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살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
눈밭에 처음 발자국을 찍는 것처럼
오늘이 모든 하루의 첫날인 것처럼
미체험 행성에서의 첫 인생인 것처럼
백지처럼 백치처럼
그렇게 살기
사랑도
누구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처음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것처럼
처음 강물에 자맥질하는 것처럼
대본 없이
처음 키스하는 것처럼
처음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기

오늘 강의에서 두 번 말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믿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그렇게 살기
전생은 다들 잊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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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8-05-10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시인가요?!

로쟈 2018-05-10 09:56   좋아요 0 | URL
네. 시 카테고리에 있는 것들요.

two0sun 2018-06-10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의 질타?처음의 복수
(감히 처음인척 했다고)
처음처럼은 처음이 아니라고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처음처럼은 처음부터
가능한것이 아니라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고.
뼈아픈 경험이~~~

로쟈 2018-06-10 21:26   좋아요 0 | URL
주종을 바꿔보심이.~
 

이팝나무가 알고보니 이밥나무라는군
경력조회로는 말이야
이밥나무 쌀나무 쌀밥나무
이팝나무 꽃그늘을 지나다
이 얼마나 근사한 호강인가 생각하다가
이밥나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 근사한 꽃그늘에서 밥 생각이라니
경력은 때로 세탁이 필요한 법
이팝나무는 이팝나무여서 근사한 나무
조팝나무도 좁쌀밥나무 조밥나무였다지
너도 개명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조팝나무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눈감아 주기로 했다
이밥나무 조밥나무 틈에서 봄을 나느니
이팝나무 조팝나무와 한 시절 누리기로
이팝나무 꽃그늘에서 한 시름 잊기로
이 봄날 밥 생각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팝나무 꽃그늘에 봄밤도 근사하여라
이팝나무가 그대인 듯 근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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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5-09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그늘 아래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팝꽃잎은 조팝보다
둥글게 생겼지 라며 읊던 날.
읽다만 프루스트. 며칠전 신간 코너서 본 새번역의 피네간의 경야. 옛날 그 율리시즈 독후의 여운이 남은 상태서 신기하게 읽은 요약본 피네간. 흠, 이렇게 두꺼웠어?
사? 말어? 옆에는 몇년전 산 새
번역 율리시즈가 몇 페이지째 북마크
가 고정되어있고. 모든 호기심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다며, 맘 다잡는 봄밤~^^*

로쟈 2018-05-09 23:29   좋아요 0 | URL
제가 전염시킨 건가요?^^

로제트50 2018-05-09 23:32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아요^^*

watchway 2018-05-0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에 따라 이야기는 맹글어 가죠.
이밥의 간절함이 이밥나무로
뭔가 세련된 것처럼 말하고 싶을 땐 이팝나무로.

길상사를 고향 초등 친구에게 안내하면서
백석자 자야.
길상화와 법정스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동창넘이 어느날
˝길상사는 자야와 법정스님의 사랑하던 곳˝
이라고 멋진 이야기를 맹글어 내었지요~~~

로쟈 2018-05-09 23:28   좋아요 0 | URL
널리 알릴 이야기는 아닌듯하네요.~

가명 2018-05-0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로쟈님 시 쓰기 시작하신 건가요?^^

로쟈 2018-05-09 23:28   좋아요 0 | URL
네 지난달부터요.~

2018-05-15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자가 된 청소부보다 늘
청소부가 된 성자가 되고 싶었지
까지는 아니어도 더
감동적이라고 느꼈지 요즘은
환경미화원이 된 성자라고 불러야 할까
예전엔 쓰레기 치우는 성자
소각장에서 쓰레기를 태울 때마다
대견하게 느껴졌어
고등학교 때 우리반은 소각장 당번반
소각장 쓰레기를 태우고 재를 퍼 날랐어
어디로? 자세한 건 묻지 말고
여하튼 날랐어 그리고
묻었어
(그럼 뭘 하겠어?)
자원하진 않았어
다들 겸손해서 성자를 자처하진 않아
성자 콤플렉스란 말을 어디선가 들었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어
우리는 그냥 청소 당번
성자도 당번제야
아무나 할 수 없어도
닥치면 해야 해
네댓 명이 리어카를 몰았어
빗자루와 삽을 들었어
화장실 똥을 푸는 건 우리 일이 아니어서
우리는 소각장으로 가
아직도 냄새가 나는군
옷에 배도 할 수 없지
그렇지만 대견하게 느껴지는군
나도 한때 소각장 당번이었다는 거
청소부였다는 거
쓰레기 좀 태워봤다는 거
내가 성자라는 얘기는 아니야
기분 좀 냈다는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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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설마 이런 게 노안인가
잠시 흐릿해 보여서 울고 있는 것도 아닌데
흐릿해 보여서
남들 다 왔다는 노안이 내게
찾아온다고 대수는 아니겠지만
방안 가득 책들을 보니 눈물이
나는 건 아니고 영화가 생각난다
굿바이 마이 칠드런
아이들 입양 보내는 영화가 있었지
노동자 아빠가 손을 다쳤던가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고
엄마는 또 무슨 병이 있었나
하여간에 아이들을 다른 집에 보내야 했지
아홉이었나
하여간에 눈물 쏟으며 보내야 했어
이불 뒤집어 쓰고 중학교 때
훌쩍거리며 본 영화
늦게 잔다고 혼나면서 본 영화
누가 이 아이들을 사랑해줄까
누가 이 책들을 읽어줄까

갑자기 눈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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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수로 간 건
개인적인 사업을 위해서였지
월든은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 마을에 있어
월든은 소로가 외딴 숲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2년 2개월을 살다 나오자 다른 월든이 되었지
널빤지를 대고 석회를 발라 손수 지은 집
다락과 벽장도 있고 양쪽에 유리창도 하나씩 있는 집
자재값과 운반비로 28달러 남짓 들어간 집
남은 자재로 지은 작은 헛간도 옆에 있는 집
새가 둥지를 지을 때와 똑같은 목적으로 지은 집
그 집에 소로는 1845년 7월 4일에 입주했다네
미국독립기념일 폭죽이 터지던 날
소로는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네
월든 숲속에서의 독거 생활을 시작했네
그가 한 일은 인생을 저당잡히지 않는 일
노년의 불확실한 자유를 위해
인생의 황금기를 돈벌이에 소진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는 일
인도로 돈을 벌러 떠나면서 훗날 돌아와
시를 쓰겠다던 영국인에게 말하지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시오!˝
인도로 떠나느냐 다락방에 올라가느냐
우리의 선택지는 그것뿐
소로는 개인적인 사업을 위해 월든으로 갔지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
그걸 쓰는 게 소로의 사업이었네
자비로 책을 내고 절반도 안 팔린 책
그래서 늦어진 책이 월든
월든 호숫가에 지은 오두막 같은 월든
생전에 2000부 팔리고 절판됐지만
세상을 바꾼 책,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꾼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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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5-0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로의 최소국가(정부)와 노직의 최소국가는
같은 의미인가요?

로쟈 2018-05-07 17:01   좋아요 0 | URL
자유주의라는 점에서만 같습니다. 소로는 안 가진 자의 자유, 노직은 가진 자의 자유.

모맘 2018-05-10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사두고도 읽지않았던 책,당장 읽어야겠네요.시로 해주시는 책소개가 울림이 있습니다~

모맘 2018-05-10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가진 자가 아니고 안 가진 자인가요 자발적?

로쟈 2018-05-10 08:47   좋아요 0 | URL
네 자발적 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