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인문학'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 소식을 스크랩해놓는다. 번역과 번역학, 번역비평에 대한 관심이 더 고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교수신문(06. 10. 10) '번역과 인문학' 국제학술대회 열려

고려대 문과대학이 창립 6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오는 19일 고려대 국제관에서 '번역과 인문학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주최 측은 학술대회의 목표가 "우리의 인문학과 관련하여 현금의 번역 역량을 점검하고, 번역 원론과 각론에 걸쳐 학문 분야별‧언어별로 중요 주제들을 검토하여 바람직한 번역문화를 전망함과 동시에 우리의 학문 현실에 적합한 번역학과 번역비평론을 창도하는 데 있다"라고 밝혔다.

번역은 하나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언어 경험을 공공적이고 보편적인 언어 경험으로 바꾸고, 한 시대에 한 지역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 사고에 시공을 뛰어넘는 보편적 형식과 가치의 시험을 부과하는 고도의 학술적 작업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 또한 출발 텍스트와 그 문화를 객관화하는 가운데 목표 문화 속에 그에 대한 정신적‧언어적 터전을 준비하는 번역활동은 대상 문화를 존중하는 일이 자문화의 유연성을 높이고 폭을 넓히는 일과 통하는 고도의 윤리적 작업이라고 이번 학술대회 프로그램을 풀이한다.  

이번 학술회의는 이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일련의 개막강연과 네 개의 주제별 분과토론을 3일에 걸쳐서 진행한다. 첫날의 개막강연에서는 앙리 메쇼닉(사진) 파리8대학 교수, 金聖華 홍콩중문대학 교수, 전성기 고려대 교수 등 선도적 연구자들의 발제가 있고 이어서, ‘번역 일반론’ ‘문화 수용으로서의 번역’ ‘번역이론과 번역현장’ ‘한국작품의 외국어 번역의 문제’ 등 네 개의 큰 주제를 둘러싸고 펼쳐질 이틀간의 분과토론에는 30명의 국내외 관련 연구자들이 사회자와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한다.

특히 마지막 날 토론에서는 이연숙 히토츠바시대 교수, 파사레바 라리사 고려대 교수, 삐오 세라노 스페인 베르붐 출판사 대표, 노자끼 미츠히코 오사카시립대 교수 등 우리의 문학작품을 각기 해당 국어로 옮긴 바 있는 번역자들이 토론자로 참석하여 한국문학의 외국어 번역 실태를 살피고 향후의 전망을 논의하게 된다.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첫째 날 10월 19일(목) - 국제관 214호 국제회의실(국제대학원동)

개막식

사회:김재혁 교수

 (고려대)

3:30 ~ 3:40

개회사(조광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장)

3:40 ~ 3:50

축사(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

3:50 ~ 4:00

감사의 말(대회준비위원장 황현산 교수/고려대)

개막강연

사회:김춘미 교수

     김양순 교수

 (고려대)

4:00 ~ 4:45

앙리 메쇼닉 교수(파리 8대학):번역의 의도는 언어이론을 통째로 바꾸는 데 있다

4:50 ~ 5:35

진성화 교수(홍콩중문대학):문화의 차이와 번역의 책략

5:40 ~ 6:25

전성기 교수(고려대):번역인문학과 번역비평

저녁식사 (6:30 ~    ) : 국제관 교직원식당

둘째 날 10월 20일(금) - 국제관 321호 원형강의실(국제어학원동)

주제발표 1

번역 일반론

사회:김승옥 교수

 (고려대)

9:30 ~ 10:15

발표-김응종 교수(충남대):번역은 제2의 창작인가

토론-김경현 교수(고려대)

10:20 ~ 11:05

발표-서지문 교수(고려대):사랑도 번역이 되나요? - 번역자의 이질적 언어, 문화권 간의 교량역할 -

토론-이성일 교수(연세대)

11:10 ~ 11:55

발표-박여성 교수(제주대):‘번역투’와 번역비평에 대한 텍스트과학적 접근 -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한국어 번역본을 중심으로 -

토론-장영준 교수(중앙대)

점심식사 (12:00 ~ 1:30) : 국제관 카페테리아

주제발표 2

문화 수용으로서의 번역

사회:황현산 교수

 (고려대)

1:30 ~ 2:15

발표-조성택 교수(고려대):번역과 오․이해: 한역불교용어를 통해서 본 동아시아불교

토론-박태원 교수(울산대)

2:20 ~ 3:05

발표-정광 교수(카톨릭대):개화기 시대의 성경번역에 대하

토론-전성기 교수(고려대)

3:10 ~ 3:55

발표-김용민 교수(한국외대):한국에서 루소 사상의 수용과 그 번역문제

토론-박홍규 교수(고려대)

※ 종합토론 (4:05 ~ 5:05) : 사회 최동호 교수(고려대)

저녁식사 (5:30 ~    ) : 인촌기념관 1층 귀빈홀

셋째 날 10월 21일(토) - 국제관 321호 원형강의실(국제어학원동)

주제발표 3

번역이론과 변역현장

사회:이재훈 교수

 (고려대)

9:30 ~ 10:15

발표-이연숙 교수(일본 히도츠바시대학):개념의 번역과 문체의 번역

토론-정병호 교수(고려대)

10:20 ~ 11:05

발표-황현산 교수(고려대):시와 번역

토론-김인환 교수(고려대)

11:10 ~ 11:55

발표-김동준 교수(동덕여대):한국한문문학작품 번역을 위한 제

토론-윤재민 교수(고려대)

점심식사 (12:00 ~ 1:30) : 국제관 교직원식당

주제발표 4

한국작품의 외국어 번역의 문제

사회:김양순 교수

 (고려대)

1:30 ~ 2:15

발표-피사레바 라리사 교수(고려대):한국시의 러시아어 번

토론-최선 교수(고려대)

2:20 ~ 3:05

발표-삐오 세라노(베르붐 출판사 대표):한국문학작품의 스페인어 번역: 성과와 도전

토론-이재학 교수(고려대)

3:10 ~ 3:55

발표-노자끼 미츠히코 교수(오사카 시립대학):일본에서의 한국 고전문학 번역

토론-최관 교수(고려대)

※ 종합토론 (4:05 ~ 5:05) : 사회 민용태 교수(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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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6-10-13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이런 '번역학'에 대한 세미나가 열리는군요. '번역'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학계 풍토에 대한 자책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번역에 대한 논의가 붐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번역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번역학 즉 번역'에 대한' 논의만 무성한 현 상황은 안타깝습니다.

'번역'에 관한 세미나의 경우, 이제는 '번역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에 대해 기획의 방향을 섬세하게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 세미나같은 경우, 개화기 성경번역이나 루소의 수용같은 논문은 역사학 계통의 논문이 나올 것입니다. 개화기 번역에 대한 논문은 동아시아학, 국문학의 제일 인기 분야입니다. '번역은 제2의 창조인가'와 같은 논문은 김효중의 <번역학> 한권만 읽어도 왠만한 것은 커버할 수 있을 것인데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요.
하지만 문제는 이 세미나에서의 번역에 대한 여러 논의가 짬뽕이라는 것입니다. '번역학'이 있을 정도로 논의가 복잡한데도 원론, 각론 다 모아 한큐에 진행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기획 자체가 아직도 번역에 대한 논의의 중요성에 대해 세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일전에 번역과 관련한 리포터를 한편 쓰기 위해 KISS에서 '번역'키워드로 한글 논문 20여편을 찾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태반이 김효중의 개론서 이상을 뛰어넘지 못하거나, 번역학 개론과 자신의 분야를 적절히 배합한 것들이었습니다.
정말 한국에서 필요한 번역에 대한 논의는, 번역의 강국 일본의 경우 출판사들은 어떻게 번역관련 작업을 하는가, 일본이나 미국의 대학 출판사들은 어떻게 번역을 하는가, 출판물 선정, 필자 섭외, 섭외의 기준, 번역까지의 기간 선정, 편집자와 번역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등에 대한 수많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실증적 연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찾아본 논문 중에는 외대 통번역 교수 두분이 연구비 받고 한국 출판사를 선정해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한 논문이 딱 한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한 대상이 출판사 단 네곳밖에 되지 않아 논문이라고 하기에 턱없이 그 기준이 모자랐습니다.

원래 각국의 번역 상황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고 했으나, 한국에 관한 위 논문을 제외하고는 단 한편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번역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인지만 있을 뿐 번역 대국의 번역 상황에 대해 실질적으로 실증적인 취재, 연구가 치밀하게 되지 않는 한, 이러한 '번역학'세미나는 80년대 초반 김용옥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번역에 대해 그리도 강조한 것 이상을 뛰어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번역학' 교수들이 생기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지만요...

로쟈 2006-10-1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매님/ 유익한 코멘트를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이번 학술대회 조직위에서 열매님 같은 분을 초빙했어야 했는데요^^). 매달린 일들 때문에 제 의견을 본문에 자세히 적지는 못하겠지만, 제기하신 문제들에 공감합니다. '학술대회'란 건 그냥 '행사'이죠. 실질적인 변화를 누가, 어떻게 가져올 수 있고, 또 가져와야 하는지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라이더 2006-10-1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좋은 댓글 이네요.

biosculp 2006-10-1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 들렸다 을유문화사에 신복룡교수가 번역한 군주론이 이 책과 더불어 강정인교수가 번역한 까치판을 같이 사서 읽고 있는데, 같은 책 다른 번역으로 읽은적은 처음입니다. 갈수록 다른면이 많더군요. 술어부터, 강정인은 식민지라고 한곳을 신복룡은 이주민 정책으로 번역하고 각자 잘 이해되는 부분도 다르고. 역시 번역은 두권이상을 동시에 봐야 뭐가 다른지 알수있는것인지. 그러다 보니 이거 영어판이라도 같이 봐야 되겠다 이생각이 들더군요. 영어판도 두권이상(이탈리아어는 모르니)
번역, 읽다가 이해 안되는것은 한권읽었을때고 동시에 두권을 읽어보니 또다른 세상입니다.

로쟈 2007-12-02 10:16   좋아요 0 | URL
뒤늦은 답글인데, 맞습니다. 같은 곡을 각기 다르게 연주하는 하는 것이죠.
 

지난달말 세계일보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고 몇 마디 덧붙이겠다. 원로 비평가 유종호 선생과의 인터뷰인데, '인문학 위기의 시대'에 대표적인 '인문학자'인자 '교양인'으로서 그가 귀뜀해주는 '인문학적 지혜'를 잠시 따라가본다.

세계일보(06. 09. 30) 원로학자 유종호에게 듣는다

인문학이 ‘또’ 위기에 처했다. 1996년 11월 전국 21개 국공립대 인문대학장들이 제주에 모여 ‘인문학 제주선언’을 했고, 2001년에는 전국 국공립대 인문대학협의회 차원에서 인문학 연구와 교육 기반의 붕괴를 우려하는 ‘2001 인문학의 선언’을 내놓았다. 이로부터 5년 만인 지난 15일에는 다시 고려대 문과대학 교수 117명이 ‘인문학 선언’을 발표해 사회적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급기야 인문학 선언을 발표한 고려대를 비롯해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의 학장들이 모여서 인문학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던 중 이번 주를 인문주간으로 선포하고, 이화여대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행사까지 벌이는 중이다.

도대체 위기의 실체가 무엇이기에, 아무리 위기라고 외쳐도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고 때만 되면 같은 아우성이 반복되는가. 과연 ‘인문학’의 위기인가, 아니면 한 중견학자의 독설처럼 인문학으로 밥벌이를 하는 인문학자와 인문학도의 위기인가. 위기의 정확한 실체는 무엇인가. 위기를 막을 근본적인 처방은 없는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인문학자로서 46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섰고, 어느 쪽에도 쉬 쏠리지 않는 중립적인 지성으로 평가받는 원로학자 유종호(71)씨를 만나 그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인문학이 위기라고 때만 되면 반복해서 외치는데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겁니까?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위기 선언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학의 위기’라는 맥락으로 들립니다. 인문학 교수들의 위기 선언은, 근본적인 인문학의 위기 차원보다도 인문학과 지원자가 현격하게 줄어들고 교양과목이 축소되고 졸업생들의 취업이 어려운 상황을 피부로 느끼기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만의 고립된 위기 상황은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문학의 위기, 교양의 위기, 대학의 위기, 고급문화 전반의 위기 상황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러한 현상은 범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과거 인쇄술 중심의 책 문화에서 인터넷 전자문화로 옮아가는 문명의 전환기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지요.”

―인문학만의 단독 위기가 아닐뿐더러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말씀인데, 구체적으로 서구의 경우는 어떤 양상인가요?

“미국에서도 영문과 지원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도 전반적으로 인문학도가 과거에 누렸던 위세는 추락하고 있지요. 하지만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안정된 사회이기 때문에 금방 표가 나지 않는 거지요. 일본만 해도 최근 사립대학 하나가 문을 닫았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대학의 위기가 감지됩니다. 영국은 불과 40∼50년 사이에 대학생 수가 10배 이상 늘었습니다. 대학을 나온 이들이 자신이 기대하는 수준의 전문직에 종사하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는 거지요. 영국에서도 문과대학 지원자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상황이 더 안 좋아 심각한 겁니다.”

―최근에는 인문학 출판인들이 모여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며 인문학자들의 위기선언에 보조를 맞추고 나섰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책을 많이 읽는 사회가 아닙니다. 돈을 번 사람들이 학술이나 문예 진흥을 위해서 많이 지원하는 사회도 아니지요. 일본도 경제대국이고 문화에 대해서 많이 지원한다고 하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수준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수준이 높다는 종합지도 미국의 전문 서평지에 비해 수준이 한참 떨어집니다. 하지만 일본의 메이저 신문 1면에는 꼭 책 광고가 들어갑니다. 광고 단가를 떠나서 신문의 전통과 그 사회의 문화를 위한 배려지요. 인문학의 위기가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문화적 인프라가 취약한 우리의 경우는 일본이나 미국보다 훨씬 그 강도가 심각한 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인들이 불평할 만도 하지요.”

―학자들은 물론이고 출판인들도 모두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데요.

정부의 지원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저차원의 지엽말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장애인이나 고엽제 피해자들이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면 곤란하지요. 문제의 핵심은 사회 풍토를 바꾸는 일입니다. 1960년대 이후 정부가 내세운 중요한 목표가 경제 건설이었고, 초고속으로 이룬 산업화 과정에서 효율과 실용성, 국가 부강에 직결되는 것만을 숭상하다 보니 자연히 인문적 가치가 평가절하되었지요. 또 하나의 축은 이른바 민주화세력인데, 이들은 실천을 중시하면서 운동의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니 인간의 본질 탐구나 인간성 중시 같은 가치가 평가절하됐어요. 김대중 정부에서 제시한 신지식인이라는 것조차 경영 마인드를 지닌 시장 지향의 지식인인데, 이 또한 인문정신과는 동떨어진 방향이었지요. 결과적으로 작금의 우리 사회에는 반인문적 풍토가 조성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인문학과 교양의 위기 사태에 직면한 거지요.”

―그렇다면 인문학의 실용적인 가치는 무엇입니까? 왜 지금 우리가 인문학의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행복의 추구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살자는 우리의 최종 목적이지요. 변혁을 도모한 사람들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극적으로 잘살기만 해서도 안 되고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에 대한 이해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타인의 입장에서 역지사지의 정신을 지닐 수 있고 관용도 베풀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덜 살벌하고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한 것이야말로 인문학의 정신이요 가치입니다. 토마스 만은 ‘교양이란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삶을 향유할 능력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행복합니다. 자기가 불행한 사람은 남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행복한 사람이 많아져야 사회도 행복해집니다. 삶의 여러 가능성에 대한 향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의 기본입니다.”

―인문학 부흥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은 없을까요?

사람이 빵만 가지고 살 수 없다는 정신을 심어주는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똑똑한 아들에게는 사업을 물려주고, 그다음 똑똑한 아들은 랍비로 키우되 사위 하나는 반드시 똑똑한 지식인을 얻는다고 합니다. 비즈니스만 해서도 안 되고, 성직자만 배출해서도 행세를 할 수 없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식인까지 가문에서 나와야 사회적 인정을 받는 풍토를 반영하는 사례지요. 그들이 인종적으로 탁월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과학자, 예술가, 학자들이 노벨상을 휩쓸게 된 겁니다. 이러한 사회 풍토를 위한 인문학적 인프라를 조성하면서 정부의 지원도 요청해야지요.”

―불행한 사람은 다른 이들도 불행하게 만든다는 말씀, 인상적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인데, 우리는 정작 효율과 실용에만 매달려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 출신 철학자 아이자이아 벌린이 소개한 일화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영국의 명문 맥밀런가의 한 사람이 대학 1학년 때 철학을 교양과목으로 들었는데, 첫 시간에 철학교수가 ‘내 강의를 충실하게 들으면 어떤 걸 얻을 수 있는가’ 물은 뒤 ‘관리나 기업가가 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내 강의를 잘 들으면 적어도 남의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의 말이 맞느냐 틀리느냐 정도의 분별 능력을 지니게 되며, 특히 남을 속이려 드는 것은 금방 간파하게 된다’고 말했답니다. 이 예화를 인용하면서 벌린은 ‘남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판단하는 능력이야말로 굉장한 능력’이라고 토를 달았습니다. 인문학의 기본을 잘 시사하는 발언이지요."
 
"인문학적 소양은 사람을 지혜롭고 총명하게 만듭니다. 이런 정신으로 인문학을 받아들이고 위기를 거론해야지, 왜 우리는 돈을 적게 지원해서 망하게 하느냐고 항의하는 태도는 자칫 직업 이기주의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생산적인 건 바로 눈에 띄지만 인문학이란 가시적인 게 아니어서 본질을 꿰뚫고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삶을 제대로 향유할 능력을 갖춘 한 사람의 행복한 교양인을 만드는 일은 오랜 투자와 사회적 노력 끝에 가능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회적인 큰 목적을 세우고 노력해야지요.”(조용호 기자)
 
 
한국일보(06. 09. 21) 老지성들에게 듣는다, 인문학의 길을…
 
 
왜 인문학인가? 왜 인문학이 중요하며 우리의 삶에 절실한가? 또 그토록 중요한 인문정신이 죽네 사네 하는 지경에 이른 까닭은 무엇이며,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는 무엇을 반성하고 고쳐가야 하는가? 그리고 또 왜 우리는 너무나 막연하고 거대해서 공허하기까지 한 이 질문들을 지금 당장 스스로에게 아프게 던져야만 하는가?

이 무겁고 아득한, 그렇지만 긴박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놓고 학술원 회원인 정명환(77) 전 서울대 불문과 교수, 차하순(77)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예술원 회원인 유종호(71) 전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가 20일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 당대의 노(老) 지성들은 그들이 짊어진 이 질문들보다 더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시종 깊이, 그리고 느리게 대화를 이어갔고, 좌담의 내용과 형식 자체로서 우리가 복원해야 할 인문주의의 전범(典範)을 연출했다.

차하순=인문학의 위기를 진단하기 앞서, 그 기원을 따져봐야 할 것 같아요. 말의 기원, 어원처럼 말이죠. 저는 지금 이 위기가 인문학의 본질에 닿아있다고 봅니다. 인문학이란 인간과 인간의 가치에 관한 학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조건, 삶의 조건이 급변했어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시대 공자 시대의 인간에서 생명공학, 정보통신 사회의 인간이 된 거죠. 그렇다면 지금 위기의 기원은 오래된 것이며, 다만 조금씩 심화해왔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 1960년대 개발시대 이후 그 병증이 급격히 악화했습니다. 외적으로는 상업화, 산업화라는 인문학적 환경의 변화이고, 내적으로는 인문학 자체가 변화된 세상에 충실히 적응하지 못한 채 전통적 방법과 사고방식을 고수한 것입니다.

정명환=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자리에서 아직도 엉뚱한 소리들이 들려요. 우리 인문학이 식민지화했다, 쇼비니즘으로 치우쳤다, 이념화했다, 패거리문화를 형성했다, 학문간 교류가 빈약하고 배타적이다 등등…, 구구한데, 그것은 인문학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풍토 전반의 문제라 해야 옳습니다. 우리 인문학 자체의 연구성과는, 불문학의 예만 보더라도, 괄목하게 발전해왔어요. 우리 학자들이 프랑스에서 불어로 쓴 논문이 현지의 유수 학술전문 잡지에 실리고, 우리 정부의 보조 없이 유수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왜 대학에 학생들이 안 와서 폐과 지경에 이르고,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영문학과는 셰익스피어를 제쳐두고 시사영어로 기울어질까요.
 
저는, 차선생 말씀처럼, 6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교양을 담당하던 계층이 급속히 붕괴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효율성과 합리성, 물질적 풍요와 이윤 지상의 이념 하에 전통적 사대부ㆍ선비계급의 역할을 대신할 지식ㆍ교양 엘리트층이 설 땅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가장 큰 책임은 매스컴, 특히 TV가 져야 합니다. 정신적인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몰아간 이윤 추구의 주체들,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에 기생해온 대중문화, 그리고 과학기술문화 만능정신이 야합한 결과지요. 가장 대중적 레저 수단이라는 TV앞에서 인간은, 역설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 회복을 위한 레저’의 문화를 상실한 것입니다.


유종호= 이 위기가 60년대 이후 심화했다는 데 대해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다만 거기에는 인문적 가치를 도외시한 산업화세력 못지않게 거기에 맞선 ‘민주화세력’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들은 운동의 효율성을 위한 특유의 실천적 논리 하에 인문적 가치, 인간적 가치를 밀쳐냈습니다. 근본적인 반지성주의, 반지식인주의가 싹튼 것이지요. 지식인을 ‘먹물’이라고 칭했던 당시의 유행어가 반지성주의를 상징하지 않습니까. 또 민주화 정권이라는 김대중 정권이 기치로 내건 ‘신지식인상’은 어떻습니까. 그것 역시 친시장적ㆍ반인문적 효율주의였고, 경영주의였어요. 한 마디로 인문학적 상상력이 앉을 자리를 사회학적 상상력이 차지한 결과입니다. 정보화 사회라는 게 뭡니까. 그 사회의 경쟁력은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아닙니까. 정보란 새로워야 하고, 실용적이어야 하고, 쉬워야 합니다. 그 새롭고(쉽게 교체되고), 실용적이고(물질적 가치), 쉬운(편의주의, 대중주의) 정보의 전횡 앞에 체계적이고 학문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이 대접 받을 자리가 사라진 것이지요.

정명환=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당장 이 정부 문화관광부의 행태를 보세요. 그들의 문화정책 역시 경제지상주의 아닙니까. 한류니 문화콘텐츠니 하는 것들 역시 근원적 인간의 가치, 인문학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우위에 두는, 다시 말해 휴머니티를 배반하는 행위지요. 문화란 어떤 삶이 인간적인 삶인가, 진실한 삶의 행복은 무엇인가, 하는 괴로운 정신적 과정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차하순=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19세기 산업혁명 이래 우리 삶을 지배해 온 외형적ㆍ물질적 가치와 내면적 삶의 질 사이의 괴리를 메워가는 일입니다. 물질사회의 빠른 행보를 문(文) 사(史) 철(哲)의 느린 걸음이 따르지 못한 간극을 좁혀야 한다는 거죠. 인문학의 신축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대목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인문학자들은 인공지능, 인간복제에 대해 그 위험성은 말했지만 윤리적, 도덕적 준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어요.
 
또 문화의 양면성, 즉 전문화ㆍ고급화에 대한 학문적 추구와 ‘쉽게, 쉽게’를 중시하는 대중적 가치에의 경도입니다. 사회 지식 엘리트들에게 대중적인 메시지를 쉽게 직접 전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18세기 유럽의 계몽사회처럼, 전문가 집단과 대중들을 매개하는 중간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회의 의식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인들이 음악ㆍ미술은 후원해도 인문학은 후원하지 않지요. 해외로 직원을 파견할 때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가르쳐달라고 우리에게 강연을 요청하면서, 경제연구소나 만들지 인문학연구소는 만들지 않습니다. 직원을 채용할 때 내거는 전공 제한도 어불성설입니다.

유종호=의식구조 개혁에 덧붙여 저는 대학 개혁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한 마디로 지금은 대학과 대학생이 너무 많고, 차별성이 없어요. 그래서 50~60년대 대학생이 지녔던 건강한 의미에서의 자부심, 교양적 가치 중시의 풍토가 희석됐어요. 교양을 과시할 대상마저 없어져버린 시대가 된 거죠. 그러니 교양이 대접 받을 수 없죠. 대학개혁 없이 인문학의 위기 극복은 요원합니다.

정명환=저는 정부의 역할도 주문하고 싶어요. 서울대를 비롯한 모든 대학이 취업예비학교가 돼버린 현실,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죠. 다만 그럼에도 ‘진리는 나의 빛’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나아갈 공간, 가령 프랑스의 ‘국립학문연구소’처럼 ‘국립인문학연구소’를 설립해야 합니다. 가령 ‘몽골어’ 전문가는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재지만, 그를 받아줄 대학이나 기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소 같은 기관을 국립인문학연구소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들에게는 ‘건강한 자아 분열’을 요구하고 싶습니다. 인문학 전공자가 졸업한 뒤 기를 쓰고 증권회사에 취업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 현실 속에서 증권맨으로서의 대중적 자아(public self)와 불문학도로서의 개인적 자아(private self)를 분열시켜 고통스럽더라도 인문적 가치를 누리자는 겁니다. 낮에는 시계공으로 일하며 밤에 철학을 했던 스피노자처럼 말이죠. 직장인으로서 돈을 버는 목적 역시 인간으로서의 참된 삶, 진정한 행복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인문학적 교양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니까요.

=한국일보 편집국 인터뷰실에서 시작된 좌담은 인사동의 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뒤로도 이어져, 이 시대 보수와 진보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과 현 정부에 대한 질타 등으로 주제와 대상을 넘나들며 길게 이어졌다. 주흥이 도도했지만 그들의 대화는 시종 나직하게 우렁찼고, 소박하게 아름다웠다.(정리=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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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oli 2006-10-12 21:42   좋아요 0 | URL
좋은 얘기지만, 높이 오른 한국인에 대한 불신이 제 맘 가득한 걸 다시 한번 느낍니다. 저들의 말이 백번 옳긴 하지만, 역시 인문학 교수다운 지극히 좋고 아름다운 얘기만 하네요. 딱 인문학 틀 안에서만 놀려고 하는 모습. 리영희 정도는 되어야 제 눈에 찰까요.ㅎㅎ 암튼 저들이 자리를 옮긴 인사동 음식점은 한 끼에 얼마짜리일까요?

로쟈 2006-10-13 00:59   좋아요 0 | URL
물론 저 또한 '원로들'의 의견에 모두 공감하거나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생각의 실마리를 얻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참고로 인사동의 음식점들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parioli 2006-10-13 16:30   좋아요 0 | URL
인사동과 그 근처에 아주 고급 음식점이 있던데요... 강준만이 얼마 전에 쓴 '기회주의 공화국' 을 읽고 아주 공감했죠. 한국에선 기회주의자가 되지 않고는 위로 못 올라간다... 현실이 우리를 기회주의자로 만들기는 하지만.

로쟈 2006-10-13 17:01   좋아요 0 | URL
"한국에선 기회주의자가 되지 않고는 위로 못 올라간다" 고로, 한국 사회에서 잘 나가는 인간들은 모두 기회주의자이다, 라는 건 너무 단순한 논리 아닌가요? 어느 사회이건 기회주의자로 처신하는 것이 '기회'를 잡을 가능성을 높여주긴 하겠지만, 그게 다른 설명을 모두 봉쇄시켜버릴 정도일까요? 한편으로, 기회주의에 대한 강준만식 해설에 기대면, "기회주의는 한국의 무한한 잠재력"이기도 합니다. 비록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제도ㆍ조직ㆍ개인도 사회적 존경과 신뢰는 누리기 어렵게 돼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니까 우리가 사회적 존경/신뢰를 잃는 대가로 지불받는 것이 기회(주의)인 것이지요. 그런데, 원로 인문학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 '시회적 존경/신뢰'의 회복입니다. 인문학을 도구적으로 써먹는 게 아니라...

parioli 2006-10-14 00:12   좋아요 0 | URL
1. 너무 단순한 논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높이 올라간 사람 중에 기회주의자가 아닌 예외적인 존재가 있을 뿐 아닌가요? 예전 교육부 장관이었던가요, 자기에겐 스승이 없(었)다 던가 하는 발언을 해서 도덕의 수호자들에게서 엄청 욕을 먹었던... 전 그 장관의 말에 백분 공감합니다. 제가 느끼기엔, 우리나라 최상층부-학계든 정계든 법조계든-는 한다리만 건너면 다 알만큼 수백명 정도로 이루어져 있기에 둥글둥글 처신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봅니다. 좀만 더 심해지면 기회주의가 되는 거 아닐까요?
2. '그러니까 우리가 사회적 존경/신뢰를 잃는 대가로 지불받는 것이 기회(주의)인 것이지요'라는 문장은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3. 원로 인문학자들이 강조하는 그 사회적 존경/신뢰의 회복에 대해 누가 동의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인문학자답게 왜 사회적 존경/신뢰를 잃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죠. 해도 아주 두리뭉실하게 할 뿐.
4. 강준만은 그런 기회주의가 처절히 싫기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있고 서울 소재 대학으로 올라올 기회가 있어도 거절하는 거겠죠. 강준만 정도는 되어야 기회주의 공화국을 비판할 생각이 나는 거겠죠. 소위 인문학계의 원로들은 기회주의를 비판할 생각이 나기나 할까요. (다만, 제가 좀 무식한 지라 저분들에서는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침신문에서 읽은 인터뷰 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딱 북한 핵실험이 실시된 날 방한한 월러스틴 교수와의 짤막한 인터뷰를 담고 있는데,  북핵 문제에 대한 외부자의 시각, 혹은 '세계체제론자'의 시각을 보여주는지라 흥미롭다. 그의 미시적인 정세분석과 예측이 거시적인 세계체체론만큼이나 현실적합성을 보여줄지 주목해볼 만하겠다.  

경향신문(06. 10. 11) “北 핵실험 별로 놀랄만한 일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무나 논리적인 선택입니다. 남북한 통일의 미래상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바로 한국 사회의 여론이 이번 핵실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를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 나눠 설명한 ‘세계체제론’의 저자 이매뉴얼 월러스틴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76)는 자신의 한국 방문과 동시에 터진 북한의 핵실험에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월러스틴 교수는 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한 핵실험의 의미와 향후 전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담담하게 밝혔다.

“공교롭게도 제가 오는 날 일이 발생했더군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그렇게 행동하리라는 것은 다 예상됐던 것 아닙니까. 북한의 관점으로는 너무나 논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보인 반응 역시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중국의 반응은 예상보다 강한 듯하고요.”

월러스틴 교수는 외부 분석가 입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한국의 입장이라고 했다. “나는 한국 여론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당분간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입니다. 향후 한국 내 여론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난 주요 분단국가 가운데 독일과 베트남이 이미 통일됐고, 이제는 한국과 중국만 남았다”며 “두 나라의 통일도 이르면 10년 내에, 늦어도 30년 안에는 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통일해야 한다’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져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 어떤 조건으로 통일이 이뤄지느냐이다”라며 “현재의 북한 핵실험 국면에서 한국 내 여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바로 통일의 방식, 조건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의 여론 형성과 관련해 어떤 방향이 바람직하냐’라고 묻자 그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핵실험이 남북한 통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으냐’고 돌려 묻자 그는 “한국 내 여론이 이번 핵실험에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올 것이고, 반면 의연하게 대처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남북한 통일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이른 시기에 올 것이냐의 문제 역시 지금 한국 여론의 반응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월러스틴은 “화나고 분하겠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병력이 이라크에 묶여 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선택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2주쯤 지나서 보면 알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의아해 하는 기자들의 표정에 그는 “미국이 이라크에 했듯이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중국이나 러시아의 협조 없이는 군사제재는 불가능하고 성공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가 거론되지 않느냐’는 반문에 그는 “미국의 제재 의지가 매우 강경한 만큼 어떤 종류든 성명서가 나오기는 하겠지만 설득력 있게 준비된 제재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두 가지를 말했다. “우선 내부적으로는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내적 정책기조가 있을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 군사적으로 보복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협정(FTA) 협상에 대해 월러스틴 교수는 “미국이 전세계적으로 추진하는 ‘자유무역’이란 것은 결코 자유무역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완벽한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것을 누구보다 미 의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역시 자국 이익에 맞게 조금 더 보호주의적인 것에서 조금 덜 보호주의적으로 움직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가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일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미국이 서유럽과 FTA를 맺고 있지 않다는 점이 한·미 FTA가 자동적으로 선진국 진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잘 말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협상이 시작됐고 국가간 경제협력이 불가피한 이상 한·미 FTA의 세부 항목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월러스틴 교수는 11일 고려대에서 ‘미국 이후의 세계(Post American World)에서 살아가기: 지정학적 긴장과 사회적 갈등’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이다. ‘미국 이후의 세계’에 대해 그는 “미국이 유일한 슈퍼파워로서의 힘을 잃어간다는 뜻”이라며 “이미 미국은 쇠퇴기에 들어와 있으며 좀더 구체적으로는 70년대부터 미국의 쇠퇴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단적인 예로 존 볼턴 유엔대사의 말이 유엔에서 먹히지 않는 것을 들었다. 미국의 말 한마디로 결의안이 통과되던 50~6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월러스틴 교수는 “이제는 미국이 단일한 슈퍼파워가 아니다. 미국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월러스틴 교수는 고려대 문과대 설립 60주년을 맞아 고려대측의 초청으로 부인 베아트리체 여사와 함께 지난 9일 입국했으며 11일 고려대 강연 및 전문가 포럼에 이어 13일에는 ‘자유·정의·진리: 시장 근본주의를 넘어서’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할 예정이다.(손제민 기자)

06. 10. 11.

 

 

 

 

P.S. <근대세계체제1.2.3>(까치글방) 외에도 월러스틴 교수의 책들을 다수 소개돼 있다. 내가 읽은 건 <유토피스틱스>(창비사, 1999) 정도가 마지막이었던 듯싶은데,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창비사, 2001)의 역자 백승욱 교수가 쓴 세계체제론 입문서가 근간 예정이라고 한다. 월러스틴 자신이 쓴 입문서로는 <세계채제분석>(당대, 2005)이 작년에 소개된 바 있다. 월러스틴 읽기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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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oli 2006-10-12 21:25   좋아요 0 | URL
월러스틴이 왔네요...북한 핵실험만큼이나 반가운 임...

로쟈 2006-10-13 01:11   좋아요 0 | URL
'반가운 임'은 반어법이신가요?..

parioli 2006-10-13 16:31   좋아요 0 | URL
반반이에요. 제가 좀 과격파거든요. ㅎㅎ
 

오늘자 메일로 배달된 창비주간논평에서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혼인 권하는 사회'를 옮겨놓는다. 아직 미혼인 후배 강사와 같은 연구실을 쓰는지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종종 있다. 후배는 지난 연휴에 지방에 다녀왔고 직접적인 '압력'을 받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무언의 압력'을 느꼈을 법하다. 초혼과 재혼 어떻게 다른가, 같은 인터넷 기사 타이틀에 흥미를 갖는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그와 관련한 몇 마디 잡담을 나누다가 메일을 열어보았는데, '아베 정권의 등장' 이후의 한일관계에 대한 논평과 함께 올라온 것이 '혼인 권하는 사회'였던 것. 겸사겸사 옮겨놓는 이유이다.

창비주간논평(06. 10. 10) 혼인 권하는 사회

이런저런 일로 해서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한분을 세차례 뵐 기회가 있었다. 처음 뵈었을 때 여차저차 소개를 올리자 넌지시 물으셨다. "자네 혼인은 했는가?" 요즘은 쉬이 쓰지 않는 혼인이라는 단어가 은근히 멋스러웠고, 그래서인지 그 질문이 그리 거북하지는 않았다. 두번째 뵈었을 때도 같은 말씀을 던지셨지만 그러려니, 했다. 겨우 두번째 대면이었고 그러니 잊어버리셨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세번 반복되면 우연이 필연이 된다고 하던가.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그 어르신은 식사중에 다시 내 쪽으로 몸을 돌리셨다. "그런데 자네 혼인은 했는가?"


종종 들르곤 하는 인터넷 모 싸이트 게시판에는 지난 추석 연휴 동안 이런 종류의 상황을 탄식하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결혼은 왜 안하는 거냐, 눈이 높은 거냐, 노력을 안하는 거냐, 선이나 봐라……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이라든가 백수들에 못지않게, 30대 씽글들 역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안부인사가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세상에 여자(남자)가 반인데 뭘 망설이느냐고? 어서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라는 주변의 다정한 관심은 어떤 의미에서는 잔인한 것이다. '인연'이라는 낭만적 우연을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다면, '기회'를 만들기 위해 발벗고 뛰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흔히들 이야기하듯, 자신의 상품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냉정히 가늠해보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결혼정보회사의 세분화된 등급이 특정 직업에 대한 사회적 지위의 척도로 통용되기 시작한 지는 벌써 오래다.


꼭 그렇게라도 해서 짝을 만나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과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처럼 이 시련을 무사통과하고 싶다는 욕망이 뒤엉켜 만혼(晩婚)시대 젊은이들의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계급, 권력, 성, 가족제도 등이 얽혀 있는 이 세계의 복잡한 지형도는 세태에 밝은 젊은 작가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소재다.


김윤영의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문학수첩> 2006년 가을호)에서 결혼이라는 "과열경쟁 시장"을 "블루오션" 전략으로 돌파하려는 주인공은 자신의 결혼 전망을 마치 주식시세처럼 분석한다. "부잣집 공주님"이나 "희귀한 고소득 전문직"이 아닌 이상 더욱 냉철해져야 한다고 다짐하는 작품 속 여성 펀드매니저의 내면은, 만에 하나 성공적인 결혼을 못한다면 인생의 하향곡선의 경사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불안심리로 얼룩져 있다.


그런가 하면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문학판> 2006년 가을호)는 또 어떤가. 다소 주변적으로 처리되고는 있지만 '짝짓기'에 작용하는 계급과 성의 함수관계에 대한 백가흠식 문제제기는 이 소설에서도 여전하다. 소설의 서두에 묘사된 것처럼 대리운전기사 '조대리'에게 관건은 "가능성 있는 여자"를 찾는 것이어서 "생각보다 예쁜 여자의 외모"는 오히려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폭력에 쉽게 호소하거나 혹은 퇴행적인 면면을 보이는 백가흠의 남성인물들은 생존(번식)의 본능적 욕구가 현실과 만나 일어나는 불협화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들에게 결혼이라는 제도적 안착은 어불성설이다.


그 어조가 냉소적이건 풍자적이건 혹은 자학적이건, '결혼은 선택' 나아가 '미친 짓'임을 도발적으로 규정하는 소설들의 맞은편에, 이를 생존의 문제와 결부시켜 고찰하는 소설들이 자리한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 사회의 많은 평범한 씽글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결혼의 무게는 여전히 후자 쪽에 좀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길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한다는 가장 원초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씽글들에게 관대하지 않은 이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배척당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이다. 특정한 연령대를 지나면 '결혼 이외의 삶'에 대해 상상하는 것조차 봉쇄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씽글은 언제까지나 비혼(非婚)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는 미혼(未婚)일 뿐이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까닭이나 혹은 반대로 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하지 않는 연유는 다양하겠지만, 그것이 무심한 권고이든 절박한 채근이든 주변의 결혼 강요가 씽글들을 옥죄면서 그들에게 단 하나의 선택지만을 이구동성 가리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우리 혹은 우리의 이웃들은 너도 나도 '아주 쉽게' 결혼을 권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사 대신 전하는 안부인가, 타성에 젖은 관습인가?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우려하는 애국심의 발로인가, 타인의 고독을 연민하는 착한 이웃사랑인가? 인생의 참맛을 전파하고 싶은 전도심인가 아니면,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놀부심보인가? 짧기만 한 소견으론, 출산율 걱정하시는 분들은 쌍춘년을 맞아 러시를 이루는 결혼행렬을 보고 조금 안심하셔도 될 듯하고, 누군가의 말년을 염려하시는 분들은 TV 리퀘스트 프로그램에 전화 한통 하시는 게 더 나을 듯도 싶은데 말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결혼을 강권하는 사회에 초연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에 아랑곳하지 않는 천하장사급 뚝심과 그것을 뛰어넘는 마돈나급 파워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가을 소설과 영화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게 본, 노동계급 출신의 트랜스젠더 성장담을 여유있게 펼쳐낸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이질적인 두 단어를 조합해낸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는 남성적 가계에서 자란 소년(/녀)의 여성적 꿈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성적 소수자를 다룬다는 점에서 게이 카우보이들의 고통을 섬세하게 그린 미국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혹은 의심하며) 사회가 강요하는 바를 따라야 했던, 그래서 차마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이 속울음을 삼키던 카우보이들과는 달리, <천하장사 마돈나>의 주인공 오동구는 단 한순간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전진한다. 물론 그 씩씩함의 근원이, 영화가 주인공의 새로운 눈뜸 이후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고 막을 내린다는 점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영화가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종일관 따스하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팝가수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을 부르는 오동구는 너무나 대견해서 보는 사람을 뿌듯하게 한다. 영화 속 오동구를 보고 있노라면 사랑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 사랑스러움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그런 사랑스러움이다. 오동구는 아마도 앞으로 더 외롭겠지만, 인생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기에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유난히 휘영청 밝은 추석 달을 보면서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을 오동구들은, 사회의 태클에 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면서 살아가게 해달라고 소원했을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남녀들이 결혼하기를 기도하는 대신, 차라리 그 오동구들 틈에 지금 이대로의 삶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음에도 결혼을 종용당하는 씽글들을 세우고 싶은 마음은 과연 지나친 것일까. 때는 바야흐로 다시 결혼의 계절이다.

 

06. 10. 10.

 

 

P.S. 개인적으론 논평을 읽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가 비디오로 출시되기를 더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를 보면 어떨까란 생각도 해보고.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는 엊그제부터 이러한 '일상적 시간'의 배면에서 '묵시록적 시간'을 동시에 살게 되었다(예컨대 '9.11 이후의 시간'을 살고 있는 미국처럼).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 아무래도 우리는 실질적인 '위험사회'로 진입한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혼의 계절'보다 한발 먼저 도래한 것은 '북핵의 가을'이다(창비의 논평이 아베정권이나 혼인 문제 정도를 다루고 있는 것은 북핵 위기가 현실화되기 이전에 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시간차'가 새삼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어제는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에 대한 서평을 주문받기도 했지만, 혹 '혁명'보다 먼저 오는 것이 '전쟁'은 아닌지(실제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났다)? 낮에 도서관에 들어온 비릴리오의 책 <탈출속도>(경성대출판부, 2006)를 복사하면서도 자못 비장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로 '탈출'해야 할 것인가? 어떤 속도로? 해서, 한동안은 '혁명-전쟁-탈출'이란 주제의 페이퍼들을 쓰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묵시록 속의 일상'을 사는 한 가지 방식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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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겜보이 2006-10-10 19:50   좋아요 0 | URL
중,고,대학때까지만 해도 연애한다면 펄쩍 뛰는 어른들이 조금 있으면 결혼 언제 하느냐고 하고, 결혼한 사람들에겐 애는 언제 낳느냐고 묻고, 출산 후엔 둘째는 언제 갖느냐고 하지요. 그저 인사치레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할 말이 너무 없는 나머지...

비로그인 2006-10-10 20:04   좋아요 0 | URL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가이드 라인이랄까요. 문제는 그 가이드 라인을 거역하는 그 순간부터 '정상'이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는...

마노아 2006-10-10 23:11   좋아요 0 | URL
마돈나 엄청 이쁘게 나왔네요. 케이트 윈슬렛으로 착각했어요..;; 천하장사 마돈나 참 따뜻한 영화였는데 좀 더 오래 상영했으면 좋았을 것을...

로쟈 2006-10-10 23:33   좋아요 0 | URL
'엄청 이쁘게 나왔네'가 아닌데요. 20년전의 마돈나이니까요!(매주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던 'Like a virgin'을 FM으로 들으며 잠들던 기억이 새롭기까지 한...)

라이더 2006-10-12 18:11   좋아요 0 | URL
저기요. 이거 퍼가도 되요?

로쟈 2006-10-13 00:45   좋아요 0 | URL
알라딘의 공개페이퍼는 퍼가기에 '자동적으로' 노출돼 있습니다.^^

라이더 2006-10-13 12:09   좋아요 0 | URL
출처를 밝히고, 님의 글 펌 할께요. 감사해요.
 

2004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의 기일이 오늘(10.09)인 줄 알고 있었는데, 위키피디아의 데리다 항목을 찾아보니까 10월 8일, 어제였다. 그에 관한 글이라도 내놓으면 좋겠지만 아직 형편이 닿지 않아서 재작년에 씌어진 주디스 버틀러의 애도 기사 정도를 읽어보는 걸로 입막음을 한다(연초에 나온 번역서 <목소리와 현상> 이후에 데리다 관련서가 한권도 더 출간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LRB의 Vol. 26, No. 21(2004. 11. 04)에 게재되었던 것이다. 내가 한 일은 문단을 나대로 정리한 것뿐이다.

Jacques Derrida

Judith Butler

'How do you finally respond to your life and your name?' Derrida raised this question in his final interview with Le Monde, published on 18 August this year. If he could apprehend his life, he remarked, he would also be obliged to apprehend his death as singular and absolute, without resurrection and without redemption. At this revealing moment, it is interesting that Derrida the philosopher should find in Socrates his proper precursor: that he should turn to Socrates to understand that, at the age of 74, he still did not quite know how best to live. One cannot, he remarks, come to terms with one's life without trying to apprehend one's death, asking, in effect, how a human learns to live and to die.

Much of Derrida's later work is dedicated to mourning, and he offers his acts of public mourning as posthumous gifts. In The Work of Mourning (2001), he tries to come to terms with the deaths of other writers and thinkers through reckoning his debt to their words, indeed, their texts; his own writing constitutes an act of mourning, one that he is perhaps, avant la lettre, recommending to us as a way to begin to mourn this thinker, who not only taught us how to read, but gave the act of reading a new significance and a new promise.

In that book, he openly mourns Roland Barthes, who died in 1980, Paul de Man, who died in 1983, Michel Foucault, who died in 1984, and a host of others, including Edmund Jabès (1991), Louis Marin (1992), Sarah Kofman (1994), Emmanuel Levinas (1995) and Jean-François Lyotard (1998). In the last of these essays, for Lyotard, it is not his own death that preoccupies him, but rather his 'debts'. These are authors that he could not do without, ones with and through whom he thinks. He writes only because he reads, and he reads only because there are these authors to read time and again. He 'owes' them something or, perhaps, everything, if only because he could not write without them: their writing exists as the precondition of his own; their writing constitutes the means through which his own writing voice is animated and secured, a voice that emerges, importantly, as an address.

In October 1993, when I shared a stage with Derrida at New York University, I had a brief, private conversation with him that touched on these issues. I could see in him a certain urgency to acknowledge those many people who had translated him, those who had read him, those who had defended him in public debate, and those who had made good use of his thinking and his words. I leaned over and asked whether he felt that he had many debts to pay. I was hoping to suggest to him that he need not feel so indebted, thinking as I did in a perhaps naively Nietzschean way that the debt was a form of enslavement: did he not see that what others offered him, they offered freely? He seemed not to be able to hear me in English. And so when I said 'your debts', he said: 'My death?' 'No,' I reiterated, 'your debts!' and he said: 'My death!?'

At this point I could see that there was a link between the two, one that my efforts at clear pronunciation could not quite pierce, but it was not until I read his later work that I came to understand how important that link really was. 'There come moments,' he writes, 'when, as mourning demands [deuil oblige], one feels obligated to declare one's debts. We feel it our duty to say what we owe to friends.' He cautions against 'saying' the debt and imagining that one might then be done with it. He acknowledges instead the 'incalculable debt' that one does not want to pay: 'I am conscious of this and want it thus.' He ends his essay on Lyotard with a direct address: 'There it is, Jean-François, this is what, I tell myself, I today would have wanted to try and tell you.'

There is in that attempt, that essai, a longing that cannot reach the one to whom it is addressed, but does not for that reason forfeit itself as longing. The act of mourning thus becomes a continued way of 'speaking to' the other who is gone, even though the other is gone, in spite of the fact that the other is gone, precisely because that other is gone. We now must say 'Jacques' to name the one we have lost, and in that sense 'Jacques Derrida' becomes the name of our loss. Yet we must continue to say his name, not only to mark his passing, but because he is the one we continue to address in what we write; because it is, for many of us, impossible to write without relying on him, without thinking with and through him. 'Jacques Derrida', then, as the name for the future of what we write.

It is surely uncontroversial to say that Jacques Derrida was one of the greatest philosophers of the 20th century; his international reputation far exceeds that of any other French intellectual of his generation. More than that, his work fundamentally changed the way in which we think about language, philosophy, aesthetics, painting, literature, communication, ethics and politics. His early work criticised the structuralist presumption that language could be described as a static set of rules, and he showed how those rules admitted of contingency and were dependent on a temporality that could undermine their efficacy. He wrote against philosophical positions that uncritically subscribed to 'totality' or 'systematicity' as values, without first considering the alternatives that were ruled out by that pre-emptive valorisation.

He insisted that the act of reading extends from literary texts to films, to works of art, to popular culture, to political scenarios, and to philosophy itself. This notion of 'reading' insists that our ability to understand relies on our capacity to interpret signs. It also presupposes that signs come to signify in ways that no particular author or speaker can constrain in advance through intention. This does not mean that language always confounds our intentions, but only that our intentions do not fully govern everything we end up meaning by what we say and write.

Derrida's work moved from a criticism of philosophical presumptions in groundbreaking books such as Of Grammatology (1967), Writing and Difference (1967), Dissemination (1972), Spurs (1978) and The Post Card (1980), to the question of how to theorise the problem of 'difference'. This term he wrote as 'différance', not only to mark the way that signification works - one term referring to another, always relying on a deferral of meaning between signifier and signified - but also to characterise an ethical relation, the relation of sexual difference, and the relation to the Other. If some readers thought that Derrida was a linguistic constructivist, they missed the fact that the name we have for something, for ourselves, for an other, is precisely what fails to capture the referent (as opposed to making or constructing it).

He drew critically on the work of Emmanuel Levinas in order to insist on the Other as one to whom an incalculable responsibility is owed, one who could never fully be 'captured' through social categories or designative names, one to whom a certain response is owed. This conception became the basis of his strenuous critique of apartheid in South Africa, his vigilant opposition to totalitarian regimes and forms of intellectual censorship, his theorisation of the nation-state beyond the hold of territoriality, his opposition to European racism, and his criticism of the discourse of 'terror' as it worked to increase governmental powers that undermine basic human rights. This political ethic can be seen at work in his defence of animal rights, in his opposition to the death penalty, and even in his queries about 'being' Jewish and what it means to offer hospitality to those of differing origins and language.

Derrida made clear in his short book on Walter Benjamin, The Force of Law (1994), that justice was a concept that was yet to come. This does not mean that we cannot expect instances of justice in this life, and it does not mean that justice will arrive for us only in another life. He was clear that there was no other life. It means only that, as an ideal, it is that towards which we strive, without end. Not to strive for justice because it cannot be fully realised would be as mistaken as believing that one has already arrived at justice and that the only task is to arm oneself adequately to fortify its regime. The first is a form of nihilism (which he opposed) and the second is dogmatism (which he opposed).

Derrida kept us alive to the practice of criticism, understanding that social and political transformation was an incessant project, one that could not be relinquished, one that was coextensive with the becoming of life and the encounter with the Other, one that required a reading of the rules by means of which a polity constitutes itself through exclusion or effacement. How is justice done? What justice do we owe others? And what does it mean to act in the name of justice? These were questions that had to be asked regardless of the consequences, and this meant that they were often questions asked when established authorities wished that they were not.

If his critics worried that, with Derrida, there are no foundations on which one could rely, they doubtless were mistaken. Derrida relies perhaps most assiduously on Socrates, on a mode of philosophical inquiry that took the question as the most honest and arduous form of thought. 'How do you finally respond to your life and to your name?' This question is posed by him to himself, and yet he is, in this interview, a 'tu' for himself, as if he were a proximate friend, but not quite a 'moi'. He has taken himself as the other, modelling a form of reflexivity, asking whether an account can be given of this life, and of this death. Is there justice to be done to a life? That he asks the question is exemplary, perhaps even foundational, since it keeps the final meaning of that life and that name open. It prescribes a ceaseless task of honouring what cannot be possessed through knowledge, what in a life exceeds our grasp.

Indeed, now that Derrida, the person, has died, his writing makes a demand on us. We must address him as he addressed himself, asking what it means to know and approach another, to apprehend a life and a death, to give an account of its meaning, to acknowledge its binding ties with others, and to do that justly. In this way, Derrida has always been offering us a way to interrogate the meaning of our lives, singly and plurally, returning to the question as the beginning of philosophy, but surely also, in his own way, and with several unpayable debts, beginning philosophy again and anew.

06.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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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10-09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제 기억에도 여러 애도 기사가 나돌았던 듯하네요. 읽는 거야 이 참에 읽어보죠. 지젝이 데리다에 관한 책을 쓴다는 소문이 있어서 저는 내년을 은근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내년 이맘때는 저도 빈손이 아니기를 바라구요...

이럴수록 2006-10-1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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