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새로운 책 <폭력의 시대>(민음사, 2008)이 지난주에 나왔다. 원저가 작년에 출간됐으니 최신작이다(찾아보니 국내 도서관에는 아직 원저가 들어와 있지 않았다). '-시대'란 제목이 붙긴 했지만, 원제는 '세계화, 민주주의, 그리고 테러리즘'이다. 머리말에서 밝힌 책의 취지는 이렇다: "이 책에 담긴 에세이들은 세 번째 천년의 시발점에서 세계의 상황과 우리가 직면한 정치적 문제를 조망하고,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한 역사가의 시도다. 이 책에 모은 에세이들은 저자가 이전에 낸 책 중에서도 특히 '단기 20세기'(1914-1991년을 말한다)의 역사를 분석한 <극단의 시대>, 안토니오 폴리토와 가진 대담을 엮은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 그리고 <1780년 이후 민족과 민족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즉 그가 이미 낸 세 권의 책에 대한 '보유'란 이야기겠다. 이미 홉스봄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있지만, 이 <폭력의 시대>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축약판 리스트를 하나 더 만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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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김동택 해제 / 민음사 / 2008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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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 -상
에릭 홉스봄 지음 / 까치 / 1997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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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 -하
에릭 홉스봄 / 까치 / 1997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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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The Age of Extremes (Hardcover)- A History of the World, 1914-1991
Hobsbawm, E. J. / Peter Smith Pub Inc / 2001년 6월
58,650원 → 52,780원(10%할인) / 마일리지 1,59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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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08-07-26 01:53   좋아요 0 | URL
극단의 시대는 요즘 읽고 있는데 왠지 글이 팍팍하고 지도는 한 장도 들어있지 않아서 지리부도를 옆에 놓고 읽고 있어요^^ 20세기의 역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왠걸 좋은 책 고르기가 쉽지가 않아요^^
 

촛불집회에 대한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의 조사가 마무리된 모양이다(조사결과는 오늘 발표되었다). 이번 조사를 위해 한국에 온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과의 인터뷰기사를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개인적인 필요 때문이기도 한데, 인터뷰 동영상은 원기사에서 볼 수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9489.html).

한겨레(08. 07. 18) [단독인터뷰] 앰네스티 조사관 “촛불집회는 위대한 피플파워”

“한국의 촛불집회는 평화로웠다. 그것은 위대한 ‘민중의 힘(people power)’이다.” 노마 강 무이코(41) 국제 앰네스티 조사관은 두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촛불집회를 지켜 본 느낌을 이렇게 평가했다. 무이코 조사관은 촛불집회 조사결과 발표에 앞서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에서 “촛불집회에 정치단체나 노조 혹은 학생단체 등 전통적인 운동조직으로부터 지도받지 않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며 “참가자들이 아주 다양했다는 것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이코 조사관은 경찰이 방패와 물대포, 분말 소화기 등으로 시위대를 공격적으로 진압한 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다. 그는 “경찰이 사용하는 방패와 곤봉은 살상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라며 “내가 조사한 많은 사람들은 머리 뒤쪽에 맞은 상처가 있었는데, 이는 시민들이 도망가다가 맞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주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 경찰은 소화기가 완전히 안전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신할 수 없다”며 “영국에 돌아가면 더 조사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무이코 조사관은 “시민들이 버스를 흔들고 밧줄을 매달아 끄는 행위도 명확한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그는 “시민들이 전경 버스를 흔들 때 경찰이 버스 안에 전경들을 남겨 놓는 것을 보고 매우 불편했다”며 “버스 안 전경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이코 조사관은 해가 진 뒤 집회를 금지한 한국의 집시법과 관련해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기는 것이 문제”라며 “시민들이 표현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법을 고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이코 조사관은 “한국은 권위적인 정부에서 민주국가로 이행했지만 공권력에 대한 과거의 불신이 남아 있어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 적대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대화를 통한 신뢰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4일 입국해 촛불집회 현장의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했던 무이코 조사관은 18일 조사결과를 발표한 뒤 앰네스티 본부가 있는 영국으로 떠난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국제 앰네스티가 특정 사안에 대해 조사관을 파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언론에서 보도했다. 한국에 조사를 나온 이유는 뭔가?

=나는 조사관으로서 한국에 자주 온다. 적어도 1년에 한번씩 온다. 앰네스티는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점과 특정 사안을 조사하러 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앰네스티 사무국이 지난 5월부터 촛불집회에 대해 살펴보고 있었는데,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앰네스티 사무국이 나를 직접 한국에 보냈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경찰이 행사한 공권력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직접 눈으로 본 한국의 촛불집회를 어떻게 평가하나?

=나는 아직도 이 촛불집회가 위대한 ‘민중의 힘’(people power)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촛불집회에 정치단체나 노조 혹은 학생단체 등 전통적인 운동조직으로부터 지도받지 않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참가자들이 아주 다양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나는 ‘한국 촛불집회가 평화적’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나는 70~80년대 한국에서 자랐다. 당시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가며 경찰과 시민 사이에 더 공격적이고 위험한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촛불집회에서 그것을 본 적이 없다. 전반적으로 이번 시위대는 평화로웠고, 대부분의 경찰 역시 전문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경찰이 조사에 협조를 잘 해줬나?

=경찰은 매우 협조적이었다. 경찰 당국은 제가 원하는 모든 곳을 갈 수 있게 해줬다. 경찰병원에 입원한 경찰들도 만났고, 경찰의 작전 중에 폴리스라인 뒤에서 내가 선택한 경찰들과 인터뷰를 허락했다. 또 경찰서에서 연행된 사람들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다만 법무부가 나의 구치소 방문 및 접견을 허용하지 않았고 경찰도 전역신청한 이아무개 상경에 대한 접견을 거부했다.

-한국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와 소화기를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보나?

=물대포는 위험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써야 한다. 내가 조사해보니 물대포는 심각한 부상을 초래할 수 있었다. 물대포를 사용하더라도 필요한 수칙을 지켜야 한다. 물대포를 맞는 사람과의 거리, 각도 등은 물론 수압 역시 규정에 맞아야 한다. 소화기는 70년대와 80년대에도 사용됐다. 그러나 그것은 불을 끄려는 용도였다. 지금은 화염병을 쓰지 않기 때문에 소화기를 쓸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경찰은 소화기를 자주 쓰고 있다. 우려스럽다. 경찰이 소화기를 시민들의 얼굴에 직접 뿌려 앞을 볼 수 없게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앞을 볼 수 없게 하는 것은 군중을 관리하는 방법으로써 적절치 않다. 한국 경찰은 소화기가 완전히 안전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확신할 수 없다. 영국에 돌아가면 더 조사해 보겠다.

-한국 경찰은 방패로 시민들을 때리기도 했다.

=(경찰에게) 방패와 곤봉은 방어용이다. 살상용이 아니다. 자기 방어용으로만 써야지 절대 무기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내가 경찰이 사용하는 방패를 들어봤는데 아주 무겁고 튼튼했다. 이것을 눕혀서 수직으로 머리 등을 때리면 극히 위험하다. 내 조사에서 얼굴에 심각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머리 뒤쪽을 맞은 상처가 선명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민들이 앞으로 나오다 맞은 것이 아니고, 도망가다 맞은 것을 의미한다. 아주 잘못된 것이다.

-경찰이 버스로 거리 행진 자체를 막거나 광장 진입을 통제하는 것은 어떻게 보나?

=국가마다 장애물을 설정하는 데에는 서로 다른 방식을 활용한다. 한국에선 버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공격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일반적 장애물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경찰이 결정해야 할 일이다. 시청 광장을 봉쇄하는 것 또한 경찰의 권한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청 광장을 빼면 모일 공간이 없다는 것을 본다면 시위대와 경찰이 절충점을 찾는 게 필요하다.

-반대로 한국에선 시민들이 경찰 버스를 흔들거나 밧줄을 걸어 잡아당기는 시위를 한다.

=경찰이 보여준 동영상으로 시위대가 경찰 버스에 줄을 매달아 끄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명확하게 불법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버스를 끌 때, 경찰(전경)이 그 안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여러 번 이런 경우가 있었다. 매우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버스 안의 경찰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시위자들이 버스를 흔드는 행위를 알고 있었다면 버스에 경찰을 놔두면 안된다.

-다른 나라의 집회와 촛불집회를 비교한다면?

=국제사면위원회는 절대로 각국의 인권 상황을 비교하지 않는다. 한국의 촛불집회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고 싶지 않다. 모든 나라는 각자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 나라와 다른 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해가 진 후 집회를 여는 것을 경찰이 판단해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해가 진 뒤 집회를 여는 것을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기는 것이 문제다. 어떤 날은 해가 진 뒤에도 한참 동안 집회를 여는 것을 허용한다. 또 어떤 날은 원천봉쇄한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 지 혼란스럽다. 공공질서를 유지하려면 규정과 법은 필요하다. 모든 나라가 집회를 규율하는 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해가 진 뒤 집회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민들은 (해가 진 뒤에도) 표현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시민들이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방해받지 않고 집회를 열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당신이 거주하는 영국에선 경찰이 시위 관리를 어떻게 하나?

=영국 경찰은 시위자들이 시위를 할 수 있게 하고 (시위대의) 안전을 지켜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리 수집한 정보에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될 것이란 확신이 서면 경찰은 다른 근무복을 입는다.경찰은 평화시위가 가능하도록 시위대를 돕는 것이 주 업무다. 영국 경찰관은 시위에 나가기 전에 브리핑을 받게 된다. 브리핑의 뼈대는 ‘시민들이 정부에 반대하려고 시위를 벌이는 것이지, 경찰에 대항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찰이 불필요하게 무력을 사용하면 안된다’고 교육을 받는다. 모든 경찰 활동은 합법적이고 전문적이며, 적절하면서도 참을성있고 실질적이어야 한다고 교육한다.

-영국에서 연행에 관한 지침은 어떤가?

=영국 법은 ‘연행이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체포도 꼭 필요할 때만 해야 한다. 경찰관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보호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장구의 사용에 앞서 충분한 설명을 해 정당화 되어야 한다. ‘시위자와 대화를 하라’는 내용이 브리핑 내용에 포함돼 있다. 그리고 과잉 대응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에선 인도에서 시위하는 시민도 연행한 사례가 있다.

=평화적으로 인도에 있던 시민들을 잡아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인도에서 평화롭게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잡혀갔거나 심지어 집회에 참여하지 않고 단순히 구경하고 있다가 연행되기도 했다. 이들의 죄목이나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인도에 있는 사람에 대한 자의적 체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보다 신중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시민들과 경찰 모두에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은 권위적인 정부에서 민주국가로 이행했지만 공권력에 대해선 과거의 불신이 남아 있다. 그래서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 적대하는 분위기가 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신뢰가 필요하다. 대화를 통해서 믿음과 이해를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허재현기자)

08.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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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는 격주로 김우창칼럼이 연재된다. 오늘자 칼럼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제목이었는데, 아침 지하철에서 두 번 읽고 덮어두었다. 최근의 칼럼 가운데 아무래도 인상적인 건 '현시국의 위기적 성격'이란 제목의 지난회 칼럼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아도 이에 대한 논평을 찾을 수 없다(나 혼자 의미심장하게 읽은 것인가?). '장기화된 촛불시위'로 대표되는 현시국을 이해하는 데, 그리고 칼럼에서 언급되는 레닌을 이해하는 데, 그리고 또 김우창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바로 옮겨놓지 않고 묵혀두었는데, 생각난 김에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8. 07. 03) [김우창칼럼]현시국의 위기적 성격

장기화된 촛불시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정부가 의학적·정치적 영향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없이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것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러나 반대 의견에 대한 정부의 반응이 불충분하고, 지연된 까닭이라고 하겠지만, 이제는 시위의 구호와 요구가 달라졌다. 사태는 쇠고기 문제의 해결로만, 또는 그에 대한 일정한 타협안의 제시로만 풀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열기에 찬 시위 현장은 우리 정치와 사회에 대한 일반화된 불만의 성토장이 되었다. 요즘 쓰이는 비유로 ‘아고라’가 된 것이다. 불만과 문제의식의 표현은 민주주의 정치 과정의 일부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여 그로부터 구체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이것이 문제다. 현실적 행동에는, 일반적 정치의식 이상의 실천 항목, 그리고 목표의 명확한 정의가 있어야 한다.

촛불시위가 표현한 것은 정부 정책의 시정에 대한 요구였다. 이에 대한 답변은 현실 조건하에서 무엇이 가능한가를 생각하면서 주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대하여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답변은 ‘가부’ 둘 중 하나의 절대적인 선택, 그것도 무조건적인 ‘가’이기 쉽다. 어떤 경우나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오고 있는 가장 구체적이면서 극단적인 요구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임이다. 이 요구는 그 다음의 결과로서 실현될 수 있는 어떤 장기적인 목표를 가진 것일까?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 새로운 정치체제의 수립이 지향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참으로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 것일까?

- ‘역사의 역전’에 갈등 불가피 -
20세기 초에 레닌이 쓴 ‘무엇을 할 것인가?’는 소련 공산 혁명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기초적인 문서가 된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 혁명은 대중의 자연 발생적 열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조직화할 수 있는 혁명적 정당, 다시 말하면, 지도부의 선도(先導)에 의해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게 하여, 공산당의 전위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다. 이것은 말 할 것도 없이 사회주의 혁명도 배제한다고 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이상에 모순된다. 그리고 이것은 공산주의 체제의 여러 모순을 정당화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까지도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변질시키려고 한 이론이라고 비판된다.

여기에서 레닌의 이러한 생각에 언급하는 것은 그것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 정치 행동의 요건이 분명하게 알아 볼 수 있는 목표와 방법, 조직과 계획 그리고 이것들의 일관성(물론 전략적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것이 배타적인 지도부를 요구하는가 어떤가는 조금 더 복잡한 문제이다. 어떤 경우에나 정치를 생각하는 것은 목적하는 바와 그것의 성취를 위한 계획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것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은 핵심적인 질문일 수밖에 없다.



위에서 말한 것은, 그러한 관점에서, 촛불시위의 끈질긴 지속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폭발하고 있는 대중적 정치 열기는 우리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촛불시위의 요구는 그간에 쇠고기 수입 반대로부터 더 일반적인 정치적 요구들로 바뀌었지만, 처음부터 쇠고기 문제 아래에는 넓은 정치적 불만이 깔려 있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 거기에는 이명박 정부의 여러 정책(경제 일변도의 그리고 부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보이는)에 대한 깊은 불만이 있다. 또 근년에 심화된 빈부 격차에서 오는 계급적 불만이 있다. 그리고 갈등의 요인으로 여러 다른 정치 세력과 집단들의 이익이 개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난국을 풀어가는 데에는 이러한 불만의 바탕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번 선거와 관련하여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의 하나는 그 엄청난 정치사적 의미이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등 군사 정권 붕괴와 민주화 운동 후 성립한 6공화국의 여러 정부는 모두 민주혁명을 계승했다. 이 정부의 기반이 된 것은 큰 역사적 기운이 된 민주화 혁명의 흐름이었다. 이에 대하여 이번의 정부는 처음으로 그 흐름을 벗어난 비교적 무색무취한 선거에 의하여 성립한 정부이다. 이것은 민주화 혁명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복귀가 구체제에의 완전한 복귀라는 말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는 새 정부도 민주화의 여세를 타고 태어난 정부이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는 민주화 세력의 주류가 생각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와는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새 정부는 그 성장 우선 정책에 있어서, 그리고 그 지지기반과 인적 구성에 있어서 복고적 성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번의 정권 교체는 투표에 의한 정권 교체이면서도 민주화 이후의 역사적 추세를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 20년 만의 역사의 역전에, 또는 최초의 비폭력 정권 교체에, 저항과 갈등의 풍파가 없을 수 없다.

군사정권으로부터 민주 정권으로 옮겨갈 때에, 화두의 하나는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의 ‘대타협’이었다. 공식 절차가 어떻게 되었든, 피차에 여러 측면에서 현상을 인정하고 그것에 타협하면서 민주정부가 출발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는 데 다시 한 번 대타협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진보·보수 다시 대타협 필요 -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난 선거가 통상적 민주적 절차에 따른 선거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대전환을 나타낸다고 하면, 우선 이 전환이 잠재적으로 혁명적 또는 반혁명적 위기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에 따른 대처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정부는 그 정책이나 인적 구성 그리고 전체적인 정치 노선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지난 20년간의 민주화 정부의 노선과 정책과 민주화 세력들의 이해관계를 참작하고 존중하는 쪽으로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정부의 목표가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이념적으로나 현실로나 기존 질서가 된 민주화 과정의 과거를 흡수 동화하면서 그 목표를 실천하는 것이 현실 효율적인 일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민주화 혁명의 계승 세력은(그 세력도 세대나 정치 문화의 측면에서 그 전의 민주화 세력은 아니지만) 지지하는 정치 이념과 현실을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 아닌 한,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 그 업적으로서의 민주체제를 보존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애국적인 결단이 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민주적 헌정질서를 대신하는 다른 혁명적 대안은 역사적 후퇴를 의미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현실적 대타협을 이루어낼 수 있는 곳이 국회이다. 지금의 정치적 난국을 벗어나가는 데에 있어서 국회의 정상화가 하나의 방편인 것은 틀림이 없다. 야당 책무의 하나는 국회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 시국의 위기적 성격을 이해한다면, 여당은 이것을 위하여 적절한 양보를 준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의미를 갖는 정치 행동은 언제나, 장기적인 목표와 현시점에서의 실천 가능성이라는 기준에 비추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찾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김우창 | 고려대 명예교수)

08. 07. 17.

P.S. 오늘이 마침 제헌절이기도 한 만큼 '민주적 헌정질서 vs 혁명적 대안'이란 선택지는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요점만 간추린다. 먼저, '장기화된 촛불시위'가 의미하는 바, 또 요구하는 바에 대해서는 이번주 한겨레21의 표지기사 '촛불의 지구전'(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8/07/021003000200807140719005.html)을 참고하도록 하자. 그리고 레닌과 현시국에 대해서는 어제 올려둔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http://blog.aladin.co.kr/mramor/2189868)를 참고할 수 있다. 페이퍼에서 언급된 토론회에 대한 보다 상세한 기사는 '촛불과 러시아혁명, 그리고 한국의 지식인'(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8/20080710/20080710040800.html)을 참조. 더불어, 현시국과 관련하여 김우창, 최장집 교수의 '합리주의'적 입장에 대한 비판은 '지식인은 촛불과 함께 진화하고 있는가'(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MAIN&rsec=MAIN&idxno=11123)를 일독해볼 만하다.

그리고, 이제 김우창 교수의 칼럼에서 흥미로운 대목들 혹은 지점들을 짚어보자. 일단 그는 현시국에 대한 이해 자체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촛불집회가 장기화된다면, 일단 정치적 행동으로서 그것이 어떤 목표를 갖는 것인지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것. 가령, (1)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이냐 (2)새로운 정치체제의 수립이냐. 후자라면 '혁명'을 뜻하는데, '그것이 참으로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 것일까?'라는 게 김교수가 궁금해하는 점이다. 이번 사태를 이해해보기 위한 방책으로 김교수는 지난 대선이 갖는 '정치사적 의미'를 되짚어본다. 사실 이 대목이 의외로 흥미롭다. 그는 보수쪽에서 흔히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말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지난번 선거와 관련하여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의 하나는 그 엄청난 정치사적 의미이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등 군사 정권 붕괴와 민주화 운동 후 성립한 6공화국의 여러 정부는 모두 민주혁명을 계승했다. 이 정부의 기반이 된 것은 큰 역사적 기운이 된 민주화 혁명의 흐름이었다. 이에 대하여 이번의 정부는 처음으로 그 흐름을 벗어난 비교적 무색무취한 선거에 의하여 성립한 정부이다. 이것은 민주화 혁명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민정부'부터 카운트하고 있지만, 87년 민주화 운동 후 성립한 6공화국은 직선제를 통해서 성립한 노태우 정부부터이다. 소위 '87년 체제'를 가리키며, 이것이 '민주혁명'의 성과이다. 한데, 이번 이명박 정부는 그 민주화 혁명의 흐름에서 벗어나 성립한 정부이며, "이것은 민주화 혁명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전? 전두환의 군사정권과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있었다. 이명박정부는 그 '전통'을 잇고 있다는 것. 과감한 지적 아닌가? 김교수는 바로 유보를 단다.   

이 복귀가 구체제에의 완전한 복귀라는 말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는 새 정부도 민주화의 여세를 타고 태어난 정부이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는 민주화 세력의 주류가 생각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와는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도 '민주화의 여세를 타고 태어난 정부'라는 점에서는 군사독재나 유신독재와는 다르다(그럼에도 이 정부의 인사에서 과거 국보위 참여 전력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점은 징후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화 세력의 주류가 생각한' 민주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이 요점이다('민주화 세력'에 대하여 이들은 자칭 '산업화 세력'이다). 때문에, "이번의 정권 교체는 투표에 의한 정권 교체이면서도 민주화 이후의 역사적 추세를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 20년 만의 역사의 역전에, 또는 최초의 비폭력 정권 교체에, 저항과 갈등의 풍파가 없을 수 없다."

이 또한 대단히 흥미로운 견해 아닌가? 최초의 비폭력 정권 교체! 그러니까 김우창교수에 따르면, '문민정부'(김영삼)에서 '국민의 정부'(김대중)로의 정권교체는 유사 정권교체이다. 그건 민주화 운동 세력의 '나눠먹기'에 불과한 것이기에.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를 계승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군사독재 이후 진짜 정권교체는 이명박정부에 와서야 이루어졌다(비록 복고적/퇴행적이라 하더라도). 20년만이다! 물론 이러한 '복귀'에 따르는 "저항과 갈등의 풍파가 없을 수 없다".

여기서 김우창 교수의 '현자적' 예지는 '대타협의 정신'을 주문한다. 그런데 그 모델이 재미있다. "군사정권으로부터 민주 정권으로 옮겨갈 때에, 화두의 하나는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의 ‘대타협’이었다"는 것. 구체적으로 그 '대타협'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제시돼 있지 않지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6.29 선언 같은 것이다. 어쨌거나 국민적 요구사항이었던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함으로써 전면적인 파국은 면하게 했던 것이니까 '대타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대타협의 자세를 이제 현정치권에도 다시금 요청하는 것이다. 즉, 이 정부는 민주화 과정의 과거를 흡수 동화하고 (자칭)민주화 혁명의 계승 세력은 자신의 정치 이념을 해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래야지만 현상황에서 '민주체제'가 보존될 수 있다는 것. 이런 것이 현시국에 직면하여 김우창교수가 '무엇을 할 것인가'란 물음에 대해 찾은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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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꾼 2008-07-19 00:25   좋아요 0 | URL
그렇잖아도 최근에 레닌, 트로츠키, 마오를 다시 읽고 있었는데 반가운 글이네요. 왠지 혁명을 준비해야 할 분위기가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
예전에 박노자 선생 얘기로는 레닌에 비해 트로츠키가 훨씬 뛰어난 문장가라고 하시던데 제 경우에는 레닌에게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네요 예상치 못한 유머와 비꼼등이 있어 읽으면서 몇번 웃었습니다
박종철 출판사 판 '무엇을 할 것인가?'의 꿈과 현실의 관계(222쪽)는 지젝이 인용하기 좋을만한 문구 같습니다

로쟈 2008-07-19 10:55   좋아요 0 | URL
트로츠키도 방대한 저작을 남겼지만 레닌도 엄청납니다. 소련시절에 나온 '전집'에 55권짜리가 있었으니까요. 그 정도면 웬만한 전업작가보다도 많은 분량인데요. <무엇을 할 것인가>와 <국가와 혁명> 등은 제대로 된 장정으로 다시 나왔으면 싶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7-19 22:23   좋아요 0 | URL
김우창 교수.이번 <시대정신> 여름호 건국60주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했더군요.경향신문에 정기기고하는 사람이 뉴라이트 계간지에...조금 이상했어요.

로쟈 2008-07-20 12:03   좋아요 0 | URL
기본적인 입장은 '자유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뉴라이트'와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먼 거리는 아니죠. 최장집 교수도 그렇지만 '중도'라고 해야겠습니다(현자들은 보통 중용의 길을 선호하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0 21:30   좋아요 0 | URL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에선가 최장집 교수는 시민단체에 대해서 그다지 신뢰를 보이지 않더라구요.진보 이론가를 연구하고 소개하긴 했지만 진보주의자는 아닌 것 같아요.조선일보가 사상검증인가 뭔가 해가지고 좌익으로 알려졌지만.

로쟈 2008-07-21 10:21   좋아요 0 | URL
시민단체를 신뢰한다고 좌파나 진보가 되는 건 아닌 듯한데요(한국적 특성상). 그리고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엘리트 학자가 '좌파' 행세를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닌가 싶어요...

글샘 2008-07-21 11:08   좋아요 0 | URL
소통의 문제라고 그렇게 강조를 해 왔잖아요. 진즉에 대타협이 이뤄졌더라면 촛불은 벌써 꺼졌겠죠. 지금 전대협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면의 촛불이 타오르는 데 기름을 부은 이들은 정부입니다. 쇠고기에다가 독도에다가 끝없는 말바꾸기뿐인 반성... 강행에다가 폭행... 이런데도 연구실에 앉아서 음, 이건 혁명의 조건에서 뭐가 부족한 걸가...를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거나 비양심적인 일이거나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로쟈 2008-07-21 21:57   좋아요 0 | URL
문제는 '어리석거나 비양심적인' 사람들까지도 끌어모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아닐까요? 진보가 정말로 헤게모니를 쟁취하려 한다면...

드팀전 2008-07-22 11:59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얌전하게 댓글을 달고 마셨군요.남의 집 페이퍼라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담론 영역에 계신 분들이니까 정당한 댓글조차 비겁한 변명처럼 보일 것을 우려해서가 아닐까 착각에 가까운 추측을 합니다.

그래서 연구실에 있지 않은 제가 반대의견을 좀 올릴까 합니다. 좀 넓게 생각하면 글샘님의 의견은 '이론/실천'의 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작금의 상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근저에는 '반이론적 정서'가 있지 않나싶습니다. 여기에는 이론이 고담준론화되면서 현실과 거리를 두게 된데 -역사적- 원인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지식인들이 상아탑에 틀어박혀서 먹을거리를 위해 '이론'을 반찬삼았던 경향에 대한 반감같은 것들이 있을 겁니다. 이러한 반감은 반면에 '지식인'에 대한 기대감이-전통적으로 존재해 왔던- 실망으로 바뀌면서 고착된 것으로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몇 십년전부터 강준만을 필두로 시작된 '지식인 실명비판'은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강준만은 실명비판을 통해 '강단좌파'들을 보수세력에 맞먹는 적으로 공격해왔습니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고 맞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유념해야될 것은 이것이 '이론'과 '실천'을 적대적 관계로 설정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강준만이 주로 비판한 사람들은 -좀 거칠기는 한데- 급진좌파적 이론과 이율배반적인 우파적인 실천같은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일상적 파시즘론이 나왓을 때 학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역사관에 대한 수렴과 또 비판이 있었던데 반해 강준만은 예를 들어 임지현교수가 조선일보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를 비판했습니다.

다시 핵심으로 돌아가면 중요한 것은 '이론'과 '실천'을 상호관계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닐까 합니다.거리의 경험은 가끔 '실천'의 흥분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니지만 상호침투적 과정 조차 망각하게 되는 경우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모든 혁명적인 사건에는 이론적 전위가 있어왔습니다. 또한 가장 훌륭한 혁명가들은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레닌이 대표적인 경우겠지요.

저는 상아탑이 '대중의 언어'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늘 불만입니다.빌헬름 라이히가 좌파가 형이상학과 개념화에 열중하느라고 대중의 언어를,대중의 심리를 놓치는 우를 범했다고 이의 복구를 주창한 말에 동의합니다. 또한 호치민이 '민중이 이해할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말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의 대중화실패'를 지적해야하는 바이지 '담론공간' 자체에 대해 비판할 것은 아닙니다. 즉 글샘님의 진보를 향한 의지와 행동은 존중하지만 '진보'와 '참여'의 범위에 조금 더 다양성의 측면이 보강되어야 할 듯 보입니다.

아시겟지만...전 연구실에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로쟈 2008-07-22 10:29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의 댓글도 잘 읽었습니다.^^ 이론/실천의 이분법은 사실 제가 염두에 둔 초점은 아니구요(그 정도는 우리도 벗어나 있다는 판단도 듭니다), 제 고민은 '다수성'의 문제입니다. 민주정에서 왜 '다수'의 지배가 관철되지 않는가(책도 나와 있죠, 왜 80이 20에게 지는가, 요즘 같아선 20도 안되는데). 한데, 이 '다수'가 보면 TV 드라마 보고, 아이들 학원 보내고, 게임하고, 주식하고, MB 욕하고,집값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전대협의 '강철대오'가 변화를 가져올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보수적인(혹은 중도적인) 다수가 움직여야 하고, 다수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건 지구전입니다. 앞으로 남은 4년 몇 개월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한. 제 관심은 그 지구전에 있습니다...

드팀전 2008-07-22 16:35   좋아요 0 | URL
네...저는 마지막 문장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고민을 합니다. 제가 댓글을 단 것은 '진보'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로쟈님은 이미 넘어섰다고 말씀하시지만-여전히 존재하는 '이론/실천'의 이분법과 '반이론적 분위기'에 대한 '비이론가'의 '이론에 대한 옹호' 같은 것입니다.

제 회사에도 진보적인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의외로 상황별 대응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것을 보편화하고 정식화하여 나아갈수 있는 과정 자체는 별로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마치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운동처럼 말입니다. 로쟈님이 지구전을 말하셨고..제가 그람시의 진지전을 이야기한 것도 하루벌어 하루 사는 운동말고 지속적이고 실제적 변화를 이루는 과제를 고민해보자는 차원이 아닐까 합니다.

전 요즘 행여 짤릴 경우 부업으로(아니 그때가 되면 생업이 될까요? ^^) 뭘해야하나..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그런데 제길..할 수 있는게 별로 없습니다.절망적인데요.

ㅜㅜ 아이는 땡글 땡글 영글어가는데..푸우..이제 점심먹으러 갈까요? 식사 잘 하세요.

로쟈 2008-07-22 22:48   좋아요 0 | URL
조만간 <파이트클럽>에서처럼'자기구타'의 단계로 진입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아이들도 있는데...
 

주초에 읽은 시사인의 출판리뷰를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37#). 평론가 정홍수의 <소설의 고독>(창비, 2008)을 다루고 있는데, 이 평론집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리뷰도 술술 읽힌다. '문학이 된 평론'의 사례들이어서일 게다.

시사인(08. 07. 15) 어? 평론집이 술술 읽히네

영화평론은 영화가 될 수 없고 음악평론은 음악이 될 수 없지만 문학평론은 문학이 될 수 있다. 문학평론이 가장 위대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문학평론은 그만큼 특수하다는 얘기다. ‘뭔가’에 들러붙어서 바로 그 ‘뭔가’가 되는 유일한 글쓰기다. 이것은 축복받은 특수성 아닌가. 그렇다면 문학평론이 문학이 되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하면 문학이 되는가. 정답은 내면과 문장이다. 진리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격랑을 드러내는 목소리, 무색무취의 보편 문장이 아니라 스타일에 대한 고집으로 충전된 문장을 갖추면 된다. 

이 간단한 정답을 어떤 이는 모르고 또 어떤 이는 모른 척한다. ‘모르는’ 분이야 그렇다 쳐도 ‘모른 척하는’ 분이 많다는 것은 좀 문제다. 나는 문학평론만큼 보수적인 ‘글쓰기 제도’를 알지 못한다. 후자인 분들은 평론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내면이나 문장 따위가 아니라 통찰과 논리라고 점잖게 말씀하신다. 맞다. 좋은 글을 만드는 힘의  90%는 통찰과 논리가 감당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좋은 ‘글’일 뿐이다. 좋은 칼럼·보고서·논문과 다르지 않다.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것이 내면과 문장이다. 바로 그 10%가 평론을 ‘글’이 아닌 ‘문학’으로 만든다.

오랜만에 ‘문학이 된 평론’의 사례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문학평론가 정홍수의 첫 번째 평론집 <소설의 고독>(창비)이다. 문학평론집을 소개해도 될까 주저했다.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본래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평론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동시대 한국 문학의 세부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가 그 주제에 대한 추상적 논의를 따라가는 일 역시 어렵다. 이를 다 무릅쓰고라도 읽어보시라고 말하는 것은 확실히 억지다. 그러나 이 책은 읽어도 된다. 내면과 문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평론이기 이전에 고급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1부와 3부의 계간평과 월평 특히 좋아
먼저 문장. “이제 조금 이혜경 소설에 눈이 익어가는지, 어지간히 고단하고 아픈 이야기가 나와도 타박타박 따라가며 기다려보고 싶다. 어스름녘의 착잡함을 견뎌보자 싶다. 그냥 안타까움 속에 지칫거리며 고갯마루에 서 있어보자 싶은 것이다. 뭐, 크게 환해질 일이 있겠는가. 숨을 고르며. 욕하지 않으며. 말하지 않으며.” 예컨대 평론가 정홍수는 이렇게 글을 시작한다. 돌을 씹어 먹는 듯한 맛의 도입부 때문에 지레 읽기를 포기하게 되는 수많은 평론과는 뭔가 다른 출발 아닌가. 어떤 작가 혹은 어떤 주제를 다루건, 글의 도입부가 이러하다면 한번 따라가볼 만한 것이다.

다음으로 내면. 이인화가 독자를 계몽하려 하는 비장한 이야기꾼이 된 게 못내 불편했던 이 평론가는 본래 소설은 계몽하지 않음으로써 계몽한다고, 소설은 본래 그런 비장이나 독선과 싸우는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이런 문장을 적는다. “나는 아직도 이야기꾼으로 스스로를 격하시키지 못한 소설가들, 그들의 기억의 ‘외딴방’ 그 ‘외진 골목’에서 힘겹게 끄집어내 들려주는 그 내면의 고백들, 거기에서 출발한 ‘한국의 순수문학’을 사랑하니까.” 평론가의 이런 소박하지만 결연한 ‘내면의 고백’을 다른 평론집에서 만나기 쉽지 않고, 그 내면이 책 전체에 은은하면서도 완강하게 배어 있는 평론집을 만나기 또한 쉽지 않다. 

이런 문장과 내면이 떠받치고 있어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아주 드문 평론집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1부와 3부에 수록돼 있는 계간평과 월평이 좋다. 2004년과 2006년에 발표된 소설 중에서 뛰어난 것을 선별해 어떤 내용인지를 소개하고 왜 좋았는지를 다감하게 털어놓는다. 특히 3부의 앞부분에 수록돼 있는 서간체 평론 예닐곱 편은 이 책의 백미다. 절친했던 문우 고 김소진에게 바쳐진 글 두 편에서는 이 평론집의 심장이 뛰고 있으니 그것들은 각별히 아껴 읽어야 한다.



평론가 정홍수는 1963년에 태어나 1996년에 등단했다. 정확한 안목을 갖고 있어 평가에 헛다리를 짚는 일이 없고 냉철한 평형감각을 갖고 있어 제 흥에 취한 경박한 호들갑도 없다. 글쎄, 평론가라면 가끔은 무모한 베팅도 하고 세상의 취향과 독야청청 싸우기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신 그는 다른 일을 해왔다. 발터 벤야민은 장터에서 ‘구라’를 푸는 과거의 이야기꾼과 골방에서 내면을 파먹는 근대의 소설가를 대조하면서, 소설은 고독한 개인의 작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이야기꾼과 소설가’). 이 평론집의 제목 ‘소설의 고독’이 거기에서 왔다. 그 고독과 소통하는 일이 지난 12년 동안 그의 일이었다. 사려 깊고 겸허하고 다정다감한 이 ‘한국의 순수문학’ 애호가 덕분에 많은 소설가가 잠시나마 고독을 잊었을 것이다.(신형철_문학평론가)

08.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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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7-18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술 읽히는'-이거 굉장히 중요하죠. 제겐.- 평론집이라...관심 증폭합니다.
일단 오프라인에서 실물을 확인해보고 싶어지네요.
평형감각은 좋은데 평론가는 무엇보다
'자기색'으로 말하는 작업이 필요한 위치 아닙니까.
김현 이전 김현 없고 김현 이후 김현없다는 말처럼요.

로쟈 2008-07-18 13:51   좋아요 0 | URL
김현식 문체는 아니지만 잘 읽히는 건 맞습니다(현학적이거나 딱딱하지도 않고요). 게다가 소설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평론가의 한 사람이라는군요. 출판기념회도 열어줄 만큼...

수유 2008-07-1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간만에 행복한 평론읽기에 동참할까요..주말엔 서점을 함 나가봐야겠습니다.
근데 요즘 생활의 변화가 있으신가요?
방학이 되면 함 얼굴 봅시당

로쟈 2008-07-19 10:56   좋아요 0 | URL
네, 8월쯤에.^^;

xnekans 2009-08-1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을 씹어 먹는 듯한 맛의 도입부" 하하,
한참을 웃었습니다, 하하!!
그런 비평이 아니라니, 정말로 궁금해 지네요
안 그런 비평집은 읽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요즘, 갑자기 한국문학 소식도 궁금한데,(외국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요, 하하)
서점에 가서 선이라도 봐야 할 거 같네요..하하!!

 

흥미롭게도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7월 16일)'에서 <지젝이 만난 레닌>이 다루어졌기에 옮겨놓는다. 이유인즉 1918년 오늘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http://blog.aladin.co.kr/mramor/2187941)를 올려놓으면서도 날짜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었는데, 레닌이 1900년 스위스로 망명한 날과 겹친다고 하니까 이 또한 역사의 우연이라 할 만하다.    

한국일보(08. 07. 16) 지젝이 만난 레닌

7월 16일은 러시아혁명사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1918년 오늘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가 살해됐다. 그리고 1900년 오늘, 3년 동안 시베리아에 유형됐던 레닌이 스위스로 망명했다. 18년 사이 세계는 바뀌어버렸던 것이다.

1917년 2월혁명으로 퇴위한 니콜라이 2세는 당시 우랄산맥의 광산도시 에카테린부르크에 감금돼 있었다. 김학준의 <러시아혁명사>에 차르와 아내 알렉산드라, 아들 1명과 막내딸 아나스타샤 등 딸 4명의 살해 장면이 나온다.

“유로프스키는 10명의 무장한 사람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는… 이제 우리는 당신들을 사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선언했다. 니콜라이 2세가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 ‘뭐라고’ 하면서 아내와 아들을 막아보려 했다. 그 순간 체카 대원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는 즉시 죽었다… 그냥 기절해 쓰러졌던 아나스타샤가 의식을 회복하곤 소리를 질렀다. 다시 모든 체카 대원들의 난사가 뒤따랐다.” 광산 등에 흩어져 암매장됐던 차르 일가의 유골들이 확인된 건 80여년이 지난 1996년이 되어서다.

한 세기나 전,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죽음과 실패한 레닌의 혁명 이야기를 지금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현재 최고의 스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59)이 <지젝이 만난 레닌>(2002)에서 던지는 질문도 바로 그것이다. 그는 레닌이 1917년에 쓴 핵심적 문건들을 이 책의 전반부에 모아놓은 후, 책의 후반부에서 21세기의 현실을 레닌의 텍스트들에 대입해 해석한다. “레닌을 재현실화한다는 생각에 대한 공중의 첫번째 반응은 물론 빈정거리는 폭소다”라고 지젝은 책의 첫머리에 쓴다.

그러나 그는 다가올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이 1917년 레닌 앞에 놓였던 상황의 되풀이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함께 버린 것은 아닌가?” 레닌의 텍스트, 펜이 곧 무기였던 그의 글에 들어있는 ‘유토피아의 불꽃’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문제로 되살려내야 한다는 이야기다.(하종오기자)

08. 07. 16.

P.S. 아예 레닌을 주제로 한 학술심포도 얼마전에 개최된 바 있다. 이 관련기사도 스크랩해 놓는다(더 자세한 것은 http://www.greenbee.co.kr/blog/29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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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08. 07. 10) 왜 지금 레닌을 소환하는가?

'촛불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러시아혁명.’ 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그린비 출판사가 주최한 학술심포지엄의 주제다. 왜 지금 갑자기 레닌인가?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발제문 ‘레닌의 정치학에서 외부성의 문제’에서 “지금 레닌을 불러낸다는 것은 뼈아픈 실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거기서 혁명 혹은 혁명적 사유에 대해 다시 사유하는 것”이고 “그 실패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찾는 것”이다. 이 교수는 모든 혁명은 자신의 시대와 대결하고, 주어진 세계를 전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반시대적 사유’일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혁명 자체가 낡은 것으로 간주되는 지금이야말로 레닌과 혁명에 대해 사유하기에 좋은 시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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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민주주의자로서의 레닌’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그 이유로 자본주의가 새로운 주기적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 위기상황을 들면서, ‘촛불집회 정국’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했다. 그는 촛불을 든 민초들의 ‘직접적 참여 민주주의’가 건강권과 주권 문제 등에서 국회를 대신해 정국을 일변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촛불 민주주의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나 대운하 계획 등을 반대하고 저지할 수는 있지만 “신용을 잃어가는 대의 민주주의 기관(국회 등)들을 대신하는 ‘대안적 집권기관’”이나 “구체적인 민중적 주권행사 기관”으로 발전하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내놓은 대안은 노동자 또는 주민 평의회, 곧 소비에트다. 물론 ‘대안적 권력 창출’을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지만, 그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기업과 소기업 소속 등을 초월하는 ‘노동자 평의회’ 건설과 지역정치에의 활발한 참여는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에 상당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의 헌정질서 안에서 그것은 ‘시민단체’의 외형을 띠면서 권력화가 아니라 계급적 연대 수준에 머물겠지만, 그럼에도 “고용형태, 성별, 연령, 소속 기업 규모 등의 구분을 뛰어넘어 대자적인 계급으로서의 새로운 성숙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그는 그러면서 볼셰비키당의 권력독점과 혁명의 왜곡으로 귀결된 정당 정치인 레닌이 아니라 <국가와 혁명>을 쓸 당시의 레닌을 살려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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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제헌권력, 그 열림과 닫힘’이란 글을 발제한 조정환 다중네트워크센터 대표도 <국가와 혁명>에 주목했다. 조 대표는 한때 한국 사회를 풍미한 사상가 레닌이 급속히 잊혀진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에 도입된 레닌이 <두 가지 전술>, <무엇을 할 것인가>의 레닌, 말하자면 1905년 부르주아혁명 단계의 레닌이었지 <국가와 혁명>, <4월 테제>의 레닌, 곧 1917년 프롤레타리아 혁명 단계의 레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987년 체제’와 함께 제헌의회파의 주장은 힘을 잃었으며, 신자유주의적 자유화와 함께 확장된 형식적 민주화는 비합법 전위정당 노선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가 레닌의 용도 폐기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와 혁명> 단계의 레닌이 답인가? 조 대표는 권력, 무장력, 폭력, 민주집중제, 소비에트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제헌권력 등 레닌의 개념들은 근대적 부르주아 사회체제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며, 낡은 의회조직이나 국가는 “삶 속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다중들 자신의 직접적 토론과 행동적 표현을 통한 직접적 제헌적 결정과정”으로 대체하고, 이를 제도화할 절대 민주기관을 창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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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7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17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심포지움에 나온 사람들의 주장은 초대교회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기독교인들과 비슷하군요.

로쟈 2008-07-18 13:52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