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달팽이가 집으로 들어가는지
언제 항아리가 입을 오므리는지
언제 봄볕은 외출나간 마음을 불러들이는지
언제 마지못해 적은 답안지를 제출해야 하는지
언제 돌이켜보기엔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드는지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던 그 언제던가
봄날은 가고 낙엽이 떨어지던 날 또
흰눈이 내리고 또 내려서
집으로 가는 길이 벅찬 모험이었던 그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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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궂은 날씨엔 따뜻한 걸로
차가워진 마음을 따로 데울 수 없으니
대리석 같은 마음
살아있는 조각은 살아있는 것 같은
조각이었지 때로는 이백년이
가고 사백년도 지나가네
어떤 자세여야 식은 마음은
쓰러지지 않을까
모든 건 균형인 것일까
피사의 사탑이 쓰러지지 않는 것 같은
모든 건 자세인 걸까
죽어도 죽은 척하고 있는
모든 인연들이라니
깨뜨리고 쪼아서
무언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는

궂은 날에는 궂은 생각들이
구두를 적시고 바지를 젖게 해
궂은 날에도 움직이는 조각들은 활보해
알고보면 어딘가에 매달려 있기도 해
등장인물이 필요하지 않아
이 무대에는
철사 두 가닥의 나무로 충분해
어쩌면 지푸라기로도
대리석이 있던 자리라도
자세만
남을 테니까

커피가 식었어
얼음을 더 주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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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0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0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0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제트50 2019-03-2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탈리아 여운에 푹 잠기신 로쟈님! 요즘 줌파 라히리의 새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지금은 문장
만들기에 시동 걸고 있는 듯 한 그녀.
새 언어로 그 정체성을 표현할 때를
기다려봅니다. 쌤에게 이번 이탈리아가 남긴 이미지와 스토리는
언젠가 들려주시겠죠? 책으로^^*

로쟈 2019-03-21 23:50   좋아요 0 | URL
네 쓰면 좋겠는데 여행기도 계속 밀리네요. 독일부터 써야 하고요.^^;
 

로마 바티칸에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있고
갈매기도 있다 천지창조 천장화에서
아담과 하느님이 손가락을 갖다댈 때
아 이제 보니 그건 정지화면인지
스톱모션인지 창조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천장에서만
고개를 젖힌 인파를 내려다보며
포즈로만
그러다 밖으로 나오면
베드로성당 광장을 나는 갈매기
어쩌면 바다갈매기
끼룩끼룩
천상의 소리는 아니어도
정겹게 들린다
미켈란젤로는 누굴 모델로 그렸을까
공중부양한 하느님은
누가 받치고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아담이야말로
편안한 자세로 손가락만 내밀고
그게 시작이라는 거지
아담의 창조
그때도 성당 광장에서
천지장조의 바깥에서
갈매기가 끼룩끼룩
천지창조의 순간
미켈란젤로가 주저앉은 콧등에
땀을 흘릴 때
로마 바티칸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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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프러스의 나라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로마였지
로마의 사이프러스는 이탈리아 사람들보다
한 키가 높아 사람들의 영혼을
흰구름 너머 저 하늘로 데려다준다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믿는다지
로마의 묘지를 지키는 사이프러스
로마에서는 로마법에 따르기에
나는 임시 이탈리아 사람이 되어
로마의 밤길을 걷고 사이프러스의 향기를 느낀다
이틀밤이 지나면 나는 이곳을 떠난다네
내가 남긴 임시 영혼도 거두어주려나
사이프러스의 나라 이탈리아
로마의 돌길을 더 힘주어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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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비둘기가 사라졌다
라벤나의 어느 골목 안쪽의 작은 광장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이
나의 시간이 먼저 비둘기와 함께 사라지고
나도 곧 사라질 시간
아직은 물을 뿜지 않는 분수와 눈을 맞춘다
사랑하기엔 이른 시간이라오
라벤나에서 나는 두 발로 걷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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