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인문사회학적 대안을 찾아서'란 부제를 가진 <현대사회학과 한국 사회학의 위기>(길, 2008)에 대한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6457). '중도우파'를 자임하는 저자 민문홍 교수는 뒤르켐(뒤르케임) 전공자로 예전에 <사회학과 도덕과학>(민영사, 1994) 같은 책을 낸 적이 있다. 뒤르켐 전공자가 많지 않았던 때라 눈길이 갔던 책이다(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연대와 열광>(창비, 1998)의 저자 김종엽 교수 정도다. 중도좌파쯤 될까. 두 사람의 뒤르켐 표기가 각각이다. 게다가 보통의 사회학 책에서는 '뒤르켕' 혹은 '뒤르껭'이라고까지 표기하는 탓에 어지럽다). 돌이켜보니 꽤 오래전 일이다. 서평은 저자가 진단하는 한국 사회학의 '위기'와 제시하는 '대안'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교수신문(08. 06. 30) 서구이론에 기댄 과장된 기술 … 저자 자신에게도 같은 잣대를

이 책은 프랑스의 현대 사회학자 부동, 고전 사회학자 토크빌과 뒤르케임의 학문적 세계를 소개하고 한국의 사회학 연구 동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저자는 프랑스의 중도 우파 사회학을 소개함으로써 지나치게 진보 일색으로 좌편향된 국내 학계의 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즉, 아직도 한국 사회과학자의 발목을 잡는 최대의 걸림돌인 이데올로기 문제를 보수파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진보 논객들에게 고차원의 이념 논쟁을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부동의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해 역사적 관성이나 구조가 개인의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의지와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행위가 구조를 창출한다는 시각에서 고전 사회학을 재음미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 민주화 운동권이 표방하는 사상적 입장도 비판하고 있다. 반면에 유교자본주의론이나 아시아적 가치론, 기독교적 가치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구 사상사에 등장하는 각종 이데올로기 개념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국내 학계에 실용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의 백미는 저자가 한국의 지적 풍토를 비판하며 제기한 폭발성 쟁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민주화 운동권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이 반독재 투쟁이라는 정당성을 주장하며 무비판적으로 서구의 각종 신좌파 이론을 받아들여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있으며 특히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 하버마스가 지배적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의 지적 현실에 대한 이러한 진단은 물론 과장된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하버마스의 이론을 가장 부지런하게 국내에 소개한 연구자 집단이 계급투쟁을 선도하거나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신중간계급을 주체로 한 건전한 시민운동의 육성과 제도적 민주주의 확립을 중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저자가 우려하는 사상적 혼란은 1980년대 후반의 한국 대학가를 휩쓸었던 사회구성체 논쟁, 국가론 논쟁, 엔엘(NL)과 피디(PD)로 알려진 변혁운동 노선 논쟁 등을 말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지식인 사이에 운동 노선을 둘러 싼 논쟁이 있었다는 것과 실제로 민중이 지식인들의 담론을 신봉했느냐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저자가 우려하는 프랑스 좌파 국가론의 영향은 거칠게 말해 남한이 식민지인가, 아니면 제한된 자율성을 가진 국가인가를 둘러 싼 논쟁이었으며 여기에는 풀란차스, 알튀세르의 국가론 연구자들이 실제로 한 몫 했다.

신좌파이론 수용, 역사적 맥락에서 봐야
물론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사회적, 역사적, 사상사적 맥락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최신 사상을 무작정 도입하는 통폐가 신좌파 이론의 수용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지적 자유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점이 오히려 사회과학적으로는 중요한 사실이다. 기존의 주류 사회학 이론이 격동하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보수파 학자들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유린하는 군사정권의 횡포를 방관하고 있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대안적 사회이론 체계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는 사실을 이 책은 간과하고 있다. 즉, 여기에는 한국 진보운동권의 사상투쟁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계급운동과 민족운동이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한계상황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다.

저자는 계몽적 차원에서 현대 프랑스 좌파 이론의 배경과 내용을 앙리 르페브르, 피에르 부르디외, 알렝 투렌의 학문 세계를 중심으로 소개했다. 이 내용은 한국의 지적 균형을 바로잡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반면에 논리적 단절을 무릅쓰고 프랑스의 지적 논쟁과 한국 학계의 생경한 논의 구조에 대한 비판을 병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1968년에 선진 자본주의 사회를 휩쓴 청년의 반란과 지성사적 맥락을 연결시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현재 한국에서 기존 보수와 진보를 동시에 무력화시키고 있는 평범한 청소년과 시민의 촛불 집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외래 이론의 현실 적합성을 지식사회학적으로 고찰해야 된다는 기준은 저자 자신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유교적 가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관심의 고조를 한국의 지적 정상화의 지표로 파악하는 저자의 시각은 치열한 논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치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는 일본과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경제적 성공과 무관치 않으며 특히 일본 보수파의 캠페인과 결합돼 있다는 정치적 현실을 놓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평가에서도 동일한 사고 구조가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시각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회현상에 대한 사회과학자의 관심을 촉구하는 긍정적 효과도 가지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는 연구자와 연구 대상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이 역설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중도 우파의 사회과학적 문제제기 신선
총체적으로 보아 이 책의 가치는 생소한 프랑스의 사회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한국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저자가 프랑스의 68년 5월 혁명에 비추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 시도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는 지식인 사회에서 사회학과 사회운동의 관계라는 고전적 논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인다. 저자가 중도 우파의 사회과학자라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명백하게 천명하며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도 독자에게 신선한 지적 충격을 주고 있다. 보수 논객의 내실화는 진보파에게도 경각심을 줄 것이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지적 풍토를 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이종구/ 성공회대·사회학)

08. 07. 05.

P.S.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저자가 제시하는 중도우파 사회학의 계보는 에밀 뒤르켐에서 레이몽 부동으로 이어지는 계보다. 부동은 '방법론적 개인주의'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이며, 국내에 제일 처음 소개된 책은 <무질서의 사회학적 위치>(교보문고, 1990)이다. 그리고 이후에 소개된 책이 <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가>(기파랑, 2007)이다. 피에르 부르디외, 알랭 투렌 등의 좌파 사회학자들과 분할하고 있는 사회학의 이론적 지형은 피에르 앙사르의 <현대 프랑스 사회학>(문학과지성사, 1992)에 소개돼 있다. 서지사항만을 확인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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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7-07 23:55   좋아요 0 | URL
뒤르켐의 출생지가 알사스의 독어 불어 공용지역이었어요.랍비인 아버지는 독어로 아들을 불러서 뒤르카임이나 뒤르켐이 맞답니다.하지만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에콜 노르말 출신이네요.저는 고교 사회교과서에서 기계적 연대 유기적 연대 외우면서 처음 접한 인물.


그런데 뒤르켐은 마르크스나 베버와는 달리 사회사상사에도 잘 안 나오고 사회학사나 사회학이론서에만 나오는 게 특이해요.아마 그 자신이 대학에서 분과학문으로서 사회학을 정착시키려 했기때문에 넓은 의미의 지성사적인 의미에서 사회사상가로 취급되진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토크빌은 제가 좋아하는 인물이예요.<구체제와 프랑스 혁명>을 읽었습니다.프랑스 혁명사의 고전이지요.을유문고의 토크빌 평전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로쟈 2008-07-08 00:21   좋아요 0 | URL
학부 2학년때 사회학강의를 들으면서 친숙해진 이름이고요, 저는 기든스의 <뒤르켐>을 읽었던 거 같습니다. 제 분야에서는 소쉬르하고 뒤르켐이 주로 같이 언급이 됩니다. 코저의 <사회사상사>도 뒤르켐을 포함하고는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김종엽 교수의 <자살론> 해설을 읽으면서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토크빌은 아직 손을 못대고 있는 인물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08 00:41   좋아요 0 | URL
그 무렵 인물들은 다들 1848년에 대한 반응들이 볼만한데 토크빌,마르크스,엥겔스,게르첸을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로쟈 2008-07-08 01:0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을 추천합니다!^^
 

저녁을 먹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편의점에서 오늘자 신문을 펴들었다. 마침 어제 도서관에서 일부를 복사한 계간 <문화과학>(2008 여름호) 소개기사가 실려있기에 옮겨놓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새삼스레 '국가란 무엇인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고, 오전에도 잠시 그와 관련한 글을 쓰기도 했다. '국가와 정치'를 특집으로 한 잡지의 글들과 좌담도 생각을 꾸리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경향신문(08. 07. 04) 2008년 대한민국,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플라톤 이래 이어져온 철학적인 화두이지만 촛불집회가 두 달 가까이 진행 중인 요즘 부쩍 많은 한국인들이 던지는 물음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해본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사먹지 않으면 된다’는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서, 또는 자신이 낸 세금으로 마련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온 몸이 흠뻑 젖는 경험을 하면서 그런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반면 한 언론사의 기자는 자신의 신문 사옥 앞이 촛불집회 시위대가 버리고 간 쓰레기로 넘쳐나거나 자사 현판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정부는 청와대만 지키는가.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2008년 한국의 국가는 어쩌다 ‘샌드위치’가 된 것일까.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국가는 지식인을 포함한 상당수 대중에 의해 강하게 ‘욕망’되고 있다. 촛불 대중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재협상 요구 시위는 국가를 부정하기는커녕, ‘나쁜 국가’가 아니라 ‘좋은 국가’이기를 바라는 저항에 가깝다. ‘청와대만 지키는’ 국가를 꾸짖었던 그 기자도 나름대로 ‘좋은 국가’의 상을 그리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다만 양측이 바라는 ‘좋은 국가’의 내용이 달랐을 뿐.

그러나 현실의 국가는 두 가지 다른 요구 사이에 후자를 택했다. 지난달 27일 경찰 저지선을 조선·동아일보 사옥을 보호하는 선까지 확장하며 촛불집회에 대해 한층 강경하게 진압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해당 기자가 있는 언론사를 찾아가 위문했다. 그렇게 하는 데 큰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공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국가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문화이론 전문계간지 ‘문화과학’ 2008년 여름호(제54호)가 마련한 특집 ‘국가와 정치’가 그 의문을 조금이나마 풀어줄지도 모르겠다. ‘문화과학’ 편집위원 고길섶씨는 여는 글에서 “지금 국가가 문제인 것은 유독 이명박 정권의 국가여서가 아니라, 이전 민주화된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그것은 “항상적으로 삶의 위기를 구조화하는 자본주의 국가이고, 더 광범하게 비극적 삶을 체제화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역할은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이 자유주의에서부터 이어져온 신자유주의 국가론의 요체다. 시장의 효율, 기업의 이윤 추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국가는 규제를 최소화하며 작아질 수 있는 대로 작아져야 하지만, 그것을 해치는 무언가가 등장할라치면 단호하게 ‘치안’을 강조하며 개입한다.

이러한 국가의 상은 장·단기적으로 계속 이어왔다. 이 책에서 임동근 공간연구집단 연구원은 자유주의 통치성을 분석하는 푸코의 논의를 빌려와 자유주의-케인스주의-신자유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꾸준히 유지되는 통치기제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는 이러한 국가 상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들어선 모든 민주 정부에서 한 번도 부정된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연속성은 “국가가 이른바 ‘공공선을 상징하든,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도구이든, 그것의 개입 없이 자본주의 사회는 한 순간도 재생산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문화과학의 논의는 이진경, 정성진, 조정환, 곽노완 등 한국사회 대표적 좌파 이론가들의 좌담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를 넘어서자는 맥락애서 ‘국가, 자본주의, 코뮌주의’ 문제에 접근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어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론과 베네수엘라 혁명 사례를 통해 국가에 대한 변혁 작업의 예들이 제시된다.(손제민기자)

08. 07. 04.

P.S. 보다 구체적으로 '대체 지금 대한민국이란 어떤 나라일까?'를 질문하게 하는 기사도 옮겨놓는다. 촛불집회에 평화주의자로 참가했다가 경찰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함민복 시인에 관한 것이다.

한겨레(08. 07. 05) 비폭력 외친 시인을 짓밟다니

전경1이 진압봉으로 그의 팔을 쳐서 쓰러뜨린다. 꿈틀거리며 일어서려는 그를 뒤따라 오던 전경2가 방패로 어깨와 등을 찍어 다시 쓰러뜨린다. 앉은 채로 뒷걸음질쳐 도망가는 그에게 이번에는 전경3이 다가와 수평으로 눕힌 방패로 가슴과 관자놀이를 힘껏 가격한다.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져 신음하는 그에게 전경4와 전경5가 욕을 퍼붓고 손가락질을 하며 지나간다….

인터넷 한겨레(hani.co.kr)의 동영상 뉴스 ‘경찰 ‘무차별 폭력’ <한겨레> 생방송 요약’의 한 장면이다. 6월 29일 시청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공권력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야만적인 폭력에 소름이 끼치고 치가 떨린다.

피해자는 당시 과격시위를 벌이던 중이 아니었다.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그는 시민들에게 고립되어 있던 전투경찰 한 명을 구출해 주었다고 했다. 자신이 평화주의자이며 시인이라고 안심시키자 전투경찰은 자기도 대학에 다니다가 입대했노라면서 울먹이더라고 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길 한복판에서 열 명 정도의 전경이 진압대원들에게 쫓기던 시민들에게 포위된 것을 보고 비폭력을 외치며 다가서다가 전경이 벗어던진 철모에 얼굴을 맞고 코에서 피를 흘리며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지하철 출구 쪽으로 비틀거리며 도망치던 그가 시위대를 쫓던 전경들의 먹이가 된 것이다.

이 불운한 피해자가 다름 아니라 시인 함민복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퍼뜩 든 생각은 ‘왜 하필이면 함민복인가?’라는 것이었다. 함민복이 누구인가. ‘한국판 <우동 한그릇>’이라고나 할 시 <눈물은 왜 짠가>의 시인이 아니겠는가. 설렁탕 한 그릇을 두고 가난한 모자와 배려심 깊은 식당 주인이 펼치는 감동의 무언극에 코끝이 찡해졌던 이들이 많을 것이다(혹시 그에게 진압봉과 방패를 휘두른 전경들 중에도 있지 않을까). 사십대도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고 강화의 버려진 집에서 시만 쓰고 사는 ‘천상 시인’이 바로 함민복이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긍정적인 밥>)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경계하는 사람,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뻘>)며 “말랑말랑한 힘”을 예찬한 이 평화주의자에게 야수적인 폭력이 웬말이란 말인가.

현재 그는 왼쪽 관자놀이 부분이 심하게 부은데다 정신도 혼미한 상태이고, 오른쪽 어깨가 결리고 허리 통증도 심해 거동이 불편한 처지라고 한다. 그는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전경들을 고발하고자 피 묻은 셔츠와 시청 응급진료막사에서 찍은 사진, 인터넷 한겨레 동영상 등을 피해자 진술서와 함께 제출해 놓았다. 시인으로 하여금 시 대신 피해자 진술서를 쓰게 만드는 사회란 도대체 어떤 사회일까.

‘꽃의 시위’(flower movement)란 말이 있다. 무력한 시인을 짐승처럼 짓밟은 저들에게 그가 쓴 시 한 편을 시위 삼아 들려 주고 싶다.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봄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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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5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7-07 08:56   좋아요 0 | URL
네, 동감입니다...

수유 2008-07-06 12:38   좋아요 0 | URL
기사일부 가져가요.. 시인의 쾌유를 빈다고 막상쓰려니 가슴 아프네요.

로쟈 2008-07-07 08:57   좋아요 0 | URL
그래도 큰 부상이 아니기를 바래야겠죠...
 

최근에 출간됐지만 알게 모르게 지나간 책 중의 하나는 저우하이힝의 <나의 아버지 루쉰>(강, 2008)이다. 제목 그대로 저자는 루쉰의 유일한 피붙이라고 한다. 비록 고작 일곱 살 때 아버지 루쉰을 여의긴 했지만. '루쉰의 아들로 살아온 격변의 중국'이란 부제처럼 중국 현대사를 한 인물의 시점에서 조감하는 책도 되겠다. 짐작에 중국 현대사의 인물들 가운데 국내에 루쉰보다 평전/전기류가 많이 소개된 경우도 없지 않나 싶다(마오쩌둥이 그 뒤를 이을까?). 겸사겸사 몇 권의 책을 꼽아둔다. 나도 두세 권 갖고 있는 듯하다...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 루쉰- 루쉰의 아들로 살아온 격변의 중국
저우하이잉 지음, 서광덕.박자영 옮김 / 강 / 2008년 6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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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루쉰 上
린시엔즈 지음, 김진공 옮김 / 사회평론 / 2007년 1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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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 루쉰 下
린시엔즈 지음, 김진공 옮김 / 사회평론 / 2007년 1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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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루쉰전- 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리라, 개정판
왕스징 지음, 신영복.유세종 옮김 / 다섯수레 / 2007년 9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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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7-03 23:23   좋아요 0 | URL
이 아들이 그 말썽 많은 염문의 주인공인 루쉰의 제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라고 하던데 이 책은 루쉰에 대한 이러저러한 안 좋은 소문을 방어하는 내용이 많다고 하더군요.

로쟈 2008-07-03 23:22   좋아요 0 | URL
네,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었다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7-03 23:25   좋아요 0 | URL
그 제자와 결혼이었는지 그냥 동거였는지 가물가물하네요.

로쟈 2008-07-03 23:32   좋아요 0 | URL
기사에 결혼 얘기는 없던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7-04 17:03   좋아요 0 | URL
오늘 이 책을 대충 훑어봤는데 이 아들은 피임을 잘 못해서 태어났다네요.콘돔 틈 사이에서 생긴아들인가 봐요.굉장히 솔직한 고백이네요.돈 좀 더 주고 좋은 걸 쓰지...

로쟈 2008-07-04 23:26   좋아요 0 | URL
그때 이미 콘돔이 있었나요??..

노이에자이트 2008-07-05 00:00   좋아요 0 | URL
.중일전쟁 무렵에 일본군에 콘돔을 지급했다하니 이미 있지 않았을까요? 더 민망한 피임법도 있지만...

루쉰P 2008-07-18 02:36   좋아요 0 | URL
'나의 아버지 루쉰'이란 책은 저도 사서 읽었습니다. 루쉰 선생에 대한 새로운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어요. 루쉰 선생은 주안이란 부인이 있지만 이 부인은 루쉰 선생이 일본 유학 시절에 집에서 어머니가 병환에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중국으로 부른 후 억지로 결혼을 하게 된 여인입니다. 봉건제도의 희생양이었죠. 루쉰 선생은 주안 부인과 성적인 관계는 전혀 맺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아이도 있을 수가 없었죠. 다만 루쉰 선생은 일본 유학을 돌아와서도 결코 이 여인을 무시하지 않고 같이 살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모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당시 중국 전통에 의하면 시집왔다가 거절당한 여인은 자신의 친정도 가지 못하고 죽어야하는 운명을 가졌기 때문에 또 어머니의 소원인 결혼이라는 이유 때문에 루쉰 선생은 어쩌지 못하고 결혼을 승낙해야 했습니다. 평생을 루쉰 선생은 자상하지는 않지만 생활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보태주었습니다. 주안 부인에 대해서는 나중에 허광평 여사와 결혼을 하여 같이 살게 되었을 때도 그 어떤 불이익을 주지 않았습니다.

루쉰P 2008-07-18 02:40   좋아요 0 | URL
허광평 여사와 맺어진 것은 루쉰 선생이 북경여자대학 교수 시절 정부의 탄압에 맞서서 싸우는 허광평 여사를 격려하다가 사랑의 감정이 싹터서 그때 당시에는 모든 사람과 논적들이 비난을 퍼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허광평 여사는 루쉰 선생 서거 직후 루쉰 선생 문집을 발간하고 일본군의 고문에도 불구하고 루쉰 선생의 모든 집필 서적을 금고에 옮겨 보관하다가 신중국의 수립 후 자신들이 생활하던 모든 옷이며 가구 등을 루쉰 선생 박물관에 기증해서 결국에 자신의 아들도 잠재울 침대조차 기증하여 박스에서 재워야 했습니다. 루쉰 선생이 반려자 만큼은 잘 골랐던거죠^^ 루쉰 선생은 56세에 돌아가셨는데 그 아들의 추측에 의하면 일본 군부의 사주를 받은 일본 의사에 의해 돌아가시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돌아가셨다라는 증언도 이 책에는 실려 있습니다.

루쉰P 2008-07-18 02:42   좋아요 0 | URL
피임을 잘 못해서 태어나고 안 태어난 것이 아니라 루쉰 선생의 작품집을 보고 거기에 대해 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상당히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라서 루쉰 선생의 잡문집을 보신다면 피임을 하고 못하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으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조금 설명을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길게 썼습니다.

로쟈 2008-07-19 10:58   좋아요 0 | URL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루쉰P 2008-07-19 19:58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저렇게 써 놓고 생각을 해보니 그냥 농담삼아 하신 말들에 제가 너무 진지하게 주석을 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어찌보면 루쉰교의 열렬한 신자인 듯 해요.ㅋㅋㅋ 루쉰 선생의 평전은 저기 있는 책들을 모두 읽어 봤는데요. 박홍규 교수의 루쉰은 한국인이 느끼는 루쉰에 대해, 린시엔즈의 인간 루쉰은 다른 평전들 중 가장 루쉰 선생에 대한 자료가 많아요. 책이 두꺼운 만큼요.^^그리고 조금 작가의 사적인 생각이 강한 평전인 듯 하더군요, 내용이 다 괜찮은데 막판에 루쉰 선생이 허광평 여사와 결혼 후에도 자신을 찾아오던 여제자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내용이 있어서 놀랐어요. 임현치의 루쉰은 시대 상황을 많이 분석하며 루쉰 선생을 쓴 평전, 신영복 선생의 평전은 중국공산당 입장에서의 약간 신격화된 루쉰전, 주정의 루쉰전은 사진 자료와 루쉰 선생 친구분들이 느끼는 루쉰에 대해 쓴 루쉰전,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전은 다른 루쉰전들 중에서 문학적인 색채가 상당히 강해서 뭐랄까 문장이 아름다운 루쉰전이라고 할까요. 저 중에 왕샤오밍 것 만 못 읽었어요.^^ 근데 위에 노이에자이트님의 말씀처럼 루쉰 아들이 쓴 루쉰전은 좀 변명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글이 많이 있어요. 하지만 다른 루쉰 평전에는 없는 자료들이 두,세 가지 있더군요. 루쉰 선생을 파고 들어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다지 쓸모는 없는 것 같아요. 엄영욱이 쓴 루쉰전은 별로 볼만한 가치는 없더군요. 사실 중국학자들이 연구한 것에 숟가락하나 얻은 느낌을 주더라구요. 어이가 없는 것은 이광수랑 루쉰 선생을 비교해 놓은 부분이 좀....암튼 로쟈님의 루쉰 컬렉션에 제 정보가 도움이 됐으면 하네요^^ 전 항상 신세만 지잖아요.^^

로쟈 2008-07-20 11:59   좋아요 0 | URL
루쉰 전문가가 따로 없군요.^^ '루쉰S'라고 닉을 바꾸셔도 되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19 22:45   좋아요 0 | URL
제가 본 것은 아그네스 스메들리 <중국혁명의 노래>인데 스메들리가 루쉰의 친구라서 1차자료의 성격이 강하죠.사랑 이야기는 없어요.국민당 남의사의 사상탄압이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장면이 많죠.또 하나는 조나선 스펜스의 <천안문>.여기엔 상해 5,30사건 무렵에 허광평과 가까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스펜스는 루쉰이 중국 공산당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했다는 점을 강조하죠.다케우치 요시미는 아시아주의자라서 관심이 많습니다.이 사람이 고른 루쉰 선집이 있었죠?

루쉰P 2008-07-20 20:56   좋아요 0 | URL
<천안문>은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중심인물을 3명으로 두고 썼는데 그 중 한 명이 루쉰 선생이었죠.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라고 할까요. 이야기식으로 풀어 쓴 것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 선집이 우리니라에 번역돼 소개돼 루쉰 선생에 대한 잡문 소개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번역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노신 선집이 노신문학회에서 출판돼 더욱 알찬 내용을 담고 있죠. 근데 이 책은 제본이 잘 돼 있지가 않아서 벌써 책 들사이가 벌어져서 갈라졌어요. 게다가 너무 두꺼워서 가지고 다니며 읽기에는 조금 불편합니다. 그런거에 대한 보안을 했는지 국내 학자 중 홍석표 교수가 루쉰 선생의 전집을 조금씩 내고 있습니다. '무덤' 등 총 3개의 작품집을 번역했는데 아직까지 후속작은 나오고 있지 않아요. 다케우치 요시미의 경우는 루쉰을 통해 아무런 저항없는 일본 문단을 비판한 비평가로 유명하죠. 나중에는 중.일 친선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으로도 유명하구요^^ '동양적 근대의 창출'이란 히야마 하사오의 책이 있는데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와 루쉰을 비교한 책으로 상당히 재미있어요. 시간있을 때 한 번 보세요.^^
스메들리는 루쉰의 소중한 친구로서 국민당의 감시 속에서 루쉰 선생 50세 생일 잔치도 벌여준 사람이죠.

루쉰P 2008-07-20 21:05   좋아요 0 | URL
전 로쟈님을 보면 루쉰 선생께서 쓰신 <무덤>의 서문에 이런 구절이 떠올라요.

'세상에는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지만, 오로지 스스로 마음 편한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그저 편한 대로 놓아둘 수 없는 일이어서, 그들에게 약간은 가증스러운 것을 보여 주어 그들에게 때때로 조금은 불편하게 느끼게 하고, 원래 자신의 세계도 아주 원만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려 한다. 파리는 날며 소리내지만 사람들이 그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점을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날며 소리낼 수만 있다면 기어코 날며 소리내려 한다.'

로쟈님이 한국의 한심의 번역물에 대한 잡문을 써 주실 때 전 노신 선생의 저 글이 떠오르더라구요. ^^ 하여튼 괜히 로쟈님의 서재에서 쓸데없는 글만 주룩주룩 써 놓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로쟈 2008-07-21 10:30   좋아요 0 | URL
재밌습니다. 앞으로 자주 '주룩주룩' 써주시길.^^

노이에자이트 2008-07-20 22:13   좋아요 0 | URL
나쓰메 소세키와 루쉰의 비교라...재밌겠군요.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루쉰P 2008-07-22 20:03   좋아요 0 | URL
네^^ 도움이 된다고 하시니 백수로 지내는 여름이 뿌듯하네요. 그리고 노이에자이트님 제가 추천해드린 동양적 근대의 창출은 상당히 정보면에서나 재미면에서나 뛰어난 책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와 루쉰 선생이 처한 중, 일 지식인의 처지에 대한 비교도 재미있고, 서로 왜 다른 글쓰기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분석도 있어요.
루쉰 선생이 일본 유학 시절 나쓰메 소세키의 집에서 자취도 했었고, 루쉰 선생의 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루쉰 선생은 자연주의파의 일본 소설은 싫어했는데 그 중 모리 오가이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탐독했다고 하더군요. 암튼 노이에자이트님도 만나서 반갑네요^^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번역 관련 기사를 하나 더 옮겨놓는다. 이번에는 한국어번역이 아니라 영어번역 문제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신뢰성이 높은 번역은 대상작품 72종(41편) 가운데 7종에 불과했다고 한다. 거기에 절반이 넘는 45종 가량이 신뢰하기 어려운 번역이었다는 것. 그래도 절반 가량은 읽을 만한 번역이라고 하니 번역원장의 말대로 '예상했던 것보다는 긍정적인 결과'일는지도 모른다. 번역을 통한 문화적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보다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기사는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7/h2008070202550186330.htm 참조).   

한겨레(08. 07. 02) "영어번역 한국소설 절반 가량 오·졸역”

영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 중 절반 가량이 오역이나 졸역 등으로 작품 이해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문학번역원(번역원·원장 윤지관)이 1일 발표한 ‘영어권 기 출간도서 번역평가 사업’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작품 41편 가운데 충실성과 가독성 등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작품이 21편으로 전체의 51%에 머물렀다.

구체적으로는 신뢰성이 아주 큰 에이제로(A0) 등급이 7종(17%), 신뢰할 만한 비플러스(B+) 등급이 14종(34%)였던 반면, 신뢰성에서 문제가 되는 비제로(B0)와 그 이하인 시플러스(C+) 및 시제로(C0) 등급이 각각 10종(25%)과 5종(12%), 5종(12%)씩이었다. 에이플러스(A+) 등급은 없었으며, 축약본이어서 판정을 유보한 작품이 두 종이었다. 작품이 아닌 번역본 종수별로 환산하면, 비제로 등급 이하가 45종(64%)이어서 전체의 3분의 2 가까이가 신뢰하기 어려운 번역본에 해당했다.

번역원이 이번 사업에서 조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영어로 번역된 한국 현대 소설 196종(장르 종합 56종은 별도) 가운데 41편 72종이었다. 시기상으로는 1917년에 발표된 이광수의 장편 <무정>에서부터 1999년 작인 공지영씨의 단편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에까지 이른다. 이번 사업의 평가위원장을 맡은 송승철 한림대 교수(영문학)는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 시대별 안배, 문학사적 의의 등을 고려해 평가 대상을 선정했다”며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번 평가 결과가 한국 소설 영문 번역 전체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번역원이 밝힌 오역·졸역의 사례로는 “화를 보지 마오”(이상, <날개>)를 “Don’t look at disaster”(올바른 번역은 ‘Don’t suffer misfortune’)로 엉뚱하게 옮긴 경우, “다낭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의 명단이다”(황석영, <무기의 그늘>)가 “This is the last of the civilians in Danang”(편집 과정에서 list가 last로 바뀜)으로 표기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 한국어 실력 부족으로 인한 오역과 번역자의 자의적인 축약 또는 해설적 첨가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번 사업을 주관한 번역원의 윤지관 원장은 “미국의 대학 등에서 영어로 된 한국 소설을 교재로 쓰고자 할 때 쓸 만한 텍스트가 없다는 등의 문제 제기가 있어 지난해 1월부터 사업을 시작했다”며 “그러나 실제로 평가 작업을 해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송승철 위원장은 “가독성보다는 충실성 쪽에 좀더 무게를 두고 평가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불만을 느끼는 번역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이번 평가 결과가 생산적인 토론으로 이어져 번역 비평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번역원은 소설에 이어 시의 영문 번역에 대한 평가 작업 결과를 내년 상반기 중에 내놓을 예정이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8.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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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7-02 00:09   좋아요 0 | URL
농촌소설 같은 경우는 옛날 농기구,나물,제사의식 등은 우리말 뜻도 모를 단어도 많던데 그걸 외국어로 번역하다니 대단한 실력이 요구되겠죠.

로쟈 2008-07-02 00:12   좋아요 0 | URL
거꾸로 외국소설을 우리말로 옮길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교수신문에서 인터넷 번역비판과 관련한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6461). 나 자신도 관련돼 있고 지난주에는 기자의 간단한 이메일 설문에 답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기자는 지난번 한국일보 기사에 힌트를 얻은 듯하다(http://blog.aladin.co.kr/mramor/2144892). 인터넷 번역비판과 논쟁의 장을 조금씩 열어가는 일에 이 블로그도 한몫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확인하게 된다(사실 주변에서는 무슨 '뻘짓'이냐는 시선을 더 많이 받고 있지만)...    

교수신문(08. 06. 30) '장미밭에서 춤추기’를 더 긴장케 하는 블로거의 힘

인터넷이 번역 비판과 논쟁의 장을 조금씩 열어가고 있다. 다른 매체에 비해 분량, 형식, 시기 등의 제한이 없으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서점 블로그는 오역 제기의 근원지로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파리8대학 명예교수인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 2007)의 오역 비판은 명예 훼손 고소 사건으로까지 번진 케이스다. 도저히 읽지 못할 번역이라는 게 ‘번역 비평 누리꾼’들의 한결같은 비판이었고, 이 책의 번역자 백승대씨가 알라딘 서점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쟈’, ‘FTA반대balmas’, ‘람혼’ 등을 고소한 것. 이들 중 ‘로쟈’, ‘FTA반대balmas’는 ‘이유없음’으로 현재 고소가 기각된 상태이고 ‘람혼’은 그 이후 다시금 자신의 블로그에 이 책 서론 전체에 대한 장문의 번역 정밀 독해를 올렸다. 지금 이 책은 전량 회수돼 판매 중지에 들어간 상태다.  



오역 정밀 지적해 번역서 전량 회수
백씨가 공개한 이력에 따르면, 그는 2001~2002년 교보증권에 근무했으며 2002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주식투자에 대해 연구했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프랑스 철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번역할 만한 책을 찾아보다 제목이 특이해서 저자를 알아보니 유명한 사람이라서” 번역하게 됐고 “불어 실력은 그다지 없지만, 사전 보고 한글로 옮기는 수준은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워낙 논쟁할 상대들이 아니라서 응대를 하지 않았다. 번역 문제라기보다 그들이 나를 음해하려 했기 때문”에 고소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불거지자 인간사랑 출판사 편집부 홍성례씨는 “비전공자에게 번역을 맡긴 것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며 “번역자와 합의가 되면, 새로 번역자를 모색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앞선 사례처럼 거센 반발도 있지만, 대부분은 역자나 출판사측이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게 ‘번역 비평 누리꾼’들의 중론이다.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체계이론1·2』(한길사, 2007)에 대한 번역 비판을 <연세대 대학원신문>(제157호)에 기고하고, 분량 상 지적하지 못한 오역들을 인터넷에 올린 블로거 ‘바다라네’는 출판사나 역자에게서 “전혀 반응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Gesellschaft’를 ‘공동체’로 옮긴 것은 최악의 번역어 선택이었고 그 외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번역어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문장 오역도 2권 후반부에 이르면 거의 한 단락에 하나 이상씩 나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번역자 박여성 제주대 교수(독일학과)는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부분이 일부 있었지만, 번역 용어상의 차이 부분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답했다. 더불어 한길사 편집부 배경진씨는 “이후 역자와 상의해 잘못된 부분은 고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의 장점인 상호 소통력이 번역 논쟁에 활력을 불어 넣기도 한다. 지난달 말께 콜럼비아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치는 아서 단토의 『일상적인 것의 변용』(한길사, 2008)의 번역 몇 구절을 놓고 ‘노이에자이트’, ‘qualia’, ‘제레카폴’, ‘규’, ‘carboni68’ 등의 블로거들이 댓글을 통해 논쟁에 참여했다. 50여개가 넘는 댓글이 이어지다 ‘qualia’가 세 가지 쟁점을 간추려 아서 단토 교수에게 메일로 질문을 보내 답신을 받아냄으로써 논쟁은 마무리 됐다. 그 결과, 역자가 ‘하찮은 대상들’로 번역한 ‘these unedifying objects’는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대상들’로, ‘가장 가당치 않은 곳(the least likely places)’의 ‘places’도 역자가 선택한 ‘전시장’이 아니라 ‘qualia’가 지적한 것처럼 ‘전시물’로 이해하는 게 올바른 것으로 판정났다. 



흔치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인터넷 상의 오역 제기로 인해 번역서가 재출간 돼 ‘책 리콜’에 들어간 사례도 있다. 새뮤얼 이녹 스텀프, 제임스 피저의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열린책들, 2004)는 지난해 11월말께 ‘히드라’라는 블로거에 의해 오자, 오역이 900여 군데 넘게 지적당했다. 예전 종로서적에서 출판된 것(2판)을 다시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재출간하는 과정에서 새로이 번역 저본으로 삼았다고 한 7판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결과였다. 얼마 전 개역된 이 책은 그간 출간된 1쇄~9쇄까지의 책들을 대상으로 지난 23일부터 교환에 들어갔다. 열린책들측은 “많은 독자들이 읽어 주셨던 만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이번 책 리콜은 출판사로서 당연한 조처였다”고 밝혔다. 자세한 교환방법을 알려면, 이 출판사의 홈페이지(http://www.openbooks.co.kr)를 참고하면 된다.
 
번역비평에 관한 인식 개선돼야

그간 인터넷을 통해 번역 비평을 해온 누리꾼들은 번역 질 향상을 위해 인터넷의 장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려야 할 필요를 강조했다. 이를테면, 번역 문제를 다루는 전문 매체를 인터넷상에 운영해 서평을 겸하면서 번역 문제를 검토하거나 저작권이 없는 고전들의 경우 공동 번역과 비평을 인터넷을 통해 활성화 하는 방안도 모색해 볼만하다는 의견을 줬다. ‘바다라네’는 “출판사로서는 모험이겠지만, 오역 지적이 이루어지고 역자와 직접 논쟁을 가능케 하는 공간을 인터넷상에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출판사를 통한 ‘오역 공개 접수처/논쟁장’에 미치지 못하지만 자신의 역서에 대한 정오표를 인터넷 상에 스스로 공개한 번역자들도 있다.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등을 번역한 ‘FTA반대balmas’와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 등을 번역한 강유원씨가 그들이다. 

물론, 인터넷이 ‘오역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 전에 번역 출판·비평에 대한 인식 전환과 토대 구축이 시급하다. ‘로쟈’는 “역자, 편집자, 독자가 서로 생산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저마다의 몫과 역할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 인문 번역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나아져야겠고, 번역비평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FTA반대balmas’는 “번역물의 향상을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총서’ 체제를 도입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학계의 유능한 학자들이 전공과 관련된 ‘총서’를 맡아서 운영하면 번역의 질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자신이 번역한 ‘역자 후기’만을 모은 두 번째 책을 지난달 펴낸 번역가 김석희씨는 번역 작업을 고통과 쾌락이 공존하는 ‘장미밭에서 춤추기’라고 표현 한 바 있다. 번역자가 장미 가시에 많이 찔릴수록 그 번역서를 읽는 독자들은 장미 향기를 보다 진하게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인터넷을 통한 번역 비판과 논쟁에도 장미의 가시와 향기가 공존하고 있다.(김창한 객원기자)

08. 07. 01.

P.S. 기사에서 언급된 루만의 <사회체계이론> 번역비판은 최근 출간된 <니클라스 루만으로의 초대>(갈무리, 2008)의 역자이자 루만 전공자인 정성훈씨의 것이다. 루만의 대저를 읽을 계획이 있는 독자라면, 미리 이 '입문서'부터 읽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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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7-0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산적인 '뻘짓'을 하고 계신 ^^ 로쟈님이 좋습니다. 위에 언급된 발마스님과 다른 분들도. 돈도 안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의미있는 일을 하고 계신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

로쟈 2008-07-01 17:06   좋아요 0 | URL
뻘짓을 하더라도 '생산적'이려고 애는 쓰고 있습니다.^^;

주니다 2008-07-0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저도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교환해야겠습니다.『일상적인 것의 변용』은 원서도 복사해놨는데, 읽을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없네요. 로쟈님의 여름방학은 언제나처럼 바쁘시겠죠?^^

로쟈 2008-07-01 17:05   좋아요 0 | URL
단토의 책 자체가 후기 저작들보다 읽기 까다롭더군요. 사실 오늘부터야 방학이긴 한데(계절학기가 있지만) 밀린 일들이 '쓰나미' 수준으로 덮쳐오고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할 텐데...

노이에자이트 2008-07-0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서 단토 논쟁에서 저는 별로 댓글 분량도 많지 않았는데 첫번째로 참여했다고 이런 기사에 나오는군요.

로쟈 2008-07-02 00:13   좋아요 0 | URL
^^

람혼 2008-07-0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기사로군요.^^

로쟈 2008-07-02 00:49   좋아요 0 | URL
람혼님이 더 반갑습니다.^^

열매 2008-07-02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신문같은데서 이런 이슈를 상세히 다루어줘야 하는데 이제라도 공론화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학술계의 다양한 첨예한 이슈들이 학술계 내에서의 자정작용으로 걸러져야 하는데 그런 필터링의 기능을 할 곳도 마땅히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을 해야할 곳이 딴짓만 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니 답답합니다.
<철학과 현실>이라는 철학자들이 내는 잡지를 보면 무슨 보수우파들의 집산지같습니다.
한국 기성의 철학과 교수들의 현실 파악이 얼마나 나이브하고 우파적이며 기성권력에 굴종적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학술적 기능이라도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하니 '철학'을 잡든 '현실'을 잡든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으로 한번씩 도서관가면 훑어봅니다. 볼 때마다 실망하구요.

로쟈 2008-07-02 01:11   좋아요 0 | URL
저도 안본 지 오래됐는데, 점점 얇아지고 있더군요...

Kitty 2008-07-02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철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번역할 만한 책을 찾아보다 제목이 특이해서 저자를 알아보니 유명한 사람이라서” 번역하게 됐고 “불어 실력은 그다지 없지만, 사전 보고 한글로 옮기는 수준은 된다” <- 눈을 믿을 수가 없네요. 이게 정말 번역자가 한 말인가요? 대담하다고 해야할지 솔직하다고 해야할지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스러운(?) 분이네요. 출판사는 또 뭐랍니까...

로쟈 2008-07-02 19:18   좋아요 0 | URL
좀 어이없는 경우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0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을 둘러싼 논쟁이 법정까지 가다니...무서워요.

아열대 2008-07-0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밥벌이가 바빠서 확인을 못한 사이 기사까지 나갔군요. ;;
그나저나 기사는 'places'를 전시장이 아니라 전시물이라고 못을 박아 놓았네요. 저는 아직까지도 전시장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
단토의 답장을 보아도 - once we set the object at an aesthetic distance, i.e., once we cannot use it, then we might begin to see that the object is beautiful. The urinal that Duchamp tried to exhibit in 1917 might have been set at an aesthetic distance by virtue of its placement in an exhibition space, like a gallery-라고 되어 있는데 이 구절의 어디를 보아 'places'를 전시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지 요령부득이로군요. 단토의 설명은 변기라는 오브제가 뒤샹에 의해 전시장에 놓였기 때문에 오직 '사용'의 관점이 담길 뿐인 일상의 눈으로는 발견하지 못할 미적 거리가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로쟈 2008-07-19 11:02   좋아요 0 | URL
덕분에 다시 읽어보니 모호함이 다 가시는 건 아니군요...

김상호 2008-07-14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철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번역할 만한 책을 찾아보다 제목이 특이해서 저자를 알아보니 유명한 사람이라서” 번역하게 됐고 “불어 실력은 그다지 없지만, 사전 보고 한글로 옮기는 수준은 된다”와 정말 대단하네요 @.@

로쟈 2008-07-19 11:03   좋아요 0 | URL
'올해의 번역자' 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