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 주말마다 연재되는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의 이번주 꼭지가 '문학위기론과 한국소설'을 다루고 있다. 가라타니의 종언론 이후에 그에 대한 수긍과 비판이 일종의 유행담론처럼 돼 버렸는데, 기사는 문학평론가 신수정씨의 적극적인 문학옹호론으로 읽힌다. 

경향신문(07. 04. 28) 문학위기론과 한국소설

얼마 전에 9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의 하나로 우리 문학을 풍요롭게 했던 소설가 고 김소진을 추모하는 단행본 ‘소진의 기억’이 발간되었다(*지난주에 페이퍼에서 다룬 바 있다). 1991년 등단 이후 1997년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주로 서울 길음동 산동네 판자촌의 기억을 자신의 소설적 소재로 삼아왔던 이 작가는 80년대 노동소설의 관념주의와 구별되는 그 특유의 따뜻한 민중적 공감을 소설 속에 자주 표출해왔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동료들과 후배들이 시와 소설을 싣고 작가와의 추억을 회고하는 장을 마련한 이 추모집은 한 시대의 종말과 그를 애도하는 감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보다도 김소진이 죽은 해인 1997년을 역설적인 의미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시간으로 규정하는 후배 작가 김연수의 글이 특히 그러했다. 1993년 이십대의 나이로 등단한 뒤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던 김연수는 1997년 5월 생애 처음으로 넥타이를 매고 직장에 출근하는 삶을 살게 된다. 곧이어 일산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오랫동안 사귀어온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다. 1997년 이전이라면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IMF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으로 마감되는 1997년은 그에게 오랜 예술가-낭인 생활을 접고 생활인이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 구속되는 결절점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1997년을 우리 문학사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는 없을까. 1997년, 1963년생 소설가 하나는 조용히 한 생을 접었고, 1970년생 소설가 하나는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을까봐 불안감에 시달리며 어쩔 수 없이 직업의 세계 속으로 투항해 갔다. 어쨌든 그 이후의 한국문학이 그 이전의 그것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달라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몇몇 스타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초판 3000부를 소화하기도 버거운 우리 출판시장의 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나 텔레비전과 같은 영상매체 및 컴퓨터 사이버 매체의 약진에 힘입어 점차 소멸해가는 장르의 하나로 스스로를 규정할 수밖에 없게 된 저간의 사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1997년 이후 한국문학은 이제까지 문학이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가정되고 또 당연히 그러리라 요구되어 왔던 모든 전제들이 무시되거나 폄하되는 새로운 문학 환경 속으로 뛰어들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 사태를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말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소설로 대표되는 근대문학은 공감의 공동체, 즉 네이션의 기반이다. 소설이 단순한 읽을거리들과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소설은 그 스스로 철학이나 종교보다 더 심원한 인식론적·도덕적 기능을 떠맡음으로써 근대적 국민국가를 상상하는 주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소설을 근대의 역동적 힘이 살아 움직이는 가장 현실적이고 진실한 허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 특유의 능력은 오늘의 문학적 현실 속에서는 더 이상 발휘되기 어렵다. 1950년대 미국소설에서 시작해 1990년대 일본소설, 그리고 1990년대 말의 한국소설들에 이르는 과정은 이 사실을 말의 의미 그대로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일본소설이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이 이즈음 일본문학계의 현실이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근대소설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가라타니가 보기에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다만 협소한 형식 속에 안주한 오락물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소설에 대한 이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진단에 우리마저 쉽게 주눅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한국소설 역시 일본의 전철을 많은 부분 그대로 밟고 있는 듯 보인다. 현재 소설 시장의 대부분은 일본번역소설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장르소설에서부터 다양한 형식의 본격문학에 이르기까지 일본소설이 한국 독자들의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사태가 이런 식으로 계속 흘러간다면 우리 소설 시장 역시 더 이상 일본식 소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소설 시장 역시 이미 일본풍 소설에 의해 잠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시장과 독자를 상대로 근대소설의 이상만을 강조할 수 없을 것이다. 가라타니가 이야기한 대로 소설은 이제 그 이전의 자신의 규준 대신 새로운 시대적 이상을 표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시내 대형 서점에 달려가면 이 모든 사태를 그대로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소설이 지금 당장 그간의 전통과 결별하고 오로지 가벼운 상업주의와 내통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문학의 위기, 근대문학의 종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야기들은 때로 우리 소설이 진흙 속에서 펼치고 있는 이 움직임에 다소 인색한 경향이 있다. IMF의 경제적 여파보다 그로 인해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는 어떤 사태에 휘말려 버린 자신들의 정신적 공황 상태를 더 불안해하던 김연수 또래의 작가들은 선배들의 소설이 끝나는 곳에서 자신들의 소설을 다시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우리 소설이 이룬 성과들은 이들 세대의 불안감을 기반으로 꽃피워진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들은 선배들의 고답적 문학 형식을 거부하는 한편, 그들의 문학정신은 그대로 이어받고자 했다. 김연수를 비롯하여 김영하, 김경욱, 천운영, 윤성희, 강영숙, 조경란, 김중혁, 박민규, 천명관, 편혜영, 이기호 등의 소설적 성취가 말해주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의 소설을 근대소설의 외양과 다르다고 해서 쉽게 배척하는 것은 근거 없는 문학위기론으로 문학을 대체하는 게으름과 무지의 소산이기 쉽다. 가라타니의 말처럼 소설이 더 이상의 비판적 정치 기능을 상실했다면 문학이 아니어도 그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것이다(*가라타니 자신의 말이기도 하다). 이라크 반전운동을 펼치고 있는 오수연이나 생태 환경운동에 헌신하는 최성각, 베트남이나 몽골 작가들과의 연대를 기획하는 방현석과 전성태 등은 한국소설에 불어닥친 이 딜레마를 구체적인 사회운동과의 접맥을 통해 해결해나가려는 움직임을 대표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소설계엔 황석영과 같은 근대소설의 적자가 현재까지도 여전히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오랜 영어생활에서 해방되자마자 그간의 침묵을 보상하려는 듯 ‘오래된 정원’에서부터 ‘손님’을 거쳐 ‘심청’에 이르는 해원의 길을 모색해나가고 있는 그의 움직임은 한국소설의 현재를 웅변한다.

우리는 아직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일된 국민국가를 이룩하지 못했다. 한국소설은 아직 한 번도 이 정황을 잊어본 적이 없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이 조건은 우리 소설을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적 현실로부터 결코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근대문학의 종언론이 때로 배부르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식 속물주의가 멀리 수평선 저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시장의 이름으로 우리 소설의 형질 변경을 요구하고 나선다. 지금 우리 소설에 불어 닥친 대중문화담론들은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문학은 이 경계에 있다. 한편에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모순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속물적 소비주의가 있다. 우리 소설이 이 가운데 어느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삼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한국소설의 미래가 동아시아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소설은 여전히 근대문학의 정언명령에 충실한 것 아닐까. 한국소설은 아직 근대적 기획의 열정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상태이다.(신수정|문학평론가)

경향신문(07. 04. 28) 근대소설 희망을 본다

황석영의 ‘심청’은 심청전의 구조를 빌려 온몸으로 동아시아 근대를 살아내야 했던 한 여자의 운명을 재현하고 있는 소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은 전근대적 효(孝)이데올로기의 화신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희생함으로써 봉건사회의 균열을 방지하고 지배질서의 우위를 확인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황석영은 이 심청의 이야기를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황석영의 심청은 단순한 희생물이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형식을 선보이는 근대의 전복적인 힘에 스스로를 내던진다. 단지 자신의 몸 하나를 자본으로 중국 남경, 일본 등 19세기 말 동아시아 일대를 주유하는 심청의 여정은 근대적 풍랑에 내던져진 한반도의 운명에 대한 하나의 은유에 가깝다.

이에 비할 만한 젊은 작가의 소설로 김영하의 ‘검은꽃’을 들 수 있다. 19세기 말 봉건조선으로부터 멕시코로 이어지는 이산의 여정은 이 소설에서도 중요한 소설적 구조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신세대의 대표주자로 이야기되는 김영하의 소설적 관심사가 그의 선배라고 할 황석영의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을 가지게 된다. 봉건조선으로부터 근대로 내던져진 19세기 다양한 계급군상들의 근대에 대한 반응양상을 재현하는 작가의 시선은 한국소설의 미래와 관련, 지금 우리 소설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황석영과 김영하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한국소설의 자장이 근대소설의 영역을 확장하고 변형시키는 장관을 기대해 볼 일이다.(신수정/문학평론가)

07. 04. 28-29.

P.S. 평론가의 논점을 간추리면: (1)1997년은 우리 문학사의 터닝 포인트일 수 있다. 이후의 한국문학이 그 이전의 그것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달라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2)가라타니 고진은 이 사태를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말로 규정한다. 근대문학(소설)은 공감의 공동체로서의 네이션(국민국가)를 떠받치는 기반이었지만 오늘날의 문학은 더이상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 않다. (3)1950년대 미국소설에서 시작해 1990년대 일본소설, 그리고 1990년대 말의 한국소설들에 이르는 과정은 이 사실을 말의 의미 그대로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4)하지만 이러한 비관적 전망에 쉽게 주눅들 필요는 없다. 근대소설의 외양과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의 한국 작가들은 선배들의 문학정신(근대문학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근거 없는 문학위기론으로 문학을 대체하는 것이다. (5)더구나 우리는 아직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일된 국민국가를 이룩하지 못했다. 한국소설은 아직 한 번도 이 정황을 잊어본 적이 없다. 한국소설은 아직 근대적 기획의 열정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상태이다.

이에 대한 의문은 이런 것이다: (1)1997년이 우리문학사의 터닝포인트이며 1990년대 말의 한국소설들은 '근대문학의 종언'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주장과 '근거 없는 문학위기론/문학종언론'은 어떻게 양립가능한 것인지? (2)근대소설과는 외양이 다른 방식으로 근대문학의 정신을 보전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가라타니의 종언론에 대한 논박이 되는 것인지? (3)김연수를 비롯하여 김영하, 김경욱, 천운영, 윤성희, 강영숙, 조경란, 김중혁, 박민규, 천명관, 편혜영, 이기호 등의 소설적 성취가 과연 '근대적 기획의 열정'과 관련하여 평가되는 것인지? 즉, 이들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서 "철학이나 종교보다 더 심원한 인식론적·도덕적 기능"을 떠맡고 있기에 의미심장한 것인지? (4)더불어 이러한 문학정신의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왜 동아시아의 정치적 모순과, 미국식 속물적 소비주의 가운데 우리 소설이 어느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삼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것인지? 열정만으로는 부족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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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8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4-28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는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요.--;
 

독일로 간 작가 배수아씨의 근황 기사를 옮겨놓는다. 독일 작가 야콥 하인의 소설 번역이 얼마전 출간됐는데, 그와 관련한 인터뷰 기사이다. 기사를 보고 안 것인데 번역 생활 3년동안 (공식적으로만) 7권의 번역서를 냈다고 한다. 창작과 번역으로만 채워진 이국에서의 이방인 생활이, 문득 부러워지는군... 사실 작가는 '외국인 놀이'의 달인이었기에 굳이 독일에까지 건너갈 필요가 있었을까, 란 의문을 나는 전부터 갖고 있었다. 한데,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로 글쓰기'가 작가 배수아의 방법론인 이상, 생각해보면, 외국생활은 한국어를 '외국어'로서 만끽하는 데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여건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생은 다른 나라에 있다?..

 

한국일보(07. 04. 28) "야콥 하인 소설 읽는 순간 내 거야! 느낌"

배수아(42)씨를 만났다. 소설가가 아닌 번역가로서 말이다. 그녀가 번역한 독일 소설가 야콥 하인의 장편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영림카디널)가 출간됐다. 이 작가의 데뷔작 <나의 첫번째 티셔츠>는 배씨의 ‘첫번째 번역작’이기도 하다. 동독 출신, 1971년 생, 소아정신과 의사인 하인의 작품을 배씨가 처음 접한 건 독일 체류 중이던 2003년이었다. 동독에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데뷔작엔 으레 있을 법한 슬픔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짧고 유쾌하게 전개되는 문장, 연신 웃음을 빼물게 하는 유머만이 반짝였다. 게다가 유명 소설가(크리스토프 하인)인 아버지의 후광까지! “읽는 순간 ‘바로 내 거야!’란 느낌이 들었어요. 이걸 영원히 소유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떠오른 게 번역이었죠.”

하인은 97년부터 베를린의 카페에서 자신의 글을 낭독하는 젊은 작가 모임에 속해 있다. 이들의 작품 낭독은 엄숙과 상극이다. 무대 위에서 담배까지 물고 청중을 즐겁게 해주는, 스탠딩 코미디에 가까운 것이란 게 배씨의 설명이다. 카페를 찾은 출판사 관계자의 귀를 번쩍 틔워 책으로 나온 그의 작품 1, 2호는, 그래서 연예적 요소가 다분했고 독일의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배씨가 이번에 소개하는 하인의 세 번째 소설은 다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내용으로, 읽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자전적 작품이다. 작가의 슬픔에 동화돼 열흘 만에 번역을 마쳤다는 배씨는 “솔직하면서도 감정의 과잉을 억누르는 작가의 태도가 오히려 비애감을 더했다”는 소감을 밝힌다. 덧붙여 작가가 처음으로 ‘듣는 독자’가 아닌 ‘읽는 독자’를 의식하면서 한층 성숙해졌다고 평한다.

소설은 4월의 어느날 아들인 ‘나’가 어머니의 심상찮은 호출을 받는 것으로 열리고, 이듬해 1월 ‘나’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집안을 둘러보는 것으로 닫힌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유난히 친밀했던 모자 간의 올망졸망한 추억들이다. 부엌에서 요리하던 어머니와 도란거릴 때의 행복, 함께 영화를 보며 어머니 손바닥에서 집어먹던 과자의 달콤함, 여름캠프 기차를 놓쳐 울고 있는 ‘나’를 자가용에 싣고 먼 길을 달리던 어머니의 멋진 모습…. 정말 그렇다. 담담하게 말할수록 더욱 짙어지는 슬픔의 농도.

‘소설가 배수아’ 만큼이나 ‘번역가 배수아’도 다작이다. 번역 생활 3년 만에 벌써 일곱번 째 번역서다. 장편과 소설집을 각각 2권씩 내면서도 말이다. “사실… 번역 능력 기르기 차원에서 다른 필명으로 번역한 책도 있답니다.” 이 부지런한 작가는 계간지에 보낼 단편 집필과 장르소설 번역을 마저 마친 뒤 7월께부터 400쪽 넘는 장편소설 번역에 나선다.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독일 소설가 마틴 발저의 최근작이다.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아주 특별한 연애소설”이란다.(이훈성 기자) 

07. 0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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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4-28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수아도 많이 늙었네요--;;

로쟈 2007-04-28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어가는 거야 다들 일 없이도 하는 일이죠...
 

예정된 일정이 취소되어 약간 일찍 귀가하게 되었고 그걸 빌미로 잠시 부지런을 떤다. '작가와 문학사이' 연재를 옮겨오려는 것. 차례상 이번주엔 시인이 다루어지게 되는데,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이장욱이 시인으로 호출됐다(그는 시인들로부터 즐겨 해설을 부탁받는 시인이다).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그의 근황이 궁금하던 차였는데, 지면기사에서 '만나보게' 되는군.

경향신문(07. 04. 28) [작가와 문학사이](16)이장욱-그는 그냥 ‘문학’이다

뛰어난 시인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갖는다. 둔한 귀에 그것은 때로 소음으로 들릴 수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이 고성능 안테나다. 예컨대 김행숙·황병승·김민정 등의 독창적인 목소리는 어떻게 한국 시사(詩史)에 안착할 수 있었던가. 일단은 그 목소리 자체의 힘이겠지만, 그들의 첫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해설이 탁월한 안테나의 역할을 해준 탓도 있다. 그 해설을 모두 한 사람이 썼다. 이장욱. 그는 소위 ‘미래파’의 산파 중 하나다. 그 자신이 이미 뛰어난 시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첫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2002)은 충분히 읽히지 않은, 그러나 좋은 시집이다. 어떤 시에서 화자는 X레이 사진을 보다가 문득 한 소식 깨친다. “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 본래 ‘고백’은 내면, 진실, 질서로 구성되는 성(聖)삼위일체의 산물이다. 내면이 있고 내면의 진실이라는 것 또한 있어 그것이 질서 있게 전달될 수 있다는 믿음이 고백을 낳는다. 그러나 보라, X레이 사진에 내면 따위는 찍히지 않는다! 이 유물론은 2000년대 시의 공통감각 중 하나다. 자, 고백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내면 없는 화자를 창안했고(‘코끼리군’이라는 화자) 좀 다른 고백을 시도했으며(‘편집증’에 대한 관심) 무질서의 아름다움을 탐구했다(시공간의 혼란).



이 미학과 관계하는 이장욱의 개인 어휘가 ‘자세’다. 내면이 없는 무인칭의 존재들이 만나고 엇갈리며 빚어내는 카오스적인 무늬를 일러 ‘자세’라 한다. 진실은 존재의 어떤 자세다. 이를테면 “헛것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자세”(‘편집증 환자가 앉아 있는 광장’)가 그의 관심사다. “누군가 그대를 불렀다고 생각하여/그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단 하나의 이미지로 정화되는 생/나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호명’) 그는 그런 자세들을 ‘사랑’한다. 그의 시가 대개는 냉정하면서도 어딘가 낙관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 사랑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시집 ‘정오의 희망곡’(2006)에서 이 스타일은 거의 완성된다.

“비가 내리자 / 나는 드디어 단순해졌다 / 당신을 잊고 / 잠시 무표정하다가 / 아침을 먹고 / 잤다 // 낮에는 무한한 길을 걸어갔다 / 친구들은 호전적이거나 비관적이고 / 내 몸은 굳어갔다 // 한 사람을 살해하고 / 두 사람을 사랑하고 / 잠깐 울다가 / 음악을 들었다 //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 나의 죽음은 변하지 않았다 / 나는 금욕적이며 / 장래 희망이 있다 // 1968년이 오자 /프라하의 봄이 끝났다 / 레드 제플린이 결성되었다 /김수영이 죽었다 // 그 후로도 오랫동안 / 나는 여전히 태어나지 않았다 /비가 내리자 /나는 단순하게 /잠깐 울다가 /전진하였다.”(‘좀비 산책’ 전문)

묘하게 슬픈 시다. 1인칭을 3인칭처럼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면과 깊이와 원근법이 없어지지만, 덕분에 이상한 울림이 생겨난다. 접속사가 없어서 더 그렇다. 좀비가 부질없게도 ‘사랑’과 ‘장래 희망’을 말하고 있어 쓸쓸하고, “한 사람을 살해하고 두 사람을 사랑하고”와 같은 접속사 없는 문장의 무심한 울림 때문에 더 쓸쓸하다. 이것이 이장욱 풍의 세계다. 낯익은 일상과 익숙한 수사학이 철저히 살균되어 있다. 20세기 모더니즘의 열기와 치기에 심드렁한 21세기형 모더니즘이다. 그가 “널 사랑해”(‘근하신년’)라고 말하면 신기하게도 전혀 느끼하지가 않다. 그의 매력이다.



이 사람을 보라. 그는 러시아 현대시 연구서를 펴낸 노문학도다. 아니다. 그는 당대 한국시의 첨단을 탐사한 평론들을 쓴 평론가다. 아니다. 그는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소설가다. 아니다. ‘픽션에세이’라는 이상한 장르를 만들어낸 에세이스트다. 아니다. 그는 본래 시인이다. 아니다…… 뭐랄까, 그는 그냥 ‘문학’이다. 한국 문학사에서 매우 희귀한 사례다. 그는 ‘외계인 인터뷰’라는 제목의 시와 평론을 쓴 적이 있다. 그는 마치 이 행성에서 행해지고 있는 문학이라는 것의 실체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외계인처럼 보인다. 농담이다. 지구인이 아니어도 좋으니, ‘이장욱’이라는 이름의 문학은 계속 전진하라.(신형철|문학평론가)

07. 0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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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4-28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장욱의 시집을 사면서 로쟈님에게 있을 시인의 친필싸인이 들어있는 시집과 교환해야지..하고 작심을 했더랬습니다. 지금이사 밝히는것이지만..:D

로쟈 2007-04-28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오의 희망곡>에는 사인이 들어있는 거 같은데 어디에 두었는지 얼른 눈에 띄진 않네요.^^;

ozzy2012 2007-04-30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션에세이'는 어디서 나온 말이죠? ^^;;

로쟈 2007-04-3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문학에 연재됐던 글입니다.

수유 2007-04-3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가가린과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대문 얼굴로 쓰시는군요. 굳이 그의 몰 연대가 1968이기 때문에? ㅎㅎ

로쟈 2007-04-30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간혹 지구를 떠나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알다시피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후보자 두 사람이 작년에 선발되어 현재는 러시아의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발사는 내년 4월로 예정돼 있으며 올 8월에 최종 후보자 한 사람이 가려질 것이라고 한다. 관련기사를 예전부터 모아놓으려고 했으나 시간을 내지 못했었는데 마침 잘 정리된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영어공용어론에 관한 대담을 어제 옮겨놓았지만, 우주인이 되기 위해선 (현재로선) 러시아어를 배워야 한다(영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젠가 모스크바의 문화공원에서 최초의 우주왕복선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모형이 아니라 실물이다). 정비중이어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던 게 약간의 아쉬움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이맘때쯤엔 '한국 우주인' 이야기로 좀 들썩거리겠군... 

교수신문(07. 04. 23) 소련·미국의 우주인 선발과 한국인의 활약

해마다 4월 12일이 되면 러시아에는 국경일처럼 여겨지는 하나의 중요한 기념일이 찾아온다. 길에는 이 날을 축하하는 많은 게시물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신문에는 특집기사가 실리고, 텔레비전에는 이 날에 대한 각종 다큐멘터리들이 주요시간대에 방영된다. 이 날은 ‘우주인의 날’, 바로 인류가 최초로 우주를 나간 날이다. 유리 알렉세이비치 가가린(1934-1968). 1961년 4월 12일 지구인으로는 처음으로 그는 우주로 나감으로써 가가린은 지구를 벗어난 최초의 인류, 즉 우주인 1호를 기록하게 된다.



누가 먼저 우주에 로켓을 보낼 것인가. 누가 먼저 인공위성을 쏠 것인가. 누가 먼저 생명체를 우주로 보낼 것인가. 누가 먼저 사람을 우주에 보낼 것인가. 누가 먼저 여성을 우주로 보낼 것인가. 누가 먼저 우주선의 문을 열고 우주유영을 할 것인가. 누가 먼저 달에 갈 것인가. 50~70년대를 걸쳐 미국과 구소련간 진행된 당시의 이러한 일련의 우주개발 경쟁과정은 과학적, 공학적인 필요성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냉전이라는 시기에 상대진영에 비해 보다 우월한 과학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과시하고자 하는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서 탄생하게 된다. 또한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 기술은 대륙 간 타격능력, 우주로부터의 첩보능력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단순한 기술적 과시를 넘어 군사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초기 우주인 선발은 기본적으로 군에서 후보자들이 선발되었다. 혹독한 훈련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체력, 임무에 대한 보안, 그리고 그 임무가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임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당시 군에서의 선발은 어쩌면 당연한 조치로 여겨진다. 사실상 최초로 인류를 우주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던 시점에서는 인간에게 무슨 훈련을 시켜야 하는지도 몰랐고, 인류가 우주에 나가면 어떤 신체변화가 올지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고난도 훈련을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과 소련에서의 최초의 탑승에서 살 수 있는 기대확률은 양측 모두 반반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총성 없는 미소간의 우주개발전쟁은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우주라는 전선으로 우주비행사를 보내게 된다.

소련은 공군조종사 중 20명을 후보로 선발하였다. 선발은 워낙 극비로 진행되었던 일이라 후보들은 당시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선발되고 있었는지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훈련과정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게르만 티토프(1935-2000)였다. 그러나 그는 소위 말하는 집안 좋은, 부르주아에 가까운 출신이었다. 이에 비하여 가가린은 스몰렌스크의 가난한 농노 가정에서 태어났으므로 진정한 인민의 자식이라 말할 수 있었다. 재정러시아, 소련의 시기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농업에 종사하였다. 또한 소련 우주개발의 최고 수장이었던 까랄료프와 마찬가지로 그는 직업학교(우리나라로 말하면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 점은 까랄료프에게 상당히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다른 가장 중요한 최종선발 원인 중 하나는 그의 외모와 성격이었다. 대중을 향해 어필할 수 있는 잘생긴 얼굴,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그의 쾌활한 언변은 결국 그를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되도록 한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 귀환한 가가린은 대중 앞에 서게 되었고, 소련은 “소련의 위대한 과학기술로 우리의 아들이 우주를 다녀왔노라”라고 대대적인 선전을 하였으며, 국민은 그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게 된다. 티토프는 같은 해 8월 6일 우주에 다녀옴으로써 결국 세계에서는 4번째, 러시인으로는 두 번째 우주인이 되었다. 티토프는 우주비행사로 활동하던 당시에는 말하지 못하였으나 훗날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성적이 좋았음에도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되지 못한 불만을 토로하곤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공군 시험비행사 중에서 7명을 선발했다. 알랜 셰퍼드(1923-1988)가 1961년 5월 5일에 준궤도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계에서는 두 번째, 미국인으로는 최초의 우주인으로 기록된다. 실제로 준비상황은 소련에 비해 미국이 좀 더 빨랐으나, 유인발사 전 시행한 무인발사의 실패로 인하여, 이를 검토하기 위해 발사가 연기되면서 최초 우주인의 영광은 러시아인 가가린에게 돌아가게 된다. 또한 러시아가 성공한 비행은 우주선을 지구궤도에 올려놓아 지구를 한 바퀴 돌고 귀환한 비행이었으나 미국은 완벽한 궤도진입을 하지 않고 우주를 잠시 나갔다 오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우리나라도 고산, 이소연 두 명의 우주인 후보가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의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www.gctc.ru)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이곳은 ‘별의 도시’라고도 불리며, 모든 러시아우주비행사와 러시아발사체에 탑승하는 우주비행사는 이곳을 거쳐 가게 된다. 과학기술부는 2008년 4월로 예정된 발사를 위해, 금년 8월에 두 명의 후보 중 최종 1명을 선발할 계획이라 한다. 노보스찌 코스모나브티끼(우주비행뉴스)에 따르면 현재 두 후보는 러시아어수업, 이론수업, 가속도 및 무중력 훈련을 받고 있으며, 우주발사체인 소유즈 및 우주정거장 조정훈련 역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주단위로 그들의 생활모습을 한국으로 보내오고 있으며, 한국우주인배출사업 홈페이지(www.woojuro.or.kr) 등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둘 중 선발된 최종 후보는 소유즈 발사체에 몸을 싣고 우주정거장에서 약 8일간 머물게 된다.



누구를 우주인이라 부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으나 공통적으로 크게 두 부류를 말하곤 한다. 첫 번째는 우주비행을 위해 훈련받은 자를 말한다. 훈련받은 모든 사람이 우주를 나갈 기회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주인 후보로 선발되어 훈련을 받는 것 역시 대단히 어려운 일이므로 이들 모두를 우주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두 번째 기준이 보다 보편적인데 우주를 나갔다 온 모든 사람을 우주인이라 칭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통상 FAI(www.fai.org)의 기록을 따르는데, 여기서는 지구로 부터 100km 이상 벗어난 모든 사람을 우주인, 즉 우주를 다녀온 자로 인정한다. 미국의 경우 자국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50마일(80km)을 그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2006년 9월까지의 집계를 보면 미국기준으로는 454명이, FAI기준으로는 448명이 우주를 다녀온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한국계로는 미국국적의 폴란스키(50)가 이미 두 차례나 우주를 다녀온 바 있다. 그의 어머니가 한국인 2세로 하와이출생이며, 어머니의 부모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이룬 업적에 비해 다른 한국계와 같은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폴란스키의 경우 비록 한국계라고는 하나 사실상 미국인이므로 최초 한국우주인이라는 타이틀이 부여되기에는 적합지 않다. 그러나 고산, 이소연 후보 외에도 또 다른 한국인인 허재민 씨(25) 역시, 현재 러시아에서 훈련 중인 두 우주인 후보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의 우주비행을 앞두고 있다. 그는 지난 2006년 1월 컴퓨터업체인 오라클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에 당첨되어, 준괘도우주비행을 올해 말 예정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우주에 먼저 나가는 사람은 허재민 씨가 될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우주로 나가는 한국인이 나올지 러시아에서 나올지는 미지수이다. 일정대로라면 허재민 씨가 앞서있지만, 민간우주프로그램이라는 특성상 예정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미국에서의 프로그램이 단순히 며칠간의 훈련으로 수 분간 우주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이므로, 허재민 씨가 먼저 우주를 나가더라도 우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다. 이미 스페이스쉽원(SpaceshipOne)을 타고 허재민 씨가 예정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민간우주비행을 한 마이크 멜빌(Mike Melvill)은 전 세계적으로 433번째 우주인으로 인정되고 있고, 우주인 명단에 등재되어 있다.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역시 이와 유사한 비행이었다. 만일 허재민 씨가 예정대로 고산 혹은 이소연 후보보다 먼저 우주비행을 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사람보다 위쪽에, 전 세계가 인정하는 또 다른 한국 국적의 한국우주인이 등재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최초’라는 단어는 언제나 매력적인 단어이다. 아직 누가 ‘최초’의 한국우주인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른다. 과거와 다른 점은 예전에는 단순히 우리나라에도 우주인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다면 현재는 곧 출산을 앞둔 어머니와 같은, 잠시 후를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최초’라는 것은 그 이후 지속적인 노력과 발전이 있을 때 그 의미가 더욱 존중되고 기억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이제 첫걸음을 떼다시피 한 한국의 우주개발에 한국인 우주인의 배출이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하성업/ 러시아통신원· 모스크바국립항공대 박사과정)

07. 04. 27.

P.S. 가가린훈련센터를 다른 책도 재작년에 출간된 것이 눈에 띈다. 국내에서 출간된 우주인 관련서는 의외로 드문데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청어람미디어, 2002) 정도가 아닌가 싶다.

다치바나는 이렇게 적었다. "우주비행사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우주 체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그때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우주 비행사들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 감추어 두었던 본심에서 우러난 메시지를 세계 최초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된다. 우주 비행사들의 전언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놀랄 만큼 깊고 큰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그것이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마음 속 깊은 곳을 자극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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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7-04-27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 아저씨는 논픽션을 쓰는 데에 일가견이 있어 보여요.
그나저나 오랜만입니다 로쟈님. 어제 중간고사가 끝난 페일레스였습니다. :)

로쟈 2007-04-28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의 장기겠죠. 저는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그나마 지난주에 한주 쉬는 과목도 있었는데.--;
 

어제 읽은 경향신문의 기사 가운데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토플 대란'을 주제로한 두 소설가의 대담을 옮겨온다. 문단에서 '영어의 달인'으로 한 손가락에 꼽을 만한 이 두 사람은 안정효, 복거일 제씨이다. 대담을 일독해본바, 나는 따로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안정효의 입장에 동의하는 편이다.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 1998)를 통해서 한때 '영어 공용어론'의 불을 지폈던 복거일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도 살펴볼 수 있으므로 일독해보시길 권한다.

경향신문(07. 04. 25) ‘토플 대란’으로 본 영어 열풍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필수라지만 한국의 영어 열풍은 광적인 수준이다. 영아에게 영어 비디오를 틀어주고 조금 자라면 영어 유치원에 보내며 중·고생과 대학생들은 영어 관련 인증시험에 골몰한다. 직장인들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출퇴근한다. 이게 다 영어 잘하면 출세하고 잘 못하면 뒤처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최근의 ‘토플대란’도 여기에 배경을 두고 있다. 영어공용화 주창론자인 소설가 복거일씨와 ‘영어 잘하는 소설가’이면서도 한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소설가 안정효씨의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영어열풍 문제를 짚어봤다. 두 사람은 23일 경향신문에서 만났다.

안정효=토플이 각종 입시에 반영된다는 것을 이번에 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사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점수를 필요로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이 시험은 이른바 영어 실력 측정 기준일 뿐이잖습니까(*나는 한번도 토플 시험을 본 적이 없어서 현재의 '열풍'에 대해 실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복거일=토플은 영어 측정시험으로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편리한 시험입니다. 공신력도 있고 접근도 쉽고 보편성도 확보됐습니다. 수요가 많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 과정에서 해프닝이 우연히 일어난 것일 뿐입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에 영어 실력 측정 수요가 많다는 건데, 사회 본질적인 데에 이유가 있습니다. 경제의 해외의존도가 높다보니 지식인 근로자들이 영어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기업에서는 영어 실력이 좋은 사람을 뽑고 싶어 하는 거고 기업이 원하니 자연스레 대학, 고등학교도 원합니다. 막연히 반미 감정 같은 민족주의적인 감정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단견일 뿐입니다.



안정효=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반발이 과연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시작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영어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과잉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봅니다. 외국과 무역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을 하는 바이지만 사회활동에서 필요한 수요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해야 되는 사회입니다. 국력의 낭비입니다.



복거일=평균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저는 영어를 모두 배워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영어는 세계의 표준언어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들에 접근하려면 영어가 필요합니다. 정보 중 중요한 것은 모두 영어로 저장돼 있습니다. 사실 영어로 존재하지 않는 정보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영어가 안 되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제약됩니다. 기업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면 당장 판단을 못 내리게 됩니다. 접근이 어려워지면 중요한 일로부터 스스로 배제되는 겁니다. 영어 못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사회적인 차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는 필수입니다.

안정효=모든 정보가 영어로 돼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으로 된 정보는 각처에 존재합니다. 다만 이른바 세계 공통어라는 영어로 돼 있는 정보가 많다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영어를 그렇게 많이 배우고 가르치느냐. 사람들에게 ‘영어가 실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신 자식에게 영어를 가르칠 거냐’고 물어보면 거의 다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이런 풍조가 문제입니다. 회사에서 영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분야도 참 많습니다. 무역, 장사, 농사 종사자까지 왜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워야 합니까.



복거일=이왕 영어를 배우기로 결정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배우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조기교육에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나면 모국어에서 쓰이지 않는 음소들을 구별하는 능력이 사라집니다. 뒤늦게 이런 능력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영어 노래, 테이프를 들려줘서 조기교육하면 엄청나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왜 배우느냐고 의문을 갖고, 민족혼을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교육을 가로막으면 사회에 도움이 안 됩니다.

안정효=아이들 영어교육은 정말 문제입니다. 결국 발음과 회화만 중시하는 교육입니다. 영어교육이 상업화돼 영어는 이제 산업입니다. 상업적으로 상품화해서 파는 사람들이 가르치는 영어교육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조기교육도 반대입니다. 모국어 언어체계가 확실히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영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언젠가 ‘캐주얼한 관계’가 한국말로 뭔 줄 아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알면서도 십중팔구 우리말로 전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말 감각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해에도 한계가 생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단어가 연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 제한된 체계를 위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노력을 해야 하는지 부정적입니다. 모국어 체계를 확실히 세운 다음에 영어를 배우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입니다.

복거일=당사자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영어를 배우기로 했으면 이를 지지하는 효과적인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자유주의 원칙입니다. 개개인의 형편에 맞춰서 노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원하는데 허리가 휘든 안 휘든 다른 사람들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덜 힘들게 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언론에서는 ‘영어광풍’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들이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것에 어떻게 ‘미칠 광’자를 씁니까.

안정효=사람들이 과연 개인적으로 독창적인 판단을 하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눈치를 보다가 힘겹게 쫓아가는 겁니다. 중간 집단은 대개 남들이 어떻게 하느냐를 모델로 삼아 따라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바람에 휩쓸리는 것이고 그래서 ‘바람 풍’자를 쓰는 겁니다. 영어가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자꾸 겁이 나니까 하게 되는 겁니다. 사회구조적인 우리 열등감이 영어열풍으로 표출된 것 같습니다. 세계와 경쟁을 하다보니 열등감이 생기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안 되는 것을 표현하려고 하는 겁니다.



복거일=우리나라 기업환경이 나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영어가 결정적입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영어가 필요합니다. 인도 후추 농사꾼들은 직접 시카고 현물 가격을 인터넷으로 읽고 거래하고 가격을 매깁니다. 우리 농민도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게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에서 살아남는 길입니다. 예술가도 영어가 필요합니다. 명성황후와 난타의 차이점이 뭔지 아십니까. 명성황후는 우리말이었고 난타는 언어가 없었습니다. 언어가 장애가 된다는 겁니다. 안선생님은 영어로도 글을 쓰니 어느 정도 명성이 있지만 나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안정효=나는 평생 영어로 먹고 살았지만 아직도 정관사 활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영어는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영어는 매체일 뿐이라 영어를 잘 안다고 모든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인도에서 후추 장사하는 사람이 영어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후추생산법 같은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체에 바치는 시간과 공이 너무 큽니다. 우리 얘기를 영어로 쓰자는 것은 알리자는 취지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를 알아야 합니다. 안 되는 분야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안 되는 것까지 하려고 하는 것이 낭비입니다. 모든 사람이 소 한두 마리 키우는데 미국 우시장 동향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복거일=물론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모두 다 잘하진 않습니다만 영어를 잘하면 조금 더 잘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필리핀도 영어를 못했으면 그나마 국가통합이 없었을 것이고, 외국에 나가서 벌어들이는 돈이 전체의 13%입니다. 영어가 없었으면 그런 소득을 창출하는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을 겁니다.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정효=영어는 배우기 어렵습니다. 인도는 식민지여서 영어를 잘하고 필리핀도 식민지였습니다. 그런데 필리핀 같은 경우는 자기 나라 이름도 없습니다. 국민 전체가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대단한 국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시대에 따라 필요한 만큼의 영어실력자들은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복거일=내 주장은 모국어와 영어를 같이 가르치면 된다는 겁니다. 영어공용화론은 영어만 쓰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어와 똑같이 법적으로 지위를 가지고 쓰자는 겁니다. 한 세대를 두고 준비해야 됩니다. 도로의 표지판이나 공문서 같은 것을 국영문 병용하자는 걸로 시작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세계시민으로서도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게 영어공용화의 첫걸음입니다. 또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저절로 영어를 친근하게 느낍니다.

안정효=영어공용화는 논쟁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필요한 곳에서는 저절로 그렇게 돼 가고 있습니다. 유명 관광지에서는 이미 표지판에 국영문 병기를 하고 있고 서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만 중시하는 상황에서 한국어 훼손 문제도 생각해야 합니다. 벌써 영어 같은 외래어가 한국어에 침투해 있습니다. 한국어가 100년 안에 없어진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닙니다. 서양 언어와 우리 언어는 구조부터가 다릅니다. 외국과의 경쟁과 같은 현실적인 필요성이 영어공용화를 지지하기도 하지만 실제 우리끼리 소통하는 데 있어서 한국어가 너무나 크고 견고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복거일=영어는 오히려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하기도 합니다. 언어는 문화의 기초가 됩니다. 요즘 어느 측면에서는 문화가 동질화되어가고 있습니다(*이건 무슨 논리인가?). 미국에서 솔이나 재즈가 나오면 그날로 전세계로 퍼집니다. 그렇다고 문화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도 시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장이 넓어진 겁니다. 다양성이 확산돼 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겁니다.

안정효=언어도 문화의 일부입니다. 별개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워서 문화가 망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고방식이 망가지기 때문에 문화가 망가지는 겁니다. 영미권의 사고방식이 침투하면 문화도 망가집니다. 나 같은 경우 영어로 소설까지 썼지만 한국 문화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사고방식을 어떻게 갖느냐에 달려 있습니다.(정리|김다슬기자)

07. 04. 26.

P.S. 아래는 '토플 대란'과 관련한 칼럼이다.

한국일보(07. 04. 24) [지평선] '토플 대란'이 우습다

언론과 인터넷에서 '토플 대란'이라고 난리다. 유례없이 신속히 10일만에 정부가 나서고 고교 교장들이 뭉쳤다. 범국가적으로 '토플 불매운동'의 조짐이 보이자 미국 본사(ETS) 수석부사장이 황망히 내한해 서비스 개선(?)을 약속했다.

이번 혼란의 본질은 잘 알다시피 우리의 잘못된 영어교육의 단면으로, 초중등 학생들의 과수요 때문이다. 유행 상품의 수요ㆍ공급 부작용일 뿐이다. 학생의 '결식 대란'이나 '알바 대란'에는 그렇게도 무심하던 대한민국이 '토플 대란'으로 국제적 망신을 샀으니, 웃기는 나라가 돼버렸다.

주연은 단연 학생과 학부모들이다. 연간 10만여 명의 응시자 중 30~40%가 미국대학 입학과 무관한 초중등생이며, 이들의 목적은 외고 입시 때문이라 한다. 서울 지역 7개 외고에서 영어특기 형태로 선발하는 인원은 200명 이내며, 토플은 대부분 외고에서 토익 텝스와 함께 선택 사항이다. 굳이 ETS 토플로 점수를 따겠다면 밤을 새우든, 광클을 하든 스스로 감수해야 할 부담이다. ETS가 '한국을 우습게 여겨'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은 이기적인 핑계에 불과하다. 응시료만 매년 100억원 넘게 내는 한국은 ETS의 제일 소중한 고객이다.

정부도 웃기는 데 동참하고 있다. 1964년 토플시험이 시작된 후 미국 유학생이 10만 명에 이를 때까지 한번도 문제를 검토하지 않다가, 수요 과잉이 일자 '외고에서 토플을 없애라'고 수요 차단을 종용했다. 일본이 1963년부터(STEP TEST), 중국은 1987년부터(CET) 국가시험을 개발해 연간 수백만 명의 수요를 해결하고 있다. 이번 문제를 외고 합격자 몇 백 명으로 해결하려 드니 교육부의 현실감이 우습지 않을 수 없다. 덩달아 공정위가 ETS의 부당거래를 조사한다는 것도 그렇다. 굳이 말한다면 '부당 수요' 정도가 아니겠는가.

외고 교장들이 2009학년도부터 입시에서 토플을 뺄 테니 초중등생들은 앞으로 시험에 응하지 말라고 유인하는 것도 코미디다. 고교등급제 논쟁의 원인이 될 정도로 괜찮은 학교의 교장들이 이러한 결정을 했다니 우습지 않을 수 없다. 심하게 비꼬면 미국 ETS회사의 컴퓨터가 다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년간 유지해온 자신의 입시 전형제도를 변경하겠다는 게 아닌가. 학생들이 다시 토익과 텝스 등으로 몰려 그 인터넷이 다운되고 그 고사장이 터져나가면 또 어찌할 것인가. 대증처방에만 급급하지 말고 차분히 대책을 궁리하자.(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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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7-04-26 02:14   좋아요 0 | URL
이번 대란으로 많은 대학생들의 인생계획(?)이 달라진건 확실합니다. 저는 일단 교환학생이 반년 미뤄졌고...제 친구는 교환학생 반년 미뤄지는게 싫다며 (그럼 귀국하고 바로 취업준비거든요 ㅠㅠ) 북경대 1년 어학연수 떠나기로 했지요 허허

근데 궁금한게. 어릴때 영어를 배우면 영어도 잘하면서 한국어도 잘하는게 가능한가요? 제 주변을 보면..어릴 때 외국다녀온 애들은 영어는 정말 잘하는데 한국말 감각이 떨어지고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지만 글쓰기를 하면 확연히 드러나요) 한국 글솜씨가 뛰어난 애들은 영어실력에 한계가 있던데..어릴때 뛰어난 교육을 받으면 둘 다 잘할 수 있을까요? 어떤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3개국어 4개국어 당연하게 하곤 하잖아요. 그런거랑 한개의 언어만 구사하는 거랑 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이네파벨 2007-04-26 09:42   좋아요 0 | URL
영어공용화, 대학의 영어 강의 문제 등등...흥미롭고 어렵고곤혹스러운 주제....
계속 환기시켜 주셔서...좋습니다.
저도 무척 흥미 느끼는 주제거든요.
로쟈님 생각도 궁금하고...암튼 글이 마무리 되길 기다려 봅니다.

jouissance 2007-04-26 09:49   좋아요 0 | URL
복선생! 그래도 유보적이었는데 이제는 자꾸 저어하게 되는군요. 딱하다는 생각뿐입니다..

로쟈 2007-04-27 00:05   좋아요 0 | URL
LAYLA님/ 이중언어 전문가에게 문의하실 내용 같은데(^^;) 제 생각엔 개인차가 있는 것 같고요, 평범한 아이들이라면 너무 이른 외국어 학습은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네파벨님/ 제 생각은 별다른 게 없고 서두에 적은 대로입니다...
jouissance님/ 저는 공용어론자들의 주장에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민족주의적' 포지션을 내세울 때는 어리둥절합니다. 사실 제일 좋은 건 그냥 '미국'으로 (단체로!) 이민가는 거 아닐까요? '국제어 시대'에 굳이 한국어 배우랴, 영어 배우랴, 이중으로 고생할 필요가 없이...

나비80 2007-04-27 02:25   좋아요 0 | URL
이 날치 '경향'에 볼거리가 많더군요. ^^

싸이런스 2007-04-27 07:12   좋아요 0 | URL
푸하하 또라이 복거일의 일방향 의사소통 방식도 골때렸는데, 정병진 논설위원님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고단수 해학을 구사하시네요!

싸이런스 2007-04-27 07:14   좋아요 0 | URL
하하 로쟈님 댓글도 만만치 않군요! 그냥 단체로 가버렷! 덕분이 한참 웃었어요!

도톰 2007-04-27 08:35   좋아요 0 | URL
‘캐주얼한 관계’ 는 짧게 말해 '흔한 관계'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요?

심술 2007-04-27 21:59   좋아요 0 | URL
kaosmapak님, 저도 '캐주얼한 관계'를 우리말로 바꾸면 뭘까 생각해 봤는데 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건 없다가 10초쯤 지나니까 '심각하지 않은 관계'가 떠오르더군요. 그런데 맘에 들지는 않네요. '흔한 관계'가 '심각하지 않은 관계'보다 나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아주 맘에 쏙 들지는 않는군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번역하시련지요?

로쟈 2007-04-27 22:33   좋아요 0 | URL
'캐주얼한 복장'이 간편하고 편한 복장이란 뜻이니까, '편한 관계'나 '부담없는 관계' 정도로 옮겨질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도톰 2007-04-28 21:30   좋아요 0 | URL
casual 의 용례를 볼 때, 곧잘 부정적으로 쓰이곤 하는 뉘앙스를 감안하다 보니 쉽게 옮겨 말하기 힘들었나 봅니다. 마치 kitch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