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텐베르크로 돌아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 다오 햄릿, 이라고 어머니가 말한다
어머니 거트루드가 말한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부왕의 부고를
듣고 부랴부랴 귀국한 왕자
(연락처는 두고 갔는가, 햄릿?)
그 사이에 숙부 클로디어스는 왕이 되고
거트루드를 왕비로 맞는다
젠장, 이라고 햄릿은 말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라고 말한다
하지만 햄릿, 내 곁에 있어다오
오,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
곁에 햄릿은 남는다 비텐베르크의 대학생
햄릿은 마르틴 루터의 동문이지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는 햄릿의
도시도 될 뻔했다네 그가
되돌아갔다면 어찌 알겠는가 신학자 햄릿
위아래는 모르겠지만 종교개혁가 햄릿
하지만 햄릿은 덴마크에 남는다
비텐베르크에 부재하는 햄릿
부재로 존재하는 햄릿
대학도 졸업하지 못하고
중세로 돌아간 햄릿
끝내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한 햄릿
욕정의 구렁텅이에 빠진 햄릿
약한 자의 곁에
남은 곁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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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라고 적어놓고 며칠
시가 되는 건지 될 수 있는 건지
아니 바틀비로 시를 쓸 수 있는 건지
(쓰고는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바틀비
무얼 하고 싶은 건지 하고는 싶은 건지
안 하고 싶다는 바틀비 하고
싶지 않다는 바틀비 하지 않고
싶다는 바틀비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바틀비 이런
바틀비들 같으니라구
하면서 나는 바틀비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마술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니라네 나는
변호사도 아니고 변호사 사무장도
아니라네 하지만 바틀비
는 안 하고 싶어하는 바틀비는
애초에 너무도 조용하고 묵묵히
베끼기만 하는 필경사 너무 베끼기만 하다가
바틀비는 바틀비가 되고 말지
아무 표정도 없이 안 하고 싶다는 바틀비는
하지 않고 싶다는 바틀비는
알 수 없는 바틀비가 아니라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바틀비
죽어 있는 바틀비 이미 죽은 바틀비
너무 베끼기만 하다가 더이상
베낄 수 없는 바틀비 더 이상
베끼지 않고 싶다는 바틀비
베낄 게 없는 바틀비
아무것도 없는 바틀비
아무도 아닌 바틀비
에 대한 시도 그냥
바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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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4-2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든 저거든 아무 상관없는
주름살 하나 꿈틀거리지 않는 바틀비.
무엇이라도 되어 주어야만 한다고
소란을 떨었다는 것을 선생님 강의에서 알게됬네요.

로쟈 2018-04-29 08:14   좋아요 0 | URL
바틀비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바꿔보려고.

로제트50 2018-04-28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 언어유희여요?
이상 스타일@@

로쟈 2018-04-29 08:13   좋아요 0 | URL
모든시에 언어유희가 들어가있어요.
 

마산 창원 지나 서울로 향하는 기차
역방향 좌석에 앉아 가면서
(가끔씩 일부러 나는 거꾸로 타고 간다)
뒤로 가는 남과 여를 떠올린다
이지 라이더에서 할리데이비스를 타고 질주하던
데니스 호퍼 그러다
총에 맞아 죽던가 하는 데니스 호퍼
곁의 여자는 기억나지 않아
뒤로가는 데니스 호퍼와 여
제목도 엉뚱했던 영화였지 제목 말고는
별달리 생각날 것도 없는 영화였지
역방향 아니면 기억날 것도 없는
그런데 역방향으로 갈 때는 또 매번 생각나는
그런 사람들도 있지
인생 거꾸로 간다 싶을 때만
잃어버렸다 싶은 인연들
뒤로 가는 남과 여는 어렴풋이 데니스 호퍼가
여자를 뒤쫓는 영화던가 인질로 잡는 영화
던가 그러다 호퍼는 또 총에 맞는?
무슨 영화가 그런가 싶지만
(그런 영화라고 치고)
인생은 뒤로 가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교훈을
이쯤에서
순방향이건 역방향이건 같은 목적지에 도착하듯이
결과는 같다 기분만 다를 뿐
기분 좀 내다 죽을 뿐
결과는 같다 하더라도 나는 가끔
역방향에 앉아 뒤로 가는 남과 여를 떠올리고
인질로 잡지 못한 인연들을 떠올리고
데니스 호퍼 흉내를 낸다
나를 겨냥한 총구는 어디에 있나
두리번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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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4-2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인한 시네요.
인생 역방향으로 가보리라 야심차게 선택했던
모험이 결국 기분 좀 낸것에 불과하다는걸
확인시켜주시다니~
(기분을 내고 장렬하게! 죽지도 못하고)

로쟈 2018-04-28 19:03   좋아요 0 | URL
종착지만 생각하면요.^^ 찾아보니 여자는 조디 포스터였네요.

2018-04-2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뒤로가도 뾰족한 수가 없군요...!

로쟈 2018-04-29 20:08   좋아요 0 | URL
기차는요.~
 

너무 이른가 하며 눈을 비비니
이미 환한 아침
모텔 창문을 열고서야 알았다 아침
햇살은 진작 창문을 두드렸지만
흑막에 싸인 모텔 창문은 방음도 완벽하여라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자고 일어나면 그레고르 잠자
잠자는 자기방에서 벌레가 되고
나는 객지에서 유충이 된다

늦지 않았어도 서두르며
여긴 호텔이 아니야 중얼거리며
하지만 호텔에서도 나는 잠자가 아니었던가
가족이 곁에 있어도 잠자는
벌레가 아니었던가
(여기에 비명을 넣어주시오)
그레고르는 투덜거렸지 매일같은
출장, 기차, 사람들, 불규칙한 식사 너무
고달픈 직업이라고 투덜댔지
어느 날 아침은
그런 때 찾아온다 마치
주문한 것처럼

그레고르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지
완벽한 각본처럼
벌레를 연기했지 벌레가 되고 투덜대고
가족을 놀라게 했지 지배인을
까무라치게 할 뻔
했지 브라보!
하지만 자기방을 떠나지 않았다네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네
아버지가 문짝을 닫아도
등짝에 사과를 맞아도
그레고르는 가족을 사랑했다네
그래 잠자 가족이지

기차를 기다리며 나는
잠자에 대한 시를 쓰지
아무도 그런 줄 모르게 그레고르의
아침을 떠올리지 잠자의 아침도
세상의 모든 아침이었을 테니
벌레가 되기에 충분한 아침
투덜거리기에도 충분하고
가족을 사랑하기에도
충분한

그렇지만 그레고르는 써야 했지
고달프지만 써야 했지
벌레가 되어서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벌레인 거야
벌레 같은 자식
이라고 아버지가 말했다네
사랑하는 아버지
라고 그레고르가 말했다네
그렇게 된 일이었지

잠자는 자기방에서 벌레가 되고
벌레로 죽었다네
탄식처럼 마지막 숨이 새어 나왔다네
기차가 오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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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4-2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딩때 <변신> 읽고 충격 받았던...
대학때 프랑스문화원에서 흑백영화
<성>을 보고 낯설었던...
지금도 어려운 카프카는 수년전
서간집에서 성실하고 가족과 연인에 대한 지순한 사랑에 조금은 안타깝고도 친밀해진, 그러나
조심스러운 존재입니다, 제겐.

로쟈 2018-04-28 16:54   좋아요 0 | URL
저는 강의하면서 친숙해지려고 애쓰는중.~
 

어제 성남 운중동 명태집에서
속초산 명태집에서
명태조림으로 저녁을 먹으며 왜
어떤 건 명태조림이고 어떤 건 코다리조림인가
잠시 궁금해하다가 같은 건가 싶다가
건조건 반건조건 어차피 명태인데
코다리조림도 실상은 명태조림 아니냐
그런 걸 물어보는 건 또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나름
나도 지식인인데 분자도 지식분자인데
알 건 알고 모르는 건 대충 알고
그런 것인데

그러다
바라본 대형사진의 속초항 속초바다
절반의 고향이건만 못 보던 항구인가 싶어
못 가본 지 오래구나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실향민 아바이마을도 저만치
있구나 싶었다 속초는 38선 이북이니
속초산 명태는 원래 이북에서 넘어온 자들
한류를 타고 내려온 자들
명태조림을 먹었다고 또 검색해보니
명태가 12년만에 동해로 돌아왔단다
동해 연안에서 자취를 감춘 명태가 돌아올 조짐
그러고는 오늘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고
짜맞춘 것 아니냐 싶게 만나고
이건 실화냐

남북 정상회담은 11년만이라
잃어버린 11년이라 하고
명태는 12년만이라 잃어버린 12년
때 맞춰 명태가 돌아오고
때 맞춰 남과 북이 손을 맞잡고
때 맞춰 나는 어제 명태조림을 먹었구나
명태잡이배 타던 옆집 명수네 아버지도 생각나고
그건 어느덧 38년도 더 전
세월인 줄 알았는데
오늘은 그게 역사로 보인다
흔하디 흔하다 싶던 명태도
때로는 역사적 명태로 등극하느니
그건 모르는 자들 빼고는
다 아는 일
한갓 명태조림 먹은 일로 시를 썼다고
불평하는 자들만 모르는 일
먹여줘도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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