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에 뉴스들을 둘러보는데, '한국어가 소멸된다고?'라는 선정적인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프레시안 편집자의 말대로, 일부 언어학자들은 소수 부족들의 언어가 급속하게 사멸해가고 있음을 이미 경고한 바 있다. 그 멸종어 대열에 한국어도 포함되는 일이 적어도 당분간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가까운 장래에 이중언어적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이미 대학캠퍼스와 강의실에 '영어'를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가 '세계화'를 명분으로 맹렬하게 추진되고 있지 않은가. 미국 국적을 얻기 위한 원정 출산 대열이 줄지 않는 데에서 보듯이 '한국인'이 되는 일이 더 이상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게 될 때, '한국어'의 운명을 낙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국어 파괴'는 거기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기사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은 '파괴'라기보다는 '오용'에 가까운 것 아닌가? 문법학자의 근심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프레시안(07. 03. 20) 한국어가 소멸된다고?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淸)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언어인 만주어가 사멸 위기에 놓여 있다고 <뉴욕타임즈>가 최근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세기 말까지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6800개의 언어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국어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국사회에서 '영어'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 특정계층에서 영어는 '외국어'가 아닌 '공용어'의 위치를 차지한 듯 보이기까지 한다. 또 인터넷 공간에서 구어체 중심의 '쓰기 문화'가 10-20대 계층에 일반화되면서 한글 맞춤법과 문법의 파괴 속도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만주어 사멸' 뉴스를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수많은 민족어 중 하나인 한국어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굳이 패권주의적인 민족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해 온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발명된 '과학적 문자'인 한글은 세계 모든 언어를 음성기호로 표기할 수 있는 매우 수용성이 높은 언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인하대 국어교육과 박덕유 교수가 기고한 글을 싣는다. 박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어 파괴의 징후들을 거론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교육적 대처 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편집자>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출산율은 2.08명인데,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08명이다. 이러한 출산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2050년에 3000만 명으로, 2200년이면 500만 명으로 줄어들다가 2800년이면 완전히 멸종될 것이라는 'UN미래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한국어에 대한 소홀이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한국어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학생들의 문법 지식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서울, 인천, 천안 등 3개 도시의 6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게 하였다. 40분의 시간을 주고 제목은 학교마다 다르게 다양한 주제를 주었다. 아래 예문은 학생들이 쓴 문장 중 일부만 제시한 것이다.

학생들이 잘못 쓴 문장 → 수정한 문장
  
  한국가 일본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는 독도→한국과 일본 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는 독도

  
  휴전선을 없에고 통일을 한다면 →휴전선을 없애고 통일을 한다면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개최한 세계적인 국가가 됬다. → 월드컵을 개최한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다(됐다).
  
  노력 할꺼고 좋은 아빠가 될꺼다. 노력할 것이고 좋은 아빠가 될 것이다
  
  내 서적에도 안돼고 → ? 안 되고
  
  독도는 자기꺼라고 할 때 기분이 나뻤다. → 독도를 자기나라 거(영토)라고 할 때 기분이 나빴다.
  
  독도의 대해 찾아볼것이다.독도에 대해 찾아볼 것이다.
  
  저번해 뉴스에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았습니다. → 저번에 뉴스에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꿈은 수도없이 밖였다. → 지금까지 꿈은 수없이 바뀌었다.
  
  그리고우리동뇨는그리고 우리 동료는
  
  독도는 어면히우리땅인데 일본을 그렇게 실어했는데 →독도는 엄연히 우리땅이므로 일본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그때잘했을껄그 때 잘 했을 걸
  

  원레 1학년 때는 왼쪽무릎의 쓸개골에 염증이 생겨 깊스를 했었습니다. → 원래 1학년 때는 왼쪽무릎의 쓸개골에 염증이 생겨 깁스를 했었습니다.
  
  작년이나 제작년에는 → 작년이나 재작년에는
  
  그집은 자매나 형재고그 집은 자매나 형제나
  

  시험이끊나고 단합대회를 했으면 좋겠어요. → 시험이 끝나고 단합대회를 했으면 좋겠어요.
  
  가장 기뻣던일 → 가장 기뻤던 일
  

  이빨이 않좋은게 아니라 → 이가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쁜 날은 아마 업을겁니다. → 이렇게 나쁜 날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자기소게자기소개
  
  용서가 돼지 않을만한 것이다. → 용서가 되지 않을 만한 것이다.
  
  뜨거운 포웅 → 뜨거운 포옹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않되었을때 →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안 되었을
  
  언른 나으셔서 오래오래 사시게 해주세요. → 얼른 나으셔서 오래오래 사시게 해주세요.
  
  조은꿈만...조겠다.좋은 꿈만 -- 좋겠다.
  
  몇일전 너무나 어이없고 → 며칠 전 너무나 어이없고
  
  무슨일을하던, 무슨꿈을위해달리던 구지 하나만 고집했다가 →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꿈을 위해 달리든(지) 굳이 하나만 고집했다가
  
  기술시간의 배운 생명공학이라는 → 기술 시간에 배운 생명공학이라는
  
  일본이 실습니다. → 일본이 싫습니다.
  
  지금 난리라고 함니다. → 지금 난리라고 합니다
  
  채벌을 하지 않겠다. → 체벌을 하지 않겠다.
  
  충격을 바드셨습니다. →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남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0% 정도가 맞춤법을 제대로 모르고 위의 예문과 같이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무엇보다 문법 지식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문법 지식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20대 이상의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일반인들의 어문규정(맞춤법, 표준어) 인지(認知)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실제 언어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단어 100개에 대해 서울, 인천 지역에 거주하는 일반인 57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다. 100문항 중 정답률이 40% 이하인 단어는 모두 29개였다. 이 중 몇 가지를 보면 다음와 같다.
  

오답 → 정답 (괄호 안은 정답률)
  
  닐리리(15.3%) → 늴리리
  쌍용(18.6%) → 쌍룡
  오뚜기(25.3%) → 오뚝이

  산수갑산(26.1%) → 삼수갑산
  서슴치(27%) → 서슴지

  풍지박산(27.8%) → 풍비박산
  생각컨대(29.4%) → 생각건대

  흐리멍텅하다(31.1%) → 흐리멍덩하다
  숫소[황소](32.0%) → 수소

  개나리봇짐(32.7%) → 괴나리봇짐
  우뢰(32.8%) → 우레

  숫놈(32.8%) → 수놈
  설걷이(32.9%) → 설거지

  곱배기(33.6%) → 곱빼기
  집에 갈께(33.6%) → 집에 갈게

  햇님(34.4%) → 해님
  윗층(36.1%) → 위층

  삯월세(37.8%) → 사글세
  주초(37.8%) → 주추

  홀홀단신(38.4%) → 혈혈단신
  촛점(38.6%) → 초점

  개발새발(39.4%) → 괴발개발


 

 

 

 

 

 

 

 

 

 

 

 

  

연령별로 살펴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성적이 떨어졌다. 20대는 58.1점, 30대는 56.3점, 40대는 54.5점, 50대는 53.9점으로, 1989년 어문규정이 새로 적용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학력별 성적은 반드시 교육적 효과와 비례하지 않았다. 대재 및 대졸자가 57.1점이지만, 중졸이 55.8점으로 고졸 55.0점보다 오히려 성적이 높았다. 따라서 어문규정이 개정된 이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어문규정의 교육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지구상에는 약 1만여 개의 언어가 존재했었다. '에스놀로그(Ethnologue)'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6912개이며, 이들 언어 가운데 언어 전수 기능이 가능한 언어는 300개 미만으로 세계인의 96%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도 100년 후에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며,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일부 언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소멸될 것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도 훌륭한 문자라고 자랑하는 우리 한국어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온통 영어로 난리법석이다. 각종 중고등학교 입학시험이나 평가시험, 대학 입학시험, 취업 시험 등 영어 점수가 낮으면 그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앞 다투어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 지방자치마다 영어마을 선포식을 갖는 등 영어는 어느새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를 잠식해 가고 있다. 특히, 2009년부터는 초등학교 1학년에서 영어를 가르치도록 되어 있어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영어공용어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한국어의 위기는 갈수록 심각할 것이다.


  
한글은 실질적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에 문법적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소가 붙어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형태적 특징의 언어로 첨가어(添加語) 또는 교착어(膠着語)이며, 자음과 모음 40개의 음소문자로 발음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글자로 사용하는 표음문자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언어는 한국어 외에 일본어, 터키어, 몽골어, 헝가리어 등 우랄 알타이어계 언어들이다. 표음문자에는 단어의 음절 전체를 한 단위로 나타내는 문자인 음절문자와 음소적 단위의 음을 표기하는 음소문자(자모문자)로 나뉜다. 전자의 예로 일본의 가나 문자를, 후자의 예로 로마자와 우리 한국어를 들 수 있다.
  
그런데 한글은 단순히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음운자질을 반영하는 글자이다. 즉, 발음기관을 본 따 만든 기본 글자(ㄱ,ㄷ,ㅂ,ㅈ)에 가획의 원리(ㅋ,ㅌ,ㅍ,ㅊ)와 병서의 원리(ㄲ,ㄸ,ㅃ,ㅉ)로 거센 글자와 된소리 글자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로마자가 무성음과 유성음의 2분법적인데 반해 우리 한글은 3분법적의 음운적 특징으로 세계 모든 언어를 음성기호로 표기할 수 있는 아주 우수한 문자이다.

영국과 미국이 50여 개 이상의 연방국가로 세계를 장악하고, 중국이 50여개 이상의 소수민족을 연합하여 거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또한 아랍국이 연합하고 유럽이 연합하고 있다. 이제 언어도 영어, 중국어, 유럽어, 아랍어 등 몇 개 언어로 좁혀질 것이다.
  
'언어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도 남북통일은 물론 일본, 몽골, 중앙아시아, 터키 등을 연결하는 알타이어계의 중심어로 자리 잡아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여러 가지 한국어교육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대외적으로는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700만 한민족 동포가 180여 개국에 산재되어 있다. 이들을 기저로 한국어교육 정책을 펼칠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어교육에 관련된 교재를 정부에 보내달라고 하니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을 보냈다는 웃지 못 할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내국인에게 말하기-듣기 중심의 기능주의에서 벗어나 정확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문자언어 중심의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언어 소멸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갑자기 한두 세대 만에 사라질 정도로 우리는 '언어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세계의 언어 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문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한국어가 소멸된다'는 가설은 곧 현실로 다가올지 모른다.(박덕유/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

07. 03. 20.

P.S. 지난달에 연재가 끝난 고종석의 칼럼 '말들의 풍경'에서 한국어의 운명에 관한 마지막회분을 참고로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2. 21) [말들의 풍경] <51·끝> 한국어의 미래

수천에서 1만 여에 이른다는 자연언어들 가운데, 그 말을 쓰는 사람 수를 기준으로 한국어의 순위는 어디쯤일까? 개별 언어와 방언의 경계를 긋기가 쉽지 않아서 한국어의 순위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흔히 아랍어라 부르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 언어를 그 고전적 형태(문어 형태)에 주목해 한 언어로 간주하면, 한국어의 순위는 아랍어보다 크게 뒤질 것이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사뭇 다른 구어 형태의 아랍어들을 서로 다른 언어로 친다면, 한국어는 그 각각의 아랍어들(이집트 아랍어, 알제리 아랍어 등)보다는 큰 언어다.

이렇게 기준이 물렁물렁하긴 하지만, 순위를 얼추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과 해외의 한인공동체 인구를 7,500만 남짓으로 잡으면, 그 사용자 수로 볼 때 한국어의 순위는 12, 13위 정도 된다. 1억 가까운 사람이 쓰는 독일어보다는 작은 언어지만, 7,200만 남짓 되는 사람이 쓰는 프랑스어보다는 큰 언어다. 수천이 훨씬 넘는 언어들 가운데 12, 13번째로 사용자가 많다는 것은 한국어가 매우 큰 언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12, 13위라는 순위만큼 한국어가 위풍당당하지는 않다. 우선, 순위의 앞머리 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베이징어(보통화), 스페인어, 영어의 사용자 수가 3억에서 9억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고작 수천만의 화자를 거느린 한국어의 비중은 탐스럽지 않다. 남한 인구가 정체 상태에 있는 데다가 북한 인구는 심지어 줄어드는 추세여서, 적어도 단기적으론 한국어 사용자가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12, 13위라는 순위가 어떤 자연언어를 제1언어(모어,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 수를 기준으로 매긴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어의 상대적 위세는 훨씬 더 초라해진다. 사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영어가 베이징어보다 훨씬 작은 언어고 심지어 스페인어보다도 약간 작은 언어라고 할 때, 그것은 이 언어들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수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3억2,000만 남짓으로 추정돼 3억3,000만 남짓으로 추정되는 스페인어 사용자보다 조금 적다. 그러나 영어를 스페인어보다 비중이 작은 언어로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테다. 영어는 지구 행성의 보편어에서 그리 멀지 않는 국제 교통어의 지위를 이미 확립했지만, 스페인어는 이베리아 반도와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일부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제 모국어에 이어서 배우는 언어는 베이징어나 스페인어가 아니라 영어다. 영어는 스페인어나 (9억인의 모어인) 베이징어보다 비중이 큰 언어인 것이다. 한국어는 모국어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매긴 순위보다 교통어로서의 순위가 사뭇 떨어지는 언어다. 그것은 한국어공동체 바깥에서 한국어가 그리 매력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제1언어로 한국어를 익히는 사람은 제1언어로 프랑스어를 익히는 사람보다 많지만, 한국어가 프랑스어보다 더 비중있는 언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프랑스어를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익히는 사람은 수억 명에 이르겠지만, 한국어를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익히는 사람은 아주 늘려 잡아도 수백만 명 정도일 테니 말이다.

교통어로서의 비중만 보면, 한국어는 모국어 화자가 6,000만이 안 되는 이탈리아어보다도 덜 중요한 언어다. 그렇다면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어떨까? 다시 말해, 외국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어떨까? 이 질문은, 자신이 배울 외국어를 고르는 기준으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뭘까라는 질문과 관련돼 있다. 사람들은 우선,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를 배우고자 한다.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언어의 커뮤니케이션 폭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국어 화자가 가장 많은 베이징어나 교통어 화자가 가장 많은 영어는 이 언어들이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제2언어 후보가 된다.

이미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언어를 사람들은 배우려 들고, 그러니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 부익부 빈익빈인 셈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7,500만 남짓의 인구집단은 이 언어를 외국어로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는 규모다. 그러나 모어 화자가 이렇듯 많은 데 비해, 한국어를 교통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한국어 공동체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이 가까운 과거에 이르기까지 그리 크지 못했고, 한국인들이 역사의 오랜 기간 국제교류에 소극적이었다는 뜻이겠다. 이 점이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가능성에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어를 외국어로 익히는 사람이 지금 적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고자 하는 욕망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다음, 첫 번째 조건과 부분적으로 겹치겠지만 중요성에서는 아마 으뜸으로, 사람들은 제게 경제적 이득을 베풀 언어를 제2언어로 배운다. 사람들이 (모국어 화자가 가장 많은) 베이징어를 제쳐놓고 영어를 제2언어로 배우려 드는 것은 영어가 경제활동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회사에 일자리를 얻으려 해도 영어를 다소 아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회에서 영어는 각급 학교의 필수 외국어로 지정돼 있다. 고를 권한을 학생들에게서 박탈할 만큼 영어는 온 세상의 교육과정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것은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의 경제적 힘과 관련이 있다. 북한과 함께 한국어 사용권의 핵심부를 이루는 남한 지역의 경제적 활력은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베트남이나 몽골처럼 한국과 경제관계가 긴밀해진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셋째, 사람들은 문화 영역의 자아 실현을 위해 외국어를 배운다. 여기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허영심이다. 이를테면 프랑스어는 스페인어에 견주어 모어 화자가 훨씬 적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을 뺀 대부분 지역에서,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이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거기엔 프랑스어권에서 축적된 문화가 스페인어권에서 축적된 문화보다 더 풍요롭다는 판단이 개재돼 있다. (거기엔 또 부분적으로 정치적 이유가 개재돼 있다.

한 때 유럽의 중심국가로서 스페인 못지않게 넓은 해외 식민지를 경영했던 프랑스는 오늘날 유럽연합이나 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스페인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발언권을 지니고 있다.) 외국인들의 문화적 허영심을 만족시킬 매력이 한국어에는 넉넉하지 않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에 한반도 문화는 고전중국어로 다시 말해 한문으로 축적됐고, 한국어가 문화의 도구로서 본격적으로 행세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한 세기 남짓 전이기 때문이다.

넷째, 사람들은 배우기 쉬운 언어를 배운다. 다시 말해 제 모국어와 문법 유형이 비슷하거나 어휘가 닮은 언어를 익히려 한다. 일본의 경제력은 프랑스를 포함한 프랑스어권 전체보다 크다. 그렇지만 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 수는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보다 훨씬 적다. 그 이유의 큰 부분은, 앞에서 시사했듯, 프랑스어로 축적된 문화가 일본어로 축적된 문화보다 더 매력적으로 비친 데 있겠지만, 대부분의 언어권 사람들에게 일본어가 배우기 너무 어려운 언어라는 사정도 거기 포개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세계적 규모로 행사하는 경제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 다수는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문화권에 몰려 있다.

최근 들어 그 관계가 뒤집히긴 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스페인 사람들이 제2언어로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선호했던 것도 영어보다는 프랑스어가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와 더 닮아 배우기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연관효과’라 부를 만한 것도 학습동기 부여에 간여한다는 점을 지적하자. 사람들은, 꼭 제 모국어와 닮지 않은 언어일지라도, 서로 닮은 언어들이 많은 언어를 배우고 싶어한다. 이를테면 프랑스어를 외국어로 익힌 사람이 그 다음에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나 이탈리아어를 배우기는 쉽다.

네덜란드어를 외국어로 익힌 사람이 그 다음에 독일어나 덴마크어나 영어를 익히는 것도 쉽다. 그러나 동아시아 바깥 사람이 일본어를 어렵사리 배워보았자, 그 ‘연관 효과’로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 정도다. 그러니 일본어는 동아시아 바깥 사람들에게는 덜 매력적으로 보인다. 한국어도 같은 처지다. 한국어를 익히는 사람들이 그나마 일본에 꽤 있는 것은, 두 나라 사이에 확대되고 있는 교류나 어찌해볼 수 없는 지리적 근접성말고도, 일본사람들이 배우기에 한국어가 비교적 쉽다는 데 그 이유의 한 가닥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로 앞에서 내비쳤듯, 사람들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언어를 외국어로 배운다. 최근 프랑스어를 제치고 스페인어가 미국인들의 제2언어로 떠오른 것은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지역 대부분에서 스페인어를 쓰는 데다가, 미국 사회 안에 스페인어를 쓰는 이민자가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 인접 효과가 지리적 인접 효과를 상쇄하는 경우도 있다. 루마니아나 폴란드나 세르비아 같은 중부 동부 유럽 나라들은 지리적으로 프랑스보다 독일과 더 가깝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외국어로서 독일어보다 프랑스어를 더 선호한다. 그 나라들에 이런저런 이유로 프랑스 애호가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최근 늘어난 것도, 일본인들에겐 한국어가 비교적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사정에다가, 지리적 문화적 인접성(‘한류’에 대한 친화감을 포함해)이 포개지며 나타난 현상일 테다.

이런 모든 조건들을 따져서 판단할 때,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밝지 않다. 다시 말해,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울 사람이 앞으로 크게 늘 것 같지는 않다. 한국어권 경제의 확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학습 동기를 유발할 다른 요인들도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어를 배울 의욕을 북돋을 길은 있다. 그것은 사전을 포함한 한국어 학습 교재를 될 수 있으면 여러 언어로 다양하게 마련해놓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과 대학과 연구소가, 한국어학자와 외국어학자와 교육이론가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어를 익히기 시작한 외국인들이 흔히 투덜거리는 것이 너무 단조롭고 부실한 학습 교재에 대해서다. 일리가 있는 불평이다.



좀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어에 매력을 느껴서 이 언어를 배우길 우리가 바란다면, 그런 투덜거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세계 여러 곳에 세울 예정이라는 세종학당도 다양하고 효율적인 한국어 학습교재가 마련된 바탕 위에서야 제 구실을 할 것이다. 한국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조붓한 길이다. 시원하게 뚫린 한길이 아니다. 그러나 정성스레 닦아놓으면 그 길을 산책로로 골라 거닐 사람이 왜 없으랴.(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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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20 19:58   좋아요 0 | URL
좋은 소개 감사드립니다. 퍼갑니다.

마늘빵 2007-03-20 22:31   좋아요 0 | URL
<언어의 죽음> 읽었는데, 이거 진지하고 깊이있게 전 세계의 언어의 죽음에 다루고 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다른 분들께도 추천.

로쟈 2007-03-20 22:41   좋아요 0 | URL
아프락사스님이 먼저 터를 닦아두신 책이네요.^^

베토벤 2007-03-20 23:17   좋아요 0 | URL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Vanishing voices>도 같은 주제를 다른 책입니다. 부제가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인데요. 읽다보면 좀 씁쓸해집니다. 굳이 제가 배울 언어가 절대 아닌데도요.

로쟈 2007-03-20 23:4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제가 아까 '사라지는'을 검색했었네요.^^

이네파벨 2007-03-21 11:01   좋아요 0 | URL
신선한 화두네요...........

많은 생각거리가 떠오르지만 답이 안보이는...

전 번역을 하면서...우리말이 참 초라하고 빈약하다고 자조적인 생각을 많이 했더랬어요. 조금만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인 내용을 표현하자면...한자어로 들어가게 되지요..이제 그나마...그냥..영어를 소리나는대로 써주는 추세이고요..
우리말의 대응어를 찾을 수 없을 때의 갑갑함...외래어로 얼룩진 문장을 만들어내는 자괴감...그나마 새로이 유입되는 개념들의 경우..기존의 외래어로도 감당이 안되어 곤혹스러운 상황...

이게 바로.......약한 언어의 나라 국민의 슬픔이다...라고까지 비약을 하곤 했지요.

저 어릴때는 국어 과목이 너무 싫어서 (영어도 싫고..언어 과목을 다 싫어함) 차라리 우리말이고 뭐고 없이 전세계 공용어 딱 하나 있으면 좋겠다~~ 고 많이 생각했는데...그와 똑같은 얘기를 여덟살 아들녀석에게 들으니 (엄마, 난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좋겠어. 그럼 영어공부 따로 안하고 내가 좋아하는 수학같은것만 공부하면 되잖아) 충격적이더군요......
내것에 대한 사랑...(가족, 부모, 나라...)...은 철이 들어야 생기는 것인지...

실비 2007-03-21 12:17   좋아요 0 | URL
보고 다시 공부해야겠어요... 퍼갈게요.^^

qualia 2007-03-21 16:22   좋아요 0 | URL

저는 우리나라 국어교육과/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은 말할 것도 없이 외국어문 계열 교수님들)은 도대체 뭐하고 사시는지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현단계에서 우리 학자들이 세워 놓은 한국어의 문법/맞춤법/철자법/문장작법/조어법 따위는 정말 부실하기 (심지어 조악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어의 말글 체계는 아직까지도 법칙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야생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말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쓴 관련 논문이나 책들 가운데 읽을 만한 "고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리말글 바로 쓰기와 관련하여, 여태까지 우리나라 교수님들이 해 놓은 것 중, 전범으로 따를 만한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오히려 우리 겨레의 마음결(심리구조)을 자연스럽게 타고 흐르는 우리말글의 정수와 본질을, 국적불명의 튀기말글체로 일그러뜨리고 더럽힌 주범들은 바로 이 나라의 교수님들입니다. 이것은 제가 우리나라 교수님들이 쓴 논문/번역서/책을 읽을 때마다 정말 씁쓰레하게 실감하는 점입니다. (증거 없이 이런 총론적 주장을 한다고 비판하실 분이 계실 줄 압니다만, 이 사안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구체적으로 다루긴 다룰 것입니다. 가차없는 실명비판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댓글에서는 자세히 다룰 수 없겠죠.)

우리나라 교수님들의 게으름과 무능과 딴짓하기에 비하면, 이오덕 선생님과 이수열 선생님이 펼치신 우리말글 바로 쓰기 운동은 정말 존경스럽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아마도, 이오덕 선생님과 이수열 선생님은 우리말글에 침투한 여러 가지 심각한 병증을 (다시 말해 외국말글 직역투/오역투, 일본말글을 그대로 흉내낸 왜색 말글투, 지나친 한문투, 원칙없고 철학없고 잘못된 한국어 사전이 퍼뜨린 국적불명/어원불명의 낱말들, 원칙도 없고 철학도 없고 게다가 국어 실력까지 형편없는 교수님들이 퍼뜨린 비문들 따위를) 샅샅이 찾아내 비판하고 그 개선안을 처음으로 내놓으신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 분들은 무능하고 게으르고 패거리의식으로 똘똘 뭉친 학계(대학 교수 사회)에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비판적 작업에 선구자처럼 나선 것입니다. 이 분들의 우리말글 비판 작업이 없었다면, 샘물처럼 맑고 다듬잇돌처럼 매끄러운 우리말글의 흰 살결에 더 많은 조악한 비문들이 검버섯처럼 창궐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분들의 지적이 있기 전까지는 그 어떤 사람도 위와 같은 우리말글의 문제점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더러, 이 분들의 지적이 있고 나서도 소위 교수라는 분들은 (국어 실력이 형편없으면서도) 한동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고, 계속해서 논문이나 책을 비문 투성이로 써댔으니까요. (이오덕 선생님, 이수열 선생님, 두 분은 모두 대학에 적을 두지 않으셨죠.)

 

저는 이오덕 선생님과 이수열 선생님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두 분 선생님께서 각각『우리글 바로쓰기 1, 2, 3』과『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말 바로 쓰기』에서 주장하시는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리고 이 책들의 주장 가운데 거의 열에 여덟 아홉은 우리가 따라야 할 정확하고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 책들의 금과옥조를 잘 읽고 잘 새긴다면, 우리는 우리말글을 한결 더 정확하고 아름답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이수열 선생님의『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말 바로 쓰기』는 저술가나 번역가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 책의 내용 중 열에 여덟 아홉 정도는 우리가 꼭 따라야 할 내용이지만, 몇 가지는 매우 논쟁적인 주장이기도 하더군요. 이에 대한 논의는 우리말글 바로 쓰기 작업의 하나로서 언젠가는 해야 될 줄로 압니다. 저는 깐깐하신 비판정신을 지니신 이수열 선생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


마늘빵 2007-03-21 21:21   좋아요 0 | URL
그때 한참 관련책 읽기에 몰두했을 때 계속 더 좁게 밀고 나가고 싶었으나, 당장 눈앞에 더 급한 주제들이 있는지라 그만두었더랬어요. 흠. 전공과 동떨어진 분야 중에서 제가 매우 관심갖는 주제입니다.

로쟈 2007-03-22 12:13   좋아요 0 | URL
댓글들을 많이 달아주셨네요. 뭉뚱그려서 몇 자 적으면, 저로선 서두에 적었지만 '사라져가는 언어' 문제와 '우리말 파괴'는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분리해서 다룰 수 있는 문제. '사라져가는 한국어'와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것은 대학에서의 영어 강의 같은 것이죠. 적어도 학문어로서 한국어의 장래는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제 일차적인 관심은 그 언저리에 있습니다...

이네파벨 2007-03-23 21:29   좋아요 0 | URL
qualia님 지적과..좋은 책소개 감사합니다. 꼭 읽어볼께요...

qualia 2007-03-26 19:28   좋아요 0 | URL
이네파벨 님, 안녕하세요. 번역하시느라 힘 많이 드시죠. 좋은 번역을 위해 고심하시는 모습...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네요... 고맙습니다.
 

앤디 워홀 전시회가 '또' 개최되는 모양이다. '또'라고 한 것은 지난 연말에 '앤디 워홀 그래픽'전이 개최된 바 있기 때문이다(관련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1026004). 이름하여 '앤디 워홀 팩토리'. 실제고 워홀 자신이 이끈 예술가 집단을 '팩토리'라고 불렀다. 전시회 소식은 아침에 '필름2.0'에 '앤디 워홀의 영화세계' 기획기사가 다루어지고 있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여기서는 한국일보의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참고로, 그의 영화들은 국내에서는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라고 한다. 워홀과 팝아트 애호가들에게는 '굿뉴스'이겠다.

한국일보(07. 03. 19)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 팩토리' 展

‘팝 아트의 왕자’ 앤디 워홀(1928~1987)이 죽은 지 20년, 그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 <앤디 워홀 팩토리>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15일 시작됐다. 워홀의 고향인 미국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미술관에서 시기별 대표작 200여 점을 가져왔다.지난해 가을 서울대미술관과 쌈지길 전시로 불기 시작한 워홀 붐에 정점을 찍는 대형 전시다.

워홀은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만개한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다. 팝 아트는 신문ㆍ잡지ㆍTV 같은 대중 매체, 상품 광고, 쇼윈도 등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만화 주인공, 영화 배우 등 대중적인 요소를 작품에 끌어들여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이분법을 무력화했다. 작품을 만드는 기법도 실크스크린처럼 상업 광고 등에 자주 쓰는 대량 복제 인쇄 방식을 썼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고 했던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Fctory), 즉 ‘공장’ 이라고 불렀다. 그는 ‘공장’에서 작품을 대량 생산했다. 똑 같은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그러니까 손 작업이 아니라 기계를 써서, 많은 조수를 부려서, 공산품 제조하듯 지겨울 만큼 반복적으로 찍어냈다. 마릴린 먼로, 마오쩌둥 같은 유명인이나 캠벨 수프 깡통 같은 일상 용품의 이미지를 수없이 복제해서 나열했다. 그는 작가의 독창성이나 개성, 감정까지 없애버린 대량생산물로서의 예술을 원했다.

왜 그랬을까. 아니, 그런 것도 예술인가. 친절한 설명은 아니지만 워홀이 했던 말이 있다. “나는 지겨운 것들을 좋아한다. 왜냐고? 당신이 곧이곧대로 똑 같은 것을 더 많이 쳐다보면 볼수록, 의미는 더욱 더 사라져 없어지고, 당신은 더욱 더 텅 빈 상태가 되어 더욱 더 좋은 기분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마오쩌둥이나 캠벨 수프 이미지로 벽을 도배하고 동선을 이리저리 엇갈리게 배치하는 등 워홀의 공장 분위기를 살려 공간을 독특하게 연출했다. 60년대 캠벨 수프 통조림 연작부터 꽃, 마릴린 먼로, 재클린 케네디 등 유명인의 초상 복제, 교통 사고나 추락사, 케네디 암살 사건 등의 신문 보도 이미지를 복제한 재난 연작, 다빈치나 보티첼리 등의 르네상스 명화를 차용한 작품 등 워홀의 주요 작품을 망라하고 있다.

특히 죽음의 이미지를 다룬 재난 연작은, 얼핏 화려하거나 경박하게 느껴지는 워홀의 세계가 지닌 깊은 어둠 혹은 정신적 외상의 흔적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들 연작은 끔찍한 사고나 죽음조차 대중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내보임으로써 일상적인 것으로 소비시키고 마는 현대의 상황을, 미동도 하지 않고 차갑게 보여준다. 가발을 쓰거나 여장을 한 채 찍은 자화상도 인상적이다. 실크스크린 작품들 외에 드로잉, 사진 작품, 전시 포스터 등도 볼 수 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워홀이 찍은 영화 8편을 상영한다. 워홀은 1960년대 후반부터 100편이 넘는 장편 영화를 제작했다. 감정을 배제한 채 장시간 꼼작하지 않고 극히 일상적인 장면을 관찰하고 기록한 그의 필름은 연출과는 거리가 멀다.

워홀은 스타가 되고 싶어했고, 소원대로 스타가 되어 지금도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돈도 왕창 벌었다. 그가 남긴 재산은 무려 1조 달러다. 작업실로 유명인들을 불러 시끌벅적 파티를 할 때도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며 일을 했던, 일 중독자이기도 하다.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워홀이 왜 그리 대단하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번 전시는 그런 질문들에 흥미로운 열쇠를 제공한다. 6월 10일까지.(오미환 기자)

07. 0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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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3-2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한국방송 토요일 문화다큐시리즈 주제가 앤디 워홀이었어요.아기 앉고 왔다 갔다하면서 봤는데....잭슨 폴락 이야기 보다가 아기가 울어서...워홀 이야기는 별로 못봣다는.^^

로쟈 2007-03-20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를 '앉고' 계셨다니 쇼킹합니다.^^; 그가 벌어들인 돈 액수로도 확인되는 것이지만 자본주의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예술가형이 아닌가 싶어요...

드팀전 2007-03-20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아기를 안고...ㅋㅋ
 

아침에 경향신문에서 읽은 칼럼은 '대학 밖에서 꽃피는 인문학'. 실제 대학 밖의 비공식 '강의'도 한두 가지 맡아서 하고 있는 처지라 눈길이 가는 제목이었다. 기사의 낙관적인 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교양 인문학의 향방과 관련한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더불어, 대학가 교양 과목들의 폐강 현황을 다루고 있는 문화일보의 기사도 옮겨놓는다. 이 또한 호들갑을 떨 만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고, 은근히 '교양과목' 경시 풍조를 정당화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있지만 '데이터'로서의 가치는 있다(사실 교양 과목의 폐강에는 대학마다 최소 수강인원을 30명 이상 등으로 '과도하게' 설정하고 있는 것도 주된 이유로 작용한다. 비용 절감 차원이라지만 그로 인한 '과밀 강좌'가 교양과목 개설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문화일보(07. 03. 19) '교양’이 무너지는 상아탑

교양 인문학과 제2외국어 강좌들이 대학에서 대거 퇴출되고 있다. 취업 준비에 목을 매고 있는 학생들에게 역사·문화·민속 등 순수 인문학 교양 강좌는 ‘사치’가 됐기 때문이다.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컴퓨터 교양 강좌도 대거 폐강됐다. 학생들의 관심이 ‘개발’보다는 ‘활용’으로 넘어간 세태 변화를 반영한 것이지만, 교양을 쌓아야 할 대학신입생들로부터 ‘교양’을 아예 배제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교양 인문학은 퇴출 1순위 = 역사와 문화 등 교양 인문학 강좌들은 대부분 대학의 폐강 리스트에서 발견된다. 성균관대에서는 ‘일본역사탐구’, ‘세계영화와 문화교류’ 등 10여개의 역사·문화 관련 강좌가 최소 수강인원을 못채워 폐강됐다. 중앙대에서는 ‘문화 이해와 수사학’ ‘현대사회와 민속’ 등이, 한양대는 ‘동아시아 문화’ 등이 폐강 명단에 포함됐다. 철학 관련 강좌도 인기가 없기는 마찬가지. 동국대에서는 ‘철학·과학·생명·가치’, ‘현대사회의 철학적 이해’ 등의 강좌가 폐강됐고, 서강대에서는 ‘신학적 인간학’ 등이 기준 수강생을 채우지 못했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수용자 중심의 교육으로 바뀌고 학생들이 취직 준비 등을 우선시하면서 실용적인 학문에 치우쳐 공부하는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 했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도 “최근 대학들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배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지식의 변화속도 가 매우 빠른 현대 사회에서 대학은 오히려 기초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2외국어도 관심 밖으로 =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이 확대되면서 중국어 인기는 여전하지만 독일어나 프랑스어 등 전통적 제2 외국어는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중앙대에서는 ‘독일문화와 예술’, ‘독일 정치와 사회’ 등이 폐강됐고, 성균관 대에서도 ‘독어의미론’ 등의 강좌가 폐강됐다. 숙명여대의 ‘ 독일어1’ 강좌, 단국대의 ‘기초독일어’ 등의 강좌도 폐강됐다. 동국대에서는 ‘기초독일어’, ‘기초불어’ 등이 폐강됐다.

김영주 숭실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사실 우리나라에 진출한 독일 기업만도 300여개가 되는데 세계화가 미국화로 오인되면서 독일 관련 과목들이 폐강되고 있다”면서 “진정한 세계화를 위 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컴퓨터 언어도 옛날 얘기 =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된 기초 강좌들도 쇠퇴 일로를 걷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인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학생들의 관심은 컴퓨터 활용에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에서는 ‘자바(JAVA)프로그래밍’과 ‘웹 프로그래밍’ 강좌가, 단국대 ‘비주얼베이직(Visual Basic) 입문’, 동국대 ‘프로그래밍기초와실습’ 등의 강좌가 폐강됐다. 연세대의 ‘컴퓨터와 IT 기술의 발전과 활용’, 성신여대의 ‘IT와 지리정보’ 강좌 등도 폐강 리스트에 올랐다.(음성원 기자)

경향신문(07. 03. 19) 대학 밖에서 꽃피는 인문학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필자에게 최근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최근 한 단체의 초청을 받아 근현대사를 강의했는데, 수강생들의 자세가 대학과 달리 진지하고 열정적이어서 내심 놀랐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복지재단이나 장애인·아동생활시설 등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 그는 사회복지사들이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역사·철학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인문학의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이동국 학예사도 지난 겨울 추사 학술강좌에 참여한 수강생들의 열기에서 인문학의 힘을 느꼈다고 전했다. 1월부터 두 달간 주말에 열린 특별 강좌에는 매번 200명 가까이가 몰렸다. 연 인원이 1000명에 달했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 등 모두 21개 강좌가 개설됐는데, 토요일 1시부터 7시까지 진행된 강좌를 빠짐없이 들은 사람도 상당수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 학예사는 “전시장에서 구체적인 작품을 놓고 강의한 게 관객들에게 어필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인문학이 꽃피고 있다. ‘인문학 위기 선언’이 나온 지가 불과 몇달 전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이다. 만개하지는 않았어도 최소한 개화할 조짐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물론 대학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의 인문학은 여전히 ‘위기’이다. 문학, 역사학, 철학 관련 학과들은 학생수를 채우지 못해 폐과 대상 1순위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들이 대학원 중심 대학을 외치지만, 정작 진학자가 없어 공허한 울림이 되고 있다.



반면 캠퍼스 밖의 인문학 공부의 열기는 뜨겁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안 연구공동체를 표방하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이다. 이곳은 그간 단기적으로 운영해온 강좌를 올해부터 학기제로 바꿔 장기 강좌 중심으로 꾸렸다. 철학, 고전강독, 문화예술, 글쓰기를 강의한다. 수강료가 과목당 35만원씩 하는데도 접수를 받기 시작한 지 1주일도 안돼 정원을 다 채웠다. 강좌뿐 아니라 회원들의 공동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는 ‘수유+너머’는 지난주 ‘모더니티의 지층들’이라는 묵직한 사회학 개설서를 펴내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의 ‘인디고서원’은 이제 꽤 이름을 얻었다. 인디고서원은 서점이다. 그러나 인디고는 책 판매에 그치지 않고 독서 프로그램 운영, 명사 초청 강연 등을 통해 청소년 대상의 인문학 교육장이 되고 있다. 이밖에 철학아카데미,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디지털문화예술아카데미 등에서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최근의 인문학 교육이 서민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회 노숙인다시서기 지원센터는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을 개설하고, 광명시는 ‘광명시민대학’에 인문학 과정을 포함시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경기광역 자활후견센터’와 ‘관악일터나눔 자활후견기관’ ‘노원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도 각각 지역민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지난주에는 의정부교도소에서 국내 처음으로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빈자(貧者)의 인문학’을 내건 얼 쇼리스가 창안한 클레멘토 코스를 한국에 적용한 것이다. 10년 전 뉴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철학, 예술 등을 가르쳤던 얼 쇼리스는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정당한 힘을 갖게 해 준다”고 믿고 있다. 인문학(humanitas)을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학문’이라 한다면, 쇼리스의 ‘빈자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본령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쇼리스의 인문학 강좌는 이제 캐나다, 호주, 멕시코 등 4개 대륙으로 수출돼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인문학 위기는 학문 또는 인문학자의 위기라기보다는 인문적 지적 풍토의 허약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측면에서 교양을 쌓고, 자신을 성찰하며, 삶을 바꿔나가는 ‘장외의 인문학’ 열기는 분명 주목할 일이다.

교육부와 학술진흥재단은 올해 인문학 위기 타개를 위해 200억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위기에 처한 대학’을 지원하기 위해 쓰여질 터이지만, 대학 밖의 인문학 활동에 대해서도 지원 방안이 검토돼야 하지 않을까(*국가에서 지원하는 인문학은 여전히 '대학 밖'의 인문학일까?). 그간 많은 학술지원사업이 내실보다는 외형에 치우쳤다는 비난이 많았다. 이제는 인문학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공부와 연구 활동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진정한 대학은 넓은 캠퍼스가 아니라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지는’(‘大學’) 곳이기 때문이다.(조운찬 문화1부장)

07. 0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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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19 16:18   좋아요 0 | URL
이런 현상들이 제가 음모론을 신봉하는 이유입니다. 후후

토토랑 2007-03-19 17:28   좋아요 0 | URL
흠흠... 중간에 조금 딴지이긴 하지만요 로쟈님..
IT 인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점점 유입인력이 감소하고 있어서
요즘은 인력소싱하기도 힘들어요 --;;;
몇년만 지나면 IT쪽 인력난이 대두될거에요..아마.. 인문학과는 상관이 없지만 그냥 주절주절 하고 갑니다.

기인 2007-03-19 17:48   좋아요 0 | URL
음 퍼갑니다;; 수료하면 강의 자리 구할 수 있을지 원;;
 

한 대학신문에 기고했던 기사를 옮겨놓는다. 갑작스런 청탁을 받고 급조한 것이어서 미흡한 대목들이 없지 않은데, 핑계라면 분량이 너무 한정돼 있었다는 것. "보드리야르의 사상과 업적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 그의 학문(사상)이 어떻게 전수돼고 있는지"에 대해서 12매 분량으로 쓰는 일은 나의 능력을 벗어난다. 그저 한 '독자'로서 몇 가지 인상만을 나열하는 데 만족했다.  

대중적으로는 ‘매트릭스’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가 세상을 떠났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하이퍼리얼리티의 이론가에게 걸맞은 표현을 쓰자면 이 세계로부터 ‘로그아웃’했다. <사물의 체계>(1968)로 지식사회에 명함을 내민 지 얼추 40년만이다.  

그리하여 그의 학문적/이론적 삶에 대한 본격적인 독해와 평가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 되었다. 그것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네는 두 가지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처럼도 보인다. 빨간약이냐 파란약이냐, 혹은 보드리야르를 기억할 것인가 잊어버릴 것인가.

 

빨간약을 입에 넣을 경우 우리에게 펼쳐지는 초기화면은 1960년대 중반 프랑스 지식계의 풍경이다. 보드리야르는 낭테르대학에서 <현대세계의 일상성>(1968)의 저자 앙리 르페브르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하고 롤랑 바르트의 <모드의 체계>(1967)을 연상시키는 첫 번째 연구서를 출간한다. 그것이 <사물의 체계>이다(*국역본이 신뢰할 만한지는 의문이다). 이 ‘사물’에 대한 관심은 그의 이론적 여정에서 줄곧 견지된다.

 

 

 

 

 

 

 

 


자신의 이론적 여정을 요약해주고 있는 책 <암호>(2000)에서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첫 번째 ‘패스워드’가 바로 ‘사물(objet)’이었다. "나에게 사물은 암호 중의 암호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러한 관점을 취했는데, 왜냐하면 주체라는 문제틀과 단절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물의 문제는 (...) 지금까지도 나의 사유의 지평으로 남아있다."고 그는 적었다.


보드리야르가 다루는 사물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상품’들이다. 1960년대는 사물들이 득세하게 된 시대, 본격적인 상품들의 시대였다(동시대 작가인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1965)을 떠올려보라). 그러한 시대를 일컫는 말이 ‘소비사회’이며 이 새로운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더 이상 생산이 아니라 소비이다. 그의 초기 사회학적 작업은 이 소비사회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에 바쳐진다.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소비사회에서의 상품가치는 ‘사용가치/교환가치’라는 문제틀만으로 더 이상 유효하게 분석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재평가하면서 ‘기호가치’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요즘 쓰는 말로는 ‘브랜드가치’가 예가 되겠는데, 가령 사치성 소비재, 소위 ‘명품’에 대한 수요는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란 용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명품의 가치는 말 그대로 ‘이름값’이기 때문이다.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1972)은 그러한 ‘이름값’으로서의 기호가치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다. 그에 따르면 상품은 더 이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데 봉사한다.    


상품들과 기호가치가 범람하는 보드리야르적 세계는 1970년대 후반 이후에 컴퓨터화되고 디지털화된 세계로 ‘버전-업’된다. 그것이 그가 펼쳐놓는 두 번째 화면이며, 보드리야르는 이것을 ‘코드’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부른다. 여기서도 여전히 사물들은 그의 주된 관심대상이지만 그 존재론적 차원은 변화한다. 이것은 가상세계이지만 현실과 가상이라는 구분/구획 자체가 무효화되기에, 즉 더 이상 원본과 모사물(시뮬라크르)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가 유지되지 않기에 ‘가상화된 현실’이고 ‘현실화된 가상’이다. 그러한 현실-가상을 축조하는 방식이 시뮬라시옹이다(이 새로운 시대, 포스트모던은 ‘나훈아’의 시대가 아니라 ‘너훈아’의 시대이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세계는 가역성의 원리가 지배하며 극단적으로 말해서 죽음조차도 불가능한 세계이다(우리는 로그아웃할 수 있을 따름이다). “걸프전을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악명 높은 주장은 그러한 차원에서 제기된다. 이 ‘불가능한 죽음’을 이제 우리는 ‘보드리야르’라는 기호-이름에도 되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름의 주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가 보드리야르라는 ‘빨간약’을 먹을 때마다 우리 눈앞에 언제나 되살아날 것이다.

 

07. 03. 19.

 

 

 

 

 

 

 

 

 

 

P.S. 짤막한 기고문을 작성하는 일이라고 해서 품이 덜 드는 건 아니고 나는 부랴부랴 '크리티컬 씽커즈' 시리즈에서 리처드 레인이 쓴 <장 보드리야르>(루틀리지, 2000)을 구해 읽어보았다. 물론 서론과 문헌해제를 주로 읽어본 것이었지만(*최근 번역돼 나왔다. -08. 03. 07). 

 

 

 

 

 

 

 

 

 

그리고 몇몇 관련문헌들을 읽어보았다. 이런 글을 쓸 때 요긴한 책은 존 레흐트의 <현대 사상가 50>과 존 페파니스의 <이질성의 철학>, 그리고 미셸 리샤르 등이 쓴 <오늘의 프랑스 사상가들> 등이다. 마단 사럽의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도 보드리야르에 대해서 한 장이 할애돼 있다(이 장은 개정판에 추가된 것이며, 내가 갖고 있는 영역본 초판에는 빠져 있다).

 

한편, 처음 작성한 원고에는 다음과 같은 자기변명조의 문단이 포함돼 있었다: "내게 잠시 부여된 역할은 얼치기 장의사의 그것이다. 관을 짜기 위해서 죽은 자의 치수를 재듯이 그가 남긴 이론 혹은 사상의 사이즈를 재는 것이 나의 몫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하지만 내가 거들지 않더라도 견적은 이미 다 나와 있다!). 모사물(시뮬라크르)이 실재를 대신하는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보드리야르 자신이 ‘지적 사기꾼’이란 혹평도 심심찮게 들었던 만큼 그의 사상에 대해서 섣부른 관견을 늘어놓는 일이 심하게 무례한 건 아니겠다." 그건 내가 다른 사상가들에 관해서였다면 섣불리 이런 일을 맡지 않았을 거란 얘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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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3-1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네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봤어요.

로쟈 2007-03-19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닥을 잡고 읽으시면 그렇게 이해 곤란한 얘기들을 늘어놓는 사람은 아닙니다.^^;

faai 2007-03-20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짧게 쓰기가 더 어려운 법이죠.
 

<롤리타>로 유명한 러시아계 작가 블라디미르 나코보프의 저명한 인시류(나비/나방류) 전문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롤리타>를 제외하면 변변한 번역 작품이나 무게 있는 연구서를 접할 수 없는 게 국내의 현실인데, 이 인시류 학자 나보코프의 전모를 다룬 중량감 있는 저서가 번역/출간됐다.

구내서점에 갔다가 냉큼 사들고 온 책의 타이틀이 바로 <나보코프 블루스>(해나무, 2007)이고, '한 천재 문학가의 과학 오디세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인시류 학자인 커트 존슨과 <뉴욕타임즈> 편집자인 스티브 코츠. 그리고 제목의 '블루'는 "남아메리카의 가장 외진 지역에 서식하는 다양한 나비 무리를 아우르는 명칭"으로서 나보코프는 ‘블루’ 전문가였다고 한다. 언젠가 나보코프 관련서들을 검색하다가 보아둔 책이었는데, 이렇듯 빨리 국내에 소개될 줄은 몰랐다(원저는 1999년에 나왔다).

인시류학자로서 나보코프의 전문성은 1945년 하버드대 비교동물학 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위촉되었던 사실에서도 확인되는데, 그는 블루의 분류체계에 관한 여러 새로운 논문을 발표한 바도 있으니 나비 수집과 연구가 취미 수준은 넘어선 것이었다. 

책은 "만약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나비 연구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고백한 나보코프의 나비에 대한 특별한 열정을 다루고 있는데,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생전에 쓴 추천사에 따르면, "두 저자 존슨콰 코츠의 생물학적 전문성과 나보코프의 업적에 대한 철저한 이해 덕분에 우리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문학자이자 과학자가 지니는 두 가지 표상을 통합하고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뒷표지에 나란히 달려 있는 또다른 추천사에 따르면 "한 전설적인 작가의 과학적 발견과 그것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과정, 거의 반세기가 지난 후의 재발견과 확장을 다루고 있는 <나보코프 블루스>는 한마디로 놀라운 책이다. 과학적 발견의 아이러니와 우연, 빠르게 확장되어가는 생물다양성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어 누구에게라도 매력 있게 다가갈 것이다."

이 추천사의 필자가 저명한 나보코프 연구자이자 가장 권위있는 평전의 저자 브라이언 보이드이다. 그가 쓴 전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시절'과 '미국 시절' 두 권으로 돼 있는데, 이미 독어와 러시아어 등으도 완역되었다(아래 이미지는 러시아어본 <미국 시절>과 나보코프의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

나보코프에 대한 전기가 소개된다면,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과 함께 가장 먼저 번역되어야 할 책이다...

07. 03. 19.

P.S. 참고로, 나보코프의 나비 연구에 관한 책은 <나보코프 블루스>가 처음이 아니다. <나보코프의 인시류: 유형과 종류>(서울기획, 2001)란 책이 출간된 바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Joann Karges이고 지난 1985년에 출간된 아주 얇은 책으로 <나보코프 블루스>의 참고문헌에도 포함돼 있다. 국역본은 오래전에 국립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복사해둔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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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7-03-19 17:41   좋아요 0 | URL
Ada or Ador: Family Chronicle인가 하는 책에서....(배다른 오누이의 사랑...성...을 다룬 파격적 소설..)..나비나 곤충 관찰에 대한 묘사가 많이 등장했던걸로 기억해요...주인공인 Ada가 소녀시절 곤충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던...기억이...
나보코프...참으로 독특한 천재지요....

로쟈 2007-03-19 19:58   좋아요 0 | URL
나보코프 애독자시네요.^^ 다른 작품에서도 나비 모티브가 자주 나오는데, 나보코프는 국내에 소개된 작품 수가 너무 적어서 아쉽습니다...

수유 2007-03-19 20:39   좋아요 0 | URL
저도 냉큼 사왔습니다..그리고 링크하실줄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젊은 나보코프와 늙은 나보코프는 많이 다르군요..그의 인생여정과 관련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