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론>이 재출간됐다. 주해를 크게 보강했다고 하니까 개정판이라고 해도 좋겠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정수는 논리학이고, <변증론>은 그 핵심적 저작이라고 하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도전해봄 직하다. 저자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8. 07. 24) 민주주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워라

현대 철학까지는 아니어도 고대 그리스 철학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이름은 초등학생도 되뇔 수 있다. 그들이 남긴 경구는 시사 퀴즈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정말 서양 고전 철학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요?” 학문적 인생 전체를 그리스 철학 고전의 번역·주해에 바쳐온 김재홍 관동대 연구교수다. 그는 최근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론>(길)을 번역·주해했다. 1998년에 번역본(까치)을 냈는데, 이번에 주해를 크게 보강하여 새로 발간했다.

지금까지 그가 펴낸 책을 일별하면 이번 작업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김 교수는 <그리스 사유의 기원>(살림), <에픽테토스 ‘담화록’>(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등을 썼다. 역서로는 <정신의 발견>(브루노 스넬·까치), <엥케이리디온>(에픽테토스·까치), <니코마코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공역·이제이북스), <소피스테스적 논박>(아리스토텔레스·한길사) 등이 있다. <변증론>의 재번역은 그리스 철학의 핵심인 논리학 연구의 큰 매듭을 짓는 일이다.

그가 펴낸 책 가운데 이른바 ‘대중서’는 하나도 없다. “고전을 번역하고 주석 다는 데 매달려 살았던” 시간의 열매다. 그가 추구하는 바는 널리 읽히는 게 아니라, 정확히 읽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어디에 나오는 걸까요. 누가 어떻게 지어냈는지 모르는 말이 아무 근거도 없이 버젓이 교과서에까지 실리는 걸 보세요. 이건 엄격성과 엄밀성을 추구하는 학자적 정신의 부족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엄밀함과 엄격함의 잣대를 굳이 서양 고전에 들이밀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신 서양 이론이라는 게 서양 학자들이 고전을 재해석한 결과거든요. 그런데 한국 학자들은 새로운 서양이론이 나오면 무조건 쫓아가잖아요. 고전에 대한 엄격한 이해를 바탕에 두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새로운 사상을 만들 수 있다면, 그런 일이 줄어들겠지요. 서양 고전에 대한 이해는 우리만의 사상을 만들어나가는 길입니다.”

여러 철학자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은 건조하고 간결하지요. 재미는 덜하지만 학문적 엄격함에 비중을 두는 태도에 마음이 끌렸어요.” 그가 길어낸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수는 논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격적인 학문을 하기 위한 하나의 토대로서 논리학의 기초를 마련했어요. 논리학은 인문학적 사유 능력을 기르는 학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재현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어떤 주제를 놓고 정보를 모아 서로 토론하고 집단이성을 통해 오류를 걸러내어 올바른 방향을 찾는 일련의 과정은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이 추구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견뎌내는 사람, 즉 논리적으로 훈련이 잘된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고요.”

그는 인문학 고전을 번역·주해하는 일의 고단함에 대해서도 말했다. “학술진흥재단이 그나마 인문학자들을 후원해왔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지원 규모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즉시 결실이 나와야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문학의 유용성은 장기적으로 나타나지요. 그래서 국가적 투자가 필요한 겁니다.”

스스로를 ‘아리스토텔리안’이라고 말하는 김 교수는 앞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론 전서·후서>도 번역할 예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큰 얼개를 국내에 소개하는 작업의 마무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는 말을 통해 이뤄지는 정치 과정입니다. 어떤 주장을 어떤 형식에 담아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지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배웠으면 합니다.” 논리가 아닌 힘이 지배하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변증론>의 가치는 더욱 새롭다.(안수찬 기자)

08. 07. 24.

P.S.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이해하는 데 참조가 될 만한 기사도 옮겨놓는다.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헤르메스의 빛으로'의 한 꼭지이다.

경향신문(07. 11. 17) [헤르메스의 빛으로](43)추론(쉴로기스모스,syllogismos)의 발명

인간은 특별한 동물이다, 로고스가 있으므로
“앞을 내다 볼 줄도 알고, 똑똑하며, 다채롭고, 날카로운 동물. 기억할 줄도 알고, 이성(ratio)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는 동물. 우리는 이를 인간이라 부른다. 가장 높은 신은 바로 이 동물을 돋보이는 조건 속에서 태어나게 했다. 수많은 종류의 생명체와 자연물 가운데서 이성과 생각을 나눠가진 단 하나의 존재. 다른 모든 것들에는 그런 것이 없다. 인간 안에, 아니 모든 하늘과 땅 속에 이성보다도 더 신비로운 것이 있겠는가? 이성이 활짝 피어나 완성될 때, 그것을 지혜(sapientia)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이성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 이성이야말로 인간에게도, 그리고 신에게도 있는 것이기에, 이성은 인간을 신과 함께 묶어준다.”

이성적인 신이 이성적인 존재로 인간을 태어나게 했으며, 이성을 통해 인간은 신에게로 곧추 솟아올라간다는 이 말, 키케로의 말이다. 그 이성으로부터 법(ius)과 법률(leges)이 인간에게 생겨났다고 한다(‘법률에 관하여’ 1권 22-23). 키케로(기원전 106~43년)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적인 자산, 특히 철학과 수사학을 열심히 익혀 로마에 소개한 인물이다. 그는 그리스말로 되어 있는 수많은 고전들과 그 속에 알알이 박혀 빛나는 고급 개념들을 라틴어로 옮겨놓음으로써 빈곤한 라틴어를 풍부하게 살찌운 로마의 최고 지성인으로 꼽힌다.

위의 글에서 그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으며, 인간에게 있으되 신으로부터 받은 신비로운 것, 그래서 인간과 신을 하나의 동아리로 묶어줄 수 있는 것을 이성이라 선포한다. 키케로의 생각은 로마에선 일찍이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특히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키케로가 말한 라티오(ratio)란 그리스말로는 로고스(logos)이기 때문이다(키케로는 로고스를 ‘생각하는 이성’을 뜻하는 ‘ratio’와 ‘생각이 이성에 맞게 표현된 말’을 뜻하는 ‘oratio’로 구분했다).

스토아학파의 사상 속에선 맑디맑은 불로 형상화된 신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로고스, 곧 이성이었다. 이성은 두 가지 일을 한다. 안에서 생각하기와 바깥으로 말하기. 신이 품은 생각은 세계로 펼쳐져 드러나며, 그래서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로고스적 존재이며, 로고스가 그어놓은 길을 따라 조화롭게 움직인다. 결국 세계란 신의 생각이 바깥으로 넘쳐 드러난 언어인 셈이다. 그 가운데 인간은 신을 쏙 빼닮았기에, 인간에겐 이성이 넘쳐난다. 넘쳐나 흘러나오는 것이 말이겠다. 말은 혼잣말(monologos)로 텅 비어 울리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나눔말(dialogos)로 공명(共鳴)할 때, 그 뜻을 이루어낸다. “말(oratio)의 힘, 그것은 인간 사회를 묶어주고 조절하는 가장 큰 힘이다.”(‘법률에 관하여’ 1권 27).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말은 한갓 말에 그치지 않고, 행위로 이어져 뭔가를 있게끔 이루어내는 힘을 뿜어내며, 감추어진 세계의 비밀을 드러낸다.

대화가 필요하다, 진리를 찾기 위해
그리스말로 진리를 아레테이아(aletheia)라 한다. 이 낱말에는 감추어져 있던 것(lethe)이 벗겨져(a-) 환하게 드러난다는 뜻이 깃들어 있다. 이 말과 관련해 철학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인간의 영혼이란 모든 것이 환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진리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진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망각의 레테(Lethe)강을 건너오며 육체를 옷 입음으로써 진리를 잊고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리에 대한 간절한 사랑(philosophia)으로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영혼을 깨끗하게 해방시키려고 한다면, 잊혀진 옛 기억을 되살려(anmnesis) 진리를 밝혀낼 수 있다(플라톤 ‘파이돈’ 72e). 그런데 망각의 늪에서 벗어나 진리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되살려낼 수 있을까? 그것은 올바른 말(logos)을 주고받는 가운데(dia-) 잘못된 생각을 버려나가는 참된 대화(dialogos)를 통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들에겐 오로지 진리를 찾아 드러내 밝혀나가는 대화의 기술(dialektike)이 필요하다. 그것을 열심히 실행하며 철학을 하였던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뭔가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찾아가 대화를 통해 논파(elenchos)하던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기존의 주장과 논의를 해체하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방법을 이어받은 플라톤은 이 논파의 기술을 좀 더 발전시켜 진리의 세계를 찾아가며 새롭게 구축하는 생산력을 가진 대화의 방법, 곧 디아렉티케로 체계화시켜 나갔다. 그는 참되고 영원한 이데아의 세계와 잠시도 쉬지 않고 숨가쁘게 변화하는 현상의 세계를 나누었다. 그리고 현상세계에 대한 감각을 통해 얻은 어렴풋한 한갓 의견(doxa)에서 벗어나 로고스를 통해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참된 지식(episteme)을 얻기 위한 철학적 방법을 다듬어내었다. 그것이 바로 말(logos)을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진리를 드러내는 대화의 기술, 곧 변증술(辨證術, dialektike)이었다.

그런데 플라톤의 학원에서 20년간 철학을 공부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이 갈고 닦은 길에 이어져 나가는 새로운 길(methodos)을 마련한다. “이 작품의 목적은 어떤 문제가 우리들에게 던져지든지 그것에 관하여 상식(endoxa)으로부터 추론할(syllogizesthai) 수 있으며, 또 우리 자신이 하나의 주장(logos)을 밀고나려고 할 때, 어떤 모순도 일으키지 않고 말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변증론’ 100a18-21). 이때 상식으로부터 출발하는 추론이 바로 대화의 기술과 관련된 추론(dialektikos syllogismos)이다.

추론하라, 세계를 건져 올리기 위해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낱말이 있다. 바로 쉴로기스모스(syllogismos)다. 추론(推論)이라 번역되는 이 낱말은 원래 로고스(logos)들을 함께(syn-) 엮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매우 자부심을 갖고 아끼는 발명품이다. 말과 말을 엮어 말끔한 말의 묶음(syllogismos)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추론(syllogismos)도 하나의 말(logos)인데, 그 속에서는 어떤 주장들이 이미 전제로 놓여 있고, 그 주어진 주장들과는 다른 어떤 주장이 바로 그 주어진 주장들에 의해 반드시 결론으로 따라 나온다.”(‘분석론 전서’ 24b19-21). 주어진 전제로부터 반드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결론을 끌어내는 방법, 그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낸 추론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국민의 참된 신임을 얻는 사람(B)이 한 국가의 지도자(A)가 되어야 한다’라는 주장과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사람(C)만이 국민의 참된 신임을 얻을 수 있다(B)’라는 주장이 주어졌을 때, 이로부터 반드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사람(C)만이 한 국가의 지도자(A)가 되어야 한다.’ 이 결론은 앞에 전제로 주어진 두 개의 주장이 참이라고 합의되는 순간, 언제나 참일 수밖에 없다. 이 추론은 ‘B이면 A이다. C이면 B이다. 따라서 C이면 A이다’라는 틀을 가지고 있는데, 이 틀은 논리적으로 언제나 타당하다. 말과 말을 엮어 반드시 타당한 추론의 망을 촘촘히 짜낸다면, 그것으로 세계를 차곡차곡 기술해나간다면, 세계의 모습을 오롯이 건져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품고 있던 철학적 야망이었다.

위에서 보았듯, 가장 기본적인 추론은 대체로 2개 전제와 결론으로 이루어진다. 전제와 결론은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지는데, 문장은 주어와 술어로 나뉜다. 주어와 술어를 이루는 낱말들은 그 낱말들이 가리키는 대상이나 의미하는 특징에 따라 실체(ousia)로 구분되거나, 몇 개의 술어의 모둠, 이른바 범주(範疇, kategoria) 안으로 나뉘어 모여든다. 거꾸로 말하자면 하나의 주어에 모둠 속의 낱말이 술어로 나와 붙어 문장을 만들고, 문장들이 전제와 결론의 형태로 묶여서 추론을 만든다. 이 순서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추론의 방법을 짜임새 있게 정리하였다.

그는 우선 낱말들의 모둠을 가다듬는다(‘범주론’). 그리고 낱말들이 엮여 이루어지는 문장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명제론’), 두 개의 문장을 각각 대전제와 소전제로 두고, 두 개의 전제를 이어주는 매개항을 통해 두 전제를 묶어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추론, 이른바 삼단논법의 타당한 틀을 16개로 압축해서 보여준다(‘분석론 전서’). 그리고 타당한 추론의 틀을 세 가지 분야에 적용한다. 가장 먼저, 참된 것으로 인정되는 전제를 내세워 그로부터 필연적인 결론을 끌어내어 진리를 드러내(apo-) 보이는(deixis) 학문적인 논증(apodeixsis)에 새로운 추론의 틀이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분석론 후서’). 그 다음에는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지며 상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진리에 이르는 대화의 기술(dialektike)에도 이 추론의 방법을 적용한다(‘변증론’). 거기에 덧붙여 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이는 거짓 추론을 낱낱이 분석하여 그 본색을 드러낸다(‘소피스트적 논박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여섯 권의 책들은 세계를 파악하는 철학적 수단이요 도구라는 뜻에서 ‘오르가논(Organon)’이라는 이름으로 나중에 다른 사람(아마도 안드로니코스)에 의해 시리즈로 묶인다. 이는 아프로디시아스 출신의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로기케(logike)라고 불리게 되는데 논리학(logic), 곧 말(logos)의 타당성이 성립하는 원리를 다루는 기술(-ike)이라는 뜻이겠다. 서구 합리주의 전통의 핵심을 이루는 논리학은 이렇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많은 학생들이 이제 다시 열심히 논술을 준비해야 하는 오늘 우리들의 풍경 속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손길이 닿아있는 셈이다.(김헌|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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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7-2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고전을 묵묵히 공부하고 번역하는 사람들이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죠.당장은 눈에 뜨이지 않지만 이런 사람들 덕분에 학문이 발전한다고 봅니다.

로쟈 2008-07-26 00:42   좋아요 0 | URL
요즘은 그래도 관심과 처우가 예전보다는 나아진 편이죠. 대신에 다른 인문학 '놀박'들은 학문에 기여한다는 소리도 못 듣고...^^;

노이에자이트 2008-07-2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몇년전에 강정인<소크라테스,악법도 법인가?>(문학과 지성사)를 읽고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란 말을 안했다는 사실을 안 뒤에 아연실색.교실에서 가르치는 거짓말이 얼마나 해독이 큰가를 깨닫게 되었죠.그런데 요즘은 교과서에서 그런 거 뺐나봐요.다행이죠.

로쟈 2008-07-27 16:31   좋아요 0 | URL
박홍규 교수의 책에서도 나왔던 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강정인 씨 책이 나온지 한참 뒤에 한 10년 후 쯤?소크라테스 재판에 대한 책들이 연이어 나오더군요.90년대 중반 경 이시돌 스톤의 <소크라테스의 비밀>이 나왔는데 그땐 별로 반응이 없었어요.박홍규 씨는 우상파괴 식 글쓰기의 상징이죠.카뮈 평전에서도 이화영 씨를 사정 없이 비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진 마이클 왈쩌의 카뮈 옹호도 시원하게 두들기더군요.하하하...통쾌하긴 한데 너무 공격적이라 좀 염려는 되더라구요.저야 학계에 없으니까 상관없지만 같은 동업자를 너무 공격한다는 염려...저렇게까지 해도 되나...하는...

로쟈 2008-07-27 22:42   좋아요 0 | URL
'김화영' 교수를 공격했나 보군요. '동업자'는 아니죠. 불문과 교수하고 법대(교양학부로 옮기셨나) 교수니까요. 승진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7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법과 교과과정도 엄청나게 두들기더라구요.사실 우리나라 법대 교과과정을 속칭 수험법학이라고 하잖아요.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박교수 입장에선 한심하기도 할 거에요.
그건 그렇고 인문학 놀박이 뭔가요?

로쟈 2008-07-27 23:22   좋아요 0 | URL
'노는 박사'를 놀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27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서글픈 단어군요.우리나라도 중고교 때 참고서나 교과서 외의 책을 많이 읽혀서 대학에 와서는 교양과정에 세계의 명저 읽고 독후감내는 그런 과정을 필수로 해야 하는데... 사실은 부모나 교사들도 학창시절에 교과서와 참고서만 읽었으니...저도 마찬가지구요.정말 억울해요.
 

노트북을 끄려다가 얼떨결에 읽게 된 지난주 시사인의 기사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42). 스크랩해놓는다고 하면서 깜박 잊고 지나갔었다(얼마전 번역/오역과 관련한 글을 쓸 일이 있었는데, 미리 사건이 터졌다면 흥미로운 사례로 들 뻔했다). 생각난 김에 챙겨놓고 눈을 붙여야겠다.

시사인(08. 07. 15) 한국 번역사에 길이 남을 일

만세. 오역하면 처벌된다. 학식이 드높으시고 글공부의 깊이가 한량없으신 검사 다섯 분이, 무려 다섯 분이, 문장 하나하나의 오역을 이 잡듯이 뒤져주신다. 온갖 오역과 짜깁기 번역에 오랫동안 신음해온 우리 지식계에도 드디어 서광이 비치려나? 초고 제출 요구에다 압수 수색까지 해서 엉터리 번역자와 출판사를 아주 요절을 내주시려나?

번역 일을 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이번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말이지 인상 깊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의 마지막 대사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니까”라고 번역해낸 것이 가장 유명한 명번역이었다면(참고로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고도 한다), <PD수첩> 오역 논란도 한국 번역사에 길이 남을 일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설마 이걸로 처벌받는다면 말이다.

광우병에 걸린 것이 아닌지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Actually I could not understand how my daughter could possibly have contracted…the possible…human form of mad cow disease.”

즉, “인간 광우병이라니, 그런 희귀한 병이 대체 어쩌다 우리 딸한테 생겼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라는 뜻이다(방송 내용으로 보아 이 말 뒤에는 “농장 주변에 간 적도, 외국 여행을 간 적도 없는데”라는 구절이 덧붙었다). <PD수첩>은 “사실은 내 딸이 인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번역한 자막을 내보냈다.

그런데 검찰은 “우리 딸이 광우병에 걸렸을 리가 없다”라고 번역했어야 마땅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처벌해야겠다고 한다. 하늘에 떨어지는 해를 보며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처벌한다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만일 누군가가 “폐암이라니 정말 모를 일이다. 우리 남편은 평생 담배도 피워본 적 없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남편이 폐암에 걸렸을 리가 없다”라고 해석해서 알아들어야 하는가? 게다가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번역하면 처벌받아야 하는가?

삼성 특검도 검사 한 명에 검사보 세 명이었는데
물론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논조로 내용을 몰고 가긴 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라면 ‘한국 경제 대폭락 다가온다’ ‘중국 올림픽 분위기 썰렁’ ‘아침 걸러도 살 안 쪄’ ‘촛불시위 과격 양상’ ‘해삼 멸종 위기’ 등등의 기사 작성자도 죄다 조사하고 처벌할 일이다. 마음먹고 보면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굳이 한쪽 면만 부각시킨 ‘왜곡’을 저질렀으니 말이다.

<PD수첩> 수사는 명예훼손 건이라 한다. 정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의 명예를 어마어마하고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떨어뜨린 ‘미국 동물성 사료금지 오역사건’부터 수사하라. 검사 다섯 명을 배치해서. 번역 초고 제출을 요구하고. 불응하면 농림수산식품부 청사를 압수 수색해서라도. 누군가가 그랬다. 삼성 특검도 검사 한 명에 검사보 세 명이었는데, 번역을 잘했니 못했니 하는 일에 검사를 다섯 명이나 투입한다고.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최내현_월간 판타스틱 발행인)

08.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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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7-23 08:48   좋아요 0 | URL
검사들이 고시공부하느라 영어를 못했나보지요...그래서 5명이 필요한가봐요..지금 사전 뒤적이고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러니까 맹박군이 '영어공용화'이야기를 꺼냈나봅니다.
역설적이게도 온 국민이 영어에 능통하다면 저 문장을 가지고 쪽팔리게 자동차면허를 제외하고 최고의 국가고시라고 하는 사시출신 검사5명이 머리대고 앉아서 사전 뒤적일 필요도 없을텐데...

하여간 저도 영어를 잘하고 싶어요.예전에 좀 탄력받았을 때 계속했으면 좋았을 것을.직무상관도가 영 떨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안하게 되요. 요즘은 다시 관심이 갑니다. 전 우리 아이도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어요.(이거 또 오해받기 좋겠지만...) 외국애들이랑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하고,또 영어로된 어려운 책도 따로 번역없이 술술 읽어나가고...더 넓고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영어학원 다닐때 수업시간에 무식한 영어선생이랑 무식한 영어잘하는 학생이 무식하게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제 생각은 100이나 그걸 50밖에 설명하지 못하니까 돌겠더라구요.

며칠전부터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신곡 강의>를 보고 있는데 다시금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느낍니다. 여러 판본의 번역문을 짧게 비교해주고 있어서지요.그걸 읽다보면 번역의 미묘한 차이가 주는 미적 감각의 다층적인 차이에 대해 짧은 감탄을 쏟습니다. 모든 국민이 다 영어를 잘할 수 없으니 번역가를 키운다는 일본의 방향성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대안이 아닐까 합니다.

로쟈 2008-07-23 21:55   좋아요 0 | URL
이마미치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일본 인문학이 만만찮게 느껴지지요. 우리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노이에자이트 2008-07-23 23:00   좋아요 0 | URL
음...요 문장을 제가 아는 울프 여사에게 물어봐야겠네요.러시아어도 하는 캐나다 여성이랍니다.

로쟈 2008-07-24 22:07   좋아요 0 | URL
한국어도 잘해야 하는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5 17:22   좋아요 0 | URL
물어본 결과 검찰의 해석은 틀렸고 피디수첩 것도 맞는 것은 아니라는데 영어가 딸려서 울프여사의 말을 잘 못알아 먹었어요.영어 그만 두고 예전처럼 한자 강의를 해야 하나 봐요.이렇게 영어가 어려워서야 원...가정법이 어렵긴 어렵네요.영어 하기 싫어...

로쟈 2008-07-25 17:34   좋아요 0 | URL
이도저도 안 맞으면 재판 오래가겠군요...
 

여전히 이명박 정부의 국정수행을 지지한다는 십 몇 퍼센트의 MB마니아들을 제외한다면 대다수 국민들에게 현시국은 한심하거나 더러운 세상이다. 개인사로도 다들 바쁜 와중에 나라 걱정까지 하려니 없던 지병까지도 생기겠다(얼마전부터 나는 음식물을 삼키는 일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렇다고 딱히 '수'가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시국의 '최전선'에 있는 시사주간지 두 편집장의 권두언을 나란히 읽게 됐다. '수'가 없으면 '법'이라도 필요한지라 챙겨놓는다.   

한겨레21(06. 07. 21)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나는 시를 짓겠어요.”

허난설헌이 말한다. 여인이라 천대받고 가난한 여인은 더 천대받는 세상.

“용모인들 남에게 떨어지리오/ 바느질 길쌈 솜씨 모두 좋은데/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탓에/ …온종일 창가에서 베만 짠다네/ …베틀에는 한 필 베가 짜였는데/ 뉘집 아씨 시집갈 때 옷감 되려나// 손으로 가위 잡고 가위질하면/ 추운 밤 열 손가락 곱아오는데/ 남 위해 시집갈 옷 짜고 있건만/ 자기는 해마다 홀로 산다네.”(‘가난한 여인을 읊음’)

기방에 빠진 남편은 가족을 돌보지 않고 모진 시집살이 속에 두 아이마저 잃은 그는 스물일곱 연꽃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문집은 명나라와 일본에서까지 이름을 얻었다.

“나는 칼을 들겠소.”

홍경래가 말한다. 출신에 따라 입신 길이 열리고 닫히는 세상.

“당일 (과거시험) 방에 이름이 오른 자들을 보니 거개가 귀족의 자질(子姪)들이었다. 경래의 노한 눈에서는 불꽃이 일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감히 위를 범해 세상을 바꿀 결심을 각제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홍경래전>)

난을 일으켜 여러 고을을 함락시키고 창고를 열어 백성의 배고픔을 달래며 추호도 백성을 범하지 않았으나, 정주성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이 싸움에서 관군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2천 명을 죽였다.

“나는 책을 읽으며 농사를 짓겠네.”

성호 이익이 말한다. 이해관계에 얽매여 파당을 짓고 돈과 힘을 차지한 쪽이 상대방을 찍어내는 세상.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고, 폐단이 생기면 반드시 변혁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는 통상적인 이치이다.” “왕도정치는 전지(田地)의 분배를 근간으로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구차할 뿐이다. 분배가 균등치 못하고 권리의 강약이 같지 않은데 어찌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당쟁에 휘말려 부친이 숨지고 형마저 극형을 당한 뒤 시골로 내려가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빈궁하게 살았으나, 그의 철학은 “추구하는 바가 공자·맹자에 접근했다”는 정약용의 상찬처럼 조선 후기를 빛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이번호 기사들을 읽으면서 혹 더러운 세상에 탄식하고 정신의 이물감에 잠 못 이룰 독자들을 위해, 바르지 못한 시대에 처해 선현들이 짚어간 길 몇 가지를 소개했다. 저마다 풍진 세상을 만났으나 마음만은 더럽히지 않고 의기를 꺾지 않았으니, 연꽃같이 피어난 시심은 거룩하고 의분 담긴 칼끝은 서늘하며 호미로 새긴 논지는 길이 빛날밖에.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더 가혹한 세상이었고, 그들은 우리보다 더 걸출한 인물이었을 게다. 참신한 21세기의 상상력으로 각자 처지에 맞는 대처법을 궁리해보시길. 이름하여,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최근까지 <한겨레21>에 연재된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이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한겨레출판)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 칼럼의 인용 부분은 모두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다.(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시사IN(08. 06. 30) 이명박 정부에서의 절망 탈출법

참 오랜만에 ‘구악’이라는 말을 다시 여러 군데에서 듣게 된다. 구악이란 군부독재 시절부터 철저하게 권력과 사주의 편에 서서 곡필을 휘둘러온 퇴물 기자를 가리키는 말로, 일종의 언론계 전문 용어다. 촌지와 향응 문화 속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은 양지만 골라 다녔지만 민주화와 함께 서리를 맞아 역사에서 퇴장하는가 싶었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언론계 기관장 자리를 노리고 떼를 지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경탄할 만한 탐욕을 가졌다.

기자 시절 이런 구악을 상사로 모시게 되면 지옥을 맛본다. 전 직장에서도 언론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한 사람과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제정신을 갖고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는 지시만 할 줄 알지 소통이란 걸 몰랐다. 언론도 기업이기 때문에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으려면 권력이나 대기업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고 지치지도 않고 주절거렸다. 기자들이 항의하면 그는 마지못해 사과하는 척했다가 급한 소나기만 피하고 나면 어느새 시치미 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그와 일하면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고 나름으로 연구를 많이 했다. 도가 수행자가 한다는 유체이탈도 자주 써먹었다. 정신을 육체에서 분리해 회의실 천장을 날아다니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회의 장면을 지켜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와 울분이 가라앉곤 했다. 그와 지낸 몇 년 동안 유체이탈 분야에서 상당한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불행에서 벗어날까 책도 많이 뒤져봤는데 소득은 별로 없었다. 과학자들이 제시한, 절망에서 놓여나는 구체적인 방법은 창의력을 발휘하라든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라는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시간이 갈수록 극도의 분노와 절망을 표출하는 이들이 자꾸 늘어만 간다. 얘기를 들어보면 구악과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증상과 비슷하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위장 반성했다고 분노하고, 그리고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던 일을 계속하려고 시도하는 걸 보며 절망한다. 이제 100일밖에 안 지났는데 남은 4년 몇 개월을 어떻게 견뎌내느냐고 하소연한다.

이순신 장군 동상 밑에서 유체이탈을 해 ‘명박산성’ 뒤에 웅크린 대통령의 초라한 모습을 지켜본다면 위안이 되려나. 매일 밤 창의력을 발휘해 공권력을 희롱하고 경찰버스를 끌어내느라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걸 보면 시위대는 이미 절망 탈출법을 체득한 것 같기도 하다.(문정우 편집국장)

08. 07. 22.

P.S. '명박산성'이 위키백과에도 등재돼 있다(http://ko.wikipedia.org/wiki/%EB%AA%85%EB%B0%95%EC%82%B0%EC%84%B1). '이견'이 제기되어 '삭제 토론'중이라고 하는데, 그나마 누리꾼들의 이런 수고가 요즘은 '절망' 속에서도 사는 재미를 잠시나마 느끼게 해주는군. 몇 군데 둘러보다가 찾은 오늘의 굿뉴스와 배드뉴스. 나쁜 쪽은 너무  많아서 꼽을 수도 없다. 단적으로, 외국인들이 31일째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는 소식(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0807/h2008072202484984010.htm). "지금까지는 미국경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로 인해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이젠 한국경제(경기침체+기업실적악화)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한국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별로 전망이 없다는 걸 그들은 아는 모양이다. 그런 가운데 좋은 소식이란 '정치인DB'가 구축될 예정이라는 것(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7220023375&code=940401). "의정활동 내용과 이력, 발언 등을 기록한 정치인 온라인 이력 시스템을 만드는 시도다. 촛불정국에서 드러난 정치권의 무능력에 실망한 대학생들이 네티즌 손으로 직접 정치인 자료를 축적하고 평가할 필요성을 느낀 결과물로 나온 것이다." 당장 다음 선거에서부터라도 활용된다면 좋겠다. 국민들의 '닭짓'을 중단시켜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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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7-22 09:21   좋아요 0 | URL
참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_-

로쟈 2008-07-22 10:36   좋아요 0 | URL
거기에 공부할 건 왜 그리 많은지요. 요즘은 독도사에다 엠네스티에 대해서까지 학습하고 있으니...

연두부 2008-07-22 11:54   좋아요 0 | URL
헉 제 말이 바로 이거 거든요...요즘은 아침에 출근해서 인터넷 클릭하기가 두렵습니다....게다가 어쩌다 어제먹은 술이 덜깬 상태이면..분노와 참담함에 눈물바람까지...쩝

로쟈 2008-07-22 22:43   좋아요 0 | URL
자초한 부분도 없지 않으니 더 참담하지요...

수유 2008-07-23 18:24   좋아요 0 | URL
나는 책을 읽으며 농사를 짓겠네..
비록 공맹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그러고 싶네요, 정말로. 농사는 못지어도 밥은 지으면서.

로쟈 2008-07-23 21:56   좋아요 0 | URL
곧 방학이시네요.^^

수유 2008-07-24 12:13   좋아요 0 | URL
이번 방학은 꽝입니다. 이미 방학은 했지만 오늘도 학교이라나요.;;

로쟈 2008-07-24 22:08   좋아요 0 | URL
에어콘은 나오지 않나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3 22:49   좋아요 0 | URL
2005년도 독도파동 때 상당한 분량을 기록해 놓은 일기를 보니 어쩌면 올해와 똑같은지...그 당시 이미 허무맹랑한 제안으로 밝혀진 것을 올해도 똑같이 읊어주시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대체 왜 이럴까요.

로쟈 2008-07-24 22:07   좋아요 0 | URL
그래서 DB가 필요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25 17:33   좋아요 0 | URL
제가 독도의 식생에 대해 조금 알아요.거기 식수로 쓸 수 있는 샘이 두갠가 있는데 지금 독도경비대 마시기도 빠듯하대요.그런데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자면서 무슨 호텔을 짓자, 심지어 주택단지를 짓자 하는데, 누가 거기 와서 호텔 종업원을 하며 주민이 있으면 학교도 지어야 하는데...그리고 거기는 고속버스나 비행기 타고 가는 곳도 아니고 악천후와 높은 파도때문에 일 년에 갈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돼요.

로쟈 2008-07-26 00:44   좋아요 0 | URL
그냥 다 '쇼'라고 해야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6 22:57   좋아요 0 | URL
쇼가 재미가 있어야 쇼지요.이거 원 짜증나서...

로쟈 2008-07-27 16:31   좋아요 0 | URL
가증스러운 쇼들도 있으니까요...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7월 21일)'이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다루고 있다. 그가 태어난 날이 1911년 오늘이어서이다. 한데, 두 종의 국역본 가운데, 커뮤니케이션북스판의 이미지를 올려놓고 있어서 예전 교수신문의 고전번역비평을 떠올리게 됐다. 내 기억에는 민음사판이 더 추천할 만한 번역이라고 제시됐었기 때문이다. 다시 찾아보니 그렇다. 참고삼아 챙겨놓는다(<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2>(생각의나무, 2007)에 수록돼 있다).

한국일보(08. 07. 21) 미디어의 이해

1911년 7월 21일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명비평가인 마샬 맥루한이 태어났다. 1980년 69세로 몰. 맥루한은 마니토바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다가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캠브리지대에서 엘리자베스 시대의 시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영문학 교수로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에서 20여년간 대중문화를 강의했다. 지금은 일상 용어가 된 ‘지구촌’이나 ‘정보시대’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미디어의 이해>는 맥루한의 이런 공부의 배경-테크놀로지와 문학과 문화비평-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던 책이다.

<미디어의 이해>가 출간된 것은 1964년이다. 반향은 대단했고 맥루한은 스타 대접을 받았다. 이듬해 뉴욕헤럴드트리뷴은 맥루한을 “뉴턴, 다윈,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파블로프 이후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꼽았다. 1967년 뉴스위크는 학자로는 드물게 그를 표지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한의 유명한 명제는 이 책의 서론 제1장이다. 그는 이어 나르시스 신화를 빌어 미디어 시대 인간의 운명을 말한다. “나르시스는 혼수상태나 감각 마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narcosis’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 신화가 말하려는 핵심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확장한 것(나르시스에게는 거울 같은 물)에 갑자기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미디어의 이해>의 부제가 바로 ‘인간의 확장’이다. 맥루한은 음성언어부터 돈, 시계, 사진, 신문, 자동차, 광고, 게임, 텔레비전, 무기 등 26가지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물로 보고 독특한 예언적 표현과 비유, 고전 문학과 현대 대중문화를 종횡하는 현란한 인용과 분석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미디어로 본 문명사이기도 하다. 이 책이 미디어 전공학과의 필독서를 넘어 현대의 고전으로 읽혀야 하는 이유다. 영화 ‘매트릭스’의 광고카피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였던가.맥루한은 40년 전에 이미 그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대로 된다.”(하종오기자)

교수신문(06. 11. 24) 고전번역비평(53)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 국역본은 두 종류가 있다. 박정규 역(커뮤니케이션북스. 1997)과 김성기·이한우 공역(민음사, 2002)이 그것이다. 그 외 완역이 아닌 초역이 있었으나 지금은 절판돼 찾을 수 없다. 이글을 위해 사용한 영어 원본은 『Understanding Media』(MIT Press, 1994. 초판 1964년)이다. 박정규 역과 김성기·이한우 역 사이에는 상당한 시차가 있고 그래서 우리는 후자가 전자에 비해 보다 발전된 번역본일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논리적인 추론일 뿐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먼저 이 책의 번역과 관련해 특별한 성격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것은 ‘미디어의 이해’의 원저자의 글이 난삽하고 의미가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런 글을 번역하는 경우 원천적으로 옮긴 글 또한 난삽하고 그 의미가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맥루한의 글은 구술적이다. 즉 명석하고 분명함과는 거리가 먼 反개념적, 反분석적, 反기계론적인 것이 그의 글이다. 맥루한이 말한 것처럼 번역을 기계론적 작업이라고 한다면 그의 이야기는 번역에 적합한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문은 그의 원문을 읽는데 도움을 주는 참고서로서의 역할이 더 어울릴 수 있다. 번역본만으로는 원본의 의미전달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맥루한의 저서의 경우는 역자의 적절한 해석과 의역이 불가피한 부분이 꽤나 많다. ‘미디어의 이해’는 꽤 두꺼운 책이다. 이를 모두 언급하기는 힘들다. 몇 가지 주된  주제를 중심으로 비교 평가하고자 한다.



꽤나 난삽하고 애매한 책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는 맥루한의 가장 유명한 메타포 중의 하나다. 이 말은 책 ‘미디어의 이해’ 첫 장에 등장한다. 그 첫 구절을 박정규는 이렇게 옮겼다. “우리의 문화는 모든 사물을 관리하기 위해 이들을 분할하고 구분하는데 숙달되어 있으므로 이제 실제로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것을 납득하게 되면 다소 충격이 될 것이다.”(23쪽) 김성기 등의 번역은 이렇다. “모든 사물들을 통제의 수단으로 분리해서 보는데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는 서구와 같은 문화 내에서는 작용면에서나 실제적인 면에서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주장이 종종 충격으로 여겨진다.”(35쪽) 

이 문장의 원문은 “In a culture like ours, long accustomed to splitting and dividing all things as a means of control, it is sometimes a bit of a shock to be reminded that in operational and practical fact, the medium is the message.”(7쪽)이다. 이 문장(원문)의 전언(傳言)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 시대의 사물이해 방식은 이분법 혹은 분절적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사물을 지배 통제하기 위한 것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은 이분 혹은 분절이 아니라 통합적인 인식으로 이것은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적인 주장이다”하는 것이다.

원문의 내용을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박정규와 김성기·이한우 번역에 빠진 부분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원문의 의미를 보다 쉽게 전달하는 데는 후자가 더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두 번역문 모두 원문 없이 번역문만을 읽을 때 원문의 전언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데는 상당한 의문이 제기된다.

개념 번역, 암묵적 의미 살려야
다른 예를 보자. 여기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견된다. 다시 말해 번역문만을 갖고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 말이다. “That technologies are ways of translating one kind of knowledge into another mode has been expressed by Lyman Bryson in the phrase ‘technology is explicitness.’ Translation is thus a ‘spelling-out’ of forms of knowing. What we call ‘mechanization’ is a translation of nature, and of our own natures, into amplified and specialized forms.”(56쪽)

박정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옮겼다. “테크놀로지라는 것은 한 종류의 지식을 또 다른 양식으로 번역하는 방법이라고 라이먼 브라이슨(Lyman Bryson)은 말하면서 ‘테크놀로지는 명료함이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따라서 번역(translation)은 앎의 형태를 ‘분명하게 하는’것이다. 한편 우리가 ‘기계화’라는 부르는 것은 자연을, 또한 우리 자신의 속성을 증폭되고 전문 분화된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93쪽)

한편 김성기·이한우 역은 이렇다. “기술이 한 종류의 지식을 다른 양식으로 번역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라이먼 브라이슨 Lyman Bryson은 ‘기술은 명료화이다’라고 표현한바 있다. 따라서 번역이란 인식의 형식들을 ‘하나하나 판독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계화’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과 우리인간들의 본성을 증폭되고 특수화된 형태들로 번역하는 것이다.”(102쪽)

이들 사이에 다른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박정규가 “앎의 형태를 분명하게 하는” 것으로 옮긴 ‘a spelling-out of forms of knowing’을 김성기 본은 ‘인식의 형식들을 하나하나 판독하는 것’으로 옮기고 있다. 다른 하나는 ‘specialized form’을 ‘전문 분화’와 ‘특수화’로 옮긴 부분이다. 이들 두 가지 번역의 경우는 박정규 역이 김성기 역보다는 쉽게 그리고 보다 원문의 뜻을 충실히 옮기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양자 모두에게서 흠이 발견된다. 위 문장의 경우 ‘…nature, and of our own natures’의 경우 이를 단순히 ‘자연을, 또한 우리 자신의 속성을’으로 옮기는 경우 원문과 대조 없이는 거의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보다는 ‘사물의 원래 자연적인 상태의 것을, 그리고 우리 자신의 본래적인 속성들’ 정도의 의역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번역은 오역이나 불충분한 번역이 될 위험이 있다.

한 가지 더 작지만 큰 문제이기도 한 것이 있다. 그것은 “technology is explicitness.” 문장의 ‘explicitness’ 이다. 이를 두 번역본은 모두 ‘명료함’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explict’는 ‘tacit’의 반대되는 그래서 ‘암묵적’과 대칭적인 ‘명시적’-보이게 밖으로 드러낸다는 의미의-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할 것이다. 맥루한이 부단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 근대적 시각 문화라고 이해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암묵적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번역에 좀 더 세심해야할 이런 종류의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면 ‘Synesthesia or unified sense.’(315쪽)를 두 번역은 모두 ‘통일된 감각’(451쪽, 437쪽)으로 옮기고 있는데 이는 ‘통 감각 또는 통합감각’이 보다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오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의미전달이 왜곡되거나 전달이 잘 안되는 용어들은 많이 발견된다.

원서 대신하기 위한 노력
두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얻게 된 결론은 원문의 번역내용에 있어서는 양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큰 차이가 없게 된 이유는 아마도 김성기·이한우의 번역이 앞서 나온 박정규의 번역을 참조했고 그 보다는 두 번역 모두가 일본어 번역본-박정규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김성기·이한우는 참조했음을 언급하고 있다-에 의존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결과적으로 두 번역에는 모두 직·간접으로 일본어 번역이 많이 참조됐기 때문에 유사할 수밖에 없다고 추측된다.

이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번역본 가운데 어느 것 하나를 추천한다면 그것은 김성기·이한우의 번역이다. 그 이유는 번역 책으로서의 격식을 보다 충실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지만 박정규 역에는 없는 원본의 이름이나 참조서적, 번역과정 등에 관한 내용을 김성기·이한우의 역은 밝히고 있고 또 욕심에 차진 않지만 역자 주 그리고 L. H. Lapham의 해제용 서론 등이 첨가돼 독자에게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추천을 하면서도 맥루한 사상을 이해하는데 번역본이 원서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상당한 보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번역자가 전공이 다르기 때문인지 주석이 필요한 사항의 선택이나 용어 해석 등에 있어서 단절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이 훗날 보완되기를 기대해 본다.(임상원/ 고려대 명예교수·언론사상) 

08. 07. 21.

P.S. 요는 두 종의 번역본 모두 원서를 대신할 수 있는 수준은 아직 못된다는 것이겠다(유감스럽지만, 현재로선 다수 고전 번역서들의 현실이 그러하다). 내가 알기에 맥루한의 책은 <미디어의 이해> 외에 <미디어는 맛사지다>(열화당, 1988; 커뮤니케이션북스, 2001), <구텐베르크의 은하계>(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지구촌>(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등이 더 소개돼 있다. 그리고 해설서로는 조너선 밀러의 <맥루안>(시공사, 2001), 필립 마샨드의 <마셜 맥루언>(소피아, 2006), 그리고 데이비드 스테인즈 등이 엮은 <매클루언의 이해>(커뮤니케이션북스, 2007)가 눈에 띈다. 언젠가 적은 적이 있지만 맥루한의 책을 연달아 낸 출판사에서 그 강연과 대담을 묶은 책은 '매클루언의 이해'라고 내는 건 매우 엉뚱하면서도 기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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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2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7-22 10:32   좋아요 0 | URL
사실 대단히 미디어 친화적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미디어론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보화사회론 같은 것도 그렇구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 어렵네요...

로쟈 2008-07-24 22:06   좋아요 0 | URL
사실 어렵기로는 우리말이 더 어렵습니다.^^;
 

7월도 2/3가 지나갔지만 뒤늦게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꼽아본다. 개인사정으로 바쁘기도 했고, 또 굳이 독서 목록을 작성해봐야 읽을 만한 여유도 없기 때문에 미뤄졌다. 그냥 넘어가지 않은 건 해오던 관성이 있어서이고, 한편으론 생산적인 일을 할 형편이 아닐 때 '단순작업'으로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먼훗날 '기억'을 대신해줄 수도 있는 것이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웹진(http://www.kpec.or.kr/index.asp)을 참조하여 '2008년 7월의 읽을 만한 책'을 따라가보고 생각나는 책 몇 권을 덧붙인다.

 

 

 

 

1. 문학

작가 신경숙씨가 꼽은 이달의 책은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달, 2008)이다. '공선옥의 음식산문집'이란 부제를 살펴보지 않으면 소설집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요리책도 아니다. "행복한 만찬이라는 제목을 보고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은 요리책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딱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스물여섯가지의 먹거리들을 두고 요리라고 말하기는 좀 뭐하고 그야말로 생존의 냄새가 훨씬 더 가미된 음식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 책에서 공선옥이 소개하는 음식 만드는 법을 그대로 따라하기란 매우 쉬운 것 같은데도 사실은 “정서” 라는 노하우가 거의 80% 들어가 있기 때문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 대신 공선옥이라는 작가가 성장한 시기의 우리나라 농촌 먹거리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우리는 마치 인문학 공부하듯 따라가 볼 수 있다."라는 게 추천의 변이다.

순전히 '만찬'이란 제목 때문에 떠올리게 되는 책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 이자크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문학동네, 2003)이다. 이 역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나는 예고편밖에 보지 못해서 자세히 말하진 못하겠다. "프랑스 혁명의 물결에 떠밀려 노자매의 집에 몸을 의탁하게 된 프랑스 제일의 요리사 바베트가 차려내는 특별한 만찬이 가슴 가득 따뜻한 감정을 자아낸다"고 하므로 그런 만찬 그리울 때 잠시 침을 흘리며 한번 손에 들어봄 직하다.

그리고는 좀 포만감이 느껴질 때 대린 맥마흔의 <행복의 역사>(살림, 2008)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 700쪽이 넘는 분량이니 이 또한 아주 '포만한' 책이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주제의 책이지만 저자는 멀쩡한 역사학 교수이다. "철학, 역사, 심리학, 유전학, 스마일리 페이스를 망라하며, 행복 추구가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쾌락을 야기하고, 또한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예술과 건축, 시와 경전, 음악과 테크놀로지, 문학과 신화를 포함한 많은 출처에 기반을 두고, 인간의 행복에 대한 지적 역사를 제시한다."고 돼 있다.

 

 

 

  

2. 역사

역사분야의 책으로 이덕일씨가 꼽은 건 미국의 두 역사학자가 쓴 <히드라>(갈무리, 2008)이다. 이미 '헤라클레스의 칼과 히드라의 머리'(http://blog.aladin.co.kr/mramor/2072932)란 페이퍼에서 소개한 바 있다. 630쪽이 넘는 분량이라 이 역시 쉽게 엄두를 낼 만한 책은 아니지만 이열치열로 읽어볼 만하겠다. "<히드라>는 자본주의 발달사를 민족사로 바라봤던 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밑의 관점, 즉 다중의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서 ‘잊혀진 역사의 일부를 복원하면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히드라>의 저자인 피터 라인보우와 마커스 레디커는 자본주의 발달사를 ‘헤라클레스적인 세계화 과정에 여러 머리를 가진 히드라가 저항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소개글에서도 시사되지만, 네그리/하트의 <다중>(세종서적, 2008)과 세트로 읽을 필요가 있다. 마커스 레디커의 또다른 책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까치글방, 2001)와 하워드 진의 <살아있는 미국역사>(추수밭, 2008)도 곁들일 수 있겠고.



 

 

  

3. 철학

김상환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뜻밖에도 불교 관련서이다. 김달진 선생의 <쉽고 뜻깊은 불교 이야기>(문학동네, 2008). 김달진 전집의 한권으로 나온 책으로 사위인 최동호 교수가 엮었다. 추천의 변은 이렇다. "여래장(如來藏), 유심조(唯心造), 제행무상(諸行無常) 같은 불교의 가르침은 심오한 철학적 진리를 담고 있다. 이런 진리에 대해 수많은 학문적 논구가 있어 왔고 앞으로도 많은 저서가 쏟아질 것이다. 최근에는 데리다, 들뢰즈, 라캉 등과 같은 첨단의 서양 철학도 결국 이런 불교의 진리로 회귀하는 듯하여 학자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런 학술적 논구나 이론들은 높은 수준의 교양과 전문적 지식을 쌓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지만, 부처는 결코 어렵게 말하지 않았다. 도둑, 창녀, 거지, 과부 등과 같이 무지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쉽게 가르쳤다. 김달진 전집의 일부로 재출간된 <쉽고 뜻 깊은 불교 이야기>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제목 그대로라는 것.

불교에 관한 더 쉬운 책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강남의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현암사, 2006), 나카자와 신이치 등의 <불교가 좋다>(동아시아, 2007/2008), 그리고 우더신의 <한권으로 읽는 불교>(산책자, 2008) 등이 참고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데리다와 불교에 대한 학술논문들도 여럿 있지만 도둑, 창녀, 거지, 과부까지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4. 정치

손호철교수가 꼽은 정치분야의 책은 손석춘의 <주권혁명>(시대의창, 2008)이다. 물론 이 책의 최대 강점은 시의성이다. 해서, 추천자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헌법 1조로서 최근 광우병 관련 시위에 많은 시민들이 들고 나오는 표어이다. 국민들이 이 같은 표어를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를 중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 간접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과 관련해 <주권혁명>은 시의적절한, 주목할 만한 저서이다."라고 적는다.  

그런 시의성을 고려해서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박세길의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시대의창, 2008), 그리고 당대비평기획위원회가 엮은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산책자, 2008), 아고라 폐인들이 엮은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여우와두루미, 2008) 등을 꼽아볼 수 있겠다. 2008년 여름과 함께 기억될 책들이다.

 

 

 

 

5. 경제/경영

정운찬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정석주의 <30년 흑자경영>(티비, 2008)이다(간행물윤리위원회 웹진에는 저자가 '장석주'로 오기돼 있다). "<30년 흑자경영>은 일차적으로 경영사례집으로서 저자가 지난 30년간의 기업경영을 돌아보는 책이지만, 저자의 경영철학과 더불어 기업과 사회 전반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녹아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로선 읽어볼 일이 없을 듯하다. 그나마 손길이 갈 법한 경제경영서는 <문학에서 배우는 리더의 통찰력>(이다미디어, 2008)이나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1, 2>(21세기북스, 2007/2008) 같은 종류의 책이다. 하기야 내 주제로 말할 것 같으면 경영을 만나기는커녕 '인문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더 잦다. 단테 알리기에리처럼...

 

 

 

 

6. 사회 

사회분야의 책은 벨 훅스의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모티브북, 2008)다. 추천자인 김문조 교수에 따르면, "저자 벨 훅스는 미국의 저명한 페미니스트 사상가이자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로서, 흑인 여성 문제에 관한 많은 저작을 남긴 영문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이다. 이러던 그가 <계급에 대해…>에서 젠더도 아니고 인종도 아닌 계급이 모든 사회문제의 핵심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다." 나도 책이 나왔을 때 '갓 댐 아메리카!'(http://blog.aladin.co.kr/mramor/2107023)란 페이퍼에서 다룬 적이 있다(아직 손에 들어보지 못했지만).

"부제 ‘Class Matters’의 직역은 "계급이 문제다“인데 번역서 제명을 지나치게 비틀었다고 생각하며 인용된 책자의 번역에도 드문드문 생소한 대목이 발견되나, 총체적으로 유려한 번역이 진의를 잘 살려 원전의 가치를 배가시키고 있다. 대운하, 광우병 논쟁 등으로 산만해진 우리 의식을 새로이 가다듬을 수 있는 예사롭지 않은 책자로, 크고 넓게 생각하기를 원하는 독자들께 자신 있게 권한다."는 추천의 변을 읽으니 마음이 조금 동하는군. 참고로, 벨 훅스가 엮거나 지은 책으론 <행복한 페미니즘>(큰나, 2002), <사랑의 모든 것>(동녘, 2004), <평화 이야기>(황금비늘, 2007) 등이 더 소개돼 있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의 복수>(세종서적, 2008). <가이아>(갈라파고스, 2004; 김영사, 1995)의 후속작일 텐데,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행성의사를 자처하는 저자인 제임스 러브록은 1970년대 ‘가이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를 내놓으면서 생물들이 지구의 대기권·해양·대륙·암석 같은 무생물적 환경에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자기조절 기능을 갖춘 생명체다. 하지만 이제 지구온난화로 가이아는 자기조절기능을 잃고 지구생명체를 말살시킬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고 경고한다." 내 생각으론 가이아가 복수하기도 전에 인류가 자멸할 확률이 더 높아보이지만...

한편, 그러한 경고가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회의적 환경주의자' 비외른 롬보르의 <쿨잇>(살림, 2008)도 이번에 출간되었기에 나란히 읽어봄 직하다. 롬보르는 문제의 진단 못지 않게 그 해결방안(=해결비용)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하는데, 그에 따르면, "일부 정치가와 환경 전문가들을 통해 형성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하게 치우쳤다. 지구 온난화를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이산화탄소를 조절하는 데에만 집착한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게 부분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주 관심사는 분명히 인간과 환경의 안녕을 최대한 증진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그러려면 다른 많은 요소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제목만 보자면 그의 최신작도 기대가 된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이주은의 <그림에, 마음을 놓다>(앨리스, 2008)이다. "‘그림’하면 주변에는 이름난 명화들에 대한 설명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마음을 내려놓는 그릇으로의 그림을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에는 “언젠가 나도 이런 순간이 있었지“를 상기시키는 그림들이 담겨있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말 그대로, '마음 놓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 미술애호가인 김지은 아나운서의 <예술가의 방>(서해문집, 2008)도 같은 종류의 책이겠다.

하지만, 내가 이번 여름에 읽겠다고 도서관에서 원서와 함께 대출한 건 아주 무거운 책들이다. 할 포스터 등의 <1900년 이후의 미술사>(세미콜론, 2007)와 사이먼 샤마의 <파워 오브 아트>(아트북스, 2008) 같은 책. 가벼운 책은 높은 곳에, 그리고 무거운 책은 낮은 곳에 두고 읽어볼 참이다. 남들 다 피서갈 때...

 

 

 

 

9. 교양

이한우기자가 꼽은 교양분야의 책은 데이비드 덴비의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1, 2>(씨앗을뿌리는사람, 2008)이다. 사실 표지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필요 때문에 나도 지난주에 구입한 책이다. 추천의 변은 이렇다. "아! 고전을 이렇게 소개하는 것이었구나! 사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따분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의 영화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스스로 고전에 대한 불만과 기대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정보의 홍수를 헤매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즉 저널리즘의 무의미함에 몸서리친다. ‘내가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쩌면 40대 후반의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과 맞닥뜨린 것인지도 모른다. 특이하게도 그는 의미회복을 위해, 30년 전 대학 1학년 때 들었던 서양고전 강좌를 다시 듣기로 결심한다. 다행히 그의 모교인 컬럼비아대학에는 그 강좌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30년 후배들과 똑같이 앉아서 학생이 되어 고전의 탐험을 시작했고 이 책은 그 탐험기다."

내 관심은 저자의 독서편력이 아니라 미국의 한 명문대학 강의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고전 읽기의 풍경이다. 어떤 커리큘럼이 제시되고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읽으며 어떤 토론들을 벌이는가가 궁금한 것. 덴비의 책과 같이 읽어볼 만한 건 바로 그 컬럼비아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에드워드 사이드의 마지막 저작이자 강연집 <저항의 인문학>(마티, 2008)이다(번역은 매끄럽지 못하다). '민주적인 인문주의'를 주창하는 사이드에 비해서 덴비는 보다 보수적인 인문주의를 지지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덴비는 <미국 정신의 종말>의 저자, 시카고 대학의 앨런 블룸과 오히려 더 친화적이겠다. 불룸과 동창인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는 사이드 쪽에 가깝겠고.

한편, '위대한 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위험한 책들'과 만나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이민희의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글항아리, 2008)은 역사분야의 책으로 분류되지만 여름나기 교양서로도 좋지 않을까 싶다.

 

 

 

 

10. 전기 

아동분야의 책은 이번에도 전기로 대체한다. 읽을 만한 평전들이 여러 권 나왔기 때문이다. 먼저, 두 아들이 쓴 아버지와 어머니의 전기. 저우하이잉의 <나의 아버지 루쉰>(강, 2008)과 데이비드 리프의 <어머니의 죽음 -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이후, 2008)이 각각 저명한 작가였던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회고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두 명의 영화인을 다룬 책으로 자미 버나드의 <쿠엔티 타란티노>(나무이야기, 2008)와 테리 콜먼의 <로렌스 올리비에>(을유문화사, 2008). 타란티노는 <킬빌>로 잘 알려져 있지만, 로렌스 올리비에?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할지도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 연기의 대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이다. 아래 햄릿을 연기했던 바로 그 사람. 이젠 전설이 된...

08. 07. 19.

 

 

 

 

P.S. 고작 열흘쯤 남겨놓고 고전 읽기 목록까지 챙기는 건 무모해 보이지만 어차피 '목록'일 뿐이므로 허세도 부려본다. '이달의 고전'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서울대출판부)이다. 루틀리지에서 나온 가이드북을 참조할 수도 있겠다. 여차하면, <인간불평등 기원론>도 읽어보면 좋겠고. 이 18세기 저작은 "정치적 권력 혹은 권위의 정당성을 집요하게 문제삼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의 계약'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는 즈음인지라 골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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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다 2008-07-2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00년 이후의 미술사>는 저도 꼼꼼히 읽어볼 계획입니다만..계획은 계획인지라^^ 사이먼 샤마의 <파워 오브 아트> 동영상은 필요하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책값들이 장난이 아니군요. 번역서와 원서를 같이 구입하면...띵!!

로쟈 2008-07-20 11:58   좋아요 0 | URL
그래서 번역서와 원서를 모두 대출했는데, 하드카바라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2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 님은 젊은 세대이면서도 로렌스 올리비에를 아시네요.

로쟈 2008-07-20 21: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아직 '젊은 세대'하고 싶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20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버스로 출퇴근하는데 월요일엔 병원가는 노인들이 많이 타요.그럴 땐 60대들이 80대들에게 자리 양보하고 그래요.고령화 사회를 실감하죠.50대까지는 청춘으로 보고 30대는 청소년이라고 연령조정을 해야 할 때가 올 것 같더라구요.

로쟈 2008-07-21 10:18   좋아요 0 | URL
겉늙은 '청춘'들이 늘어나겠는데요.^^

lifeisart 2008-07-2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술쪽은 art since 1900과 power of art를 여름나기로 정해볼까 생각중인데^^ 소개해 주신 책들 중, 제 수첩에 적은 책들이 빼곡합니다....마냥 흐뭇하네요!

로쟈 2008-07-21 21:59   좋아요 0 | URL
가족들에겐 따돌림 받을 수 있는 여름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