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드나드는 사이트들을 둘러보다가 똑같은 서평이 올라와 있어서(그러니까 알라딘 은어로 '중복서평'이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번에 슬라보예 지젝에 관한 기사를 쓴 오마이 뉴스의 '기자'가 한겨레의 '필진'으로도 참여하는지 같은 서평기사를 중복으로 올려놓은 것. 숀 호머의 <라캉 읽기>(은행나무, 2006)를 다룬 이 서평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93045)에 지난 18일자로, 그리고 한겨레(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91868.html)에는 20일자로 기사등록이 돼 있다(메인화면에 띄워놓았는데 '중복'이란 얘기는 없다). 훌륭한 서평이라면 굳이 '중복'을 문제삼을 필요가 없겠지만, 부정확한 내용에다 오타까지 교정하지 않은 '부실한' 서평이다(오타는 따로 표시해두었다). 개인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거라면 참견할 이유가 없지만, 두 언론매체에 자주 발걸음을 하는지라 불평을 좀 늘어놓는다. 자사 사이트에 올려지는 기사라면 '관리' 좀 하시라고.  

오마이뉴스(07. 02. 18) 현대의 위대한 정신분석가-사상가 '라캉'의 대중적 읽기

라캉이란 이름을 글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약 5년 전이었다. 그 영향력에 비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너무 늦은 것 같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 때문에 5년 전 공들여 읽은 라캉에 대한 지식을 그 맥을 잇지 못하고 끊어 두고 있었다. 그러다 역시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알게 된 철학자가 지젝이며, 지젝의 최대 관심사가 라캉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쯤 되어서야 라캉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이해의 폭을 넓혀 놓으면 책읽기나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필자의 공부 생각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사실, 라캉은 프로이트나 니체, 마르크스만큼이나 현대의 중요한 이론가 사상가다. 시기적으로는 다른 세 명에 비해서 이후의 인물이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인물이지만 현대의 인문학 일반, 문화이론, 영화비평 등지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물론, 그의 사상의 본령인 정신분석학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특히 최근의 문화이론과 영화이론 등지에서는 라캉이 인용되지 않는 경우를 못 찾을 정도라고 한다. 최근 국내의 C영화지에서 시행한 평론상 수상에서 "라캉을 인용하지 않고는 영화비평을 할 수 없는가?"라고 말했을 정도이며, 세계적인 S영화잡지에서는 라캉 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정신분석학적 영화비평가 그룹이 있을 정도다.

라캉은 생전에 딱 한 권의 책만을 남겼고, 그의 이론의 대부분은 생애 내내 동료 연구자, 제자들과 진행한 세미나기록, 임상연구기록에 남아있다. '에크리'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아직 영문으로도 완역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필자에게 작년에 영어 완역본이 출간됐다고 전했지만 교정되지 않았다. <라캉 읽기>의 내용에 근거해서 썼을 뿐이라고). 워낙에 방대하고 난해한 그의 이론과 글쓰기의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연구자와 저자들이 라캉에 관한 개설서나 읽기 형식의 책을 대단히 많이 내놓았다. 숀 호머의 <라캉읽기>도 그중의 하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라캉읽기를 읽기 위한 라캉읽기'라는 점이다. 즉, 아직 초보자들에게 라캉의 원전을 읽는다는 것은 한국어 번역본이 드물기도 하지만 워낙에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여타의 라캉 개론이나 라캉읽기를 읽는 것이 초보자에게는 적당하고, 그전에 '에피타이저'로 읽을 만한 책이 숀 호머의 <라캉읽기>다(*'라캉읽기를 읽기 위한 라캉읽기'가 무슨 말인가?).

그러나 숀 호머의 <라캉읽기>를 얇고 작은 책이라서 얕봐서는 안 된다. 이 책에는 라캉 이론의 구조가 잘 설명되어 있고, 주요 용어를 중심으로 그의 이론의 에센스가 잘 저며져 있다. 더구나 번역자 김서영이 일반번역자가 아닌 국내에서는 제법 알려진 라캉 전공자라서 번역이 굉장히 충실하고 좋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이전에 소개한 대로, 숀 호머의 책은 지젝도 추천하고 있는 입문서이다).

숀 호머의 <라캉기>는 꼭 라캉의 이론을 교조적으로 다룬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라캉을 가운데 둔 의미망의 그물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여러 인물들, 예를 들면, 지젝, 크리에스테바, 아리가리, 버틀러 등의 이론도 작은 분량이지만 소개되어 있다(*각각 '크리스테바'와 '이리가레' 혹은 '이리가라이'의 오타이다).

그 외 특이할 만한 점은 라캉이 직접 취급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론의 신봉자들이 취급하는 분야인 문화이론과 영화비평도 상당한 부분 소개되어 있어서 책읽기의 즐거움 배가된다.

한 가지 흠이자 천만다행 한 점은 그의 생애 후기에 소개되는 수학이론을 사용한 여러 설명들이 이 책에는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난삽한 부분이 생략된 이유는 숀 호머의 해설에 따르면 이 책이 라캉읽기의 맛보기이고, 실용목적상 문화이론이나 영화비평을 하는 사람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더 진보된 라캉읽기를 원한다면 책 뒤에 소개된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라캉이론은 사실 그 의미가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생애에 걸쳐 진화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리고 워낙 난해하고 요약을 거부하는 그의 이론의 특성, 원래 정신분석학의 임상소견에서 출발했다는 특성 탓에, 재차 그의 이론을 옮겨적는 사람은 굉장히 임의적(?)으로 요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라캉의 이론은 보통 상상계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한다. 어린이가 거울을 보면서 파편화된 것으로서의 자아의 이미지를 확보한다. 그러나 그 자아라는 것은 굉장히 파편화되고 비조직화된 것이다. 우리가 통상, 자아를 통일된 실체로 알고 있는 데에 반하여 라캉의 자아란 분열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자아는 유아기 내내 상상계라고 부르는 동화적인 세계 속을 산다.

그러나 언어를 습득하고,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징계라고 불리는 단계에 진입을 한다. 거칠게 말하면, '언어=상징계'라고 까지 할 수 있는데, 구조주의 사유의 영향을 받은 라캉에게 언어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아다시피 언어는 구조화되어 있는데, 라캉에 따르면, 무의식도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은 그의 이론과 프로이트의 이론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또 등장하는 것이 실재계와 대상a의 개념이다. 실재계란 상징계 바깥에서 심연처럼 상징계를 지탱하기도 하며, 또는 실재계의 잔여라고 부를 수도 있는 개념이다(*'실재계'가 어떻게 '실재계의 잔여'가 될 수 있나?). 이렇게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가 라캉이론의 기본개념이다.

그리고 추가되는 것이 팔루스와 성차의 개념인데, 이 두 가지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팔루스는 프로이트 이론의 '남근'과는 의미상 차이를 가진다. 아이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미워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의 팔루스가 되고자 하지만, 아버지에 의한 거세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럴 수가 없고 아이는 성인이 되고 다른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 공포증에 대한 이론이다. 그런데 라캉에 의하면, 이 팔루스(또는 남근)은 의미가 발전한다(*팔루스와 남근은 '의미상 차이'를 갖는데, 어떻게 '팔루스(또는 남근)'이 되는가?).

아이는 어머니의 팔루스가 되고자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아버지가 존재하며, 팔루스는 의미가 확대되어 해석된다. 팔루스는 일종의 욕망의 대상이다. 팔루스는 단지, 남근으로서만 이해하면 곤란하고, 욕망 같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베일'이라고 불리는 것 뒤에 팔루스가 있다고 한다. 거기에 욕망의 본질이 숨어 있다. 아이가 어머니의 팔루스가 되고자 하지만 불가능한 것처럼, 사회에서 욕망의 실현은 무한정 지연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지젝같은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와 연관시켜 자본주의적 모순을 설명하는 데에도 응용한다.

팔루스와 성차에 관한 이론 때문에 라캉주의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당하기도 하는데, 숀 호머에 의하면 그것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라캉의 이론은 이외에도 아주 다양한 내용들이 많고, 특히 영화비평이나 문화이론으로 응용을 하면 정말 재미있는 글들이 많다. 관심 있는 분들의 독서를 권한다.(*관심있는 분들의 독서를 권장하는 취지는 환영할 만한 것이나 그러한 권장은 '기사'로서의 요건을 충족시킨 이후에나 빛을 발할 수 있는게 아닐까? 이 서평의 제목에서 강조되어야 할 대목은 '라캉'이 아니라 '대중적' 읽기였다).

07. 0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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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돌이 2007-02-2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리까리'하네요.'라캉일기'도 있다면 재밌겠네요.저 시리즈에서 일본인이 쓴 '라캉의 정신분석' 나온 것 같던데 짬날때 서평 부탁합니다.

로쟈 2007-02-2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가리'는 정말 고의적(?)이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라캉의 정신분석>이 나온 건 봤지만 구매할 생각은 없습니다. 라캉의 용어들이 일어로는 어떻게 번역되는가를 얼마간 엿볼 수 있을 거라는 외에 특별한 관심을 끄는 책은 아니구요. 저로선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를 읽어보는 게 더 시급하며 더 유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sommer 2007-02-22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캉과 정신분석' 중에서 '오브제 a와 황금수(비)'라는 장을 잠깐 읽어 봤는데, 흥미로운 해석이더군요. 다만 책의 목차를 훑어보니, 라캉의 초기의 '로마강연'-무의식에서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즉,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이동-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지젝 같은 이가 시도하고 있는 전략들에까지 미치는 길은 험난하지 않을지 생각이 들더군요...

로쟈 2007-02-22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ture님의 서평을 기다리는 게 낫겠네요.^^
 

지난주엔가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수다에 대한 독후감으로 '정성일 아줌마와 자크 랑시에르'란 페이퍼를 쓰겠다고 예고한 적이 있다. 그가 지난 계절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는 랑시에르의 책 <영화 우화들>을 마침 내가 지난주에 구했기 때문에 그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려고 했었다. 아마도 이 달 안으로는 쓰기 어려울 텐데, 막간을 이용해서 자크 랑시에르를 소개하는 기사를 옮겨놓는다(아래 이미지는 <영화 우화들>의 영역본).

알튀세르 사단의 3인방 중 한 사람이었던 랑시에르에 대한 관심은 전적으로 슬라보예 지젝을 경유한 것이다(바디우와 아감벤 등도 내게는 모두 지젝이 소개해준 철학자들이다). 그래서 랑시에르에 관한 글들은 앞으로 '로쟈의 지젝'에 적을 두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론 주로 랑시에르의 정치철학과 미학 관련서들이 눈길을 끌었고, 나는 그의 저작들을 얼추 6-7권 정도 구해놓은 듯하다(랑시에르의 최대 미덕은 주저들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것이다). 조만간 번역서들이 나온다고 하니까 어쩌면 몰아서 읽어볼 수도 있겠다. 아래 '담비'의 기사가 그 워밍업이 되겠다.

담비(07. 02. 14) 자크 랑시에르 한국 상륙 예정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1940~)의 주저인 '미학의 정치' 등이 도서출판 울력을 비롯한 몇몇 출판사에서 한창 번역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지난 1980년대에, 알튀세르의 맑스 독해팀 일원이었다가 알튀세르와 틀어져서 다른 길을 걸어간 이로만 알려진, 아니 그 이후 15~16년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왔던 철학자다.

랑시에르의 한국 상륙은 "왜 그런 중요한 사람이 번역되지 않는지 정말 이상하다"라는 어느 소장 철학자의 말마따나 뒤늦은 감은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프랑스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뒤를 이어 지성계를 주름잡은 비판철학자 4인방 가운데 에티엔 발리바르는 윤소영 한신대 교수가 지난 80~90년대에 이미 소개해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프레드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같은 네오 맑시스트와 '따로 또 같이' 진격하면서 맑스주의가 90년대 후반까지 그 담론적 생명을 이어가는 데 골몰했고, 그의 동료인 랑시에르에겐 너무 무관심했다. 아니, 발리바르가 랑시에르를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 한국 학자들의 무관심이 더 컸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2명인 알랭 바디우와  E. 라클라우가 최근 들어서야 한국에 소개되고 있어 이들과 함께 랑시에르의 책들도 본격 조명될 조짐이다. 알랭 바디우의 책들은 현재 새물결 출판사에서 한창 번역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라클라우는 슬라보예 지젝의 책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의 서문을 통해 대중들과 얼굴을 '쎄게' 익혔으니, 아마 곧 주저가 소개돼 대학원생들이 손때를 어지간히 묻힐 것으로 예상된다(*라클라우/무페의 주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는 (다른 이름으로이긴 하나) 이미 번역돼 있고 지젝, 버틀러와의 공저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은 도서출판b의 근간 예정으로 돼 있다).

랑시에르의 책이 서점에 깔리기 전에 왜 지금 이 시점에 그의 주저들이 번역되기 시작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는 매우 극단적인 주체성의 이론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랑시에르는 현대사회가 선전하는 '자유', '평등' 같은 가치들은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고 '괘씸죄'를 건다. '배제된 목소리'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이기도 하며, 랑시에르의 표현대로라면 사회라는 건축물 속에 그 자신의 '공간'이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쉬운 예를 들면 한국의 외국인노동자들이 거기 해당하며, 일본의 불가촉천민으로 여겨지는 '부라쿠민(部落民)'이 여기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이 애초에 차단된 사람들이 있는데, 민주주의 체제이든 뭐든 간에 이들을 계산에 넣지 않고 호혜와 평등을 주창해왔다는 것이 랑시에르가 벌인 폭로전의 전말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랑시에르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해설을 몇차례나 썼다. 특히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 b, 2005)에서는 아주 길게 랑시에르의 비판이론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어 맛보기로서는 안성맞춤이다. 왜 지젝 얘기를 꺼내는가 하면 이런 랑시에르의 핵심주장은 얼핏 접하기에는 너무 '이상적'이고 '극단적'인 주장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고대 그리스의 예를 들며, 귀족정과 과두정이 상류층 체제라고 비판하며 스스로의 몫을 요구한 데모스 집단을 강조할 때는 "뭐지?, 원시민주주의로 돌아가자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젝은 랑시에르가 결코 앞뒤 재지 않는 원칙론자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운다.

랑시에르의 주장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서 풀뿌리 연대를 강조하는 요즘의 진보주의자들과 기본 멘탈리티는 동일하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렌즈를 국가 내부의 국부적인 현실에 맞출 때가 많기 때문에 훨씬 검증해보기 쉬운 쪽에 속한다.

최근 한국에는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화재가 발생해 3층에 머물던 외국인들이 대량 참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관리가 허술했다, 직원들 근무가 엉망이었다는 후속보도가 나오고, 이들 이주노동자들에게 보호한답시고 수갑을 채우고, 문을 밖에서 잠궈놓았던 정황이 알려지면서 성토여론이 일고 있다.

랑시에르는 바로 이런 존재들, 수갑에 묶여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외면함으로써 체제를 합리화해온 것이 오늘날의 정치철학이라는 것을 탁월하게 이론화했다. 또한 이들 정치철학들은 랑시에르 같은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데, 지젝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그것은 원정치(arche-politics), 초정치(para-politics), 마르크스주의적 메타정치, 극정치(ultra-politics)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중 극정치의 예만 들어본다면, 이들은 정치의 직접적 군국화를 통해 정치를 부정한다. 이들이 부정하는 정치는 물론 '사회에 자신의 몫이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 사이의 긴장과 투쟁으로서 발생하는 '사건으로서의 정치'를 말한다. 투쟁을 더 큰 투쟁으로 말소시키는 전략인데, 오늘날 급진적 우파가 계급 투쟁보다는 계급(또는 성) 전쟁에 대해 말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적 메타정치는 어떤 은폐를 가하는가. 지젝은 이 대목에서 프레드릭 제임슨을 빌려온다. 제임슨은 맑스주의가 때로 인간 행위를 실용성의 극대화로서 보편적으로 모형화하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극단적 판본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는데, 양자 모두가 고유한 정치적 사고의 필요성을 없애버리는 것은 똑같다는 지적이다. 그에 비해 랑시에르는 '언어의 모호성' 같은 문학이론을 철학적 사유 속에 도입하면서까지 정치라는 것의 미묘한 운동성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쉬운말로 정리하자면, 소수자들의 정치적 발언은 이러한 네가지 형태의 '부정'에 의해 정치적 시민권을 갖지 못한채 주변으로 끊임없이 밀려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들이 밀려만 나겠는가. 과거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아니면 그보다 더 이전의 프랑스혁명에서 끊임없이 확인되듯, 막히면 터지게 마련이다. 물론 랑시에르에 따른다면 터진다는 것은 물리적 폭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언로가 다양해졌고 사회의 기득권 섹트들이 수없이 쪼개져있는 현 상황에서는 다른 식의 정치적 투쟁이 가능하다는 점을 랑시에르의 이론은 환기시켜주는 듯하다. 경제적 성장을 이룬 중산층의 나태한 무의식을 겨냥한 랑시에르의 이론이 한국땅에서 얼마나 생산적으로 음미되고 변형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리뷰팀)

07. 02. 21.

P.S. 참고로, '담비'(http://www.dambee.net/)는 '담론비평'의 약자인데 최근에 문을 연 온라인 학술저널이다. 교수신문의 강성민 기자의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분가하거나 독립한 것이 아닌가 싶다(요즘 교수신문은 이름만 걸고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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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bi 2007-02-2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구입한 스리지Cerisy에서 열린 랑시에르 토론을 엮어 낸 책의 저자들을 보면 바디우의 독자들과 상당수 겹침을 봅니다. 사실 랑시에르는 영어권에 바디우보다 30년도 더 일찍 알려졌고, 이미 70년대 후반부터 그의 마오주의시절(저널<논리적 반란>)의 글들이 번역되었는데.. 아마도 60-70년대 영,미 알튀세주의자들의(초기 Radical Philosophy그룹) 영향일거라 생각됩니다... 어디에선가 그가 학위논문(<프롤레타리아의 밤>)에 도움을 얻기 위해 푸코를 찾아갔는데, 푸코가 랑시에르에게 한수 접어줬다는....^^

로쟈 2007-02-2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독자와도 얼마간 겹칠지 모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읽어본 건 아니지만 <미학의 정치> 같은 책들이 관심사와 맞아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전쟁(기사에서는 '6.25전쟁'이라고 표현)을 보는 시각은 전쟁의 발발원인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느냐, 외부에 있었느냐에 대한 관점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1)정통주의: 대리전(국제전), (2)수정주의: 내전 (3)절충주의: 복합전. 이 중 세번째 입장의 시각을 강화시켜주는 논문/책이 출간됐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 놓는다.

문화일보(07. 02. 20) "스탈린 동의 안했다면 6·25 없었다”

6·25전쟁은 내전인가, 아니면 국제전인가. 한국전쟁을 둘러싼 논쟁 중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전쟁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6·25전쟁은 복합전’이라는 내용의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근 발간된 ‘한국 현대사의 재조명’(명인문화)에서 수록문 ‘6·25전쟁은 복합전으로 시작되었다-내전설과 남침유도설에 대한 비판적 조망’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전개했다.

이 교수는 “스탈린이 1950년 1월30일 김일성의 남침에 대해 동의했으므로 전쟁이 일어났다”면서 “만약 동의하지 않았다면 국경충돌에 그쳤을 뿐 대량살상의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내전적 상황은 전면전 발발에 있어 ‘종속 변수’에 불과했으며, 전쟁의 직접적 발발 원인은 소련·중국·북한 등 3국 국제공산주의자들의 공모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보다 직접적으로 “전쟁의 근본적 책임은 미·소에 있다”며 “6·25전쟁은 ‘국제전적 내전’이 아니라 ‘내전적 상황을 이용한 국제전’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6·25전쟁을 둘러싼 논쟁 = 지난해 11월 노무현 대통령은 캄보디아 방문 도중 가진 교민과의 간담회에서 “우리가 옛날에는 식민 지배를 받고 내전도 치르고 시끄럽게 살아왔는데 대통령이 돼서 보니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다음날 국내 언론에서 문제가 됐다. 바로 ‘6·25전쟁은 내전’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문화일보를 비롯한 신문들은 이 같은 노 대통령의 좌파적 역사관을 비판했다.



1980년대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를 비롯한 이른바 수정주의사관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6·25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이 속속 제기됐다. 한국전쟁은 내전적 성격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또한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를 제외함으로써 북한의 오판을 유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른바 ‘남침유도설’이다.

수정주의사관이 등장하기 전엔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의 기습남침’이라는 게 6·25전쟁에 대한 정통 견해였다. 이는 곧 한국전을 미·소간 양대 진영이 맞붙은 국제전으로 파악하는 시각이었다. 한때 수정주의사관에 밀리던 이 같은 견해가 다시 힘을 얻은 것은 1990년 중반 무렵 구 소련 문서가 대거 비밀해제되면서부터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 소련과 북한 정권 사이에 오고간 문서자료들은 수정주의사관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얼마전에 소개한 바 있지만, 러시아에서도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서가 여러 권 나와 있다. 번역/소개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6·25전쟁은 복합전’ = 이 교수는 수록문을 통해 “처음에는 내전으로 출발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분단이 그 근본적 배경이었고 스탈린의 승인이라는 외인이 (전쟁) 발발의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복합적인 전쟁이었다”고 주장했다. 초기에는 내전과 국제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복합전쟁이었고, 미국과 중국의 개입으로 국제전적인 성격이 강화됐으므로 국제전적 요소는 결코 간과될 수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논지다. 따라서 종합적으로는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복합전’이라고 이 교수는 결론내렸다.

그는 또 전쟁 발발 이전 분단 과정에 대해서도 “민족 내부의 좌우대립(내인)과 외적 규정력(외인)은 분단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며 “외인이 없었다면 무조건 통일됐을 것이며, 내인이 없었다면 통일이 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외인이 내인보다 훨씬 압도적이고 중요했다”고 말했다. 만약 내인이 없었고, 미·소가 우리를 강압적으로 분단시키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면 통일이 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반도 분단의 성격에 대해서도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복합형 분단’이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내전적 배경과 국제전적 요인은 6·25전쟁 발발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다”며 “따라서 이 전쟁은 복합전이었으며, 내전이라거나 국제전이라거나 일방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이 두 요인이 결합된 양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영번기자)

07. 02. 20.

 

 

  


 

P.S. 작년 여름에 출간된 정병준 교수의 노작 <한국전쟁>(돌베개, 2006)에서도 저자는 "전쟁은 특정 시점에서 특정 세력에 의해 돌출적으로 창조·결정된 산물이 아니라, 미소·남북·좌우의 대립과 길항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물이었다. 즉 전쟁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햇던 미소라는 세계 패권국가의 대립, 남북한 간의 지역적 분립, 좌우익 간의 이념적 대결 등이 응축되어 폭발한 것이다. 그것은 해방 후 한국의 국내적·국제적 갈등 투쟁을 반영한 작은 우주의 빅뱅이었다."라고 적었다. 이완범 교수는 과연 기존에 나와있는 여러 연구서/연구자들의 입장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지 않아 아쉽다...

영어권의 새로운 연구서로는 윌리엄 스튝의 <한국전쟁 재고>(프린스턴대학출판부, 2002)가 눈에 띈다(태극기는 왜 엉뚱하게 그려져 있나?). 제목에 'Rethinking'이 들어간 것은 저자가 이미 <한국전쟁>(1995)이란 노작을 쓴 바 있기 때문. 커밍스의 시각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최근에 나온 국내 저자들의 <한국전쟁>에도 인용돼 있을 듯하다). 

참고로 스튝의 <한국전쟁>은 러시아판(2002)으로도 나와 있다. 생각난 김에 러시아책들을 인터넷서점에서 둘러봤는데 눈에 띄는 책 서너 권에 대해 몇 자 적어둔다. 먼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전투기 조종사의 경험을 토대로 이고르 세이도프 등이 쓴 <'세이버'의 재난: 한국전쟁의 에이스>(2006). 576쪽 분량이고 같이 나온 책 <미그 대 세이버>(2006)와 함께 한국전쟁 관련서로는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책이다(제목의 '에이스'는 적기를 많이 격추한 조종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미그'는 소련/러시아가 자랑하는 전투기 '미그기'를 가리키지만 '세이버'는 무엇인가?

Гроза "Сейбров". Лучший ас Корейской войны"Миги" против "Сейбров"

동아일보(06. 11. 08) 기사에 따르면, "1950년 가을. 6·25전쟁은 유엔 연합군의 참전에 이어 중공군의 도하(渡河)로 혼전일로였다. 연합군으로선 중국의 인해전술도 난감했지만 하늘도 골치였다. 중국이 소련제 제트전투기 미그(MIG)-15 카드를 내놓은 탓이다. 전쟁은 양보가 없다.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중국은 연합군의 화력을 병력으로 눌렀다. 연합군은 지상군의 부족을 B-29의 폭격으로 메웠다. 그러자 ‘폭격기 킬러’로 통하는 미그-15가 전장에 나섰다. 눈에는 눈. 미그기와 ‘쌕쌕이’ F-80의 정면승부만이 남았다." '세이버'란 그 미군의 '쌕쌕이' F-80(나중엔 F-86?)을 가리킨다.

한국전쟁은 세계 최초의 제트전투기간 교전이 이루어진 전쟁으로도 기록될 터인데, 결과는 어떠했을까? "11월 8일 신의주 인근 상공. 미 공군은 폭격기 B-29를 엄호하기 위해 F-80 4대를 띄운다. 이를 저지하려 미그-15 6대가 출격했다. 세계 최초로 벌어진 제트전투기 간의 교전이자 미국과 소련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의 충돌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투는 싱거웠다. 미그기는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격추(1대)까지 당하는 졸전 끝에 도망쳤다. 전투기의 성능보다는 신참으로 구성된 중국 조종사의 실력이 모자랐다."

"분노한 건 중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군사과학만큼은 미국보다 낫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중국 공군의 재정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소련군 조종사들이 전투에 참가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그기는 점차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상마저 어려워지자 미국은 승부수를 던진다. 시험 운용하던 신예 전투기 F-86 세이버를 긴급 투입했다. 당시 공중전이 ‘도그 파이팅(근접전)’ 위주였던 상황에서 최대 1.3km 밖에서 공격이 가능한 세이버는 한반도 제공권을 연합군의 품에 돌려준 명검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전쟁에 대한 (평균적인) 러시아인들의 관심은 주로 미군의 세이버기와 교전한 미그기와 그 소련군 조종사들에 가 있다는 걸 알겠다.

Загадочная война: Корейский конфликт 1950-1953 гг.Корейская война (1950-1953) и ООН

보다 '정통적인' 연구서는 토르쿠노프의 <수수께끼 같은 전쟁: 한국의 충돌 1950-1953>(2001)이 있다(왼쪽). 표지만 봐도 어떤 성격의 책일지 짐작된다. 오른쪽은 새로운 경향의 책인데, 바닌이 쓴 <한국전쟁과 유엔>(2006)이다. 한국전쟁 연구자들이 두루 참조할 만한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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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러시아가 본 한국전쟁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5-22 09:25 
    이달에 구한 한국전쟁 관련서 가운데하나는 아나톨리 토르쿠노프의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에디터, 2003)이다. 저자는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총장으로 재직중인 실력자.러시아 학술원(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며, 작년 봄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토르쿠노프의 '주저'가 바로<수수께끼 같은 전쟁: 한국전쟁, 1950-1953>(2000)이다(그밖에 한국 현대사에 대한 공저들도 갖고 있다
 
 
기인 2007-02-21 07:35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로쟈 2007-02-21 12:34   좋아요 0 | URL
쌕쌕이 기종에 오타가 있어서 수정했습니다...
 

현대와 삼성의 배구 맞대결 기사를 읽다가 손가락 가는 대로 끌려들어가 읽은 기사는 한겨레의 '재모아빠' 혹은 구본준 기자(http://wnetwork.hani.co.kr/bonbon/)가 쓴 '필진네트워크' 기사이다. 지면에 게재되는 기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건축사학자인 임석재 교수의 '거대한 자료실' 탐방기사인데, 얼마간은 부러운 마음으로 죽 둘러보았다(나는 내달 '고아원'에 있는 책들을 근처 다른 '고아원'에다 옮겨놓아야 한다). 저술가가 되면 이런 자료실을 갖게 되는지, 아니면 자료실을 마련해야 저술가가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한 가지 '모델'로 창고에 넣어둔다(하긴 이웃나라엔 '고양이 빌딩'을 갖고 있는 저술가도 있다고 하니 '저술가의 서재'가 특별히 놀랄 만한 것은 아니지만).

한겨레(07. 02. 16)[필진] 이것이 저술가의 서재다

2년쯤 전이었습니다. 모처럼 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를 만났는데, 근황을 묻자 “서재를 구해 책들을 옮겼다”고 하더군요. 새로 구한 서재는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광주라고 했습니다. 임교수의 집이 직장인 이화여대 근처 아현동인 것을 알고있던 저는 왜 가까운 집 놔두고 그렇게 멀리 서재를 구했는지 궁금해 다시 물었습니다. 임교수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20평짜리 집에서는 불가능한 지경”이란 겁니다. 게다가 자기는 공기 좋은 곳이 좋으니 금상첨화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자료가 얼마나 되기에 집까지 옮겨야 하느냐고 말이지요. 임 교수는 집안 전체가 자료로 가득찼다고만 빙긋 웃었습니다. 무척이나 궁금해서 언젠가 한번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5일, 임석재 교수의 광주 아파트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10여년 동안 무려 28권의 책을 쓴 우리 시대 대표적인 건축글쟁이, 그 글쟁이의 서재를 찾아가는 제 연재 기사 <한국의 글쟁이> (한겨레 출판섹션 ‘18도’섹션 참조) 열아홉번째 초대손님으로 임 교수를 모시게 된 것이 제가 임교수 댁을 찾아가게 된 경위입니다(*그러니까 다음주 연재가 '임석재 교수' 편이겠다).

임교수의 집은 광주 시내를 살짝 벗어난 언덕 위에 잡은 비교적 대단지 아파트였습니다. 평수는 제법 넓었는데 방이 5개 짜리더군요. “서울에서 드는 비용으로 2배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임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는 곳이 아닌 완전한 집필실로 마련한 공간입니다. 임교수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현관에서 보이는 집안 모습은 이 곳이 ‘거대한 자료의 바다’임을 이미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현관에서 마루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 같은 공간부터 철제 책장이 놓여있는 모습이었습니다.

IMG_2158(3232).jpg

집안 조금이라도 빈 공간에는 책장들이 열병하듯 서있었습니다. 마루는 그저 큰 방일뿐이었습니다. 마루 가운데에는 책상이 있고 나머지 모든 벽은 책장을 놓았습니다. 자, 마루 책상 앞에 선 임석재 교수입니다.

임 교수는 마침 슬라이드 필름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임교수는 글쟁이이면서도 사진을 직접 해결합니다. 사진을 거의 전문적으로 찍는데, 내년도 이화여대 다이어리를 임교수가 찍은 우리나라 전통가옥들 사진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52주별 그림으로 넣을 52개 전통가옥별로 좋은 사진을 고르던 차였습니다. 책상 위에는 슬라이드보관통과 사진을 살피는 도구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5개의 방은 방 하나 하나가 모두 서재였는데, 나름대로 분류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사진 자료를 넣어놓는 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별 자료방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건축가, 미술가, 철학자 등 개인들에 대한 자료들을 모은 방입니다. 또다른 방 2곳은 시대별 자료방입니다.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자료방, 그리고 19세기 이후 현대건축까지 자료방 등. 마루는 집필공간 겸 현대건축 자료들 공간입니다. 우선 근대건축 이전 자료들을 모은 방입니다. 카메라도 모두 이방에 놓았더군요.

조금의 빈 틈에도 책장을 넣을만큼 자료는 많았습니다.

각 자료들에는 찾기 쉽도록 종이로 항목을 붙여놓은 모습입니다. 임교수 자료실의 압권은 바로 슬라이드 사진을 모아놓은 방입니다. 물론 모두 임교수가 직접 찍은 필름들입니다. 부피가 나가는 책도 아니라 조그만 슬라이드 사진필름이 도대체 몇 개나 되기에 방까지 따로 만들었냐구요? 자그마치 20만개라고 합니다. 클리어파일처럼 생긴 두꺼운 파일철에 한 쪽당 20개씩 끼워 보관합니다. 자, 한번 보시죠.

보시면 낯익은 생활용품인 방습제 ‘물먹는 하마’가 있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습기흡수용품을 넣은 것은 슬라이드 필름이 습기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엽기적인 것은 이 필름철 한쪽한쪽 사이에 넣기 위해 신문지를 크기를 맞춰 1만쪽을 잘라놓은 점입니다. 습기 빨아들이는데 신문지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임교수가 신문을 주워다 모은 뒤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종이를 잘랐다고 합니다. 정말 자료 관리가 저술가에겐 생명과도 같구나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진철에는 꼼꼼하게 필름 항목을 적어놓았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의 이름이 보이네요. ‘English Baroque, Christoper Wren'.

(#크리스토퍼 렌은 영국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갑니다. 원래는 자연과학자로, 뉴튼이 칭찬할 정도의 대단한 양반이었다는데, 옥스퍼드대 천문학과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놔두고 건축가가 되었답니다. 참 재주도 많은 분이죠? 대표작은 영국 세인트폴 대성당입니다. 이만틈 설명하고서 사진도 안보여드릴 순 없으니 세인트폴 성당 사진 첨부합니다.)

학자들의 일상은 자료와의 전쟁이자 동고동락입니다. 스스로 분류한 자료가 아니면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불가능한 도전을 시도하게 됩니다. 건축이란 분야 속성상 임교수의 도전은 다른 인문학자들보다 훨씬 돈이 듭니다. 왜냐구요? 건축책들은 비싸거든요. 사진들이 들어가면 책도 크구요. 보통 원서가 권당 10만원 가까이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거대한 자료실 속에서 임교수는 읽고 쓰고 자료를 정리합니다. 그의 삶을 보면 글쓰는 팔자가 따로 있다 싶습니다. 아니, 글쓰는 기계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본인도 씨익 웃습니다. “참 미련하게 살지요? 저도 제가 왜 이렇게 사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 결과 28권의 책이 독자들과 건축을 이어주었으니, 보람은 클 것입니다.

임 교수는 방학이면 카메라를 짊어지고 해외로 떠납니다. 취재와 자료수집을 위한 출장인데요, 그 중간중간 사서 모은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머그잔’입니다. 나라별 특색있는 기념품으로 하나씩 모은 것이 부엌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선반 위에도 한줄로 머그잔이 서 있네요. 건축학자라서 그런지 건축물 그림이 들어있는 머그잔들을 모아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술가들의 서재가 모두 임석재 교수의 서재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자이면서 책을 쓰는 저술가들의 서재는 이렇게 자료실이 되고 맙니다. 얼마나 많은 자료에 투자하고 관리했느냐에 따라 저술의 양과 질이 바뀌기 때문에 오늘도 글쓰는 학자들은 모으고 또 모읍니다. 그게 저술가의 팔자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모으는 과정 자체가 즐겁기에 모으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죠.

자, 그러면 퀴즈! 책이 이 정도면 한 몇권이나 될까요?

 

임석재 교수에 대한 기사는 조만간 <18.0> 섹션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구경 잘 하셨습니까? 다음에는 다른 저술가의 서재를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명절들 잘 보내세요.

참, 임교수 댁에 있는 책은, '1만권'입니다.

07. 02. 19.

P.S. 4-5년 뒤면 나도 1만권쯤의 장서를 갖게 될 터인데 이를 어이해야 할 것인지, 미리부터 걱정스럽다. '물먹는 하마' 정도는 미리미리 준비해둘 수 있겠건만...

P.S.2. 한편 아래는 지난 2000년 10월말 한겨레의 '인문학 데이트' 연재란에 실렸던 임석재 교수에 대한 소개이다. 저서가 그간에 훨씬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작년에 나온 책으론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 2006)과 '임석재 서양건축사 3'에 해당하는 <하늘과 인간>(북하우스, 2006)이 있다.

임석재는 누구?

 

△1961년 서울 출생

△1980~1987년:서울대 건축학과 및 같은 대학원

△1989:미국 미시간대 건축학 석사.

△1992: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건축학 박사

△1993년:원도시 근무

△1994년~현재: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저서:<추상과 감흥:비엔나 아르누보 건축>1·2(문예마당, 1995), <장식과 구조미학:불어권 아르누보 건축>1·2(발언, 1997), <형태주의 건축 운동:형태와 조형의지>(시공사, 1999), <생산성과 시지각:뉴 브루털리즘과 대중사회>(시공사, 2000), <한국 현대 건축 비평>(예경, 1998),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대원사, 1999), <물질문명과 고전의 역할:임석재 교수의 현대 건축 이야기>(북하우스, 2000), <한국적 추상 논의>(북하우스, 2000) 등 다수.

 

임석재가 말하는 임석재

철들면서 시작된 사춘기 때 나의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사람들 사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집이라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조형 환경은 끝없는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서울의 오래된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시(詩)였다. 한국 현대시의 고전들을 암송하고 스스로 시작을 해보기도 하였다.

이 두 가지 관심이 합쳐져 나는 지금 건축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아직은 사춘기 때의 감성과 열정이 유지되고 있다고 자평하는 편이다. 나는 사람들 사는 방식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사람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일년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책 읽고 책 쓰는 데 보낸다. 건축에 요구되는 실용성과 현실성은 골목길 탐방과 각종 매체를 통해서 얻고 있다. 요즘은 그 동안 공부해온 내용을 응용할 설계 작업도 시작하여 1~2년 후면 처녀작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연구는 20세기 서양 근현대 건축사, 한국 현대 건축사, 서양 건축사의 세 분야로 나뉜다. 각 분야에 대해 방대한 양의 저서 시리즈를 기획하여 매일 열심히 공부하며 집필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런 연구의 최종 목표는 나만의 건축 사상을 세우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지금도 학생들 사이에 끼여 철학 강의를 듣는다. 혼탁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던질 수 있다면 더 이상 원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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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계단이 안내하는 서양 문명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9-16 22:20 
    어느 분야에서건 '생활의 달인'이 있듯이 출판쪽에도 각 분야별로 '강적'들이 있다. '서재의 달인'이라는 나도 혀를 내두를 만큼 읽고 쓰기에 맹진하는 저자들이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 1056쪽짜리 책 <나는 문학이다>(나무이야기, 2009)를 펴낸 문학평론가 장석주 씨도 강적이지만, 이번주에 <계단, 문명을 오르다>를 펴낸 임석재 교수도 건축학 분야의 강적이다(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책이 무려 43종이다).
 
 
paviana 2007-02-1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나중에 추리소설과 만화로 가득찬 책 대여점같은 슬라이드 책장을 가진 방하나(!)를 갖는게 로망인데, 정말 저분 대단하시네요...
로쟈님도 신문지 자를 사람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제가 후다닥 가서 잘라드리지요.^^

마노아 2007-02-20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TV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장경동 목사님은 아파트 윗층은 장모님이 사시는데 모두 장서보관용 공간으로 쓰이고 목사님 가족은 아랫층을 쓰시더라구요. 모두 해서 2만권 갖고 계시다고 저번에 방송에서 보았어요. 대단한 분들이 참 많아요.^^;;

마늘빵 2007-02-20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어마어마하군요. 도서관이에요. 로쟈님도 곧 1만권. 허...

기인 2007-02-20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 집과 시에 대한 관심은 건축사와 이론으로 이끈다니, 음미해볼만한 일이군요. 저 같은 경우는 시와 소설과 유년기의 외국체험이 국문과로 이끈 너무 쉬운 방정식이었는데 ㅋ 퍼갑니다 ^^

기인 2007-02-20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윤식 선생님 서재가 궁금해요. 다녀온 선배들도 있는데, 별로 이야기는 못 들었어요. 아마 선생님 댁을 두리번 거리면서 구경한게 아니라, 열라 혼나고 정신나가서 돌아와서 그런 것 같은데.. 퇴임하시면서 책 몇만권 친구가 총장으로 있는 지방대에 기증하셨다는데. 그래도 꼭 보고 싶은 서재입니다. ㅎ

마립간 2007-02-20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새들처럼 2007-02-2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퍼가겠습니다.

비연 2007-02-20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시네요! 담아갈께요^^

yoonta 2007-02-20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저런 고가의 책들을 만권가량 사모을수 있다는 게.. 저술가도 겸해야 가능한건가? -_-

로쟈 2007-02-2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viana님/ 감사합니다. 한데, 전 필름은 취급 안해서요.^^;
마노아님/ 장서가의 기준이 만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이상은 그냥 '많다'죠.^^
아프락사스님/ '개인도서관'이란 게 공부하는 사람들의 꿈이긴 하죠. 관리가 불가능한 수준이지만.--;
기인님/ 발로 뛰는 학자들의 '자료실'이 사실 궁금하죠. 발품의 견적이 나오니까요...
yoonta님/ '대학교수'만으로는 부족하죠. 한 재산 갖고 있거나 한 재산 말아먹어야 가능한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딸기 2007-02-20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확실히 책을 좋아하시나봐요. 서재라든가, 글쟁이라든가, 책쟁이(이런 말도 통용이 된다면)들에게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고요.
구본준기자의 글도 가끔(종종?) 올려놓으시던데, 실은 그분;;도 책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아직 이분의 경우 서재는 커녕 내집마련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만).
구본준기자는 바람구두님과도 전화통화를 한차례 한 바 있는, 서로 존재를 알고 있는 사이이고요, 아마도 둘이 서로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둘이 서로 좋아할지는 미지수입니다만 ^^) 싶어요. 요즘 서재활동 소홀히하고 있는 마냐님은 구본준기자와도, 바람구두와도 (그리고 딸기와도 ㅋㅋ) 아는 사이...
더불어 구본준기자와 로쟈님은, 혹시 아는 사이이신 건 아니지요? 두 분도 서로 나눌만한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싶네요. 언제 시간을 내주신다면 로쟈님과 바람구두님과 구본준기자님과 마냐님의 만남의 자리를 만들었으면 좋겠군요. 아마도 꽤 재밌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괜찮으시다면 함 추진해보고 싶은데 어떠세요? ^^

로쟈 2007-02-20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이 블로그 자체가 '나의 서재'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애정/관심이 아니라면 이렇게 열심히 '뻘짓'을 하고 있진 않겠죠.^^; 구기자와는 안면이 있으신가 보네요(그러고 보니 같은 가계이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명하신 분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신다니 저로선 영광입니다. 생색나는 일 없이 바쁘긴 하지만 기자분들께 제가 바쁟단 소린 할 수 없지요. 언제 초대장을 보내주시길.^^
바람구두님/ 망명 가시려면 몸이 가벼우셔야 합니다(닉네임에도 걸맞게!). 있는 책들도 얼른 처분하세요!..

딸기 2007-02-20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뻘짓'이라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러면 제가 아주아주 천천히(게으른 탓입니다;;) 만남을 추진을 해보겠습니다. 혹시 몰라서 말씀드릴까 하다가 말았는데, 참고로 저는 '재모 고모'랍니다. ^^

로쟈 2007-02-2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작이 맞았네요.^^ 그리고 추진하시는 일은 그냥 연내에 성사되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아주아주 천천히' 서두르셔야 할까요?^^

딸기 2007-02-2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연내에는 반드시. 성사되지 않을까요. 워낙에 쟁쟁하신 분들이라, 약속 잡으려면 아마 애 좀 먹을 것 같네요. 로쟈님은 서울에 계신거죠? 주로 어떤 요일, 어떤 때가 편하신지 좀 알려주세요.

2007-02-20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온라인 한겨레에 들어갔다가 오랜만에 박노자 글방을 들르게 됐다. 최근 정성진 교수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 2006)을 놓고 프레시안에서 벌어진 논쟁을 정리해두려다가 여유를 못 내고 있었는데('트로츠키와 크론슈타트 문제'가 정해놓은 제목이다) 마침 그와 관련한 '만감'이 있기에 옮겨온다. '진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를 다루면서 필자의 '사회주의'관을 내비치고 있다. 다른 자리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내가 읽고 싶은 책 중의 하나가 '당신들의 러시아'인지라 박노자 교수의 러시아 이야기는 챙겨두게 된다. 원문에 오타가 여럿 되기에 교정해두었다.

박노자 글방(07. 02. 07) '진짜 사회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슬랴프니코프 vs 트로츠키

요즘 여유가 생길 때마다 정성진 교수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라는 신간을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그걸 읽으면서 반갑게 느껴지는 측면은, 정 교수께서 자신을 "트로츠키주의자"로 정의하시면서도 일단 트로츠키의 모든 사상과 모든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이나 트로츠키를 "무오류의 교황"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야만적인 현실을 역시 꽤나 야만적인 방법들을 동원해 타개하려 했던 그들의 자기 모순 투성이의 진정한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레닌과 트로츠키가 잘한 부분 - 예컨대 처음에 멘세비키들이 추진했던 "소비에트식 노동자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노동자의 생산 과정 통제"를 적어도 이론상 수용한 것 - 도 배워야 하지만, 그들이 잘못한 부분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습니까? 예컨대 정 교수께서 1920년에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노동의 군사화" 프로젝트가 하나의 오류이었음을 매우 옳게 지적하시더랍니다(445-446쪽).

물론 "전시 공산주의의 불가피한 상황의 영향", "레닌, 부하린 등 다수의 볼세비키 지도자들이 가졌던 비슷한 차원의 착각" 등의 여러 가지 단서를 달면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순히 "오류의 지적"에 머무르지 않고 트로츠키와 레닌 등이 왜 그러한 종류의 오류를 범했는지를 한번 깊이 고심해보고, 그 당시에 이와 같은 오류를 바로 잡으려는 세력들이 있었는지를 알아봐야 하지 않습니까?

왜 "노동자의 민주주의"를 이론상으로 주장했던 트로츠키가, 노조를 국가기관으로 만들어 그 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을 징집하여 군대식으로 "사회주의 건설의 요충지"에 배치하려 했을까요? 노동자 출신의 노동 운동가 같으면 '징집'되어 가족과 헤어져 어디론가 끌려가는 노동자의 심정을 이해해서라도 진시황의 부역 노동 징발을 방불케 하는 이러한 이야기를 안할 터인데, 트로츠키가 왜 이러한 프로젝트에 매력을 느꼈을까요? 단순히 국방부 장관이라는 벼슬의 포획력일까요?

물론 국방부 장관으로서 가지게 돼 있는 "행정 편의주의"란 부분도 있었는데, 여기에서 러시아 노동 운동의 한 가지 비극적인 파행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노동자 정당"을 이끌었던 트로츠키나 레닌,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스탈린 등이 과연 하루라도 "노동"해본 적이 있었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1980년대식의 유행어로, 다들 "학출 군단"이었지요. 그들 중에서는 가방끈이 가장 짧은 스탈린이라 해도, 그래도 신학 대학을 좀 다녀본 사람이었고 그루지아어로 꽤나 괜찮다는 시 몇 편을 잡지에 싣는 등 "문단 데뷰"까지 했었지요.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대학의 법대를 나와 변호사로 일해본 레닌 정도면은, 형님이 황제 암살 음모 혐의로 사형집행돼서 그렇지 사실 마음만 먹었다면 출세를 크게 할 수 있는 "먹물"의 대열에 속했어요. 고급학력이 하도 보편화된 지금에 와서는 "문단 데뷰"나 "변호사 경력"은 별 것처럼 안보이지만, 인구의 70%가 아예 글을 몰랐던 100년 전의 러시아에서는 레닌/트로츠키와 일반 공장 노동자 사이의 '사회적인 거리'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었어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았던 것이지요.

글쎄, 1920년대의 조선에서 고급 한문 문장을 잘 구사했던 조공의 최초 책임비서 (1925년) 김재봉선생과 일선 노동자의 "관계"의 형태를 생각해보시기를. 그러니까 레닌의 "직업적 혁명가 지도하의 전위당" 이론은 운동판에서의 "학출 군단"의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이야기로 보이는 측면도 있었고, 그들의 "지도, 계몽"에 피로를 느꼈던 많은 일선 노동자 활동가들이 차라리 조직 형태가 조금 더 느슨한 멘세비키 쪽을 택하기도 했었어요.

일찍부터 현장 활동을 한 일도 별로 없이 노동자들을 "조직, 지도"해온 트로츠키 같은 "고급 학출"에게는, 노동자들을 군대처럼 대오로 세워 노동 현장에 투입하겠다는 생각이 꽤 쉽게 들 수 있었어요. 즉, 그의 "노동의 군사화" 망상의 근원을, 실제로 자본주의적 사회의 불평등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운동판의 정치 역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요. 참, 지금의 한국의 운동판은 좀 달라졌나요?

그러면, 이 망상에 맞선 이들은 누구였을까요? 1921년3월의 소련 공산당의 제10차대회에서 트로츠키의 '노동 군사화'에 반대한 '노동자 반대파'의 지도자는 슬랴프니코프(Шляпников, Александр Гаврилович, 1885-1937)이었지요(*이 '만감' 덕분에 처음 알게 된 이름이다). 최종 학력은 보통학교 3학년 퇴학, 12살부터의 공장 노동, 1890년대 후반에 노동자 파업 주도, 현장 운동하다가 1901년에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입당, 1908년 해외 망명과 프랑스에서의 생활....

레닌과 트로츠키는 해외에서 독일 사민당의 후원금을 받거나 "문필 노동"으로 생계를 꾸렸지만 슬랴프니코프는 프랑스의 금속 공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거기에서도 노동 운동의 현장 지도자가 됐지요. 그가 1918년부터 인민위원 (장관) 등을 역임했지만 늘 노동자의 작업복을 입고 다녔답니다. 그리고 당과 국가에서 "벼슬"하는 동시에 러시아 전국 금속노조의 집행위원을 하는 등 "현장"의 정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지요.

그가 공산당의 제10차대회에서 트로츠키와 레닌에거 "지금 우리가 노동자의 독재 아닌 당의 독재를 겪게 되는 감이다"라고 일갈하고 "당의 관료화 위험"에 대해 - 트로츠키보다 훨씬 일찌기! - 경고하고 당과 국가 관료들을 일정 기간의 만료 이후에 다시 공장의 현장으로 보내고 현장 노동자들을 관료를 채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그리고 공장에 대한 관리권과 소비예트 공화국 공업 전체에 대한 관리, 감독권을 노조에게 이양할 것을 요구했었지요. 노동자의 민주주의라면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경제를 관리해야 하지 않습니까?

즉, 트로츠키는 노조를 국가기관화하려 했던 반면, 슬랴프니코프는 국가를 노조의 감독하에 두려 했었지요. 그렇게 됐다면 그나마 소비예트 민주주의를 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학출" 출신의 고급 "직업 혁명가"들은 어찌 보통학교 출신의 노동자들의 감독을 달게 받겠습니까? 레닌이 슬랴프니코프에게 "신디칼리즘"같은 딱지를 붙였고, 당 대회는 슬랴프니코프와 그 동지들의 주장을 부결한데다 아예 당내의 "종파 활동"을 금지시키고 말았습니다. 그후로는 일선 노동자보다 당 관료들이 당의 주인이 되고 말았지요. 트로츠키가 1923년에 정신을 차려 당의 관료화 위험을 눈을 떴을 때, 이미 다 늦었어요...

그런데, 우리 주위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많이 볼 수 있어도 "슬랴프니코프주의자"들은 별로 없어요.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를 갈구했던 보통 학교 출신의 슬랴프니코프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안보이나요?

Шляпников Александр Гаврилович

 

 

 

 

 

 

 

 

 

 

슬랴프니코프: 그는 1920년대에 혁명사에 대한 좋은 책을 꽤 썼어요 (물론 국내에서 소개된 것은 하나도 없고요). 그리고 제대로 된 혁명가들이 다 그랬듯이 결국 스탈린에게 총살을 당하고 말았지요.

07. 02. 19.

P.S. 단순하게 말하면 "트로츠키는 노조를 국가기관화하려 했던 반면, 슬랴프니코프는 국가를 노조의 감독하에 두려 했었지요"라는 대비 속에서 '트로츠키주의'와 '슬랴프니코프주의'의 차이를 읽어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차이/대비는 제목에서 암시되는바, '사회주의 vs 진짜 사회주의'의 구도로 정식화될 수도 있겠고. 의미심장한 멘트는 맨마지막 문장이다. "제대로 된 혁명가들이 다 그랬듯이 결국 스탈린에게 총살을 당하고 말았지요." 필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러한 비극적 운명까지도 '진짜 사회주의'의 구성적 요건이 아닐까, 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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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19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주의자'가 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주의자'가 안 되는 것도 힘드네요. 우선은 '~주의'에서 한발 물러나 보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역시 '학출'이라서 그런가요. '전태일주의'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로쟈 2007-02-1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미네이터'가 모범적으로 보여주듯이 '학출'들은 혁명에서 '사라지는 매개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몫이 끝나면 알아서 사라져주기...

기인 2007-02-20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음미할 수록, 터미네이터를 알레고리적으로 읽게 되네요! ^^ 미래사회 지도자(pt)를 지키러 온 지식인. 지식인은 우리 편도 있고 나쁜 놈편(기계-자본-불변자본)도 있고.(오우 터미네이터를 위한 변명!) 그런데 이건 미완의 혁명인지, 매일 I'll be back인데요. 3편으로 끝나는 것이겠죠. 록키 발보아처럼, 아놀드도 정치 그만두면 레닌주의적 '당'으로 나와서 '주인'을 보좌하는 영화 찍을지도 걱정이네요 ㅎ

yoonta 2007-02-20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랴프니코프가 누군지 나도 궁금해서 책을 뒤적여보니 콜론타이의 정부였던 인물이라더군요. 박노자씨 지적대로 10차당대회에서 콜론타이와함께 노동자반대파를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어디까지나 볼셰비키내의 관료주의를 비판한 정당한 자아비판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닌의 22년 당내분파주의금지 선언에 의해 입이 봉해져 버렸죠. 그결과 소련내의 관료제는 정착하게 되고 그 분위기속에 스탈린이 집권하게 되죠.

yoonta 2007-02-2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처럼 러시아혁명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스탈린주의의 토대를 닦아놓은 인물들이 바로 다름아닌 트로츠키와 레닌 더 나아가 레닌주의적 전위당시스템 자체였음이 분명해지는데 아직도 다함께를 비롯한 많은 국내의 좌파들은 그것을 인정하려들지 않네요. 프레시안에서 이번에 벌어진 논쟁은 그런점에서 다함께를 비롯한 국내 좌파운동권들의 그릇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을수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yoonta 2007-02-2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로쟈님의 마지막 코멘트는 그러니깐 그런 비극적 운명을 감수할 정도가 되어야만 진짜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정도의 말씀? ^^

로쟈 2007-02-2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다 정확하게는 그런 비극적 운명에 의해서 사후적으로 추인되는 것이 '진짜 사회주의'가 아닐까라는 것이죠...

yoonta 2007-02-20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진짜사회주의"는 슬랴프니코프와 같은 '진짜 혁명가'들을 비극적 운명으로 몰고가는 비극에 의해서만 추인되는 (현시점에서는) 불가능한 기획이라는 말씀? ^^

로쟈 2007-02-2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사회주의'라는 것도 '현재'에는 불가능한 것 아닐까요? 유토피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