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국일보(06. 06. 14)의 연재물,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은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김윤식 서문집>을 다루고 있다. 제목은 "나는 '쓰다'의 주어다". 본문에서도 언급되지만, 서문이란 대표적인 '곁다리텍스트'이며, '곁다리텍스트'는 이 카테고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반가운 마음에 옮겨놓는다.

 

 

 

 

-<김윤식 서문집>(2001, 사회평론)은 놀라운 책이다. 그 놀라움을 낳는 것은 텍스트의 내용이라기보다 형식이다. 아니, 텍스트 너머에 어른거리는 긴 세월의 고된 글 노동에 대한 상상이다. 이 책은 국문학자 김윤식(70)이 1973년부터 2001년까지 낸 책들의 서문을 모아놓은 것이다(*물론 이후에도 그는 많은 책, 많은 서문을 썼다). 어느 프랑스 비평가는 한 책을 이루는 여러 물질적 요소 가운데 본문을 뺀 나머지(서문이나 발문, 헌사, 판권 난, 저자 소개, 표제, 부제, 제사, 차례 따위)를 곁다리텍스트(파라텍스트)라 부른 바 있다. 그러니까 ‘김윤식 서문집’의 텍스트는 곁다리텍스트만으로 이뤄진 텍스트다.(*나의 '곁다리텍스트를 위하여' 참조) 

-도대체 한 저자가 제 책의 서문만으로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자면 얼마나 많은 책을 써야 할까? 서문의 길이도 천차만별이고 책의 두께도 그럴 테니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김윤식 서문집>을 기준으로 어림짐작해보자면 100권 안팎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저자가 낸 책 95권의 서문이 묶였다. 그 모두가 순수한 저서는 아니다. 책 끝머리에 모인 7편의 서문은 역서와 편서의 서문이고, 나머지 서문 88편에도 아주 드물게 같은 책의 개정 증보판 서문이 끼여들긴 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빼도 이 책에 제 서문을 빌려준 김윤식 저서는 80권이 넘는다.

-그것만해도 보통 저자라면 엄두도 못 낼 양이다. 그런데 김윤식은 2001년 이후에도 기운차게 책을 내고 있다. 그러니까, 2001년까지의 저서 가운데 ‘김윤식 서문집’에 그 이름이 빠진 책이 없다 쳐도, 김윤식이 지금까지 쓴 책은 100권에 바짝 다가간다. 거기에 편서와 역서를 보태면 김윤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책은 100권이 훌쩍 넘는다. 이 책들 대다수가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니라 학문이나 비평의 영역에 속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놀라움은 더욱 커진다.

 

 

 

 

-<김윤식 서문집>의 서문, 다시 말해 서문들의 서문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모으면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니까 김윤식 생각에 책의 서문이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다. 물론 이 표현은 겸양에서 나온 것이겠으나, 서문을 곁다리텍스트로 여긴 프랑스 비평가의 생각과 통하는 데가 있다.

-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 앞에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붙이면서, 저자는 1962년 ‘현대문학’ 8월호에 실린 자신의 ‘천료(추천 완료) 소감’을 옮겨놓고 있다. 문학청년의 치기가 묻어나는 그 소감에는 “노예선의 벤허처럼 눈에 불을 켜야만 나는 사는 것이었다”라는 문장이 보인다. 그의 지난 반세기 글 노동을 지탱한 것이 바로 ‘눈에 불을 켜야만 살 수 있는’ 운명이었을 테다.

 

 

 

 

-이렇게 많은 글을 쓴 저자가 글쓰기 자체에 대한 성찰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혼자 하는 작업이다. 한밤중 원고지 앞에 앉아 있노라면, 그것이 우주만큼 넓고 아득하여 절망한다. 그렇다고 어디로 도망칠 곳도 없다. 우주가 나를 가두었던 것. 이 속에서의 작업은 일종의 게임인데, 상대는 누구이겠는가. 운명이란 이름의 나 자신이었던 것”(<김윤식 평론 문학선>, 1981, 서문).

 

 

 

 

 -김윤식은 말하자면 자신을 상대로 한 그 외로운 게임의 중독자였다. 요즘 젊은 세대 말로 글쓰기 ‘폐인’이었다.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쓰다’의 주어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문학사가이자 문학비평가다. 다시 말해 그의 방대한 텍스트들은 다른 텍스트들을 분류하고 배열하고 논평하는 텍스트들이다. 그러니, 김윤식이라는 이름은 동사 ‘읽다’의 주어를 겸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읽기는 20세기 이후 한국에서 ‘근대’의 표지를 지닌 채 발설된 모든 문학 텍스트를 향했다. 임화와 이상과 김동리가 보여준 이념의 엇갈림도, 이광수에서 신경숙에 이르는 세대의 엇갈림도 김윤식이 보기엔 근대성 안의 엇갈림일 뿐이었다.

 

 

 

 

-‘쓰다’와 ‘읽다’의 붙박이 주어 김윤식에게 소위 ‘명문(名文)’이라는 것은 어떤 뜻을 지녔을까? “명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가져본 적이 없다. 다만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문장이기를 바랐을 따름이다”(<문학사와 비평>, 1975, 서문). 이것이 겸양에서 나온 말인지는 또렷하지 않다. 자신이 엮은 <애수의 미, 퇴폐의 미- 재북 월북 문인 해금 수필 61편 선집>(1989)의 서문에서 그가 ‘명문’에 대한 경멸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 말해볼 수는 있습니다. 곧 명문이란 없다는 점. 설사 그런 것이 있더라도 대수로운 것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임화의 ‘수필론’과 서인식의 ‘애수와 퇴폐의 미’가 조금 말해놓고 있지 않습니까. 뜻을 전달하기 위해 말이 있다는 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일이 그것이지요. 말을 바꾸면, 되지도 않는 자기 감정을 질펀하게 노출시켜 남을 감동시키고자 덤비거나 대단치 않은 스스로의 주제를 돌보지 않고 흡사 무슨 도사의 표정을 짓는 짓 따위에서 벗어나, 자기 분석을 겨냥하는 일이 그것이지요. 자기 성찰과 자기 도취의 형식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도 수필이라는 이름의 산문 형식이 필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진술은, 소설문학에 대한 그의 다른 발언, 곧 “(문학작품에 대한) 절대적 평가기준이란 무엇인가. ‘언어’가 그 정답이다. 언어의 밀도가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김윤식의 소설 현장 비평>, 1997, 서문)는 말과 통한다.

-이 기준들은 보기에 따라 꽤 엄격하다. 김윤식의 문장은 이 기준들을 넉넉히 채우고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아니라는 쪽에 걸겠다. 문제는 명문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중기 이후 텍스트에서 사뭇 가시기는 했으나, 김윤식 텍스트는 ‘문법에서 벗어나는’ 문장들을 너무 많이 품고 있다. 그의 웅장한 학문적 성채의 적잖은 부분은 읽어내기 힘들만큼 조악한 한국어를 벽돌로 삼아 세워졌다.

 

 

 

 

-한 세대에 걸쳐 김윤식이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문학 교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법에 대한 그의 이 대범함은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직업적 나태였다 할 만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의 문장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란 무엇이겠는가’, ‘~가 아닐 것인가’ 같은 표현은 그가 경멸해 마지않는 ‘자기 도취에 빠진 도사의 표정’에서 얼마나 멀까? ‘언어의 밀도’를 잃어버린 ‘명문’의 허세에서는 또 얼마나 멀까?

-김윤식이 ‘쓰다’의 주어일 뿐만 아니라 ‘읽다’의 주어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의 글쓰기 무게중심이 중기 이후 ‘연구자의 논리’(근대문학 연구)에서 ‘표현자의 사상’(현장 비평)으로 조금씩 옮아가면서, 그 읽기 대상도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당대 소설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다. “‘표현’과 ‘인식’의 완전한 일치”(<작은 생각의 집짓기들>, 1985, 서문)라 스스로 정의한 비평에서 이 원로 비평가는 성실했는가? 아니 그 비평의 전제인 읽기에서 그는 성실했는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고희의 나이에도 이어지고 있는 월평들은 김윤식이 이 시대의 가장 열정적인 소설 독자(가운데 한 사람)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문단 한편에서 들추듯, 그의 비평은 해석의 타당성을 떠나 작품의 줄거리 자체를 그릇 잡아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너무 많이 읽는 탓에 읽기의 ‘밀도’가 낮아졌는지도 모른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건네는 눈길은 아직 이름을 세우지 못한 작가들의 가슴을 한껏 설레게 하는 격려가 될 테다. 그러나 이 원로의 독서가 날림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는 권위라는 자산을 너무 함부로 쓰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이런 트집이 무슨 소용이랴? 20세기 한국문학 텍스트를 김윤식만큼 많이 읽은 사람은 없다. 20세기 한국문학에 대해 김윤식만큼 많이 쓴 사람도 없다. 그가 아니었으면 도서관 한 구석에 처박혀 세월을 보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텍스트들이, 그리고 그 텍스트들의 저자들이, 김윤식의 손을 거쳐 한국문학사에서 제 자리를 얻었다. <김윤식 서문집>은 그의 이 끝없는 읽기-쓰기의 그림자다. 한국문학은 이 불세출의 독자-저자에게 큰 경의를 표해 마땅하다.(*짐작에 그의 저작을 30-40권쯤 갖고 있는 나 또한 그에게, 혹은 한 '주어'에게 경의를 표해 마땅하다.) 

06. 06. 14.

P.S. 고종석이 '또다른 다산(多産) 저자들'로 꼽고 있는 고은과 강준만에 대한 군말도 마저 옮겨온다.

-다산성에서 김윤식과 겨룰 만한 저자가 한국에 있을까? 있다.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시인 고은(73)과 언론학자 강준만(50)이다. 고은 저서의 저자 소개에 ‘저서 1백여 권’이라는 표현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무렵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고은 자신이 이미 그 무렵부터 저서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해온 데다, <김윤식 서문집> 같은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인보>나 <백두산> 같은 서사시들의 낱권을 각각 한 종으로 친다면, 고은의 저서가 1백 종이 넘는 것은 확실하다. 저서의 다수가 시집인 터라, 글자수로 따져서 고은이 김윤식과 겨루기는 어렵겠지만.

 

 

 

 

-고은의 산문은 한 시절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김윤식이 ‘명문’과 관련해 빈정거린 ‘도사의 표정’과 ‘자기도취의 형식’을 짙게 지니고 있었다. 또 청년 김윤식의 글보다 훨씬 더 문법에 대범했다. 그러나 이 약점들은 고은 특유의 주정적(主情的) 문체 속에서 서로를 지워내며 기이한 매력을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일종의 강점이 되었다.

 

 

 

 

-강준만은 그 저서 수에서 이미 김윤식을 앞지른 듯하다. 강준만 저서의 적잖은 부분은 자료의 가공/재구성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점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눈길도 있지만, 그것은 강준만이 김윤식에 뒤지지 않는 ‘읽다’의 주어이자 실증주의자라는 것을 뜻한다. 더 나아가, 강준만이 사실과 현실에 바짝 붙어서 (미시)이론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가 여느 이론가와 달리 대중의 언어를 쓰는 데 대해서도 탐탁지 않은 눈길이 있지만, 그것 역시 이론을 학자들의 닫힌 담론 공간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건강한 욕망과 결부시킬 수 있겠다.

-고은 같은 탐미 취향은 없으나, 강준만은 그 대신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문장’을 구사한다. 이것은 그 같은 다산 저자에게 드문 강점이다. 강준만의 글은 김윤식이 강조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 있다는 점에 많은 관심을 갖는” ‘자기 성찰’의 글에 가까워 보인다.

 

 

 

 

-문법적으로 단정할 뿐만 아니라, 심미적으로도 반들반들 닦인 글을 쓰는 다산 저자는 없을까? 있다. 고은처럼 시와 산문을 넘나드는 김정환(52)이 그다. 그러나 그의 저술 양이 고은이나 강준만에 미치지 못하는 걸 보면, 아름답게 쓰면서 많이 쓰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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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28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MIFF)가 오는 23일부터 7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다(칸느영화제 바로 다음이다. 모스크바영화제는 식장에 파랑 카페트를 깐다. 지난번 칸느영화제에서는 '러시아의 날' 행사도 개최됐었다). 점심을 먹고 재작년 이맘때 쓴 모스크바 통신을 잠시 읽어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영화제 홈피에 들어가보고 알게 된 것이다. 영화제의 약력을 살펴보니 1935년에 처음 개최된 이 영화제는 국제영화제로선 베니스 영화제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59년부터 1995년까지는 격년에 한번씩 열리다가 1995년 이후로는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는 저명한 영화감독 니키타 미할코프가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데(사진은 2001년 행사장에서 잭 니콜슨과 포옹하고 있는 미할코프), 올해도 그런지는 모르겠다(변동사항이 있는 듯하다).

해마다 메인행사가 개최되던 극장도 이번엔 바뀌었다는데(원래는 푸슈킨거리의 러시아극장(사진)이 주극장이었다),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의 멀티플렉스 '10월(Oktyabr)'이 그것이다. 지난해 9월 개관한 이 극장은 9개의 상영관과 3,174석의 객석을 갖고 있다. 아래는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 극장은 24번지에 있다고 한다.

대충 그렇다. 어차피 구경도 가지 못할 영화제에 대해서 주절거리는 것도 속없다. 대신에 재작년에 구경했던 모스크바 영화제 얘기를 약간 덧붙이도록 한다(그때 모스크바는 오늘처럼 부슬비가 자주 내리던 날씨였다). 2004년 모스크바 영화제는 6월 18일에 개막된바, 그맘때 쓴 통신문의 한 대목을 옮겨오려는 것(그때 본 영화들 얘기는 나중에 따로 다루겠다). 주로 미국의 영화감독 퀜틴 타란티노와 프랑스의 여배우 소피 마르소에 대한 것이다.

오늘 저녁에 모스크바영화제의 전야제가 열린다. 26일까지인가가 영화제 기간인데, 2-3일 전부터 세계영화계의 몇몇 명사들이 모스크바를 찾고 있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은 퀜틴 타란티노인바, 그의 <킬빌2>가 이번에 모스크바에서는 개봉됐다. 나는 이 영화의 복사본 비디오CD를 3,200원 주고 사서 보았는데, 이미 두어 달 이전부터 이 복사본 <킬빌2>는 비디오/음반 가게마다 깔려 있었다(한국은 모스크바보다 영화시장이 크니까 이미 개봉했을 걸로 짐작된다). 나는 <킬빌1>, <킬빌2>를 모두 모스크바에 와서 봤는데, 타란티노판 이 ‘무협판타지’의 주제는 다소 고전적인 ‘엄마 되기의 어려움’이다(이하의 내용은 일부 스포일러일 가능성이 있음). 그런 의미에서 ‘불량소녀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교육용’ 영화.

 

 

 



아니, ‘엄마 되기’보다는 ‘엄마로 태어나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첫 아이를 낳을 때 산모들은 아이를 낳으면서 동시에 ‘엄마’를 낳는다). 영화에서 무협 판타지는 ‘산고(産苦)’에 대응하는바, 그때 태어나는 것은 ‘아이’라기보다는 ‘엄마’이다. 우마 서먼은 자신이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에, 즉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에 무자비한 복수를 결심/결행하게 되며, 결말에서는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에 감격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엄마가 되기 위한 조건이 ‘킬빌’이라는 것. 여기서 ‘빌’은 (아이의) ‘아버지’이니까, ‘킬빌’은 일종의 ‘부친살해’인 셈이다. 물론 이 부친살해는 전도돼 있다(지젝식으로 말하면, ‘트위스트’돼 있다).

이 영화에서의 부친살해 욕망은 아이가 엄마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갖게 되는 욕망이 아니라, 엄마가 아이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에게 갖게 되는 욕망이다. 영화에서 우마 서먼은 그 욕망을 실행한다. 왜 ‘아버지’가 제거되어야 하는가? ‘나쁜’ 아버지, 혹은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없어 보이는 ‘부족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형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킬빌>은 내러티브상으론 포스트모더니즘 영화가 아니라, 모더니즘 영화이다. 지젝이 <히치콕>의 ‘모더니즘’에 대해서 지적한바, “(악마적, 외설적인) 부성적 인물에 의해 트라우마를 입은 여주인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히치콕>, 16쪽).



다른 한편으로, <킬빌>의 이러한 주제는 타란티노식 영화의 비밀을 엿보게 한다. 즉 타란티노의 트라우마는 무엇일까, 라는 것. 타란티노가 ‘작가’라면(그러니까 그의 ‘유희정신’에 어떤 ‘진정성’이 있는 걸로 가정한다면), 아마도 그에겐 ‘아버지’가 결여돼 있거나, 적어도 ‘아버지의 이름’이 결여돼 있다. 이른바, ‘부성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전매특허적인 패러디 혹은 패스티쉬(=짜집기) 스타일은 그러한 결여가 낳은 ‘자유’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방황의 산물이다. 그는 ‘아버지’를 부정하면서(그것이 스타일의 유희를 낳는다), 동시에 그리워한다(그것이 스타일에 대한 오마주를 낳는다).

러시아의 한 비평가는 타란티노에 대해, ‘비상한 재능’이 아니라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감독(이라기보다는 비디오가게 점원)이라고 평한바 있는데, 그때 ‘기억’의 대상이 되는 것은, 즉 그 ‘기억’의 ‘주인-기표’는 ‘아버지’이다. 그 ‘아버지’가 부재하는 한 그는 계속 ‘악동’으로 남을 것이다(그러한 타란티노와 비교해볼 만한 또 다른 ‘악동’이 페도르 알모도바르이다).

어쨌든 <킬빌>의 타란티노는 현재 모스크바에 있지만, 히로인 우마 서먼과 대릴 한나는 동행하지 않았는데, 오늘자 <이즈베스찌야>에는 이 두 여배우와의 현지 인터뷰가 실렸다. 어제는 ‘정치적 활동가’이기도 한 수잔 서랜든과의 인터뷰가 실렸고(흥미로운 부분을 발췌해볼까 했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한 마디’가 또 어디로 샐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의 우상이었던 프랑스의 여배우 소피 마르소도 어제 러시아를 방문했다. 모스크바 영화제와는 무관하게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 프랑스 귀금속 전시회의 ‘얼굴’로 온 것인데,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러시아를 다녀간 바 있다. 하긴,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주연도 맡았었으니까 인터뷰대로 러시아는 익숙하겠다. 영화배우에다가 감독으로도 근래에 데뷔했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이 여배우도 어제 TV인터뷰를 보니까 어느덧 ‘나이’가 완연했다(내 기억에 그녀는 나보다 한 살 더 많다).

 

오늘자 <이스베스찌야>에 실린 인터뷰를 보니까, 그녀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정원을 산책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아무일 없이 쉬는 것. 그러니까 아무런 할일이 없으면 불안해 하는 타입인 듯하다(‘할일’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대중의 주목, 혹은 시선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그녀가 장 폴 벨몽도(한때 프랑스 영화는 알랭 들롱의 영화와 벨몽도의 영화로 나뉘었다)와 함께 주연한 영화가 이곳 TV에 방송됐었는데(지난달에는 <라붐> 시리즈도 방영됐다), 내가 거의 20년 전에 본 영화였다. 고등학교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에만 유일하게 일찍 집에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런 기간에 나는 영화를 보러 다니곤 했다. 바로 그렇게 본 영화 중 하나. 그런데, 내가 놀라는 것은, 정작 그 20년이란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그 20년의 시간에 대한 ‘감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냉담한 것인지, 관대한 것인지, 혹은 아직 젊은 것인지, 너무 늙어버린 것인지 잘 가늠이 되질 않는다...

04. 06. 18/ 06. 06. 14.

P.S.(*타란티노의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도 같이 옮겨놓는다.) 지난 금요일(18일)에 타란티노의 <킬빌2>가 공식 개봉됐고, 어제(19일) <이즈베스찌야>에는 타란티노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어는 칸느 영화제 얘기를 할 때 언급됐었는데, 마리야 쿱쉬노바이다. 짧은 인터뷰에서 주요 질문은 세 가지였는데, 첫번째 질문은 (한 편의 영화를 찍은 다음에 둘로 나눈 게 아니라) 처음부터 <킬빌>을 두 편의 영화로 따로 찍을 생각을 했느냐는 것. 타란티노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문제가 됐던 건, 시나리오였는데, 원래는 한편의 영화를 목표로 씌어졌다는 것. 타란티노는 그걸 도저히 90분에 다 집어넣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빼놓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제작자가 둘로 나누는 게 어떨까라는 제안을 해서 “만세!”를 불렀다는 것.

두번째 질문은 <킬빌3>도 나오느냐는 것. 이에 관해서는 흥미를 느낄 만한 팬들도 있을 듯한데, 타란티노의 대답은 역시 그렇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킬빌1>을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대충 <킬빌3>가 어떤 내용이 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첫장면에서 우마 서먼이 블랙맘바와 결투를 벌일 때 블랙맘바의 유치원생 딸(니키)이 끼어든다. 우마 서먼이 결국은 맘바를 죽이게 되는데, 그 장면을 본 니키에게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복수하러 오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기다리겠다고. 그게 <킬빌3>다. 그런데, 어린 니키가 엄마의 복수라도 하려면 좀 커줘야 될 게 아닌가? 그래서, 타란티노의 대답은 <킬빌3>는 한 15년쯤 후에 나올 거라는 것이다. 그는 니키가 커가는 과정을 미리 찍어둘 예정으로 있다.(*아래 사진은 어린시절의 타란티노.)



그렇게 되면, 복수는 끝이 없는 게 아닐까?(우마 서먼도 딸이 있으니.) 타란티노의 대답은 그럴 수도 있지만, ‘타란티노의 세계’(관객이 이해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에서는 이게 완결편이 될 거라고. 그래서 <킬빌>은 아마도 타란티노판 ‘복수의 3부작’이 될 것이다(<킬빌2>에는 “복수는 곧 사랑”이라는 대사도 있으니까, ‘사랑의 3부작’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이 ‘복수의 3부작’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박찬욱이다. 쿱쉬노바이 세번째 질문은 그에 관한 것이다. 이 대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번역하겠다.



-(쿱쉬노바) 칸느에서 당신은 한국영화 <올드보이>에 표를 던지셨죠. 똑같이 복수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올드보이>가 비극적인 복수자를 다루고 있다면, 당신의 영화에서는 복수도 (자기)만족일 뿐인데요.

 

 

 

 

-(타란티노) <올드보이>는 영화제에서 아주 뛰어난 영화였죠. 저로선 이 영화가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진짜 걸작이라고 생각돼요. 영화는 한국영화를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화 현상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복수에 대해서는… 당신이 내용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주제에 관해 두 편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Sympathy for Mr. Vengeance)>과 <올드보이>. 그리고 지금은 세번째 영화를 찍을 건데, 이 세 편의 영화에서 그는 복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각기 다른 결론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복수가 사랑으로 손에 손을 맞잡는 게 아니라면, 해석의 여지는 활짝 열려 있어요. 비극적인 복수자를 보여줄 수도 있고, 복수의 유익함, 즉 정의의 승리를 보여줄 수도 있죠. 또 복수자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나 환희, 만족감을 보여줄 수도 있죠.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역시 복수에 대한 영화라는 건 나로선 처음 듣는 얘기인데(*다시 읽으니 코믹하다. 우리는 그가 무얼 어떻게 찍었는지 알고 있다!), 타란티노의 말인 만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현재 어느 정도 진행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된 만큼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사실, 객지에서 이런 류의 기사나 인터뷰를 읽는 일은 ‘만족감’을 준다. 그 만족감은 TV에서 한국기업들의 광고들을 볼 때 느끼는 ‘대견함’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너 돈 좀 있구나”와 “너 뭘 좀 아는구나”의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요즘은 타란티노가 외교관 열 명이 달려들어도 못할 일들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한국 외교관이 <이즈베스찌야>와 인터뷰 할일이 있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화현상”이라!..(*아래 사진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무덤을 찾은 타란티노. 파스테르나크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타란티노가 좀더 그럴 듯하게 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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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 '한국:토고'전을 보고(이 게임은 호주:일본 전 다음으로 재미있었다) '프랑스:스위스'전을 기다리는 막간에 재작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지젝의 <이라크>의 제2장 '민주주의와 그 너머'를 읽으며 정리했던 내용을 옮겨놓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최근에 최장집 교수의 논문집 <민주주의의 민주화>(후마니타스, 2006)가 출간된 것도 민주주의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도록 유인한다.

 

 

 

 

한데, 나는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주문했지만, 막상 책이 온 걸 보니 그건 아니었다. '민주주의' 전문출판사(?)로 나선 후마니타스 편집진의 '작품'이었던 것. 내가 기대했던 건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란 근간인데, 마저 출간되어야 최장집 교수의 '한국민주주의' 3부작이 될 듯하다. 물론 그 원조로 꼽을 수 있는 책은 10년 전에 출간된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한길사, 1996)이 되어야겠지만.  

<민주주의의 민주화>와 함께 내가 주문했던 책은 정치이념(이데올로기) 사전용으로 적합한 <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아카넷, 2006)이며, 샹탈 무페의 <민주주의의 역설>(인간사랑, 2006)과 미국 민주주의론의 권위자 로버트 달의 <미국헌법과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4) 등을 같이 읽어둘 만한 책으로 꼽아두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게 실현가능한 기획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럼, 이 정도에서 마이크를 2004년 9월 22일 모스크바대학의 본관 강당으로 넘긴다. 그날 모스크바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당시 방러 중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초청강연'이 있었고(노무현 정부는 최장집 교수의 신랄한 비판대상이기도 하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자세한 현장 중계는 시효가 많이 지난 관계로 생략하고 한러 관계의 우호적 전망에 대한 대통령의 강연이 끝난 이후부터 따라가 보기로 한다(참고로 푸틴의 지지율은 줄곧 70%를 넘어서고 있다. 노대통령의 지지율과 합하면 얼추 100%가 되겠다. '노빠 파시즘'이나 '대중독재'란 표현은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강연에 이어서는 노대통령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와 (학교를 대표하여) 총장의 기념품(나무로 조각한 수공예품 백조였다) 증정이 있었고, 끝으로 한 한국인 성악가(여기 유학생인가?)와 모스크바대학 합창단이 우리 가곡 ‘선구자’를 불렀다(이 노래가 3절까지 있는 줄은 새삼/처음 알았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생각나는 대로 가사를 적어놓고 보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구절은 모호하다. “거친 꿈이 깊었나?” 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가란 뜻인가?(선구자는 이미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불러서 될 일이 아니고 발굴해야 될 일 아닌가?)

‘선구자(先驅者)’란 말 그대로, ‘먼저 말을 달린 자’란 뜻이다(왜 ‘강가’에서 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어떤 일에 앞장 선 사람을 말한다. 무엇인가를 기획하는, 프로젝트(project)하는, 즉 앞으로(pro) 내던지는(ject) 사람. 기업가이기도 하고 혁명가이기도 한 사람. 지젝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레닌주의’이다. 지젝이 <이라크>(도서출판b, 2004)의 두 번째 장 ‘민주주의와 그 너머’의 결론에서 하고 있는 얘기를 잠시 들어보자. 러시아의 (생각하면 눈물나는) 현대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내용이다.

 

 

 



“1990년은, 즉 공산주의의 붕괴는, 통상 정치적 유토피아의 붕괴로서 지각된다. 고귀한 정치적 유토피아가 어떻게 전체주의적 공포로 끝나고 마는가에 대한 혹독한 교훈을 배운 오늘날 후-유토피아적 실용주의적 행정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선 주목할 것은 이른바 유토피아의 붕괴라는 것에 뒤이어서 최후의 거대한 유토피아, 즉 ‘역사의 종말’인 세계적 자본주의의 자유민주주의라는 유토피아가 10년간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9.11은 바로 이 유토피아의 종말을 가리킨다.”(159쪽)

즉, (지젝에 따르면) 우리는 지난 세기에 두 가지 유토피아의 종말을 경험했다. 하나는 70여 년을 버티던 ‘정치적 유토피아’로서의 공산주의의 붕괴(=종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후 10여 년을 기고만장했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자유민주주의 유토피아의 종말이었다. 전자의 종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였다면(그때 나는 군복무중이었다), 후자의 종언을 보여주는 ‘실재적’ 사건이 바로 9.11이다.

그러니까, 1차 유토피아(1917-1991), 2차 유토피아(1991-2002)가 모두 끝장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종말 이후에,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뒤이어 새로운 갈등의 장벽들이 실재적 역사(=역사의 현실)로 회귀”했다. 궁극적 유토피아는, 그러니까 ‘있지도 않은 것’에 대한 환상은 “유토피아의 종말 이후에 우리가 ‘역사의 종말’에 접어들었다고 하는 바로 그 관념이다.”

“우선적으로 우리는 여기서 유토피아란 말의 의미를 특화해야만 한다. 가장 내밀한 곳에서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이상적 사회를 상상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유토피아를 특징짓는 것은 문자 그대로 자리가 없는(u-topic) 공간의 건설이다. 즉 기존의 매개변항들 – 기존의 사회 세계에서 무엇인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가를 규정하는 매개변항들 – 바깥에 있는 사회적 공간의 건설이다. ‘유토피아적인’ 것은 가능한 것의 좌표를 바꾸는 제스처이다.”(159쪽)

여기서 지젝이 제안하는 것은 유토피아에 대한 새로운 정의, 아니 올바른 정의이다. 그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이상적 사회’란 관념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자리가 없는’ 공간의 건설이다. 왜 자리가 없는가? 기존의 사회 세계에서, 즉 사회적 좌표계 내에서는 자리가 할당되지 않기 때문이다(‘매개변항’이란 건 ‘parameter’의 번역 같은데, 여기선 그냥 ‘변수’나 ‘한계’(혹은 울타리)라고 옮기는 것이 더 읽기에 편하겠다).



지젝이 유토피아적인 제스처의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은 레닌이다: “제2인터내셔널의 정통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1914년 재앙(러시아어 번역은 ‘비극’)의 잿더미로부터 등장한 레닌주의적 ‘유토피아’의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국가 그 자체를 뜻하는 부르주아 국가를 분쇄하고, 상설적인 군대나 경찰이나 관료가 없이 만인이 사회적 문제들의 관리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코뮨적 사회 형태를 발명하라는 근본적 명령. 레닌에게 그것은 어떤 머나먼 미래를 위한 이론적 기획이 결코 아니었다. 1917년 10월에 레닌은 '이천만 인민이 아니라면, 열명으로 구성되는 국가기구를 즉시 작동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그 순간의 절박함이 진정한 유토피아다.”(160쪽)


 

 

 

레닌주의의 핵심으로서의 근본적인, 즉 래디컬한 명령(=요구)는 무엇인가? 그것은 (1)부르주아 국가, 즉 국가라는 것 자체를 분쇄하고 (2)새로운 코뮨적 사회형태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코뮨에서는 만인이, 즉 모두가 사회적 문제들의 결정(‘관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레닌에게 단지 ‘이론적인’ 기획이 아니었다는 것. 이어지는 레닌의 발언은 레닌주의를 집약하는 것으로 지젝이 자주 인용하는 것인데, 따라서 그만큼 중요한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잘못 번역돼 있다. “이천만 인민이 아니라면, 열명으로 구성되는 국가기구를 즉시 작동시킬 수 있다”는 건 굳이 레닌이 아니더라도 만인이 떠들 수 있는 말이다. 이게 레닌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그가 구상했던 코뮨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지젝은 이 발언을 닐 하딩(N. Harding)의 <레닌주의>(Duke University Press, 1996), 309쪽에서 인용하고 있는데(지젝이 레닌과 관련하여 자주 참조하는 책이다), 내 생각엔 하딩이 잘못 번역했거나 (그보다 확률이 높은 건) 우리말 역자가 잘못 번역했다(설마 지젝이 잘못 인용했을까?). 아마도 <국가와 혁명>에 나오는 구절인 듯하므로, 국역본 <국가와 혁명>을 참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어로는 <레닌전집> 34권, 316쪽에 나오는 말인데(요즘 러시아에선 <레닌전집>을 좀처럼 구하기 어렵다), 레닌이 실제로 한 발언은 이렇다. “우리는 이천만명이 아니더라도, 천만 명으로 구성된 국가기구를 즉각 도입할 수 있다.”

내가 읽은 러시아어 원문(레닌은 러시아어로 말했으므로, 이 경우는 영어본의 번역이 중역이다)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분명 그런 내용이며(지젝이 쓴 <레닌의 13가지 경험>이란 책까지 뒤졌는데, 거기도 같은 문장이었다), 영어본의 문장도 특별히 난해할 것 같지 않은데, ‘이천망명-천만’조차 ‘이천만-열명’으로 탈바꿈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로 앞에서 만인이 사회적 문제들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코뮨이라고 했으므로, 이천만명은 아니더라도 천만 명이 내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문맥상 ‘논리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방식이야말로 레닌주의에 값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이와 같은 그 순간의 절박함이 진정한 유토피아다.”는 러시아어본에서 “이러한 어떤 순간의 절박한 요구(=명령)가 진정한 유토피아이다.”라고 옮겨지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바로 이러한 레닌주의적 유토피아의 (엄밀히 키에르케고르적 의미에서의) ‘광기’를 고수해야 한다. 그리고 스탈린주의는, 어느 쪽인가를 따져본다면, 현실주의적 ‘상식’으로의 회귀를 나타낸다.” 즉 여기서의 대비적 구도는 ‘레닌=유토피아주의=광기’ 대 ‘스탈린=현실주의=상식’이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스탈린식의 ‘현실 사회주의’가 잃어버린 것은 레닌주의의 ‘유토피아적 광기’이다(그런 ‘광기’를 계승했던 이는 내 생각에 영구혁명론을 주장한 트로츠키였다).

 

 

 

 

(*)최근에 읽은 <공산주의>(을유문화사, 2006)에서 저명한 러시아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가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바체슬라브(*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고위의 비밀직책들을 갖고 어떤 볼셰비키보다도 더 오랫동안 레닌과 스탈린 두 사람을 섬겼다. 노년에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엄격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 레닌이지. 레닌이 스탈린에게 너무 부드럽고 진보적이라고 꾸짖던 일이 생각나네.'" 파이프스의 결론: "이것으로 스탈린주의가 레닌주의의 거부를 뜻한다는 신화(처음에는 트로츠키가, 다음에는 흐루시초프가 유행시킨 신화)는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즉, 스탈린주의가 광기였다면, 그것은 레닌주의 충실한 계승이라는 것(이 경우 스탈린의 '상식'은 광기의 일상화가 낳은 상식이다).  아래는 1917년의 스탈린과 레닌.

이런 대목의 지젝은 ‘페레스트로이카’의 기치를 높이 들고서 스탈린주의의 청산과 레닌주의에로의 복귀를 주창했던 고르바초프를 연상시킨다. 현실 사회주의가 더 강력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로 재건/재구축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고르바초프는 유토피아적이었다(즉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가, 그리고 러시아 국민이 선택한 것은 (쿠데타군의 탱크 위에 올라가서 열변을 토한) 옐친이었고(그 옐친은 ‘욕조=스탈린주의’와 함께 ‘아이=레닌주의’도 과감하게 내다버리는 걸로 이에 화답했다), ‘현실 자본주의’였다. 그건 상식적인 것이었을까? 91년 이후 몇 년간의 러시아사(=역사적 혼돈)는 남의 나라 역사임에도 나를 눈물나게 한다.

계속 지젝을 따라가본다. “다시금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유토피아가 실제 삶을 추상한 이상적 사회에 관한 꿈꾸기와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가장 내밀한 곳에 있는 절박함의 문제이며, ‘가능한 것’의 매개변항들 내에서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을 때 생존의 문제로서 우리가 떠밀려 들어가게 되는 어떤 것이다. 이 유토피아는 정치적 유토피아들에 대한 표준적 개념, 즉 실현되어야 한다는 의도조차 기본적으로 없었던 기획들을 포함하는 책들에도 분명하게 대립되는 것이며 우리가 자본주의 자체의 유토피아적 실천으로 통상 언급하는 것에도 분명 대립되는 것이다.”(160-1쪽)

즉 유토피아는 실제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이상적 사회에 대한 몽상과는 무관하다. 유토피아는 우리가 더 이상 ‘가능한 것’의 한계(=울타리) 내에서 살아갈 수 없을 때 제기되는 생존의 문제이며, 가장 심층적인 차원에서의 어떤 불가피성(=필연성)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건 우리의 상식적인/표준적인 유토피아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지젝은 ‘유토피아’란 개념을 발명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디저트 같은 언급인바, 유토피아 전략의 심미적 차원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유토피아 전략들 가운데 하나는 심미적 차원에 놓여있다. 종종 제기되는 주장에 따르면, 자크 랑시에르는, 심미적 차원을 정치에 내재한 것으로서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가운데, 이미 그 시대가 확실히 가버린 19세기의 포퓰리즘적 반란들을 회향적으로 동경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말로 그런가?” 디저트니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여기에도 사소한 오역이 있다. 일단 우리말로, “자크 랑시에르는 무엇을 동경하고 있다”는 게 종종 주장으로 제기될 만큼 중요한 일인가? 정말로 그런가, 즉 랑시에르는 그런 걸 동경하고 있는가?

물론 그건 넌센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건 랑시에르가 무얼 어쨌다는 게 아니라 어떤 시대가 완전히 지나가버렸다는 것이고, 지젝이 반문으로 제기하는 건 정말로 그런가, 정말로 (그런 시대는) 지나가 버렸는가, 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시대인가? 랑시에르 얘기는 그 시대를 수식하기 위해 삽입된 것이다. 즉 19세기 민중 반란의 시대이다. 랑시에르가 주장하는 건 그러한 정치적인 사건에 내재한 심미적 차원인 것이고. 지젝은 그러한 심미적 차원의 정치성을 포스트모던적 정치상황에서도 읽어내고자 한다. 즉, “피어싱이나 옷바꿔입기에서 공개적 스펙터클에 이르기까지 ‘후근대적인’ 저항의 정치야말로 심미적 현상들로 물들어 있지 않은가?”(161쪽) 하는 것.



‘공개적 스펙터클’이란 말이 나오는데, ‘포스트모던적’ 저항으로서의 ‘공개적 스펙터클’ 사례로 지젝이 들고 있는 것은 ‘플래시 몹’이다. “플래시 몹이라는 진기한 현상은, 최소한의 뼈대로 환원된 가장 순수한 심미-정치적 항의를 나타내지 않는가? 사람들은 정해진 시각에 지정된 장소에 나타나서 어떤 짧은 행위를 수행하고 그런 다음에 다시 흩어진다. 플래시 몹이 아무런 실제 목적도 없는 도시의 시(詩)로서 묘사되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이 플래시 몹은 일종의 ‘정치의 말레비치’가 아닌가? 그것은 최소한의 차이의 표식인 그 유명한 ‘흰 표면 위의 검은 사각형’에 대한 정치적 대응물 아닌가?”



말레비치는 물론 ‘절대주의’를 주창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화가이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은 '흰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이다(‘흰 표면 위의 검은 사각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라크>에서 말레비치는 한번 더 언급되는데, 라캉의 네 가지 담론을 설명하는 절에서이다. “(네 가지 담론의) 전체적인 구성은 상징적 재배가라는 사실에, 즉 하나의 존재자를 그것 자체와 그것이 구조에서 차지하는 자리로 재배가하는 것에 기초해 있다. 그 자리는 말라르메의 ‘자리만이 발생한다’나 말레비치의 흰 표면상의 검은 사각형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다. 둘 모두는 자리 그 자체를 공식화하려는 노력을, 혹은 차라리 요소들간의 차이에 선행하는, 하나의 요소와 그것의 자리 사이의 최소한의 차이를 공식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173쪽)

인용문에서 재배가는 reduplicatio(=reduplication)를 옮긴 것인데, 이건 ‘배가’라고 해야 맞다(<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의 역자도 그렇게 옮기고 있다). 뜻은 하나를 둘로 만드는 것, 즉 두 배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우리말로 ‘배가(倍加)’라고 한다. ‘재배가’는 배가된 걸 다시 배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산술적으론 네 배가 된다(영어에서 duplication이나 reduplication은 거의 같은 뜻이다). ‘존재자’로 옮긴 entity(‘실체’로도 많이 번역된다)는 being과 함께 하이데거의 용어인 ‘존재자’의 영어 역어로 사용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entity가 우리말 ‘존재자’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우리말에서 ‘존재자’란 말은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영어의 소문자 being처럼, 그냥 우리말 일상어의 ‘존재’로 충분하다.



말레르메의 시구 ‘자리만이 발생한다(rien n’aura eu lieu que le lieu)’는 어느 시에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주사위 던지기>에 나오는 시구이다), 뒤에 붙은 설명으로 봐서 불충분한 번역이다(러시아어본에서는 불어를 따로 옮겨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로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면, 말라르메와 말레비치와 나란히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즉, <흰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자리(=장소)가 이미 하나의 요소로서 다른 요소들간의 차이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자리 자체를 분리/규정해내고자 한 것(*한 말라르메 전공자는 "장소 이외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옮기고 있다. 이해하기 편하다).

즉 말레비치의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검은 사각형’이란 요소만이 아니다. 거기엔 ‘흰 바탕’이란 요소가 이미 선행해 있는 것이다. ‘검은 사각형’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오히려 ‘흰 바탕’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라캉의 네 가지 담론에서 이 ‘흰 바탕’ 즉 ‘자리’에 해당하는 것이 작인(agent), 타자(other), 진리(truth), 산물(production)이다(나로선 ‘작인’이란 역어가 내키지 않지만,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의 역자부터 ‘작인’이란 역어를 선택하고 있다).

‘정치의 말레비치’란 표현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정말로 지젝 자신이 플레시 몹 같은 같은 ‘포스트모던적’ 저항의 정치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거기에 대해선 보다 본격적인 분석과 제안이 뒷받침되어야 하리라. 다만, 이 자리에서는 지젝이 새롭게 규정/제안하고 있는 유토피아적 제스처와 전망을 우리가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할 따름이다. 지젝은 3장 ‘지배와 그 너머’의 끝부분에서도 다시 유토피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 대목을 확인하면서 나는 ‘공식적인’ <이라크> 읽기를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보다 일반적 수준에서, 이른바 금지된 지식의 실정적, 구성적 지위 개념은, 즉 우리의 욕망이 만족에 도달하기 위해 직접적 충족은 지연되어야 하며 심지어는 포기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보기보다 더 복잡하다.”(226쪽) 왜인가? “핵심적인 사실은 금지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반성적으로 재배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성적이란 역어는 reflective(ly) 정도를 옮긴 것일 텐데, 우리말이 너무 ‘조밀하기’ 때문에 번역이 까다로운 경우이다. 즉, 영어의 reflection은 우리말의 반성, 반영, 반사, 성찰이란 뜻을 모두 포괄하며 reflective나 reflexive는 ‘재귀적’이란 뜻도 갖는다. 바로 앞에서 인용한 문장은 “중요한 것은 금지가 작동하기 위해선 그것이 재귀적으로 배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용이하다. 재귀적인 배가? “금지 자체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27쪽)



“즉 금지는 그 실정적인 차원 속에서 금지처럼 보여서는 안되고 욕망의 대상에 대한 우리의 접근을 가로막는 단순한 외적 장애물처럼 보여야 한다. 다시 말해 나는 내가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혼잣말할 수는 없다. '그건 진정으로 그녀는 아니야, 그녀는 평범한 여자에 불과해. 그녀를 그토록 매력적이게 만드는 것은 위반의 아우라, 금지된 영역에 들어가는 것의 아우라야. 그것은 그녀의 현실을 넘어서는 나의 상상력의 힘과 과잉이야!' 그런 직접적인 통찰은 분명 ‘실용주의의 모순’인데, 그것은 실상 가정되면 나의 욕망을 망쳐놓는다.”

실용주의의 모순? 물론 오역이다. ‘Pragmatic contradiction’ 정도의 역어일 듯싶은데, ‘화용론적 모순’이라고 옮겨야 한다. 이 ‘화용론(話用論)’을 일어에서는(일본사전을 베낀 영한사전에서도) ‘어용론(語用論)’이라고 옮기는 듯하다(우리말에서 왜 어용론이란 역어가 기피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건 ‘어용(御用)’이란 말과 혼동되기 때문이다). 약간 변칙이지만, 더 이해하기 쉽게 옮기려면, ‘수행론적 모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즉,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남자는 어떤 여자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다. 거기서 그런 류의 혼잣말(=통찰)과 열정은 양립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금지된 지식은 사랑하는 사람의 현실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대상의 현실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대상을 나의 욕망의 원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차지하는 금지된 자리라는 정황에 관한 바로 그 지식이다.”

<이라크>를 두 번 통독하면서 가장 난해했던 문장인데(그래서 여러 번 반복해 읽어야 했다), 평범한 듯한 번역문이 잘 안 읽혔던 것은 뭔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번역문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여, 이 부분을 ‘능력’에 관한 걸로 옮겼지만, 전후 문맥상 ‘금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다시 옮기면, “따라서 진정으로 금지된 지식은 사랑하는 사람의 실상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대상(=사랑하는 사람)의 ‘아무것도 아님’이라는 실상에 관해서 결코 알아서는 안 된다는, 대상을 나의 욕망의 원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에 대한 앎)이 금지돼 있다는 바로 그 지식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무엇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무엇이 금지돼 있다는 앎 혹은 언표 자체의 금지이다. 해서, 스탈린 시대의 허식재판(show trial)에서도 결정적이었던 것은 공산주의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공식적으론 보증/허용되었지만 은밀하게는 금지돼 있던, 자유발언(=비판) 권리 자체의 ‘실행’이었다.

따라서, “사랑하는 대상의 마력을 깨지 않기 위해 그것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자세가 가짜 사랑의 확실한 징표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진정한 사랑은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그것의 일체의 통속적 현실 속에서 떠맡는 것과 동시에 그것의 숭고한 지위를 유지할 각오가 되어 있다. 즉 마르틴 루터에 대한 헤겔의 주해를 말바꿔(=바꿔 말해) 보자면 진정한 사랑은 일상적 저속함의 십자가에서 숭고함의 장미를 알아볼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228쪽) 나라면 ‘저속함’이란 역어는 ‘비속함’으로 바꾸고 싶다(나의 취향이 비속한가?). 여기서 지젝이 말하는 사랑은 욕망에서 해방된, 아니 욕망을 초과하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이어지는 ‘정치적 교훈’은 러시아어본에는 빠져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일상적 저속함의 십자가에서 숭고함의 장미를 알아본다’는 이런 자세가 갖는 정치적 교훈(혹은 차라리 함축)은 기존 현실을 신비화하는, 그것에 가짜 색깔을 칠하는 일이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숭고한(유토피아적) 전망을 힘껏 일상적 실천으로 번역해내는 일, 요컨대 유토피아를 힘껏 실천하는 일이다.” 마치 무슨 강령이나 구호처럼 돼 있어서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유토피아적 전망과 일상적 실천이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지젝의 결론을 우리의 문맥에서 조금 일상적인 용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진정한 사랑은 일상적인 ‘비속한’ 한국 여자들에게서 ‘숭고한’ 러시아 여자들을 알아볼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세가 갖는 일상-정치적 교훈은 기존의 한국 여성들을 (러시아 여성들처럼) 신비화하는, 그것에 분칠하고 떡칠하는 일이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이다(*이 통신문의 원제목은 '크레믈린-보드카-러시아여성'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러시아 여성의 이미지(=비전)를 힘껏 한국 여성의 일상으로 번역해내는(=옮겨오는) 일, 요컨대 이상적 여성이란 유토피아를 먼 나라에서 구할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힘껏 찾아보는 일이다. 너무 가깝다고 주저하지 말고 말이다…”

04. 09. 23./ 06.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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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6-1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요, 감사~^^

기인 2006-06-14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로쟈님도 월드컵 보시나요? ㅎㅎ 저는 기분이 야릇해서 잘 못 보겠습니다 ^^;

로쟈 2006-06-1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한 경기 정도는 보게되네요. 오늘밤엔 스페인과 우크라이나 전 같은. TV에서 다른 거 하지도 않으니까요.^^
 

알다시피 올해는 중국의 문화혁명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얼마전 '한겨레21'에서는 이에 대한 심층특집을 다룬 바 있다. 그걸 잘 정리해놓으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어졌었는데, 마침 오늘자 문화일보(06. 06. 13)에 문화혁명과 관련한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의 기고문이 실렸길래 옮겨온다. 읽고 정리하기에 부담이 없는 분량이기도 하고('로쟈의 생각'으로 정리하는 건 미래의 일이고 당장은 '인용'으로 때우도록 한다).

 

 

 

 

-올해로 40돌을 맞이한 문화대혁명, 그것은 중국인들에게 결코 되새기고 싶은 기억이 아니다. 40돌을 맞으면서도 그것이 중국인들의 입이나 언론에 별로 오르내리지 않는 원인도 여기에 있을 것 이다. 그렇지만 그 처절한 교훈은 모든 중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발발 원인이 마오쩌둥(毛澤東)의 과오에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왜 대륙전체가 삽시간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고 온나라가 집단적 열광으로 내란, 내전에 몰입됐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이 별로 없다. 어찌 보면 오늘의 50세이상 대부분이 바로 그 열광 속에 있었기에 그 답을 꺼리는 것 같이도 보인다. 거의 모두가 참여자였기에 그 교훈은 어느 한 개인이 아닌 모든 개개인에 돌려진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기이한 일이다! 한편으로, 공산주의는 계속적인 '혁명'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아닌가? 스탈린은 마오쩌둥보다 30년 앞서서 '대숙청'을 통해 이를 입증해 보였다. 사진은 1949년 모스크바에서의 마오와 스탈린.


-농민혁명과 대중혁명의 기치를 들고 간난신고 끝에 정권을 창출 한 마오는 바로 그 정권을 똑같은 방법, 즉 군중운동의 방식으로 유지하려 했다. 대중의 힘을 하늘처럼 믿었던 마오는 모든 권위에 대한 도전, 낡은 것을 짓부수는 반란정신, 심지어 실패하면 능지처참이 되더라도 과감히 황제를 말에서 끌어내리는 정신을 고취하면서 문화대혁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어찌 보면 평생의 이상을 문화대혁명으로 마무리하려 한 것 같기도 했다.

 

 

 



-바로 그 정신을 받든 홍위병들이 반란의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놓으려 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타도한다는 격이었다. 마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집권자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그들이 장악했던 당조직과 정부는 사실상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모든 권력은 반란파에게’라는 슬로건이 내걸렸다. ‘정권탈취’라는 구호가 신문을 뒤덮었고 각 성과 지방마다 이른바 ‘혁명위원회’라는 이름의 ‘홍색정권’이 창출됐다. 홍위병운동은 반란파, 보수파, 중간파라는 파벌로 나뉘어 전국을 내전으로 내몰았다. 그때 쌓인 불신의 앙금이 오늘까지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정도다.


-무엇이 이러한 통제불가능의 사태를 불러왔을까. 어찌 보면 대명, 대방, 대자보라는 형식의 중국식 ‘민주’도 크게 한몫한 것 같기도 하다(*오늘날의 인터넷은 그 유사-대자보가 아닐까?). 누구나 대명, 대방, 대자보를 이용하여 마오를 제외한 어떠한 권위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선과 악이 갈리는 무대였다. 낙후한 생산력은 결국 이 초현실주의 이상을 소화 해내지 못하고 충돌과 파국을 초래한 것이다.

-중국이 문화대혁명에서 얻은 교훈은 실로 많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부터 줄곧 안정국면을 강조하고 대명, 대방, 대자보를 법적으로 금지한 것도 바로 그 교훈을 되새긴 일례라고 하겠다.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실업인구의 증가, 산발적인 소란 같은 현실문제를 심각하게 안고 있는 오늘, 중국은 경제발전에 걸맞은 정치체제 개혁과 시민사회·민주사회 건설을 지향하면서도 문화대혁명의 교훈을 되새겨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어찌 보면 딜레마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문화대혁명’으로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를 일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문화대혁명이 관려주의와 부패일소에 공을 세웠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에 다시 문화대혁명의 일막이라도 재현한다면 그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불행이기도 할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초현실주의 생산관계와 낙후한 생산력 간에 빚어진 갈등이었다면 작금의 중국은 발전하는 생산력에 순응해 점진적인 체제개혁으로 문제점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민주사회는 혼란이 아닌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을 해야 할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에서 철저히 부정되고 있는 역사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것은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하겠다. 역설적으로 문화대혁명이 없었다면 과거에 대한 부정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고, 오늘의 개혁·개방도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교훈이 중국인에게 난관을 헤쳐나갈 지혜를 안겨준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문화대혁명을 잘 모르면 오늘의 중국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06. 06. 13.

P.S. 참고로 지난 봄 '한겨레'에 연재됐었던 이상수 베이징 특파원의 '천안문의 마르크스' 중에서 '(4)사상의 좌우 난독증'(06. 04. 26)을 옮겨온다. 최근 중국의 사상/이념 지형에 대해서 안내해주는 기사이다.

-최근 중국에서 이른바 ‘좌파’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자주 터져 나오고 있다. 홍콩 <명보>는 지난해 중반 이후 중국 내에서 ‘개혁의 성씨가 자씨(자본주의)인지, 사씨(사회주의)인지’를 묻는 논쟁이 자주 터지고 있다며, “이런 사상논쟁은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래 최고조”라고 보도했다.

-좌파와 자유파로부터 비판받는 당국=지난해 8월 궁센톈 베이징대학 교수(법학)는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들 앞으로 공개편지를 보내, 당시 상임위가 심의중이던 물권법 초안이 ‘사회주의 공유제를 주체로 한다’고 규정한 헌법에 어긋난다며 이 법 추진 중단을 요청했다. 물권법의 성씨가 ‘자씨’ 아니냐는 얘기다. 지난 3월 전인대 4차 전체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던 물권법은 궁 교수 등 ‘좌파’들의 저항으로 유보됐다.

-물권법이 ‘좌파’의 저격을 받자 개혁 성향의 이론가 황푸핑은 월간 <재경>에 발표한 글을 통해 “개혁개방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를 ‘시장화’의 책임으로 돌려선 안 되고, 이는 개혁의 심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새로운 좌경화를 경계한다”고 ‘좌파’에 반격을 가했다.

-중국 당국을 공격하는 건 ‘좌파’만이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되레 당국의 개혁이 너무 더디다고 비판한다. 당국에 의해 한때 정간 당했던 <중국청년보> 주말 부록 <빙점>의 리다퉁 전 편집장이나 해직당한 자오궈뱌오 전 베이징대 교수, 그리고 허웨이팡 베이징대 교수(법학) 등은 인터넷과 해외 매체 기고 등을 통해 전면적인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보장과 다당제 개혁 등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좌파’는 개혁개방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고, ‘자유파’는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 포함한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극좌와 극우의 상호침투=프랑스 대혁명 이래 ‘좌파’는 적극적인 개혁의 주창자들에게, ‘우파’는 보수적인 이들에게 따라붙는 별명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은 누가 진정한 ‘좌파’이고 누가 ‘우파’인지 알 수 없는, 심각한 난독증을 앓고 있다.

 

 

 

 

-친후이 칭화대 인문사회과학학원 교수(역사학)는 오늘날 중국에서 좌·우 개념이 혼란스러워진 원인으로, 문혁 때의 극좌적 오류와 더불어 90년대부터 진행된 ‘국유자산 사유화’ 과정을 꼽는다. “과거에 이른바 ‘공유제’를 실시하고 있을 때도 국유기업의 자산 처분권은 명목상으로만 전 직원의 소유일 뿐, 사실은 당서기와 공장장의 손에 집중돼 있었다. 국유기업이 이른바 ‘시장화’ 개혁을 거치면서 공장 ‘영도 간부’들은 공장을 분양해 한몫씩 챙겨 나갔지만 노동자들은 퇴직금과 의료보험은 물론 그동안 삶의 터전이던 일터까지 상실했다.”

-친 교수는 이 과정에서 공유제 아래 극좌파이던 ‘영도 간부’들이 순식간에 ‘극우파’로 변했다고 지적한다(*이건 한국의 경우에도 예의가 아니다). “자유파와 극우파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러나 극우파와 극좌파는 매우 가깝다. ‘전인민적 소유’란 명목으로 ‘영도 간부’가 독점 소유하는 것이나, 극단적인 시장화로 노동인민을 내몰고 이들이 이권을 다시 독차지하는 것은 사실상 같기 때문이다.”

-실사구시로 개혁개방의 길 찾기=중국 당국이 좌파와 자유주의파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고 있는 건 오늘날 중국의 복합적인 과제를 말해준다. 자유주의파의 공격에선 개혁개방의 확대와 지속적 추진이 부각된다. 좌파의 공격에선 개혁개방을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한 젊은 사회과학자는 “오늘날 중국에서 단순히 좌파 또는 우파의 시각만 고집할 수 없으므로 자신을 ‘실사구시파’로 불러달라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소개한다.

-친후이 교수는 중국이 올바른 개혁개방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의 ‘사회적 공정성’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전국의 국유자산 가운데 절반쯤이 ‘시장화’된 상태다. 이 시장화 과정에서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공평한 분배의 문제는 토론조차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이런 불건전한 시장화가 중국 경제에 안정적이고 공평한 시장 환경과 질서를 형성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지난 3월 전인대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확고하게 말했듯 “개혁개방의 추진”은 흔들릴 수 없는 중국 당국의 정책 방향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미 심각하게 불거진 불공정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앞으로 중국 개혁개방의 미래상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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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씨네21>을 읽다가 러시아 영화 개봉 소식을 접했다. 이번주에 개봉한다는 <러시안 묵시록>이 그것인데, 지난 200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되어(포스터를 보니 12월 9일에 개봉됐다) '엄청난 흥행기록'을 세웠다는 블록버스터이다(그때 모스크바에 있었던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역시나 그해 봄에에 개봉되어 여름에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던 <나이트 워치>에 이어서 러시아산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데 의의가 있는 영화인 듯싶다.

 

 

 

 

<나이트 워치>를 우리의 <쉬리>에 견주는 의견들도 있었는데, 체첸반군의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쉬리>와 더 잘 비교되는 영화는 <러시안 묵시록>이겠다. 물론 작품성이 뛰어난 건 아닐 테지만(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떠올리면 되겠다(<나이트 워치>). 하도 오랜만에 소개되는 러시아 영화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관련기사를 옮겨온다. nkino의 전은정 기사가 쓴 리뷰로 제목은 "<러시안 묵시록> - 테러를 필요로 하는 스펙타클의 사회?"이다.

-비행기 한 대가 뉴욕의 무역센터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전세계인들의 마음 속에 테러가 ‘남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깊게 각인됐다. 특히 9.11 사태는 현실에서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테러를 ‘현실’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아랍과 이슬람 문화권을 실체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는 공동의 적으로 확실하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인 7백만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는 ‘매머드급 액션 스릴러’ <러시안 묵시록 Lichnyy Nomer>(*러시아어 원제는 '개인번호', 곧 '군번'이란 뜻이며, 영어제목은 'Countdown')의 소재 역시 ‘테러’다. 러시아 역시 테러와 인연이 깊은 나라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테러의 조합은 꽤 자연스러워 보인다. 영화는 군사 첩보 활동을 벌이다가 체첸 독립군의 포로가 된 알렉세이 스몰린 소령(알렉세이 마카로프)이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자백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스몰린 소령의 증언이 고문에 의한 것이었음이 알려지고 난 후, 체첸 반군과 손잡은 이슬람 과격파 안사르 알의 대형 테러 계획, 그리고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러시아 연방 보안국, 테러의 중심부에 카메라를 들이댄 열혈 여기자 캐서린 스톤(루이스 롬바드) 등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영화는 1816년 카프카즈 정복으로 시작된 러시아 팽창 정책의 희생자인 체첸인들이 세기가 바뀌도록 끊임없이 러시아를 향해 투쟁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다. 많은 체첸인들이 회교도라는 사실도, 그들이 벌이는 테러의 정치적인 목표도 관심이 없다. <러시안 묵시록>은 명백히 대중들의 취향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액션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슬람 과격파와 손잡은 체첸 반군과 러시아 정부와의 대립과 그와 관련된 정치적인 배경보다는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영웅적인 한 사내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볼거리라는 면에서 볼 때 <러시안 묵시록>은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해 크게 쳐지지 않는다. 러시아군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력에 의해 실제 군사기재들이 총동원 된 이 영화의 전투 신들은 꽤 사실적이다. CIA 작전부 부사령관과 러시아연방보안국 부사령관, 러시아 공군 총사령관 등이 영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느니, 장갑차 추격 신에서 레닌 거리를 완전히 봉쇄하고 찍었다는 식의 홍보 문구 역시 ‘실감나는’ 영화의 그림을 강조하고 있다.  

-대중영화가 필요로 하는 영웅,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돈 많은 악당, 영웅을 돕는 조력자도 당연히 등장한다. 안사르 알과 체첸이 러시아 서커스 극장에 모인 아이들과 일반인들을 인질로 삼고 유엔을 상대로 협상을 시도할 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또한 사랑하는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홀로 서커스장에 진입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중심인물이 바로 스몰린 소령이다.

-체첸 측의 포로였다가 살아남은 러시아 장교 알렉세이 가르킨이 겪은 사건과 2002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테러범들의 인질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관객들에게 사실적인 공포를 전달하려 한다. ‘볼거리’로서 제공되는 테러의 모습은 매우 현실적인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노출되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는 진짜 현실의 모습은 없는 경우가 많다.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만 7천원으로 살 수 있는 ‘테러’란 그냥 단순한 흥밋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다.(*씁쓸하지 않은 러시아 영화들도 물론 많이 있다. 우리가 보고 싶어하지 않을 따름이다.) 

06.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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