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집착과 광기 등을 등장 인물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범죄자에 대한 복수 문제까지 생각하게 한다. 

사실 처음 볼 때는 또 하나의 소년범과 소년법에 대한 이야기, 가정과 사회에 대한 교육이 문제라는 내가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반복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작가는 작품을 정교한 추리소설로 완성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은 모두 보여주고 있다. 너무 많이 보여줘서 오히려 이야기를 읽다가 속은 것이다. 이 작품이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이 얼마나 영악한 작가란 말인가. 대단하다는 말 이외에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겠다. 뭘 느꼈냐고 물어도 그냥 머리 위에서 폭탄이 터진 느낌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놀랍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보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그런 작품을 오랜만에 봤다. 아, 신선한 충격이란 이제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좋은 작품들은 기다리면 나오는구나.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된다. 무언가를 논할 수 없게 만드는 기가 막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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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0-2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궁금했어요

물만두 2009-10-22 10:59   좋아요 0 | URL
강추합니다.

2009-10-22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2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9-10-22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만 들어도 마구 읽고싶은 책이군요. ㅠㅜ 꼭 읽고야 말테예요. 12월 이후에...

물만두 2009-10-22 14:23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세요^^

랄랄랄라 2009-10-22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저랑 동감이시군요. 저도 어제 읽고 흥분해 알라딘 리뷰 올렸답니다. 정말 이 책 대단하죠? 히가시노게이고를 뛰어넘을지도 모를 작가가 동시대 나오다니....전 정말 일몬장르소설계가 무서워요.

물만두 2009-10-22 15:16   좋아요 1 | URL
그죠? 정말 기대되는 무서운 신인의 등장입니다.

랄랄랄라 2009-10-22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께 질문이요. 장르소설의 고수이시니 여쭙겠어요. 이 책과 비슷한 분위기나 완성도, 독백체 여러명의 릴레이구조-를 가진 소설 혹시 기억나시면 추천부탁드립니다. 꾸벅.

물만두 2009-10-22 16:02   좋아요 1 | URL
분위기는 좀 다르지만 <편집된 죽음>이 우선 떠오르는군요. 릴레이구조는 온다 리쿠가 잘 쓰는데 제목이 생각 안나네요.

랄랄랄라 2009-10-2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된죽음....당장 구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Apple 2009-10-22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땜에 별로과심이 안갔는데,=_=; 이정도로 강추하시면 안볼수 없는걸요?^^

물만두 2009-10-22 19:37   좋아요 0 | URL
후회하시게 됩니다. 안보시면요^^

마노아 2009-10-23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때문에 어제 이 책 질렀잖아요. 알사탕 천 개도 유혹적이었어요.ㅎㅎㅎ

물만두 2009-10-23 14:27   좋아요 0 | URL
잘하셨습니다^^

카스피 2009-10-2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이 이리 칭찬하시니 한번 서점에 가서 슬쩍 읽어봐야 겠네요^^

물만두 2009-10-23 14:28   좋아요 0 | URL
한번 보세요. 근데 슬쩍으로는 안되실텐데요^^

2009-10-25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6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데메트리오스 2009-10-2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자들이 각자 자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영화 라쇼몽과 비슷한 것 같은데 만두님의 리뷰를 보니 뭐가 더 대단한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머리 위에서 폭탄이 터진 느낌이 무엇인지 얼른 사서 봐야겠네요^^

물만두 2009-10-27 10:26   좋아요 0 | URL
데메님 라쇼몽하고는 좀 달라요.
그런 점이 더 매력적이랍니다.^^

메르헨 2009-10-2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잠시 보류했는데 물만두님 리뷰를 보니...
다시 결제에 들어가야할듯...^^
갠적으로 일본서점상 받은 책이 쫌...괜찮더라구요.하하...
결제창으로 넘어갑니다.^^
오랫만에 뵈어요. 여름에 바빴고....늦가을에 좀 한가해지는 메르헨 댕겨 갑니다.^^

물만두 2009-10-28 19:29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어요^^
네, 올만입니다~

좋은날 2009-11-03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의 추천하시는 추리소설은 다 사야 직성이 풀린답니다.
고백 도 물만두님의 리뷰를 보고 주문했죠..
이틀동안 읽었는데 정말 끝내줍니다..
해바라기가 피지않는 여름은 도서관에서 빌려왔어요
지금 읽고 있어요.
물만두님의 별 다섯개 소설은 다 읽습니다.

물만두 2009-11-04 10:3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님과 제가 책궁합이 맞나봅니다.
좋은 하루보내시고 즐거운 독서하세요^^

[그장소] 2013-08-03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먼저,그리고 책으로 본..^^
 
12인 12색 - 한국 젊은 작가 추리 단편집, 클래식 미스터리 클럽
신재형 외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의 소재가 얼마나 다양한 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목도 '12人 12色'으로 열두명의 작가가 더로 다른 색깔의 단편을 독자에게 선보이고 있다. 추리소설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트릭을 위주로 한 범인잡기식의 본격 추리소설에서 사회파 범죄소설을 넘어 팩션까지, 그리고 여러 장르와의 연계를 통해 오컬트 미스터리, 환타지 미스터리, SF 미스터리, 역사 미스터리, 호러와 결합된 스릴러 등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도 그런 점에서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진짜 사건을 소재로 삼은 경찰 추리소설의 전형을 보여 준 <그들의 시선>, 마지막 반전이 오싹하게 다가오는 반전 미스터리를 선보인 <마지막 장난>, 별거 아닌 것 같던 내용이 트릭에 의한 본격 추리소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안락사>, 신주무원록의 탄생이 된 사건인냥 쓴 팩션 <글월비자>, 유쾌한 코지 미스터리로 워킹맘의 심리를 잘 묘사한 <지우개>, 반 지하에 이사 오는 사람마다 사건이 일어나는 반지하를 소재로 인간 심리를 잘 표현한 심리 미스터리 <반 지하>는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일본을 배경으로 일본의 미래를 소재로 삼은 SF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는 <오타쿠>, 오컬트와 초자연 현상이 가미된 작품인 <의식은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타투이스트를 소재로 한 진실이 궁금한 <꿈꾸는 아이비>, 이상과 현실의 타협에서 나이가 들면 한번쯤 생각하게 될만한 휴먼 미스터리 <노동자 K씨의 죽음>, 중국 원말을 배경으로 한 무협 미스터리 <안구사>, 바람 피운 여자가 내연남의 죽음을 불안해 하는 일상을 잘 묘사한 <불안>, 이 다양한 12가지 색깔의 작품들이 우리 나라의 추리소설의 미래를 보여준다.  

작품들에 공통적인 특징은 경계다. 뜻은 다르게 표현될 수 있지만.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 그 심리가 인간이 넘어서는 안되는 경계를 넘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세대간의 소통과 이해를 위해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인생에 대해 자신이 쳐놓은 경계를 풀게 하기도 한다. 또한 제목 그대로 시공을 초월해서 의식의 경계를 뛰어 넘는 작품을 표현하기도 하고, 사실과 허구의 사이의 경계에서 독자와 주인공을 떠돌게도 만들고, 이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정말 인간이 가진 경계의 폭은 넓은 듯 좁고 깊은 듯 얇다는 것 알게 한다. 또한 추리소설의 장르적 한계나 경계는 없어야 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얼마나 다양하게 다른 작품을 쓰느냐, 참신한 작품으로 실험성을 높이느냐도 젊은 작가에게 요구되는 점이기도 하지만 완성도 높고 깊이 있는 작품이 더 요구된다. 독자들의 눈은 이미 많이 높아졌다. 작가들의 글에 대한 욕심도 높아졌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추리소설의 붐이라고 할 만한 시대에 좋은 추리소설이 많이 나와준다면 우리나라도 추리소설이 높은 위상을 차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일을 이 열두명의 작가들이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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