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06. 06. 05)에서 서평 하나를 옮겨온다. 데이비드 던컨의 <내 DNA를 갖고 대체 뭘 하려는 거지?>(황금부엉이, 2006)에 대한 것이다. 사실은 오늘까지 서평을 쓰기로 하고 받은 책인데, 좀 늦게 배송되었다는 핑계로 서평을 미뤄두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바쁘기도 하지만). 그래도 좀 찔리는 마음이 없지 않은 탓에 이거라도 일단 옮겨놓는다. 아직 한 챕터도 다 읽지 못했지만 미리 윤곽이라도 잡아두기 위해서. 필자는 최향기 기자이고, 제목은 '생명과학자들의 열정, 그리고 갈등'이다.

 

 

 

 

-저널리스트가 보는 과학자들의 모습은 어떨까? <내 DNA를 가지고 대체 뭘 하려는 거지?>를 단지 과학자들의 연구와 그 결과를 다루는 책이라는 면에서 흥미를 가지고 접한다면 실망을 금치 못할지 모른다. 이 책은 연구의 성과도 다루지만 그보다는 '과학자'에 대한 인터뷰와 그들이 평소 가지고 있는 생명과학에 대한 철학을 조명하고 있다.(*그나마 내가 읽은 책 중에서는 물리학자들을 다룬 <아인슈타인 방의 사람들>과 유사한 성격의 책이란 느낌이 든다. 물론 이 생물학자들은 방을 다 제각각으로 쓰고 있지만.)

-이 책에서 얘기하는 미국의 생명과학자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이는 제임스 왓슨이다. 바로 그가 젊은 시절 DNA의 구조가 이중나선 모형임을 밝혀 프란시스 크릭과 함께 노벨상을 공동수상해 언론에 크게 부각된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E. 던컨은 이런 문제에 대해 과학저널리스트로서 이렇게 짚고 넘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논란이 많은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과학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이런 과학자들의 이름은 분자생물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면 거의 모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언론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언론은 단백질 유전정보학, 유전자 변형 생물체, 리보핵산(RNA), 유전형질 전환 동물, 줄기세포처럼 복잡한 용어를 설명하는 데만 열중하거나 벤처기업의 동향, 주식시장의 상황,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이런 과학자들을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물음과는 달리 해답을 주거나 어느 과학자에게 도발적으로 질문을 던지지는 않고 있다. 다만 연구 성과를 둘러싼 현존 생명과학자들의 암투와 갈등을 가감 없이 소개하며 모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이 책에 나오는 콜린스 박사와 벤터 박사의 갈등은 인간 게놈 지도 분석을 둘러싸고 국가주도의 연구냐 민간주도의 연구냐는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런 갈등 속에서 대중들은 대체 저들이 그것으로 어떤 이익을 얻을 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민간주도의 연구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악마'로 비난받는 벤터 박사는 국가주도의 연구도 다를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연구가 처음에는 배척 받아 밀려 났고 나중에는 도용이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반대쪽에 있는 콜린스 박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노벨상 수상자로 명성이 드높은 왓슨 박사에 대한 주위의 평가는 존경보다는 그의 태도를 비판하는 쪽으로 기운다. 70대에 접어든 왓슨 박사를 찾아간 저자는 그런 왓슨 박사에게서 변하지 않은 연구의 열정만 볼 뿐이다. 이렇듯 세간의 평가와 자신의 만남을 교차시키며 이 책은 과학자들에 대한 얘기를 병렬식으로 나열하며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본질은 '과연 이들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대중적인 일깨움에 있다.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멜튼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가 두렵다는 이유로 새로운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면 정말 못 견딜 것이다. 위험에 대해서는 앞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한다. 왜 그런 실험을 하면 안 되는지를 말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연구하는 것에 대해 생물학적 재앙이 일어날 수 있지도 않겠냐는 저자의 직접적인 질문에 분자생물학자인 브레너 박사는 완고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일이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과학이 그런 일을 하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운을 남긴다. "내가 한 말을 다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나는 틀린 말을 자주 한답니다."

-이렇듯 저자가 보는 생명공학은 아직 가치판단을 하기에 어려는 기로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과학자들을 프로메테우스, 이브, 바울, 파우스트, 제우스, 모세와 같은 실험적이고 때로는 무모한 행동을 하는 종교, 신화, 소설속의 인물들에게 비유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건 무조건적인 재앙이나 무조건적인 축복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해 보인다.

06.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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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모스크바 통신문에 올렸던 글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북매거진 <텍스트>의 청탁을 받고 씌어진 글인데, 분량상 이 글의 축약본이 <텍스트>에는 실렸었다. 안톤 체홉(체호프)의 작품을 읽으면서 '세계문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글이다.

 

 

모스크바 체류 6개월째(*이 글은 2004년 9월 중순에 씌어졌다). 이런저런 ‘현지사정’으로 그동안 단 한편의 글도 기고하지 못했는데, <텍스트>는 새로운 기획의 한 꼭지를 내게 맡겼다. 편집진에서 내게 요구한 것은 “체홉을 읽는다는 것, 혹은 러시아 문학을 읽는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순수문학, 아니 그보다는 ‘진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의 유의미성에 대한 소고”이다. 러시아 작가들 가운데 유독 안톤 체홉(1860-1904)이 거명된 것은 올해가 그의 사망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그가 사망한 달인 지난 6월에 이미 관련행사들이 개최된바 있으며, 한국에서도 최근 이를 기념한 작품집 두 권, <벚꽃동산>과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4)이 출간되었다(*물론 이후에 5권짜리 선집을 포함해서 더 많은 책들이 나왔다. 가장 최근에 (재)출간된 건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이다). 새로 번역돼 나온 책들에 대한 리뷰를 겸하면서 ‘체홉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 <텍스트>의 성격에 부합하는 작업일 듯하지만, ‘현지사정상’ 내가 참조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어 문고본 체홉과 (후배에게 며칠 빌린) 한국어본 작품집 <귀여운 여인>(혜원출판사, 2000)뿐이다(이하에서의 체홉 인용 쪽수는 이 작품집의 것이며, 번역은 일부 수정됐다).

<텍스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나는 체홉의 단편들 중 <6호실>(1892)과 <상자 속의 사나이>(1898)를 다시 읽었고, 거기에 최근에 번역/소개된 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도서출판b, 2004)을 겹쳐 읽었다. 고진의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은 “세계종교에 대하여”인데, 나는 ‘세계종교’에 대한 고진의 사유를 ‘세계문학’에 대한 것으로 고쳐 읽어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해서, 이 글의 골격이 짜여진바, 나는 체홉의 두 단편 읽기를 통해서, ‘진짜 문학’, 곧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리고 그것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따져보고자 한다(이러한 주제가 다소 주제넘은 것으로 보인다면, 그건 이런 걸 주문한 <텍스트>의 탓이다).

체홉의 전기나 연보를 유심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것이 1890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서른에 감행한 사할린 여행이다. 알다시피, 체홉은 순전히 생계의 방편으로 모스크바대학 의학부 학생시절에 유머 단편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이 시기에는 ‘체혼테’ 등의 필명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어느덧 10년, 체홉은 자신의 삶과 작가생활에 있어서 어떤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를 타개/돌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 사할린 여행이었다.

 

시베리아 철도가 개설되기 이전이라 사할린 섬으로의 여행은 마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해야 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체홉은 1890년 4월에 길을 떠나 7월에 사할린 섬에 도착하고 3개월간 체류하면서 당시 유형지였던 사할린 섬의 실태를 조사하고 주민들 혹은 죄수들과 일일이 만나 면접카드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이때 작성한 카드만 8,000장 이상이었다). 그리고는 바닷길을 통해 다시 모스크바에 돌아온 것이 그해 12월이었다. 이 여행 이후에 그는 <시베리아 여행>(1890)이란 기행문과 <사할린 섬>(1895)이라는 아주 ‘객관적인’ 보고서를 발표하며, 문학사가들은 이 여행을 통해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보다 넓어지고 깊어진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사할린 여행 이후의 체홉을 ‘중기 체홉’으로 분류해도 좋으며(‘후기 체홉’은 <갈매기> 이후 드라마 작가로서의 체홉이다), 이 중기의 체홉은 ‘코믹’과 ‘우수’의 작가 ‘체혼테’와는 연속적이면서도 좀 다른 체홉이다. 즉, 그의 코믹과 우수는 저울추를 단 것처럼 다소 무거워진 코믹과 우수가 되었다(그걸 비극과 비애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한 시골 자선병원의 의사가 자신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던 차에 정신병동에서 유일하게 총명한 청년을 만나 자주 대화를 나누다가 미친 걸로 간주되어 감금되고 결국은 맞아 죽은 이야기를 그린 <6호실>과 자신을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보호/방어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허무한 죽음을 맞은 시골학교 교사를 그린 <상자 속의 사나이>는 이러한 중기 체홉의 대표작들이다.

 

<6호실>의 주인공인 의사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는 시골 자선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하여 아주 불결하고 암담함 병원상태를 둘러보고는 “이 시설이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거주자의 건강에도 매우 해롭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현재로서 가장 현명한 조치는 환자를 퇴원시키고 병원을 폐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320-1쪽). 그러니까 문제는 환자가 아니라 병원 자체였던 셈. 하지만, 그는 곧 그러한 ‘현실’과 타협하고 만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며 또한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그는 지성과 성실(=정직)을 사랑했지만, “박력(=의지)과 자기 권리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주변의 무지와 불성실(=부정직)을 그대로 방치하고 만다.

물론 안드레이 에피므이치도 처음엔 사명감을 가지고 매우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의 단조로움과 무익함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322쪽) 그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시골 읍의 사망률은 전연 줄지 않았고 환자의 발걸음도 도무지 그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는 결국 체념하게 되며 자신의 체념을 죽음과 고통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서 정당화한다(체념과 나태는 철학의 어머니이다!).

가령, “푸슈킨은 죽음에 임하여 무서운 고통을 맛보았고(참고로, 푸슈킨은 결투에서 복부관통상을 입고 반나절 이상을 신음하다가 죽었다), 불쌍한 하이네는 여러 해를 중풍으로 병석에 누워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개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나 마트료나 사비쉬나 따위가 고통을 맛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그들의 생활은 무미 건조하기 짝이 없어서 만약에 고통마저 없다면 아주 공허하게 되어 아메바의 생활과 다를 바가 없게 될 텐데 말이다.”(322쪽) 그는 이런 논리, 즉 우리가 아메바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고통은 필요하다는 ‘고통의 철학’에 압도당해서 아예 병원에 가는 일조차 그만두고 만다.

 

작가 체홉은 삶의 문제에 대한 ‘철학화’, 혹은 삶에 대한 철학의 (과잉)결정에 언제나 회의적이었다(때문에 그는 톨스토이즘과도 결별한다).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의 ‘고통의 철학’(=고통의 일반화) 또한 그 자체의 논리로는 완벽하지만, 거기에는 고통의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고진의 표현을 빌자면, 거기엔 ‘이 나’의 고통, 즉 고통의 단독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안드레이 예피므이치 라긴’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막연하게 존재했다. 즉 존재했던 것은 ‘안드레이 예피므이치 라긴’이란 단독자가 아닌 그의 유령이자 그림자였던 것이다.

“내가 왜 죽어야 하나?”가 아니라 “아아, 어째서 인간은 죽어야 하나?”와 같은 철학적 상념에 빠져서 책읽기에만 몰두하던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는 그러던 차에 어느 봄날 정신병동인 6호실을 방문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유일한 대화상대가 될 만큼 사색적이고 총명한 청년을 만난다. 피해망상증 환자로 분류돼 6호실에 수용된/감금된 이반 드미트리치 그로모프였다(사람들은 그를 애칭인 ‘바냐’로 불렀는바, 그는 ‘바냐 총각’이다).

“일반 사람들은 행복이나 불행을 외부에서 구합니다. 즉, 마차(=여행)나 서재(=독서)에서 구합니다만 사색적인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찾습니다.”(341쪽)란 의사 안드레이의 ‘철학’에, 환자 이반은 “그런 철학은 오렌지꽃이 피는 따스한 그리스에 가서나 설교하시죠. 여기선 기후가 맞지 않으니까요.”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의사가 늘어놓는 ‘스토아 철학’ 예찬에 대해서 환자는 성난 표정으로 말한다. “외적인 것, 내적인 것… 미안합니다만 내게는 이해가 안됩니다. 내가 아는 건 신이 나를 따뜻한 피와 신경으로 창조했다는 한 가지 사실뿐입니다! 유기적 조직은 생활능력이 있는 경우에 모든 자극에 대해 반드시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난 반응을 하는 거죠! 고통에 대해서 나는 비명과 눈물로 대답하고 비열성에 대해서는 분개로, 추행에 대해서는 혐오로 대답하는 겁니다. 유기체가 저급이면 저급일수록 감수성이 둔하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약하며, 반대로 고급일수록 현실에 대해 한층 더 민감하게 정열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런 것을 어째서 모르십니까? 의사이면서도 이런 시시한 것도 모르다니!”(342쪽)

다소 길게 인용된 이 대목에서(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안드레이와 이반, 즉 의사-환자의 관계는 전도된다. 이것은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수행한 ‘가치의 전도’를 연상시키는데(사실 저급한 존재와 고급한 존재의 구별은 바로 니체의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가 따라서 ‘정신병자’ 바냐의 레슨이라는 형식을 띠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이반 드미트리치 그로모프는 이렇게 말했다”가 되는 것이다(그의 성 ‘그로모프’의 어근인 러시아어 ‘그롬’은 ‘번개’ ‘벼락’이란 뜻이다).

이반이 무엇보다도 문제삼는 것은 인간의 평안과 만족이 자기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간주하는 현자적, 혹은 철학자적 태도이다. 그는 의사 안드레이에게 “당신은 인생을 깨닫느니 고통에 대한 멸시니 하는 문제를 꺼낼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즉, “당신은 예전에 괴로워한 적이 있나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나요? 당신은 어릴 때 회초리로 맞은 적이 있습니까?”(344쪽) 이에 대해서, 안드레이는 자신의 양친이 육체적 형벌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고 답하지만(즉, 그는 한번도 맞아본 적이 없다), 이반 왈 “하지만 난 아버지한테 사정없이 맞았죠.”(작가 체홉 또한 식료품 가게 주인이었던 아버지한테 어린시절 사정없이 맞았다.)

그러니 이반이 보기에 안드레이가 고통을 경멸하고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은 그가 생활(=삶)이란 걸 전혀 모르며 이론적으로만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에 대한 구분이나, 생활과 고통, 죽음에 대한 경멸 따위는 모두 러시아 놈팡이들의 철학에 불과하다(놈팡이들이 부유하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한 놈팡이 철학의 궁극적인 귀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같은 6호실에 감금돼 있는, 멍청한 얼굴에 뚱뚱하게 비계살이 찐 농부인바,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하거나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몸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 먹기만 하는 불결한 동물이었다.”(317쪽)

병동의 수위 니키타가 그의 시중을 들 때마다 자기 주먹이 아픈 것도 아랑곳없이 힘껏 때려 패지만, “무서운 것은, 그가 얻어맞은 사실이 아니라, 이 무감각한 동물이 구타에 대해서 비명이나 몸을 피하거나 눈을 부라리는 따위의 반응조차 나타내지 않고, 묵직한 통처럼 약간 흔들릴 뿐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무감각한 동물’ 혹은 ‘묵직한 통’은 현실을 초월해 있으며,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철학적인’ 통은 ‘디오게네스의 통’이라 할 만하다.

요컨대, 고통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이 농부야말로 철학자연하면서 고통을 무시하는 의사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의 짝패이자 이면이다(안드레이 왈 “디오게네스는 통속에서 살았습니다만 지상의 모든 국왕보다도 행복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한 이반의 결론은 이렇다. “당신은 고통을 무시하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 역시 손가락이 문에 찌이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댈 겁니다!”(345쪽)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는 이러한 이반 드미트리치와의 대화에 감명을 받아서 이후에 6호실에 자주 드나들게 되며 그로 인해서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사서 면직되며 결국은 ‘치료’를 위해서 강제적으로 6호실에 감금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그는 자신의 일상생활과 현실의 ‘바깥’이었던 이 정신병동에서야 비로소 생활이 무엇인지, 현실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된다. 즉, 그는 답답한 마음에 한밤중에 산책을 나가겠다고 수위인 니키타를 윽박지르다가 난생처음 구타라는 걸 당하게 되는바, “갑자기 니키타가 문을 홱 열더니 두 손과 무릎으로 난폭하게 예피므이치를 밀어젖혀 놓고 주먹을 들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는 파도 위로 떠오르려고 하는 것처럼 양팔을 휘젓기 시작하다가 누구의 침대인지 붙잡았다. 그때 니키타가 두 번 등을 후려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공포심을 가지고 또 한번 얻어맞을 것을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369-70쪽)

안드레이는 자신이 20년 이상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고통’에 대해서 몰랐을 뿐 아니라,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에겐 비로소 “양심이, 니키타처럼 완고하고 난폭한 양심이, 그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오싹 소름이 끼치게 하는 분노로 몰아세웠다.”(370쪽) 하지만, 그건 좀 뒤늦은 분노였다. 그는 바로 다음날 저녁 무렵에 뇌일혈로 사망했으니 말이다.

다소간 어이없는 주인공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상자 속의 사나이>는 <6호실>을 닮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상징적 공간은 ‘6호실’에서 ‘상자’로 더 축소되었다(덕분에 그 상징성은 더 확대된다). 6호실에는 적어도 대여섯 명의 환자가 함께 감금돼 있었지만, 시골학교의 그리스어 교사 벨리코프의 ‘상자’는 오로지 그만의 것이다. 그가 왜 ‘상자 속의 사나이’인가? 그는 “날씨가 매우 좋은 때에도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드는 데다가 반드시 솜이 든 방한 외투를 입고 외출”했기 때문이다.

화자인 동료 교사 부르킨에 의하면, “어쩌면 그것은 격세유전의 한 현상으로 인류의 조상이 아직 사회적인 동물이 되지 못하고 각자가 자기 동굴 속에서 살고 있었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건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그저 인간의 다양한 성격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243쪽) 어쨌든 벨리코프가 자신을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격리시켜 방어하려는 ‘상자들’로 자기를 감쌀수록 그에게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자질, 즉 사회성은 배제/결여되게 된다. 이 벨리코프가 찬양한 것은 과거의 세계, 그리스어의 세계뿐이었으며, 그에게 인간은 “듣기 좋고 아름다운 말” 그리스어의 ‘안트로포스’에 의해서 지시될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꽤나 똑똑한 동료교사들을 포함해서 학교 전체가 꼬박 15년 동안 “언제나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들고 다닌 이 사나이”,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던 이 소심한 사나이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러시아 연구자들은 알렉산드르 3세(1881-1894)와 벨리코프의 친연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나이가 마흔이 넘은 이 노총각 벨리코프를 타지에서 온 동료교사의 누이인 서른 살의 바렌카와 결혼시키려던 일이 어떻게 실패로 돌아갔는가에 대한 것이다. “아무 일도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란 말(이 또한 그의 ‘상자’이다)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이 사나이에게 결혼이란 ‘일’만큼 어울리지 않는 것도 드물어 보이지만, 하여간에 그는 주변의 모의 덕분에 거의 결혼할 뻔한다. 하지만, 결혼 뒤에 어떤 일이 생길는지 확실할 수 없었던 벨리코프는 바렌카에 대한 청혼을 주저하며,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 만다.

사건이란 건 언제나 활달하며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바렌카가 어느 일요일에 동생 코발렌코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걸 벨리코프가 목격하게 된 것을 말한다. 너무도 날씨가 좋아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활기차게 재잘거리고 지나간 바렌카와는 대조적으로 벨리코프는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로선 부인네나 처녀가 자전거를 탄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요컨대 ‘상자 속의 사나이’가 견딜 수 없었던 건 ‘살아있는 삶’이었다). 게다가 그건 공고로써 ‘허가’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충격을 받은 벨리코프는 다음날 학교도 결근한 채 저녁 무렵 여름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역시나 두꺼운 옷을 껴입고 주의를 당부하러 코발렌코를 찾아가지만, 오히려 봉변만을 당하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바렌카는 예의 또 ‘하하하’ 하는 웃음을 터뜨리고, 결국은 ‘무슨 일이 터져버린’ 벨리코프는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앓아 눕게 되며 한달 뒤에 죽고 만다.

벨리코프 이야기의 결말은 이렇다. “관 속에 든 그의 표정은 조용하고 편안해 보였으며 명랑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흡사 드디어 상자 속에 들어가게 해 주어서 이제 두 번 다시 그곳에서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기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렇죠, 그는 글자 그대로 자기의 이상에 도달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경의를 나타내려는 듯 장례식 날은 잔뜩 흐려서 비가 올 듯한 날씨였으므로 우리들은 모두 덧신을 신도 우산을 들고 있었습니다.”(255-6쪽)

 

 

요컨대, ‘상자 속의 사나이’의 삶은 상자(관) 속에 들어감으로써 완성된 것인데, 그러한 사실이 암시하는 것은 그의 ‘상자-속의-삶’이란 것 자체가 이미 절반은 죽은 삶이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죽음(=상자)이란 외피를 두름으로써만 연명할 수 있었던 삶, 살아있지만-죽어있는 삶을 살았던 것. 그렇다면, 이 작품 또한 ‘살아있는 삶’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인바, 이 주제는 성 바울의 주제(“너희는 너희가 살아있는 줄 아느냐?”)이면서 동시에 러시아문학의 고유한/유구한 주제이기도 한다(특히 도스토예프스키 계보의 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체홉은 러시아 문학의 전통 바깥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주제를 제기만 할 뿐, 어떠한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구별된다.

사실 <상자 속의 사나이>는 벨리코프의 죽음만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는다. 벨리코프의 죽음으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제는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생활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똑같이 고지식하고 걱정스럽고 무의미한 생활,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도 않은 생활, 요컨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생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벨리코프는 무덤에 묻혔지만 그런 ‘상자 속의 사나이’는 많이 있으며 앞으로 또 나올 것이었다. 러시아 연구자들은 이것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니콜라이 2세(1894-1917)의 치세에 견주지만,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꾼” 치세가 러시아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화자 부르킨은 헛간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쳐다본다. “(그에겐) 어둠의 적막 속에서 여러 가지 고통이나 괴로움이나 슬픔에서 벗어나 밤의 그늘에 감싸여 왠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슬프고 아름다워지고 어쩐지 하늘의 별들도 정다운 감동을 지닌 눈길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지상에는 이제 악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원만하게 수습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257쪽) 벨리코프의 ‘코믹’한 삶에 덧붙여진 것은 이렇듯 지상의 악에 ‘무심한 자연’이 낳는 ‘우수’이다(‘무심한 자연’은 투르게네프의 주제이다).

체홉과 동시대의 러시아 작가 레스코프는 “사방이 다 6호실이다. 이것이 러시아다”라고 말했고, 한 여성 작가는 “저에겐 전 러시아가 상자 속 같이 느껴진답니다”라고 체홉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진단을 더 확장하여 “세계는 6호실이다” 혹은 “세계는 상자 속이다”, “우리 모두는 상자 속의 인간”이라고 일반화시켜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예 ‘상자성’이라는 일반 개념까지 만들어서 말이다. 그럴 경우, 체홉의 문학은 러시아 문학을 거쳐서 문학 일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것이 문학이 갖는 ‘개별성(부분)-일반성(전체)’의 구도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언어와 비극>의 한 장 “단독성과 개별성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옛날 논리학으로는 결코 ‘이 나’와 같은 것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문학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근대소설에서는 확실히 일반적이지 않은 ‘이 나’가 쓰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별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이미 일반적인 것입니다. 근대소설은 오히려 개별적인 것이 일반적인 것을 의미하는 장치입니다… 따라서 단독성은 문학이 아니라 반대로 논리학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356-7쪽)

고진에 따르면, 문학(특히 근대소설)은 ‘개별성-일반성’의 구도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논리학이 다루는 ‘단독성-보편성’의 구도와는 무관하다. 즉 “마담 보바리는 나다, 곧 우리는 마담 보바리이다”라거나 “안나 카레니나는 나다, 곧 우리는 안나 카레니나이다”와 같은 개별성의 일반화, 혹은 상징화가 근대소설이 가진 특장이었는바, 그것은 진정한 단독성/보편성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인용한 대목이 내게는 그렇게 읽힌다. 하지만, 고진 자신이 주장하듯이 단독성의 문제는 “고유명의 문제로 귀착”(449쪽)되며, 문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고유명의 세계인데, 문학에서는 단독성이 발견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잉)일반화로 보인다.

“우리는 마담 보바리이다”라거나 “우리는 안나 카레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마담 보바리’나 ‘안나 카레리나’라는 개별성이 ‘우리’라는 일반성으로 곧장 환원된다는 걸 뜻하지 않는다. “어떤 단어가 고유명인가 그러지 않는가는 개체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455쪽)다는 고진의 주장을 그대로 되돌려주자면, 문학(이라는 고유명사적 세계)에서 개별성-일반성의 구도를 보는가, 단독성-보편성의 구도를 보는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즉, 그것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간) 결정하는 것이다. 더불어, 근대소설은 근대소설 자체를 넘어선다는 고진의 주장을 역시 그에게 되돌려주자면, (진정한)근대소설은 “근대소설은 오히려 개별적인 것이 일반적인 것을 의미하는 장치”라는 규정을 넘어선다.

하지만, 고진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에도, 체홉의 문학은 근대소설에 못 미치거나 그것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에서 개별적인 것(고유명사)은 언제나 일반적인 것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체홉의 문학은 ‘개별성-일반성’의 구도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고진은 그러한 구도를 넘어서는 일이 ‘단독성에 집착하는 작가’ 카프카처럼 오히려 알레고리를 선택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언급하는데, (체홉의 경우를 보건대) 알레고리가 아닌 다른 방식 역시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것은 알레르기의 방식이다.

가령 <상자 속의 사나이>의 결말에서, 부르킨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수의사 이반 이바느이치가 “우리가 숨막히는 좁은 동네에 살면서 필요도 없는 서류를 쓰거나 카드놀이를 하는 것, 그것도 역시 상자와 다름없지 않을까요? 우리가 게으름뱅이나 궤변가나 주책없는 경박한 여자들과 일생을 보내고 여러 가지 어리석은 말들을 주고받는 것, 그것도 일종의 상자가 아닐까요?”(257쪽)라고 동의를 구하면서 “이제는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없어요!”라고 결론을 내리자, 부르킨은 이렇게 대꾸할 따름이다. “또 얘기가 빗나갔군요. 이반 이바느이치. 아무튼, 오늘은 잠이나 잡시다.”(258쪽)

 

후기 톨스토이식의 ‘(도덕적) 교화로서의 문학’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체홉은 우리의 삶이 그렇게 한 순간에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언제나 거창한 이념이 아닌, 삶의 ‘부스러기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한 그가 모든 종류의 일반화, 곧 철학화에 알레르기를 보였던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알레르기를 선택함으로써, 체홉의 문학은 고진이 말하는 ‘개별성-일반성’의 구도를 넘어서 ‘단독성-보편성’의 구도로 진입한다.

‘개별성/일반성’과 ‘단독성/보편성’을 구별하는 고진의 사유가 가장 빛을 발하는 대목은 (내 생각에) 세계종교론에서이다. 고진의 ‘세계종교’와 대별하고 있는 것은 ‘공동체의 종교’인바, 이것은 “인간이 집단이나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해 강제되는 다양한 구조/시스템”(241쪽)이다(고진이 이렇듯 종교를 광의의 의미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거의 문화와 등가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 공동체 종교의 대전제는 안(=내부)과 바깥(=외부)의 구분이다. 반면에 이러한 공동체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출현한 세계종교는 더 이상의 외부가 없는 세계, 즉 ‘외부가 없는 세계’로서의 ‘무한한 세계’를 제시하는 종교이다. 이 세계종교의 구호는 두 가지인바, “신을 두려워하라”와 “타자를 사랑하라”가 그것이다.

고진은 이러한 관점을 유대교에 적용함으로써 유대교에 내재해 있는 (모순적인) 두 가지 계기를 ‘모세의 신’과 ‘야훼의 신’으로 구별/분리해낸다(이러한 구별/분리를 매우 힘겨워하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지젝과 대조된다). 그에 따르면 야훼의 신은 유대 공동체의 신이며, 반면에 공동체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모세의 신은 세계종교의 신이다. 이 모세의 신은 사람들에게 ‘공동체에서 나가라’라고 이른바 ‘사막에 머물라’고 고한다(259쪽). 그리고 이때의 ‘사막’은 꼭 물리적인 사막이란 의미가 아니며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라는 의미이다.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상업적 공간이고 교통공간이다(고진은 사회를 그러한 교통공간으로 규정한다). 독백이 아닌 대화가 가능한 것은 그러한 (교통)공간, 즉 ‘사막’에서일 뿐이다.

 

 

 

 



 

 

 

세계종교가 ‘사막의 종교’란 의미에서 세계문학 또한 ‘사막의 문학’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것은 모든 공동체를 거부하는 공동체 ‘바깥의 문학’이며,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문학’이다. 거꾸로 공동체의 존속과 안녕을 위한 문학은 어떠한 경우에도 세계문학이란 이름에 값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문학은 세계문학이 아니며, 세계문학은 민족문학이 아니다. (올바른)민족문학이 곧 세계문학이 된다고 믿는 것은 우리의 공동체적 편견에 불과하다. 세계문학이란 야훼의 신이 아닌 모세의 신을 섬기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문학의 대척점에서 공동체의 문학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야훼의 신이 번창하듯이 공동체의 문학 또한 번성해왔고 번성해갈 것이다. 이것을 나는 ‘상자 속의 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상자 속의 문학’은 공동체문학의 다른 이름이고 민족문학의 다른 이름이며, 상업주의 문학의 다른 이름이다(상업주의는 고진이 말하는 ‘상업적 공간’과 무관하다). 이 ‘상자 속의 문학’은 모든 외부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종족과 재산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든다. “항상 색안경을 끼고 털 스웨터를 입은 데다가 귀를 솜을 싸고, 합승마차를 타면 반드시 포장을 치게 한다.” <상자 속의 사나이>에서 벨리코프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상자 속의 문학’이 가장 편하게 들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상자(관) 속이다.

앞에서 나는 체홉의 전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1890년의 사할린 여행이라고 적었다. 고진의 표현을 빌자면, 사할린이야말로 체홉에게서 공동체의 바깥, 즉 ‘사막’이 아니었을까? 그가 ‘(재능 있는) 생계형 작가’에서 진정한 작가로 발돋움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나는 그 ‘사막의 발견’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진에 따르면, 이 ‘사막의 발견’은 데카르트에게서 의심하는 주체, 즉 ‘코기토의 발견’에 맞먹는 것이다. 코기토란 것은 상이한 다수의 공동체의 차이를 지각하는 것이고, 자기가 사는 공동체의 임의성/우연성을 아는 것이다(265쪽).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인류학적’ 코기토이며, 체홉이 사할린 섬에서 수행했던 작업 역시 (우연찮게도) 인류학적 현지조사였다.

 



<6호실>에서 6호 병동이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에게 뜻하는바 또한 ‘사막’에 다름 아닌데, 그곳에서 자신과 전혀 생각이 다른 타자, 즉 다른 언어로 말을 하는 이반 드미트리치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즉 6호실은 그의 삶에서 유일한 교통공간이자 사막이며, 거꾸로 소도시 사람들에게는 ‘공동체’를 위해서 배제되어야 하는 ‘외부’ 공간이다. 병동 수위 니키타의 물리적 폭력은 공동체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구분하는 비가시적 폭력의 가시적 대응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방이 다 6호실이다. 이것이 러시아다”라고 한 레스코프의 말은 <6호실>에 대한 부적절한 일반화이다. 러시아에는 ‘6호실’이 넘쳐나는 게 아니라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우리에게 6호실을 달라!”고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해서 겉보기와는 달리, 교통공간으로서의 ‘6호실’은 ‘상자’와는 전혀 다른 의미연관을 갖는다. <상자 속의 사나이>에서 ‘6호실’에 대응하는 것은 (가능할 뻔했던) ‘바렌카와의 결혼’이다. 그것이 공간으로 표시될 수 있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바렌카는 소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온 타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소러시아어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큰소리로 ‘하하하’ 웃는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벨리코프 또한 그녀의 그러한 모습에 반하지만, 그에겐 자신의 ‘상자’를 벗어 던지고 진정 타자를 사랑할 용기가 결여되어 있었다. 때문에, 갑자기 ‘돌발적인 사건’(kolossalischeSkandal)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그는 만들어내기라도 했을 텐데), “그도 결국은 청혼해서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결혼이 성립되었을 것”(250쪽)이라는 부르킨의 예상은 부정확해 보인다. 그가 말하는 ‘돌발적인 사건’이란 벨리코프에게서 ‘진정한 사건’을 가로막는 버팀목으로서의 유사-사건이기 때문이다. 벨리코프의 삶에서는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자세하게 읽어본 체홉의 두 작품 <6호실>과 <상자 속의 사나이>는 각각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이반 드미트리치’, ‘벨리코프-바렌카’란 고유명 쌍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만남은 (외부적) 편견에 의해서, 그리고 (내부적) 의지 결핍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하지만, 고유명이 관여한다고 해서 어떤 이야기가 막바로 보편성의 차원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고진이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문학의 보편성이란 건 그것이 (고진의 용어로) ‘공동체’가 아닌, 교통공간으로서의 ‘사회’를 문제삼을 때 얻어진다. 내가 체홉의 문학을 공동체의 문학이 아닌 세계문학의 범주에서 읽고자 하는 것은 그에게서 그러한 ‘사회에의 관심’을 읽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대략적이나마 ‘진짜 문학’으로서의 ‘세계문학’이 무엇인지는 밝혀졌으리라고 본다. 이제 그것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따져볼 차례이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며 이미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한 문학은 우리게 (우물이 아니라) ‘사막’을 보여주는 문학이며 ‘사막’을 체험하게 하는 문학이다. 즉, 그것은 우리에게 인류학적 여정을 가능하게 문학이다. 해서,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임의성/우연성을 자각하게 함과 동시에 세상은 넓다는 건 교육하는 문학이다. 고진이 인용하고 있는 ‘non-Jewish Jew’(비유대적 유대인)이란 표현을 비틀면, 우리로 하여금 ‘non-Korean Korean’(한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한국)문학이 가져야 할 몫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문학을 갖고 있는가?

04.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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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7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목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이 서재에 초창기부터 자주 들락거리시는 분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재작년 연말에 모스크바 통신문에 올렸던 글의 제목이 '해체와 정의의 가능성'이었고, 데리다의 <법의 힘>의 일부분을 읽고 정리한 것이었다. 이 페이퍼는 그걸 다시 정리한 것이다(내지는 다시 정리하려는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릴 듯하지만...

 

 

 

 

아무리 크리스마스이고 연말 정서에 취해 있다고 해도(*이 글은 2004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씌어졌다), ‘법의 힘’을 무시해서는 곤란할 것 같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읽은 대목을 정리해두겠다고 해놓고 입 닦는 건 혹 ‘사기죄’에 걸리진 않을까? 해서 입막음으로 약간의 시늉은 해두어야겠다. 책들을 펴놓으시길 바란다. 자크 데리다, <법의 힘>(문학과지성사, 2004).(음, 책은 지난 7월에 나왔군.) 1부의 제목은 ‘법에서 정의로’이다. 제목부터 벌써 기죽이지 않는가? 역자에 따르면, 이는 또한 ‘정의의 권리에 대하여’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런 ‘복화술’이 법에 고유한 것인지, 데리다만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학부시절 법학과 경제학 강의를 하나도 듣지 않은 걸 은근한 자랑으로 삼고 있는 나이지만(그러니까 나는 ‘법’과 ‘경제’를 고의로 무시했던 것인바, 결정적으로 나는 ‘돈 버는 법’을 잘 모른다. 안쓰럽게도 이 때문에 고생하는 건 나보다도 내 주변 사람들이지만), 이럴 때는 (‘무시’가 발각되는 게 아니라) ‘무식’이 탄로날까봐 ‘긴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짐작에 (내가 들어본 적이 없는) ‘정의의 권리’란 말은 데리다의 의도(?)와 무관하며, 다만 프랑스어의 중의적 효과이지 않을까 싶다. 기억에, 본문에서 ‘정의의 권리’란 말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확실치는 않지만(한번 읽었기 때문에), 그럴 법한 것이 데리다가 일차적으로 논증하고 있는 것은 법과 정의의 차이/구별이지 않은가?

“법은 정의가 아니다. 법은 계산의 요소며,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당하지만, 정의는 계산불가능한 것이며, 정의는 우리가 계산불가능한 것과 함께 계산할 것을 요구한다.”(37쪽) 법은 계산가능하지만, 정의는 계산불가능하다. 산술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유한과 무한이다. 따라서 ‘정의의 권리’ 혹은 ‘정의의 법’(불어의 ‘droit’는 ‘법’과 ‘권리’를 모두 뜻하므로)이란 말은 ‘무한의 유한’이란 말로 번안될 수 있으며, 이것은 무한/정의에 대한 법적(?) 침해이다. 법이 정의의 상 아래에서 심판될 수는 있지만, 정의가 법정으로 소환될 수는 없다. 정의는 법/권리를 넘어서기 때문이다(계산불가능성으로서의 정의는 소환불가능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것은 권리를 부여받거나 양도받을 수 없으며 (법에 따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계산불가능성으로서의 정의는 다만 요구/요청될 따름이다.



저자인 데리다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대로, <법에서 정의로>는 1989년 10월 미국의 카(르)도조 법대 대학원에서 ‘해체와 정의의 가능성’이란 주제로 개최된 학술콜로퀴엄에서 발표된 것이고, 이 발표(영어본) 텍스트는 나중에 (1992)란 단행본에 수록되었다. 나는 이 책을 제본해서 갖고 있는데, 그걸 구하러 몇 년 전에 법대도서관까지 찾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십 몇 년 동안 대학을 다니면서 법대도서관에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법전’들을 혐오하는 편이다. 그 일본어투의 한국어들을 말이다. 그런 내가 제 발로 법대도서관까지 찾아가게 만드는 것이 ‘데리다의 힘’이다.

데리다는 먼저 자신이 ‘기조연사’로 초대된 콜로퀴엄의 주제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그는 다른 글들에서도 대부분 ‘타이틀’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하곤 한다). 그가 문제삼는 것은 ‘해체’와 ‘정의의 가능성’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성마른 연설자’로 지칭하면서, 거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어떤 수사법도 ‘해체’와 ‘정의’의 이런 연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어서, “나는 이 사물들 또는 이 범주들 각각에 대해, 그리고 이 유사범주들에 대해서는 기꺼이 말해볼 수 있지만, 이런 식의 질서나 분류법 또는 어구에 따라 말할 수는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11쪽)

거기서 ‘범주들’과 ‘유사범주들’은 문법용어로 말하자면, 실사(實辭)와 허사(虛辭)를 말한다. 즉, ‘해체와 정의의 가능성’이란 어구(=단어결합)에서 ‘해체’ ‘가능성’ ‘정의’가 실사(=실질형태소)이고, ‘와’와 ‘의’가 허사(=형식형태소)이다. 역자는 ‘그리고’ ‘정관사 la’ ‘-의’라고 옮겼는데, 이 꼼꼼한 번역서에서 옥의 티라 할 만하다. ‘그리고’는 물론 불어의 ‘et’(영어의 ‘and’)를 옮긴 것일 테지만, 그 ‘et’에 해당하는 것이 ‘와’이며, ‘정관사 la’는 ‘해체와 정의의 가능성’이란 번역어구에 대응어를 갖고 있지 않다(이 제목의 불어문구 자체가 제시돼 있지 않다. 그러니 번역할 필요가 없는 단어이다). 데리다의 말은, 자신이 ‘해체’ ‘와’ ‘정의’ ‘의’ ‘가능성’ 각각에 대해서는 기꺼이/충분히 말해볼 수 있지만, 그걸 다 결합한 ‘해체와 정의의 가능성’이란 어구에 대해서 말하는 건 곤란하다는 것이다(흔히 하는 말로 ‘주최측의 농간’이라는 것).

그는 잠시 자문자답을 하던 끝에 이 문제를 이렇게 일단락을 짓는다: “이 최초의 허구적인(=가상적인) 의견 교환에서부터 이미 법과 정의 사이의 애매한 미끄러짐들이 예고된다. 해체의 ‘고통’, 해체가 겪는 고통이나 또는 해체가 사람들에게 주는 고통은 아마도 법과 정의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규칙과 규범, 그리고 확실한 기준의 부재 때문에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는 규범이나 규칙, 기준이라는 개념들에 관한 문제다. 판단을 허락해주는,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 문제다.”(12쪽)

자신이 기조연설자로서 (불어가 아닌)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음을 숙고/강조하면서 데리다는 (데리다답게) 이 언어의 문제로부터 연설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즉, 그는 불어에는 없고 영어에만 있는 관용표현 두 가지를 인용하는 것에서 법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하는 것. 그 하나가 ‘to enforce the law’인바(다른 하나는 ‘address’란 동사이다), ‘법을 집행하기(법 집행)’이란 내용을 영어/불어/한국어는 각각 ‘to enforce the law’(직역하면 ‘법을 강제하기’)/‘appliquer la loi’(직역하면 ‘법을 적용하기’)/‘법을 집행하기’라고 표현한다. 이 셋은 동의어이다.

하지만, ‘to enforce the law’란 영어표현에서 데리다가 끄집어 내고자 하는 내용은 불어에도 우리말에도 없는데, 그건 바로 힘(force)이다. 이 법과 힘의 관계는 오직 영어표현만이 명시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적용’이라거나 ‘집행’이란 표현에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 고로, 이 녀석들이 힘/법을 좋아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 해서, ‘to enforce the law’를 불어나 한국어로 번역하게 되면, “에 대한 직접적인 문자상의 암시를 상실하게 된다.”(강조는 나의 것) 

어쨌든 이 영어표현에서 강하게 암시되는바, “적용 가능성이나 ‘강제성’은 법에 대하여(…) 외재적이거나 부차적인 가능성이 아니다. 그것은 ‘법으로서의 정의’ 개념 자체에, 법이 되는 것으로서의 정의, 법으로서의 법 개념 자체에 본질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힘이다.”(15쪽) 요컨대, 힘과 법의 관계는 본질적이다. 칸트의 <법론>에서도 환기되는 바이지만, “분명 적용되지 않는 법들이 존재하지만, 그러나 적용 가능성이 없이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으며, 힘이 없이는 어떠한 법의 적용가능성이나 ‘강제성’도 존재하지 않는다.”(16쪽)

 

 

 

 


역자가 계속 ‘적용가능성’으로 옮기고 있는 건 우리말의 ‘집행’을 뜻한다. 그러니까 (강제적인) ‘집행’이 없다면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참에 언급하자면, 셰익스피어의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는 바로 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최상의 텍스트이다(데리다가 왜 언급하지 않았을까 의아할 정도이다. 그는 다른 자리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해체도 시도한 바 있지 않은가).

아무튼 이렇듯 힘이 법에 내재적이며 본질적이라면, (정당한) ‘법의 힘’과 (부당한) ‘폭력’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데리다에 좀 익숙한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법의 힘’과 ‘폭력’이 그렇게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식의 ‘해체’가 이후에 진행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암시를 데리다는 이번엔 독어에서 가져온다. 게발트(Gewalt)란 단어에서.

2부에서 그가 자세하게 다룰 벤야민의 텍스트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Zur Kritik der Gewalt)>의 제목에도 쓰이고 있는 단어가 바로 이 ‘게발트’인바, 이 단어는 독어에서 적법한 권력/권위와 공적인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게발트는 폭력과 적법한 권력, 정당화된 권위 모두를 뜻한다. 어떤 적법한 권력이 지닌 법의 힘과, 분명 이러한 권위를 설립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이 최초의 설립의 순간에는 합법적이기도 비합법적이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부당하지도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적 폭력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17-8쪽)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데리다는 영어에서 ‘법=힘’이라는 등식을 가져오고, 독어에서는 ‘힘=폭력’이란 등식을 끌어온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법=폭력?! 법에 대한 이런 사전정지작업 이후에 데리다는 ‘해체’에 대한 사전정지작업에 들어간다. 해체야말로 법과 정의의 문제와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 왜냐? “해체적인 질문하기는 노모스와 퓌지스, 테시스와 퓌시스의 대립, 곧 한편으로 법, 관습, 제도와 다른 한편으로 자연의 대립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조건 짓는 모든 대립, 예컨대 실정법과 자연법의 대립을 동요시키면서 복잡하게 만들면서 출발”하며, “이러한 해체적 질문하기는 전적으로 법과 정의에 대한 질문하기, 법과 도덕, 정치의 토대들에 대한 질문하기”(21쪽)이기 때문이다.

해서 ‘가설상’ 이러한 해체가 고유한 (하지만 불가능한) 장소를 갖고 있다면, 그건 철학이나 문학부라기보다는 법학부, 혹은 신학이나 건축학부가 될 거라고도 데리다는 말한다(그런 이런 관점에서 ‘비판법학’이나 스탠리 피시 등의 작업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니까 데리다를 더 많이 읽어야 하는 쪽은 나 같은 문학도가 아니라 법학도이고, 신학도이고, 건축학도이다. 그게 데리다의 희망사항이기도 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해체라는 이름을 지닌 가장 잘 알려진 작업들에서 해체가 정의의 문제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겉보기에만 그럴 뿐이다.”(24쪽)

그리하여, 데리다가 이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 현재 해체 일반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의의 문제를 ‘전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해체 일반이 해온 일은 오직 이 문제를 전달하는 일이었는지”(25쪽)이다. 즉, 정의의 문제야말로 해체의 시작과 끝이며, 알파요 오메가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시작이다. 아니 시작도 아니다(“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진짜 시작은 파스칼과 몽테뉴의 단장을 인용하면서, 그걸 해석하면서부터이다. 데리다가 <팡세>에서 인용하고 있는 파스칼의 단장은 이것이다.

 

 

 



“정의, 힘 – 정당한 것이 지속되는 것은 정당하며, 가장 강한 것이 지속되는 것은 필연적이다.”(Justice, force – Il est juste que ce qui est juste soit suivi, il est necessaire que ce qui est le plus fort soit suivi.)

이 대목은 브륀슈빅판의 단장 298번으로 돼 있는데(대부분의 우리말 <팡세>도 이 브륀슈빅판을 옮긴 것이다), 역자가 역주에서 참고로 제시하고 있는 국역본(셀리에판을 옮긴 서울대출판부본)의 번역은 이렇다: “정의, 힘 – 정당한 것이 추종받는 것은 정당하다. 가장 강한 것이 추종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두 번역을 비교해 보건대(그리고 러시아어본을 참조해보건대), 아무래도 역자(혹은 데리다)가 이 문장을 독특하게 읽은 듯하다. 내 불어실력이 고등학교 때보다도 못하지만, 그걸로라도 판단해 보건대, 역자가 ‘지속되다’로 옮긴 것은 ‘soit suivi’이며, 그 경우 이걸 (영어로 치자면) (사전을 보니 ‘suivi’라는 형용사가 있다. ‘연속적인’이란 뜻)로 본 듯한데, 나로선 , 곧 수동태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국역본에서처럼 말이다).

‘suivr’란 동사의 과거분사 역시 suivi이니까 나는 문법적으로 이런 해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다(그러니까 suivi는 그 과거분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모양이다). 그 ‘suivr’의 뜻은 ‘따르다’이다(국역본은 ‘추종하다’로 옮겼고, 러시아어본은 ‘복종하다’로 옮겼다). 가장 큰 차이는 ‘따르다’가 타동사인 반면에 (be+형용사를 동사로 본다면) ‘지속되다’는 자동사라는 것이다. 문법적으로 두 가지 해석에 하자가 없다면,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자연스런 문맥일 텐데, 나는 타동사(수동태 구문)로 해석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옮기면: “정의, 힘 – 정당한 것(=정의)에 복종하는 것은 정당하며, 가장 강한 것(=힘)에 복종하는 것은 필연적이다(=불가피하다).”

이어지는 단장의 내용은 이렇다: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힘없는 정의는 반격을 받는데, 왜냐하면 항상 사악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 없는 힘은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와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당한 것을 강한 것으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27쪽) 여기서 접속사 ‘그리고’는 ‘그런데’로 읽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정의와 힘이 결합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정당한 것(=정의)을 강한 것으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그건 요즘도 마찬가지이다!), 강한 것(=힘)을 정당한 것(=정의)으로 간주했다는 것. 아주 냉소적인 단장인데, 곧 사람들의 그런 태도에 의해서 힘이 정의가 돼버렸다는 것이다(알다시피, 미국이 ‘무한정의’를 운운하는 것은 그들의 ‘정의’ 덕분이 아니라 ‘힘’ 때문이다).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국회의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이 ‘정의 없는 힘’이라면, ‘파병(연장) 반대’는 ‘힘없는 정의’이다. 어떻게 하면 정당한 것이 강해질 수 있을까?



파스칼은 다른 단장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는 정의의 본질은 입법가의 권위라고 말하고, 다른 이는 주권자의 편의라고 말하며, 또 다른 이는 현재의 관습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말이 가장 사실에 가깝다.(…) 관습이 모든 공정성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오직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이유에 의해서다. 이것이 권위의 신비한 토대다. 권위를 기원에까지 더듬어 올라가는 자는 그것을 파멸시키게 된다.”(28쪽) 러시아어본은 마지막 문장을 “관습을 기원에까지 더듬어 올라가는 자는 그것을 파멸시키게 된다.”라고 옮긴다.

즉 권위의 신비한 토대는 ‘관습’이라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법에 대한 상당히 래디컬한 관점이다. 거기에 견주면, 관습법(불문법)과 성문법을 구분하는 상식(적인 관습!)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사실, ‘관습법’이란 말은 이러한 관점을 가로막는 알리바이는 아닐까? 마치 관습으로서의 법 말고 다른 법이 또 있다는 듯이 암시하는? 비유컨대, 관습법과 성문법의 관계는 니체에게서 은유와 개념의 관계와 같다. 개념이 ‘닳아빠진 은유’인 것처럼 성문법이란 ‘닳아빠진 관습법’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파스칼-니체적 견해에 따를 때, 행정수도 이전이 ‘관습헌법’에 따라 위헌이라고 판결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생각보다 ‘래디컬한’ 결정이다(이 재판관들을 무슨 ‘8적’ 운운한 김용옥의 견해야말로 상식적이지만 ‘보수적’이다). 우리의 재판관들은 법적 권위의 ‘신비한 토대’를 건드렸던 것이다! 그들은 (성문)헌법이란 그저 닳아빠진 관습헌법에 다름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니까.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어쨌든 우리의 재판관들은 (무)의식적으로 법에 대한 자기-해체를 감행했던 것. 해서, 한국은 경이롭게도 (프랑스에도 없을 법한) ‘해체주의적’ 재판관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권위의 신비한 토대’라는 표현은 파스칼 자신의 것이 아니라 몽테뉴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따라서 데리다는 정당하게도 몽테뉴에게 관심을 돌리는데, <수상록>(혹은 <에세>)의 저자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법들은 정당해서가 아니라 법이기 때문에 신용을 얻으면서 존속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법들이 가지는 권위의 신비한 토대이며, 그것들은 이것 외에 다른 어떤 토대도 갖고 있지 않다.”(28쪽)



이 대목은 <수상록> 3권 12장에서 인용한 걸로 돼 있는데(<수상록>은 전3권의 방대한 텍스트이다), 러시아어본에 따르면 13장(마지막장)에 나온다(러시아어본은 <경험들>이란 제목을 갖고 있으며, 3권이 모두 완역돼 있다. 2권짜리와 4권짜리로 두 종류). ‘신용을 얻으면서’란 표현은 아마도 ‘credit’가 들어간 어구를 번역한 듯싶은데, 그냥 ‘신뢰를 얻으며’ ‘준수되며’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개인적으로 신용불량자의 경험이 있는 나는 ‘신용’이란 말을 싫어한다). 하여간에 몽테뉴-파스칼에 따르면, 법적 권위의 토대는 관습이며, 법이 법인 한에서 그것은 (거창한) 정의와 무관하다. 비록 법은 정의를 요구하며 정의에 의존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해서 이러한 관점은 법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이끌며, 그러한 비판을 넘어선다.

“정의와 법의 돌발(=우발적인 출현) 자체, 법의 설립과 정초, 정당화의 순간은 수행적 힘, 곧 항상 해석적인 힘과 믿음에 대한 호소를 함축하고 있다. 이 경우는 법이 힘을 위해 봉사한다는 의미, 지배 권력의 유순하고 비굴한, 따라서 외재적인 도구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힘 또는 권력이나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과 좀더 내재적이고 좀더 복합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법을 정초하고 창설하고 정당화하는 작용, 법을 만드는 작용은 어떤 힘의 발동, 곧 그 자체로는 정당하지도 부당하지도 않은 폭력으로, 이전에 정초되어 있는 어떤 선행하는 정의, 어떤 법, 미리 존재하는 어떤 토대도 정의상 보증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또는 취소할 수 없는, 수행적이며 따라서 해석적인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다.”(31쪽)

사실 나는 첫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겠다. “수행적 힘, 곧 항상 해석적인 힘과 믿음에 대한 호소”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에서도 “법을 만드는 작용은(…) 수행적이며 따라서 해석적인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의 의미를 간취하지 못하겠다. 걸리는 건 ‘해석적인 힘’, ‘해석적인 폭력’이란 표현이다. 그게 ‘해석적인’이 힘/폭력의 수식어인지, 아니면 해석과 힘/폭력이 등가적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전자라면, ‘해석적인 폭력’의 짝개념은 무엇인가? ‘기술(記述)적인 폭력’인가? ‘해석적인’이란 말은 그냥 (오스틴의) ‘수행적인’이란 말로 이해하면 되는가?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다: “어떤 정당화하는 담론도 창설적인 언어활동의 수행성 또는 이 수행성에 대한 지배적 해석에 대하여 메타언어적인 역할을 보증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32쪽) ‘지배적 해석’? 데리다의 ‘메타언어는 없다’는 테제는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지만, 이 구절의 정확한 이해는 나로선 장래의 것이다(이해란 패러프레이즈하는 것인데, 나는 이 대목을 아직 내 식으로 패러프레이즈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후의 내용들이 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권위의 기원이나 법의 기초, 토대 또는 정립은 정의상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들에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에, 토대를 지니고 있지 않은 폭력들이다.(…) 이것들은 자신들의 정초의 순간에는 불법적이지도 비적법하지도 않다.”(32-3쪽) 같은 지적은 이해하기 쉽다. 어떤 법의 최초 정초의 순간, 그 법의 적법성/불법성은 판정 불가능하다. 그 법의 적법성/정당성을 보증해줄 수 있는 메타언어(또 다른 법)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떠한 토대도 갖지 않으며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폭력(게발트)’이다. 르네 지라르가 얘기하는 ‘정초적 폭력’ 같은 게 여기에 대응할 것이다. 법의 정초 혹은 정립은 그러한 정초적 폭력에 근거한다. 요컨대, 법(의 힘)은 폭력에 대립적이지만, 법(적 권의)의 기원에 놓여 있는 것은 폭력이다. 기원적 폭력. 이것이 데리다가 기술하고 있는 (본질적으로 해체 가능한) ‘법의 구조’이다.

이러한 법의 구조가 해체 가능한 것은 그것이 궁극적 토대에 정초돼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건축학적으로 어떤 건물이 해체되기 위해서는 그 토대가 부실해야 한다). 이러한 법, 혹은 법으로서의 정의와는 대조적으로 ‘법 바깥’에 또는 ‘법 너머’에 있는 ‘정의 그 자체’는 해체 불가능하다. 해체 그 자체 역시 해체 불가능하다. 해서, “해체는 정의다.”(33쪽) 이걸 좀 어렵게 말하면, “해체는 정의의 해체 불가능성과 법의 해체 가능성을 분리시키는 간극에서 발생한다.”(34쪽) 이해하기 어려운가? “나는 이것이(=이러한 정식화가) 명료하리라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나는, 확신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곧 좀더 명료해지리라고 희망한다.” 그것은 또한 ‘성마른 독자’인 우리의 희망이기도 하다.

이어서 데리다가 끌어오는 것은 영어에서 ‘address’란 타동사이다. 이 동사는 ‘연설하다’ ‘(어떤 사람을) 소개하다’ ‘(편지에) 주소를 적다’ ‘(편지를) 발송하다’ ‘구애하다’ 등의 뜻을 갖고 있는데, 역자는 주로 ‘전달하다’라고 옮긴다. 그러니까 address란 동사는 무엇인가를 목적지/대상에 ‘정확하게’ 전달하다란 뜻을 기본적으로 갖는다. 데리다는 자신의 이 기조연설에서 (데리다) 자신을 청중들에게 address해야 하며, ‘해체와 정의의 가능성’이란 주제(문제)를 address해야 한다. ‘정확하게’ ‘우회 없이’. 여기서 특별히 ‘정확성’을 문제삼는 것은 흔히 ‘편지/문자(letter)는 목적지에 도달하지/전달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해체(주의)의 표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리다는 그러한 표어 혹은 주제를 이 기조연설에서 address해야 하는,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아포리아적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길-없음’이란 의미에서 아포리아는 ‘도단(道斷)’을 뜻하는바, 해체의 지배적 관심은 언어(=로고스)의 궁지, ‘언어도단’에 대한 관심이며, 이에 대한 관심은 해체의 장기이자 책임이고 윤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아포리아적 상황을 그에게 ‘강제’한 것은 기본적으로 그가 (불어가 아닌) 영어로 발표해야/전달해야 한다는 ‘의무’이다. 그는 그러한 의무를 ‘to enforce the law’와 ‘address’란 두 가지 영어표현을 문제삼음으로써 주제화하고 있다. 덕분에 그가 갖게 된 것은 “힘과 정확성, 그리고 정의의 독특한 혼합물”(36쪽)이다. 이 혼합물과의 대면은 아포리아의 경험 자체를 요구한다. 먼저, “정의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어떤 것의 경험이다.” 이것이 정의의 아포리아이다. 하지만, “그 구조가 아포리아의 경험이 아닌 정의에 대한 인지, 욕망, 요구는 자기 자신, 곧 정의에 대한 정당한 호소가 될 수 있는 아무런 기회도 얻지 못할 것이다.”(37쪽)

다시 반복하자면, “법은 정의가 아니다. 법은 계산의 요소며,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당하지만, 정의는 계산불가능한 것이며, 정의는 우리가 계산불가능한 것과 함께 계산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아포리아적인 경험들은 정의에 대한, 곧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 사이의 결정이 결코 어떤 규칙에 의해 보증되지 않는 순간들에 대한 있을 법하지 않으면서도 필연적인 경험들이다.”(37쪽) 그러한 경험이 없다면, 그러한 경험들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법은 정의에 대해서 아무런 할말(=권리)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데리다는 그러한 전제하에 법의 곤궁에 대해 더 파고들어간다. “전달/주소(address)는 방향처럼, 정확성처럼, 올바른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데(*주소를 제대로 정확하게 써야 편지/문자는 전달된다. 안 그러면 반송된다), 우리가 정의를 원할 경우, 정당하고자 할 경우 빠뜨려서는 안되는 것은 바로 전달/주소의 정확성이다.” “그런데, 전달/주소는 항상 독특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의 전달/주소는 항상 독특하고 특유한 반면, 법으로서의 정의는 항상 어떤 규칙이나 규범 또는 보편적 명령의 일반성을 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38쪽)

그렇다면, “항상 하나의 독특성과 관계해야 하는(…) 정의의 행위(법관의 행위)와 필연적으로 일반적 형식을 갖고 있는 정의, 규칙이나 규범, 가치 명령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어떤 규칙을 적용하는 데 만족한다면, 그것은 객관적인 법에 일치하게(=합법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되겠지만, 정의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 규칙은 독특성(=단독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가령, 고진의 문제틀을 가져오자면, 합법적인 결정/판결이란 건 고유명이라는 단독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법은 갑, 을, 병을 다루지 배용준과 이나영을 다루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행동이 단지 합법적일 뿐 아니라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 나는 내가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즉, 합법성과 정당성은 상호배제적이지 않은가?) 데리다는 그러한 확신이 오직 자기만족과 신비화의 모습으로만 가능할 뿐이라고 말한다.

데리다는 이어서 이러한 아포리아적 상황을 자신이 처한 언어적 상황(영어권 청중에게 영어로 연설해야 하는 상황)과 계속 비교해가면서 논지를 전개해나간다. 그러니까 불어로 말해야 했을 상황이었다면, 이 ‘해체와 정의의 가능성’이라는 연설의 주제는 제대로 제시/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다르게 제시/전개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의 ‘원텍스트’는 불어가 아닌 영어 텍스트이다. 사실상으로도 권리상으로도 그렇다. 비록 발표문이 최초의 불어원고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더라도 이 연설은 영어로 행해졌으며 이 연설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to enforce the law’와 ‘address’란 두 (우연한) 영어 표현이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아예 이렇게 말한다. “타자에게 타자의 언어로 자신을 전달하는 것은 모든 가능한 정의의 조건처럼 보인다.”(39쪽, 나의 강조)

하지만, 이것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정의가 (불가능한) 아포리아인 것처럼. 따라서 정의의 문제는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며, 이 언어의 문제는 어떤 판결이 그것을 구성하는 고유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졌을 때 발생하는 불의의 폭력을 문제로서 제기한다. 그건 (이 콜로퀴엄의 담론공간을 넘어서) 더 나아가 동물(재판)의 문제에까지 이른다.

데리다 자신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넌지시 일러주는 바에 따르면, “동물의 희생은 (인간의) 주체성의 구조에 본질적이며, 또한 지향적 주체의 정초 및 (법이 아니라면 적어도) 법의 정초에 본질적이다.(…) 우리의 문화와 법의 기저에 있는 동물 희생과, 양육과 사랑, 애도 및 사실은 모든 상징적이거나 언어적인 전유에서 상호주관성을 구조화하고 있는 상징적이거나 비상징적인 모든 식인 풍습 사이의 친화성”(41쪽)과 연계된다(이에 대해서는 ‘애도’와 ‘식인풍습’과 관련한, 역자의 용어해설을 더 참조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의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는 아주 복합적이며 방대하다. “서양에서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에 대한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형이상학적-인간 중심적 공리계 전체를 재고해야만”(42쪽)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걸 통째로 문제삼고 있는 해체를 “정의에 관한 윤리적/정치적/법적 물음 및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 사이의 대립을 유사-허무주의적으로 포기하려는 태도”로 간주하는 일부의 피상적인 이해/오해는 (데리다가 강조하거니와) 해체와 무관하다(그들은 엉뚱한 ‘주소지’에 가서 해체를 찾고 있는 것이리라). 이와는 전혀 반대로, (1) “우리가 정의라는 이름 아래 하나 이상의 언어에서 물려받은 것과 관련하여, 역사적이고 해석적인 기억의 과제는 해체의 중심에 놓여 있다.(…) 해체는(…) 무한한 정의의 요구에 이미 서양하고 있으며(‘가제’하고 있으며), 그에 참여하고 있다(‘앙가제’하고 있다).”(43쪽)

여기서 불어의 ‘가제’ ‘앙가제’는 영어의 gage와 engage로 옮겨서 이해해도 무방해 보인다. 즉 해체는 정의의 요구에 ‘be gaged’ 돼 있고, ‘be engaged’ 돼 있다. 그리고 (2) “기억 앞에서의 이러한 책임은 우리의 행동 및 이론적이고 실천적이며 윤리/정치적인 우리의 결정들의 정의와 정확성을 규제하는 책임의 개념 자체 앞에서의 책임이다.(…) 결국 해체는 규정된 맥락에서 정의, 정의의 가능성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기존의 규정들을 넘어서 있는, 항상 충족되지 않는 이러한 호소에서만 자신의 힘과 운동, 자신의 동기를 발견”한다.



이러한 것이 해체에 대한 데리다 자신의 주장/변호이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애초에 그는 법과 힘(폭력)의 관계를 정식화했고, 이어서 정의와 해체의 (아포리아적) 관계를 진술/전달했다. 암기하기 좋게 말하자면, ‘법=힘(폭력)’이고, ‘정의=해체’이다. 이제 문제는 이들의 연관성이다. 정의로서의 법에 대해서 해체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만약에 정의와 법에 대한 이러한 구분(*법은 정의가 아니다)이 진정한 구분(…)이라면, 문제는 아주 간단할 것이다(*문제는 거기서 종결될 테니까). 하지만, 법은 정의의 이름으로 실행된다고 주장하고, 정의는 작동되어야(=집행되어야) 하는 법 안에 자기 자신을 설립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힘없는 정의는 무력하다’는 말을 상기해보자. 그런데, 법은 힘 아닌가? 그러니 정의가 힘을 얻는 방도는 그것이 법 안에 자리잡는 것이다). 해체는 항상 이 양자 사이에 놓여 있으며, 이 사이에서 자신을 전위시킨다.”(48쪽)

거기서,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세 가지 아포리아의 기술이 이 연설의 결론부이다. (1) “어떤 결정(=판결)이 정당하고 책임감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판단은 자신의 고유한 순간에 규칙적이면서도 규칙이 없어야 하며, 법을 보존하면서도, 매 경우마다 법을 재발명하고 재-정당화하기 위해,(…) 법에 대해 충분히 파괴적이거나 판단중지적이어야 한다.”(59쪽) 규칙적이면서도 규칙이 없어야 하고, 법을 보존하면서도 (매 경우마다) 법을 재발명해야 한다? 이러한 (모순적이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요구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해서, “이러한 역설로부터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어떤 결정이 정당하며 순수하게 정당하다고, 더욱이 ‘나는 정당하다’고 현전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따라나온다.” 이것이 첫번째 아포리아, ‘규칙의 판단중지’이다.

여담이지만, 초등학교 때 읽은 한 동화에서는 오빠들을 구하기 위해서인가, 왕비가 되기 위해서인가(동화에서 여자들이 갖는 두 가지 ‘명분’이다), 하여간에 한 처녀가 왕으로부터 모순적인 요구를 받는다. 옷을 입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알몸이어서도 안된다. 말을 타고 와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걸어와서도 안된다. 이런 아포리아적인 요구에 대한 ‘현명한’ 처녀의 해법은 이랬다. 옷을 입지 않은 대신에 그물을 걸쳤고(그건 ‘옷’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벗은 것도 아니다), 말을 타지 않은 대신에 그물을 말에 매달고 끌려왔던 것(적어도 걸어오진 않았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법과 정의 사이에 끼인 해체는 내게 그러한 해법의 모색으로 보인다. 해체는 지혜인가?

그리고 (2) “딱 잘라 판단을 내리는 단절의 결정 없이는 어떤 정의도 실행될 수 없고, 어떤 정의도 발휘되지 못하며, 어떤 정의도 실현되지 못할 뿐더러 법의 형태로 규정될 수도 없다.” 흔히 해체는 결정불가능성과 결부되어 이해되지만, 그때의 결정불가능성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와 같은) “단지 두 결정 사이의 동요나 긴장만은 아니다. 결정 불가능한 것은 계산 가능한 것과 규칙의 질서에 낯설고 이질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규칙을 고려하면서 불가능한 결정에 스스로를 맡겨야 하는 것의 경험이다.” 이것이 ‘결정 불가능한 것의 유령’이라는 두 번째 아포리아인바, “결정 불가능한 것은 적어도 하나의 유령, 하지만 본질적인 유령으로서, 모든 결정, 모든 결정의 사건에 포함되고 깃들여 있다. 이것의 유령성은 결정의 정당성, 모든 확실성, 모든 현전의 안정성 또는 모든 공언된 척도 체계를 내부로부터 해체한다.”(53쪽)

“만약 현전하는 정의를 규정하는 확실성에 대한 일체의 가정이 해체된다면, 이는 무한한 ‘정의의 이념’으로부터 작동한다.” 물론 이 정의의 이념이 무한한 것은 그것이 환원불가능하기 때문이며, 그 환원불가능성은 타자로부터, 타자의 (단독적인) 독특성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렇듯 결정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는 없으며(이 또한 정당하지 않다) 오직 결정(=판결)만이 정당하다는 것이 이 아포리아의 내용이다(그러니까 정의는 판단중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판단의 실행에 있다).

끝으로, (3) 현전 불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정의는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정당한 결정은 항상 직접적으로, 당장, 가능한 한 최대한 빠르게 요구된다.” 이것이 세 번째 아포리아를 구성하는 전제로서 ‘지식의 지평을 차단하는 긴급성’이다. 즉, 신중한 결정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신속한 결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때문에, “결정의 순간은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듯 하나의 광기이다. 시간을 잘라내야 하고 변증법들에 저항해야 하는 정당한 결정의 순간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이는 하나의 광기이다. 하나의 광기인 이유는 이러한 결정이 과잉 능동적이면서 또한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마치 결정자는 자신의 결정에 의해 자기 자신이 변형되도록 내맡김으로써만 자유로울 수 있는 것처럼, 마치 그 자신의 결정이 타자로부터 그에게 도래하는 것처럼, 이러한 결정은 수동적인 어떤 것을 보존하고 있다.”(56-7쪽)

따라서 결정은 광기 어린 것이며 신들린(=수동적인) 것이다. 하긴, 정의에 대한 불가능한 요구, 혹은 불가능한 정의에 대한 요구라는 (불가능한) 아포리아에 대응하는 것이 ‘광기’라는 것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러니, 데리다가 “해체는 이러한 정의에, 정의에 대한 이러한 욕망에 미쳐 있다”(54쪽)고 말하는 것도 과장이나 엄살은 아니겠다.

이상의 세 가지 아포리아를 다시 암기식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1)결정/판결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불가능성] (2)하지만 불가능한 결정/판결을 내려야만 한다.[불가피성] (3)그러한 불가능한 결정/판결을 그것도 최대한 아주 빨리 내려야만 한다.[긴급성] 그렇다고 해서, 정의가 계산불가능하다고 해서 아무렇게 판단하고 결정/판결해서는 안된다: “계산 불가능한 정의는 계산할 것을 명령한다.”(영역하면, “Unaccountable justice orders us to account!”)(그러니, 정의도 미쳐 있음에 틀림없다!)

이것이 해체 불가능한, 현전 불가능한, 계산 불가능한, 그래서 ‘견적 안 나오는’ 정의의 구조이며 요구이다. 그리고 해체는 거기에 미쳐 있다. 왜? “절대적 타자성의 경험으로서의 정의는 현전 불가능하지만, 이는 사건의 기회이며 역사의 조건”(59쪽, 나의 강조)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현전하지 않지만, 그러한 정의의 요구에 (붙)들릴 때 우리는 (사고를 치는 게 아니라) 사건을 만들고 (역사를 망치는 게 아니라) 역사를 책임져 나갈 수 있다. 내가 읽고 정리한 데리다는 일단 거기까지이다…

04. 12. 26-27.

P.S. 한 일주일 정도 인터넷 사용정지 처분을 받은 탓에(소위 '유비쿼터스'가 안되고) 뜻대로 내용을 업그레이드할 수가 없다. <법의 힘>의 나머지 부분도 조만간 정리할 계획은 갖고 있지만, 논문과 서평 여러 편을 다음 주까지 써야 하는 까닭에(게다가 종강하고 리포트 처리하고 하는 일들!) 언제 가능할지는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위기지학(爲己之學)인 걸 다행으로 여길 따름이다. 위인지학(爲人之學), 곧 남들을 위한 공부였다면, 이 얼마나 불성실한 공부인 것인가!..

06.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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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퍼란의 '모스크바 통신' 카테고리를 비공개로 돌렸다. 이미 2/3 가량은 수정버전이나 이미지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해서 다른 카테고리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내용상 중복이 되는 걸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어 보였고(나머지 1/3도 유효성이 있는 대목들에 한에서 틈나는 대로 정리할 생각이다), 재작년의 '객담'인지라 이젠 그냥 조용히 혼자만의 창고에 넣어두고 보는 것이 마땅해 보였다. '최근에 나온 책들' 시리즈도 에피소드까지 다 정리한 줄 알았더니 자투리가 남아있길래 여기에 옮겨둔다. '오역의 세 가지 대상'이란 모스크바 통신문의 서두에 들어 있던 내용이다. 

지난 일요일에(*이 글은 2004년 6월초에 씌어졌다)  모스크바에서 한국식당이 가장 많이 밀집돼 있는 ‘아를료뇩’호텔(표기는 ‘오를료뇩’이고 모스크바대학에서는 걸어서 30분 거리이다)의 한국식당에서 일행들과 저녁을 먹고 나오다가 동아일보 복사판이 눈에 띄길래 들고 왔다. 마침 토요일(29일)자 신문이어서 북리뷰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0일(토)자 이후 처음으로 읽는 한국의 일간지 서평이었다(물론 인터넷에도 뜨긴 하지만).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란 책이 1면에 다루어지고 있었고, 학술란에도 눈길을 끄는 책들이 몇 권 있었다.

 

 

 



먼저, 안토니오 네그리의 <혁명의 시간>(갈무리)이 번역/출간된 걸 알 수 있었는데, 나는 아직 <제국>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참견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에게서 ‘정치’와 ‘혁명’이 당위적인 도덕론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복종하지 말고 자유롭게 행동하라. 죽이지 말고 생성하라. 착취하지 말고 공통적인 것을 구성하라.” 정도가 ‘혁명’의 강령이라면 말이다. 분석이 결여된 강령에 대해서 나는 신뢰할 수 없다. 그가 제시한 시간관만 하더라도 미래(future)와 도래(to-come)의 구분에 대한 저작권은 내가 알기엔, 데리다에게 있다. 서평자는 “가난을 연민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주체로 보았다는 점에서 네그리는 20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예수와 만나는 셈”이라고 썼는데, 네그리는 어느새 성자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는 것인지.

어쨌든 네그리에 따르면, “탈근대의 상황에 놓인 가난한 자들은 ‘다중’이라는 새로운 공통의 이름을 획득함으로써 ‘도래할 민중’이 된다. 동시에 ‘제국’은 혁명의 시간을 거치며 다중의 ‘코뮌(communism)’이 된다.” 나는 이러한 주장이 예언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것인지, 당위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것인지 헷갈린다(예언적 당위인가?). 사적 유물론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더불어, “네그리에 따르면 정치란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것을 뜻하고, 혁명은 권력의 전복이기 이전에 자기 삶을 긍정하며 구성하는 사건이다.”

내가 궁금한 건, 이때 변신/변혁의 주체이자 근거인 ‘자기’는 기계와의 접속 이후의 “사이보그 혹은 일반지성”에서도 관철되는가 혹은 연속적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기계적인, 영속적인 신체와 지성을 얻게 된 이후에도 ‘나’로서 ‘자기’로서 남아있을 수 있는가? 그때도 우리는 가난한 ‘다중’이고 ‘주체’인가? 그리고, 그때는 무엇이 변하는 것인가? 그때도 삶은 삶이고, 긍정은 긍정인가?(혹 네그리를 신뢰하는 분이 계시다면 답변을 주시길. 얇은 책이니까 금방 읽어보실 수 있을 거 같다.)

 

 

 



리처드 커니의 <이방인, 신 괴물>(개마고원)은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아동도서 같은 책 표지는 뭔가?). 알다시피, 커니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철학교수’이다. 그러니까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남의 철학을 잘 소화해서 대중에 소개하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타자성 개념에 대한 도전적 고찰’이란 부제에서 그 ‘도전’은 아마도 그의 것이 아니라, 그가 다루고 있는 다른 철학자들의 것일 게다. 어쨌든 커니는 기존의 ‘쟁쟁한’ 타자론들을 ‘초월적 입장’(데리다, 리오타르, 레비나스 등이 속할 것이다)과 ‘내재적 입장’(프로이트나 크리스테바 같은 정신분석 계열)으로 나누고, ‘제3의 길’로 ‘비판적 해석학’(딜타이나 가다머)을 내세운다고 한다. 이 입장은 해체주의처럼 타자를 무조건 환대하지도 않고, 정신분석학적 입장처럼 타자를 묵살하지도 않는다고.

그런데, “해석자와 피해석자라는 두 자립적 타자가 만나는 지평의 융합과정”이란 게 무엇인가? 책읽기 아닌가? 그렇다면, ‘비판적 해석학’ 모델에서의 타자와의 조우란 것은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만나게 되는 경험 아닌가? 이때의 ‘추상적 저자’가 자립적 타자인가? 게다가 ‘저자’를 숭배하지도 무시하지도 말라?! 서평으로만 판단하자면, 커니는 여전히 좋은 철학교수로 남아있는 것이 낫겠다. 참고로, 그의 <현대철학자들과의 대화>는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대심문관>(한국외대출판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수록된 ‘대심문관’에 대한 러시아 석학들의 평론집이라고 한다. 이 ‘러시아 석학들’의 면면이 어떠한지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388쪽이니까 분량도 제법 되는 책이다. 혹시 읽으시는 분은 서평이라도 올려주시길. 지금은 절판된 책이지만, 르네 월렉이 편집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열린책들)에도 대심문관을 다룬 글이 두 편쯤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참고로, 대심문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설의 바로 다음 장 '러시아의 수도사'를 같이 읽어야 한다는 걸 말씀드린다. 그래야 균형이 맞게 된다.

어제는 푸슈킨거리에 있는 고리키문학연구소에 갔다가 작년부터 새로 나오기 시작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18권) 중 제3권을 사들고 왔다. 이 책은 현재 5권까지 나와 있는 듯하며, 책임편집자는 자하로프 교수이다. 새 전집은 창작/발표 연대별로 수록하는 게 원칙인 듯한데(이 원칙에 따른 새로운 푸슈킨 전집이 곧 나올 예정이다), <죽음의 집의 기록>이 필요해서 산 3권은 총 688쪽이고, 1850-62년까지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대개의 일반전집보다는 큰 판형이며(연구자용으로서는 좀 거추장스럽다), 장정도 유려하고 가격도 저렴하다(고리키연구소가 좀 싸긴 하지만, 우리돈 6,500원 가량. 1-2권은 더 싸다). 발행부수는 10,000부. 문제는 언제나 완간될까 하는 것. 도스토예프스키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여 본 소리이다(이런 등속의 얘기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북리뷰에 크게 건 작게 건 소개된 책은 총 29권이고, 그 중 번역서가 18권이었다. 학술서는 6권 중에 5권이 번역서였고. 대략 2/3가 번역서인 셈. 그만큼 우리의 출판과 독서문화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얘기이다. 문제는 그런 비중만큼, 양질의 번역서들이 양산되고 있는가이다. 즉, 제값이 번역서들이 나오고 있는가 하는 것. 북리뷰의 한 서평은 “하지만 그의 현란한 문장이 설익은 채 번역돼 가끔은 읽기 어려운 게 흠이다.”라고 말미에 사족을 달고 있는데, 일간지 서평자들이야 출판사나 저자들이 송부해온 책을 보는 것이니까 그런 ‘흠’에 대해서 관대할 수도 있겠다.

해서, 나는 이런 서평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신뢰하는 건 적어도 ‘사서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이다. 내가 모든 책에 쪽수와 함께 악착같이(?) 책값을 병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악착같이(!) 오역에 대해서 물고 늘어지는 것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본전 생각’ 때문이다. 책은 책다워야 하며, 비싼 책은 비싼 책다워야 한다(이걸 ‘정명(正名)사상’이라고 하던가? 다르게 말하면, ‘정가(正價)사상’이다!).

2004.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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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6 1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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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에서 레프 도진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연극평을 옮겨놓는다. 연극평론가 노이정씨의 글이다.  

교수신문(06. 06. 03) 7시간 30분의 감동…연극 한편의 놀라운 힘 

얼마전 내한한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의 ‘형제자매들’에 쏟아졌던 관심만큼이나 그 여파가 적지 않다. 연극 한편이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레프 도진이 연출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사라져가고 있는 연극의 힘을 재발견했다. 특히 우리 연극인들에게 반성의 거울이 됐다. 배우들, 극작가들, 연출가들에게 이 연극은 우리가 연극에 담긴 가능성을 얼마나 지레 포기하고 있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이렇게 쉬우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니!

19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직전 초연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순회공연을 해온 이 작품은 말리극장의 예술감독으로서 레프 도진의 초기작이다. 스탈린 시대 러시아 북부 아르항겔스크 지역을 배경으로 한 아브라모프의 소설 4부작 중 앞의 3부(‘형제자매들’(1958), ‘두 해 겨울과 세 해 여름’(1968), ‘길과 갈림길’(1978))를 연극화했다. 공식적으로는 2년 간 준비했다지만 1977년 배우들과 함께 아브라모프가 살고 있는 마을을 직접 찾아가 생활하는 등 도진의 고백에 따르면 준비기간은 10년에 이른다.

공연 전 우리가 주목했던 건 7시간 30분(순수 공연시간 5시간 20분)이라는 공연시간이다. 세계적으로 10시간을 넘는 연극 작품도 꽤 있지만 요즘 국내 연극은 2시간을 채 넘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효율로, 속도로 계산하는 시대에 몸으로 대항하는 이 연극은 우리 관객에게도 느린 호흡으로 살 기회를 제공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동지들이여, 시민들이여, 형제자매들이여!”이라는 스탈린의 연설과 함께 배경에 1940년대 전쟁기록영화를 투사하면서 시작된 연극은 1941~1950년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러시아 집단농장 콜호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줬다. 러시아판 인생유전이라 할만하다. 나이가 차지 않아 참전 못한 청년 미하일과 남자들이 없는 마을을 책임지는 콜호즈 여위원장 안피사 등의 이야기가 이 펼쳐지는 제1부 ‘만남과 이별’, 전쟁이 끝나 남자들이 돌아오고 스탈린 독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제2부 ‘길과 갈림길’ 사이에 십 년의 세월이 있다.

연극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의 교차를 다룬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는 이 위로도 배신으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불신과 분열의 분위기가 무대를 지배하게 된다. 농촌에 남은 사람들, 도시로 간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영광의 인물과 위기의 인물도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것이 정해진 스토리대로, 쓰여진 텍스트대로 진행된다면 아마도 매우 지루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주요 인물들의 에피소드에 집중돼 그 이야기들 사이에서 긴장과 이완을 체화한다. 보는 관객도 그 흐름에 따라 집중과 이완을 하게 된다. 이것을 도진은 하나의 교향악이라 표현했다. “드라마에는 그 자체에 멜로디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는 이 긴 시간 동안 관객이 편안히 연극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자체에 들어있는 음악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마리아 셰브초바는 이 연극의 스타일을 ‘산문의 연극’이라 칭했다. 배우들이 “소설을 온전히 공연하면서” 즉흥적 시도를 통해 “대본의 신체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소설의 강건한 내러티브는 배우들의 몸과 목소리를 통해 응축된다. 전체적으로는 비극적인 톤을 가진 이 작품을 우리가 힘들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한 사건이 끝나면 다른 사건을 맞기 위한 여유가 생기고, 비극적 사건들 사이에는 긴 희극적 릴리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아니한가. 



여성과 남성 집단으로 나뉘어 질펀한 음담패설을 나누는 마을 주민들의 집단적 휴식, 씨뿌리기도 축제와 같이 함께 하는 농촌의 전통이 이 연극에 희극적 에너지를 부여한다면, 불행하게도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양이 적어진다. 집단농장의 삶이 곤고해지면서 사람들의 집단성은 분열되고 이기심이 싹트며 연극 첫 막에서 제시되던 카니발리즘적 에너지는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다.

집단성의 해체, 혹은 코러스로 합류해 들어가는 개인에서, 개인으로 해체돼가는 코러스로 변화를 보여주면서 연극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는 명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머니즘이 살아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단지 어떤 한 시기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정치적 허구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인간 사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고발이다.

이 긴 공연의 모든 사건 속에 뗏목과 장대들이 있다. 10여 년의 삶의 다양한 무대들, 방과 집, 헛간, 목욕탕 등의 사적 공간과 파종과 축제의 무대가 되는 공적 공간들은 뗏목 모양으로 만들어져 무대 중앙에 매달린 단 하나의 나무판으로 만들어진다. 360도로 회전하고 아래위로 오르내리면서 모든 장면의 배경이 되어주는 이 뗏목은 나무로 만들어진 등장인물과도 같다. 무대를 감싸고 선 20개의 장대들은 숲인 듯 감옥인 듯 이곳을 탈출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에워싼다.

이 공연을 보고 아무도 이것이 새롭다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공연은 ‘새로움’이 아니라 ‘낡음’을 강조한다. 목재로만 제작된 무대, 배우의 연기와 제스처만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들, 모든 관객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삶의 원초성에 대한 대사들. 그런데 왜 이 연극은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이 연극이 처음으로 서유럽에 소개될 때 서유럽 관객들도 연극에 놀랐다. 1988년 파리 가을축제에 초청된 이 공연을 보고 현 보비니 극장 예술감독인 파트릭 소미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건 우리가 연극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하는 것들의 종합이잖아. 코러스적 성격, 준 자연주의성, 서사적이고 교훈적인 인물. 이건 이젠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들인데.” 그런데 도진과 말리극장의 연극들은 계속 서유럽에 초청됐고 인정받았다. 1992년에 초청된 ‘가우데아무스’(2001년 내한)와 1994년의 ‘폐소공포증’은 유럽의 새로운 연극 현상인 ‘코러스성’(등장인물들이 코러스가 되는 현상)의 문제를 무대로 회귀시킨 작품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2002년 유럽연극상을 수상한 도진은 인터뷰에서 그의 연극의 근원을 스승과 제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우리사회가 진보의 행렬 속에서, 새로운 지식습득의 방법 속에서 상실한 것 중 하나로 그는 ‘전통적 가르침’을 들었다. 피와 살이 흐르는 선생이 인터넷과 컴퓨터로 대체되는 상황. 그는 선생은 제자들에게 사물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사람이며 제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하면서 유년기부터 자신의 삶을 만들어온 스승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첫 연극 스승은 두브로빈이다. 메이어홀드의 제자였으나 소련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연극을 만드는 것이 금지되자 전문적 활동을 포기하고 어린이들과 작업했던 그의 스승. 도진은 12살 때 수영강좌가 마감돼 연극을 하게 됐고, 그를 만났다. 도진이 말하는 두브로빈의 수업은 다음과 같다. 스승은 자기 주위에 아이들을 둘러앉게 하고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이들은 아무거나 물었고 그는 마치 랍비와 같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했다. 도진의 회고에 따르면 그때부터 그에게 극장은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한다. 이 선생에게서 도진은 즉흥의 방법, 낡은 텍스트를 바꾸는 기적을 배웠다.

피터 브룩의 러시아 순회 공연과 조르지오 스트렐러 작품 ‘벚꽃동산’의 단 한 장의 사진에 자신의 상상력이 불타올랐다고 고백하는 도진은 실상 가장 중요한 훈련은 제자들과 수업이라고 단언했다. 제자들은 자신의 젊음을 이야기하여 선생을 늙지 않게 한다. 그리고 선생은 같은 것을 다른 세대에게 반복해서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워져야 한다.

이 이야기에 새로운 것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거기엔 다만 우리에게 잊혀진 것이 있다. 가르침과 배움에 관한, 인간과 연극의 진실에 관한 오랜 믿음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생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이 시대에 그의 연극은 사람 사이의 교류에 대한 오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아리안느 므누슈킨이나 피터 브룩, 오태석 등 우리가 아는 연극의 대가들은 모두 이 믿음에서 연극을 시작한다.(노이정/ 연극평론가) 

06.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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