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에서 신경림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온다. 신경림 시인의 앤솔러지 시집 출간과 관련한 것이다. 예전에 종로에 나가면 간혹 도심을 걷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갈대'의 시인이 어느덧 칠순에 이르셨다고 하니 세월 무상이다.

북데일리(06. 12. 04) 앤솔러지 '처음처럼' 펴낸 시인 신경림

초로의 노인이 아이의 눈을 지녔다. 모진 풍파 속에 탁해져도 한참을 탁해졌을 법한 눈망울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마냥 영롱하게 빛난다. 왜일까, 그 오랜 궁금증을 시인 신경림(70)을 만나고서야 드디어 풀었다.

시인은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져 큰일이라고 했다. 며칠 전 그는 홀로 극장을 찾아가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다가, 눈물이 쏟아져 '혼쭐'이 났다. 1930년대 사회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 <경성 트로이카>(사회평론. 2004)를 읽다가도, 울음이 솟구쳤단다. 긴 세월 지녀온 시름과 회한을 눈물에 씻겨 보냈으니, 남은 건 어릴 적 순수함일 수밖에. "다 큰 어른이 울기나 하고, 주책이지" 얼굴 붉히는 신경림의 눈 역시, 아이의 그것과 꼭 닮아 있었다.

동심을 찾은 시인은, 시에서도 본연의 순수성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최근 펴낸 앤솔러지 <처음처럼>(다산책방. 2006)은 그 의지의 결과물. "시란 본디, 눈보다는 입으로 읽어야 제대로 맛이 나는 문학"이기에, 그가 평소 애송하던 시 50편을 엮었다.

"사람들이 요즘 좀처럼 시를 읽지 않는데 그게 읽는 맛,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려서 그래요. 시는 눈, 입, 귀, 3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져야 되는 거거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쉽고 재미있는 시, 암송하기 좋은 시가 정말 좋은 시죠." 그는 요즘 시인들이 뜻을 알 수 없는 난해함으로 독자와 시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며, 고개 숙여 반성해야 한다는 '따끔한' 일침을 덧붙였다.

1955년 '문학예술'에 '갈대' '묘비' 등이 추천돼 문단에 입적한지도 어언 50년. 반세기를 시작(詩作)에 투신한 신경림은, '현대시의 산증인' 답게 시가 걸어온 역사를 <처음처럼>을 통해 되살려내고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그린 시부터, 7.80년대를 관통한 저항의식이 담긴 시, 개인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시까지. 시인은 어떠한 구분 없이 오로지 작품만으로 시를 해설했다.

"시는 독자에게 읽혀지는 순간, 작가의 품을 떠나 읽은 이의 것이 된다." 시인의 지론이다. 그는 최근 <나의 고전읽기>(북섬. 2006)에서 시인 정지용을 평가하며, 친일 시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차별적인 단죄 풍토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친일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작품이, 시인이 벌인 행위와 싸잡아 매도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를 향한 열정 하나로 살아온 신경림은 작품이 외면당하는 일이, 자식이 상처 입는 것 마냥 안쓰러운 모양이다.

우리시대의 '큰 작가' 조정래는 시를 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시인 부인을 '떠받들고' 산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도대체 시가 무엇이기에, 20년 동안 써내려간 원고지만 5만장이 넘는다는 그조차도 풀 수 없는 난제인 걸까. 발표작만 900여 편인 우리시대의 '큰 시인' 신경림은 "시인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만지지 못하는 것을 만질 줄 알아야 시인이란다. 이를 확실하고 힘 있게 전달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니, 보통 사람은 꿈조차도 못 꾸겠다.

그래서 시인은 독자를 대변해야 한다. 과거, 사회 문제에 대해 방관하는 건 시인의 직무를 유기하는 일이었다. 신경림이 7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시 '농무'를 통해, 당대 농촌 현실을 꾸밈없이 드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현대는 개인적인 문제가 더욱 우세. 이제 시는 개인과 사회를 조화롭게 다루어야 한단다. "시인은 결국 시로 이야기해야 돼요. 사회를 향한 목소리도 개인에 대한 관심도 전부 시로 말해야지. 자기를 직접 드러내선 안 되는 사람이야. 시인은..."

시대는 바뀌었지만, 시인은 그대로다. 중도노선 지식인 모임을 표방하는 '화해상상마당', 남북 작가들만의 단일 조직 '민족문학인협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당신이 시를 통해서 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실천하고 있으니 같이 하자'는 권유를 받고 참여했을 뿐. 신경림은 여전히 시로써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리라고 다짐한다.

그가 애정을 쏟는 단체는, 지역주민 문화운동 모임인 '더불어 숲'과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만해마을'. 둘 모두 독자와 문학을 가깝게 하는 행사에 힘을 쏟기 때문이다. 일흔을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경림의 시에 대한 '타는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은 듯하다. 인터뷰 말미, 그는 "죽기 전에 꼭 써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을 위한 동시나 동요를 집필하고픈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단다.

시는 억지로 짜내서는 안 되기에, 시인은 동시가 써질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쓰고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입에 술을 대지도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니, 그가 두문분출 하는 날이 오면 분명 신작 준비에 들어간 것이라 짐작해도 좋을 듯하다.(고아라 기자)

06. 12. 04.

 

 

 

 

P.S. 단행본들 외에 <신경림 시전집>을 나는 따로 갖고 있지 않지만 <민요기행>의 예전 판본과 <시인을 찾아서> 등은 소장하고 있었다. 후자는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칠 때 참고하곤 했다. 아이들을 위한 동시/동요의 집필이 시인의 마지막 꿈이라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후배인 김용택 시인의 오히려 선배가 아닐까 싶다. 앤솔로지 시집도 사실 김용택 시인이 먼저 내기도 했었고(또다른 편자로 안도현 시인 등도 떠오른다).

 

 

 

 

이번에 검색해보니까 재판이 나온 모양인데, 동시집 중에 기억해둘 만한 건 김용택 시인의 <콩, 너는 죽었다>(실천문학사, 1998)이다. 표제작은 그맘때 벌이삼아 다니던 학원에서 초등학생들한테 암송하도록 시켰던 시이기도 한데(아예 이젠 노래로도 나와 있는 모양이다), "시는 눈, 입, 귀, 3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져야 되는 거거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쉽고 재미있는 시, 암송하기 좋은 시가 정말 좋은 시죠."라는 신경림 시인의 요구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시가 어디갔나 싶어 찾아봤더니, 아하, 아예 교과서로 쏙 들어가버렸구나!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이런 게 시이다. 아이들이 웃고 즐기면서 암송할 수 있는 시, 가 그래서 더 많아져야 한다. 신경림 시인의 동시도 그런 의미에서 고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보에 잠깐 들렀다가 발견하고 다소 놀란 책은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안티쿠스, 2006)이다. 흔히 '바보들의 배'라고 알려진 책인데, '1494년 출간된 세상 모든 바보들에 관한 원전'이란 부제가 말해주듯이 정말로 15세기말에 씌어진 책이다.  

나로선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푸코의 책 어디선가에서 제일 처음 읽어본 듯도 한데, 찾아보니까 '바보들의 배'라는 건 어떤 특정한 책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는 아니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은 이렇다: "The ship of fools is an old allegory, which has long been used in Western culture in literature and painting. With a sense of self-criticism, it describes the world and its human inhabitants as a vessel whose deranged passengers neither know nor care where they are going. Ships of Fools featured as wagons in medieval Carnival Parades."  그러니까 지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태운 배가 '바보배'인 모양.

'바보배'란 말이 알레고리인 만큼 여러 작품들이 같은 이름으로 씌어졌는데, 이번에 번역돼 나온 브란트의 책은 그 '원조'쯤 되는 듯하다. 이후에 20세기 작가들이 여러 명 가세하고 있는 걸 보아 '현재진행형'이기도 하고. 아무튼 뜻밖의 고전이 출간되어 반가웠다. 아직 아무런 리뷰도 씌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난 주말에나 서점에 깔렸을 듯싶은데, 이번주말쯤에는 각 리뷰란의 한 꼭지를 확실히 카바하게 될 듯하다. 당장에 책을 구해볼 처지가 못되는지라 일단 리뷰들을 기다려본다. 역자는 미술사학자 노성두씨.

 

 

 

 

인용문에 보면 문학이나 회화에 자주 쓰이던 알레고리란 설명이 나오는데, 그 '회화'의 대표작은 히에로니무스 보쉬(보스)의 것이다(<보쉬의 비밀>이란 책도 지난 가을에 출간된 신간이다). 보쉬가 그린 <바보들의 배>(1490-1500)는 아래와 같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In The Ship of Fools Bosch is imagining that the whole of mankind is voyaging through the seas of time on a ship, a small ship, that is representative of humanity. Sadly, every one of the representatives is a fool. This is how we live, says Bosch--we eat, dring, flirt, cheat, play silly games, pursue unattainable objectives. Meanwhile our ship drifts aimlessly and we never reach the harbour. The fools are not the irreligious, since promiment among them are a monk and a nun, but they are all those who live ``in stupidity''. Bosch laughs, and it is sad laugh. Which one of us does not sail in the wretched discomfort of the ship of human folly? Eccentric and secret genius that he was, Bosch not only moved the heart but scandalized it into full awareness. The sinister and monstrous things that he brought forth are the hidden creatures of our inward self-love: he externalizes the ugliness within, and so his misshapen demons have an effect beyond curiosity. We feel a hateful kinship with them. The Ship of Fools is not about other people, it is about us."

자료를 검색해보면,  영화화된 작품도 눈에 띄는데, 브란트의 책을 원작으로 한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바보들의 배(Ship of Fools)>(1965)가 그것이다. 국내에 개봉된 적이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내용은 이렇다고(비비안 리 출연작이다).

"전쟁과 가깝고도 먼 1930년대. 멕시코의 베라크루스에서 독일의 브레머하펜으로 가는 여객선, '그랜드 호텔'에 승선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난쟁이 마이클 던이다. 마이클 던은 시청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던지는 내레이터로서 영화 내내 그리스의 코러스단으로 등장한다. 여객선에 탄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는 여객선의 의사 오스카 워너, 스페인이 정치 활동가 시몬느 시뇨레, 나이 든 요염한 여자 비비안 리, 쾌락주의적인 야구 선수 리 마빈, 철학적인 유태인 하인즈 루만, 그리고 젊은 연인들인 조지 시갈과 엘리자베스 애쉴리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끊임없이 말을 해댄다. 비비안 리는 늙어 가는 중년 여성으로 잃어버린 청춘을 회복시키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것은 결국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바보들의 배'가 애당초 알레고리의 의미를 갖는 만큼 오늘날의 상황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겠다. 예나 지금이나 '바보들'이란 세상에 차고도 넘쳐나니 말이다...

06. 12. 04.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12-04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6-12-05 00:08   좋아요 0 | URL
푸코의 <광기의 역사> 도입부에서였습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저 그림을 언급하면서요. 그냥 <바보들의 배>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로쟈 2006-12-05 00:12   좋아요 0 | URL
제 생각도 그런데, <바보배>라고 좀 특이한 선택을 했네요...

산손 2006-12-05 01:54   좋아요 0 | URL
헉, 이런 책이 번역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노성두 씨라니 그럴 법 하네요 ^^ 찾아보니 삽화가 포함된 독어(중세독일어인듯 ;)판도 인터넷에 있네요(http://www.fh-augsburg.de/~harsch/germanica/Chronologie/15Jh/Brant/bra_n000.html). 노성두 씨는 라틴어에서 한 건지 독어에서 한 건지 얼렁 책을 구해봐야겠습니다. 언제나 발빠르고 예리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

castrato 2006-12-06 16:45   좋아요 0 | URL
"독일 레클람Reclam 사의 1992년도 판과 마릭스Marix Verlag GmbH(Wiesbaden) 사의 2004년도 판을 비교하며 번역"했다고 밝혀져 있군요. 오늘 교보에서 샀습니다.

로쟈 2006-12-06 16:56   좋아요 0 | URL
반기시는 분들이 많군요. 저는 독후감이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랜만에 교수신문의 기획기사를 옮겨놓는다. '기억연구의 르네상스'란 특집기사인데, 최근에 유사한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쓸 기회가 있어서 관심을 가져보았던 주제이기도 하다. 시의적절한 학술동향기사라는 생각이 든다. 기획의 변은 이렇다:

"기억연구가 붐이다. 서구에서 시작된 기억 연구는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연구의 커다란 지류를 형성해가고 있다. 하지만 한 호흡 멈춘 상태에서 국내외의 기억연구 동향과 한계를 내밀하게 점검해 보는 작업은 아직 미흡해 보인다. ‘극단의 시대’, 무너진 역사의 이념적 권위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겨난 기억연구의 흐름을 국내와 국외를 넘나들며 짚어봤다."

한데, 그냥 '기억연구의 르네상스'라고 하면 심리학쪽 테마로 오인될 소지도 있어서 페이퍼의 제목은 '기억과 재현의 정치학'으로 바꿔달았다. 그때의 '기억'은 '역사적 기억'이고 또  이는 항상 재현의 정치학과 연루되기 때문이다. 참고할 만한 자료와 이미지들을 덧대놓도록 한다.

기억연구의 르네상스(1) 누구를 위한 기억인가

기억에 대한 강박증적인 몰두"는 전적으로 서구적인 현상이다. 문화비평가 호이센(Andreas Huyssen)은 그의 저서 ‘황혼의 기억들’에서 근간에 만연되고 있는 기억 담론이 시간 질서의 와해로 말미암은 일반적 위기의 증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질성과 비공시성, 과도한 정보”로 넘치는 혼잡한 세계에서 각 개인은 더 이상 외부의 시간 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영위하고자한다. 사회학자 벡(Ulrich Beck)이 역설적으로 표현했듯이, “자기 고유의 삶을 위한 일상적 투쟁이야말로 서구 세계의 집단체험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한국의 기억 담론은 그 성격과 위상이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강고한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다. 과거의 ‘진실’을 억압하는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방법적 객관성에 고착된 기존의 역사학으로는 충분치 않으므로 기억이 진실 규명의 과업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기억 담론은 역사에 대한 전면적 거부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보완하는 성격을 띤다.

서구에서는 역사적 진실이 근본적 회의에 직면한 반면, 한국에서는 반대로 역사적 진실이 더욱 강력히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 문제 의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소통가능성은 열려 있다. 기억은 어떠한 차원에서 제기되었든 역사적 진실의 본성에 대해 검토하도록 촉구한다. 역사는 객관성, 주체성, 일체성 등을 근본원리로 삼아왔다. 그것은 학문으로부터 정치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근대적 활동영역에 결코 고갈되지 않을 이념적 원천을 제공했다.

그러나 확고부동해 보이던 역사의 이념적 권위도 파란 많은 20세기를 거치며 점차 와해되는 양상을 빚었다. 세계대전이나 홀로코스트 등과 같은 미증유의 경험으로 인해 종래의 ‘진보사관’이 의심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자체가 불편부당하기는커녕 특정한 민족들, 더구나 그중에서도 일부 지배세력의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자기정체성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각기 맥락은 다르지만 서구와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기억 담론의 성행은 바로 이러한 경향의 일부이다.

기억은 근대성의 자기확실성을 뒷받침해오던 진리와 주체의 일원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주체가 진리를 독점하는 권력으로, 또는 한 발 더 나아가 ‘진리의 효과’로 강등됨으로써 역사적 진실에 대한 소유권도 다양한 주체들에게로 이전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제 과거는 더 이상 ‘역사’의 이름으로 일원화되기 힘들어지며 갖가지 과거, 즉 편향적이고 분산적이며,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과거들 나름의 권리가 인정받게 된다.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지식-권력’으로서의 역사는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과거가 ‘재현’되는 방식, 즉 ‘진리의 효과’가 산출되고 발휘되는 근본 형식보다는 과거의 진실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갈등에 논의의 초점이 두어졌다. 물론 과거의 재현에 개입되는 권력의 문제를 규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사적 진실의 가능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질 수 없다.

 

 

 

 

한국의 기억 담론 형성에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다름 아닌 ‘과거청산’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다. 시급한 정치적 요청에 의해 촉발된 만큼 이른바 ‘기억의 정치학’이 한국의 기억 담론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기억의 정치학은 억눌리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대항기억(countermemory)’을 발굴하여 이를 ‘억압’해왔던 기득권 세력의 주류 기억을 비판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기억투쟁에 실천적으로 복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실천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겠지만, 이분법적 대립구도에 경도된 점은 지적받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적 기억 담론의 한계는 한 특징적 번역어에서 징후적으로 드러난다. ‘기억의 정치학’을 설파한 대표적 논자 김영범은 기억이론의 선구자 알박스(Maurice Halbwachs)를 소개하면서 그의 대표적 용어인 ‘collective memory’를 ‘집합기억’으로 번역했고 이는 이후 널리 통용되었는데, 필자의 소견으로는 개별 기억을 수렴하여 집단정체성을 구축하는 알박스식 기억은 ‘집단기억’으로 번역되어야 마땅하며 ‘집합기억(collected memory)’과는 구별되어야한다.

한 사회의 기억이 개별 기억들의 느슨한 ‘집합’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관점이 배제된 채 지배기억과 대항기억의 단선적 대결구도에 치우친 한국식 ‘기억의 정치학’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개별 기억들이 통합되고 갈등하면서 집단기억을 형성, 전수,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기억의 ‘매체’에 대한 관심이 필수적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문화적 재현’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관심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다른 지면에서 이를 ‘기억의 정치학에서 기억의 문화사로의 패러다임 교체’라고 진단한 바 있는데, ‘패러다임 교체’라는 단정적인 용어 사용 때문에 필자의 관점이 자칫 ‘문화(환원)주의(culturalism)’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된다. 그러나 필자가 지향하는 이른바 ‘신문화사(new cultural history)’의 문제의식은 흔히 오해되고 있듯이, 단순히 문화적 소재에 대한 탐닉이나 또는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의 전환으로 오인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역사방법론상의 퇴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화적 재현에 대한 신문화사적 연구는 오히려 기억대상과 기억주체들 간의 모순, 갈등, 착종, 전이에 주목함으로써 기억을 고정된 실체로 ‘물화’하거나 정치적으로 도구화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저항하고자 한다. 문화란 본래 주관적 의미의 영역과 객관적 대상세계의 간극을 표상하는 개념이 아닌가. 이렇게 본다면 기억의 신문화사 연구는 단지 새로운 분야의 연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관점’의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억 연구는 진리의 절대성을 깨뜨리고 다양한 재현 방식과 정체성들을 인정하는 길로 나아갈 때 비로소 본연의 문제의식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문화적 재현’에 대한 연구는 자칫 기억을 재현의 ‘체계’안에 폐쇄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정연한 내러티브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어떤 미지의 목소리, 라깡(Jacques Lacan)이 말한 이른바 “대상-원인”의 (비)존재는 섣부른 기억의 재현에 제동을 가한다. 포스트구조주의적 재현 이론은 과거의 경험이 ‘지시’하는 고통의 심연에 직면할 때, 무력해지고 만다. 재현은 타자를 전유하여 자신의 체계 내에 배치시키는데 익숙하지만, 타자의 낯설음이 정도를 넘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타자의 ‘他異性’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트라우마(trauma)이다.

그렇다면 트라우마적 증상에서 울려나오는 타자의 외침을 어떻게 재현해낼 것인가. 그것은 과연 재현되어야 마땅한가. 라깡은 트라우마가 근본적인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트라우마의 (비)존재는 우리가 과거를 단지 인식의 대상으로만 ‘전유’할 수는 없음을 일깨워준다. 트라우마가 전달하는 것은 오히려 윤리적 정언명령이다. 단순한 앎이 아니라 긴급한 책임의 문제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억 연구의 실천적 의의를 거론할 수 있게 된다. 기억 연구는 한편으로는 다양한 차원의 내러티브들이 경쟁하고 공존할 수 있게 함으로써 특정한 기억이 여타의 힘없는 기억들을 ‘억압’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반사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내러티브의 바깥에서 울려나오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타자’의 호소에 응답하는 윤리적 가치를 갖기도 한다. 결국 기억 연구가 갖는 실천적 의의는 너무나 소박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전복적인 다음과 같은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기억인가.(전진성 / 부산교대·서양사)

 

 

 

 

기억연구의 르네상스(2) 한국 기억연구의 흐름과 과제

인간의 기억은 개별적 사실이 퇴적되어 보존된 결과가 아니다. 기억의 주체가 처한 상황과 현재적 관심 등에 따라 그 편차는 천양지차다. 기억은 다층적 차원의 현재, 심지어 기억주체가 과거를 회상하는 그 순간의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생성·변화한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기억은 문자가 발명되고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점차 국가에 의해 관리되어 왔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국가의 출현을 계기로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거대한 이미지 체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흔히 이를 공식기억이라고 말하며, 교과서는 공식기억을 담아내는 가장 상징적인 기억물이다. 

한국에서 공식기억 내지는 교과서적 기억에 대항하는 기억의 본격적인 구성작업은 1987년 6.10 민주화 운동 전후부터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좌파와 사회주의운동처럼 지난 시기 소외되었던 역사를 규명하고, 4.3과 5.18처럼 강요된 침묵으로 인해 탄식만을 내뱉어 왔던 역사에 대한 사실을 복원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작업은 민주화운동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냉전의 그늘에 가려있던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북한을 실사구시 차원에서 바로 알려는 학문적 접근도 본격화되었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고, 이듬해 사회주의권의 맹주 소련이 몰락함으로써 냉전은 해체되었다. 이념의 장벽이 허물어지자 기억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바다를 건너 일본에까지 미쳤다. 1990년 김학순 할머니의 자기고백으로 본격화한 일본군 ‘성노예’문제 등 전후 보상 재판이 바로 그것이다.

 

 

 

 

안팎에서 기억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원인과 전개과정 등 사실을 드러내는 작업부터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는 작업까지 공식기억을 생산하는 작업방식과 동일하였다. 문헌자료에 근거한 진실규명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접근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항기억을 만들어내는 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김동춘의 표현대로 오랜 세월 동안 ‘조직적 은폐와 강요된 망각’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전쟁과 사회’).

이때 대항기억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구술이었다. 드러난 한국역사의 새로운 이면을 파헤치려는 구술 작업이 집단적이고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참여자에 대한 구술 채록 작업부터였다. 뒤를 이어 4.3과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구술 작업이 이루어졌다. 최근 들어서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2004년부터 구술 아카이브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과거청산 관련 각종 위원회에서도 구술 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구술 작업은 면담자와 증언자의 권력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구술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하고 싶은 말을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 인생 선배로부터의 삶을 배우려는 자세를 포기한 채 ‘약탈적 수집방법’을 반복해 왔다. 때문에 구술자가 면담자의 질문에 따라 단순히 과거경험을 말하는 것을 넘어 이를 해석하면서 재생산해내는 과정에서 기억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민중의 기억을 재현하여 민중사를 쓰겠다는 연구에서조차 이 한계는 극복되지 않았다. 기억의 민주화를 가로막는데 구술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구술사 연구는 소개된 서구의 이론을 섭취하면서 10여년 이상 발로 뛴 경험의 결과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제는 농경사회이자 역동적인 한국사회의 특징에 맞는 한국적 구술사 방법론을 모색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이산가족’, ‘구술사 : 방법과 사례’).

21세기 들어 한국사회에서는 과거의 대항기억이 공식기억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기억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은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에서부터 진보대 보수의 구도로까지 이어지는 태생적인 제한성 때문에 현재적 정치투쟁차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각종 위원회가 주도하는 과거청산작업이 지속되고 있어 기억투쟁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런 자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기억연구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데서 여전히 적극적인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의 기억연구는 사실 규명 못지않게 과거가 기억되고 그 기억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며 개개인의 일상으로까지 이월되는 전승체계 또는 재현체계를 연구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어 희망적이다(‘항쟁의 기억과 문화적 재현’).

 

 

 

 

전진성의 표현대로 한국의 기억연구는 ‘기억의 정치학을 넘어 기억의 문화사로’ 나아가고 있다. 이항대립적인 기억연구가 지양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의 문화사 연구를 더욱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사 연구에서까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이며 그들을 기억의 주체로 내세우려는 증언자 중심주의도 더욱 뿌리를 내려 한다(정혜경, 이용기, 양현아). 기념물과 문화매체, ‘임시적 정체성’과 관련된 기억연구처럼 다양한 연구영역을 개발하고 있으며(‘전쟁과 기억’), 더 나아가 근현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간성, 남한을 벗어난 공간성을 확보하는 비교연구쪽으로 나아가고 있다.(‘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과거’, ‘분단의 두 얼굴’,‘8·15기억과 동아시아적 지평’).(신주백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기억연구의 르네상스(3) 서구 기역연구 동향

기억 연구는 진정한 학제 간 연구를 실현할 수 있는 장이다.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영역에 국한시켜볼 때, 기억 연구의 호황을 가져온 결정적 계기는 “기억의 터” 연구의 등장이었다.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가 기획하여 1984년부터 1992년에 걸쳐 총 7권으로 출간된 대작 ‘기억의 터’는 좁은 의미의 ‘기억의 장소’를 넘어 기억을 담고 있는 상징적 행위와 기호, 그리고 기억을 구축하고 보존하는 기능적 기제들을 총 망라하여 프랑스 민족의 기억을 집대성했다.

노라의 ‘기억의 터’는 사회심리학자 모리스 알박스의 선구적 업적으로부터 영향 받았다. 알박스는 1925년 ‘기억의 사회적 구성틀’을 출간한 이래 특유의 “집단 기억” 이론을 펼치며 기억의 사회적 조건과 형성구조 그리고 기능방식을 규명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회주의적 지향성을 지녔던 알박스는 기존의 ‘역사’ 이데올로기가 은폐해 온, 기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폭로하는데 주된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집단기억에 ‘수렴’되지 않는 개별 기억들을 간과하는 한계를 보였지만, 집단기억이 특정한 ‘공간’을 매개로 구축된다는 그의 학설은 후대의 기억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알박스와 노라의 선행 연구를 새로운 경지로 승화시킨 것은 독일의 문화과학자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가 정립한 “문화적 기억” 이론이었다. 그것은 개별 기억들이 통합되고 갈등하면서 집단기억을 형성, 전수,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위해 문학 작품을 비롯한 각종 텍스트, 신화와 종교적 제의, 기념물 및 기념 장소, 문서보관소 등 다양한 재현의 ‘매체’를 통해 기억이 제도적으로 공고화되고 조직적으로 전승되는 형식을 규명하고자 했다.

 

 

 

 

국역된 알라이다 아스만의 저서 ‘기억의 공간’(경북대학교출판부, 2003)은 기억 연구의 문화과학적 확장을 위해서는 필독서다. 여기에 사이먼 샤마(Simon Schama)의 미술사 연구서 ‘풍경과 기억’(New York, 1995)과 제임스 영(James E. Young)의 홀로코스트 기념물 연구서 ‘기억의 직물’(New Haven, 1993) 까지 곁들이면 기억과 예술적 재현의 문제에 대한 일정한 식견을 얻을 수 있다.

기억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연구는 근래에 들어 기억의 윤리적 차원에 대한 연구에 의해 보완되고 있다. 특히 ‘트라우마’ 증상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재현의 체계 내에 쉽게 편입될 수 없는 고통의 심연에 대한 진지한 공감과 책임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트라우마적 기억에 관한 논의는 주로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관련해 이루어졌는데, 이중 미국 역사 이론가 라카프라(Dominick LaCapra)의 저서 ‘역사 쓰기, 트라우마 쓰기’(New  (Baltimore and London, 2001)는 그 문제 의식의 깊이로 인해 돋보인다. 기억 연구의 ‘윤리적 전환’은 포스트식민주의의 문제의식과 만난다.

식민주의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이른바 ‘서발턴(subaltern)’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데 있다. 국역된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의 저서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갈무리, 2005)은 이러한 문제 의식의 보고이다.(전진성 / 부산교대 · 서양사) 

06. 12. 03-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시아 작가 다닐 하름스(1905-1942)에 대한 글을 예전에 모스크바통신에 올린 적이 있는데, 반절은 '부조리극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란 제목의 페이퍼로 정리해둔 바 있다. 최근에 작가의 대표작인 <엘리자베타 밤>이 번역/소개된 바 있기에 나머지 내용도 옮겨두도록 한다. 초고는 지난 1999년 겨울쯤에 작성된 것이고 재작년 겨울에 잠깐 손을 본 바 있다.

 

 

 

 

하름스의 작품으론 지난 2004년에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청어람미디어)란 단편집이 출간됐고,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은 <작가세계>(2006 겨울호)에 게재돼 있다. 자세한 해설이 결들여 있어서 독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작품에 붙은 장면번호가 빠져 있어서 아마도 내용 자체는 상당히 난삽하게 여겨질 법하다(아래의 글은 이 번역본을 참조하지 않았다). 부조리극이란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혹 단행본으로 묶여서 출간된다면 보다 자세한 안내가 필요할 듯하다. 아래의 글은 그러한 '안내'를 위한 '로드맵'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제목의 ‘리자, 리자베타, 엘리자베타 밤’은 언젠가 내가 쓰고자 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하름스’론의 제목이다. ‘리자베타’의 영어식 이름이 ‘엘리자베스’이며, ‘엘리자베스’의 러시아식 이름이 ‘엘리자베타’이다. 해서 리자베타와 엘리자베타는 같은 이름이며, 리자는 리자베타/엘리자베타의 애칭이다.

‘다닐 하름스 읽기’를 제안한 ‘책임’도 있고 해서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말해보기로 한다. 그의 대표적인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 읽기’인데, 이전에 하름스에 대한 글을 옮겨올 때는 아직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청어람미디어)란 작품집이 나오기 이전이어서, 본론의 내용은 생략했었다(너무 자세하게 들어가는 듯해서). 하지만, (국역본 표지에 따르면) “빛나는 러시아 부조리문학의 기수, 다닐 하름스 작품선”도 지난 가을에 나온 김에 조금 자세히 들어가는 것도 하름스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참고는 될 듯하다. 해서 옮겨오는 것이다.

그 글을 쓰던 때쯤부터(6년전 겨울이다) 나는 부조리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의미의 논리’의 짝패로서) ‘무의미의 논리’라는 것을 구성해보기 위해서이다(사실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바쳐지고 있는,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의 절반은 ‘무의미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 ‘무의미의 논리’는 정신분석학의 관심대상인 ‘무의식의 논리’와도 친연성을 갖고 있지만, 둘이 동일하지는 않다. ‘무의미의 논리’는 러시아의 자움(zaum)(영어로 옮기면 ‘trans-reason’쯤 된다) 시들에서 보듯이 ‘초강력 의식’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를 ‘초강력 합리주의’(super-rationalism)라고 불렀다).

 

 

 



무의미의 논리, 즉 ‘로직 오브 넌센스(Logic of nonsense)’를 한 단어로 하면 ‘파랄로직(Paralogic)’이 된다. ‘Paralogic’이란 단어는 영어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지만(사전에 등재돼 있는 건 ‘오류’ ‘배리(背理)’란 뜻의 ‘paralogism’이다), 그걸 구성하고 있는 두 단어 ‘Para’와 ‘logic’의 뜻을 통해서 유추해볼 수는 있는 단어이다. 그런 단어를 (러시아문학에서는) ‘자움(zaum)’어라고 하며(흘레브니코프는 ‘새의 언어’라고도 부른다), 그런 자움어들로 이루어진 시를 자움 시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자움의 논리를 뜻하는 단어로 내가 또 다른 자움인 ‘파랄로직’을 갖고 오는 것이 억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파랄로지스트’로서 내가 꿈꾸는 것은 언젠가 <무의미의 논리>란 책을 쓰는 것이다(그때 ‘이상한 나라’ 러시아의 시와 문학은 유익한 자료이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사실, 영어의 ‘파라(para)’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접두어이다(접두어로서 ‘para’가 갖는 기본적인 의미는 ‘beside’와 ‘against’이다). 6년전 여름에 나는 이렇게 썼었다: “PARA, 내가 좋아하는 접두어. 바로 우리 곁에 있으면서(beside) 우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깃장을 놓는(against) 우리들의 삶, PARA! 패러프레이즈(paraphrase)로서의 삶은 본때나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로서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우리 가까이 있었고 우리가 잡을 수 있었던 것을 모두 놓쳐 버렸다. 그리고는 뒤늦게 뒤쫓아가는(catch up) 것이다. 오 CATCHUP, 이 죽도 밥도 아닌 삶!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화(parable)이고 우리의 이즘은 평행주의(parallelism)이며, 우리는 고작 정부(paramour)의 사랑이나 꿈꾸며 편집증(paranoia)을 앓는다. 오 PARA, 이 죽도 밥도 아닌 삶! 그러니 제대로 된 서문(Preface)을 쓴다는 건 말이 안되는 것(paradox)이지.”(이건 그 책의 ‘Paraface’였다.)

부조리문학이 재현/생산해내는 삶은 주로 ‘캐치프레이즈로서의 삶’(=잘나가는 삶)이 아니라 ‘패러프레이즈로서의 삶’(=구겨진 삶)이며(패러프레이즈들로 가득 차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려보라), 대개 캐치프레이즈와는 인연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선 그런 점에서 부조리문학이 마음에 든다(나의 ‘직업’은 다른 삶/텍스트들을 끊임없이 ‘패러프레이즈’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파랄로지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건 나름대로의 의무이면서 예의인 것이다. 이 파랄로지의 이론적 구상에 있어서 나보다 앞서 가고 있는 이들이 들뢰즈와 크리스테바 등이며(나는 뒤쫓아갈 것이다, 케첩이 될 때까지), 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언어학이 초언어학(paralinguistics)이고, (러시아어에서) ‘파라그람’을 연구하는 ‘빠라그라마찌까(paragrammatika)’이다(‘파라-그라마톨로지’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하름스에 대한 나의 관심은 부조리극의 시학, 더 나아가 무의미의 논리를 구성하고자 하는 보다 거시적인 관심에서 비롯된다(나는 어제도 알프레드 자리와 장 주네의 러시아어 작품집을 구입했다). 물론 그런 거시적인 관심 자체는 하름스를 읽으면서(그리고 베케트를 읽으면서) 사후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하름스를 읽지 않았다면, 그런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관심 때문에 하름스를 다시 읽는다(‘읽기’는 그런 식으로 변증법적이다). 그리고, 내게 하름스는 일차적으로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의 작가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이 그 작품을 통해서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도 <엘리자베타 밤>이다(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노파>이다). 이하는 이 작품에 대한 ‘몇 마디’이다.



먼저, 하름스에 대한 몇 마디. 다닐 하름스(1905-1942)는 알렉산드르 베젠스키(1904-1941)와 함께 아동문학가로서만 알려지다가 1960년대 후반에 와서야 재발견/재평가되고 있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마지막 작가이다(혹은 러시아의 마지막 아방가르드의 작가이다. ‘아방가르드’란 건 쉽게 말해서, 삶이 예술을 모방해야 한다고 공언하는 패거리이다. 물론 일반적인 예술은 삶을 모방한다). 하름스의 본명은 ‘다닐 이바노비치 유바초프’로, 국역본에는 ‘유바체프’로 돼 있는데, 착오이다. 영어 표기는 ‘Iuvachev’쯤이 될 텐데, 강세가 뒤에 오기 때문에 ‘유바체프’가 아닌 ‘유바초프’로 읽어야 한다(<엘리자베타 밤>의 번역에서도 '유바체프'라고 오기하고 있다). ‘흐루시초프’나 ‘고르바초프’에서처럼. 그의 절친한 동료 베젠스키(A. Vvedensky)의 이름도 국역본의 하름스 연보에는 ‘알렉산더 브베젠스끼’라고 돼 있는데, “러시아 원음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 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알렉산더’는 ‘러시아어 표기’가 아니라 ‘영어표기’이기 때문이다.

짐작에 역자는 영역본을 같이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데(2-3종의 영역본이 나와 있으며, 단편들뿐만 아니라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도 번역돼 있다), 참조 자체가 문제될 건 전혀 없지만 표기 자체를 영어식으로 대체한 것은 유감스럽다(77쪽에서 “알렉산더 1세, 2세, 3세”도 물론 “알렉산드르 1세, 2세, 3세”로 표기돼야 한다). ‘알렉산드르’를 ‘알렉산더’로 표기하는 식이라면, ‘표트르 대제’는 ‘피터 대제’가, ‘뻬쩨르부르그’는 ‘피터스버그’가 돼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역자의 ‘작품해설’에서 거명된 작가 ‘칼슨 맥큘러(Carson McCullers)’의 우리말 표기는 ‘카슨 맥컬러즈’이다(내 기억에 그렇게 소개됐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쓴 여성작가가 맞다면.



하름스와 베젠스키 두 사람은 1927년부터 1930년까지 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했던 문학그룹 ‘오베리우’의 리더들로서(화가 말레비치도 그들과 가까웠다), 이들이 활동한 1920년대 후반은 NEP(신경제정책)기를 통해 생산력을 회복한 소련이 스탈린의 주도하에 1928년부터 계획경제안을 수립하여 본격적인 중공업화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일국사회주의를 주창하여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본격적으로 국가사회주의 건설에 나선 스탈린은 이 시기를 ‘대전환의 해’(1929년)라고 불렀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이미 10년이 지난 때였고, 혁명의 이상은 차츰 당면한 현실적 요구에 의해 대체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시인-작가들은 ‘작가동맹’으로 조직화되었고, 이들은 건설적 ‘비판’ 대신에 사회건설에의 적극적 ‘동참’을 요구받았다. 소비에트 문학의 이념적 지도원리와 창작방법론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선포되는 것은 1934년의 일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리얼한 예술’ 운운하며 현실과는 또 다른 예술적 ‘현실’을 제시하고자 했던 이 ‘블랙-유머’ 작가들에게 전혀 이롭지 않은 것이었고(국역본의 작품해설에서는 ‘오베리우’를 ‘현실주의 예술의 동맹’이라고 풀어주는데, ‘실재예술연합’ 정도가 어떨지 싶다. 이때 ‘실재(=리얼)’란 말은 라캉적 의미에서의 ‘실재’에 아주 가깝다. 이들의 주장은 예술 그 자체가 현실보다도 더 ‘리얼한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은 1930년대에 계속적으로 공개적인 비판과 정치적인 탄압을 받아오다가 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에 체포되어 숙청되었다. 베젠스키가 41년, 하름스가 42년, 이들이 주로 발표했던 (아동)문학잡지 <취슈(Chish)>와 <요슈(Esh)>의 편집장 N. 올레이니코프(1898-1937)는 37년에 각각 숙청되었다(최근에 작품집들이 나오고 있는 올레이니코프는 ‘소프트 하름스’로 불린다).

이후 문학사에서 지워졌던 이 두 사람의 작품들은 1960년대에 들어서 폴란드, 체코 등지의 문학잡지에 게재되었다. 1967년에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대학에서 이들에 대한 발굴/연구가 진행되었고 1971년에는 <러시아의 잃어버린 부조리 문학>(코넬대출판부)란 제명으로 서방에 처음 알려졌다(G. 기비언(Gibian)이 편집했고, 원제는



오베리우 작가로서 베젠스키와 함께 재발견된 이후 하름스의 문학세계는 몇 갈래의 관점에서 조명되어 왔다(박사학위논문을 포함해, 현재 영어권에서는 4-5종의 단행본 연구서가 출간돼 있으며, 러시아어로도 3-4종의 연구서가 나와 있다. 2001년에는 아내 마리나 두브노보의 <나의 남편, 다닐 하름스>란 회고록도 출간됐으며, 하름스의 삶과 작품세계를 소재로 한 연극 레퍼토리도 두어 종이 공연되고 있다. 그 중 하나를 봤었는데, ‘광대극 + 아동극’ 유형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엘리자베타 밤>은 공연되지 않고 있다).

먼저 첫번째로, 20세기 서구의 부조리문학과 관련하여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이 있다(신세대 하름스 연구의 선두주자인 토카료프가 하름스와 베케트를 비교하는 단행본 연구서를 갖고 있다). 이에 따르면, 비록 하름스가 처해 있었던 러시아적 맥락은 카프카나 베케트 같은 서구 부조리 작가들의 경우와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유럽의 부조리 문학사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너무 넓은 시야에서 파악한 것인 만큼 일반론에 머무는 것이어서 하름스 문학의 러시아적인 특징을 제대로 지적해내지 못하는 단점을 갖는다.

두번째로, 러시아 문학의 전통과의 패러디적인 상호텍스트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이 있다. 이에 따르면, 하름스는 기존의 문학적 정전들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 ‘다시-쓰기’ 혹은 ‘탈정전화’를 통해 새로운 아방가르드 문학의 바탕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기 전에 먼저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만 했고, 이를 위해 그들이 사용한 무기가 문학적 패러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하름스의 보다 많은 관심이 낡은 문학적 전통의 파괴보다는 새로운 ‘문학적 현실’의 제시에 두어졌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세번째로, 하름스의 부조리문학적 성격을 선/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말하자면,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하름스에게서 두드러지는 웃음과 공포의 동시적인 제시를 러시아 문학에서 특징적인 도덕적 풍자의 전통(특히, 고골적인 전통) 속에 자리잡게 해주고, 이들의 부조리성이 가지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관심을 강조함으로써 1930년대 레닌그라드의 정치적, 문학적 현실과 문학텍스트와의 교직 관계를 짚어볼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네번째로, 1930년대 소비에트의 도시적 속물주의 세계관과 삶, 언어에 대한 패러디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복잡한 예술적 기획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이에 따르면, 특히 하름스의 블랙-유머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도스토예프스키적 세계를 그려보고자 한 것이 된다. 그럴 경우 선과 악, 미와 추, 일상과 기적, 삶과 죽음 사이의 구분이 무화되고, 인과율은 우연으로 대체되며 모든 감정과 의미는 증발해버리는, 말 그대로 부조리한 세계가 연출된다. 그리고 이것은 시대적 문맥에서 볼 때, 새로운 소비에트 현실과 ‘새로운 소비에트 인간’ 창조에 대한 환멸을 표시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도 하름스적인 부조리의 윤리성이 강조된다.

마지막으로는 바흐친의 카니발적 세계관이나 리하초프의 반( 反)세계적(=뒤집힌 세계) 세계관의 표현으로 하름스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관점이 있다. 이에 따르면, 중세 러시아의 바보-성자적 전통과 오베리우 부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표면적인 희극성이나 부조리성 밑에 깔려 있는 윤리적 차원이다. 이러한 윤리적 차원을 읽어내지 못할 때 관객이나 독자는 그 표면적 부조리성과 무의미에 그냥 웃고 말겠지만, 만약에 그것을 읽게 되다면 눈물을 지을 것이다(부조리문학은 ‘말장난’의 문학이 아니다. 거기서 윤리적 차원을 놓치게 되면, 부조리문학을 ‘비윤리적으로’ 읽는 것이 된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만 하더라도 데리다가 말하는 ‘종교 없는 종교’ 혹은 ‘종교 없는 메시아주의’의 탁월한 사례를 제시하지 않는가?).



이상에서 요약한 몇 가지 관점은 하름스 문학세계의 부조리적 성격을 공통적으로 지적하면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맥락으로 각각 서구 부조리 문학, 문학적 패러디, 종교적/윤리적 성격, 소비에트 현실, 카니발적/반-세계적 세계관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내가 거기에 더 보태고 싶은 것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적인 관점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보여주는 세계상은 우리의 일상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적 세계상에 비추어볼 때, 그것이 일그러진 거울, 깨진 거울에 반영/굴절된 ‘이상한’ 세계상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이상한’ 세계상이 흔히 넌센스의 세계로 지목되는 하름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인 것이다.

이 경우 우리가 따르게 될 논리는 타문화 사람들의 풍속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인류학자들의 작업과도 유사해 보인다. 가령 인도의 힌두교 신자들은 송아지를 신성시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소의 젖이 부족할 경우, 밭을 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수송아지는 굶어 죽게 하는 것으로 통계가 나와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러한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당사자/내부자 관점만을 고려하는 연구의 한계가 거기에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당사자의 관점(=emic적 방법)과 관찰자적 관점(=etic적 방법)을 잘 병행하는 것이다. 힌두교의 <성스러운 암소>의 경우는 조작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4개의 객관적 영역이 있을 수 있다(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 참조).

1. 에믹적/행위적: 굶어 죽는 송아지는 없다
2. 에틱적/행위적: 수송아지는 굶어 죽는다.
3. 에믹적/정신적: 모든 송아지는 살 권리가 있다.
4. 에틱적/정신적: 젖이 부족할 때는 수송아지를 굶어 죽게 한다.

문학텍스트에서 우리에게 보고되거나 드러나는 것은 1과 2뿐이다. 3과 4에 대한 지식과 통찰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굶어 죽는 송아지는 없다”와 “수송아지는 굶어 죽는다”처럼 서로 모순되는 데이터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며 이것은 우리에게 부조리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부조리극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표면적인 불일치와 모순 뒤에 가려진 숨겨진 진실에 접근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부조리극을 ‘조리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여건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적 통찰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그럼 이제,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이교적 세계관’으로서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이 부조리극 일반, 특히 이 러시아 오베리우의 대표주자인 하름스의 작품세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엘리자베타 밤>을 다시 읽으면서 탐색해 보기로 하자(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전의 글 '부조리극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참조).

 

 

 



흔히 부조리극의 세계는 넌센스(=비상식)의 세계라고 말해진다. 부조리극을 구성/장식하고 있는 것은 여러 층위에서 넌센스적 불일치이고 부조화이다. 이때 넌센스란 말이 상식적인 의미 이전/이후란 뜻이다. 그것은 상식적인 의미에 못 미치거나 그것을 넘어선다(이것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보다 크거나 작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이해를 초월한다. “기하학을 초월하는 것은 모두 우리들의 이해를 초월한다”고 파스칼이 말할 때, 그가 생각하는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이때의 기하학은 모든 학문의 모델로서의 기하학이다. 하지만 이제 주장하게 될 비유클리드적 공간으로서의 부조리극은 바로 그러한 학문적/개념적 이해-지배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며 탈주이다. 그것은 데리다의 어법을 빌려 말하자면, ‘불가능성의 경험’(the experience of the impossibility)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의미에 대한 저항이다. 기호나 담론의 의미라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기표와 기의가 어떤 언어체계나 규칙에 근거하여 등을 맞대고 결합할 때 생성된다. 해서 움베르토 에코는 그래서 기호란 말 보다는 기호-기능이란 말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주장한다(Properly speaking there are not signs, but only ‘sign-functions’). 이때 이들의 결합을 주선하는 언어체계나 규칙이란 것은 자연언어의 그것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부조리극의 작가는 거기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언어체계나 규칙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이다(물론 여기에 먼저 전제되는 것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감수성’이다). 즉 그는 개인적 방언의 창조자이면서 자신의 상상적 세계의 유일한 입법자이다.

그런데, 오베리우 작가인 하름스는 그러한 개인적 창조와 자율적 입법에 대한 권리가, 점차 강화되어 가던 소비에트의 국가사회주의의 단일한 이데올로기(스탈린이즘)에 의해 차단되고 압류되던 불운한 시기에 작품활동을 해야 했다. 기하학적 은유를 끌어오자면, 그것은 “직선 L과 L 위에 있지 않은 점 P에 대해서, P를 지나고 L과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 존재한다.”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이다. 이것은 흔히 상식의 세계라고도 한다. 때문에 상식에 대한, 자연언어와 일상세계에 대한 이들의 저항은 상징적으로 反-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그들이 소비에트 사회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먼저 그들이 예술적 강령으로 내세운 <오베리우 선언서>(1928)의 한 구절을 읽어보기로 하자.

우리 공연에 오면서, 다른 극장들에서 보고 익숙해진 모든 것들은 잊어버리십시오. 여러분에게는 혹 많은 것들이 어리석은 넌센스로 느껴질지 모릅니다. 우리도 드라마적인 플롯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에 평범하게 진행되다가, 전혀 무관한 듯 보이면서 분명 넌센스적인 계기들에 의해 방해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놀라실 겁니다. 곧 일상적인 삶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논리적 합법칙성을 여러분은 찾고자 할 테지요. 하지만 여기엔 그런 것이 없다구요? 왜입니까? 왜냐하면, 삶에서 일단 무대로 옮겨진 사물(오브제)과 현상(현실)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의 법칙성을 잃고서 그것과는 전혀 다른 법칙성, 즉 극장(무대)의 법칙성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로선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무대 공연의 법칙성을 이해하려면, 다른 수가 없습니다, 직접 와서 보아야만 합니다.

이 구절은 연극 공연에 대한 오베리우 선언의 핵심에 속하는데, 여기서 대립되고 있는 것은 일상적 삶의 논리/법칙과 극장의 논리/법칙이다(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새로운 ‘규칙’이고 ‘법’이다. 나는 요즘 데리다의 <법의 힘>을 읽고 있는데, ‘법’에 대한 글은 조만간 따로 쓸 계획이다). 일상생활에서 친숙한 사물이나 현상은 무대로 옮겨지면서 변화되고 새로운 극장적/무대적 질서로 편입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무)의미를 창출하며,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오베리우 선언서에서 이에 대한 예시로 들고 있는 것은, 무대에서 배우가 갑자기 네 발로 기면서 늑대처럼 울부짖는다든가, 러시아 농민이 갑자기 라틴어로 일장연설을 한다든가 등이다. 이런 돌발적인 불일치/부조화와 넌센스가 오베리우트들이 보기에 ‘극장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대적 무질서나 혼란이 권장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도 분명 어떤 법칙성과 논리성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것을 (로고스적인)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직접 와서 보아야만 한다. 이것이 오베리우트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일상적 삶의 논리와 극장의 논리 사이의 관계, 상식/비상식의 관계를 유클리드 기하학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관계로 대치시켜 보면, 이해는 보다 용이해진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익숙하게 찾을 수 있는 논리적 합법칙성이란 것은 바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곱슬머리를 다리미로 펴는 것처럼 모든 굴곡을 지우고 평면화하여 사고하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에겐 편리하고 익숙하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어떤 일은 하는가? 사물들의 형태들에서 표면들을 고르면서, 예컨대 선들 가운데 직선을, 그리고 표면들 가운데 평평한 표면을 특별히 우선적으로 취급한다. 반면에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인 곳에서 굽은 표면들은 여러 가지 실천적 관심에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평면들을 만들어내고 이 평면들을 완성하는 것, 매끄럽게 마무리짓는 것이 항상 우리의 역할이다(후설, <기하학의 기원> 참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세계를 자신의 대상으로 전유하기 위해서 세계를 평면화, 평탄화하면서 모든 굴곡을 배제한다는 점이다(나는 주름/굴곡에 대한 들뢰즈의 관심이 이런 문제의식에 닿아있는 걸로 이해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이 제시하는 세계상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며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세계를 제작하는 적어도 세 가지의 논리적이고 정합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조리극을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대항/비판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것이 대항/비판하는 것은 자신만을 유일한 이성이라고 고집하는 ‘특정한/특이한 이성’이기 때문이다. 부조리극은 자신의 또 다른 논리/이성으로 그러한 대항/비판을 실천한다(무의미는 비논리가 아니라 ‘다른 논리’에 의해서 구축된다).

따라서 자신의 이러한 문화적 성격,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숨기고 자신을 자연적인 것으로 내보이면서 유일한 세계-버전으로 주장할 때 그것은 일종의 ‘신화’가 되어버린다(이것이 신화에 대한 바르트의 정의이다). 그것은 “직선 L과 L 위에 있지 않은 점 P에 대해서, P를 지나고 L과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 존재한다.”는 평행공준에 기초한 유일신(일신론)의 신화이며, 이 세계와 작품에 대한 유일하게 올바른 한 가지 해석/이해가 존재한다는 단의성(單義性)의 신화이다(이 단의성의 신화에 대한 비판으로는 페터 지마의 <문학텍스트의 사회학을 위하여> 참조).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비록 유클리드 기하학에 많은 것을 의존한다고 해서 오직 그것만을 세계상의 유일한 준거로 믿는다면, 우리는 파시즘으로부터, 스탈린이즘으로부터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물론 지젝은 ‘더 나쁜’ 파시즘과 ‘덜 나쁜’ 스탈린이즘을 구별하는데, 내 생각에 그러한 구별은 ‘윤리적인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근거한다). 참고로, 20세기의 대표적인 맑시스트 문예이론가인 루카치는 하우저와의 대담(1969년)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서구에서는 요사이 제 견해로는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구호인 <다원론주의>라는 것이 대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동일한 문제를 두고 여러 개의 진리가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라는 것은 언제나 오로지 단수 속에만 있습니다.” 이것을 유클리드적 이성만을 고집하는 이론가의 아주 ‘정직한’ 고백으로 읽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하우저는 이렇게 응수했다: “적어도 단일한 이데올로기 내에서는 그렇지요.”(반성완 편역, <변증법적 미학에 이르는 길> 참조)

오베리우 작가들이 그들의 선언서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구분해내고자 하는 일상의 논리/극장의 논리는 바로 그러한 정치적 입장까지 함축하는 것으로 우리는 읽고 싶다. 부조리 작가는 정치적으로 ‘다원주의자’이다. N. 굿맨은 그 다원주의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다원주의자란 反과학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며, 과학을 온전하게 수용한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전횡적인 유물론자 혹은 물리주의자이다. 물리주의자는 한 가지 시스템, 가령 물리학이 가장 탁월하며 모든 걸 포괄하기에 여타의 버전들(=세계제작의 방식들)은 그 물리학으로 환원되거나, 혹은 무의미한/틀린 것으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The pluralist, far from being anti-scientific, accepts the sciences at full value. His typical adversary is the monopolistic materialist or physicalist who maintains that one system, physics, is preeminent and all-inclusive, such that every other version must eventually be reduced to it or rejected as false or meaningless.)('Ways of Worldmaking' 참조)



오베리우 작가들을 좇아서 분류하자면, 연극에서 우리는 세 종류의 버전을 가질 수 있다. 첫째로 연극이 그리거나 굴절시키고자 하는 바깥 현실세계, 즉 일상적인 세계가 있다. 그것을 Wo라고 하자. 둘째로 연극 공연의 드라마적 플롯의 세계가 있다. 그것을 Wd라고 하자. 마지막으로 오베리우 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연극의 무대적인 플롯의 세계가 있다. 그것을 Wt라고 하자. 기존 연극에서는 Wt가 Wd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Wo와 Wd의 관계, 즉 현실에 대한 모방(=미메시스)의 관계였다. 그러나 오베리우 부조리극에서 Wd는 Wt의 굴곡 안에 포개넣어져 있다. 즉 그것은 직접적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선언서의 한 구절을 더 읽어보자.

드라마적 플롯은 무관한 듯 보이는 테마들에 의해 분산됩니다. 이 테마들은 극의 각 대상들을 다른 나머지들로부터 분리시켜서 전혀 동떨어진 어떤 덩어리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드라마적 플롯은 관객의 눈앞에 어떤 명백한 플롯적 형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다만 행위의 등뒤에 숨어 희미하게 반짝거릴 따름입니다. 그것을 대신하여 등장하는 것이 무대적 플롯인 바, 그것은 우리 공연의 모든 볼거리적 요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지요.

사정이 이렇다면, 오베리우 부조리극에서 Wo와 관계하는 것,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은 Wd가 아니라 Wt이다. Wd는 극장/무대라는 공간에 투사/반영되는 Wo를 말한다. 따라서 그것은 어느 정도 Wo의 논리에 잡아당겨지며 환원된다. 이 둘의 관계가 사실적이냐 상징적이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Wt는 다르다. 그것은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무대적 공간이고 상상적 공간이다. 여기에서는 Wo의 논리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즉 그것은 비유컨대 자체의 고유한 곡률을 가진 또 다른 세계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Wo의 세계를 뒷받침하는 유클리드 기하학(곡률=0)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 유클리드적 입장에서 보자면 비유클리드적인 Wt의 세계는 현실을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굴절시켜버린 왜곡된 세계이다. 그래서 반-세계이고, 비-세계이다. 그것을 반듯하게 펴놓고자 하는, 평평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그 ‘이상한’ 세계의 굴곡과 만나게 되는 경험이 바로 불일치, 부조리의 경험이다.

반면에 Wt의 비유클리드적 입장에서 오히려 더 왜곡돼 보이는 세계는 Wo의 세계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던 Wo의 세계가 갑자기 이상해지고 낯설어진다. 대낮에 팬티도 안 걸친 기괴한 세계로 보이는 것이다(하름스의 친구였던 드루스킨에 따르면, 하름스는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어린이를 닮았었다). 이러한 사실이 전제된다면, 이제 오베리우트들이 자신들의 선언적 강령을 직접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웠던 하름스의 <엘리자베타 밤>를 읽어보기로 한다. 이 작품에서 Wo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Wt를 따라가면서, 그 속에 포개져 있는 Wd를 어느 정도 재구성해 보기로 하자. 이 ‘고도로 복잡한 텍스트’에 대한 ‘한 가지 읽기’에 동원되는 것은 모든 공간의 곡률=0의 세계로 규정하고 오직 평면만을 따라가는, 일상적인 유클리드적 이성이 아니라, 뒤집어진, 전도된 세계상 속에서 넌센스적인 논리를 찾아내는 비유클리드적인 이성이다. 그것이 은유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P.S.  이후로도 거의 20쪽 분량이 더 남아있는바 분량상 여기서 끊는다(문득 이건 너무 ‘장황한’ 소개가 아닌가란 회의도 들고). 다만, 보다 ‘총체적인’ 하름스의 모습을 그려보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의 대표적인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의 얘기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얘기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그 ‘다음’이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름스의 <노파>를 비틀어서 말하자면) 물론 나는 모든 걸 써놓았으며 지금 당장에 그걸 다 옮겨올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04. 12. 13./ 06. 12. 03.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12-04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2-04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최수철씨의 소설 중에 <분신들>이라고 있지 않나요? 원래는 오토 랑크라는 사람의 고전적인 연구서가 있는데, 찾으시는 게 번역작품들쪽이신가 보네요. 도스토예프스키의 대부분의 작품들과 영화로 <도플갱어> 종류들을 찾아보시길. 저도 딱히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은 떠오르지 않네요.^^;

2006-12-05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터넷 폭력'에 대한 한겨레의 사설과 댓글들을 읽다가 지난번에 쓴 페이퍼 '패리스 힐튼과 카트린 밀레'에 이어지는 고리가 될 듯싶어서 다시 페이퍼를 쓴다.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의 제5장 '레닌은 자신의 이웃을 사랑했는가'의 106-8쪽까지 읽어보는 게 1차적인 목표이고 좀 무리하면 진도는 더 나아갈 수도 있겠다. 먼저, 관련기사와 사설부터 인용해놓는다(아래는 청와대의 문화일보 절독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삽화).

한국일보(06. 12. 02) '포르노배우 영어강사' 얼굴공개 파장

캐나다 유학 시절 포르노물에 출연한 한 여성 영어강사의 신원이 인터넷에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서울의 한 영어학원 강사로 재직한 A(33·여)씨가 포르노 동영상을 찍은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일부 네티즌이 해당 여교사가 출연한 포르노를 편집해 인터넷 사이트 이곳저곳에 올리고 있는 것.

문제의 여강사는 캐나다 유학시절인 2005년 2월부터 9월까지 캐나다에 서버를 둔 한 포르노사이트에서 한 편당 200∼300 달러를 받고 모두 30여편의 포르노를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다니는 영어학원의 여강사가 해외 포르노 사이트의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한 네티즌의 제보에 의해 포르노 배우 경력이 들통났다.

경찰은 최근 A씨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조사에서 A씨는 "포르노를 찍는 것이 한국에서는 불법인지 알았지만 캐나다에서는 합법이었다"며 "한국사람들이 캐나다 포르노 사이트까지 들어가서 볼 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국내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A씨가 경찰에 입건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캐나다 영어강사가 누구냐", "캐나다 영어강사의 싸이월드 주소를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부 네티즌이 A씨의 얼굴이 그대로 등장하는 포르노 편집 동영상과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로 인해 그의 얼굴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일부 포털사이트가 A씨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수위에 오른 것은 물론 실명과 개인 블로그 주소도 함께 공개돼 파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일부 네티즌들은 언론에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보도는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한겨레(06. 12. 02) 인터넷 폭력, 더는 두고볼 수 없다

“마녀사냥이 또 시작됐다.” 이른바 ‘포르노 찍은 영어강사’에 대한 인터넷 이용자들의 댓글 폭력을 개탄하는 이들이 하는 말이다. 캐나다 유학 시절 포르노를 찍은 사실이 드러나 처벌을 받게 된 이 영어강사는 사회에서 매장될 처지에 놓였다. 얼굴 사진은 물론이고 본명과 일하는 학원, 출신 학교 따위가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공인도 아닌 개인의 사생활을 이렇게까지 침해하는 건 야만적인 폭력일 뿐이다.

일방적인 매도가 쏟아진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이른바 ‘개똥녀’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여성은 단지 포르노를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쓰레기쯤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런 비난에는 여성 비하 심리도 개입되어 있는 듯하다. 인터넷을 통해 일본의 음란물을 공급하다가 적발된 이른바 ‘김본좌’가 인터넷에서 영웅처럼 취급되던 걸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여성이기에 더 쉽게 사생활을 까발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책임을 온통 ‘몰지각한 네티즌’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개인 정보가 유출될 여지를 철저히 봉쇄했어야 할 경찰과 언론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경찰은 경찰청 제보 게시판에 올라온 글 때문에 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따위의 세세한 내용까지 공개했고, 대부분의 언론은 이걸 그대로 보도했다. 이렇게 지나치리만큼 상세한 사건 공개는 그 자체로 문제다. 그런데 한 블로그 이용자가 정리해 놓은 사건 경위를 보면, 사소한 듯한 이 사실이 개인 정보 유출의 실마리였다고 한다.

내용인즉, 인터넷 이용자들이 제보 게시판을 샅샅이 뒤져 제보 내용을 확인했고, 제보에 언급된 영문 닉네임을 근거로 개인 정보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개인 정보 유출의 책임은 제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경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경찰은 제보 내용이 정말 유출됐는지 분명히 확인해서 사실이라면 책임자를 문책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인터넷 실명제를 정당화하는 사례로 활용하는 건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언어 폭력과 개인정보 유출의 주된 무대는, 회원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실명을 확인하는 포털들이다. 실명제가 폭력적 댓글을 막는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인터넷 폭력은 이용자의 자발적 노력과 사회적 여론 형성, 인터넷 사이트들의 협력 따위를 통해서만 뿌리뽑을 수 있다.

 

 

 

 

"후기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우리의 감성적 삶은 이처럼 완전히 분리되었다. 한편에는 사적 영역, 즉 감정적 진지함과 밀도 깊은 개입으로 이루어진 내밀한 섬이 존재하고, 이는 엄밀히 말해 우리를 더 큰 고통의 형식으로부터 눈멀게 하는 장애물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장막이 존재해, 이를 통해 더 큰 고통을 인지한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인종청소, 강간, 고문, 자연재해에 대한 TV보도는 우리에게 깊이 공감하고 가끔은 휴머니즘적인 행동에 참여하도록 감동을 준다."(106-7쪽)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장막'은 'the (metaphorical and literal) screen'의 번역인데, 'literal'은 '문학적인'이란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혹은 '축어적인'이란 뜻이다. 해서, "(은유적이면서 동시에 축어적인 의미에서의) 스크린"이 존재한다는 것. 축어적인 의미의 스크린이란 영화나 TV 등의 스크린을 말한다. '장막' 같은 거 말고 진짜 '스크린' 말이다. 거기서 우리가 매일같이 접하는 것들이 인종청소니 강간이니 고문이니 자연재해니 하는 것들 아닌가? 이번에 '포르노 영어강사에 대한 사이버폭력'이 추가됐을 뿐이다. 이러한 스크린상의 '더 방대한 고통(wider forms of suffering)'에 대해서 우리는 간혹 휴머니즘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사생활 침해를 자제하라!' '인터넷 폭력, 더는 두고볼 수 없다!'는 식의 참여.

"심지어 이같은 참여가 (우리가 정기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 돕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온 사진과 편지 형식으로) 거의 '개인화'되었을 때도, 궁극적으로 이곳에 지출하는 것은 정신분석과 관련없는 근본적인 주체기능을 유지한다."

페이퍼가 너무 지체되고 있어서 여기부터는 다음에 따로 다루기로 한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2-03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에게 권총을 맡겨 놓은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요? 실제로 언론 기관도 아니고 언론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윤리의식도 결여한체로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네이버 같은 포털 싸이트를 보고 있노라면.

다크아이즈 2006-12-0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 없는 개인이 길들여진 전체에 보호받는 사회가 정녕 오기나 하는 것일까요? 개념없는 네티즌은 그렇다치더라도 언론이 앞장서니 그저 답답할 뿐. 여성에게 언제나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는...

질문 - 책을 안 읽어서 모르지만(하기야 번역서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인용문만 봤을 때, '개인(사적영역)'에 대한 고려가 다른 더 큰 사회적 고통 때문에 장애물로 간주된다는 안타까움 정도로 읽히는데 제가 잘못 읽은 건가요? 제게는 번역문을 독해하는 자체가 이렇게 어렵네요. 로쟈님 해설은 '개인'에 대한 부분 자체를 '더 큰 사회적 고통'의 범주로 넣으신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책을 읽어봐야 확실한 흐름을 알겠지만 번역문 자체가 제겐 미로찾기네요.

로쟈 2006-12-03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이란 영화에서 지젝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게 "거부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후에 개진되는 지젝의 생각은 사실 '상식'적으로는 수용하기가 버거운 내용입니다. 내일밤까지는 완결될 수 있을 겁니다...

biosculp 2006-12-0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강사는 인터넷포르노에 정통한 분들에게는 유명하더군요.
오늘 댓글들 보니 캐나다 남편과 함께 지금도 업데이트 시키고 있으면 부업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캐나다인 남편도 어학과 유학관련해서 한국과 관현 사업도 하고요.
사생활 침해문제가 여전히 남지만 오히려 사이트홍보에 더 득이 된다는 애기도 있는데. 세상복잡해지네요.

로쟈 2006-12-05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요즘은 누가 '피해자'인지 점점 모호해지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