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TV에서도 며칠전부터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PD수첩에선가(*'뉴스 후'였다) 한 꼭지로 다루는 걸 보면서 자료화면에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소설가 김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마침 오마이뉴스에 인터뷰기사가 떴다(한겨레21의 관련기사는 http://www.hani.co.kr/section-021025000/2007/02/021025000200702020646009.html 참조). 일독해보는 김에 겸사겸사 옮겨놓는다. 편집자 주에서 언급되고 있는 책 <기자로 산다는 것>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듯하다.

오마이뉴스(07. 02. 07) 김훈 <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편집권, 우동-자장면 선택 문제 아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두 차례(1995~1997년, 2000~2002년)에 걸쳐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역임한 김훈을 지금까지도 '김국'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소설가이자 당대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김훈은 지금도 기자들에게 영원한 선배이자 편집국장일 따름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새 장편소설 집필에 몰두하느라 일산 작업장에 붙박여 두문불출하던 김훈이 홀연 <시사저널>사를 찾은 것은 지난 1월 25일. <시사저널> 기자들은 그 하루 전부터 회사의 일방적인 직장 폐쇄에 맞서 사옥 앞에 거리 편집국을 차리고 천막 농성을 벌이던 중이었다.

이날 종일 농성장에서 기자들과 함께했던 김훈은 다음날 저녁 다시 천막에 찾아와 <시사저널> 사태 이후 지켜왔던 침묵을 깨고 편집권 및 재벌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의미심장한 언설들을 남겼다. <시사저널> 사태를 취재 중이던 MBC < PD수첩 > 강지웅 PD가 묻고 김훈이 답한 이날의 인터뷰 전문을 게재한다. 이 인터뷰는 최근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들이 펴낸 책 <기자로 산다는 것>에도 실렸다.
 <편집자 주>

- <시사저널> 노조가 직장 폐쇄에 항의하는 천막 농성을 벌이는 중입니다. 오늘(25일) 천막 농성장을 찾으셨던데, 후배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오늘 <시사저널> 사태는 저 개인의 생애와 관련된 것입니다. 30년 전 내가 젊은 기자였던 시절에 우리나라 언론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권 시절이었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저도 그때 무너진 기자중 하나입니다. 오늘 이 사태에 대해 아무런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한 사람이죠. 그러나 30년 후에 내 후배들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30년의 세월을 무효화하는 것이고 인간의 진화와 발전을 부정하는 사태이기 때문에 나는 내 후배들이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끝없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 <시사저널> 노조가 지금 상당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젊은 기자 시절에 나와 내 선배들은 인간의 사회가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가치에 의해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언론 전체는 패배하고 좌절됐습니다. 그러나 30년 전에는 사실 덜 외로웠죠. 그때는 비록 우리가 패배했지만 억압적인 공포 정치에 대항하기 위한 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민주화가 되고 나니까 압박에 대항하는 연대의 대오가 많이 무너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더 외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의, 시민들의 올바른 양식과 생각이 더 강하게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대단히 희망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30년 전으로 퇴보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 '짝퉁' <시사저널>이 발행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은 결호가 생기게 해서는 안 되니까 그분들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결호를 내느냐 안 내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 발행되는 <시사저널>의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 하는 문제도 아니고, 기본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기본의 문제. 이것은 30년 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편집권의 문제이죠. 현재 경영진 쪽에서는 편집권을 자신의 인격권이나 재산권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중국집에 가서 우동을 먹느냐, 자장면을 먹느냐를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정도의 권리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편집권이란 것은 우동이냐 자장면이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격권이나 재산권이 아니라 언론이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작동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의무의 문제입니다. 곧 편집권은 권리라기보다는 의무로서의 권리로, 기본적으로 자유권에 속하는 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에 속하는 사항이지 개인의 인격이나 재산에 귀속하는 사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인식이 기본적으로 부족했고, 인식의 진화가 없었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개인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편집권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편집권이 기자에 속한 것이냐, 편집인에 속한 것이냐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논의의 수준 자체가 저급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논의할 게 아니라 그 작동 방향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문제 삼아야죠. 편집인에게는 편집권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 이것을 수호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회사 측은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 인격권이나 재산권처럼 오해한 데서 결국 이 모든 사태가 빚어진 것이죠. 30년 전의 착각이 아직까지도 작동되고 있다는 것은 참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 '짝퉁' <시사저널>을 보기는 하셨습니까?
"짝퉁이라기보다는 결호 방지용이라 해야겠죠."

- 서명숙 전 편집장이 쓴 글("김훈 선배의 눈물을 보았습니다")을 보니 '짝퉁' <시사저널>이 나온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는데.
"그런 적 없어요. 난 이미 오래 전에 눈물이 다 말라버려서 이제는 먼지밖에 안 나옵니다."(이때 배석한 문정우 전 편집장이 부연 설명했다. "'짝퉁'을 보고 그런 게 아니라 (서 전 편집장과 만나던) 그날, 후배들 얘기를 듣다 그러신 거예요. '후배들이 집에도 안 가고 회사에서 산다, 너무들 열심히 일한다' 이런 얘기를 들려드렸더니 '햐, 고놈들 참 예쁘다, 언제 가서 술이나 한 잔 사줘야겠다' 하시다가 '그런 애들이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떡하느냐'면서 울컥하셨던 거예요.")

- 만약 발행·편집인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졌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말없이 한동안 담배를 피우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결호 방어용을 냈을 겁니다. 결호는 일단 막아야 했을 테니까요(*김훈다운 멘트이다). 언론사 기자들이 실제로 파업해서 제작을 사실상 좌절시킨 것은 한국 언론사에서 이번이 처음일 것입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죠. 참 고통스러운 일이고, 말할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죠."

-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시절에도 재벌 관련 기사 때문에 경영진과 편집권을 둘러싼 갈등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며칠간 지방 출장을 간 사이에 경영진 지시로 재벌 관련 기사가 (편집 과정에서)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내가 상황을 몰랐죠. 출장에서 돌아와 상황을 파악한 뒤 곧바로 기사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고 인쇄했습니다. 그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민할 게 없었어요. 그것이 정당한 방향이었으니까요. 다만 그 뒤에 회사와 일이 좀 있었던 것은 사실이죠."

- 편집국장 재직시 사표를 몇 번 제출하셨다는데, 그 뒤 어떻게 되셨나요?
"편집권을 둘러싼 분란으로 사표를 낸 일은 있는데 회사가 사표를 수리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수리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아직 더 써먹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저 자를 쫓아냈다가는 더 큰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죠. 어쨌거나 그 뒤에도 나는 회사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 그때는 문제가 이렇게 사회적으로 돌출되지 않았지요.
"정당한 방향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 회사 경영자들이 일정하게 이해했기 때문이겠죠.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해요. 지금처럼 끝까지 용납하지 않았으면 결국 문제가 터졌겠지요."

- 편집국장으로 계실 때 삼성 기사와 관련해 미묘한 일들이 많았나요?
(배석했던 장영희 기자가 먼저 대답했다. "삼성은 늘, 기사를 쓰면 집요하게 태클을 걸어왔어요. 삼성의 힘이란 당시에나 지금이나 대단해서 편집장 흔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지요. 그런데도 우리의 선배들, 편집장이나 간부들은 늘 일선 기자를 지지해줬고, 경영진 또한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죠. 그런데 금창태 사장이 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그러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거죠.")

"삼성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죠. 일본 소니와 맞먹는 기업이잖아요. 우리 민족이 이만한 기업을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삼성은 정말 나라의 보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삼성이 그러한 거대한 힘을 가진 만큼 언론의 문제, 사회와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 인문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문적인 생각, 교양 있는 태도,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언론을 대하고 시민사회를 대하는 부분에서 삼성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서 위신과 품격과 교양을 갖춰야 된다고 난 생각해요.

이건 삼성을 위해서 하는 얘기예요. 우리를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고. 난 삼성 미워하지 않아요. 근데 내 후배들은 미워하는 것 같아(웃음). 삼성은 유능하고 소중한 기업이죠. 달러를 벌어오고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죠. 이런 훌륭한 기업이 어째서 사회적 관계나 언론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고 있는지…. 이러면 그 기업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기업이 되기 어렵잖아요. 이번 일이 삼성이 좀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현재 상황을 타개할 만한 나름의 해법이 있으신가요? 회사를 위하고 후배들을 위할 수 있는 어떤 길이.
"거야 있지요. 경영진이 스스로 거취를 정한다면 모든 문제가 봇물 터지듯 일시에 풀려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시사저널> 경영진이 우선 편집권에 대한 이해를 바꿔야 합니다. 이것을 바꿀 수 없다면 그분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될 뿐이에요. 사회적으로 경영자가 고립되면 결국 그 타격은 매체에 돌아가는 거 아니겠어요? 그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죠. <시사저널>이란 매체는 비록 약소하지만 굉장히 건강한 매체였어요. 작지만 나름대로 강력했다고. 이것의 숨통을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근본은 편집권에 관한 문제였으니까,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바뀌어야 된다고 봐요. 기자들도 유연하게 상황에 대응해야 할 테고요."

07. 02. 08.

P.S. 내친 김에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기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종석의 독후감을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론 시사저널을 몇 번 사보았고(김훈국장 시절) 한 친구 문제로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해본 적이 있다는 게 유일한 시사저널과의 유일한 인연이다. <기자로 산다는 것>에서 그 기자의 이름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일보(07. 02. 01) [고종석 칼럼] 기자로 산다는 것

지난해 6월 발행인의 독단적 기사 삭제에서 비롯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사태가 기자들의 무더기 징계와 노조의 파업, 회사측의 직장폐쇄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 잡지의 전현직 기자들이 자신들의 직업 정체성을 더듬어보는 책을 만들고 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표제로 다음주 출간될 이 책의 텍스트를 미리 들여다보노라니, 언론계 한 귀퉁이에 인연을 걸쳐놓은 자로서 알량한 책임감이 새삼 느껍다.



● 시사저널 사태로 느끼는 책임감
일간신문과 방송과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지배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인력이 넉넉지 않은 한 시사주간지가 시사저널만 한(곧이곧대로 말하자면 한 달 전까지의 시사저널만 한) '신뢰의 힘'을 키우자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문가 못지않은 안목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지 못할 때, 시사주간지는 주류 저널리즘의 '뒤늦은 요약'이 될 수밖에 없다. '뒤늦은 요약'이 되지 않으려면 시사주간지 기사는 주류 저널리즘이 다다르지 못한 심층성을 움켜쥐어야 하고, 기사의 심층성을 떠받치는 것은 기자의 전문성이다. 시사저널은 그간 적잖은 기자들의 전문성에 힘입어 심층기사의 전형을 도톰히 보여주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의 글 몇 개에는 초년기자가 세월과 나란히 전문기자로 자라나는 과정이 담겼다.

신뢰의 두번째 조건은 공정성이다. 기사의 공정성은 기자가 특정 정파로부터는 물론이고 자본이나 노동을 우람하게 대표하는 주류 사회세력들로부터, 더 나아가 사사로운 인연으로부터도 독립될 때만 확보된다. 그런 독립적 시각들이 획일적일 수는 없다. 그것들은 때로 맞버티기 십상이다. 그렇게 맞버티는 독립적 시각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권한이 편집권이다. 그러니 편집권은, 바람직하기론, 기자공동체 전체가 공유할 수밖에 없다.

시사저널은 그간 그런 독립적 시각의 견지와 그 시각들의 합리적 조율에 충실해 왔다. <기자로 산다는 것>에선 시사저널 기자들이 정파와 사회세력과 사적 인연으로부터 독립적이 되기 위해 쏟아온 노력의 자취가 엿보인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 않는 장영희 기자의 글에서도 이 점이 또렷하다. 그는 경제전문기자로서 자신이 문제삼아 왔던 것은 기업이 아니라 기업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삭제기사의 핵심이기도 했다.

시사주간지가 주류 언론과 경쟁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은 소위 '근성'에서 나올 것이다. 시사주간지의 장처(長處)라 할 탐사기사는 심층성만이 아니라 지속성으로도 뒷받침돼야 한다. 시사저널은 이 점에서도 나무랄 데 없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이나 군대 의문사 사건 그리고 최근의 제이유그룹 사기사건을 비롯해, 시사저널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0년도 훨씬 넘게 한 사안을 추적하며 이 문제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을 촉구해 왔다. 그리고 시사저널의 장기 탐사기사들은, 드물지 않게, 주류언론에서도 메아리를 얻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은 시사저널 기자들의 그 '근성'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 매체 신뢰는 기자에게서 나온다
<기자로 산다는 것>의 텍스트에는 드문드문 격정과 집단적 자기애가 배어있다. 격정과 자기애는 결코 저널리스트의 미덕이 아니지만, 시사저널 기자들로 하여금 이 힘겨운 싸움을 버텨내게 하는 미량원소일 것이다. 고제규 기자는 수습시절을 되돌아보며 선배 기자가 툭 내던진, '기자가 곧 매체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고 기자는 그 말을 '기자 개개인이 시사저널 안의 또 다른 매체'라는 뜻으로 해석하며, 기자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기사는 결코 쓰지 않는 '시사저널 문화'가 그 말에 담겨있다고 덧붙인다.

그것이 옳은 해석이겠으나 나는, 바깥사람으로서, 그 말을 '기자의 됨됨이와 태도가 매체의 성격을 규정한다'라는 뜻으로 평범하게 해석하고 싶다. 한 달째 나오고 있는 '대체 시사저널'은 내 식으로 이해한 '기자가 곧 매체다'라는 말의 엄중함을 새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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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2-08 09:52   좋아요 0 | URL
김훈아저씨의 대장근성은...^^ 전 카리스마 휘두르고 다니시는 분들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기자 조직의 자율성과 내적 위계가 '김국장'님과 전설적인 '선배' 사이에서 언뜻 언뜻 보이네요...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앞에서 막아주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좋긴하겠지요.그렇다고 막아주는 사람이 언제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만은 아닐테지만...

나비80 2007-02-08 10:14   좋아요 0 | URL
시사저널 쪽 사람들 기자 정신과 자존심으로 꼬장꼬장하신 분들 많던데...
사태가 조속하고 분명하게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로쟈 2007-02-08 16:21   좋아요 0 | URL
PD수첩의 보도로 사건이 공론화되었으므로(포털에도 크게 뜨고) '결말'도 곧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드팀전 2007-02-08 17:07   좋아요 0 | URL
금창태사장이 PD수첩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군요.손석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같이....
 

지난달인가 한국일보에서 새로 연재하는 '우리시대의 고전50' 관련기사와 목록을 옮겨온 일이 있다. 선택과 배제의 문제가 개입하긴 하지만 어떻든 이런 캠페인을 통해서라도 동시대의 삶과 인식의 지평을 밝혀주고 넓혀준 책들을 다시금 상기해보는 일은 뜻깊다고 생각한다. 내일자 신문에는 그 여섯번째 연재가 게재되는 듯한데, 도정일 교수의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민음사, 1994)을 다루고 있다. 모처럼 내가 완독한 책이기도 해서 거리낌 없이 스크랩해놓는다. 그게 벌써 12년도 더 전의 일이군.

기사에서 문학평론가로 호명되고 있지만, 이 책은 저자의 유일한 문학평론집이면서 유일한 단행본 (단독)저작이기도 하다. 기사의 말미에도 비치고 있지만 12년 전에도 저자는 원고 더미를 정리해서 당장이라도 서너 권 정도의 책은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월무상이다. 아직 한권도 안 나왔다. '책읽는 사회문화재단' 일에 너무 헌신하신 탓인 듯한데, 책읽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일급의 저자 한 사람이 책을 낼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 독자로서 안타깝다. 가령, '쓰잘 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같은 제목의 책이라면 서가에 꽂아둠 직하지 않은가? 그 안타까움을 나눠드리고 싶다.

한국일보(07. 02. 08) 풀밭에 앉아 詩를 쓰다 여우비에 젖는 꿈을 꾸다

"친구여, 닭을 잡아 먹지 마라 / 그 닭은 그대의 할머니일지도 모르므로.”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에서의 메타포는 미상불 기괴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더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시인의 말을 빌면 할머니를 소스에 찍어 먹는 형국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오늘날 그 같은 행위는 광범히 유포돼 천연덕스런 일상이 되고 말았다.

문학평론가 도정일(66)씨는 오비디우스의 시구를 끄집어 내고,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이 시인들로부터 아름다움에 대한 마지막 인내력마저 소진시켰음에 틀림없다고 단언한다. 그 같은 확신의 밑바닥에는 이런 명제 하나가 불길하게 흐물대고 있을 거라고 그는 예시한다. ‘자동 판매기가 / 고무 호스로, 밑을 대주는 종이컵들을 윤간하고 있다. / 창녀들은 포주의 뱃속에서 / 밥을 빌어 먹는다.’(최승호의 <무인칭 시대> 중)

운문의 형식을 빌어 그려진 저 지옥도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는 말한다. “1970년대 이후의 한국사는 과거 어느 시기 것과도 다른 욕망 생성의 사회적 환경, 정확히 말하면 ‘천민 자본주의’의 환경 속에서 씌어져 왔다. 21세기, 저 환경은 더욱 정교해져 ‘탐욕’이라는 형태의 지배적 욕망을 사회적으로 생산하고 있다”고.

책 이미지

그가 여기 저기 실린 평론들을 묶어 처음으로 낸 책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는 우리 시대의 시에서 읽어 낸 생명들의 표정이다. 시적 분석의 형태를 취하지만, 곳곳에서 문명 비평의 체취를 짙게 풍긴다. 전례를 찾기 힘든 글쓰기에, 사람들은 ‘경쾌한 듯 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서 배제당한 자연은 역으로 인간을 배제한다. 시인은 눈 내리는 숲으로 가지 못하고 아이들은, 비를 겁내고, 농사꾼은 땅을 믿지 못한다. 비슷한 이유로, 풀잎은 시인을 배제한다.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비 맞으면 안 돼”라는 어머니의 당부가 깊이 박혀 있다’ 또는 ‘농약 끈적한 풀밭에 앉아 풀잎의 숨소리를 들어야 하는 왜곡과 변태를, 그 비참함을, 그가 무슨 수로 견딜 수 있으랴. 비는 시인을 배제한다’는 진술을 보라.

푸른 강 대신에 그에게는 ‘똥물’이 있고, ‘똥통’이 된 지구가 있다. 시인들마냥, 그 역시 강으로부터 배제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과 함께 사는 듯이 생각하는 환각의 능력이 필요하고 감성 분열의, 평론가적 능력이 필요하다. 책의 말마 따나 산성 눈 내리는 지금, 이 세계의 어느 숲이 아름다울 것이며 누가 그 숲에 취해 발길을 멈추는가? 그 같은 현실 앞에 낭패감을 느끼고, 처리 곤란한 딸꾹질에 내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그는 고백한다. “마르쿠제가 강조했던 것처럼 자연이 노예화할 경우, 그 자연의 일부인 인간 자신도 노예화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죠. 자연에 발생한 재난은 곧바로 문학의 재난이며, 자연의 수난은 곧장 문학 자체의 수난이에요.”.

문명 비평 같기도 하고, 시민 운동을 위한 굳건한 지지대 같기도 하고, 개성 넘치는 사유에 빚지고 있는 수상록 같기도 한 이 책은 이 강퍅한 시대에 인문학은 어떻게 존재해야 할 지를 예시한다. 창작과비평 등 잡지ㆍ강연 등에 산발적으로 소개된 글들을 어느 눈밝은 편집자가 모아 두었다, <녹색평론>에 썼던 제목을 내세워 단행본으로 묶은 이 책은 1994년 1쇄를 찍은 이래 현재 10쇄까지 찍었다는 기록에 빛난다. 그 와중에 1만부 팔리고 절판된 기록도 갖고 있는, 별난 문학평론집이다. “게으른 나로서는 수정ㆍ보완까지 했죠. 10년이 지났는데도 갖고 와, 사인을 부탁하는 독자에, 저도 놀랄 정도예요.” 아예 재판을 내자는 제의도 심심찮게 듣고 있다.

책은 한국 사회가 아직 그 광풍을 체감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눈을 치켜 뜨고 있다. 그것은 인문학자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믿는다. “동유럽 붕괴, 마르크시즘 퇴조 등에 대한 대안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탈구조주의와 해체론 쪽으로 갔어요. 책 속에 일관된 반포스트모더니즘론은 한 시대에 대한 비판적 사유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의 결과였죠.”

비판의 칼날은 보건 사회ㆍ청결 사회에 대한 집착, 웰빙에 대한 광적 증후에 예리하게 번득인다. 원로 인문학자의 의무감이기도 했다. “삶의 부조리, 유한성 앞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곧 인문학이니까요. 행복 이데올로기에 미친 시대에 대한 반동일지도 모릅니다.”

책은 위기에 처한 우리 시대 인문학이 택할 수 있는 방편도 제시했다. 문학인들끼리 통하는 언어만이 아닌, 문학과 대중의 괴리를 좁히고 문학이 대중의 삶에 어떤 영향 미치는가에 대한 실험이라고 서문이 밝힌 대로다. “문학과 삶 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환기시키자는 나의 비평적 모토가 발현된 거죠. 대학에서의 난삽한 비평 논의는 대중에게는 부담스럽고 불필요하니까요.” 그는 한국 문학 평론이 그 부분에서 돌파구를 열지 않으면, 문학 평론이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고 힘 준다.

평론의 형식과 문체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에세이나 문학 저널리즘 같은 문체로, 대중의 삶에 접착된 형식말예요. 친근한 용어를 구사, 이론성ㆍ난삽성에 빠지지 않게 하는 인문학적 글쓰기.” 이런 종류의 평론은 처음 접했다며 일반인들은 반겼다. 대학 비평, 문학 이론 가르치며 한국 문학 현장 비평은 삼가왔던 그가 <문예중앙> 주간 정준수의 ‘꼬드김’에 몇 번 연재했던 계간평이 거둔 결과를 보면 자신도 좀 놀랍다. “이미 당시 문학 평론과 대중 간의 괴리는 심화돼 가고 있었죠. 지금은 서로 백리 밖이지만.”

이 반자연적 시대, 그의 책이 노둣돌 삼는 ‘숲’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생태 환경이에요. 좁게는 자연, 넓게는 자연과의 관계죠. 지금 한국은 볼거리 문화로 사람들을 마취시키려는 서커스 정책으로 통합돼 있잖아요?” 364쪽에 달하는 책은 눈ㆍ비 오면 오히려 두려워 하는 이 시대, 즉 자연이 망가진 때 문학이 당해야 하는 곤경을 증거한다. 삶의 모태인 자연을 착취ㆍ파괴하는 현상을 왜 추방해야 하는지, 문학은 철저히, 뼈저리게 느껴야 함이 동시대 우리 문인들의 육필로 증거돼 있다. 사회 혁명, 생산 양식, 소비 양식에 왜 일대 전환이 이뤄져야 하는지도. “생태란 게 어떻게 문학 속으로 용해될 수 있나를 보여주자는 거 였죠.”

그러나 어느 누가 냉장고를, 자동차를 포기할 것인가? “예술 작품이나 교육 같은 일상의 삶 속에서 풀어갈 수 있어야죠.” 그는 일상, 즉 현실에 아직도 문학이 할 일은 남아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대중 문화에 쫓겨, 문학 자체가 변두리에 내몰린 때예요. 문학과 예술이 인간의 삶에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인식부터 확산돼야 하는 시기죠.” 그는 이 책이 예술ㆍ문학의 사회적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기를, 나아가 평론가들이 문학과 소비자들 간의 연결 고리를 재정립해 주기를 소망한다.

책 속에 드러난 바, 그의 현실 인식 지형도를 고려한다면 상황은 화급하다 ‘지금의 문학은 오락의 한 형태다. 대중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오락물의 형태로 이동해 가고 있다. 문학과 오락의 화간(和姦) 시대다.’ 그는 “문학이 이제 아예 말초적ㆍ외피적ㆍ감각적 엔터테인먼트로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오랫동안 품어 온 문학의 속성 혹은 운명론이 있다. 문학이란 기본적으로 반(反)행복론이라는 것이다. “독자의 엔터테인먼트 수준을 높이게 하고, 다양하면서도 근원적인 딜레마 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옮기려 하죠. 삶이 말초적 오락의 수준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예술이 문학이니까요.”

생태 파괴와 간통한 온난화가 성큼성큼 한반도를 잡아 먹으려 오는 때, 그의 말은 이 책의 속편을 암시한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지만 그들은 하루하루 눈앞의 삶에 매여 있다. 그들에게는 개발 정책만큼 매력적인 것이란 없다. 한국에서, 환경청이란 영원히 찬밥 신세 아닌가?”

‘책 읽는 사회…’ 5년 활동, 농어촌 57개 도서관 재건

명함이 말하듯, 또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는 글보다 행동으로 더 이름 높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재 그의 명함이 알려주는 바, 그는 <책 읽는 사회 문화 재단>의 이사장이다. 시인이 숲으로 가지 못하는 시대, 그의 책은 숲속에 안주할 수 없었다. 그가 책의 숲에서 사람의 숲으로 온 것은 1999년 문화연대 출범에 맞춰 시민운동에 적극 관여하기 시작하면서다. 그는 뛰면서 생각하고 발로 썼다. 잡지사, 언론사, 대학 교수(작년 2월 퇴임) 등을 두루 거쳐 지금은 민간 사회 운동의 축이 된 그가 한갓지게 자연을 완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평론이라도 그가 쓴 글은 여느 책상물림의 글과 달랐다. 신문의 칼럼을 써도, 그의 논조는 ‘정치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죽통에 쉬파리 엉기듯 달려들어 세상의 소음을 늘리는 데 공헌하는 3류 학자’(<시인은…> 389쪽)의 글이 아니었다. YS 정권 때는 정부의 문화 정책 자문에, DJ 때는 대통령정책자문위원회에 적극 응했던 그의 관심은 현실 속의 문화 운동 또는 정책이었다.

지난해 2월 경희대 퇴임 직후, 지인들은 “책 없는 퇴임 없다”며 “책 내고 강연회도 갖자”고 성화였다. 그러나 팔 걷어 부치고 뛰어든 <책읽는…> 사업에 열중하느라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2002년 받은 암 수술은 그를 더욱 강하게 했다. “지난 5년 동안은 ‘책 읽는 사회…’ 사업에 송두리째 바쳤지만, 그 동안 잃어 버린 시간들을 앞으로 복구해 낼 것”이라 다짐한다. 대기업의 기부를 받아, 지난해 9월 이후 농어촌 낙도 지역의 도서관 57개를 도시 도서관 뺨치는 수준으로 리모델링한 ‘작은 도서관 사업’은 한국 땅에서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공공 지식’의 중요성을 새삼 알려낸 쾌거로 기억된다.

그의 컴퓨터에 간직돼 있는 20여권 분량의 원고는 더러 제목만으로도 족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쓰잘 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라니. 상생, 평화, 선린, 공존 등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체온에 대해 이야기해 줄 책이다. 이성복 시인의 어투를 흉내낸다면, 일에 밀려 하드 디스크에서 뒹구는 원고들은 언제 잠을 깰까?(장병욱 기자)

07.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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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2-07 23:38   좋아요 0 | URL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상생, 평화, 선린, 공존 등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체온에 대해 이야기해 줄 책이다. ' 이군요

 크리스티나 페리로시의 이 책이 생각났어요. 스페인좌파작가의 쓸모없(어 보이)는 노력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  좀 비슷한 색인가요? ^^


로쟈 2007-02-07 23:58   좋아요 0 | URL
거기에 '쓸모없는 독서의 노력'도 덧붙여야 되겠네요.^^

기인 2007-02-08 00:03   좋아요 0 | URL
아; 도정일 선생님의 유일한 단행본이라는 말씀은, 평론집으로서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유일하다니 놀랍네요. 퍼갑니다. 읽어봐야 겠네요. 한국일보 즐찾해야겠어요 ㅋ

로쟈 2007-02-08 00:15   좋아요 0 | URL
단독저작으론 제가 알기로 유일합니다...
 

어제 유고슬라비아 시인 바스코 포파의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문학동네, 2006)을 구입했는데, 정현종 시인의 '추천의 글'이 맨앞에 적혀 있었다. 시인이 경험도 나와 다르지 않아서 '작은 상자'란 시를 통해 바스코 포파를 처음 만난 인연을 고백하고 있었다. 한데, 다른 시들은 대략난감이었던 듯, 이렇게 적어놓았다.

이번에 번역되어 나오는 이 선집이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니 대체로 해독이 쉽지 않은데, 그 점은 영역자인 찰스 시믹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써, 그는 그 까닭을 포파의 시가 갖고 있는 세르비아적 전통 - 역사, 민속, 신화 등 - 이라는 배경과 시인의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에서 찾고 있다.

인용문에서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는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가 아닌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 게 어제의 일이다. 암튼 정현종 시인과 궁합이 더 잘 맞는 시인은 아무래도 스페인어권 시인들이고 그 중에서 파블로 네루다를 빼놓을 수 없겠다('정현종과 네루다'란 글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네루다의 시편들을 여럿 우리말로 옮긴 바 있는 시인이 이번에 더 보태서 두 권의 네루다 시집을 새로/다시 출간했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사실 청년 네루다의 대표작인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나대로 자세히 읽기를 시도해본 적도 있다(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CNO=0&PCID=492&CType=1&paperid=793966). 찾아보니 작년초의 일이다. 그때 참조했던 정현종 시인의 번역은 완역이 아니어서 다소 아쉬웠는데, 이번에 완역본 시집이 나왔다니 반갑다. 유고에서 아르헨티나로의 시적 여정을 이 겨울의 마지막 '여행'으로 삼아봐야겠다... 

경향신문(07. 02. 08) 정현종시인 네루다 첫시집 ‘스무 편의…’ 완역

시인 정현종씨(67·전 연세대 교수)가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정시인은 1989년 번역했던 네루다 시선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민음사)를 통해 네루다의 존재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그후 네루다는 노시인이 우체부에게 시를 가르치는 내용의 영화 ‘일 포스티노’ 등을 통해 더욱 유명해졌고, 그의 시선집도 94년 개정판이 나오는 등 스테디셀러가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종전의 시선집 번역을 가다듬어 ‘네루다 시선’(민음사)으로 제목을 바꾸고, 네루다의 첫 시집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21편을 모두 번역해 원래의 제목을 되돌려줬다. 국내에서 시선집 제목이었던 ‘스무 편의…’가 시집 제목으로 바뀐 것이다.

“개인적으로 네루다, 로르카(스페인), 릴케(독일)를 20세기의 위대한 시인으로 생각하며 그중 최고는 네루다라고 본다”는 정시인은 네루다 시집 ‘백 편의 사랑 소네트’(문학동네)를 이미 번역했으며 ‘충만한 힘’이란 만년의 시집도 새로 번역할 계획이다. 그는 네루다 탄생 100주년이던 2004년 칠레 정부가 전 세계의 문화인 100인에게 수여한 네루다메달을 받기도 했다.

“네루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시가 언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생동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그의 시를 통해 드러날 때 사물은 희희낙락하는 것 같고, 스스로의 풍부함에 놀라는 것 같아요.”



태국·중국·일본 등 극동 주재 영사를 지냈던 네루다는 광산 노동자들의 요구에 따라 상원의원에 출마, 정치를 시작했고 아옌데 민주정권을 지지했던 현실참여 시인이었다. 초기 낭만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시는 후기로 가면서 역사가 들어있는 혁명시로 바뀐다. 그래서 민중 시인 김남주씨는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됐을 때 네루다의 시를 틈틈이 번역해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88)라는 번역시집으로 내기도 했다.

그러나 서정 시인 정현종이 보는 네루다의 미덕은 남미의 풍성하고도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태어난 초현실주의적 상상력, 만물과 하나가 되는 힘이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책으로는 처음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된 시집 ‘스무 편의…’는 열아홉살의 시인이 지닌 잠재력을 보여주는 사랑시들로, 젊은날 사랑의 소용돌이를 열광적 호흡으로 노래한다.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와 같다./내 거칠고 농부 같은 몸은 너를 파 들어가고/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고,/밤은 그 강력한 침입으로 나를 엄습했다./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내 화살의 활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벼렸다.’(‘한 여자의 육체’ 일부)

정시인은 “‘터널처럼 외로웠다’는 말이 얼마나 신선하고도 놀라운 표현인가”라고 물으면서 “성욕의 충동에 따른 즐거움과 괴로움, 감정의 소용돌이가 시라는 형식을 통해 질서를 얻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또 “스무 편의 사랑시의 시로 끝났으면 밋밋하고 싱거웠을 텐데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덧붙인 게 묘미”라며 “사랑의 상실 없이, 사랑이 어떻게 열매를 맺겠는가”라고 말했다.(한윤정기자)

07.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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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세상을 떠난 오규원 시인의 장례식이 엊그제 강화도 정족산에서 있었다고 한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 것으로 추념을 대신한다.

중앙일보(07. 02. 06) 시인 오규원, 소나무 아래에 잠들다

소나무 가지가 흔들린다. 바람 한 줄기 불어온 모양이다. 시인 오규원이 갔다. 강화도 정족산 기슭의 소나무 아래에 묻혔다. 이름하여 수목장(樹木葬). 시인의 뼛가루는 송진이 되고 가지가 되었다가, 이윽고 솔방울로 매달릴 것이다.

5일 오후 2시쯤. 산비탈 소나무 숲에 고인의 옛 제자들이 두 손 모아쥐고 둘러섰다. 이창기.이경림.신경숙.황인숙.윤희상.장석남.박형준.양선희.최정례.이원.강영숙.천운영.윤성희.조용미 등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제자들이다. 선생으로부터 호된 꾸지람 들으며 시를 깨우친, 이제는 어엿한 시인과 소설가가 된 제자들이다. 선생의 말씀을 빌리자면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들'('프란츠 카프카' 부분)이다.

평생의 절반을 알고 지낸 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병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추모시를 읽었다.

'문득 돌아보니,/규원이, 자네가 없네./둘러보아 찾아도/규원이, 자네가 없네./…/규원이, 자네/이제 무엇이 되려는가./여기로부터 자리 옮겨/어디로 가려는가./…/나무 한 가지의 정령이 되어/영원의 하늘로 솟아 날아오르려는가/그것이 허망한가/그것이 슬픈가, 한스러운가.'

시인은 1991년부터 아팠다. 흔히 폐기종으로 알려진, 만성폐쇄성폐질환이란 희귀병을 앓았다. 허파가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기능을 잃어 인간이 누리는 산소의 20%만으로 살아야 하는 병이다. 하여 강원도 인제.무릉, 경기도 양평 등 공기 맑은 곳에서 귀한 숨 아껴가며 시 쓰고 살아왔다. 지난달 숨이 가빠왔다. 병원에 입원했고, 병문안 온 시인 이원의 손바닥에 선생은 손톱으로 시를 썼다.

'한적한 오후다/불타는 오후다/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1월 21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2월 2일, 시인은 66세의 일기를 마감했다. 병문안 왔던 이경림.최정례.양선희는 졸지에 선생의 임종마저 보게 됐다. 추모사에서 신경숙은 "그렇게 편찮으신 대로, 그렇게 늘 곁에 계실 거라고만 생각했다"고 겨우 말했다.



고인은 한글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한국 시사에서 오규원이란 이름은 자체로 하나의 계보였다. 수다한 제자 때문이 아니다. 그가 평생토록 쌓은 시업(詩業), '날이미지의 시론' 때문이다.

'주체중심, 인간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서 그 관념을 생산하는 수사법도 배제한, 그러한 상태의 살아 있는 이미지들을 시에 구현하는 것, 그것이 날[生]이미지 시이다.'('날이미지와 시'에서, 2005년)



인간의 관념이나 수사 따위로 오염되기 이전의,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그는 추구했다. 그래서 시창작실습 시간, 제자들이 밤새 쓴 습작원고에 시뻘건 줄 죽죽 그으며 "시가 되지 않는 것은 버려라" 호통쳤던 것이다.

그렇다고 늘 무섭게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수업 끝나고나면 선생은 막역한 친구가 됐다. 맞담배를 폈고, 후루룩 함께 라면을 들이마셨다. 87년 제자들이 길거리로 나가겠다고 결의했을 때, 선생은 "막는 것은 옳지 않겠지, 다치지만 말아라…"고 말했다.

강화도 시인 함민복은 꾹꾹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집안이 어려워 공장에서 학비를 번 뒤 늦깎이로 선생의 제자가 된 시인이다. 굳이 서울예대를 선택한 까닭을 그는 "오규원 선생이 계시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오규원 선생이 하필이면 떠돌이 시인이 정착한 바로 그 섬에 묻히고 있었다. 선생의 제자 문인들은 그래서, 농반진반으로 그를 능참봉으로 명했다. "선생을 평생 곁에서 모시게 됐다" 했더니 "이제부터는 바람소리 하나도 예사롭지 않겠지요"라고 답한다.

소나무 가지, 또 흔들린다. 문득 바람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손민호 기자)

07.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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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0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오규원 선생님 돌아가신 소식도 모르고 있었네요...

로쟈 2007-02-07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계 소식도 바로 올렸었는데...
 

오전부터 프레드릭 제임슨과 씨름하려니까 지겨기도 한데, 잠시 짬을 내 '러시아 이야기' 하나를 올려놓는다. 러시아 관련 뉴스라야 '테러 아니면 에너지'가 주종이었고, 최근에는 단연 에너지 관련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한 행보에 대해서 '에너지 파시즘'으로 경계하는 한 칼럼이며 프레시안에 번역 전재된 걸 스크랩해놓는다. 내용 자체는 새로운 게 없지만(푸틴의 박사학위논문 제목은 처음 알게 됐다), '에너지 파시즘'이란 선정적인 용어가 일단 눈길을 끌고 관련정보들을 정리해놓은 의의가 있다. 아래 편집자의 말에 이어지는 것이 그 칼럼이다.  

다음은 미 뉴햄프셔대 마이클 클레어 교수의 '석유 패권과 핵 르네상스기': 에너지 파시즘의 두 얼굴(Petro-Power and the Nuclear Renaissance: Two Faces of an Emerging Energo-facism)'을 완역한 것이다. 에너지정치학의 국제적 권위자인 클레어 교수는 석유 확보를 둘러싼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석유 확보를 명분으로 한 파시즘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한 앞의 글('우리의 미래는 에너지 파시즘인가?')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에너지 초강대국으로 급부상 중인 러시아를 모델로 에너지 파시즘의 단면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의 소유하고 있는 에너지 재산을 비합법적 방법으로 국유화 한다든지, 에너지를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도구로 활용한다든지 하는 등 러시아가 에너지 패권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몇 가지 모습들이 에너지 파시즘의 어두운 얼굴이라는 것이다. 
  
석유나 천연가스가 고갈된 자리를 원자력이 메우게 되면서 그 시설을 방어하고 그 부산물의 유출을 감시하기 위한 정부 통제권이 강화되라라는 전망 역시 파시즘의 도래를 우려케 한다. 이에 클레어 교수는 "대다수의 정부 지도자들은 이 문제들의 초점을 정부 통제력을 증가시키거나 군사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데 두려 한다"며 '지각 있는 시민'이 이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당부한다. 원문은 미국 진보성향 인터넷 매체인 <톰디스패치닷컴>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프레시안(07. 02. 07) 러시아, '에너지 파시즘'의 정점에 서다

전편에서 말한 것처럼 앞으로 수십년간 세상사를 지배하고 일반 사람들의 삶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이슬람 파시즘'이 아니라 '에너지 파시즘'이다. 즉 갈수록 줄어드는 에너지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지구적 군사투쟁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는 전 세계의 정부 관료들이 국가 에너지 수요를 시장의 힘에 맡겨두기보다는 에너지의 확보, 수송, 할당 등을 정부가 직접 책임지고자 하기 때문이다. 강대국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에너지 확보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무력 사용도 마다하지 않을 준비가 돼 있다.
  
이러한 에너지자원 확보의 절박성은 미국의 경우, 미군의 업무를 '세계 석유 보호기관'으로 전환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밖에 에너지 파시즘의 도래를 알리는 또 다른 징후로는 러시아의 '에너지 초강대국'으로의 급부상,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안전 등을 이유로 한 국가권력의 감시 및 통제가 강화될 것이란 점을 들 수 있겠다.

에너지 부국이 곧 강대국이 되는 시대
  
에너지 수요는 증가하는 데 반해 공급은 줄어드는 상황에서(최소한 공급 증가가 수요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 세계는 크게 에너지 부국과 에너지 빈국으로 나뉘게 됐다.
에너지 부국들은 에너지(석유, 가스, 석탄, 수소에너지, 우라늄, 대체에너 자원 등) 자체 보유량이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고도 남아 다른 나라에 수출까지 한다. 반면, 에너지 빈국들은 부족한 에너지자원을 수입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쓰거나 아니면 에너지 부족의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지난 50년간(1950~2000년)은 에너지가 풍부하고 값이 쌌기 때문에 에너지 부국과 빈국 간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일본처럼 어마어마한 부자거나 영국, 프랑스처럼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하다못해 나토 동맹국이나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맹국들처럼 '힘센 우방국'이 있다면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었다. 물론 당시에도 이도저도 없는 국가들은 고생을 해야 했다. 아직도 이들 국가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는 외채위기는 사실 에너지부족에 기인한 바 크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돈이 많다거나 핵무기가 있다든가, 또는 강력한 우방국을 갖고 있다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에너지 부국이냐, 빈국이냐의 차이가 더 중요해졌다. 돈 많고 힘 있는 미국과 일본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에너지 부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는 의외로 적다. 호주, 캐나다, 카자흐스탄, 쿠웨이트, 나이지리아, 카타르,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이란, 이라크(현재의 혼란이 극복된다면) 정도다. 그 외에 몇 나라 더 있을까. 이들 나라는 선망의 대상이다. 일단 엄청난 가격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지 않아도 되고, 이들 나라의 지도층들은 충분한 에너지 확보를 원하는 다른 나라 지도층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혜택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에너지 소비국들을 싸움 붙여 이득을 챙길 수도 있다. 워싱턴과 베이징으로부터 경쟁적으로 초대받고 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이런 게임에 아주 능숙한 지도자다.
  
심지어 단순한 경제적 혜택을 보장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에너지 소비국에 대해 정치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에너지 소비국은 국가운영에 필수적인 석유와 천연가스의 안정적인 판매를 보장받기 위해 에너지 공급국의 정치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나라는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다.

러시아의 가스는 '패권의 방향'으로 흐른다 
  
냉전이 끝난 후 러시아는 희망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초강대국'은 이미 과거의 얘기였고 정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그리고 영향력 면에서도 한물 간 것처럼 보였다.
수 년 간 미국 관리들로부터 모욕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다. 미국이 이끄는 나토가 동유럽의 러시아 위성국가에까지 확장됐고, 요격미사일금지협정(ABM)은 일방적으로 폐기됐다. 미국 정부의 수많은 관료들이 러시아를 역사적 유물 이상으로 여기지 않으며 세계사에서 러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면 '최후의 미소를 짓는 자'는 워싱턴이 아니라 모스크바인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양의 석유와 우라늄은 물론 유라시아 최대의 천연가스와 석탄 보유량을 자랑하는 러시아는 이제 새로운 '승자'가 됐다.
군사 초강대국이 아닌 에너지 초강대국이 된 것이다. 어찌됐건 초강대국은 초강대국인 셈이다.
  
먼저 큰 그림을 보자. 러시아는 천연가스 생산에 있어 '절대강자'다. 영국의 BP 석유그룹에 따르면 러시아의 천연가스 보유량은 측정된 것만 1700조 입방피트에 이른다고 한다. 전 세계 천연가스 공급량의 27%를 차지하는 양이다. 이 사실은 보기보다 갖고 있는 의미가 더 크다. (러시아 에너지 자원의 주요 고객인) 유럽과 옛 소련국가들의 천연가스 의존 비율이 34%로 전 세계 어느 지역보다 높기 때문이다. (석유를 주 연료로 하는 미국의 경우 천연가스 의존도는 25% 정도다.) 유라시아 가스 공급원을 주도한 덕에 러시아는 다른 에너지 공급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배적 공급자의 위치를 누리고 있다.

물론 석유 공급에서도 러시아는 강력한 우위를 갖고 있다. 세계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하루 1100만 배럴을 생산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고작 140만 배럴 뒤져 있을 뿐이다(2006년 초 기준) . 게다가 러시아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석탄이 매장돼 있는 나라이자 현재 31개의 원자로가 가동 중인 주요 원자력 소비국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999년, 집권 직후부터 이 넘쳐나는 에너지를 러시아 패권 부활을 도모할 만한 정치적 무기로 바꾸는 계획을 추진했다. 러시아는 러시아에서 수출되는 에너지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서 러시아 송유관을 통해 유럽에 공급되는 에너지까지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에 푸틴 대통령은 냉전 시대에 누렸던 소련의 정치적 영향력의 일부나마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민영화됐던 가스 산업을 다시 국유화하고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다른 에너지 산업도 모두 국가의 지배 아래 둬야만 했다. 공산주의 법체계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이 같은 국유화를 합법화할 길이 없었기에 푸틴은 불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 이 귀중한 자산들을 모두 국유화했다. 여기서도 우리는 에너지파시즘의 도래를 관찰할 수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을 국가가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푸틴의 오랜 지론이었다. 푸틴은 1999년 '러시아 경제 발전을 위한 전략상의 광물자원'이란 제목의 박사학위논문 요약본에서 러시아 정부는 국가의 광물자원 활용을 감독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국민들의 이익의 위해서라면 이미 개인사업자 손에 들어간 석유 부분도 예외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천연자원, 특히 광물자원에 대한 획득과 사용 과정을 제어할 권리가 있다. 그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 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에너지파시즘에 대해 이보다 더 나은 정의를 상상하기는 힘들 것 같다.

석유 재벌 체포하고 석유 기업은 정부 품에
  
이 같은 푸틴의 속셈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건은 이른바 '호도르코프스키 사건'이다. 지난 2003년 러시아 최대 석유재벌이던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이 사기 및 세금포탈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미국) 엑손모빌과의 합작회사 설립 등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난 온갖 에너지 판매를 추진해고, 러시아 내 반(反)푸틴 정치세력을 지원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으로도 크렘린의 격노를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푸틴이 이 사건을 기획한 최종 목표는 유코스의 주요 자산인 유간스크네프트가스를 빼앗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유간스크네프트가스는 러시아 석유 생산의 11% 가량을 담당하고 있었다. 호도르코프스키와 그의 측근들이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정부는 유간스크네프트가스를 경매에 부쳐 명의뿐인 유령회사에 넘긴 다음 곧 국영기업인 로스네프트에 시장가 이하의 가격으로 되팔았다. 푸틴은 순식간에 민간기업인 유코스를 분할해 러시아 최대의 국영석유생산업체 로스네프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푸틴은 석유 및 가스의 수출, 공급도 국가가 장악하려 했다. 민간 기업의 송유관 건설을 원천봉쇄해 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국영기업 가스프롬의 천연가스 독점과 역시 국영기업인 트랜스네프트의 송유관 독점은 확고해졌다. 미국과 다른 에너지 소비국들은 민간 기업의 송유관 건설을 오랜 기간 압박해 왔다. 유럽과 다른 해외 시장에 공급되는 에너지의 양을 늘리는 동시에 가스프롬과 트랜스네프트의 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렘린은 제도적으로 이 같은 노력을 배제시켜버렸다.
  
에너지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합법성 여부가 의심되는 방법으로 정부가 장악해버린 것이 러시아가 보여준 에너지파시즘의 한 단면이라면, 러시아가 자원을 이용해 자원 빈국들을 러시아 주변에 묶어두는 데에서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악명 높은 사례로는 2006년 1월 1일 우크라이나로 공급되던 천연가스를 끊어버렸던 것을 들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가스 가격을 두고 분쟁을 벌이던 가스프롬이 가스 공급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태를 지켜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유센코 대통령의 친서방 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경고로 믿고 있다.

이 사건이 한 겨울에 일어났음을 유념하라. 구소련 국가들과 동유럽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천연가스는 우크라이나의 주 난방 연료였다. 결국 가스프롬은 막판까지 가격 협상을 하다가 서유럽의 요란한 불만에 못 이겨 가스 공급을 재개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공급하던 가스를 내수로 돌려버리자 공급받던 가스에 결손이 생긴 서유럽이 큰 소리를 낸 것이다. 이제껏 러시아 정부가 해 온 모든 일이 결국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도꼭지'를 외교 정책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준비였음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러시아 정부는 '근린국가(Near Abroad)'라고 부르는 이웃 국가들을 협박하기 위해 종종 이 전술을 사용해 왔다. 2006년 7월 29일에는 트랜스네프트가 누출 위험을 이유로 리투아니아 최대 정유소인 마제이큐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했다. 마제이큐의 회장이 이 정유소를 러시아가 아닌 폴란드에 매각키로 했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였다. 이 같은 움직임을 지켜본 사람들은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 회사가 정유회사를 인수하는 데까지 힘을 쓰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11월에는 가스프롬이 그루지야에 공급하던 천연가스 가격을 1000입방미터 당 110달러에서 230달러로 두 배 이상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가격을 올릴 수 없다면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이 역시 그루지야의 친서방 정부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러시아 정부에 반항해 왔던 점이 일정 부분 감안된 정치적 압력으로 여겨졌다. 가스프롬은 12월 벨로루시에도 같은 장난을 쳤다. 주변의 헐벗은 국가들이 조금이라도 독립의사를 보이면 여지없이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러시아가 보여준 에너지파시즘의 다른 얼굴이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자원 빈국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유라시아 그룹의 자문역인 클리프 쿱샨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에너지가 새로운 종류의 핵무기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러시아는 석유권력을 공격적이고 영리하게 사용해 자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과 함께 르네상스를 맞을 '빅 브라더'
  
에너지파시즘의 마지막 얼굴은 원자력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국가 차원의 억압과 감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가스와 석유 매장량이 줄어들수록 정부와 산업계 지도자들은 원자력 의존도를 높여 추가 에너지를 공급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높은 우려도 이 계획을 부추길 것 같다.
  
석유, 가스, 석탄 등을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원자력 의존도를 높여가겠다는 계획을 거듭 말해 왔고 2005년 정부가 마련한 '2005 에너지 정책법'에도 미국에서 새로이 원전을 짓는 전기 사업들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도 원자력 의존도를 높여 가려는 계획을 갖고 있고, 이는 원전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소위 '원자력의 르네상스기'라고 말하는 길에는 몇 가지 문제가 버티고 있다. 엄청난 부대비용이나 핵 쓰레기를 장기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이 상당부분 개선됐음에도 1979년 '쓰리 마일 아일랜드' 사건이나 1986년 체르노빌 사건 같은 핵사고 위험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원자력 산업이 성장할 미래에 대해 우려되는 점 두 가지만 들어보겠다. 원전 부지의 결정권이 연방정부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과 테러리스트, 범죄자, '불량 국가' 등에 대한 핵무기 이전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개인에 대한 국가권력의 억압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원자력 시설을 세우려면 (연방정부가 아닌) 시, 카운티, 주 정부 등 지방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각 지역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뒷마당에 원전이 설치되는 것을 반대할 권한을 갖는 것이다. 이는 지난 수 십 년간 미국 내 새 원자력 시설을 건설하는 데 주요한 장애물이 됐다. 법이 정한 대로 주 의회와 카운티 의회, 그리고 환경단체들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규칙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진정한 '원자력 르네상스기'를 절대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시민들의 저항이 거의 없는 가난한 촌 동네에 원자로 몇 개가 세워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허가권을 연방정부가 장악해서 지역단체를 따돌리고 연방정부 관료들에게 새 원자로를 건설할 수 있는 허가서를 발부할 수 있는 무한한 권한을 허락하는 것이다.
  
불가능할 것 같다고? 다음 정황들을 잘 살펴보라. '2005 에너지 정책법'은 지역 관료들로부터 '천연가스 재기화(再氣化) 플랜트' 설치를 허가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아 연방정부의 권한으로 만드는 의미심장한 전례를 만들어 놓았다. 이 거대한 시설은 해외 공급자로부터 배로 수송된 액화천연가스를 미국 전역의 파이프를 통해 배달할 수 있도록 다시 가스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몇몇의 동서부 해안 지역에서는 해당 지역 항구에 이 플랜트가 세워지는 것에 반대해 왔다. 폭발할 위험이 있고(완전 억지 주장은 아니다)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저항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잃었다. 아, 지방자치여 안녕.
  
내 걱정은 여기서 출발한다. 미래의 정부는 '천연가스 재기화 플랜트'의 전례를 따라 원자로 설치에 관한 권한도 연방정부에 넘기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법' 수정을 추진할 것이다. 그리고선 보스턴,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덴버 등 대도시 인근에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의 원자로 신설 계획을 발표할 것이다. 추가 에너지 필요량의 긴급성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시민들은 궐기할 것이고 이들의 저항에 공감하는 지방정부는 시위대에 대한 집단 연행을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명령에 대한 반발과는 경우가 다르다. 엄연한 연방정부에 대한 반발인 것이다. 고로 시위대를 제압하고 원자로 주변을 방어하기 위해 주 방위군이나 정규군이 소집될 수 있다. 에너지파시즘의 발동이다.
  
마지막으로 원자력 확산이 낳을 또 다른 위험은 원자력과 연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먼 관계더라도 정부의 조직적 감시 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라늄 농축시설, 원자로, 핵 폐기장 등 모든 핵 관련 시설과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테러리스트나 암시장 불법거래상인, 그리고 이란과 북한 같은 '불량국가'의 손에서는 핵 무기화 될 수 있는 소재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물론 이 같은 시설에 종사하고 있는 개인과 하청업자, 그리고 재하청업자와 그들의 가족들까지 항시적으로 불법 가능성을 조사받을 수 있으며 24시간 엄격한 감시 하에 처하게 된다는 얘기다. 더 많은 원자로와 더 많은 핵 시설이 생길수록 일종의 감시 대상이 될 관여자들의 수도 늘어나고, 이들을 감시하는 보안 관계자들 역시 정부 정보국 차원의 더 높은 단계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매우 광범위한 '빅 브라더' 공식이다.
  
그런가 하면 '증식형 원자로'에 대한 문제도 있다. 증식형 원자로는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핵분물질들을 만들어 낸다. 플루토늄의 형태로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플루토늄은 원자로에서 태우면 전기를 생산해 내기도 하지만 핵무기원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비록 미국에서는 증식형 원자로의 건설이 금지돼 있지만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화석 연료와 그 역시 한정 자원인 천연 우라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건설 중에 있다. 원자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나라들이 증식형 원자로를 짓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여기엔 미국도 포함될 수 있다. 이는 폭탄에 가까운 플루토늄의 세계적 공급을 광범위하게 증가시킬 것이고 모든 면에서 원자력 산업에 대한 정부의 더 강한 감시를 요구할 것이다.
  
지각있는 시민의 힘으로 에너지 파시즘의 도래 막아야
  
2회에 걸쳐 논의된 모든 현상- 석유보호 서비스로 미군의 주요 업무 전환, 군비 경쟁에 비견할 만한 강대국간 에너지 확보 경쟁의 격화, 러시아의 에너지 초강대국 부상, 원자력 산업에 관한 감시감독 필요성의 증가-은 모두 에너지의 생산, 획득, 이전, 분배 등에 관한 통제력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경향성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이는 전 세계적 자원 고갈의 대가인 동시에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에너지 생산의 거점이 이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 같은 흐름은 얼마 전부터 진행돼 온 것이긴 하지만 앞으로 몇 년간 더 큰 모멘텀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아폴로 얼라이언스, 로키 마운틴 인스티튜트, 월드워치 인스티튜트 등 많은 지각있는 시민들과 단체들이 에너지 고갈과 에너지 생산지의 불안정성, 그리고 지구온난화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해법을 개발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정부 지도자들은 이 문제들의 초점을 정부 통제력을 증가시키거나 군사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데 두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만약 이러한 경향을 막지 못한다면 에너지 파시즘은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번역 이지윤 기자)

02.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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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2-07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또 엉뚱한 생각이 드네요.그래서 석유재벌이 첼시구단을 인수해서 축구선수들을 사모으는건가?? ^^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원자력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무결점사고방식' 위에 구축되었다는 것이라더군요...

로쟈 2007-02-0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이 좀 남아도니까요.^^ '에너지 파시즘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석유시대의 종언 같은 게 얘기되고 있으니까 뾰족한 수를 찾긴 찾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